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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문명의 시작점이자 유적 재료인 사암의 출처, 프놈 꿀렌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가이드북에는 멀고, 가는 길이 험해서 밴을 빌려야 하고, 그래서 단체로 가는 것을 권하는 곳이다.

그러면, 혼자 간 여행자는 가지 말라는 얘긴가.

세 번째로 씨엠립에 갔을 때, 프놈 꿀렌을 꼭 가보고 싶었다.

태국에서 넘어올 때 만난 한국친구가 함께 가기로 하고,

뚝뚝 기사에게 연락해 승용차를 섭외하여 가게 되었다.

기사에게 산길을 오르는데 문제가 없냐고 물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길이 포장이 안 되어 있어서 먼지가 많고, 더 문제는 좁아서 

올라가는 시간과 내려 오는 시간이 구분되어 있었다.

쉽게 구분하면 오전엔 올라 가고, 오후엔 내려온다고 생각하면 된다(정확한 시간이...).


차 위에 붉은 먼지가 수북이 쌓이도록 오르고 올라 가

일단 사찰 구경을 먼저 하고, 내려오면서 기념품 파는 곳들을 둘러 본 후에

프놈 꿀렌에 남아 있는 유일한 유적인 링가들을 보게 되었다.

이곳의 링가는 사원에 있는 링가를 생각하면 안 된다.

물 속에 요니와 링가를 일체로 해서 조각을 해 놨는데

링가는 약간 도드라질 뿐이다. 

오랜 세월 물살이 무디게 한 것인지, 원래부터 그랬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흐르는 물 속에 빈틈 없이, 또 수 없이 새겨져 있는 요니와 링가는

이들이 이 프놈 꿀렌에서 발원하는 씨엠립강 물을 신성하게 만들려고,

아니 얼마나 신성하게 여겼는 지 알 수 있다.


사찰 경내에 있는 링가 형상. 바가지로 링가에 부은 물이 요니를 거쳐 성수가 된다.


사진촬영의 재미에 빠진 승려들^^ 재미있다. 



물 속에 수많은 링가들이 새겨져 있다. 빈틈이 없다.


그리고 그 물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그 폭포... 안젤리나 졸리가 영화에서 뛰어내려 더 유명해진 폭포가 있다.

폭포도 장관이고, 그 아래에서 수영하며 즐기기에 딱 좋은 깊이로 형성되어 있어서 좋았다.

수영복으로 어떻게 갈아입을까 걱정하고 내려갔는데,

세상에... 나무로 얼기설기 탈의실을 두 개 만들어 놓고, 또 옷 보관함을 만들어 놓고 돈을 받는다. ㅋㅋ

이런 곳에서 수영 한 번 해 줘야 여행의 맛이 아닌가. 고민할 필요 없다.

눈치보지 않고 뛰어든 물 속에서 시원함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역사의 숨결에 살짝, 아주 살짝 접촉했다는 느낌이랄까...

폭포 바로 밑은 너무 추워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프놈 꿀렌엔 외국인 관광객들보다는 현지인들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접근하기 어렵고, 또 짧은 일정으로 온 사람들의 우선순위에 들기 어려워서인거 같다.

그래서 더욱 프놈 꿀렌을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돌은 어디서 떠 갔을까 관찰하면서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운전기사 말로는 폭포 있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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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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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에피소드1

뚝뚝을 타고 이 곳 저 곳을 돌며 간간히 지나쳐 가는 자전거를 탄 여행자들을 목격했다.

처음 든 생각은 '이 더위에 패달을 돌리며 타는 자전거는 얼마나 힘들까'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라고 못할 것 뭐가 있나.

더구나 가이드북에도 자전거로 가 볼 수 있는 곳 몇 곳을 추천하고 있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자전거를 줄지어 놓은 곳에 가서 얼마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답! 2달러^^ 오~대박!

물론 자전거의 상태에 따라서 좀 차이는 난다.

암튼 여권 맡기고 하나 빌려서 '자유롭게~' 씨엠립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첫 목적지는 서 바라이. 

앙코르 유적 입장권이 필요없고, 자전거로 가기에 딱 맞는 거리라고 했다.

가이드북의 안내글을 숙지하고, 올드마켓 부근에서 출발해 열심히 패달을 밟았다.

그런데 공항을 지나고 한참을 지났는데도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책의 설명과 비슷한 곳을 발견하고 들어갔는데, 이런~ 전혀 다른 곳이었다.

하는 수 없이 길 옆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서 바라이를 물었더니 흔쾌히 안내하겠다고 나선다. 

따라 오라고 하더니 둘 다 자전거로 앞서 달리기 시작한다.

산악자전거거 아닌게 분명한데 모레길, 숲길, 돌길을 잘도 달린다.

그리고 얼마 후 큰 호수가 나타났다.

아~ ... 내가 가려고 했던 곳의 반대편에 도달해 있었다. 

이런, 멀리도 와 버렸네 ㅎㅎ

두 친구에게 고맙다고 하고 기념촬영도 하고, 또 미안한 마음에 1달러를 줬던 거 같다.

너무 고마워하면서 환한 미소를 남기고 뒤돌아 내려갔다.


그날 길을 잃어서 고생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저녁에 알게 됐다.

사오 일을 뚝뚝만 타고 다녀서 햇빛의 강렬함을 간과했던 것이다.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서 자전거를 탔으니, 드러난 곳은 거의 구워졌다고 하면 맞다.

이후로도 몇 달 동안이나 그을린 피부는 원래 빛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려면 일단 햇빛을 잘 가리는 것이 우선이고

목적지에 가는 길을 잘 알아 두고 출발을 하는 것이 좋겠다.



자전거 에피소드2

두번째 갔을 때는 아예 더 멀리 가보기로 했는데,

올드마켓 인근에서 출발해 똔레삽 호수까지 갔다 오기로 했다.

서바래이 가는 길은 일단 6번 국도이고, 나름 길이 이중으로 넒게 닦여 있는데 비해

똔래삽 가는 길은 좁은 왕복 2차로이다.

그래서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차들도 위험하고, 먼지도 많다.

그래도 장점을 꼽으라면, 길 옆에 바로 붙어서 살고 있는 현지인들의 생활을 생생히 볼 수 있다는 것.


사실 목적지는 똔레삽 보트 매표소를 지나 뚝 위에 형성된 마을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앞에 검문소가 있고 허가받지 않은 외국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 안에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지어진 교회도 있고

다일공동체가 지원해서 만들어진 목재 배를 짓는 조선소가 있기 때문에 보고 싶었는데...

돌아올 때는 에너지가 거의 방전되서

캄보디아에서 인기있는 한국 음료...박카스 캔을 하나 마시고 힘을 내서 돌아왔다.


자전거를 탈 때는 물을 충분히 마시고,

박카스 같은 에너지 음료도 하나 정도 챙기면 좋겠다.




자전거 에피소드3

세번째로 최근에 갔을 때는 자전거로 좀 더 지평을 넓혀 보고 싶었다.

앙코르와트에 갔다가 쓰리스랑을 지나 따 프롬까지 가는 것.

뭐 거리로 봤을 때는 그리 무리한 계획도 아니었다.

문제는 전날 자전거를 탈 때부터 이상하게 엉덩이가 무척 아팠다는거다.

더운 것도, 힘든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엉덩이가 아프니까 이건 견디기 쉽지 않았다.

아픈 것을 참으며 계획한 대로 가긴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정말 죽을지경이었다.

지나가는 뚝뚝을 잡아서 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다.


좀 생각을 해봤는데, 자전거가 이전에 탔던 것들이랑 좀 달랐던 것 같다.

서양인들의 체형에 맞추어진 것이었을까.

안장과 손잡이 부분이 너무 멀었던 것 같다(사이클도 아닌데).

그렇다고 핸들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암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전거를 고를 때 새 것이냐 헌 것이냐, 또 무슨 기능이 있냐를 보기 전에

내 몸에 맞는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봐야겠다.



세 번의 경험담을 썼는데, 진짜 결론적으로 하고싶은 말은

씨엠립은 자전거로 다니기 안성맞춤인 도시라는 것이다.

대부분이 평지이기 때문에 아주 먼 곳까지는 어렵겠지만, 

서 바라이, 똔레 삽 호수 입구, 앙코르와트, 따 프롬, 롤루오스 등등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는... 여행은 느리게 할 수록 더 좋다는 것!

비행기 보다는 자동차,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뚝뚝), 뚝뚝보다는 자전거, 자전거보다는 걷기.

빠르면 그만큼 놓치는 것이 많다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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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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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에서 가장 많은 여행자는 단연 러시아와 중국 사람이다.

그리고 일본, 한국 사람이고, 말레이시아나 인도 사람들도 많다.

러시아나 중국 사람들은 대륙에 살다보니 주로 물이 있는 푸껫 같은 섬이나 해변으로 간다.

그래서 태국의 치앙마이나 라오스의 도시들처럼 내륙이나 앙코르 유적 같은 곳에선 

어떤 한 나라에 쏠리지 않은 비교적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을 만나게 된다.

앙코르 유적에선 서유럽 사람들이 많고, 간간히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서 온 이들이 있다.

특히 여행지에서 만나는 서양인들에게선 뭔가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여행의 기술', 그들은 무척 잘 단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그들은 일단 많은 준비를 해서 오지 않는다.

옷도 장비도 먹을 것도 가능한 현지에서 조달한다.

그러니 짐은 딱 필요한 것만 가지고 오는 것 같다.

여행을 위해 준비한 짐이 오히려 여행을 방해하는 일이 더 많지 않나.

바리바리 짐보따리 들고, 무거운 카메라 짊어지고 다니는 동양인들(특힌 한국사람들)과 사뭇 다르다.


앞의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렇기도 할텐데

복장이나 가방을 보면 오랜 여행으로 때가 꼬질꼬질한 것을 볼 수 있다.

누구 시선을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여행을 즐긴다.

그래도 미국이나 캐나다 여행자는 외모는 비슷하지만 차림새는 좀 깔끔하다.

여담이지만 가장 젠틀하고 친절한 사람들은 역시 캐나다 사람들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 때문인 것 같다.


현지의 로컬 교통 수단을 주로 이용한다.

버스터미널이나 저렴하게 이동하는 지역 버스들 앞에는 여지없이 서양인들이 서 있다.

한국산 중고 버스의 좁은 간격의 의자에 끼어 앉아서도 별로 불평하지 않는다.

여행을 이해하는 관점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어떤 곳, 어떤 볼거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의 과정을 여행으로 즐기려는 자세의 차이다.



여행 중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일들에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 모든 변수들을 여행의 일부로 여긴다.

아무래도 긴 여행기간을 갖고 와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 사람들은 한 곳에서 일정이 틀어지면 연쇄 반응이 일어나지만

이들은 더 머물러야 되면 더 있을 수 있다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있다.


가능한 자신들의 몸을 활용하여 경한다.

다양한 엑티비티를 즐기고, 이동할 때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오토바이 등을 타면서

어떻게든 길, 바람, 열기를 온 몸으로 만끽하려고 한다.

이 부분에는 나이나 성별이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대형버스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갖혀서 여행하는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유별나 보일까.


진지하게 경청할 줄 안다.

가이드의 설명을 경청하며 또 진지하게 질문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대한 다른 관광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하는 자세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분위기를 즐긴다.

생각보다 음주를 즐기지 않는다. 

와인 같은 것도 딱 한 두 잔 정도만 먹고 지긋이 길을 주시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푸껫 같은 곳에선 대낮부터 바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을 많이 보게 되지만

캄보디아나 내륙의 도시들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숙소의 부대시설을 여유있게 이한다.

아무래도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여행과 쉼을 적절히 하면서 수영도 하고 비치의자에서 책도 본다.

빡빡한 일정에 짬이 나면 무조건 마사지 샵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는 한국사람들은 좀처럼 가질 수 없는 그림이다.


흥을 돋우며, 무례하지 않게 친구를 만든다.

즐겨 찾는 식당의 종업원이나 안내하는 가이드 등과 수평적인 관계를 맺으며 편안한 사이가 된다.

뭘 더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코믹한 태도와 유머로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편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이라고 무시하며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해변을 가든 유적을 가든 잠시의 시간이 날 때 책을 꺼내든다.

여행지에서 무슨 책이냐고 하겠지만, 책이라는 것은 마음의 여유를 뜻하고

또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정리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서양인들을 관찰하면서 생각해본 여행의 기술이다.

뭐 겉모습만 보고 잘못 짚은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양인들이 정말 이렇게 하냐 안 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여행의 기술을 가진 여행자가 되고 싶다는 작은 바람에서 정리를 해 보았다.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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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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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를 찾는 이유는 단 하나, 앙코르 유적을 보기 위해서이다. 

앙코르 유적, 정말 대단하다. 그냥 대단한 정도가 아니라 놀랍도록 대단하다.

앙코르 유적을 보고나면 웬만한 유적은 눈에도 안들어온다는 단점이 있을 정도다.

어떻게 이런 곳에 이렇게 놀라운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이름없는 동방의 작은 나라에 말이다.

이 부분 앙코르 유적을 발견한 초기 학자들부터 의문이었다고 하니

이 보잘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겉모습으로만 보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지나치는 동남아의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그리 작게만 보이진 않는다.


이렇게 놀라운 문명의 흔적을 볼 때 무엇을 보는 것이 가장 잘~ 보는 것이 될까.


12세기 거대 도시였던 앙코르톰의 남문


앙코르톰 안에 있는 바이욘 사원. 3층에 '크메르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사면상이 인상적이다.


우선은 마치 외계인이 내려와 지었을 것 같은 규모와 정교함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게 된다. 

어떻게 그 큰 돌들을 날라올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빈틈없이 매끄럽게 쌓아 올릴 수 있었을까?

습지 위에 견고하게 올려 놓을 수 있었을까? 

엄청난 규모의 건물을 그리도 짧은 기간에 완성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또 그 거대한 유적들이 몇 백년을 잊혀질 수 있었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경외감으로 변하게 된다.


앙코르와트 중앙 성소. 


또 시간이 만들어 놓은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의 모습이 주는 감동이다.

감동이라고 하니 좀 그런데, 캄보디아가 가진 기후와 식생으로 인해 탄생한

스펑(또는 보리수) 나무와 유적의 파괴적 조화이다.

사실 나무가 완전히 제거되어 복구된 유적보다

여전히 나무 뿌리와 돌들이 뒤엉켜 있는 유적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더 붙잡는다.


꼬 께르 인근에 있는 유적. 나무뿌리 모습에서는 이 곳이 단연 압권이다.


어디 놓치지 않고 봐야하는 것들이 이 정도뿐일까?

실은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앙코르와트에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종교와 정치의 밀월이다.

