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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차,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서기 813년 산띠아고의 유골이 발견되고 교황이 인정함으로써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는 예루살렘과 로마와 함께 3대 성지가 되었다. 꼼뽀는 '들판', 스뗄라는 '별이 빛나는'에서 온 것으로 목동이 산띠아고의 유골을 발견했을 때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대성당 가운데 탑 중앙에는 산띠아고(12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 상이 있다.



산띠아고 대성당에서는 매일 11시에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있다.

시작하기 전에 출발지와 나라별로 구분하여 순례자들의 숫자를 발표한다.



산띠아고 알베르게 Seminario Menor, 학교이기도 한데 한 층을 알베르게로 만들어 놓았다. 

다른 곳과 달리 하루만이 아닌 원하는 날 수만큼 머물 수 있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30일 간의 까미노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내가 갖고 왔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주었나. 아쉽게도 까미노는 나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더 큰 것을 얻었다. 그것은 '나'라는 문제를 더 명확하게 보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다루는 방법,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 같다. 버리기, 단순하게 살기, 걷기, 자기일 자기가 하기, 미루지 않기 등등. 결국 매일의 삶이 까미노가 되어야 함을 배우게 했다.

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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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차, 몬테 도 고소에서 산따아고 데 꼼뽀스뗄라 가는 길 4.5km






순례자 사무소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순례자들. 오전 9시에 열린다.



순례확인증!!!


순례확인증을 받고 맞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 앞에서 감격의 순간.


덕분에...



오전에 도착하기위해 몬테 도 고소에서 머물고 순례자 사무실이 열기 전에 도착한 산띠아고 데 꼼뽀스텔라! 그리고 긴 순례길을 확인받고 마주한 산띠아고 대성당! 30일 동안 익혀왔던 감격이 폭발했다. 소리지르고, 뛰고, 눕고, 절해도 모자란 순간이다. 그 자리에 서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한참 동안 멈추어 서서 그 감동을 온 몸으로 만끽했다. 걸으며 한두번 스쳐지나간 외국인들과도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정답게 사진을 찍었다. 무엇을 해도 기쁘고, 무엇을 봐도 가슴 벅찬 곳, 인내로 걸어온 순례자가 만나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이다.

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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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차, 오세브레이로에서 사모스 가늘 길 32.4km(1) 

길을 잘못 들어 차도 위를 한참을 내려가면서 맞는 길인가 초조해 했는데, 지도에 나와있는 지명 리냐레스를 보자 얼마나 반갑던지, 카메라를 자동으로 꺼내서 한 컷 담았다.


갈리시아에 들어서면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노란 화살표이다. 과도할 정도로 많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가 있는 지방이기 때문에 더욱 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닐지.



어떤 순례자가 갈리시아는 영국보다도 비가 잦다는 얘기를 했는데, 비도 그렇고 오전엔 안개가 많이 끼는 것 같았다. 산 로께 고개Alto San Roque(1,270m)에 있는 순례자 기념물이다.


현지인들이 손수 만든 지팡이 하나 구입하고 싶었지만...



뽀요 고개(1,335m), 산띠아고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지점을 지났다.



초장으로 출근하는 소떼. 멀리 보이는 구획지어저 있는 풀밭들이 소들을 위한 초장이다. 풀을 적당한 크기로 키워 옮겨가며 먹이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 소들이 풀을 뜯기위해 초지로 향한다. 사람들에겐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던 개들이 소들에겐 얼마나 사납게 짖으며 몰아가던지 재미있게 지켜봤다. 소는 풀이 어떻게 자라는 지 걱정하지 않고 자신 앞에 있는 풀을 최선을 다해 뜯는다. 그들에게 주어진 오늘의 과업이다. 먹는 것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순례길 많은 에너지 소모 때문인지) 저녁을 그렇게 많이 먹지만 이튿날 아침이면 여지없이 뭔가를 위장에 넣어줘야 한다. 어제 먹은 것이 소화되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있긴하지만 그렇다고 오늘 안 먹을 수 없다. 오늘은 오늘의 양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획일화되어 가고 있지만,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 있었다. 바로 유목민적 삶이다. 대개의 삶이 어제의 수고로 이룬 것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정착민의 그것이라면 유목민은 거의 오늘에 집중해 산다고 볼 수 있다. 대대로 살아갈 집을 튼튼한 재료로 짓고 밭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축적하기위해 내 땅 네 땅을 구분하고는 스스로 능력치 안에서 경쟁하고 비교하는 것이 정착민이라면 하늘이 허락한 것을 찾고 그것에 만족하는 이들이 유목민일 수 있겠다. 정착민이 지키는데 무게 중심을 두고 보수적인 성향을 띤다면, 유목민은 이동하고 변화에 익숙한 진보적 성향을 띤다고 볼 수 있겠다. 
단편적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본 것이지만, 까미노를 비추어 생각해 보면 까미노는 순례자들을 정착민이 아닌 유목민으로 초대한다. 어제의 어떤 것, 몇 살인지 직업이 뭐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가 아닌 오늘의 한 걸음에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오늘 길을 찾고 먹을 것을 구하고 숙소를 정하는 모든 과정이 바로 유목민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오늘 걷게 되는 길에 자신을 맞추고 또 새로운 숙소의 새로운 조건에 늘 새로운 마음으로 적응해야 한다. 그래서 어제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오늘은 오늘의 새로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일상이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 같은 일을 하게 되지만 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그 날은 새로운 날이 되지 않을까. 어제 했기에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닌 오늘을 사는 삶, 사역도, 사랑도 그랬으면 좋겠다. 까미노의 유목민처럼...

201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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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차, 오세브레이로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1층의 2층 침대가 빽빽하게 들어찬 곳을 배정받고,

비교적 늦게 도착한 나는(90번째) 2층의 단층 싱글침대방에 배정을 받았다.

함께 올라간 외국인 여성과 럭키를 외치며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잠시 후 1층에서 올라온 어떤 아저씨는 1층에 가봤냐고 하면서 화를 내고 내려갔다. ㅋㅋ



까미노에서 총 다섯 개의 무지개를 봤는데, 오세브레이로에서 산을 중심으로 양 쪽에 두 개를 목격했다.


날씨가 얼마나 변덕스럽던지 서너 시간 동안 맑았다 흐렸다 비가 내리고 다시 맑아지는 등 정신이 없었다.


복원된 것이긴 하지만 세워진 연도를 기준으로 까미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고 한다.

이 지역 교구 사제였던 엘리아스 발리냐 삼뻬드로가 유럽에 까미노의 의미를 역설하고 노란 화살표 제안하는 등 현재의 까미노를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펼쳐진 각 나라의 성경들 중 한국의 공동번역 성경이다.





