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엠립으로 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태국에서 국경을 넘어서 올 수도 있고, 수도인 프놈펜에서 버스나 비행기로 올 수도 있고, 당연히 비행기는 어느 나라에서든 올 수 있다. 그럴 때 가장 많이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 비자를 받는 일이다. 동남아 나라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캄보디아와 베트남에서 유독 입국을 할 때 커미션을 요구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에어아시아 항공편으로 입국하면서 내심 긴장도 하고, 반대로 기대도 했었다. 달러를 요구하면 어떻게 응대를 할까, 절대 돈을 주지 않을 거야 하는 결의를 갖고 있었지만 막상 긴장이 더 앞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정부 관리를 상대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무런 요구가 없다. 참 우스운 광경은 비자 붙이고 싸인하고 도장 찍는 것에 정말 많은 사람이 앉아 있는 거다. 첫 사람이 여권을 받아들고 뭔가를 처리하기 시작해, 한 사람씩 넘기고 넘겨서 마지막 사람에게서 아무런 요구 없이 여권을 받아들었다. 약간은 김이 빠지는 것 같았지만, 상쾌하게 일을 마쳐서 기분은 좋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항공편이어서 그랬나 싶기도 한데, 정확한 건 잘 모르겠다.

씨엠립 공항은 정말 작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짧은 거리를 걸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바로 비자수속 하는 곳이 있고, 거기서 짐 찾는 곳이며 나가는 출구까지 보인다. 작지만 깔끔한 공항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나오면서 핸드폰 유심을 캄보디아 것으로 구입해 끼웠는데, 태국에서처럼 바로 연결도 되지 않는다. 나오기로 한 뚝뚝이 나오지 않고 연락도 안되서, 다른 뚝뚝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아 이런, 비행기가 오전에 내렸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체크인을 하려니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거다. 최소 세 시간은 더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짐을 맡겨두고 예정에 없던 씨엠립 시내 구경을 하게 됐다. 문제는 쿠알라룸푸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면서(6시간 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무척 피곤하고 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다니는 것은 포기하고 씨엠립강 주변에 있는 벤치를 찾아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졸수밖에 없었다. 



여행하면서 별 일도 다 경험하는구나 싶을 무렵, 한 현지인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자신이 학교 영어교사를 하다가 그만 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나야 그곳에서 외국인이지만, 영어를 못하기에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더 적극적이 된 이 아주머니는 자신의 딸이 한국에 다녀왔고, 한국에 대해서 알고 싶어한다고 같이 가서 얘기를 나눠 줄 수 없겠냐고 요청한다. 너무도 설득력 있는 말로 이야기를 해서 좋다고 해버렸다. 그랬더니 딸에게 점심을 준비해 놓으라고 전화를 한다.

그리곤 자신이 뚝뚝을 싸게 잡을 수 있다고 하면서 한 대를 세우더니 타라고 한다. 뭐 별 의심 없이 함께 갔다. 집은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좋았다. 문젠 딸은 보이지 않고 언니와 형부를 소개한다. 형부는 몸에 금붙이가 주렁주렁, 마치 크메르제국의 왕같은 분위기 ㅋㅋ 암튼 환대를 받고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좀 이상하다. 자신이 동생이라고 하면서도 심부름 하고 온 사람처럼 행동한다. 밥도 허겁지겁 먹고 언니와 형부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식사 후에 집 주인 아저씨(형부)가 나를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한다. 그러더니 카드를 죽 펼치더니 능숙하게 모았다 펼쳤다를 반복하다가, 나보고 하나를 뽑으라고 한다. 그러면 자기가 그 카드를 맞추겠다고. 두세 차례 잘도 맞춘다. 옆에 와서 앉아 있는 그 아주머니도 덩달아 흥을 돋운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카지노 얘기를 한다. 한국에 강원도에 있지 않냐고 하면서, 결국엔 자기랑 동업을 하자고 하는 거다. 같이 돈을 벌 수 있다고, 원한다면 부르나이 사람이 근처에 와 있는데 불러서 그 사람을 상대로 시험해 볼 수도 있다는 거다.

와~ 대박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돈도 없지만, 관심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랬더니 한두번 더 권하다가 이전까지 친절했던 표정은 온데 간데 없고, 차갑게 잘 가라고 인사하고 사라진다. 그러자 나를 데리고 온 이 아주머니는 안절부절하더니 빨리 가자고 한다. 아~ 이 인간들이 지금 사기를 치려고 나를 유인해 온 것이구나.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나도 참 둔하다. 집을 나서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이 아주머니 화를 내면서 사진은 왜 찍냐고 한다. 


급하게 나오며 뒤돌아 찍은 것이라 사진이 온전하지는 않다.

순간, 무슨 사진을 찍고 그러냐는 그 아주머니의 약간은 격앙된 음성이 들려서 더는 찍지 못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돌아오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큰 일을 당할뻔 한 것이다. 그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했다면 나라는 사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말이다. 혹시 이 글을 보는 분들, 그런 일 당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부끄러운 경험담을 나눈다. 재미있는 경험 같지만, 실상은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13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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