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4-26. 포카라

 

택시가 도착한 곳은 윈드풀이라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 겸 여행사 앞이었다.

함께 한 두 길동무들은 이미 윈드풀의 도움을 받아 트레킹을 시작한 것이라 주인장의 환대를 받았다.

나야 뭐 약간은 서먹하게 첫 인사를 나누고 주변을 살폈다.

이미 트레킹을 마치고 쉬고 있는 사람부터 이제 첫 걸음을 떼야해 긴장 속에 질문을 쏟아내고 있는 이들부터

다양한 필요를 가진 한국 사람들로 북적였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이제까지 그 어떤 곳보다 좋은 환전 환율이었다.

그리고 네팔 여행, 특히 포카라 여행에서 빼놓은 수 없는 패러글라이딩도 예약할 수 있어 좋았다.

물론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도 있었지만, 믿을 수 있는 곳에서 하는 것이 더 우선적 요소가 아닌가.

숙소는 다른 곳을 잡았지만, 환전과 패러글라이딩으로 윈드풀과 인연을 맺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오라는 말에 약간 위축됐고, 절벽같이 생긴 곳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더했다.

내 순서가 되어 장비에 몸을 넣고는 몸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받았다.

하지만 뒤에 안전요원이 있어 알아서 해 줄거고, 나만 타는 것도 아니니 걱정은 기우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몸을 맡겼다.

그리고 시키는대로 뛰어 발을 드는 순간 물흐르듯, 아니 새가 날아오르듯 전체가 붕 떠오른다.

와~하는 탄성과 함께 날으는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다. 예상했던 무서움은 1도 없었다.

포카라여행, 아니 네팔여행의 진수는 역시 패러글라이딩이 아닐까.

바라만 보는 것도 멋있고, 아름답기까지 하지만,

직접 줄에 매달려 바람을 타는 기분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참, 왜 아침을 먹고 오지 말라고 했는 지는 착륙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비행을 짜릿하게 경험하는 순간에.

 

포카라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국음식을 하는 식당이 많고, 특히 한인식당도 곳곳에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난 트레킹 중 허기졌던 속을 포카라 2박3일 동안 내내 한국음식(김치찌개)을 먹었다.

 

 

 

 

 

 

 

 

 

 

 

 

오후엔 산악박물관에 다녀왔다.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등반가들에 대한 기록물들이었다.

8천미터 이상 14좌를 등반한 한국인 등반가들을 따로 구별해서 전시해 놓은 곳에서는 자연스레 발길이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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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4. ABC트레킹 여덟번째날

지누단다(1,760)-비레탄티(1,050)-포카라

 

트레킹 마지막 날 아침, 노천온천으로 마무리했다.
사진은 없지만, 하룻밤 사이에 ABC로 가는 길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누단다엔 비가 내렸지만, 시누와부터 더 안쪽은 눈이 내려서 길을 분간하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아이젠이 쓸모없다고 투덜거렸는데, 겨울철에 오게 되면 꼭 챙겨와야하는 필수품임을 다시 확인했다.

눈길을 걸어야했던 이들은 곤란을 겪었다고 하는데, 길 위에서 눈 구경을 못한 입장에서는 살짝 부럽기도 했다.

 

지누단다에서 란드룩을 지나 오스트리안 캠프로 향하는 길을 생략하고 바로 포카라로 가기로 했다.

뉴브릿지로 향하는 길 윗길로 가야해서 마지막 산악 트레킹을 해야 했다.

그동안 라릿의 몫이었던 배낭을 온전히 짊어지고 비를 맞으며 흙길을 오르고, 한참을 걸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깐힘을 써야 했다.

앞에 포카라로 데려다 줄 지프가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이 힘내게 했던 것 같다.

우리를 맞으러 10분여 걸어온 기사가 무척 고마웠다.

세 시간 넘게 산길을 달리고 흙먼지 날리는 길을 달려 4시 넘어 포카라에 도착했다.

 

 

 

 

 

 

 

비레탄티,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퍼밋 확인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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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 ABC트레킹 일곱째날

뱀부(2,510)-시누와(2,340)-촘롱(2,170)-지누단다(1,760)

 

오르는 길, 첫 걸음의 긴장이 가득했지만,

되짚어 내려가는 길, 가벼워진 발걸음 만큼이나 마음도 편안했다.

ABC에서 멀어지니 한껏 당겨져 팽팽해진 고무줄이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내리막이었다가 오르막으로 변한 계단을 오르면서도 그 때처럼 길의 압박은 느껴지지 않았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시간이 올 줄 알았고, 그래서 안도하는 마음 컸지만, 썩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이 길 위에서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으니까.