오세브레이로는 산 정상에 위치해 풍광이 좋고, 또 그렇기 때문에 기후변화가 커서 안개가 꼈다가 다시 비가 오다가 또 맑아지는등 몇 시간 동안 여러 날씨를 경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오세브레이로를 중심에 놓고 양쪽에 나타난 무지개는 정말 장관이었다.
이 곳엔 까미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 있고, 그 곳에 있던 사제가 유럽 전역을 돌며 까미노와 그 상징인 노란 활살표를 알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주교는 그 지역의 둥그런 모양의 초가집을 보존하기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성당은 프랑치스코 수도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다른 성당의 미사와 조금 다른 것도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성당과 관련해서 전해내려오는 전설인데, 성찬식 빵과 와인이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고, 또 마리아상이 그것을 보려고 고개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뭔가 냄새가 난다. 당시에 가톨릭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성당을 띄워볼려고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소문으로 인해 또 이 곳이 얼마나 번성할 수 있었을까. 면제부를 구입하면 지옥에 내려간 조상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말이다. 이 뿐만 아니라 가톨릭 성당들 곳곳에서 이런 전설들이 전해내려오는데, 무지한 시대에 유용했던 평신도 통제방식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지금도 그런 이야기에 혹해서 그 곳을 찾아와 기도 한 번 더 하는 이들도 있으니, 꼭 과거의 얘기만도 아닌 것 같다. 그런 이야기에 끌리는 것이 인간 내부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면 현실에서 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201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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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차, 비야프랑까에서 오세브레이로 가는 길 30.4km(2) 








캐나다인 순례자 

언제부터인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캐나다 남성이 길을 멈추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곤 서로 사진을 찍자고 하더니, 외국사람을 찍은 사진이 없다고 나보고 포즈를 취해보란다. 나는 이미 슬쩍슬쩍 이 사람 사진을 찍으며 왔는데...


라 파바로 가파른 길을 오른 후에는 능선의 탁 트인 길을 걸을 수 있어 좋았다.

가이드북에는 라 파바에서 묵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산을 오르다 중간에 멈춰버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거리도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사진에 보이는 라구나 데 까스띠야를 지나 오세브레이로를 향해 계속 걸었다.


이제부터 갈리시아라는 표지석. 갈리시아는 까미노의 마지막 지방으로 주도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이다.
여전히 걸어야 할 구간이 많이 남았지만 끝이 보이는 것 같아 감격스러운 곳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기차를 타는 것보다, 버스나 승용차를 타는 것보다,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것이 잘 볼 수 있다. 빠르면 목적지에 더 일찍 도착하겠지만 놓치는 것이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 느리기에 주변은 더 천천히 지나간다. 걸을 때도 너무 빨리 걸으면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 멈추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너무 느리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를 유지할 때 주변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고, 목적지에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까미노 최고의 유익은 걷는데 있다. 가장 느린 수단인 걷기로 순례하기에 많이, 자세히, 깊이 보게 되니, 또 생각도 그에 잇따를 수밖에 없다. 사람도, 자연도, 마을도, 도시도, 동물도 이야기 거리가 되고, 생각 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전거보다는 걷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걸을 때도 속도가 붙으면 멈추기 쉽지 않은데, 자전거는 말해 뭐하랴. 까미노는 그래서 걷기위한 최적의 길이고, 또 걸어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길임에 분명하다.
201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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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차, 비야프랑까에서 오세브레이로 가는 길 30.4km(1) 




내리막이 얼마나 급한지 아래에 있는 마을 뜨라바델로Trabadelo가 바로 발 밑에 있는 것처럼 눈에 들어온다.



까미노에서 심심치 않게 지팡이와 가리비를 파는 집들을 볼 수 있다.




말을 이용하려면 연락하라는 안내문이 오세브레이로까지 힘든 구간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까미노 최악의 내리막을 만났다. 비아프랑까를 벗어나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우측 오르막을 오르는 까미노가 있다. 어두운 시간에 몇 안 되는 순례자들이 오르다 결국엔 앞뒤에 아무도 없는 산 길을 걷게 되었다. 이 길이 맞는지 반신반의하면서 걷다가 저 만치 멀리서 내가 걸어온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곤 안도하며 가던 길을 제촉했다. 그런데 안심은 얼마 가지 않아 분심으로 바뀌었다. 까미노 최악의 내리막을 만난 것이다. 전체적으로 긴 구간은 아니었지만, 무릎의 고통을 참아내는데 한계를 느끼며 미끄러지듯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내리막은 가혹하다. 인생도 그렇겠지... 내리막에서 중심을 잃으면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럴 때일수록 더 함께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잡고 있는 지팡이를 더 꽉 붙잡고, 다음 목적지를 위안 삼아 힘을 내야한다.
201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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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차, 산또 도밍고 Santo Domingo


문을 열기 전에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도착한 순서대로 짐을 내려놓고 기다린다.


닫혀있던 문이 열리자 그 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하루 순례체험을 하는 어린이들


쌍둥이 같은 자전거 순례자들.


열한번째 목적지는 산또 도밍고이다. 비교적 짧은 거리이기에 이른 시간에 도착했고, 시간 여유가 있어 도시를 이곳 저곳 살펴볼 수 있었다. 한국과 달리 유럽은 도시에 이름을 붙일 때 사람의 이름에서 따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곳 산또 도밍고 역시 과거 이 도시와 순례자들을 위한 삶을 살았던 이를 기려 그의 이름을 도시의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지난 순례의 역사가 깊이 배인 산또 도밍고에서 또 '아바디아 시스떼르시엔세 누에스뜨라 세뇨라 데 라 아순시온'이라는 긴 이름의 유서깊은 수도원 부속 알베르게에서 하루 밤을 묵었다. 그 연륜만큼이나 옛스런 매력을 간직한 곳이다. 새로 꾸며 시설이 좋은 알베르게가 하나 더 있었지만, 꼭 이 곳에 묵어야한다며 찾아오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동행했던 아주머니는 긴 이름 때문에 짐이 같은 이름의 수도원으로 가버려 저녁 무렵까지 애를 태워야했지만, 이 역시도 고스란히 그리운 추억이다.

알베르게는 도시마다, 운영하는 이들에 따라 각양각색이지만 피곤한 몸 누일 수 있는 침대와 작은 샤워부스만 있으면 족하다. 삐걱거리는 이층침대도 눈감으면 이내 꿈나라로 안내하는 포근한 잠자리가 된다.

201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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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차, 아소프라에서 산또 도밍고 가는 길 15.2km



기부로 운영하는 노점, 스페인 경제상을 반영한 마케팅이 눈길을 끈다.



끝없는 밭, 까미노의 필수 요소이다.




