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 도보여행3


도보여행3은 존커 스트리트 거의 끝에 있는 Jonker88이라는 식당에 대한 사진이 전부이다. 한 회 포스팅을 독차지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먹은 쌀국수에 비견할 정도의 걸죽한 국물과 깊은 맛의 바바 락사, 거기다 최고의 디저트 바바 첸돌의 달콤하고 시원한 맛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2013.5.6.




바바 락사


한 가지 옥의 티가 있었으니... 테이블에 티슈가 없어서 달라고 했더니 구입하라고 하는 거다.

역시 화교들은 최고의 장사꾼들이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대단하다.



바바 첸돌


식당 안 편에 여러 나라의 지페들이 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북한의 지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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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도보여행2


말라카는 강을 중심으로 네덜란드 광장 인근과 강 건너 존커 스트리트 인근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네덜란드 광장 주변의 유적들은 주로 교회나 요새 같은 서구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산티아고 요새나 세인트 폴 교회 같은 경우 아예 폐허가 되어 있어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세인트 프란시스 사비에르 교회



산티아고 요새



세인트 폴 교회


지붕 뻥 뚤린 것이 인상적이다. 하늘로 열린 교회... 오히려 더 교회 다운 모습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루앙프라방, 페낭, 말라카 등에서 목격하는 것들은 유럽건축물의 아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그럼 유럽에 가야 진짜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규모도 그렇고 완성도에 있어서도 월등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그 유럽이 어떻게 그렇게 화려한 건축물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인가. 그들의 미적 감각과 우수한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빼앗은 부이다. 대개 평화로웠던 땅에 침입해 사람들을 죽이고, 노동력과 그 땅의 것들을 빼앗아서 얻은 것이다. 오늘날에도 남태평양 호젓한 섬에 프랑스, 미국, 영국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현재진행임을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 코 앞에 있는 포틀랜드도 영국 것이다. 80년대에 그거 놓고 무력충돌도 있었지 않나.

이건 지극히 내 생각인데, 그런 나라들에게 가서 일본 옛날 지도에 독도가 한국땅으로 되 있다고 보여준다 해서 그것을 인정해 줄까. 지들이 100년 전 200년 전 자기 땅이 아니었던 곳을 빼앗아서 자기 땅이라고 하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힘센 나라가 자기 땅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 지구별의 규칙이다. 그러니 지금 일본이 하는 말이 더 먹히고 있다고 봐야한다. 아직 일본이 한국보다는 더 강한 나라니까. 그러니 국제 분쟁지역이 되지 않도록 같이 싸우지 말아야 하고, 일본의 양심세력을 깨워서 일본 내부에서 싸우도록 하는 방법이 더 좋을 것 같다. 독도 문제 가지고 국제사회 운운해봐야 그놈이 그놈이다. 도와줄 것 같은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지 국제 정의에는 관심 없지 않은가.

동남아에서 들었던 이런저런 생각, 유럽에 대한 선망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 지. 오히려 작고 화려하지 않은 것들에 눈길을 주고, 그 속에 담긴 사람냄새에 다가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아시아도 가 볼 곳이 너무 많다. 누구 것을 빼앗아서 이루지 않은 단아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 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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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도보여행1


오전 10시 경에 말라카 센트럴 터미널에 도착했고, 바로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기온이 약간 높긴 했지만 관광하기엔 딱인 날씨였다. 총선 투표 바로 다음날이라 아직 정당 깃발들이 곳곳에 보이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온한 분위기였다.


Christ Church



내부 촬영을 못하게 해서 밖에서 살짝... 아쉽네~



히렌 스트리트


바바노냐 전통박물관

입장하면서부터 사진촬영을 못하게 해서 겉모습만 찍을 수밖에 없었다. 

페낭의 페라나칸 하우스와 비슷한데 뭘 그렇게 까다롭게 제한하는 지 모르겠다.