이 배움의 여정이 끝으로 향하고 있느니까.

언제 다시 이 길 걷고, 산들을 마주 할 수 있을까 싶어 멀어질 수록 아쉬움은 더 커졌다.

그러면서도 마주해 힘겨운 걸음 옮기고 있는 이들을 보며 의기양양해 하는 내 모습이라니.ㅎㅎ

바로 삼일 전에 바로 내가 그 방향에 서 있었는데, 인생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길이 줄어드는만큼 또 줄어드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라릿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원래 포카라까지 함께 가기로 했었는데, 내려가는 길 만난 젊은 길동무들 덕분에 일정이 조정되면서

이별이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지누단다까지만 함께하고 그 이후로는 그 친구들과 함께 내려가기로 한 것.

물론 몸도 많이 좋아져서 내 짐을 짊어질 수 있게된 것도 한 이유였다.

첫 인상은 무뚝뚝해 보였지만 내내 다정하게 함께해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꼭 다시 찾아 만나리라 다짐해 보지만 여의치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짧은 시간 석별의 정을 나누고, 킴롱콜라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지누단다에서 이 길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았다.

 

 

 

 

 

 

히말라야 호텔에서 만난 젊은 길벗들이다. 나를 남겨두고 둘은 데우랄리까지 갔고, 내가 MBC에 있을 땐 이들은 ABC에 있었지만,

결국엔 만나 포카라까지 함께 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여행엔 베태랑들이라 도움도 많이 받았고, 힘든 여정에 위로도 많이 받았다.

지금 또 어디를 걷고 있을까 궁금하다.

 

 

 

 

5일 간 동행자, 안내자, 보호자, 길벗, 동생이었던 라릿과 이별의 아쉬움을 담아 한 컷 남겼다.

함께 찍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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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 ABC트레킹 여섯째날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


짐은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숙소에 두고,

이른 아침 가벼운 차림으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 올랐다.

라릿은 감기로 며칠째 귀한 감기약을 나눠먹었는데,

더 심해져서 함께 출발했지만 되돌아가 숙소에 남아 있어서 간만에 혼자 걸었다.

MBC에서 ABC까지 두 시간 반은 걸릴 거라고 했는데, 딱 두 시간 걸렸다.

손에 잡힐듯 가까워졌다가도 다시 저만치 멀어지는 안나푸르나와 밀당을 하며 느린 걸음 쉼없이 오른 결과였다.

 

마치 정상을 정복하기라도 한 것처럼 환호하고 두 팔을 높이 들기도 했지만,

내 종착지가 누군가에겐 출발지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르도록 허락해준 산에게 감사하며 겸손히 고개 숙인다.
사천 미터의 높이에 서서 감격하고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안나푸르나(남봉)는 거기에 사천을 더한다니 그 높이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명백하게 알고 있는 그 사실, 현실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ABC에서 머문 한 시간여의 시간은 꿈같았다.

처음 올라본 높은 곳이어서 그랬기도 하겠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둘째날 쿰롱단다 전에서 만나 킴롱콜라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교류했던 네팔 젊은이들이다.

며칠만에 다시 만난 곳이 ABC였다. 반가움에 더해 휼륭한 독사진을 남겨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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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22. ABC트레킹 다섯째날-여섯째날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


느린 걸음이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 가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막상 도착해 보면 별로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라릿은 이런 나의 걸음에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잘 걷는 법이라고 격려한다. 

그렇게 걷고 걷다보니 멀게만 느껴지던, 아름다움에 경탄했던 그 마차푸차레가 바로 코 앞이다.

왜 세계 3대 미봉에 속하는 지, 또 네팔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지 알 거 같다.

한낮의 태양 아래서도 아름답지만, 석양을 마주할 때의 마차푸차레는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내가 이런 광경을 봐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오후 3:30,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롯지는 한산했다.

앞서 간 이들은 어디 있을까. 대부분 ABC까지 갔다가 머물지 않고 저녁에 내려온다는 얘기.

2시간만 더 올라가면 그 곳이니 일찍 도착했으면 당연히 갔다오는 것이 맞을 거다.

욕심을 부려서 더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늘 나의 여정은 여기까지다.

나에겐 내일도 있으니 오늘이 마지막인것처럼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어제부터 벗이 된 형님이 도착했다.

라릿이 말했는지 방을 함께 사용하도록 배정이 되었다.

서로의 걸음을 격려하며 또 이후의 일정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정보들을 교환할 수 있어 좋았다.