산또 도밍고 입구에 자리한 농산물 집하장, 감자가 산떠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까미노에 첫 발을 디디고 하루이틀 더해가며, 그 매력은 더하면 더했지 줄지 않는다. 초반 어느 때인가 한 한국인 순례자가 까미노가 상업주의에 물들었다고 개탄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까미노가 아직은 상업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을 깨닫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Bar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곳에 바는 없다. 정말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 같은 자리에 작은 바와 상점이 있을뿐이다. 동남아나 가깝게는 한국만 같았어도 곳곳에 음식점들이 들어섰을 것 같은데, 까미노는 이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첫 방문인 내가 이전 모습을 모르니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까미노엔 순례자들의 주머니를 털어보려는 의도의 상점들이 충분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때때로 그 점이 순례자들을 더 목마르고 배고프게 하지만, 그렇다고 싫거나 개선되기를 바라진 않는다. 까미노의 매력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계속 그 모습을 유지하기를 바랄뿐이다. 그래서인지 산또 도밍고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기부로 운영되는 노점이 더 반갑다. 스페인 경제의 그늘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씁쓸하긴 하지만...

201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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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차, 벤또사에서 아소프라까지 15.2km



나헤라를 지나면 만난 외발자전거 순례자와 한 구간만 걷는 프랑스인 단체 순례자들




스페인 사람들의 가장 대중적 식사요 간식인 보까디요


까미노에서 가장 좋은(?) 아소프라 공립 알베르게. 2인 1실!


입양한 한국인 딸을 보여주는 미국인 레베카 아줌마


한국 순례자들의 추석맞이 잔칫상!


베드버그에 물려서 심란하면서도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이유는 한국에서 구입해 온 '버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네이버카페 글에서 버물리를 바르며 4~5일 버티면 된다고 읽었던 기억이 나서 열심히 바르며 크게 위안을 삼고 있었던 터다. 그런데 그 버물리를 바르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속뚜껑이 열리면서 80% 이상이 쏟아지고 말았다. 그 순간 얼마나 낙심이 되고 슬프던지, 그 심정을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버물리는 스페인에서 구입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지금 물린 것은 거의 다 나아가지만 만약 또 물리게 되면 그 땐 어떻게 하라고. 정말 야속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나라는 사람, 참 작은 것들에까지 마음을 주고 의지해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버물리, 스틱, 신발 등등. 그뿐일까? 핸드폰, 노트북, 만년필, 플래너 같은 것들에 마음을 주고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냥 바람만 불면 날아가 버릴만한 것들에 마음과 정신을 쏟고 있는 거다. 참으로 의지해야할 대상은 모른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 많이 찔렸다. 그래도 쏟아진 버물리는 생각할 때마다 너무 아깝고 슬프기까지 하다.

201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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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차, 로그로뇨에서 밴또사 가는 길 20km




수확하던 포도송이를 뚝 잘라 순례자에게 나누어준 고마운 농부, 꿀맛!


그라헤라 고개 옆 철조망, 순례자들은 이런 곳엔 어김없이 십자가를 만들어 놓는다.



산 후안 데 아끄레 순례자 숙소에서 옮겨온 순례자 장식으로 만들어진 공동묘지



밴또사의 숙소와 입구에 놓인 순례자들의 스틱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고, 또 어떤 분일까? 하나님은 저만치 먼 곳에 계시며 우리 삶에 목적이 되시고, 방향성이 되실 수도 있고, 우리 삶의 내용을 내려다보시며 선악 간 판단하시는 자리에 계실 수도 있다. 그런데 혹시 하나님이 지팡이와 같은 분은 아닐까. 매일 짚고 일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 디딜 때 나를 지탱해 주고, 내 힘을 덜어주는 지팡이(스틱). 마치 모세가 의지했던 그 지팡이, 양떼를 돌보던 목동 다윗의 손에 들린 지팡이, 힘겹게 순례의 길을 걸었던 수많은 순례자들의 손에 들렸던 그 지팡이가 아닐지. 

하나님은 앞서 가시는 것 같지만, 어느새 뒤서 있고, 또 너무 익숙하고 가까이 있어 없는 것 같은 그런 분. 숙소에 도착하면 불필요한 것처럼 문간에, 침대 밑에 놓이기도 하지만, 길떠나는 이의 손에 다시금 쥐어지는 막대기 길벗! 
까미노 8일차에 가장 고마운 존재가 뭐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스틱이라고 말한다. 이 스틱이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을까? 덕분에 나는 내일도 변함없이 걸을 거다. 그래서 순례자에겐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시23:4)는 정도가 아니라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201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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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차, 로스 아르꼬스에서 로그로뇨까지 27.8km



또레스 델 리오에 있는 팔각형 모양의 성묘 교회 -템플기사단과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교회와 관련있는 교회



비아나, 스페인 전통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라 리오하 지방의 주도 로그로뇨


까미노 순례를 준비하면서 약간은 걱정과 함께 반대로 결의를 다졌던 부분이 '혼자 걷기'였다. 그러나 까미노는 혼자 걷는 길이 아니었다. 길은 역시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곳. 하루 이틀 그 이상 앞서거니 뒤서거니 인사를 주고받으면 걷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가며 마치 오랜 동료를 만나듯 따듯한 시선을 주고받게 된다. 한국사람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프랑스 사람, 스페인 사람, 독일 사람, 이태리 사람, 미국 사람... 

그러니 한국사람을 만나는 것은 말해 뭐할까? 특히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이들 간에는 묘한 동질감이 생기면서 가족같은 연대감마저 갖게 된다. 아마도 이것이 순례자를 위해 신이 준비한 안전장치가 아닐지. 왜냐면 까미노는 보통 초반 열흘이 이런저런 일들로 어려움을 겪는데, 이 때 힘이 되어주는 이들이 가까이 있게 되는 것이다. 
라 리오하La Rioja 지방의 첫 번째 도시(마을)이고 주도인 로그로뇨, 순례 시작 후 가장 많이 걸어 도착한 곳이고(27km), 처음으로 베드버그에 물린 자국을 발견했다. 그래서 더욱 함께하는 이들의 존재가 큰 위안이 되었던 곳이다. 베드버그에 당황하고 있을 때 진심어린 관심과 위로의 말들이 큰 힘이 되었다. 이후에도 위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가져온 귀한 약을 나눠주기도 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이런 길벗들이 있었기에 끝까지 순례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201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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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차, 에스떼야에서 로스 아르꼬스 가는 길 21.7km(2)





무어인의 샘Fuente de los Moros




순례시작 셋째 날부터 새끼발가락에 탈이 났다. 작은 물집이었지만 처음이라 제대로 잡지 못해 4일이 넘게 고생을 하고 있다. 걷는 것을 방해하니 며칠 째 글만 적으면 이 물집 얘기밖에 없다. 가장 많이 영향 받는 것을 통해 생각의 가지치기를 하게 되나보다. 물집이 안 잡혔으면 얼마나 즐겁게 걸을까. 작은 지체 하나의 문제가 어떻게 온 몸에 영향을 끼치는지 뼈저리게 경험한다. 