쳉훈텡 사원



하모니 스트리트

페낭처럼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하여 하모니 스트리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깜풍 클링 모스크


공사중이어서 들어가지 못했고, 바로 옆에 있는 힌두교 사원도 닫혀 있어서 내부는 구경을 못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페낭 이상으로 말라카라는 지명은 익숙했다. 그 말라카에 간다고 하니 약간 흥분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페낭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기도 했다고 하니 기대 충만이었다. 그런데 네덜란드 광장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살짝 김이 빠지기 시작했다. 일단 광장이라는 명칭에 무색하게 작다는 것, 좀 과장하면 분수대가 전부였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여기며 가이드북이 제안하는 코스대로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크라이스트 처치, 히렌 스트리트, 바바노냐 전통 박물관, 하모니스트리트, 쳉훈텡 사원, 깜풍 클링 모스크(공사 중), 스리 포야타 비나야가 무르티 사원(문 닫힘), 세인트 세비에르 교회, 스타더이스(휴관), 세인트폴 교회, 산티아고 요새 순. 가볼 곳이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아마도 내 성격이 급해서 진득하게 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말라카가 좀 작은 편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페낭의 조지타운보다 작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사실관계는 잘 모르겠다.

예전부터 말라카가 이게 전부였을까. 이 작은 도시가 서구 열강의 눈에 들어 그렇게도 시달리다니. 수 많은 유적들이 그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그것들이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 아시아 한 복판에 수 세기 전에 산티아고 요새, 세인트 어쩌구하는 교회들, 크라이스트 처치, 네덜란드 광장이 웬말인가.

앞으로 또 어떤 역사가 펼쳐지고, 또 어떤 유적을 남길지 모르지만, 결국 땅은 모든 시간을 인내로 기다린 것 같다. 인도네시아도 지나가고, 포르투칼도 지나가고, 네덜란드도 지나가고, 영국도 지나가고, 이젠 말레이시아라는 이름으로 수 많은 인종이 터를 잡았고 또 사라져 간 것이 아닌가. 이렇듯 긴 시선에서 보면 그져 흘러가는 것 같다. 지금은 하모니라고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치열함이 배어있는 것 아닌가.

지금 또 어딘가 빼앗기고 짓밟힌 곳들 역시 지나가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저 북녁 땅,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팔레스타인, 티벳, 또 아랍의 어떤 나라, 또 러시아 주변의 어떤 나라, 또 중국 내외의 어떤 민족에 압박하는 힘들도 다 지나가고 나면 그 흔적으로만 그들을 기억할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결국 버틸 수 있다면 그가 가장 큰 힘을 가진 것이니. 

얘기가 좀 멀리 갔지만, 말라카는 긴 일정보다는 가볍게 서너 시간 머물다 가면 딱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잠시지만 이 곳에서 몸으로 피땀 흘렸던 이름 없는 이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계역사의 격량 가운에 있었던 이 곳에서 서구인들이든 동양인들이든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에 대한 예의는 필수이다.

20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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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이 5월 7일이었는데 비행기 시간이 8일 01시였기 때문에 공항에는 10시 정도까지 가도 되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가이드북과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를 종합해서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물론 충분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말라카를 다녀오는 것이 모험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약간은 긴장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LRT를 타고 반다르 타식 셀라탄 역으로 이동했다.


쿠알라 룸푸르에서 말라카로 가기위해서는 반다르 타식 셀라탄 역과 연결된 TBS로 가야한다.




오전 8시 표를 끊고 4번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한국 같이 정시에 출발은 커녕 버스가 도착하지도 않는 경우가 종종있다. 사실은 거의 그랬다. 페낭에서도 쿠알라 룸푸르에서도 말라카에서도... 10~15분 정도 지나서 출발하는 것은 기본이고 때론 좌석을 채우려고 더 늦게 출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말라카 터미널에 도착했다. 길은 괜찮아서 정말 두 시간 만에 도착한 것 같다.