정치권력이 어떻게 종교의 이름을 빌어 사기를 치는지 생생히 보게 하는 곳이 앙코르와트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종교와 정치의 구분선이 모호하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정치였고, 어디서부터 종교였을까?

정치는 종교적 특성을 가질 때 더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사실 정교분리의 시대라고 하는 오늘날에도 

정치는 충분히 종교성을 띠고, 종교는 정치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과거에야 얼마나 더 했을까 상상해 볼 수 있다.

앙코르의 흔적과 오늘 정치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몰입하는 대중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 사기극이 얼마가지 않을텐데, 왜 그걸 모르고 열광을 하는 지...

앙코르와트를 보면서 더더욱 확신에 가까운 가설이 하나 떠오른다.

단기적 사기는 정치이고, 장기적 사기는 종교가 아닐까 하는.


앙코르와트 중앙 성소 네 번째 회랑 '천국과 지옥'의 한 장면. 

막대기를 들고 있는 염라대왕 뒤에서 한 말씀 거들고 있는 사람이 앙코르와트의 주인 수리야바르만 2세이다. 


앙코르 유적이 캄보디아에 득일까, 실일까?

짧게 봤을 때는 분명히 득이라 할 수 있겠다.

변변한 산업이 없기 때문에 이 놀라운 관광자원으로 인해 얼마나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나?

캄보디아에 가서 놀라는 것 중 하나는 1달러 이상은 그냥 달러로 통용된다는 것이다.

씨엠립만 그럴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다른 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암튼 달러벌이의 차원에서는 이 유적들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길게 보면 캄보디아의 발전을 가장 발목잡는 것이 앙코르 유적이 아닐까 싶다.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서 그냥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 때 그건 진보가 아닌 퇴보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좀 우스운 관점이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은 늘 미래가 아닌 과거만 바라보고 산다고 보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기술을 배우고, 생각을 바꿔 변화를 꿈꿀 필요가 없는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캄보디아이다.

그러니 앙코르 유적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더욱 캄보디아에 실이 될 것이다.


바꽁에서 숨바꼭질을 하면 놀고 있는 현지 아이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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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글에 이어서 생각해 보면, 뚝뚝으로 관광을 할 때 유익이 하나가 더 있다. 현지인 친구를 하나 사귈 수 있다는 것은 곧 현지인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뚝뚝 기사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한국 사람들을 주로 만나기 전에는 시내에서 2,3 달러도 벌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고 한다. 열심히 한국말 공부를 하면서 연결 연결되어 그래도 다른 기사들에 비해 조금은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것도 한국사람들 관광 비수기가 되면 비슷해지긴 하겠지만 말이다.


따 프롬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유독 한국 사람들의 여행 스타일이 단체관광이다. 단체관광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단체로 와서 한국 여행사를 통해서 차량을 대절하고, 식당도 한국 식당만 주로 찾고,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선물가게를 찾는다. 그리고 또 특징은 여행기간도 짧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숫자에 비해 그 나라나 지역에 경제적 도움이 적다는 뜻이다. 그래서 태국같은 경우도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씀씀이가 크고 장기간 머무는 관광객을 더 선호한다.

뭐 한국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긴 하다. 휴가가 짧은 것. 그래도 가능하면 잘 준비해서 개별적으로 여행을 오고, 현지인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 그나마 괜찮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뭐 한국음식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이라면, 사전에 한국식당에 대한 정보는 좀 가지고 오면 된다.


안젤리나 졸리가 뛰어 내렸다는 프놈꿀렌의 폭포


가난한 나라일수록 남성의 일자리가 없다고 한다. 남성들이 종사할 산업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캄보디아의 경우는 조상들 덕분에 관광산업 하나는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것도 특정인들, 즉 훈센과 연결되어 있는 정치권력이 모든 이권을 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앙코르 유적 입장권은 보면 소카 호텔 이름이 들어가 있고, 프놈꿀렌 입장권에 보면 또 그것을 판매하는 시티 앙코르 호텔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러니 그 수입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적절히 나누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예측컨테 지금의 캄보디아의 상황은 이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최고의 꿈이 관광 가이드라고 한다. 그것 이상, 아니 별다른 것을 꿈꿀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그런 곳에 가는 한국 관광객들이 그들의 삶과 전혀 상관없는 구조의 관광을 즐기고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뚝뚝이라는 상징적인 것으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숙소나 식당 등을 이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조금이라도 그 나라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을 갖고 선택하고 즐기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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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캄보디아 하면 앙코르왓(더 정확히 말하면 앙코를 유적. 앙코르왓은 가장 널리 알려진 사원 하나만을 가리킴)이고, 앙코르왓은 씨엠립이라는 캄보디아의 세번째 도시를 중심으로 돌아 볼 수 있다. 돌아 본다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씨엠립을 가려는 계획을 세울 땐 출발 전부터 이 돌아보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뭐 단체로 여행사를 끼고 가게 된다면 그런 준비를 할 필요는 없다. 여행사에서 준비한 에어콘 나오는 시원하고 편안한 버스를 이용할테니 말이다. 

자, 이제부터 하고싶은 얘기는 사실 이 편안한 버스를 이용하시는 분들에게 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너무도 편안히 다녀오셨고, 또 그렇게 가려고 하시는 분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서...


씨엠립을 다녀온 이들에게 씨엠립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뭐였냐고 물으면, 아마도 '뚝뚝'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거다. 길 양 옆으로 뚝뚝이와 그 기사들이 죽치고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다 못해 자기의 뚝뚝을 좀 이용해 달라고 애원을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한 이야기는 말미에 하고, 우선 하려고 하는 얘기는 앙코르 유적 탐방(관광)을 이 뚝뚝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뚝뚝은 오토바이의 뒤에 마주보고 앉은 수 있는 의자가 있는 마차(?) 같은 것을 달아서 만든 이동 수단이다. 내 생각엔 최대 인원이 4명인데, 더 타고 다니는 것도 본 적 있다.


거의 일주일을 함께 했던 따비의 뒷 모습


뚝뚝을 이용하면 좋은 점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일단 뚝뚝을 이용해 돌아다니면 탁트인 시원함을 경험하게 된다. 캄보디아가 연중 기온이 높아 덥지만 달리는 뚝뚝 위에서는 그 더위를 비껴갈 수 있다. 바람이 온 몸을 휘감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또 뚝뚝을 타고 이동하면 주변 풍광은 물론 지나쳐 가게되는 작은 유적들, 그리고 현지 사람들의 삶의 현장들을 더 가깝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역시 뚝뚝을 이용해 이동하는 다른 관광객들과 눈을 마주칠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관광객이나 현지인 청소년들과도 웃음으로 인사를 나눌 수도 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는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뚝뚝 위에서는 매 순간 일어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뚝뚝을 이용하라고 강력하게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유독 한국 사람들만(물론 다른 나라도 간혹 있긴 하다. 그리고 중국사람들도 좀 있다.) 더 단체로 커다란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눈에 띄어 어쉬움이 더 컸다.


그럼 아마 가이드 이야기를 할 거 같다. 그런 많은 유적들을 돌아보려면 가이드의 안내와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냐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처음 간 곳에서 가이드가 해 주는 그 장황한 설명, 솔찍히 조금만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 그리고 여러명이 서서 설명을 들으면 잘 듣지도 않게 되고, 앙코르왓 회랑에 모여 길을 막고 서서 설명을 듣는 것이 또 얼마나 민폐가 되는 지 모른다. 그 부분 주의가 필요하다. 


난 이 부분에 대해서 공부하고 가라고 충고하고 싶다. 꼭 역사책은 아니더라도 가이드북 좋은 것 구하면 웬만한 가이드 몇 명 보다 낫고, 더 정확한 설명을 담고 있기도 하다. 가이드 설명 듣다보면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을 하거나 아예 근거 없는 얘기를 하는 것도 보게 된다. 그러니 가기 전에 공부(예습)하고, 현장에 가서는 그것을 확인하며 감격하는 것이 최상인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앙코르와트 내비게이션](정숙영, 그리고책)이 그래도 좋은 가이드 북인거 같다(본인 이 책과 아무 상관 없음ㅋㅋ). 이거면 예습도 탐방계획 세우기도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준비만 잘 되어 있다면, 한국말 잘하는 뚝뚝 기사를 찾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어디어디' 하며 스케줄 전달만 할 수 있으면 누구든 상관이 없는 거다. 그래도 못 미더울 땐 한국말을 잘하는 뚝뚝 기사를 한국에서부터 섭외하고 가면 된다. 인터넷에 '태사랑' 홈페이지를 검색해 들어가서 캄보디아 섹션을 찾으면 뚝뚝 기사들에 대한 이용후기들이 올라와 있는 게시판이 있다. 거기서 마음에 드는 기사를 골라 카톡으로 연락을 하면 바로 답을 얻을 수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러면 현지에 있는 어느 여행사 연결 한 거 보다 안심하고 첫발을 내 디딜 수 있다.


여기서 뚝뚝을 이용할 때 또 하나의 장점이 나왔다. 바로 스케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점. 그날 그날 가고 싶은 곳을 정할 수도 있는데, 이 부분은 뚝뚝 기사와 논의도 할 수 있다. 참,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뚝뚝 기사는 뚝뚝이 갈 수 있는 곳에만 갈 수 있다. 뚝뚝을 두고 유적 안으로 함께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러니 뚝뚝을 이용할 때는 만날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고 들어가야 한다. 같이 다닐 수 있는 방법은 뚝뚝 기사 입장권을 끊어주면 되는데... 알다시피 입장료가 비싸기도 하지만, 예습을 잘 했으니 그럴 필요도 없다. 


그리고 또 장점이 하나 더 있는데, 뚝뚝을 이용하면 현지인 한 명은 확실히 친해질 수 있다. 한국말을 잘 하는 기사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인사만 주고 받고 여행과 관련된 정보만 교환하지만, 마칠 때 즈음에는 나라 돌아가는 얘기, 자녀 얘기, 인생 얘기 등 심도있는 대화도 나누게 된다. 이 부분 유적, 환경, 문화 등등과 어울려 여행의 깊이를 더하게 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돌아와서도 가끔 카톡으로 안부를 물기도 하고, 다른 여행자들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지만, 뚝뚝 기사 중에 이런저런 요구를 하고, 여행자를 불편하게 하는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건 어떤 일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잘 알아보는 것은 필수이겠다. 태사랑도 괜찮고, 아래 사진을 빌려온 사이트에 가도 뚝뚝 이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있다.


(뚝뚝을 찍은 사진이 없어서 ttearth.com에서 빌려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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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엠립으로 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태국에서 국경을 넘어서 올 수도 있고, 수도인 프놈펜에서 버스나 비행기로 올 수도 있고, 당연히 비행기는 어느 나라에서든 올 수 있다. 그럴 때 가장 많이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 비자를 받는 일이다. 동남아 나라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캄보디아와 베트남에서 유독 입국을 할 때 커미션을 요구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에어아시아 항공편으로 입국하면서 내심 긴장도 하고, 반대로 기대도 했었다. 달러를 요구하면 어떻게 응대를 할까, 절대 돈을 주지 않을 거야 하는 결의를 갖고 있었지만 막상 긴장이 더 앞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정부 관리를 상대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무런 요구가 없다. 참 우스운 광경은 비자 붙이고 싸인하고 도장 찍는 것에 정말 많은 사람이 앉아 있는 거다. 첫 사람이 여권을 받아들고 뭔가를 처리하기 시작해, 한 사람씩 넘기고 넘겨서 마지막 사람에게서 아무런 요구 없이 여권을 받아들었다. 약간은 김이 빠지는 것 같았지만, 상쾌하게 일을 마쳐서 기분은 좋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항공편이어서 그랬나 싶기도 한데, 정확한 건 잘 모르겠다.

씨엠립 공항은 정말 작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짧은 거리를 걸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바로 비자수속 하는 곳이 있고, 거기서 짐 찾는 곳이며 나가는 출구까지 보인다. 작지만 깔끔한 공항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나오면서 핸드폰 유심을 캄보디아 것으로 구입해 끼웠는데, 태국에서처럼 바로 연결도 되지 않는다. 나오기로 한 뚝뚝이 나오지 않고 연락도 안되서, 다른 뚝뚝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아 이런, 비행기가 오전에 내렸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체크인을 하려니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거다. 최소 세 시간은 더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짐을 맡겨두고 예정에 없던 씨엠립 시내 구경을 하게 됐다. 문제는 쿠알라룸푸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면서(6시간 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무척 피곤하고 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다니는 것은 포기하고 씨엠립강 주변에 있는 벤치를 찾아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졸수밖에 없었다. 



여행하면서 별 일도 다 경험하는구나 싶을 무렵, 한 현지인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자신이 학교 영어교사를 하다가 그만 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나야 그곳에서 외국인이지만, 영어를 못하기에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더 적극적이 된 이 아주머니는 자신의 딸이 한국에 다녀왔고, 한국에 대해서 알고 싶어한다고 같이 가서 얘기를 나눠 줄 수 없겠냐고 요청한다. 너무도 설득력 있는 말로 이야기를 해서 좋다고 해버렸다. 그랬더니 딸에게 점심을 준비해 놓으라고 전화를 한다.

그리곤 자신이 뚝뚝을 싸게 잡을 수 있다고 하면서 한 대를 세우더니 타라고 한다. 뭐 별 의심 없이 함께 갔다. 집은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좋았다. 문젠 딸은 보이지 않고 언니와 형부를 소개한다. 형부는 몸에 금붙이가 주렁주렁, 마치 크메르제국의 왕같은 분위기 ㅋㅋ 암튼 환대를 받고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좀 이상하다. 자신이 동생이라고 하면서도 심부름 하고 온 사람처럼 행동한다. 밥도 허겁지겁 먹고 언니와 형부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식사 후에 집 주인 아저씨(형부)가 나를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한다. 그러더니 카드를 죽 펼치더니 능숙하게 모았다 펼쳤다를 반복하다가, 나보고 하나를 뽑으라고 한다. 그러면 자기가 그 카드를 맞추겠다고. 두세 차례 잘도 맞춘다. 옆에 와서 앉아 있는 그 아주머니도 덩달아 흥을 돋운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카지노 얘기를 한다. 한국에 강원도에 있지 않냐고 하면서, 결국엔 자기랑 동업을 하자고 하는 거다. 같이 돈을 벌 수 있다고, 원한다면 부르나이 사람이 근처에 와 있는데 불러서 그 사람을 상대로 시험해 볼 수도 있다는 거다.