여행 중에 만나 한 부분을 나누는 벗들을 사귀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이다.

까미노의 길 위에서도, 시베리아횡단열차 안에서도 그랬듯,

여기 ABC 베이스캠프 트레킹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함께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어제 히말라야 호텔의 식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북적였다.

히말라야 호텔에서 올라온 이들과 ABC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합쳐져서 그런 것일까.

한국 사람들도 더 눈에 띄었고, 목적지에 다 다다라서 이런저런 중요한 정보들을 들을 수 있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고생을 좀 덜 했을텐테 싶은 것들도...

특히나 가벼운 먹거리들을 챙겨왔다는 얘기에 아차 싶었다.

내가 이번 트레킹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왔다는 뼈아픈 반성을 하게 했다.

약품과 먹거리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실수라 해야 할 거다.

그럼에도 이렇게 MBC에 앉아 있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으니 또 기막힌 일이고 말이다.

아무튼 고도에 걸맞게 4~5도까지 내려가는 숙소의 추위를 견디며 잠을 청했다.

 

 

미차푸차레 베이스캠프

 

 

석양에 물들어 아름다움을 뽑내는 마차푸차레

 

저만치 내일의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남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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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 ABC트레킹 다섯째날

히말라야(2,920)-데우랄리(3,200)-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


고도가 높고, 해가 들지 않는 길이어서인지 오전의 길은 한기가 느껴졌지만,

계속 걸으니 어제 느꼈던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졌다.

추위에 움쿠렸던 몸도 마음도 걸음을 더할 수록 풀렸다.

감기기운은 여전했지만, 약 덕분인지 많이 회복되어

라릿을 좇아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더 일찍 출발했던 어제 만난 그 길벗 일행을 앞지르기도 했다.

 

한참을 걷고, 데우랄리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둘째날부터 계속 점심 시간이 늦어지는 것 같다.

롯지가 나에게 맞추어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맞출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전히 입에 맞는 메뉴가 없어서 결국 야채라면을 주문했다.

이틀 연속 점심으로 라면을 먹으니 약간 물리려고 한다.

신라면이긴 하지만 온전히 한국의 그것과 약간 맛이 달라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아무튼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으니 다행한 일이었다.
참, 어제 라릿이 데우랄리까지 가면 안 되겠냐고 했는 지 이유를 알았다.

이 롯지는 라릿 아내의 사촌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그렇게 요기를 하고 다시 오르막을 오르고 내린 후...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지만,

안나푸르나 가는 길은 오르막길 끝에 평지길이 온다고 해야 할까.

더구나 이렇듯 길과 강과 산이, 그리고 나무와 돌과 마른 풀들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 길이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여전히 힘겹게 걷고 있지만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기를 정말 잘 했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숨바꼭질을 하듯 보일듯 말듯 숨어 있는 마차푸차레가 더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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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1. ABC트레킹 넷째날-다섯째날

히말라야(2,920)


세시 조금 넘어 히말라야 호텔에 도착했다.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한국인 청년 두 명을 만났는데,

이들이 멈추지 않고 데우랄리를 목적지로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나니

나도 더 가야 할까 살짝 고민이 되기도 했다.

라릿도 시간여유가 있으니 데우랄리까지 가자고 했다.

하지만 오늘 충분한 거리를 걸어왔기 때문에 무리해서 더 걸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나에겐 얼마나 더 많이 걸어 시간을 단축 하느냐는 의미가 없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걷고 있다는 것 이상의 목적은 없었으니까. 


히말라야 호텔, 이제 드디어 3천미터 높이에 근접한 곳에 이르렀다.

기우인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찾아드는 장소였다.

마치 절벽 위에 홀로 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포카라에서 구입해 온 고산병 약을 먹어야 할 때가 된 것이고, 샤워 하는 것도 삼가야 하니.

뭔가 넘어야 할 중대한 관문 앞에 선듯했다.

몸을 휘감는 한기에 잦아들지 않는 강물 소리를 따라 몸도 덩달아 떨렸다.

 

사람이 많으니 주문을 미리 넣어둬야 한다고 라릿이 숙소로 메뉴판을 들고 왔다.

저녁 시간이 되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 하며 식당으로 갔더니

트레커들과 현지인 포터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트케킹을 시작한 후 처음 보는 대단한(?) 광경이었다.

자리가 없어서 현지인들 사이에 끼어서 먹는둥 마는둥 식사를 마칠 즈음

한쪽에 한국사람 세 명이 눈에 들어왔고, 반가운 마음에 합석했다.