터미널에 있는 짐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가벼운 몸으로 이동한다.



AirAsia 항공기를 타기위해 LCCT로 가야해서 오후6:00 버스를 예약해 뒀다.

하지만 말라카 투어가 빨리 끝나서 2:50 차로 변경했다.


말라카 시내로 들어가려면 17번 버스를 타야한다. 빨간색 버스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개 관광객들이 말라카 관광의 시작점으로 삼는 네덜란트 광장Dutch Square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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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곳곳에 정당 깃발이 과할 정도로 많이 걸려 있어서 총선이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 총선을 두고 시국이 어떻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페낭 세인트 조지 교회에 갔을 때 안내해 주시던 여성 분이 이 번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분은 야당을 지지하는 것 같았으니 그 분의 말은 정권교체를 의미했던 것 같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페낭이 야당색이 짙다고 나온 것을 봤다. 아무튼 페낭에서도 그렇고 쿠알라 룸푸르에 와서도 여행자가 총선과 관련해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5월 4일 자정을 넘겨 투표일인 5일이 되는 순간 호텔 밖에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한두 대가 내는 소리가 아니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 봤더니, 야당 지지자들이 차량에 깃발을 흔들며 행진을 하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오히려 조용해져야 할 시간에 더 시끄러워지는 것을 보곤 갑자기 겁이 덜컥났다. 곧바로 들어와 그제서야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이번 총선에서 정권교체가 점쳐질 정도로 박빙의 승부가 진행 중이었다. 그 만큼 선거와 관련한 사건사고들이 이미 2,000건이나 발생했고, 더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 언론의 보도였다. 더구나 야당의 지도자는 여당이 부정선거만 하지 않으면 야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지금 돌아가는 흐름이 장난이 아니었던 거다. 와~ 이거 내일 쿠알라 룸푸르를 돌아다닐 수나 있겠나 싶고, 이런 중대한 시기에 내가 말레이시아의 수도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여기에 교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대사관의 공지사항을 확인하자 순간 맨붕이 올뻔했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투표는 큰 소요 없이 진행된 것 같고, 열망하던 정권교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50년 넘게 장기집권을 해오고 있는 BN이 권력을 잃지 않았다. 결국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변화라는 것, 어디서든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2013.5.6.



페낭 곳곳에 걸려있는 정당 깃발들, 비가 많이 오는 날씨로 인해 포스터보다는 깃발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자를 화들짝 놀라게 한 야당 지지자들의 차량 행렬이다.



투표 당일 쿠알라 룸푸르 곳곳에 지지자들이 모여 투표를 응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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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알라 룸푸르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최소한 여행자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보통 많이 찾게 되는 주요 포인트들의 위치를 알게 되면 바로 옆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차이나타운 입구



메르데카 광장 건너편 국립 섬유 박물관


메르데카 광장


중앙 시장



차이나 타운을 걷다가 육교 길 몇 개만 건너면 국립모스크가 있고, 

부킷 빈탕을 걷다가 워크웨이라는 긴 육교를 따라가면 수리아 KLCC가 갈 수 있고

마지드 라멕을 지나면 바로 마르데카 광장,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이 있고,

거기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차이나 타운도 있고, 센트럴 마켓도 있다.

그렇게 오가다 고개를 돌려보면 KL타워가 따라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지역 어디엔가에 숙소를 잡으면 굳이 비용 들여가면서 택시나 버스를 타고 다닐 필요도 없다.

LRT나 모노레일을 타도 세 정거장 이상 가는 일도 없다.

예외적으로 바투 동굴에 갈 때는 KTM코뮤터를 타고 일곱 정거장을 가니 그게 제일 길게 타는 노선이 된다.


국립 모스크


스리 마하 마리암만 사원(힌두교)




그렇게 걸으면서 들게 되는 생각 중 압도적인 것이 '다양함'이다.