와~ 대박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돈도 없지만, 관심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랬더니 한두번 더 권하다가 이전까지 친절했던 표정은 온데 간데 없고, 차갑게 잘 가라고 인사하고 사라진다. 그러자 나를 데리고 온 이 아주머니는 안절부절하더니 빨리 가자고 한다. 아~ 이 인간들이 지금 사기를 치려고 나를 유인해 온 것이구나.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나도 참 둔하다. 집을 나서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이 아주머니 화를 내면서 사진은 왜 찍냐고 한다. 


급하게 나오며 뒤돌아 찍은 것이라 사진이 온전하지는 않다.

순간, 무슨 사진을 찍고 그러냐는 그 아주머니의 약간은 격앙된 음성이 들려서 더는 찍지 못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돌아오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큰 일을 당할뻔 한 것이다. 그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했다면 나라는 사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말이다. 혹시 이 글을 보는 분들, 그런 일 당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부끄러운 경험담을 나눈다. 재미있는 경험 같지만, 실상은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13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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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앙짠에서 태국 넝카이 가기

비엔티엔에서 태국 넝카이 가기


탈랏 싸오 터미널에서 태국의 방콕으로 가는 태국 국영버스 999를 탈 수 있다.

운행시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인 

넝카이와 우돈타니로 가서 다시 버스티켓을 끊어서 방콕이나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모두 위앙짠의 중심에 있는 탈랏 싸오 터미널을 이용하면 되니 시간표를 확인해서 이용하면 된다.


이틀 전에 위앙짠으로 오면서 이미 넝카이까지 가서 버스표를 예매해둔 상황이라

무조건 넝카이로 가는 국제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역시 동남아는 정시를 훌쩍 넘겨 차가 들어오고 여유있게 출발했다.

국제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을 때 단점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버스가 모든 승객이 개별적으로 출국과 입국 절차를 밟을 때까지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여유 시간을 많이 갖고서 이동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산을 양산으로 밭쳐든 승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탈랏 싸오 버스터미널. 시내버스는 물론 태국으로 가는 국제버스가 출발한다.



넝카이도 가고, 우돈타니도 가고, 방콕도 간다.


탈랏 싸오 터미널 대합실, 사람들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


태국 넝카이 버스터미널



태국 넝카이에서 위앙짠으로 가는 국제버스 시간표




찬투어 버스 2층 맨 앞자리에서... 비행기처럼 개인용 모니터가 있고, 의자는 안마기능이 있고, 개인용 콘센트가 자리마다 있어서 핸드폰 충전도 할 수 있다. 넝카이에서 푸켓까지 22시간을 탔는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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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들어가는 추천 코스

라오스에 들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태국에서 육로로 넘어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태국 치앙콩에서 출국하고 메콩강을 건너 라오스 훼이싸이로 입국 하는 것이다.

치앙콩은 치앙마이나 치앙라이를 중심으로 태국 북부를 돌아보다가 쉽게 갈 수 있다.

또 세 곳(위앙짠, 라오바오)으로 국경을 넘어봤는데, 치앙콩-훼이싸이 국경이 가장 통과하기 쉬웠다.

그렇다고 다른 곳들이 긴장을 해야하는 일이 있다는 말은 아니고, 시간이 좀 더 걸린 걸렸다는 얘기다.


훼이싸이에서 빡뱅을 경유하는 슬로우보트로 1박2일 만에 루앙프라방에 도착할 수 있다.

스피드보트를 이용하면 예닐곱 시간이면 갈 수도 있지만 추천하고 싶지 않다.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의 진수를 맛보는데 슬로우보트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작은 마을 빡뱅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나름 특별한 경험이 된다.

루앙프라방에서는 왕위앙이나 위앙짠, 아니면 더 북쪽에 있는 도시들로 갈 수 있다.


라오스 숙소 잡기

2013년 3월부터 4월에 걸쳐 태국북부와 라오스를 묶어서 여행을 할 때는 

아고다를 통해 숙소를 모두 예약을 해두고 예정 일정대로 움직였다(훼이싸이와 빡뱅만 예외).

숙소를 모두 잡아 놓고 여행을 하다보니 일정에 융통성이 없는 것이 불편했고,

또 하나는 라오스의 경우 아고다로 예약하고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고다 예약 바우터를 보여주면 무표정하게 맨 꼭대기 층이나 후미진 곳으로 안내했다.

왕위앙에서는 함께 도착한 일본인은 현장에서 숙박료를 지불하자 2층 방을 주고, 나는 4층 꼭대기 방으로 안내했다.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곳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반응이었다.

보통 부정적인 후기를 쓰는 것을 우려해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이다.

그래서 라오스를 갈 때는 극성수기만 아니라면 숙소를 미리 잡아두지 말고, 

아고다 같은 사이트에서 평이 좋은 호텔과 숙박료만 조사해뒀다가 현장에서 흥정하고 지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위앙짠, 세 시간에 돌아보기 2013.4.5.

여행을 하면서 한 나라의 경제력을 보는 척도가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도로'이다.

또 도로가 잘 닦여있는가를 보는 척도는 '흙먼지'이다.

캄보디아나 라오스는 어디나 흙먼지가 많다.

태국만 넘어가도 흙먼지가 줄고, 다시 말레이시아로 넘어가면 흙먼지는 구경도 못한다.

고속도로라는 것은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도로의 최첨단 시스템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고속화도로 수준의 길만 있어도 상당한 경제력이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라오스의 수도인 위앙짠으로 들어가면서도 흙먼지의 문제는 여전했지만 도심으로 갈 수록 잦아들었다.

위앙짠 곳곳에 선진국들의 원조의 흔적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위앙짠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로, 일장기가 떡하니 붙어서 일본의 원조를 알리고 있었다.

위앙짠 메콩강변은 한국의 원조사업으로 마치 한강의 고수부지를 보는 것 같았다.


위앙짠은 여행자에겐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볼거리들이 한 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도록 단조롭게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왓 파깨우, 왓 씨싸껫, 탈랏 싸오(아침시장), 빠뚜싸이, 탓 루앙 순으로 보면 

위앙짠에서 대표적인 곳을 다 가보는 것이 될 것 같다. 

물론 좀 더 먼 곳까지 가려면 탈랏 싸오 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갈 수도 있다.

왓 파깨우가 대통령궁 바로 옆에 있어서, 대통령궁이 눈에 들어올 쯤 멀찍이 자동적으로 멀리 돌아가려했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니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계속 갔는데 전혀 제재가 없었다. 

경비를 하는 경찰들도 길 건너 정문의 맞은편 초소에 있었다. 

혹시나해서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삼엄하게(?) 경비하는 한국의 청와대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왓 파깨우




왓 씨싸켓



빠뚜싸이, 독립기념 탑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뜻은 승리의 탑이다. 바로 앞을 지나가는 현대자동차의 스타렉스!!




빠뚜싸이에서 바라본 왕위앙. 길게 뻗은 타논 란쌍(란쌍 대로)과 그 끝에 대통령궁이 보인다.


1566년 뒤에 보이는 탓 루앙을 세운 쎗타티랏 왕



탓 루앙은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는 불교 유적이고, 국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탓 루앙 담에 있는 구멍으로 보이는 밖같 풍경.


조마 베이커리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했다. 입에 안맞는 라오스 음식보다 ㅋㅋ(핸드폰 카메라 화질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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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앙에서 위앙짠 가기

*방비엥에서 비엔티엔 가기/ 동남아에서 버스로 이동하기

2013.4.4.

동남아에서는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것, 심지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움직이는 것이 생각보다 쉽다. 여행자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 여행사들이 있고, 원하는 버스표를 구입할 수 있다. 라오스의 깊숙한 곳에 있는 왕위앙에서 태국의 우돈타니, 심지어 방콕이나 치앙마이도 갈 수 있다. 하루 전에 몇 곳에 가격을 알아보고 보다 저렴한 곳에서 구입하면 된다. 그러나 경험상 비싸다고 꼭 좋은 버스도, 싸다고 나쁜 버스도 아닌 그 때 그 때의 운에 맞겨야 할 듯하다. 

물론 그 곳에 살고 있는 분들(예를들어 한인식당)을 통해서 소개를 받는다면 확실하겠지만, 뭐 라오스를 발로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꼭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맞이하면 그 자체로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루앙프라방에서는 터미널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고, 왕위앙에서는 여러 여행사 중 좀 더 저렴한 곳에서 표를 끊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묵고 있던 말라니 호텔의 계열사 같았다. 숙소에서도 버스표를 파는 것을 봤는데, 거기서 살 걸 그랬다는 후회가. 호텔 가격표가 이상하게 싸더라는... 암튼 이튿날 아침 약속된 시간에 호텔 앞으로 온 픽업차량이 왔다. 그것으로 이동해 타게 된 버스는 수도인 위앙짠(비엔티엔)을 경유해 국경을 넘어 태국의 우돈타니까지 가는 국제버스였다.



왕위앙에서 위앙짠까지 오는 길 중간에 사진을 거의 못 찍었다. 위 사진은 버스가 라오스와 태국의 넝카이를 잇는 우정의 다리를 넘고 있는 장면이다. 우정의 다리를 태국에서 놓았기 때문인지 여기서부터 차는 왼쪽으로 달린다. 이 곳도 그런 것 같고, 훼이싸이 쪽에도 다리가 놓여지고 있는데 그것도 태국에서 놓는다고 한다. 라오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태국을 위해서인데, 중국과 더 가깝게 교역하기 위해서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여기서도 통하는 것 같다. 말은 우정이지만 결국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이다. 그렇게 더 잘 사는 나라가 앞장선 개발(문명화)은 못사는 나라의 더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을 동반하게 된다. 빠른 수단이 생기면 느렸기에 먹고 살았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개발한다, 빠르게 한다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참, 왜 내가 국경을 넘고 있지? 원래 위앙짠이 목적지였는데, 버스 안에서 변수가 생겼다. 그 날이 목요일이었는데, 위앙짠에 2박하고 토요일에 태국 넝카이로 넘어가서 방콕으로 가겠다고 했더니, 버스에 함께있던 한인들이 토요일에 가면 표가 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이 버스가 국경을 넘으니 타고가서 예매를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충고를 한다.

그래서 갈등을 하다가 선배들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비용을 더 지불하고 넝카이 터미널까지 가게 된 것. 기사는 국경을 넘어 바로 우돈타니로 가고싶은데 나 하나 때문에 넝카이 터미널을 들려야 하느냐고 약간 불편해했지만 옆에 있는 한인들의 도움으로 중간에 내리지 않고 터미널까지 갈 수 있었다. 넝카이에선 찬투어 버스로 방콕이 아닌 최종 목적지인 푸껫행을 예매했다. 거금 1,798밧이었지만 22시간ㅠㅠ 가는 것치곤 비싼 것은 아니었다.

버스표를 끊고 다시 위앙짠으로 돌아오는 것이 문제였다. 저녁 6시에 위앙짠 가는 국제버스가 있었는데, 너무 늦고 그렇게 국경을 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뚝뚝을 80밧이나 주고 국경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좀 전에 입국해놓고 몇 시간 되지 않아 다시 출국하고, 또 셔틀 타고 우정의 나리 넘어, 좀 전에 출국했는데 몇 시간 되지 않아 입국해서 라오스로 들어갔다. 몇 시간 되지 않아 라오스는 두 번째 방문이 되었고, 태국도 한 번 더 들어갔다 나온 것이 되었다. 한국 사람에게 국경을 마주한 나라를 넘나든다는 것은 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이다.

입국장을 나오자마자 택시 기사들이 10만낍에 속소까지 데려다 준다고 서로 자기 차 타라고 팔목을 잡았다. 왕위앙에서 위앙짠 오는 버스비가 5만낍인데 무슨 말이냐고 소리를 치곤 앞에 있는 뚝뚝에 올랐다가 시내로 들어오는 14번 버스를 발견하곤 양해를 구하고 버스로 옮겨탔다. 버스비는 가볍게 6천낍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위앙짠 탈랏싸오 터미널에 도착했고, 숙소까지 그 놀라운 방향감각으로 걷고 걸어 찾아갔다.


라오스 국경 오른쪽은 출국장이고, 왼편은 입국장이다. 몇 시간 사이 출국하고 입국하는 헤프닝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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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왕위앙(방비엥) 여행 이야기3 - 탐 짱


탐 짱, 이틀 전 탐 푸캄 갔다와서 자전거 타고 찾다가 실패해서 다시 시도해 보기로했다. 이번엔 자전거가 아닌 두 발로 천천히 살피며 찾아가니 헤매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 빠를 땐 그만큼 눈여겨 보기 어려우니 지나쳐 갔던 것 같다. 

왕위앙 리조트 입구에서 다리 통행료를 먼저 지불하고 표(영수증 같은 것)를 받아 다리 앞에서 내면 다리를 건널 수 있다. 다리를 건너 좌회전해서 조금 더 가면 동굴 입구가 나오고, 그 곳에서 다시 동굴 입장권을 구입하면 동굴에 오를 수 있다. 워낙 탐 푸캄에서 실망을 한 터라 동굴에 대해서는 별 기대 없이 갔다. 그러나...




동굴 입장료 내고 조금 가면 동굴에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이 너무 가파라서 오르는 내내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계단 꼭대기 동굴 입구에 다다르면 왕위앙이 한 눈에 들어온다.

왕위앙의 전체를 둘러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탐 짱은 충분히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동굴 내부는 탐 푸캄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동굴 안에 돌아다닐 수 있는 길을 잘 만들어 놓았고, 무엇보다 오랜 세월의 산물인 종류석들이 많아 볼 거리들이 가득했다.


라오스 젊은이들도 계단을 오르는데 헉헉거린다.



탐 짱에서 돌아오는 길, 길 옆에 소들이 한가로이 쉬고 있다.

개나 고양이도 그렇고 이런 소들도 마찬가지인데, 짐승들은 그 나라 사람들을 닮는 것 같다.

한국의 짐승들에 비해 라오스의 짐승들은 경계심이 적고 여유로워 보인다.

특히 개의 경우 태국이나 라오스에서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왕위앙의 마지막 저녁, 한적한 송강에 발을 담그며 한참을 거닐었다.


왕위앙에 와서는 유난히 한국음식이 땡긴다. 여행기간이 길어져서 그렇기도 하고, 더 중요한 이유는 라오스 음식이 태국 음식처럼 입에 붙지 않아서이다. 라오스 음식이라는 것을 몇 가지 먹었는데, 특별히 뭔지 잘 모르겠고 맛도 없다. 그래서인지 왕위앙에서 유난히 한국식당이 눈에 많이 띈다. 어제 저녁(된장찌개), 참 그저께 점심(라면)과 저녁(김치찌개)도 한국음식을 먹었다. 가격도 비슷하거나 약간 비싸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먹게 된다.