시간이 지나면 물집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고통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다. 고통이 없는 삶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지 않나. 그러니 없앨 수 없다면 물집이든 관절통이든 고통과 함께 걷는 법을 익히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대개 사람들의 기도는 고통이 사라지게 해 달라는데 집중되어 있다. 마치 삶의 무거운 짐이 없애달라는 기도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그 고통 후엔 또 다른 고통이 있게 마련이니 고통이 모두 없어지는 것을 바라기보다는 고통은 있으나 마치 고통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 것 같다. 
아픈 발만 생각하며 ‘아이 아파, 아이 아파’하며 걷게 되면 주변을 보지 못한다. 지나가는 사람도, 멋진 경치도, 시원한 그늘도, 맛있는 음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이 자신의 고통만 바라볼 때(절대화) 일어나는 일이다. 그 고통 역시 여러 가지들 중 하나(상대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그것을 키워나가면 자신을 더 깊은 고통으로 집어넣게 되고, 급기야는 주변사람들까지 괴롭히게 된다. '당신들이 내 아픔을 알기나하냐, 네가 뭘 아냐?'고 하면서... 비록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고개를 들고 주변을 볼 때, 그 고통을 넘어서는 삶의 이유들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201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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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6일차, 에스떼야에서 로스 아르꼬스 가는 길 21.7km(1)







변함없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발가락 물집으로 다리를 절며 어렵게 한 발 두 발 내딛지만 뒤지지 않으려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노란 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앞선 이도, 뒤선 이도 없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가 심각하게 질문하고 있을 즈음, 저 멀리 어렴풋하게 노란 표시가 보인다. 다행이다 싶어 달려가 보는데, 다가가 보니 아니다. 까미노에서 아주 가끔 이런 경험을 한다. 노란 화살표를 잃어버리고 길도 잃어버릴까 불안에 휩싸이는 거다. 

까미노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 길이다. 그래서 조금 과장하면 까미노는 노란 화살표로 인해 존재한다. 노란 화살표가 안내하기에 마음 놓고 자신을 향한 여정을 걸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의 노란화살표는... 혹시 나는 화살표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멀리 벗어나 있어서 벗어난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인생을 안내할 화살표 또한 간절히 소망해 본다. 역시 내 안에서 찾아야할 과제이겠지... 다시 찾은 노란화살표의 도움으로 공짜로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는 이라체 수도원의 포도주 샘 뿌엔떼 델 비노Fuente del Vino에 도착했다.

201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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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5일차, 에스떼야Estella



에스떼야 입구에 있는 샘.









길이나 숙소에서 볼 때마다 ‘코리아노’를 외치며 반갑게 맞아준 스페인 아주머니를 에스떼야 시내에서 다시 만났다. 이 분은 특히 발에 물집이 많이 잡혀서 고생하며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눠서 더 기억에 남는다. 물집이 너무 심해 병원까지 다녀와서는 더 못 걷고 마드리드로 돌아간단다. 손짓발짓으로 의사의 말을 전하는데, 바늘로 물집을 쑤시면 위험하다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단다. 의사들은 다 그렇게 말할 것 같다. 까미노를 쉼 없이 계속 걸어야 하는 사람에겐 별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 또 바늘과 실로 물집을 잡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을 체험하니. 

물집이 잡히면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을 통과시킨 후 실을 너무 길지 않게 앞뒤를 잘라 그대로 둔다. 실은 무명실이어야 물이 잘 타고 나온다고 한다. 그렇게 아침까지 끼워두고 있다가, 양말을 신을 때도 그냥 두면 걸으며 생기는 물이 계속 빠지고, 저녁에 양말을 벗어 보면 실은 이미 빠져나가 버리고 물집 부위 피부가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대략 2~3일이면 물집은 잡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신발이 너무 꽉 맞지 않아야 하고, 끈 조절을 잘해야 한다. 특히 발의 볼이 넓은 사람은 운동화 앞 쪽에 좀 더 여유를 주는 것이 좋다. 아무튼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며 한 컷을 남겼다.

201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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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5일차, 뿌엔떼 라 레이나에서 에스떼야 가는 길 21.1km(1)




포도밭 너머로 보이는 시라우끼Cirauqui


주말 밤의 축제를 즐긴 시라우끼의 청소년들이 순례자들을 스쳐 지나간다.

오늘을 살아가는 까미노의 청소년들은 그 길을 걷는 순례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매일 어김없이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겠지만...



잠시 휴식을 취하는 브라질 순례자들. 사람도 쉬고 이렇게 배낭들도 쉼의 시간을 갖는다.



작은 마을에 작은 바Bar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순례자들은 쉼과 충전으로 한결 밝아진 얼굴로 다시 까미노를 걷는다.



짐을 산처럼 싣고 까미노를 걷는 당나귀 모습. 누가 순례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ㅎㅎ


일상생활을 넘어서는 강행군을 하면서 다리 관절들, 발의 피부가 아우성이다. 몸의 약한 곳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 지르기 시작한다. 평소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에 약한 줄 몰랐다. 미리 알았더라면 더 준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미 길 위에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다. 솔직히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는 중이니 감당해야 할 대가라 여길 수밖에 없다. 

약한 부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열고 살아야 한다. 매일 장거리를 걷는 까미노와 같은 한계를 넘는 상황이 왔을 때, 그 부분이 가장 먼저 발목을 잡으니 말이다. 그 때 발견하면 이미 늦은 거다. 미리미리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지혜로운 사람이겠고,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다. 
사회도 역시 취약한 분야, 약한 사람들을 평소에 예민하게 찾아 돌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도자들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누구든 그런 마음 자세를 갖고 사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러면 그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거다.

201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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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4일차, 뿌엔떼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로스 빠뜨레스 레빠라도레스(교회에서 운영) 알베르게.

알려지기로는 이 곳 봉사자(오스삐딸로)가 동양 여성들을 대상으로 마사지를 해준다고 하면서 추행을 한다고 했다.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내가 갔을 때 있었던 그가 그였다. 지금도 있겠지...


스페인(유럽이 그런 것 같다)에서 과일을 살 때, 특히 이런 동네 가게에서는 주인이 주는 것을 받아온다.