일단 사람들의 피부색이 다양하다.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 기타 여러 소수 인종들이 모두 말레이시아인으로 살고 있고,

내 앞으로 옆으로 지나다닌다.

이렇게 다양한 인종이 별 문제 없이(1969년에 사건이 있긴 있었다고 함) 살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인종의 다양함으로부터 나온 종교와 그 종교 시설(사원)들의 다양성 또한 놀랍다.

페낭에도 있었지만 말라카에도 있는 조화의 길이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명칭이다.

다양함을 조화로 이끌어낸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지혜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런 다양성을 조화로 이끌 능력이 있는 나라가 앞으로의 시대에 힘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세안의 국가들이 이미 관세를 없애거나 낮추었고 2015년까지 지역통합을 하게 될텐데,

그럴 때 말레이시아의 이런 노하우는 큰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아무튼 이런 말레이시아의 역사적 인종적 배경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말레이시아 왕궁


KL타워


페트로나스 빌딩 아래 분수대 앞 소풍 온 어린이들


어느 도시이든 다른 점과 같은 점을 가지고 있다.

관건은 같아지려고 하기보다 달라지려고 하는 노력에 있는 것 같다.

다른 것이 결국 우리를 규정하는 것 아닐까?

이것은 국가와 한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인에게도 해당된다.

같아지려는, 한 가지 기준에 맞추려는 애씀보다 나를 나로 구분할 수 있는 독특함을 찾고 그것을 발전시켜 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럴 때 도시는 관광객이 알아서 찾아드는 것이고,

개인은 앞으로 나서지 않아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자리에 있게 될 것이다.

백화점, 빌딩들은 똑같은 것들이지만 얼마나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느냐는 능력이다.

어떤 면에서 쿠알라 룸푸르는 어느정도 성공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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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마치 나이트라이프를 소개하는 글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보겠다고 일찍 일어나 서둘다 보니 낮에 너무 피곤해서 숙소에 들어와 쉬다가 5시 정도에 다시 나갔다.

이번에는 그 유명한 부킷 빈탕으로 향했다.

쇼핑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저녁을 먹기위한 출발이었다.




낮에 Hope on Hope off Tuor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면서 대충 위치들을 익혀 두었고, 어떤 분위기인지도 파악을 했다.

참, 이 투어버스는 오자마자 아무 것도 모를 때 타기 보다는 약간이라도 방향감각을 갖게 되었을 때 타면 좋을 것 같다. 

주요 지점들이 그냥 걸어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데, 돌고 돌면서 마치 아주 먼 거리인줄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푸두 센트럴 터미널

통신 스트리트에 있는 마사지샵


숙소에서 가면서 어렵지 안하게 통신 스트리트 쪽으로 접어들었다.

처음 보게된 마사지집에 가격이 얼마인지 보다가 마사지사들이 나오는 바람에 그냥 따라 들어갔다.

1시간에 RM40하는 발마사지를 받겠다고 하고 들어갔다.

따듯한 물이 담긴 대야에 발을 담그게 하고는 돌아 앉게 하고는 먼저 어깨를 주무른다. 이상하다. 아무리 발마사지를 하더라도 마무리 할 때 어깨를 주물러주는데... 할 쯤 다른 마사지사가 메뉴판을 가져온다.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이미 발 마사지 한 시간 40링깃짜리 한다고 들어왔는데. 이 사람들 은근히 65링깃하는 어깨, 등, 머리까지 포함되는 것을 하라고 유도한다. 처음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몰라서 오케이했다가, 아닌 것 같아 다시 불러서 40을 가리켰는데, 하는 소리가 '어깨 등 머리까지 받는 것이 좋다'는 말을 반복하는 거다. 아~ 이런 바가지 상술이 있나! 태국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역시 중국계는 뭘해도 다르다. 마사지 숍의 분위기도 완전히 중국풍이고 마사지사들도 거의 중국 말을 쓰는 거다. 아~ 이렇게 화교들이 돈을 버는구나 싶었다. 그러면 안되지만 '귀찮아서' 알았다고 하고 마사지를 계속 받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가냘픈 마사지사 아가씨가 생각했던 것보다 야무지게 마사지를 한다. 발마사지를 받을 때는 몇 번이나 잠이 들었는 지 모른다. 쓸어내리다가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곳을 더 집중적으로 하는 센스. 물론 그럴수록 더 아프지만 시원한 느낌도 드는 것이 사실이니. 암튼 바가지 상술에 넘어가긴 했지만 시원한 마사지로 용서하기로 했다.