그 중 한 중년의 남성이 몸이 안 좋아서 잘 걷지도 먹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누며 가까워졌고, 이후 여정의 좋은 길벗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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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 ABC트레킹 넷째날

시누와(2,340)-뱀부-도반(2,505)-히말라야 호텔(2,920)


약효 때문인지 몸 상태도 좋아져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평소에 약의 도움을 받긴 했었지만, 이렇게 약이 고마웠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라릿이 덩달아 코를 훌쩍이며 약을 나눠달라고 해서 순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며칠이 될 지는 몰라도 길동무인데 아까워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나도 거저 받은 것인데, 나누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촘롱을 넘어 시누와를 지난 후부터는 이전처럼 급격한 오르막은 없었다.

그럼에도 평지를 걷든 내리막을 걷든 마음은 늘 조만간 나타날 오르막길에 가 있었다.

당연히 평지의 만만함, 내리막의 수월함을 온전히 즐기지 못고

온통 오르막의 고단함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니 마음 편할 수가 없었다.

길을 걸을 때, 평지도 있고, 오르막도 내리막도 있을 수 있다.

지난 길 그리워 할 것도 앞으로의 길 당겨서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지금 내가 마주한 길로 한 걸음 두 걸음 디디면 된다. 

그렇게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가다보면 목적지에 닿게 마련이다.


트레킹 넷째날, 그리고 라릿과 함께하는 둘째날 시누와를 출발해 

뱀부에서 차 한 잔 하고 물통을 채우고, 도반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늦지 않은 시간에 히말라야 호텔에 도착했다.

 

 

 

메뉴판을 들고 오는 라릿^^

 

 

도반과 히말라야 호텔 사이에 새로 지어지고 있는 롯지

이 롯지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킴롱콜라 사람들이어서 라릿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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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9. ABC트레킹 셋째날

킴롱콜라(1,500)-촘롱(2,170)-시누와(2,340)


라릿과 함께하는 첫 날, 내 성향상 내 의지를 더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그가 이 길을 잘 알 것이라고 믿고 그의 판단을 존중하며 걷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촘롱을 통과했고, 바누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당연히 김치찌개는 없었고, 신라면으로 대신해야 했다(바로 윗집에 있었다는ㅠㅠ).

몸이 안 좋아 식욕이 없다보니 네팔음식은 입에 댈 수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네팔까지 와서 신라면이 뭔가 싶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네팔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 약과 음식을 크게 간과했다.

네팔음식이 먹을만하다는 여러 블로그들의 글을 신뢰했고,

약이 별로 필요없었던 이전의 여행경험을 과신했기 때문이다.

충분한 약과 입맛이 없을 때를 대비한 간편식이 날이 더할수록 더 간절했다.


거의 두 시가 다 되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또 오르막을 오르고 올라 최종 목적지인 시누와에 도착했다.

시누와에도 몇 곳의 롯지가 있었는데, 나는 맨 끝에 있는 곳에 묵었다.

해가 산을 돌아가는 바람에 길도 건물도 모두 산의 그늘 아래 잠겼다.

안 그래도 쌀쌀한데 더운물에 샤워를 하고도 한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식당에 한국말로 찬사가 달린 메뉴, 닭백숙이 있다는 것.

바로 달려가 아주머니에게 닭백숙을 먹겠다고 했고,

그렇게 한국에서의 그것과 똑같은 맛에 감동하며 닭백숙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계곡 사이로 석양에 물들어가는 마차푸차레는 더 없이 황홀한 경관을 드러냈다.

마당에 피워놓은 모닥불가에 앉아 어두워질수록 더 찬란해지는 마차푸차레를 감상하며 

함께하는 라릿과 롯지의 식구들의 위로를 받으며, 스스로를 격려하며 따듯한 시간을 보냈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멈추지 않은 것이 기적같이 느껴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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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9. ABC트레킹 셋째날

킴롱콜라(1,500)-촘롱(2,170)-시누와(2,340)


다소 힘을 회복한 킴롱콜라의 아침, 주인 할아버지에게 포터를 구하고 싶다고 했다.

먼저 가격을 묻고 흥정을 하더니 앞에 앉아 있는 젊은 남성에게 손짓을 한다.

그 사람, 포터를 할 수 있을까 싶은 외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흔쾌히 좋다는 답이 돌아왔고, 그렇게 그와 함께 걷는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이름은 '라릿 그룽'이었고, 당연히 전문 포터가 아닌

딸을 보러 처가에 온, 그 주인 할아버지의 사위였다.

며칠 일이 없으니 소일삼아 포터 일을 하기로 했던 거다.