내가 하나 하나 들어보고 고르는 것도, 또 좋은 것으로 바꿔 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바꿔달라고 해봤는데 표정이 확 바뀌었고, 다시 준 것도 아무거다 집어서 준 것이었다. ㅋㅋ

한국과 다른 점인데, 결국 상인과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거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손님이 좋은 것만 골라가면 좋지 않은 것만 남아서 상인은 손해를 보게 된다.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함께 가져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들었다 놨다 하며 얄밉게 좋은 것만 골라가는 우리네 습성을 반성하게 한다.




작은 마을의 이름 '뿌엔떼 라 레이나'의 뜻이 '왕비의 다리'로 이 다리로부터 기인한다. 

왕비가 순례자들에게 비싼 요금을 받는 뱃사공들의 횡포를 가슴아프게 여겨 만들었다고 한다.


며칠 전부터 오른쪽 새끼발가락에 생긴 물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물집이 잡힌 발가락만 아픈 것이 아니라 걸음걸이가 온전하지 않으니 몸 전체가 흔들거리고, 다리의 다른 부위까지 아파온다. 한 곳의 통증이 몸 전체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균형이 깨진다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 옴을 뜻한다. 

불균형은 아픈 것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배낭에 짐을 꾸릴 때도 일어난다. 한 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짐을 잘 집어넣고, 배낭끈도 양쪽 길이를 같도록 잘 조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균형이 깨져서 한 쪽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게 된다. 
균형의 문제는 비단 물리적인 몸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나 정서에서도 일어난다. 한쪽으로 너무 쏠려버리면 더 이상 정상적인 생각을 하고 일을 처리하지도 못하게 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지만 정서의 불균형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괴롭게 만들게 된다. 그래서 순례자가 매일 균형 있게 짐을 꾸리듯, 매일 마음을 살피며 치우쳐 있지 않은 지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어찌 사람의 몸과 마음만 그럴까. 사회 역시 관심이 한 쪽으로만 쏠리거나, 한 부분이 소외되고 고통 한다면 이도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고, 결국 건강하지 못한 사회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도자는 늘 부족한 곳, 소외되는 곳을 돌아봐야 하고, 또 반면에 너무 부와 권력이 한 쪽으로 집중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어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201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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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4일차, 빰쁠로나에서 쁘엔떼 라 레이나 가는 길 24.4km(2)


자전거 순례자들이 오르막에 잠시 멈춰 지나온 뻬르돈 고개쪽 풍력발전기와 어우러진 경치를 촬영하고 있다.

뻬르돈을 작은 오솔길로 오르다 자전거를 되돌려 도로쪽으로 가는 것을 봤는데, 한참 후에 다시 만난 것이다. 왼편에 있는 이는 여성이다!



목마른 순례자에게 너무나 반가웠던 우떼르가의 급수대.




토요일, 순례자는 결혼식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까미노 둘째 날 만났던 길동무를 넷째 날 이른 아침 빰쁠로나를 막 벗어날 즈음 다시 만났다. 거기서부터 그 날 목적지인 쁘엔떼 라 레이나까지 같이 걸었다. 잠깐 같이할 것 같았는데, 꼬박 하루를 함께 걷게 될 줄은 몰랐다. 체력이나 나이나 여러 면에서 봤을 때 도무지 같이 걸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길 옆에 주저앉아 쉬며 아침도 해결하고, 힘든 길 위에서 같이 투덜거릴 수 있어서 좋았다. 

생각해 보면, 그 날 같이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힘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역시도 걷는 것에 한계를 느낄 때이기도 했다. 그러니 서로 노력을 하지 않고도 보조를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하루 이틀은 그도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넷째 날엔 힘이 부치고 있었던 것이다. 뿌엔떼 라 레이나에 들어가서 숙소를 찾아 약간 헤매며 둘 다 힘들어하며 얼마나 궁시렁 거렸는지 모른다. 

동무가 된다는 것, 힘을 빼는 것이 먼저이다. 자기주장을 앞세우고, 자기 생각대로 하려는 의지가 남아 있을 때는 좀 더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 혹시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먼저 가라고 양보하는 것이 지혜가 아닐지. 언젠가 그 역시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 좋은 길동무가 될 테니 말이다.

201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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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4일차, 빰쁠로나에서 쁘엔떼 라 레이나 가는 길 24.4km(1)



파란불과 화살표! 순례자에게 가도 좋다는 신호로 보여서 기분 좋았다.



순례자들의 포토존, 뻬르돈 고개



10kg 가까이 되는 짐을 짊어지고 대여섯 시간을 걷는 일이 만만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뭘 빼면 가벼워질까를 생각한다. 그렇다고 빵이나 음료 과일 같은 먹거리들을 뺄 수도 없다. 까미노 초반 필요 없는 몇 가지 소품들을 뺐지만 그 차이는 미미했다. 한 번은 배낭을 다음 목적지까지 부쳐보기도 했다. 출발할 때는 가벼움에 날아갈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자 매고 있는 작은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다. 어쩌면 맨 몸으로 걸어도 몸이 천근만근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무게와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고 힘이 떨어지고 피로도가 올라가면 뭐든 큰 무게로 느끼게 마련이니. 

짐을 덜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짐을 넉넉히 짊어질 수 있는 몸과 마음이 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기도를 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런저런 삶의 무게들을 덜어달라고 기도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과 몸이 그런 무게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단단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 또 그렇게 스스로를 단련해 가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가 아닐까 싶다.
201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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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3일차, 빰쁠로나Pamplona


빰쁠로나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세운 유서깊은 도시이다.

그 역사가 긴만큼 사연도 많은 곳이었다. 순례 초반에 만나는 바람에 여유있게 살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헤수스 마리아 알베르게(협회 운영) 입구


알베르게 내부. 오는 순서대로 1층 입구쪽(아래층 밝은 곳)부터 배정을 한다.

더 늦게 온 캐린이 앞쪽에 자리를 잡은 것을 보면 전화로 예약도 받는 것 같았다.





까미노에서 배우는 것이 많지만 그 중에도 최고는 자신의 속도이다. 가이드북이나 다른 이들의 '오늘은 빰쁠로나까지, 22km이니 다섯 시간 안에 가야한다.'는 말에 맞추어 이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경우이다. 그들에겐 맞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나와는 다를 수 있다. 그들과 보폭도 다를뿐더러 물집도 있고, 무릎도 약간 아픈 상태이다. 그러니 지나간, 앞서 가는 사람의 발에 나를 맞출 수 없다. 그들에게 맞추다보면 내 페이스를 잃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내 발, 내 다리, 내 심장, 내 폐가 하는 말을 들으며 그 박자에 보폭을 맞추어 속도를 정해야 한다. 순례는 자기 속도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안타깝게도 오늘을 사는 이들은 '내'가 아닌, '남'의 기준에 맞추는 법에 길들여져 있다. ‘누가 더 남을 잘 따라하나’로 성패를 가르고 있지 않나. 자기 속도를 잃은 채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걷기에도 벅찬 사람들도 있을 텐데 말이다.