스타힐 갤러리


파빌리온




그렇게 마사지를 받고 나오니 거의 7시가 되어 부킷 빈탕의 시작점이고 오늘의 부킷 빈탕을 있게한 파빌리온으로 저녁을 먹으러 이동했다.

파빌리온에서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 말레이시아는 큰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곳 저 곳에 크고 거대한 것들을 잘도 만들어 놓았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백화점부터 저렴한 푸드코트까지 없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그 크기며, 내부 구조가 입이 쩍 벌어졌다.

솔직히 거기서 팔고 있는 것들과 나는 별 관계가 없기에 바로 푸드 리퍼블릭을 찾아 지하로 내려갔다.

와~ 왜 리퍼블릭이라는 말을 붙였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끝이 안 보인다...

배가 고팠으므로 바로 한식당 다온에서 운영한다는 '삼삼'을 찾았다.

그리고 약간 고민을 하다가 가장 무난한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외국 여행 중에는 라면이 가장 그립고, 그 다음으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이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는 아플 때 먹으면 병도 났는 것을 봤다. ㅋㅋ

외국에서 먹을 수 있는 김치찌개로는 이 정도면 됐다 싶을 수준의 딱 그 정도의 맛이었다.

추천을 하라고 하면 할까 말까 살짝 고민을...






파빌리온 안을 대충 돌아보다 나와서 숙소로 갈까 하고 방향을 잡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이름...

페트로나스!

맞다. 그 야경을 꼭 봐야한다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렸더니 타워의 끝부분이 하얗게 빛나고 있는 거다.

가야한다. 꼭 가서 내 눈으로, 내 카메라도 담아오리라. 

작정하고 찾아 가려고 하는데, 지도도 없고, 어느 길로 가야하는 지도 모르겠어서 일단 낮에 버스로 이동했던 길을 더듬거리며 출발을 했다.

파빌리온을 겉으로 돌아 차도를 서너 개를 건너고 땀을 살짝 흘리며 걷고 있는데

이상하게 내가 가는 길 위로 터널처럼 생긴 육교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거다.

출발점은 내가 내려온 파빌리온의 반대쪽이었다.

좀 더 걷다가 올라가는 계단이 있길래 가서 봤더니 안내판에 수리아KLCC도 써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알게 됐다. 파빌리온에서 아쿠아리아 KLCC가 이 워크웨이로 연결되고, 계속 가면 KLCC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글쎄 에어콘도 빵빵하게 나오고 있었다.

아~ 미리 알았으면 편하게 갔을텐데, 숙소에 와서 가이드북을 보니 팁 부분에 잘 안내가 되어 있었다.

아무튼 복잡한 도심 위를 위크웨이로 관통하도록 해 놓은 센스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사지숍에서의 경험을 생각해 보니 이거 혹시 차이니즈들의 발상이 아닐까 의심이 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다시금 마주한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공원에서는 음악에 맞춰 형형색색의 물줄기를 쏘아 올리는 분수 쇼가 벌어지고 있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분수 주변에 앉아서 물과 빛의 향연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 여기는 밤이 더 좋구나!!!