오늘 점심에 갔던 한인식당은 주인 아저씨 혼자 있어서 가능한 메뉴가 두 개 밖에 없었다. 할수 없이 그 중 하나인 라면을 주문해서 밥과 함께 먹었다. 식당에 있는 내내 먼저 와 있는 60대 부부와 주인 아저씨가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주로 자식자랑에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주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제 저녁 20대 초반 젊은이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어른들에 비해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오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무엇을 보았고, 어떤 점이 좋았고, 무슨 생각을 했고, 또 뭘 하려고 한다는 것들이었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은 이룬 것이 없으니 그 쪽으로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제에 집착하는 기성세대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자녀나 이전에 있었던 어떤 일, 이룬 일들은 어제의 일일 뿐만 아니라 지금 자신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오늘 내가 어떤 관심을 갖고 있고, 또 무엇을 보고 느끼며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진정한 자신이 아닌가.

이 좋은 곳, 라오스 왕위앙에 와서 보는 것과 느끼는 것과 그것으로부터 떠오른 이후의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두고온 자식들 이야기에 과거의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니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경험해도 이미 갖고 있는 생각의 틀을 넘어서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마음이 굳어서 그런 것인지. 어쩌면 나이와도 상관이 없을 지도 모른다. 스스로 늘 새롭게 하려는 마음 자세가 없다면 20대, 아니 10대라도 변화는 꿈도 못 꿀지도 모른다. 본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고, 배운다는 것은 새로워지(변화)는 것을 의미한다. 늘 새로울 수 없는 사람은 배우지 않는 사람이고, 배우지 않는 사람은 봐도 보는 것이 아니다. 

20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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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왕위앙(방비엥) 여행 이야기2 - 탐 남, 탐 쌍, 송강 카약킹


왕위앙에 도착한 첫날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는 여행자들이 검은색의 큰 튜브를 하나씩 들고 강에서 올라오는 모습이었다. 왕위앙에 갔다왔다고 하면 저거 한 번 타봐야 하는 걸까. 스스로 질문하며 따라들어가서 비용과 일정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선듯 엄두가 나진 않았다. 이럴 때 누군가 있으면 '같이 탈까?'하고 밀고 들어가면 되는 데, 아주 조금 아쉬웠다.

일단 튜빙은 접어두고, 가이드북에 추천되어 있는 동굴과 송강 카약킹을 묶어놓은 1일투어를 해보기로 했다. 위앙짠에도 사무실이 있는 폰트레블에 가서 이튿날 투어를 예약했다. 투어는 오전 9시부터 모이기 시작해 한국 사람 일곱 명, 벨기에 사람 두 명, 일본인 아저씨들 두 명 총 열한 명이 함께하게 되었다. 한국 사람 중 하루 전 탐 푸캄 갔다 올 때 지나치며 인사나눴던, 한국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젊은 친구도 있었다. 스물네살인데, 그 때 이미 중국 베트남을 거쳐 3개월째 자전거로 세계 일주 중이란다. 압권은 루앙프라방에서 왕위앙까지 자전거로 왔다는 것, 3일이 걸렸는데 텐트 치고 자면서 이동했다고 한다. 나이 차이(ㅋㅋ)에도 불구하며 대화가 잘 통해서 자연스럽게 그 친구와 짝을 이루게 되었다.




탐 남으로 가는 길, 송강도 건너고 밭 사이로 난 길도 건넌다.



탐 남, 튜브를 타고 줄줄이 동굴로 들어간다. 다행히 우기는 아니어서 물의 높이가 동굴 탐사를 하기에 딱 맞았던 것 같다. 중간에 낮은 곳에서는 튜브를 들고 이동하기도 했는데, 가이드를 따라가는 것이 마치 유치원생들이 선생님을 따라 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미있었다.



탐 쌍. 일명 코끼리 동굴인데, 코끼리 모양의 돌과 엄청 큰 부처님 발바닥 모양이 있을 뿐 깊지 않아서 동굴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해 보였다. 와봤다는 데 의의를 두어야 할 듯한 곳이다. 



드디어 남 송(송강) 카약킹~ 의외로 정말 재미있었다. 물살이 세지 않고, 물의 양도 적절했던 것 같다. 

한 가지, 약간 뿌연 대기로 인해 풍광이 좀 아쉬웠는데, 다른 한국 아저씨는 오히려 그런 흐릿한 광경이 더 멋있는 거라고 한다. 나중에 6월에 다시 올 기회가 있었는데, 맑을 때가 더 좋다는...ㅋㅋ




우리 훈남 가이드. 정말 착하고 성실한 스타일이었다. 가이드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좋은 유형은 보호자 같은 가이드이다. 이 친구가 바로 보호자 가이드. 그래서인지 인기가 있어서 마칠 때 여행자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몰렸다.


튜빙을 즐기는 여행자들. 캬약킹을 하면서 보니 튜브는 전혀 매력이 없어 보였다. 

술병 하나씩 들고 시끌벅쩍하게 떠들며 장난치는 모습이 딱 서양인들에게나 맞겠다 싶었다. 




지금 라오스에 가면 한국인 관광객들이 정말 많다. 물론 세계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지만. 요즘 라오스가 한국사람들에게 뜨거운 곳이다. 한국사람들을 알아보는 방법은 '아웃도어 의류를 갖춘 단체 관광객'이다. 한국사람들의 특징은 실제보다 다소 과장된 엑션을 취한다는 것이다. 돈을 쓰는 것도 그렇고 말을 하는 것, 특히 관광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두드러진다. 한국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 상반되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이란. 모든 관계를 자동적으로 갑을 관계로 놓고 적응하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한국사람들을 돈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에 딱 묶어놓게 되는 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한국사람들을 좀 피하게 된다. 같이 취급되는 것도 싫고, 말을 섞으면 이런저런 개인적인 질문들을 서슴없이 던져서 당혹스러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날 투어에서는 한국사람들과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다. 함께 카약을 탄 친구도 좋았고, 다른 한국인들도 좋은 성품을 가진 분들이었다. 자전거 여행하는 친구와 다른 젊은 남여 커플과는 함께 저녁도 먹었고, 이후 사진도 보내고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탐 남 튜빙 탐사, 남 송 카약킹, 그리고 함께한 이들... 왕위앙은 정말 물 좋은 곳이다.

20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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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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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왕위앙(*방비엥) 여행 이야기1 - 탐 푸캄&불루라군

*태국과 라오스가 영문 알파벳 V를 W로 발음하기 때문에 영어식 방비엥이 아니라 왕위앙이 맞는 발음이다.

 수도인 비엔티엔도 역시 위앙짠으로 발음하는 것이 맞다.


약간 황량한 벌판(옛 비행장 터) 같은 곳에 버스가 정차해서 조금 황당했다. 너무 더웠고, 먼지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길에 사람도 별로 없었고, 그냥 시골 작은 읍내같은 분위기였다. 더구나 숙소는 맨 꼭대기층이어서 에어콘을 틀어도 후텁지근해서 약간 실망감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저녁이 되니 바람도 잦아들고 차분해지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는데 비호감은 그대로였다. 왜 여기를 여행자의 천국이라고 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송강 쪽으로 나가서 그 주변을 보자 이전에 들었던 모든 의혹들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여기구나~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마치 태국의 팡아를 옮겨 놓은 것 같은 경치였다. 왜 소계림이라고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이튿날 루앙프라방 베이커리에서 저렴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산책을 하는데 자전거 대여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 아니 저녁까지 사용하는데 30,000낍(8,000낍이 1달러)이란다. 수중에는 환전을 못해서 10,000낍 조금 넘게밖에 없었다. 다시 오겠다고 하자 그냥 10,000낍만 받겠다고 들어오란다. 이유는 손님이 없어서라고. 암튼 파격적인 가격에 자전거를 대여해서 탐 푸캄 탐사에 나섰다. 통행료가 없는 나무다리를 건너 강변 길로 해서 마을을 지나 동굴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길은 넓게 닦여 있는데, 포장되 있지 않았다. (사진으로는 감이 잘 안 오지만) 자갈이 너무 많아서 계속 퉁퉁거리며 자전거가 튄다. 속도 내기도 힘들지만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 가도 가도 그런길, 늘 겪는 한계상황이 온다. '돌아갈까?' 이정표도 제대로 없어서 엉뚱한 길로도 들어가고,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나마 주변 경관이 너무 좋아서 참을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탈 일이 많진 않지만, 걸을 때와 가장 큰 차이는 잘 멈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셔터를 눌러도 몇 번을 더 눌렀을텐데 멈추는 것이 번거로워 그냥 지나간다. 또 특이한 점은 자전거로 지나갔던 길을 다시 걸었을 때, 전혀 다른 곳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빠르기 때문에 멈춤이 어렵고, 그래서 놓치는 것도 많아진다. 시간은 좀 많이 걸리겠지만 걸어서 가는 것이 이 길을 재대로 즐기는 법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차량으로 이동하는 사람에 비하면 자전거가 조금 나은 편이니 위안하며 열심히 패달을 밟는다.







그렇게 도착한 탐(탐은 동굴이라는 뜻) 푸캄은 길보다 더 실망스러웠다. 동굴로 올라가는 길도 가파르고 위험했고, 더구나 동굴은 규모나 볼거리가 기대했던 것에 한참이나 못 미쳤다. 그나마 블루라군은 약간의 매력이 있었는데... 서양 관광객들이나 라오스 젊은이들, 심지어 한국에서 온 아저씨 아줌마들까지 몸을 던져 다이빙하고 수영하며 노는데, 나는 선뜻 뛰어들지 못했다. 혼자이기도 하고, 푸껫에서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물이 약간 무서운 측면도 있었다. 은근히 깊어보였다는. 그래도 그냥 확 몸을 던졌어야 했는데.






정오를 훌쩍 넘기며 배가 고파서 매표소 옆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간판에 라면+밥, 김밥 등 한국 말이 적혀 있었는데 특히 라면에 확 꽂혀버렸다. 아주머니와 의사소통이 안되어 내가 원하는 것이 라면과 밥이라는 것이 겨우 전달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커다란 냄비에 물을 담아 주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라면은 물 양이 중요하고, 타이밍도 중요한데, 이건 아니다 싶어 따라 들어갔다. 흠짓 놀라시더니 이내 자리를 내주신다. 나는 바로 물을 덜어냈다. 그 때 아주머니가 봉투 안에서 꺼내시는 것이... 신라면이었다. 와~ 감동, 오늘 두 번 감동이다. 자전거 대여점에서, 그리고 탐 푸캄 매표소 옆 식당에서 다시.

암튼 그렇게 내 스타일로 신라면을 잘 끓였고, 아주머니가 내놓은 밥과 맛나게 점심을 해결했다. 매표소에 있는 젊은이가 직접 요리하는 모습을 보곤 엄지손가락을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 천낍도 안 깎아준다. 그래도 기분 좋아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또 오라는 인사를 들으며 자전거 패달을 밟았다. 들어갈 때 보단 할결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나 쿵쿵 엉덩이의 고통은 한층 더 느끼며 돌아왔다.

20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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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알라 룸푸르 LCCT공항에서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한국으로 오는 AirAsiaX의 경우는 조금만 걸어도 되는데, 말레이시아 인근을 운항하는 AirAsia의 경우는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타는 곳도 마치 버스터미널 같다. 그래서 저가로 운영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래도 내 경우엔 지연된다든가 취소되는 일은 없었고, 크든 작든 불편함도 없었다. 


AirAsia 이용하기


저가항공의 장점은 여정을 편도로 나누어 계산을 하는데 있다. 그래서 편도와 왕복에 큰 차이가 없는 일반 항공에 비해 편도로 이용하게 될 때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티켓팅을 언제 하느냐에 따라서 일반 항공과 비용에서 별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충분한 여유를 두고 일정을 확정해 예약을 할 때 저렴한 혜택을 볼 수 있겠다.


기내식

그래도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선택하지 않으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기내식의 경우 일반 항공기에서는 한두 가지 메뉴 중에서 선택하도록 하는데, 에어아시아는 여러 메뉴 중에서 미리 선택하거나 기내에서 비용을 치르고 사먹을 수 있다. 물론 먹지 않아도 된다.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지만, 어떤 승객들은 빵 같은 것을 미리 구입해 들고 들어와 먹기도 한다. 예매 할 때 번거로운 면도 있지만 고객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좌석

좌석을 잘 선택하면 때때로 옆 자리까지 두세 자리를 사용할 수도 있다. 비용을 더 내고 그런 자리를 배정받을 수도 있지만, 경험상 맨 뒤 쪽에 세 자리에서 두 자리로 줄어든 부분(44번부터)에 창가를 지정하면 거의 예외 없이 옆 자리가 비게 되는 것 같다. 에어아시아의 경우 좌석이 조금 좁은 편이기 때문에 옆 자리가 비는 것은 큰 여유를 준다.


수하물

수하물이 문제인데, 기내로 7킬로 까지만 들고 들어갈 수 있고, 나머지는 수하물로 보내야한다. 그러니 기내로 들어오는 수하물에 제한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쿠알라룸푸르에서 올 때도 그렇고, 인천에서 갈 때도 특별히 들고 있는 짐에 대한 제재가 없었다. 그래서 큰 가방을 두 개씩 들고 들어오는(원래는 한 개만 허용된다고 써 있음) 승객들도 볼 수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15킬로 수하물을 신청하고 비용을 지불했지만, 수하물을 부치지 않고 12킬로 되는 가방을 그대로 기내로 들고 들어갔다. 체크인을 할 때 이미 지불한 비용을 확인하고 그대로 들고 들어가는 것을 허용해 주었는데, 아마도 말이 통해서 받아들여 진 것 같고(인천공항에서), 쿠알라룸푸르에서는 그렇게 협상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


기내 소품

일반 비행기에서는 모든 좌석에 제공되는 담요나 베게도 소프트킷이라고 해서 따로 신청을 해야 한다. 그 비용을 지불하기 싫으면 신청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인데 빨간색의 케이스에 든 빨간 담요는 충분히 기념품으로 괜찮은 거 같다. 그래서 왕복으로 이용할 경우 한 번 정도 신청해서 사용하고 가지고 오면 된다. 보통 눈가리개는 가지고 다니지 않았는데, 킷 안에 들어 있어서 쓰고 잤더니 깊이 잘 수 있어서 좋았다. 목 베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편하고 좋았다. 물론 담요는 담요라고 하기엔 좀 얇은 편이다.