201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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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3일차, 수비리에서 빰쁠로나 가는 길 22.2km(2)


빰쁠로나 바로 전에 있는 작은 도시 비얄바.





처음 며칠간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간 끌지 않고 서둘러 출발하는 것이 더 잘 걷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화장실만 다녀와 씻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훌쩍 떠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하루이틀 더해 가면서 고양이 세수라도 하고, 발이나 무릎을 주무르고 또 바세린도 바르고, 요구르트 하나 과일 하나로라도 속을 채우고 출발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는 단지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까미노는 매일 몸과 마음을 준비하며 약한 부분을 알아차려 그 부분을 보듬으며 걷는 길이다. 자신의 약점을 모른척하지 않고 바라보고 인정하고 품고 간다. 순례자, 먼 길 아픔이 없는 것처럼, 힘들지 않은 것처럼, 외롭지 않은 것처럼 걷는다.

인생 한가운데를 달려가고 있는 중이라도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잠시 빨리 가는 것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먼 길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갈 길 멀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앞으로 내어 밀 수 있는 것에 감사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201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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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3일차, 수비리에서 빰쁠로나 가는 길 22.2km(1)


언듯 둘이 커플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각각 온 순례자들이었다.

왼쪽 남자는 파리 몽빠르나스 기차역에서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있어서 순례길 떠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까미노 초반 자주 보게 되었다.

빰쁠로나 정도까지는 함께 피레네를 넘은 사람들이 거의 함께 간다.





정오가 가까워 오면서 덥고 힘든데 길 옆에 과일과 음료 등을 풀어놓고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오랜지 하나 사서 까먹는데, 자기가 돌들을 가져와 의자를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자랑한다.


앞서 걷고 있는 분은 미국 아주머니인데, 천천히 걸으시길래 보조를 맞춰 뒤따라 걸었다.

덕분에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아래처럼 사진도 찍어 주셨다.

미국인들의 특이한 점은 어디서 왔냐고 하면 나라를 얘기하지 않고 주를 얘기하는 것이다.

이 아주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걸 애교로 봐줘야 하는 것인지, 참 미국사람들 그 사고구조란...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편에 바로 만나는 건물이 라 뜨리니닫 데 아레 알베르게이다.

사진을 찍어주신 아주머니는 힘드셨는지 그 알베르게로 들어가셨다. 



둘이 걷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친구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간에 말이다. 간간이 나누는 대화는 지루함을 잊게 할뿐만 아니라 고통도 잠시 뒤로 하게 한다. 또 홀로 결정하기 어려운 일도 손쉽게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란 보폭이 다른 법, 성격도 다르고 체질도 다르니 하루 이틀 지나면 조금씩 어긋나는 점들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 상대방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 부분으로 인해 상대방이 힘들어 하지 않도록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 말은 결국 자신을 아는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다는 뜻이고, 또 달리 하면 홀로 일 수 있는 사람이 둘 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홀로 독립적이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전가(투사)하기 시작할 때 상대방은 물론 본인도 무척 피곤해 질뿐이다. 

둘이면 좋지만, 둘이 걷기 어렵다면 과감하게 혼자 걷는 것이 좋다. 더 혼자 걸으며 충분히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둘이 걸을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어쩌면 이 까미노는 순례자로 하여금 몸과 정서에 약점을 스스로 들여다보도록 하는 것 같다. 처음엔 삐걱거리지만 여정을 마칠 때가 되면 누구와도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소망을 담아본다.). 혹시 이 길에서 안 된다면 또 다른 길에서 기회가 있을 것이다. 결국 인생이란 혼자 걷는 것이 아닌 함께 걷는 길이니.

201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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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2일차, 수비리Zubiri


수비리 공립 알베르게


알베르게 오스삐딸로의 아들


닫은 줄만 알았던 수퍼마켓, 5시 넘어 오픈!


순례 초반에는 하루 20km전후를 걷는다. 그러면 보통 12:30에서 1:40 사이에 목적지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두 시경 숙소에 짐을 풀고, 샤워하고 빨래해서 널고 나면 저녁 준비를 한다. 만약 숙소에 주방이 없으면 식당에 예약을 하거나, 예약이 필요 없을 경우 식사가 가능한 시간을 알아오면 된다. 주방이 있을 경우 붐비는 시간을 피하려고 좀 더 일찍 저녁 준비를 하게 되는데, 문제는 식료품 가게이다. 대개의 상점들이 오후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 ‘씨에스타’로 문을 닫는 거다. 그러니 조금만 늦게 가면 문이 닫혀 있고, 또 정확히 다섯 시에 문을 열지 않는 곳도 종종 있다. 그러면 준비가 늦어지고, 혼잡한 주방에서 불 경쟁을 해야 한다.

이 씨에스타를 뻔히 알면서도 문 닫힌 상점 앞을 몇 번을 찾아갔었는지 모른다. 다른 것들은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데, 이 씨에스타는 정말 익숙해지지도 않고, 계속 불편했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돌이켜 보면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아니었을까. 하루 가운데 큰 쉼표를 두고 여유롭게 사는 스페인 사람들을 늘 서두르는 한국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아주 살짝 그들이 부럽다.


한 가지, 알베르게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할 때는 먼저 마트를 찾지 않고, 주방에 무엇이 있는 지를 확인한다. 어떤 종류의 조리기구가 있는 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고, 앞선 순례자들이 남기고 간 쌀이나 기타 식재료들을 점검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입할 것들이 줄고, 비용도 아낄 수 있다.

201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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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2일차,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 가는  21.9km



까미노에서 생을 마감한 이를 기리는 비석. 까미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축들이 울타리를 넘어가지 않도록 순례자들에게 문을 꼭 닫아 달라고...


둘째 날 아침,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다신 걸을 수 없을 것처럼 아팠던 무릎, 그 고통은 온데간데 없이 또 다시 어두움을 가르며 걷다니,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아니, 기적이었다. 아~ 이런 식으로 계속 걷겠구나 싶어 신기하기도 하고, 또 겁도 났다. 며칠이 될지 모르지만 계속 아픔을 품고 걸어야 할 것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러면서 떠오른 생각은 이젠 상상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아닌 실제로 걷는 시간이기에 나의 까미노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 그래서 아쉬움이 마음 한 구석을 휘돌았다. 그렇지, 이제 하루하루 끝으로 가는구나... 그 섭섭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밟는 길과 지나치는 사람들과 자연을 마음속에 잘 담으리라 다짐했다.