오전에 타워 관람 매표대에서 앞에 선 서양인 부부가 저녁 7시 것을 끊는 것을 보고 살짝 고민을 했었는데,

이 시간에 올라가면 낮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아래에서 이 거룩한(여기다 붙이면 안 되는 줄 알지만...) 빛에 감싸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황홀하고 만족스러웠다.


쿠알라 룸푸르는 밤이 더 좋아!


수리아 KLCC지하 로띠보이에서 빵과 번을 사들고 LRT를 타고 세 정거장 마지드 자멕 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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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돈벌이를 위해 관광산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물론 어떤 나라는 아무리 해도 전반적인 분위기가 조성이 안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한국이 그런 것 같다.

반면 동남아나 유럽을 보면 관광이 그 나라를 먹여살리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 곳에 가보면 관광객들이 주요 포인트를 이동할 때 전혀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내국인들이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을 정도이다.


몇 곳을 돌아다니면서 그 나라가 주력으로 팔고 있는 관광상품의 유형이 좀 나오는 것 같다.


첫번째는 짧게는 몇 십년에서 길게는 수십 수세기 전의 유적을 파는 경우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나 태국의 아유타야,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이 수 백 수 천 년 전의 유적이 그렇고,

태국 콰이강의 다리나 캄보디아 킬링필드, 베트남의 구찌 터널 같이 100년 내에 지어진 것들도 그렇다.

이 곳들은 오늘날에는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


두번째는 과거의 것이지만 오늘도 사용하고 있는 경우이다.

예를들어 라오스의 루앙푸라방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인데, 여전히 사찰들이 운영되고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과 게스트하우스들이 활성화되어 있다.

이는 페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각 종교의 사원들이 여전히 기도와 예배를 위해 사용되고 있어서

때때로 여행자들이 들어가기 머뭇거려지 지기도 한다.

이런 곳들은 오늘의 사람을 위해 과거의 유물을 어디까지 바꿀 것인가 딜레마가 존재한다.


세번째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장소로, 사용여부나 시기로 구분하기는 어려운 곳들이다.

가보진 않았지만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나 5대호, 터키의 갑바도기아나 파묵칼레 같이 대부분의 섬과 비치, 산들이 이런 유에 속할 것이다.

아마도 이런 곳들은 또다시 자연적인 변화가 있지 않는한 거의 영구적으로 돈을 벌어주는 효자노릇을 할 것이다.


네번째는 오늘날에 와서 만들어진 건물이나 지역이 명소가 되는 경우이다.

각 도시마다 높게 솟아 있는 타워들이 그렇고, 고난도의 건축기술이 필요한 건설-토목공사로 만들어진 건출물들이 그렇다.

말레이시아를 놓고 보면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들 수 있겠다.

(오늘 페트로나스 빌딩을 얘기하려고 이렇게 장황한 도입을 하고 있다.)


첫번째와 세번째의 경우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어찌할 수 없고,

두번째와 네번째의 경우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가변적일 수 있겠다.

사실 쿠알라룸푸르에 오면서 다른 것을 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쌍둥이 빌딩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다른 곳, 차이나타운, 사원들, 시장, 쇼핑센터는 가보면 솔찍한 심정으로 거기서 거기고 다리만 아프다.

물론 섬세한 차이점들을 발견하는 재능이 있거나, 다양한 먹거리나 쇼핑거리를 찾는 사람이라면 다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쿠알라 룸푸르에 들어오면서 멀리 트윈 타워가 눈에 들어오자, 마치 그리스에 갔을 때 아테네 시내로 접어들며 아크로폴리스 위의 파르테논 신전을 발견했을 때 그 두근거림이 그대로 느껴졌다.

자연이 이루어낸 작품들도 볼 때 감동을 주고, 과거의 건출물들이 경탄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건축물 또한 큰 감명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페트로나스 빌딩을 보고 알게됐다.







아침 8:30부터 스카이브리지와 86층 전망대에 올라가는 표를 판다고 해서 8:00에 서둘러 나갔다.