LCCT공항 이용

AirAsia를 이용할 때 가장 번거로운 일은 쿠알라 룸푸르를 경유하는 것이다. 경유하는 것이야 문제가 없는데, 비행기를 갈아타는 공항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말레이시아의 저가항공, 특히 에어아시아가 거의 독점적으로 이용하는 LCCT는 조금 괜찮은 버스터미널 수준이다. 그러니 공항으로서는 많은 불편함이 있다. 낮에 도착하면 시내 관광을 나갔다 올 수도 있겠지만, 밤에 도착해 일고여덟 시간을 대기해야 할 때는 곤욕이 아닐 수 없다. 앉을 의자도 많이 없어서 많은 여행객들이 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도 두세 번 이용하면 나름대로 요령은 생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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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도보여행3


도보여행3은 존커 스트리트 거의 끝에 있는 Jonker88이라는 식당에 대한 사진이 전부이다. 한 회 포스팅을 독차지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먹은 쌀국수에 비견할 정도의 걸죽한 국물과 깊은 맛의 바바 락사, 거기다 최고의 디저트 바바 첸돌의 달콤하고 시원한 맛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2013.5.6.




바바 락사


한 가지 옥의 티가 있었으니... 테이블에 티슈가 없어서 달라고 했더니 구입하라고 하는 거다.

역시 화교들은 최고의 장사꾼들이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대단하다.



바바 첸돌


식당 안 편에 여러 나라의 지페들이 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북한의 지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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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도보여행2


말라카는 강을 중심으로 네덜란드 광장 인근과 강 건너 존커 스트리트 인근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네덜란드 광장 주변의 유적들은 주로 교회나 요새 같은 서구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산티아고 요새나 세인트 폴 교회 같은 경우 아예 폐허가 되어 있어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세인트 프란시스 사비에르 교회



산티아고 요새



세인트 폴 교회


지붕 뻥 뚤린 것이 인상적이다. 하늘로 열린 교회... 오히려 더 교회 다운 모습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루앙프라방, 페낭, 말라카 등에서 목격하는 것들은 유럽건축물의 아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그럼 유럽에 가야 진짜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규모도 그렇고 완성도에 있어서도 월등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그 유럽이 어떻게 그렇게 화려한 건축물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인가. 그들의 미적 감각과 우수한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빼앗은 부이다. 대개 평화로웠던 땅에 침입해 사람들을 죽이고, 노동력과 그 땅의 것들을 빼앗아서 얻은 것이다. 오늘날에도 남태평양 호젓한 섬에 프랑스, 미국, 영국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현재진행임을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 코 앞에 있는 포틀랜드도 영국 것이다. 80년대에 그거 놓고 무력충돌도 있었지 않나.

이건 지극히 내 생각인데, 그런 나라들에게 가서 일본 옛날 지도에 독도가 한국땅으로 되 있다고 보여준다 해서 그것을 인정해 줄까. 지들이 100년 전 200년 전 자기 땅이 아니었던 곳을 빼앗아서 자기 땅이라고 하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힘센 나라가 자기 땅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 지구별의 규칙이다. 그러니 지금 일본이 하는 말이 더 먹히고 있다고 봐야한다. 아직 일본이 한국보다는 더 강한 나라니까. 그러니 국제 분쟁지역이 되지 않도록 같이 싸우지 말아야 하고, 일본의 양심세력을 깨워서 일본 내부에서 싸우도록 하는 방법이 더 좋을 것 같다. 독도 문제 가지고 국제사회 운운해봐야 그놈이 그놈이다. 도와줄 것 같은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지 국제 정의에는 관심 없지 않은가.

동남아에서 들었던 이런저런 생각, 유럽에 대한 선망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 지. 오히려 작고 화려하지 않은 것들에 눈길을 주고, 그 속에 담긴 사람냄새에 다가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아시아도 가 볼 곳이 너무 많다. 누구 것을 빼앗아서 이루지 않은 단아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 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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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도보여행1


오전 10시 경에 말라카 센트럴 터미널에 도착했고, 바로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기온이 약간 높긴 했지만 관광하기엔 딱인 날씨였다. 총선 투표 바로 다음날이라 아직 정당 깃발들이 곳곳에 보이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온한 분위기였다.


Christ Church



내부 촬영을 못하게 해서 밖에서 살짝... 아쉽네~



히렌 스트리트


바바노냐 전통박물관

입장하면서부터 사진촬영을 못하게 해서 겉모습만 찍을 수밖에 없었다. 

페낭의 페라나칸 하우스와 비슷한데 뭘 그렇게 까다롭게 제한하는 지 모르겠다.


쳉훈텡 사원



하모니 스트리트

페낭처럼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하여 하모니 스트리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깜풍 클링 모스크


공사중이어서 들어가지 못했고, 바로 옆에 있는 힌두교 사원도 닫혀 있어서 내부는 구경을 못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페낭 이상으로 말라카라는 지명은 익숙했다. 그 말라카에 간다고 하니 약간 흥분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페낭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기도 했다고 하니 기대 충만이었다. 그런데 네덜란드 광장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살짝 김이 빠지기 시작했다. 일단 광장이라는 명칭에 무색하게 작다는 것, 좀 과장하면 분수대가 전부였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여기며 가이드북이 제안하는 코스대로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크라이스트 처치, 히렌 스트리트, 바바노냐 전통 박물관, 하모니스트리트, 쳉훈텡 사원, 깜풍 클링 모스크(공사 중), 스리 포야타 비나야가 무르티 사원(문 닫힘), 세인트 세비에르 교회, 스타더이스(휴관), 세인트폴 교회, 산티아고 요새 순. 가볼 곳이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아마도 내 성격이 급해서 진득하게 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말라카가 좀 작은 편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페낭의 조지타운보다 작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사실관계는 잘 모르겠다.

예전부터 말라카가 이게 전부였을까. 이 작은 도시가 서구 열강의 눈에 들어 그렇게도 시달리다니. 수 많은 유적들이 그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그것들이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 아시아 한 복판에 수 세기 전에 산티아고 요새, 세인트 어쩌구하는 교회들, 크라이스트 처치, 네덜란드 광장이 웬말인가.

앞으로 또 어떤 역사가 펼쳐지고, 또 어떤 유적을 남길지 모르지만, 결국 땅은 모든 시간을 인내로 기다린 것 같다. 인도네시아도 지나가고, 포르투칼도 지나가고, 네덜란드도 지나가고, 영국도 지나가고, 이젠 말레이시아라는 이름으로 수 많은 인종이 터를 잡았고 또 사라져 간 것이 아닌가. 이렇듯 긴 시선에서 보면 그져 흘러가는 것 같다. 지금은 하모니라고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치열함이 배어있는 것 아닌가.

지금 또 어딘가 빼앗기고 짓밟힌 곳들 역시 지나가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저 북녁 땅,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팔레스타인, 티벳, 또 아랍의 어떤 나라, 또 러시아 주변의 어떤 나라, 또 중국 내외의 어떤 민족에 압박하는 힘들도 다 지나가고 나면 그 흔적으로만 그들을 기억할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결국 버틸 수 있다면 그가 가장 큰 힘을 가진 것이니. 

얘기가 좀 멀리 갔지만, 말라카는 긴 일정보다는 가볍게 서너 시간 머물다 가면 딱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잠시지만 이 곳에서 몸으로 피땀 흘렸던 이름 없는 이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계역사의 격량 가운에 있었던 이 곳에서 서구인들이든 동양인들이든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에 대한 예의는 필수이다.

20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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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이 5월 7일이었는데 비행기 시간이 8일 01시였기 때문에 공항에는 10시 정도까지 가도 되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가이드북과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를 종합해서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물론 충분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말라카를 다녀오는 것이 모험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약간은 긴장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LRT를 타고 반다르 타식 셀라탄 역으로 이동했다.


쿠알라 룸푸르에서 말라카로 가기위해서는 반다르 타식 셀라탄 역과 연결된 TBS로 가야한다.




오전 8시 표를 끊고 4번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한국 같이 정시에 출발은 커녕 버스가 도착하지도 않는 경우가 종종있다. 사실은 거의 그랬다. 페낭에서도 쿠알라 룸푸르에서도 말라카에서도... 10~15분 정도 지나서 출발하는 것은 기본이고 때론 좌석을 채우려고 더 늦게 출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말라카 터미널에 도착했다. 길은 괜찮아서 정말 두 시간 만에 도착한 것 같다.


터미널에 있는 짐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가벼운 몸으로 이동한다.



AirAsia 항공기를 타기위해 LCCT로 가야해서 오후6:00 버스를 예약해 뒀다.

하지만 말라카 투어가 빨리 끝나서 2:50 차로 변경했다.


말라카 시내로 들어가려면 17번 버스를 타야한다. 빨간색 버스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개 관광객들이 말라카 관광의 시작점으로 삼는 네덜란트 광장Dutch Square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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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곳곳에 정당 깃발이 과할 정도로 많이 걸려 있어서 총선이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 총선을 두고 시국이 어떻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페낭 세인트 조지 교회에 갔을 때 안내해 주시던 여성 분이 이 번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분은 야당을 지지하는 것 같았으니 그 분의 말은 정권교체를 의미했던 것 같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페낭이 야당색이 짙다고 나온 것을 봤다. 아무튼 페낭에서도 그렇고 쿠알라 룸푸르에 와서도 여행자가 총선과 관련해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5월 4일 자정을 넘겨 투표일인 5일이 되는 순간 호텔 밖에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한두 대가 내는 소리가 아니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 봤더니, 야당 지지자들이 차량에 깃발을 흔들며 행진을 하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오히려 조용해져야 할 시간에 더 시끄러워지는 것을 보곤 갑자기 겁이 덜컥났다. 곧바로 들어와 그제서야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이번 총선에서 정권교체가 점쳐질 정도로 박빙의 승부가 진행 중이었다. 그 만큼 선거와 관련한 사건사고들이 이미 2,000건이나 발생했고, 더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 언론의 보도였다. 더구나 야당의 지도자는 여당이 부정선거만 하지 않으면 야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지금 돌아가는 흐름이 장난이 아니었던 거다. 와~ 이거 내일 쿠알라 룸푸르를 돌아다닐 수나 있겠나 싶고, 이런 중대한 시기에 내가 말레이시아의 수도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여기에 교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대사관의 공지사항을 확인하자 순간 맨붕이 올뻔했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투표는 큰 소요 없이 진행된 것 같고, 열망하던 정권교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50년 넘게 장기집권을 해오고 있는 BN이 권력을 잃지 않았다. 결국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변화라는 것, 어디서든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2013.5.6.



페낭 곳곳에 걸려있는 정당 깃발들, 비가 많이 오는 날씨로 인해 포스터보다는 깃발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자를 화들짝 놀라게 한 야당 지지자들의 차량 행렬이다.



투표 당일 쿠알라 룸푸르 곳곳에 지지자들이 모여 투표를 응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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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알라 룸푸르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최소한 여행자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보통 많이 찾게 되는 주요 포인트들의 위치를 알게 되면 바로 옆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차이나타운 입구



메르데카 광장 건너편 국립 섬유 박물관


메르데카 광장


중앙 시장



차이나 타운을 걷다가 육교 길 몇 개만 건너면 국립모스크가 있고, 

부킷 빈탕을 걷다가 워크웨이라는 긴 육교를 따라가면 수리아 KLCC가 갈 수 있고

마지드 라멕을 지나면 바로 마르데카 광장,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이 있고,

거기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차이나 타운도 있고, 센트럴 마켓도 있다.

그렇게 오가다 고개를 돌려보면 KL타워가 따라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지역 어디엔가에 숙소를 잡으면 굳이 비용 들여가면서 택시나 버스를 타고 다닐 필요도 없다.

LRT나 모노레일을 타도 세 정거장 이상 가는 일도 없다.

예외적으로 바투 동굴에 갈 때는 KTM코뮤터를 타고 일곱 정거장을 가니 그게 제일 길게 타는 노선이 된다.


국립 모스크


스리 마하 마리암만 사원(힌두교)




그렇게 걸으면서 들게 되는 생각 중 압도적인 것이 '다양함'이다.

일단 사람들의 피부색이 다양하다.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 기타 여러 소수 인종들이 모두 말레이시아인으로 살고 있고,

내 앞으로 옆으로 지나다닌다.

이렇게 다양한 인종이 별 문제 없이(1969년에 사건이 있긴 있었다고 함) 살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인종의 다양함으로부터 나온 종교와 그 종교 시설(사원)들의 다양성 또한 놀랍다.

페낭에도 있었지만 말라카에도 있는 조화의 길이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명칭이다.

다양함을 조화로 이끌어낸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지혜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런 다양성을 조화로 이끌 능력이 있는 나라가 앞으로의 시대에 힘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세안의 국가들이 이미 관세를 없애거나 낮추었고 2015년까지 지역통합을 하게 될텐데,

그럴 때 말레이시아의 이런 노하우는 큰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아무튼 이런 말레이시아의 역사적 인종적 배경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말레이시아 왕궁


KL타워


페트로나스 빌딩 아래 분수대 앞 소풍 온 어린이들


어느 도시이든 다른 점과 같은 점을 가지고 있다.

관건은 같아지려고 하기보다 달라지려고 하는 노력에 있는 것 같다.

다른 것이 결국 우리를 규정하는 것 아닐까?

이것은 국가와 한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인에게도 해당된다.

같아지려는, 한 가지 기준에 맞추려는 애씀보다 나를 나로 구분할 수 있는 독특함을 찾고 그것을 발전시켜 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럴 때 도시는 관광객이 알아서 찾아드는 것이고,

개인은 앞으로 나서지 않아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자리에 있게 될 것이다.

백화점, 빌딩들은 똑같은 것들이지만 얼마나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느냐는 능력이다.

어떤 면에서 쿠알라 룸푸르는 어느정도 성공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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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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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마치 나이트라이프를 소개하는 글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보겠다고 일찍 일어나 서둘다 보니 낮에 너무 피곤해서 숙소에 들어와 쉬다가 5시 정도에 다시 나갔다.

이번에는 그 유명한 부킷 빈탕으로 향했다.

쇼핑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저녁을 먹기위한 출발이었다.




낮에 Hope on Hope off Tuor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면서 대충 위치들을 익혀 두었고, 어떤 분위기인지도 파악을 했다.

참, 이 투어버스는 오자마자 아무 것도 모를 때 타기 보다는 약간이라도 방향감각을 갖게 되었을 때 타면 좋을 것 같다. 

주요 지점들이 그냥 걸어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데, 돌고 돌면서 마치 아주 먼 거리인줄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푸두 센트럴 터미널

통신 스트리트에 있는 마사지샵


숙소에서 가면서 어렵지 안하게 통신 스트리트 쪽으로 접어들었다.

처음 보게된 마사지집에 가격이 얼마인지 보다가 마사지사들이 나오는 바람에 그냥 따라 들어갔다.

1시간에 RM40하는 발마사지를 받겠다고 하고 들어갔다.