 

라릿이 짐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걸을 때 필요한 몇 가지만 덜어 담은 배낭은 내가 맸다.

내 짐을 누군가가 대신 짊어진다는 것이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고, 그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그는 그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일 뿐이니.

 

한결 가벼워진 몸(몸 상태와 배낭)으로 걸으니 언제 절망했던가 싶었다.

못 오를 것 같았던 촘롱에 앞장선 라릿을 따라 걸으니 두시간여만에 닿았다.

'김치찌개', '닭백숙' 등의 메뉴들을 강조해 선전하는 롯지들을 보니 힘이 났다.

포카라에서도 김치찌개를 먹었으니 며칠 되지 않았지만

한국음식이 얼마나 땡기는 지, 하여간 이번 여정은 감기와의 싸움에 더해

네팔 음식과의 긴장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두 시간여 만에 점심을 먹을 순 없고, 앞에도 한식 메뉴가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로 좀 더 걷기로 했다.

퍼밋을 확인받고 내리막길로 접었을 때, 맞은편에서 오던 한국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는 짐을 열어 비상약들을 이것 저것 챙겨주셨다.

이미 다 떨어져버린 감기약, 타이레놀, 고산병약에 비타민까지 쥐어주셨다.

와~ 이건 거의 천사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

걷긴 걸어도 감기몸살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었는데,

그 분들 덕분에 조금씩 털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트레킹을 준비하며 경계했던 것이 있었다. 

가이드와 포터를 대동하는 트레킹, 투어를 하듯 단체로 하는 트레킹.

그런데 결국엔 포터에 의지하고, 주머니들의 도움으로 걷게 되다니.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자만과 성급한 판단을 조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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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7.~18. ABC트레킹 첫째날~둘째날

간드룩(1,940m)


몸살 기운이 있기는 했지만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버틸만 하다고 여겼다.

해가 지는 시간에 접어들면서 한기를 느꼈지만 그것도 기온이 낮은 탓인줄로만 알았다.

얼마나 힘겹게 올랐든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고,부족하나마 온수도 나오고 

손에 잡힐듯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등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들의 그 빼어난 풍광을 보고 있으니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안나푸르나로 향하는 길에서 3대 뷰포인트 중 하나인 간드룩에 있는 것이니 더더욱.

뒤늦게 도착한 네팔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폼잡는 모습도 알게모르게 크게 위안을 주었다.


저녁은 7시정도에 가능했다.

주방에서 한참이나 요리를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작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손님은 나 혼자 뿐이었다.

단체 손님들은 객실에서 먹는 지, 아니면 자신들이 준비한 것을 먹는 지 알 수 없었다.

점심은 볶음밥 종류를 먹었으니, 첫 롯지에서의 식사는 네팔 전통 음식을 먹고싶었다.

한국사람이 먹기에도 무난하다는 그 달밧을 주문했다.

 


아마 간드룩에서 본 달밧이 가장 정갈하게 담겨서 나온 것 같다.

이후에 다시 먹지는 않았지만, 현지인들이 먹는 것을 보니 이렇게 깔끔하게 담겨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무튼 처음 대면한 달밧!

닭고기가 들어있는 카레는 얼마나 자극적인지

한술 뜨고 혀를 찼던 마늘녹두죽이 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블로그들에서 먹을만 하다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입맛을 가진 것인지 궁급했다.

이후에도 한국사람들 중에 달밧을 주문해서 먹는 이들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독특한 카레 맛 때문에 다른 음식들까지도 먹지 못하는 경우는 봤다.

아무튼 몸상태처럼 입안 상태도 좋지 않아서 맛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지만

한 번으로 족한 달밧과의 첫 만남을 갖고 간드룩에서 트레킹 첫날 밤을 보냈다.


한국의 겨울처럼 기온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실내 온도가 10도 이하로 떨어지는데 난방이 되지 않으니 더 춥게 느껴졌다.

좁은 침낭 안에서 불편한 잠을 자니, 상쾌한 아침을 맞기 어려웠다.

다행히 이른 시간부터 비추는 따듯한 햇빛 덕분에 찌뿌둥한 몸이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몸도 덥혀주고, 마르지 않은 옷가지들을 순식간에 말려주었으니.

그리고 어제 저녁과는 또다른 자태로 맞아주는 히말라야가 있어 또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아~ 저기로 가고 있구나 싶어 그져 신기함에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안나푸르나 남봉

 

마차푸차레

 

 

아침으로 먹은 구릉빵. 안나푸르나 지역에 거주하는 구릉족의 전통 빵이라고 한다.

 

롯지의 꼬마인데, 사진보다 훨씬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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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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