>>길이 안내하는 곳으로

첫째 날 저녁 식사, 하마터면 못 먹을 뻔 했는데, 둘째 날 오전엔 앞 사람만 따라가다가 아침 먹을 곳을 지나치고 말았다. 배고픔을 겨우 참으며 작은 마을에 있는 바에 도착해 허기진 배를 채웠다. 서툰 스페인어 단어 몇 개와 손짓으로 커피와 치즈 넣은 바게트를 주문해 먹었다. 가이드북이 아닌 길이 안내하는 곳에서의 첫 식사였다.

201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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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1일차,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드디어 피레네 산을 넘어 내리막에 접어드는 곳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높이만큼 내리막은 가혹했다.



스페인 첫번째 알베르게(순례자 숙소)가 예상보다 좋아서 조금 놀랐다. 침대 2층에서 잤는데, 움직여도 전혀 흔들리지 않아서 편했다. 그러나 늦게 도착하면 이런 좋은 숙소가 아닌 예전 숙소에 묵을 수도 있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순례자를 맞이하는 스페인 첫 번째 숙소가 있는 마을은 론세스바예스이다. 론세스바예스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성당, 식당이 전부인 아주 작은 마을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다리 아픈 순례자에게 딱 맞는 크기여서 다행이었다. 구경한다고 돌아볼 수도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아픈 무릎으로 낑낑거리며 겨우 식당과 성당을 찾아가는 것이 전부였지만, 깔끔한 숙소와 멋스러운 성당에서의 미사는 낙심할 수도 있는 순례자에게 충분한 쉼과 격려가 되었다. 특히 미사 중 신부님이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를 이르는 말)에 묵는 순례자들의 출신 나라들을 모두 불러주고, 또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언어로 축복해주셔서 감동적이었다. 녹화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지만 한국말 축도는 없었다. 가르쳐드려야 할 듯...

아무튼 목적지,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한 줄도 모르고 한참이나 주변을 배회하고, 순례자 메뉴는 예약 못해 두 번째(7:00와 8:30 중) 타임에 먹으며 맞이한 어설픈 시작이다.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속속 눈에 들어오고, 말을 걸어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이런 몸과 정신을 가지고 순례를 잘 마칠 수 있을 지도 의심이 드는 저녁이었다.

201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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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여권(+복사본), 현찰, 카드(현금1, 신용1), 기차예약확인 출력물, 여행정보 출력물, 가이드북

필수 배낭(오스프리 Kestrel 48리터), 신발(아이더 트레킹화+기능성 깔창), 스틱(코베아 다이나믹III-탄소), 침낭(트레블 메이트 초경량), 무릎보호대2, 선글라스

배낭, 신발, 스틱 세 가지는 장거리 걷기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기의 몸과 맞는 것을 잘 골라야 한다. 평소 무릎이 약하다고 생각하면 무릎보호대도 필수 품목이 된다.

배낭은 마치 옷처럼 자신의 몸에 맞아야 한다. 특히 배낭은 엉덩이로 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허리 끈을 단단히 조일 수 있어야 하고, 어깨끈을 상황에 따라서 조절할 수 있는 배낭이 좋다.

신발은 등산화나 트래킹화처럼 바닥이 딱딱한 것이 좋은데, 평소 신는 운동화보다 10mm 더 큰 것을 추천한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오래 걸어야하기 때문이다. 

스틱은 가능한 가벼운 것으로 하되 몸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강도의 것으로 한다. 스틱이 자신의 무게의 1/3을 감당한다고 하니 필수 아이템이 분명하다. 잡는 법과 길(평지, 오르막, 내리막, 비탈길 등)에 따른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의류 바지2, 티셔츠2, 속옷 위2 아래2, 양말 2, 방수점퍼, 덕다운 자켓(유니클로 초경량), 기능성 모자, 반 장갑, 멀티스카프(얼굴 햇빛 가릴 때)

의류는 한 벌은 입고 한 벌은 배낭에 넣고 다니는데, 거의 매일 세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볍고 잘 마르는 재질의 옷이 좋다. 계절에 따라 유동성이 큰 부분이 될 것 같다.

속옷도 겉옷처럼 기능성을 추천하는데, 얇은 것이면 꼭 기능성이 아닌 것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장갑은 계속 스틱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데, 중간에 벗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에 반 장갑이 좋았다. 그러나 추운 계절에 간다면 온전한 장갑이 좋겠다.

위생용품 샴프, 바디클랜저, 폼클린징, 스킨로션, 밀크로션, 면도기, 치약, 칫솔, 빨래비누, 샌달(쪼리), 썬크림, 손톱깍기, 귀이개, 샤워 타올, 습식 스포츠타올, 건식 스포츠타올

샴프바디클랜저는 작은 것으로 가져가고 중간중간 구입해서 써도 된다. 

빨래비누도 큰 것을 가져가면 무거우니 세수비누로 대신하고, 중간에 하나 더 구입하면 될 것 같다.

샤워할 때와 보조적으로 신으려고 샌달(쪼리)을 가져갔는데, 마을을 돌아다닐 때도 신으려면 크록스나 운동화가 별도로 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10월로 넘어오면서는 오후에 쌀쌀했기 때문이다.

건식 타올이 여러모로 편했다. 일단 물을 뭍혀서 사용하는데, 수분 흡수가 잘 되고, 마른 상태로 보관할 수 있어 가며워 좋았다.

의약품 소독약, 후시딘, 진통제, 버물리, 안티프라민100mg, 바세린100mg, 접착식 붕대, 3M밴드(텍스틸 재질이 좋음), 파스

안티프라민은 근육의 소염진통(마사지)과 때때로 벌레 물렸을 때 사용했는데, 장점은 냄새가 많이 안 나는 것이고, 단점은 멘소래담 같은 것보다 약효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멘소래담을 바르면 서양인들이 펄쩍 뛰면서 모든 창문을 열고 난리를 친다. ㅋㅋ

벌레에 잘 물리는 체질이라면 베드버그에 물릴 것을 대비해 항히스타민제 같은 약을 준비해 오면 좋을 것 같다. 버물리는 베드버그나 다른 벌레에 물렸을 때 최고였다. 중간에 연고를 구입해서 발라봤는데 버물리만 못했다.

전자제품 핸드폰(+충전기), 디지털 카메라(+충전기), 캡라이트, 손목시계, 이어폰

사람에 따라서 필요한 것들이 달라질 수 있는데, 내 경우 캡라이트(해드랜턴)는 일찍 일어나 어두운 길을 걸을 때나 소등 후 가이드북을 보거나 새벽에 조명 없이 짐을 꾸려야 할 때 요긴했다.