따듯한 물이 담긴 대야에 발을 담그게 하고는 돌아 앉게 하고는 먼저 어깨를 주무른다. 이상하다. 아무리 발마사지를 하더라도 마무리 할 때 어깨를 주물러주는데... 할 쯤 다른 마사지사가 메뉴판을 가져온다.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이미 발 마사지 한 시간 40링깃짜리 한다고 들어왔는데. 이 사람들 은근히 65링깃하는 어깨, 등, 머리까지 포함되는 것을 하라고 유도한다. 처음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몰라서 오케이했다가, 아닌 것 같아 다시 불러서 40을 가리켰는데, 하는 소리가 '어깨 등 머리까지 받는 것이 좋다'는 말을 반복하는 거다. 아~ 이런 바가지 상술이 있나! 태국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역시 중국계는 뭘해도 다르다. 마사지 숍의 분위기도 완전히 중국풍이고 마사지사들도 거의 중국 말을 쓰는 거다. 아~ 이렇게 화교들이 돈을 버는구나 싶었다. 그러면 안되지만 '귀찮아서' 알았다고 하고 마사지를 계속 받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가냘픈 마사지사 아가씨가 생각했던 것보다 야무지게 마사지를 한다. 발마사지를 받을 때는 몇 번이나 잠이 들었는 지 모른다. 쓸어내리다가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곳을 더 집중적으로 하는 센스. 물론 그럴수록 더 아프지만 시원한 느낌도 드는 것이 사실이니. 암튼 바가지 상술에 넘어가긴 했지만 시원한 마사지로 용서하기로 했다.


스타힐 갤러리


파빌리온




그렇게 마사지를 받고 나오니 거의 7시가 되어 부킷 빈탕의 시작점이고 오늘의 부킷 빈탕을 있게한 파빌리온으로 저녁을 먹으러 이동했다.

파빌리온에서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 말레이시아는 큰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곳 저 곳에 크고 거대한 것들을 잘도 만들어 놓았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백화점부터 저렴한 푸드코트까지 없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그 크기며, 내부 구조가 입이 쩍 벌어졌다.

솔직히 거기서 팔고 있는 것들과 나는 별 관계가 없기에 바로 푸드 리퍼블릭을 찾아 지하로 내려갔다.

와~ 왜 리퍼블릭이라는 말을 붙였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끝이 안 보인다...

배가 고팠으므로 바로 한식당 다온에서 운영한다는 '삼삼'을 찾았다.

그리고 약간 고민을 하다가 가장 무난한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외국 여행 중에는 라면이 가장 그립고, 그 다음으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이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는 아플 때 먹으면 병도 났는 것을 봤다. ㅋㅋ

외국에서 먹을 수 있는 김치찌개로는 이 정도면 됐다 싶을 수준의 딱 그 정도의 맛이었다.

추천을 하라고 하면 할까 말까 살짝 고민을...






파빌리온 안을 대충 돌아보다 나와서 숙소로 갈까 하고 방향을 잡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이름...

페트로나스!

맞다. 그 야경을 꼭 봐야한다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렸더니 타워의 끝부분이 하얗게 빛나고 있는 거다.

가야한다. 꼭 가서 내 눈으로, 내 카메라도 담아오리라. 

작정하고 찾아 가려고 하는데, 지도도 없고, 어느 길로 가야하는 지도 모르겠어서 일단 낮에 버스로 이동했던 길을 더듬거리며 출발을 했다.

파빌리온을 겉으로 돌아 차도를 서너 개를 건너고 땀을 살짝 흘리며 걷고 있는데

이상하게 내가 가는 길 위로 터널처럼 생긴 육교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거다.

출발점은 내가 내려온 파빌리온의 반대쪽이었다.

좀 더 걷다가 올라가는 계단이 있길래 가서 봤더니 안내판에 수리아KLCC도 써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알게 됐다. 파빌리온에서 아쿠아리아 KLCC가 이 워크웨이로 연결되고, 계속 가면 KLCC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글쎄 에어콘도 빵빵하게 나오고 있었다.

아~ 미리 알았으면 편하게 갔을텐데, 숙소에 와서 가이드북을 보니 팁 부분에 잘 안내가 되어 있었다.

아무튼 복잡한 도심 위를 위크웨이로 관통하도록 해 놓은 센스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사지숍에서의 경험을 생각해 보니 이거 혹시 차이니즈들의 발상이 아닐까 의심이 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다시금 마주한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공원에서는 음악에 맞춰 형형색색의 물줄기를 쏘아 올리는 분수 쇼가 벌어지고 있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분수 주변에 앉아서 물과 빛의 향연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 여기는 밤이 더 좋구나!!!

오전에 타워 관람 매표대에서 앞에 선 서양인 부부가 저녁 7시 것을 끊는 것을 보고 살짝 고민을 했었는데,

이 시간에 올라가면 낮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아래에서 이 거룩한(여기다 붙이면 안 되는 줄 알지만...) 빛에 감싸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황홀하고 만족스러웠다.


쿠알라 룸푸르는 밤이 더 좋아!


수리아 KLCC지하 로띠보이에서 빵과 번을 사들고 LRT를 타고 세 정거장 마지드 자멕 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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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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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돈벌이를 위해 관광산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물론 어떤 나라는 아무리 해도 전반적인 분위기가 조성이 안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한국이 그런 것 같다.

반면 동남아나 유럽을 보면 관광이 그 나라를 먹여살리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 곳에 가보면 관광객들이 주요 포인트를 이동할 때 전혀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내국인들이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을 정도이다.


몇 곳을 돌아다니면서 그 나라가 주력으로 팔고 있는 관광상품의 유형이 좀 나오는 것 같다.


첫번째는 짧게는 몇 십년에서 길게는 수십 수세기 전의 유적을 파는 경우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나 태국의 아유타야,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이 수 백 수 천 년 전의 유적이 그렇고,

태국 콰이강의 다리나 캄보디아 킬링필드, 베트남의 구찌 터널 같이 100년 내에 지어진 것들도 그렇다.

이 곳들은 오늘날에는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


두번째는 과거의 것이지만 오늘도 사용하고 있는 경우이다.

예를들어 라오스의 루앙푸라방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인데, 여전히 사찰들이 운영되고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과 게스트하우스들이 활성화되어 있다.

이는 페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각 종교의 사원들이 여전히 기도와 예배를 위해 사용되고 있어서

때때로 여행자들이 들어가기 머뭇거려지 지기도 한다.

이런 곳들은 오늘의 사람을 위해 과거의 유물을 어디까지 바꿀 것인가 딜레마가 존재한다.


세번째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장소로, 사용여부나 시기로 구분하기는 어려운 곳들이다.

가보진 않았지만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나 5대호, 터키의 갑바도기아나 파묵칼레 같이 대부분의 섬과 비치, 산들이 이런 유에 속할 것이다.

아마도 이런 곳들은 또다시 자연적인 변화가 있지 않는한 거의 영구적으로 돈을 벌어주는 효자노릇을 할 것이다.


네번째는 오늘날에 와서 만들어진 건물이나 지역이 명소가 되는 경우이다.

각 도시마다 높게 솟아 있는 타워들이 그렇고, 고난도의 건축기술이 필요한 건설-토목공사로 만들어진 건출물들이 그렇다.

말레이시아를 놓고 보면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들 수 있겠다.

(오늘 페트로나스 빌딩을 얘기하려고 이렇게 장황한 도입을 하고 있다.)


첫번째와 세번째의 경우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어찌할 수 없고,

두번째와 네번째의 경우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가변적일 수 있겠다.

사실 쿠알라룸푸르에 오면서 다른 것을 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쌍둥이 빌딩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다른 곳, 차이나타운, 사원들, 시장, 쇼핑센터는 가보면 솔찍한 심정으로 거기서 거기고 다리만 아프다.

물론 섬세한 차이점들을 발견하는 재능이 있거나, 다양한 먹거리나 쇼핑거리를 찾는 사람이라면 다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쿠알라 룸푸르에 들어오면서 멀리 트윈 타워가 눈에 들어오자, 마치 그리스에 갔을 때 아테네 시내로 접어들며 아크로폴리스 위의 파르테논 신전을 발견했을 때 그 두근거림이 그대로 느껴졌다.

자연이 이루어낸 작품들도 볼 때 감동을 주고, 과거의 건출물들이 경탄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건축물 또한 큰 감명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페트로나스 빌딩을 보고 알게됐다.







아침 8:30부터 스카이브리지와 86층 전망대에 올라가는 표를 판다고 해서 8:00에 서둘러 나갔다.

40분 정도에 도착했는데 벌써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가장 빠른 시간이 10:15이었다. 입장료는 RM80(약 32,000원)이다. 악!

표를 끊고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수리아KLCC 이곳 저곳을 둘러봤다.

토요일이어서 많이 붐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한산한 편이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고, 공항 디파쳐 게이트 못지 않은 꼼꼼한 검색대를 통과해 입장을 했다.

엘리베이터 사이즈에 딱 맞는 숫자의 인원이 같은 색의 명찰을 걸고 함께 이동한다.

스카이브리지에서 15분, 전망대에서 20분 이동하는데 10분 잡아서 45분 정도 관람한 것 같다.

사실 안에서 찍는 사진은 그리 멋이 있지 않다.

웅장하고 기묘한 건물의 외부를 배경으로 찍는 사진이 압권인 것 같다.

그럼에도 그 건물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과 2번 타워에서 1번 타워를 보면서 느끼는 감동은 정말...

감동의 핵심은 이렇게 큰 건물을 설계한 것도 대단하고, 그 설계대로 작은 볼트 하나에서 커다란 철제들까지 정말 한치의 오차도 없이(있었을 것 같지만) 이어맞출 수 있었는 지 입이 쩍 벌어진다.

그래서 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에 올라와서 멀리 바라보는 것보다 바로 유리창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의 외벽이 더 신기하고 기막힌 볼거리였다.










여기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는데,

지금 쿠알라 룸푸르를 넘어 말레이시아 전체를 통틀어서 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관광의 중심에 이 건물을 놓고 있다. 

주변에 있는 관광지에서는 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가 중요한 입지 조건이라고 한다.

그런제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이 정말 말레이시아의 것일까?

미국사람이 설계하고, 한국과 일본이 하나씩 세운 것이다.

물론 자본은 말레이시아에서 나왔잖느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돈문제 때문에 단군이래 최대 사업이라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도 좌초했으니.

아무튼 여기 쿠알라 룸푸르의 중심에 서 있으니 그들의 것이고 그들의 자랑이고 그들의 관광자원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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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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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알라 룸푸르 숙소 Hotel Happy Holiday

쿠알라 룸푸르 푸두 터미널에 4시에 도착했고, 숙소에 도착하니 5시가 좀 못되었다.

숙소 자체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복이 터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쿠알라 룸푸르 대중교통의 중심인 KL 센트럴 다음가는 곳인 마지드 자멕 역 코앞에 숙소가 있는 것이다.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고다에서 잡은 것인데, 감동에 감동이다. 1층에는 커피숍, 세븐 일레븐, 버거킹이 있고, 길 건너에는 맥도날드도 보인다.

여행을 하면서 가능한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이 원칙이지만 늘 그럴 수만은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버거킹도 얼마나 반가운 지 모른다.

더구나 태국보다 많이 부족하지만(이상한 점) 세븐 일레븐도 바로 호텔 로비 옆에 있으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KTM Komuter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지도 않고 바로 첫번째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바로 '바투 케이브(동굴)'이다.

LRT 마지드 자멕 역에서 KL 센트럴 역으로 가서 KTM Komuter Sentul Line으로 갈아탄다.

KL센트럴 역은 정신없기가 장난이 아니다. 

서울역보다도 작은 공간인 것 같은데 몇 개의 노선이 교차하는 지, 거기다 공항버스와 택시까지 연계되어 있다고 안내를 하고 있다.

암튼 내가 타고온 LRT 라인과 바트 동굴로 가는 KTM라인은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표 끊는 시간만 없다면 곧바로 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아쉬운 것은 장기권이야 연계가 되어 있는 것 같은데, 1회용의 경우는 연계해서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BRT와 MRT의 역이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아 환승의 의미가 없었던 방콕보다는 낫지만,

티켓 사정은 매한가지였다. 그런 불편을 모두 느낄텐데 왜 개선하지 않는 것일까.

(KL센트럴 사진, 또 열차 티켓 두 가지 사진)


바투 동굴로 가는 열차는 정말 천천히 갔다. 

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이 계속 보여서 신기해 하고 있을 즈음 밖이 어두워지더니 빗방울이 열차 유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뭐 많이 올까 했는데, 점점 굵어지는 거다. 아이고 이러면 안되는데...


바투 케이브 역 도착



바투 동굴 역에 내렸는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역을 떠나지 못하고 빗방울이 잦아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바로 왼편 사원에 거대한 푸르둥둥한 원숭이 영웅하누만 상이 인상적이었다.

아~ 저기 거대한 무르간 상도 보이는데,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쿠알라 룸푸르에 머무는 날 수는 4일이지만 오늘도 좀 있으면 다 가고 내일은 토요일, 모레는 일요일인데 투표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주말과 투표가 있는 일요일이 얼마나 정신없이 지나갈까. 그리고 마지막 월요일은 말라카에 갔다가 바로 공항으로 가야한다. 그러니 다시 바투 케이브로 올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런 생각의 줄다리기가 오가고 있을 때, 비가 약간 잦아든 느낌이었다. 물론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 다시 올 수 없을 지도 모르니 비가 나를 막을 수는 없지.

가방 꼭 붙들고 뛰었다. 일단 거대한 황금 무르간 앞까지. 


황금색 거대한 무르간


와~ 탄성이 나오는 거대한 크기. 42.7m가 그냥 큰 정도가 아니었다. 

저런걸 하나 떡 하니 세워두니 이 곳이 완전 업그레이드됐을 것은 뻔한 거다.

사실 그 옆에 계단이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데, 272개의 계단이면 작은 규모가 아닌데 무르간 덕분에 별거 아닌 것으로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비 때문에 서둘러 오르다가 숨차서 죽을뻔 했다.

세 개로 구분되어 있는 계단은 과거에 지은 죄, 현재 지은 죄, 미래에 지은 죄를 각각 오르고 내리며 참회하라는 뜻으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이 바투 동굴 투어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계단을 오르는 것까지가 아닐까 싶다.


동굴 내부




동굴은 거대하고 또 아름다운(?)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렇게 확 다가오지는 않았다.

힌두교 신자들이 기도를 할 수 있는 사원이 있는데 그 규모도 작고 동굴과 조화를 이루고 있지도 못하다.

비가 오는 저녁에 봐서 그런지 최소한 내 느낌은 그랬다.

비만 안 왔어도 계단을 천천히 오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텐데 참 아쉽다.


바투 동굴 후기

비는 어떻게 됐을까?