기타 노트, 필기구, 바늘+실, 마사지 봉, 포크숫가락, 1.5m와이어+자물쇠, 옷핀6, 빨래집개6, 여분의 비닐지퍼팩, 다용도칼, 수면용 안대, 귀마개, 복대, 보조가방

바늘과 실은 물집이 잡혔을 때 필요한데, 실은 무명실이어야 물을 계속 빼낸다고 한다. 와이어는 실내에 빨래를 널 때 유용했다. 옷핀은 배낭에 빨래를 널 때도 좋고, 빨래집개가 부족할 때 사용해도 괜찮았다. 비닐지퍼팩은 먹거리들을 담거나 의류를 분리해서 보관할 때 필요하다. 다용도칼은 빵에 치즈를 바를 때나 과일을 깎을 때 필요한데, 중간에 무거워서 버리고 포크숫가락으로 해결했다.

잠 잘 때 예민하다면 귀마개와 수면용 안대도 필수품이다. 까미노가 고되기 때문에 코를 고는 이들이 많다.

복대는 일반 여행과는 다르기 때문에 꼭 필요하진 않았다. 땀만 차서 초반부터 사용하지 않았다.

음식 고추장(튜브3), 도시락용 김, 동결건조 김치, 국물용 원물, 밥이랑

[트래블 메이트] 매장에 가면 동결건조 김치를 판매하는데 경험해 보면 필수 품목이 될 것 같다.

음식 중 가장 매력적인 것이 라면 스프인데, 달걀만 넣고 끓여도 되고, 파스타면을 넣어서 먹을 수도 있고,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고향의 맛이라서...

다른 분이 가져온 거였는데 미소된장 분말과 밥이랑처럼 일본식 밥에 뿌려서 먹는 것이 맛있고 괜찮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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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1일차,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론세스바예스 가는 길 24.8km


출발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서양인 순례자들의 모습.

처음엔 여느 여행지에서 만났던 이들처럼 지나쳐 가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까미노 내내 정다운 길벗이 되어 주었다. 

같은 날 출발하며 얼굴을 익힌 이들은 더욱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생장을 벗어나며 목격한 무지개, 이로부터 까미노에서 총 다섯개의 무지개를 보았다.



생장에서 8km 지점에 있는 오리손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첫 날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무리하지 않으려면 이 곳에서 하루 묵어가는 것도 좋다. 

그러나 두세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처음에는 이게 뭘까 하고 보다가 국경이라는 것을 알고는 기념촬영도 하고 재미있어 했다. 

반면 서양인들은 뭘 그리 놀라냐는 시선으로 쳐다보며 지나간다. 

우리 같은 섬나라 사람의 심정을 너희들이 알랴!


까미노 걷기에 대한 거의 모든 요소는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판가름이 난다. 준비물 중 계속 가져가야 할 것과 버려도 되는 것은 물론 몸의 약한 부분도 분명하게 알게 된다. 첫날이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출발해서 완만한 길을 오르지만, 그 길로 1,200미터 이상을 오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몸이 확실히 체감하기 때문이다. 

혹독한 테스트를 거친 짐과 몸이 확실하게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 특히 무릎 통증은 이후 순례를 계속 할 수 있을지 의심하게 할 만큼 심각했다. 순례를 위한 준비 중에서도 몸을 만드는 부분을 너무 소홀히 했다는 증거였다.

다른 준비물, 예를 들어 빨래비누 같은 것들은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낼 수 있지만, 몸이 받쳐주지 않는 것은 가장 중요한 준비물을 빼놓고 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몸에 딱 맞는 배낭, 트레킹화, 등산용 스틱이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고, 필요할 지 확신 없이 챙겨온 무릎보호대는 단연 필수 아이템으로 등급업 되었다.

201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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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생장 순례자 사무소


까미노 랭킹 6위, Coree Sud!!!


늦은 시간임에도 생장 순례자 사무소는 열려있었고, 속속 도착하는 순례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순례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이들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반면 나는 어떻게 이 과제를 완수할 것인가 하는 걱정 때문에 긴장하고 있었다. 맨 왼쪽에 자리가 났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빈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그 말로만 듣던 끄레덴씨알(순례자 여권)을 만드는 순간이다. 그러나 봉사자로부터 들은 말은 "안녕"이라는 한국말이 전부였다. 성의 없는 말투로 영어는 잘하냐? 스페인어는? 하는데, 약간은 무시하는 태도가 깔려있었다. 

저 먼 동양의 작은 나라 KOREA에서 왜 이렇게 몰려오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과 더구나 영어도 잘 못한다는 무시가 담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먼 곳 유럽, 그것도 가톨릭의 종교성이 깔린 순례길에 한국인들이 여섯 번째로 많이 오고 있으니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무척 기분이 나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았던 다른 한국 사람들(영어를 무척 잘하는)도 똑같은 대접을 받았다고 하니. 출발이 조금은 상쾌하지 않다. 숙소를 안내해 달라고 했더니, 지도를 던지듯 꺼내더니 볼펜으로 길을 따라가다가 한 지점을 쿡쿡 짚는다. 

201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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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V열차


까미노를 걷기위해 파리에서 출발하는 이들에게 중간기착지인 바욘느는 기차나 버스를 타기위해 잠깐 머물다 가는 역이다. 그러나 나에겐 하마터면 하루를 묵어가는 곳이 될 뻔했다. 어찌어찌 바욘느까지는 도착을 했지만, 이미 마지막 기차 시간을 한참이나 지나버린 것이다. 솔직히 아무 생각 없이 바욘느역을 서성거렸다. 너무 당황을 했던 것일까. 그런데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어리버리하게 기차 시간표들을 기웃거리는 분명히 까미노를 목적으로 온 것 같은 동양인이 눈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던 것. 밝은 미소로 불러 세우더니 '생장 가죠?(물론 영어로)'하며 말을 건넨 사람은 50대의 스웨덴 여성 Karin이었다. 말인즉, 생장으로 가려고 택시를 부른 사람이 있는데, 24유로만 내면 같이 타고 갈 수 있다는 거였다. 같이 가겠냐고 묻는데 잠시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숙소를 찾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게 구해서 바욘느에서 하루를 묵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 아닌가 말이다. 순례자 사무소가 몇 시까지 하는지 몰랐지만, 일단 생장으로 가는 것이 이 상황에서 최선이기에 낯선 서양인들과 함께 밴에 몸을 실었다. 

다시 한 번 미리 걱정 할 필요 없음을 깨닫게 한 사건이었다. 몸으로 맞닥뜨리면 그 자리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있게 되고, 도움의 손길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 캐런을 두세 번 더 만났는데, '바욘느의 천사'라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201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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