점점 더 내려서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곳곳에 물웅덩이가 만들어졌고, 하나 있던 우산파는 가게도 문을 닫아버렸다.

겨우 편의점까지 달려가서 허기를 달래고는 문 앞에 서서 또다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지만 전혀 그럴 기미가 안보였다. 

그래서 신발 벗어 들고 가방 끌어 안고 기차역까지 달렸다. 와 이건 비를 향해서 달리는 것이었다.

내리는 모든 물줄기가 다 나에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비맞은 생쥐꼴로 어설픈 자세로 열차 안에 앉아 에어컨 바람에 옷과 머리를 말리며 다시 온 길을 거꾸로 돌아왔다.


바투 동굴 관광을 한 것이 아니라 쿠알라 룸푸르의 우기를 보고왔다.

비가 쏟아질 때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어쩔 수 없으면 맞으면 된다.

그 비도 그칠 때가 있을 것이고, 흠뻑 젖은 옷과 몸은 다시 몸의 열과 바람에 마르게 될 것이다.

비가 온다고 불평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잘 피했다고 너무 기뻐하지도 말자.

지금 보는 것, 지금 가진 것, 지금 상황은 내 소망과 예측대로 계속되지 않을테니까.

그저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개이면 말리면 된다.

이것이 땅에 발을 딛고 빗방울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인간의 길이 아닐까.



빗물에 흠뻑 젖은 운동화에서

코를 댈 수 없을 만큼 악취가 나서

바로 요걸 구입해 사용했는데

정말 효과 만점이었다는...

하얀 부분을 운동화에 깔창에 대고

누르면 운동화 안쪽까지 분사가 되서

사용하기도 정말 편리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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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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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에서 쿠알라 룸푸르 가기


늘 긴장되는 것이 이동하는 일이다.

자유여행을 할 때, 스스로 찾아 다니며 예약하고 승하차하는 과정은 여간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 아니다.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게 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었기에 부족한 준비로 더 애를 태웠다.


페낭에 온 것도 신기한데, 이제는 수도 쿠알라 룸푸르까지... 대단한 여정이다.

페낭과 다른 도시를 연결하는 터미널이 숭아이 니봉 터미널이다.

다른 곳을 여행할 때는 항상 먼저 답사하고, 예매도 했었다.

페낭에서는 주로 이동하는 길에 터미널이 위치하지 않아 인연이 닿지를 않았다.

올 때는 조지타운으로 바로 왔고, 중간에 갔다올 짬이 나지 않았다.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예기치 않은 사람에게서 터미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정보를 얻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인도계 말레이시아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처음엔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이 사람의 정체는 다른 게스트 하우스를 홍보하기 위해 살짝 들린 사람이었다.

자신의 게스트 하우스를 아는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하면서,

쿠알라 룸푸르로 가는 방법을 꼼꼼하게 일러줬다.

쿠알라 룸푸르로 갈려면 우선 게스트하우스에서 예매하지 말란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RM40을 받지만, 콤타에 가면 RM30이면 된단다.

 

콤타는 시내버스들이 통과하는 터미널인데, 쿠알라 룸푸르로 가는 버스도 있나?

의구심이 들었지만 페낭힐을 가는 길에 콤타에서 장거리 버스회사 사무실들을 확인했다. 

정확히 말하면 콤타에 있는 여행사 사무실에서 예매를 하면, 콤타에서 승객을 태운 버스가 숭아이 니봉 터미널로 가고,

그 버스 그대도 갈 수도 있고, 여정이 다를 경우 다른 버스로 옮겨타고 가게 된다고.

아~ 참 편리하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 다른 점은 버스티켓이 RM30이 아니라 35였다는 것.


5월 3일 오전 11시 버스인데, 콤타에 30분 일찍 나오라고 해서 시간 맞춰갔다.

나 말고도 네 명이 더 있었고, 터미널까지 실어다 준 버스는 말라카행 버스였다.

버스를 옮겨타고 인원 점검을 하고 출발하니 11시 10분 쯤이었다.

 

가이드북이나 인터넷 여행기에 보면 네 시간 걸린다고 되어 있고, 사무실에서는 5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이체하고 쉰 시간을 빼면 네 시간 걸렸다.

에누리 없이 오후 4시에 쿠알라 룸푸르 푸두 센트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계산해 보면 10분 늦게 출발했고, 중간에 40분 쉬고, 푸드 센트럴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몇 명 내려주느라 돌고. 그런 것 생각해 보면 네 시간 걸리는 것이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 같으면 네 시간은 쉬지도 않고 갔을텐데.


이미 핫야이에서 말레이시아 넘어올 때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말레이시아의 고속도로, 도로는 정말 잘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일단 현대건설이 만든 페낭과 버터워스를 잇는 다리부터 시작해서 고속도로는 정말 한국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어떤 구간은 더 잘 정비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휴게소였다. 이게 휴게소인지 주차장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곳에 서더니 40분이나 쉰다.

화장실은 저 멀리 언덕 위에 있고, 길거리 간식거리 파는 부스 세 개 정도 있는 데 거기에 

과일과 빵 종류와 스넥, 음료가 조금 있을 뿐이었다.

아직 이런 부분에서는 발달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인터넷 글들에 보면 푸드 센트럴에서 말레이시아의 모든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써 놓은 것을 봤는데, 그렇진 않아 보였다. 주로 북쪽으로 가는 버스들이 오가고,

말라카 같은 곳은 반다르 타식 셀라탄 역에서 연결되는 TBS에서 갈 수 있다.


20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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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모험을 즐기지 않는 여행자의 페낭 먹거리 이야기 ㅋㅋ

2013.4.30~5.2.


대체로 가이드북을 보면 그 나라나 지방의 음식을 소개하며 '맛있다', '꼭 먹어봐라'하면서 '거기'를 정해준다. 꼭 봐야 하는 곳과 함께 꼭 거기서 먹어야한다는 말이 얼마나 마음을 사로잡는 지 모른다. 그래서 점심 때, 저녁 때가 되면 약간은 긴장하면서 그 곳을 찾게 된다. 관광명소에 비해 식당은 찾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보통 관광지에 가면 두어 곳 먹어보고 입에 맞는 곳이 있으면 그 곳을 중심으로 가게 된다. 먹을려고 여행하는 것은 아니니 모험을 하긴 싫고, 또 경제적인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페낭에 와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푸드코트가 많고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태국에서도 몇 곳을 경험하긴 했지만 이렇게 다양한 메뉴에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또 특징은 굉장히 저렴하다는 것이다. 보통 식당들에서 MR10(태국 100밧, 한화 약 3,500원)이면 저렴한 편인데, 푸드코트에서는 MR5를 넘으면 비싼 메뉴에 속한다.


에스플러네이드 푸드코트 - 조지타운 북쪽 해안가 위치



숙소에서 가깝고 저렴해서 첫째날과 둘째날 저녁을 해결했다. 첫 날엔 차퀘티아우 집에서 미고랭을 MR4를 주고 먹었고, 둘째 날엔 겁없이 페낭 락사를 MR3.5를 주고 먹었다. 조금 비릿했지만 못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가격이 착하다보니 서비스가 어떻고, 양이 어떻고, 분위기가 어떻고 따질 필요가 없다. 아쉬운 것은 혼자라서 한 가지 메뉴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럿이면 꼭 눈에 띄는 여러 메뉴를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과일을 잔뜩 싣고 깎아 잘라 담아 파는 자동차 노점상이 있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수박, 자두, 사과 등을 사들고 밤에도 먹고 아침에도 먹었다. 조지타운에 머문다면 이 푸드코트만 가도 식사는 별 문제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문제는 가이드북에서 최고, 인기있는 곳이라는 표현을 따라 갔을 때, 전혀 동의가 안되는 경우도 종종, 아니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음식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작용하는 것 같다. 특히 나에게 있어서 동남아 음식은 태국이든 라오스든 말레이시아든 간에 조금 어렵다. 그 맛도 그렇거니와 길거리에서 조리해서 담아내는 그 과정이 썩 마음이 가지 않는다.

사실 가장 어려운 점은 그 맛이다.


Maj 무슬림 레스토랑 - Ah Quee스트리트에 위치


찾기 쉬운 위치에 있는데 약간 헤매면서 더 기대가 되었던 로컬 식당이었다. 페낭에서 로티 차파티 2대 맛집이라는 말에 더욱 끌려서 약간은 주린 배를 참으며 포기하지 않고 결국 찾아냈다. 정말 허름하기도 하고, 인도사람이 운영하는 식당 사람들이 모두 남자들이어서 그런지 일하는 것이 어설퍼 보이기도 했다. 어렵게 주문을 하고 내가 다 받아 들고 자리로 왔다. 맨밥에 해산물이 든 커리를 붓고, 차파티 두 장을 곁들여 먹었다. 음~ 솔찍히 먹기 힘들었다. 차파티는 그냥 밀가루로 구운 부드러운 난이라고 할까? 난에 비해 밀가루 향이 더 났다. 커리는 내 입에는 좀 강했다. 맵고 감칠맛은 없는...

이런 것이 개인차인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겐 별미가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겐 약간 고역이 될 수는 있는... 그런데 재미있었던 것은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계산할 때 '서울 코리아 얼마죠?' 하고 서로 묻는 거다.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며 미소짓는 점원들이 있어 정이 들뻔 했던 식당이다.


산토리니 - 튠 호텔 근처에 위치

젊은 층을 겨냥했고, 깔끔하고, 착한 가격이라는 말에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생각해 보니 내가 젊은 층은 아닌데 착각을 한 것 같다. ㅋㅋ 점심에는 메뉴에 MR2만 추가하면 음료와 아이스크림이 함께 나와서 더욱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림만 보고 맛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킨 내 실수... 메뉴 이름은 생각이 안나는데 라면 면발 같은 것은 태국의 팟타이처럼 볶고 거기에 튀긴 치킨 조각들을 더한 것이다. 그림도 그렇고 느낌상으로도 맛있을 것이 뻔한 메뉴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 치킨은 치킨 맛인데, 볶은 면이 아무 맛도 안나는 거다. 다 먹고서는 케첩이라도 달라고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암튼 외국에 나와서는 그림만으로는 맛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단, 아이스 초코는 맛있었다.


두둥 두둥!

거니 드라이브 - 거니플라자를 통과해서 해변길로 나가 왼쪽으로 30~40미터

페리 터미널 앞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서 103번 버스를 타고 갔다.


아직 시간이 이른지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는다.




페낭에서, 아니 말레이시아 전체에서 음식으로 정평이 자자한 곳, 거니 드라이브를 버스 103번을 타고 갔다. 버스는 RM2 정도 할 줄 알았는데, RM1.4라서 가깝다는 것을 직감했다. 가이드북에 '거니 플라자 옆에 위치'라고 되어 있어서 그 옆을 찾느라 더운날 땀좀 흘렸다. 규모면에서 다른 푸드코트에 비해 크고 좀 더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내가 갔을 때는 시작하는 시간이라 막 문을 열고있는 집도 많았고, 빈자리도 꾀 많았다.

계속 국수를 먹었던 터라 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서 돌아보다 튀김 종류를 쌓아 놓고 골라 주면 썰어서 소스를 뿌려주는 음식(이름이 뭐더라)에 꽂혔다. 에스플러네이드에서 가장 눈길이 갔었기 때문에 거니 드라이브에서 맛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음식점을 잘못 선택한 것인지... 맛이 뭐라 할까... 정확히 표현해서 내 입에 안 맞았다. 그렇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데 다른 메뉴를 먹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음식에 대한 판단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 아무리 말레이시아의 내로라 하는 곳이라 해도 난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내 입맛이 너무 한국적 음식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 동남아시아에서 얼마간 더 머물 것인데,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로 몇 차례의 도전을 해보겠지만, 음식에 대해서 내가 좀 너무 까다롭게 구는 것 같다.



>>말레이시아가 음식 값이 싸다?


가 본 곳이 몇 곳 없어서 라오스와 말레이시아를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루앙프라방과 페낭이 비교된다. 뭐라고 할까, 여행자로서 가장 피부로 다가오는 것이 밥값이다. 라오스의 도시 루앙프라방과 열 배는 잘 사는 말레이시아 페낭 중에 어디서 더 밥값이 저렴할까. 답은 페낭이 더 저렴하다는 것이다. 이유를 따져보면 식자제의 거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라오스에서는 음식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루앙프라방에서는 보통 3,200원 정도만 되도 싼 편에 속했는데, 페낭에서는 1,600원짜리 식사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라오스에서는 관광지가 형성이 될 때 일어난 현상은 그 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 소외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루앙프라방이나 왕위앙(방비엥)의 관광지는 현지인들이 먹고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모두 외곽으로 이동해서 그들을 위한 로컬식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태국도 그렇고 말레이시아는 비록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고 모든 것이 외국인들을 위한 것으로 맞추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현지인들을 위한 인프라는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로컬 식당들이 존재하고,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들에게 효자노릇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경제력과 관련이 있어보인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관광지로 개발이 될 때 그 빠른 변화에 적응하고 맞추어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을 때는 말레이시아처럼 로컬 문화도 함께 살아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때는 라오스처럼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라오스의 경우 사람이 좋다고 하는데, 관광지를 중심으로 여행할 경우엔 그 좋은 사람들의 표정을 만날 수 없다. 모두 여행자를 상대하면 살아남은 사람들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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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시내버스로 여행하기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의 다른 나라들보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경제력의 차이인것 같다.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넘어 오면서도 느꼈지만 일단 도로가 잘 닦여 있고, 페낭의 경운 시내버스가 잘 운영되고 있었다. 버스 번호와 노선만 잘 알면 페낭의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켁록시나 페낭힐은 물론 거니 드라이브를 갈 때도 시내버스로 이동했다.


켁록시 사원, 극락사

거의 모든 시내버스가 콤타 버스 터미널을 경유한다. 


켁록시에 가면서 처음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기사가 일일이 표를 끊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원을 오르며 내려다본 페낭 도심.



켁록시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이다. 절에 갈 때 느끼는 것이지만, 절에서 형상화된 인물이나 동물들이 힌두교와 묘하게 오버랩된다는 것이다. 불교는 힌두교와는 많이 다르지만 인도라는 같은 토양에서 태동했고, 또 후발주자이기에 불교가 힌두교의 상징들을 차용한 것 같다. 켁록시 사원은 더더욱 혼합되어 있다는 것이 부쩍 더 눈에 띄었다. 규모면에서 보면 상상초월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큰 감흥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사원들이 작지만 단아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고 있는 나에겐 더욱 그랬다.

저기 가운데 앉아 계신 부처님은 왜 팔이 저리 많은 것일까. 같은 대답이다. 인도라는 배경과 여러 지역을 지나며 팔 뿐만 아니라 다양한 덧붙임이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다. 그런 것들을 잘 살펴보면 종교에 인간의 근본적이고 다양한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깨달은 자 고타마 싯다르타 하나로는 부족하다. 관음보살, 지장보살, 무슨무슨 보살, 금강역사 등등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있어야 중생들을 절로 불러들이고 절에 묶어 놓을 수 있는 거다.

종교의 속성으로 본다면 기독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 히브리문화가 헬라·로마문화를 만났고, 또 로마주변 민족들의 토착문화들과 섞였다. 별도 중요하고, 태양도 중요해지고, 성탄절이 필요해지고, 마리아도 천사도 성자도 필요했다. 심지어 정치적 구조까지 가져와 교황도 만들어냈다.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려고 프로테스탄트(개신교)가 등장했지만,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역시 다시금 사람들의 욕망에 편승해 그들의 구미에 맞는 것들로 교회를 치장하고 있다.

켁록시 사원을 보며 느끼는 이물감이 오늘 한국 교회들 가운데서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슬픔 크고, 아픔이 크다. 21세기에 종교를 어떻게 다시 정의하느냐가 중대한 숙제가 아닐까.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종교성 강한 나라들 한 가운데서 더욱 종교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왤까.


페낭힐에서 바라본 페낭


823m 페낭힐 정상까지 관광객을 싣고나르는 모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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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도보여행 2 - 역사와 종교


콴인텡 사원, 관음사


관음보살을 모신 사원이라고 하는데, 어떤 것이 관음보살인지 도통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는 사찰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한쪽은 기름 같은 것들이 더러운 통에 담겨 쌓여 있고, 흘려내려 찌들어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다른 쪽도 정신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불결하고 무질서한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향을 하나 둘도 아니고 한 움큼씩 들고서 불을 붙여 흔들며 옮기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저런 잡다한 문화들이 혼합된 혼합불교라고 해야할까. 신심이 느껴지지 보다는 의아함이 느껴질 뿐이다.


스리 미리암만 사원


힌두교 사원은 형형색색으로 치장되어 언듯보고서 (좀 생뚱맞지만) 유치원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긴 하지만 들어가고 나오는 데 있어서 정말 마음이 편했다. 힌두교 자체가 모든 것을 흡수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특별한 경계심을 갖지 않는 분위기였다. 사제인지 신도인지 웃통을 벗은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이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해서 갔더니, 파라핀 조각으로 불을 피우고 하얀재를 내 이마에 바르고는 돈을 내라고 했다. 그래서 1링깃을 줬더니 오케이 하면서 사라졌다. 

어쩌면 이렇게도 상상력이 풍부할까? 앙코르 와트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조금 봤다고 몇 가지 그림이나 부조들이 뭔지도 알겠는데, 정말 다양한 신들과 이야기들을 생산해 낸 인도사람들의 종교성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카피탄 클링 모스크


1801년에 세워졌다고 하니, 이 역시 2세기가 넘은 사원이다. 이름의 유래나 페낭에서 그 위치에 대해 전이해를 갖고 갔는데, 그 규모나 분위기에 약간은 김이 빠졌다. 일단 더운 나라의 모스크여서 정면을 제외한 세 방향이 모두 오픈되어 있어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카자흐스탄의 모스크에서 느꼈던 그 경건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카자흐스탄은 추운 나라라서 사방을 막아 어두운 채광으로 자연스럽게 엄숙한 분위기가 만들었던 것 같다. 모스크에 들어가며 저절로 기도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서 그랬고, 덧입은 옷에서 냄새가 많이 나서 또한 비호감이었던 것 같다. 


쿠콩시/ 입장료 10링깃



원래 순서상으로 얍콩시를 먼저 갔어야 하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쿠콩시를 먼저 가게 되었다. 중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가문의 결속을 다지고 외부로 힘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개인적 사원이다. 가문의 조상들을 모시고, 그 조상을 신격화해 신앙화의 단계로 끌어올린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일년에 한두번 상을 차리고 제사지내는 정도가 아닌 아예 사원을 만들어서 가문의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로까지 견고한 터를 다지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이 종교가 되고, 다시 권력을 공유하고, 또 재산을 유지하고 늘려가는 공동운명체로 발전해 간 것이다. 

그들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과거의 조상들일까, 아니면 그 조상들을 중심으로 모이는 오늘의 구성원들일까. 조상의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또 그들의 유지를 대변한다고 하는 이들로 인해 조상은 힘을 쓰게 될 것이다. 


쑨얏센 박물관


처음엔 쑨얏센이라는 이름이 생소해서 지나쳐 갔다가, 그 이름이 우리 식으로 쑨원이라는 것을 알고는 다시 방문했다. 중국의 청나라의 간판을 내린 장본인이 아닌가. 바로 이 곳 페낭에서 그런 대업을 이루는 기반을 다졌다니 감격의 현장이었다. 원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깊숙한 곳까지 보고 나오는 곳인데, 입구에 아무도 없어서 로비에서 조금 더 들어가 뚤린 천정으로 하늘이 보이는 정원에서 돌아 나왔다. 꼭 내부를 꼼꼼하게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쑨원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았다는 것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우리 나라 독립운동가들도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활동을 했는데, 이렇게 잘 보존하고 관리되었으면 좋겠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여러 곳이 방치되고 있는 것을 보고 많이 실망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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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도보여행 1 - 역사와 종교

2013.5.1.

가이드북이 제안하는 페낭 조지타운 도보여행을 그대로 따라가보았다. 콘 윌리스 요새 - 퀸 빅토이라 시계탑 -  세인트 조지 교회 - 페낭 박물관 - 콴인텡 사원 - 스리 미이람만 사원 - 카피탄 클링 모스크 - 얍 콩시 - 쑨얏센 박물관 - 쿠 콩시. 만만치 않은 코스지만 오전에 완주하고 얍 콩시 근처에 있는 로컬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발걸음을 제촉했다.

일단 이 코스의 특징은 역사성에 다양성이 더해진 점이다. 역사성은 페낭이 어떻게 세계 역사 가운데 주목을 받고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해 왔는지 다양한 역사 유적들을 통해, 다양성은 불교, 힌두교, 기독교(성공회, 가톨릭), 이슬람교, 조상숭배(?) 등 여러 종교의 사원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콘 윌리스 요새/ 입장료 2링깃


그 옛날 그 먼 곳 유럽의 열강들이 이 곳까지 와서 힘자랑을 했다는 것이 참 놀랍다. 남아프리카를 돌아서 오는 항해길도 만만치 않았겠다. 남의 땅의 좋은 곳들을 차지하고 1세기 이상 주인행세를 하고서도 자신들이 신사라 하고, 세계의 평화와 질서 운운하는 말들이 정말 가소롭게 느껴진다. 오늘날엔 그들의 흔적이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 되고 외화벌이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도 일본인들이 지었던 건물들을 더 많이 보존했다면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까. 만약 일본이 아니고 서구의 어떤 나라였으면 상황이 좀 달랐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 민족 정서 속에 깔린 사대주의가 일본에게는 반대로 작용하는 것 같다. 물론 일본문화가 남아 있고 향수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고, 그 때로부터 청산되지 않은 인적, 물적 문제들은 있지만...


퀸 빅토리아 시계탑

소개 책자에는 이 시계탐이 페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건축물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왜 이것이 그렇게 유명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별로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냥 하얀색의 시계탑인데 뭐가 특별한 건진 잘 모르겠다. 한 중국인 거부가 빅토리아여왕에게 헌정한 것이고, 또 여왕이 행차를 하려다가 불발되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그 옛날(1897년 완공) 거의 이층 건물이 주를 이루고, 관공서가 3,4층 일 때 이 시계탑은 충분히 페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었을 것도 같다. 그래서 이 시계탑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내일 시계탑 앞에서 보자'라든가, '당신을 향한 사랑은 저 시계탑처럼 변치 않을 거야'라든가, 페낭의 사람들에게 시계탑은 삶의 중심에 있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한가지 아쉬움은 시계탑이 있는 거리 맞은 편에 너무도 큰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안그래도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작은 시계탑이 더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이런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경우들 종종있다. 사실 한국에는 이런 일이 더 많지 않은가. 


시청


세인트 조지 교회(영국 성공회)

1818년에 지어진 성공회 교회이다. 내부를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해서 갔는데, 미사가 끝나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했다. 겉에서 정말 넓은 정원과 하얀 외관을 감격스러운 시선을 보는 것으로도 사실은 충분히 감명을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도 '알파 코스'를 하는 것이다. 맞다. 알파코스는 영국 성공회에서 만든 것이니, 오히려 한국 개신교에서 하고 있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라 해야겠다. 

지금 이 교회가 페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역사적 유물과 소수의 신자들의 예배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처음 이 교회가 세워진 2세기 전의 상황은 어땠을까. 사실 콘 윌리스 요새에도 작은 예배당이 있었다. 내부는 텅 비어있었고, 전혀 관리되고 있지 않는 모습이었다. 마찬가지로 그 교회나 이 교회나 영국이 페낭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은 같은 것이기에 둘을 보면서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와 기독교는 어떤 관계였을까. 역사적인 자료를 보면 선교사가 먼저가서 희생을 당했을 때 그것을 명분으로 군대가 들어왔고, 군대가 들어오면 그 뒤를 따라 또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했다. 

종교, 특히 기독교는 사랑과 평화를 말하지만 과정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약자들을 죽이고, 지배하는 과정에 힘을 주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지배자의 종교로서 피지배자들을 개종시키는 과정이 뒤따랐다.


페낭 박물관/ 입장료 1링깃


영국이 지배하기 전에는 페낭의 역사가 없었던듯하다. 그 때부터 페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자료들은 꽤 자세하게 남아있는데, 그 전의 것은 전시되어 있지 않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첫번째 방에서 보여주고 있는 말레이시아, 특히 페낭을 구성하는 인종이다. 지금의 인도네시아 쪽에서 건너온 말레이 인종, 중국에서 이주해 온 중국 인종, 인도에서 건너온 인도 인종이 주를 이루고, 아르메니안, 타이, 다양한 혼혈 인종들에 심지어 일본까지 정말 다양한 인종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곳이 말레이시아이다. 길을 걸을 때도 인도사람, 중국사람, 아랍사람, 태국사람, 서양사람 등 다양한 사람을 보게 된다. 그들이 모두 말레이시아 사람들이다. 

관광지를 다닐 때도 그들이 하는 말을 가까이서 듣지 않으면 현지인인지 관광객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 다양한 인종 가운데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낸 인종이 중국사람들이고 그들의 자취가 박물관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그들이 살던 주거 형태나 가제도구들이 그대로 복원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화인들을 정착하지 못하게 했던 한국인의 배타성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 같다.


패리나칸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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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사람들


라오스는 산 아니면 강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산과 강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그래서 도시에서 도시를 이동하려면 배를 타고 강으로 이동하던, 아니면 자동차로 산마루로 난 길로 이동해야 한다. 보통 길은 산 중턱이나 물길 옆으로 마을들이 있는 곳을 이어서 낸다. 그런데 라오스의 길은 산마루를 이어 오르락 내리락 한다. 버스가 오르막을 달릴 때도 겁이 나지만, 내리막을 달릴 때는 혹시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자를 붙들게 된다. 아마도 화전을 하며 살아가는 산족들의 마을들을 연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산에 길을 낸 것이 아닌지. 아니면 워낙 산세가 높고 깊어서 계곡에 가깝게 길을 내는 것이 불가능 했던 것일까. 4월이면 깍아지른듯한 산비탈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위 사진은 두번째 방문한 6월에 찍은 사진). 불을 질러 밭을 만들어 다년생의 바나나 나무를 기르고, 일년생 옥수수나 찹쌀을 재배한다고 한다. 재대로 서 있을 수도 없을 것 같은 곳에 오가며 화전을 일구는 이들의 삶이 기구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낭만적이기도 하다. 



루앙프라방 남부터미널.

하루 전날 가서 예매를 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숙소 시내에 있는 여행사에서 예약을 해도 될 것 같은데, 약간의 변수는 있다.

오히려 여행사에서 가격이 저렴할 수도 있는데, 어떤 차를 타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ㅎㅎ



VIP버스는 맞는데, 한 때 어디선가 그랬다는 뜻이다. 라오스의 버스들은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 중고차이다. 그 중 많은 차가 한국에서 들어온 현대차이다. 스타렉스와 버스류가 주를 이루는데, 한 때 그 중고차 수입 때문에 현대차가 라오스를 주름잡았다고 한다. 아쉽게도 법이 바뀌어서 중고차가 더는 들어가지 못해 중국산 신차나 일본산 자동차가 맹렬히 추격해 오고 있다고 한다.


불을 놓아 연기가 솟고 있는 야산.


이 사진과 아래 사진은 6월의 풍경이다. 대기가 맑아졌고, 산과 계곡도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그래도 곳곳의 경작지는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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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이 라오스의 제일가는 관광도시 루앙프라방에 와서 어떤 느낌을 받을까? 자신들의 지배로 사찰을 제외하고 라오스의 전통은 사라지고, 유럽의 작은 마을을 연상하게 하기에 그것에서 만족스러움을 느낄까? 이처럼 인도차이나 곳곳에 식민지배의 흔적들이 이제는 관광상품으로 각광받으며 외화벌이의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수리와 재건축을 통제받으면서 루앙프라방의 모습은 그렇게 이국적인 모습을 계속 유지할 거다.

한 도시가 세계적인 관광지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의 소외를 의미하는 것 같다. 특히 라오스처럼 경제력이 미약한 나라에서는 현지인들은 관광지의 높은 물가를 감당할 수 없어 외곽으로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도시 내부는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 식당, 여행사, 마사지샵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웬만한 식당의 음식 가격은 주변에 더 잘 사는 태국이나 베트남에 비해 높다.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의 식자제들이 거의 수입에 의존되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관광지 물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라오스는 사람이 좋아서 찾아가는 곳이다. 그런데 루앙프라방을 포함한 대개의 관광지에서는 그 '사람'을 만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좀 과한 표현이긴 하지만, 온통 관광객들의 주머니만 노리는 이들로 가득할 뿐이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 좀 더 걸어나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라오스... 참 좋은 곳이지만, 그것이 관광객들 만을 위한 것인 것 같아 좀 씁쓸하다.



숙소 레스토랑에서 먹은 아침 식사. 완전 유럽의 어느 바Bar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메뉴이다.


나이 지긋한 서양인 관광객들이 가이드르이 설명을 듣기위해 모여있다.

같은 단체여도 한국인 단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최소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이고, 복장 또한 아웃도어 일색인 한국사람들에 비해 훨씬 편안해 보인다. ㅎㅎ


나이트 마켓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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