40분 정도에 도착했는데 벌써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가장 빠른 시간이 10:15이었다. 입장료는 RM80(약 32,000원)이다. 악!

표를 끊고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수리아KLCC 이곳 저곳을 둘러봤다.

토요일이어서 많이 붐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한산한 편이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고, 공항 디파쳐 게이트 못지 않은 꼼꼼한 검색대를 통과해 입장을 했다.

엘리베이터 사이즈에 딱 맞는 숫자의 인원이 같은 색의 명찰을 걸고 함께 이동한다.

스카이브리지에서 15분, 전망대에서 20분 이동하는데 10분 잡아서 45분 정도 관람한 것 같다.

사실 안에서 찍는 사진은 그리 멋이 있지 않다.

웅장하고 기묘한 건물의 외부를 배경으로 찍는 사진이 압권인 것 같다.

그럼에도 그 건물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과 2번 타워에서 1번 타워를 보면서 느끼는 감동은 정말...

감동의 핵심은 이렇게 큰 건물을 설계한 것도 대단하고, 그 설계대로 작은 볼트 하나에서 커다란 철제들까지 정말 한치의 오차도 없이(있었을 것 같지만) 이어맞출 수 있었는 지 입이 쩍 벌어진다.

그래서 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에 올라와서 멀리 바라보는 것보다 바로 유리창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의 외벽이 더 신기하고 기막힌 볼거리였다.










여기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는데,

지금 쿠알라 룸푸르를 넘어 말레이시아 전체를 통틀어서 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관광의 중심에 이 건물을 놓고 있다. 

주변에 있는 관광지에서는 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가 중요한 입지 조건이라고 한다.

그런제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이 정말 말레이시아의 것일까?

미국사람이 설계하고, 한국과 일본이 하나씩 세운 것이다.

물론 자본은 말레이시아에서 나왔잖느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돈문제 때문에 단군이래 최대 사업이라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도 좌초했으니.

아무튼 여기 쿠알라 룸푸르의 중심에 서 있으니 그들의 것이고 그들의 자랑이고 그들의 관광자원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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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알라 룸푸르 숙소 Hotel Happy Holiday

쿠알라 룸푸르 푸두 터미널에 4시에 도착했고, 숙소에 도착하니 5시가 좀 못되었다.

숙소 자체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복이 터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쿠알라 룸푸르 대중교통의 중심인 KL 센트럴 다음가는 곳인 마지드 자멕 역 코앞에 숙소가 있는 것이다.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고다에서 잡은 것인데, 감동에 감동이다. 1층에는 커피숍, 세븐 일레븐, 버거킹이 있고, 길 건너에는 맥도날드도 보인다.

여행을 하면서 가능한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이 원칙이지만 늘 그럴 수만은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버거킹도 얼마나 반가운 지 모른다.

더구나 태국보다 많이 부족하지만(이상한 점) 세븐 일레븐도 바로 호텔 로비 옆에 있으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KTM Komuter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지도 않고 바로 첫번째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바로 '바투 케이브(동굴)'이다.

LRT 마지드 자멕 역에서 KL 센트럴 역으로 가서 KTM Komuter Sentul Line으로 갈아탄다.

KL센트럴 역은 정신없기가 장난이 아니다. 

서울역보다도 작은 공간인 것 같은데 몇 개의 노선이 교차하는 지, 거기다 공항버스와 택시까지 연계되어 있다고 안내를 하고 있다.

암튼 내가 타고온 LRT 라인과 바트 동굴로 가는 KTM라인은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표 끊는 시간만 없다면 곧바로 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아쉬운 것은 장기권이야 연계가 되어 있는 것 같은데, 1회용의 경우는 연계해서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BRT와 MRT의 역이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아 환승의 의미가 없었던 방콕보다는 낫지만,

티켓 사정은 매한가지였다. 그런 불편을 모두 느낄텐데 왜 개선하지 않는 것일까.

(KL센트럴 사진, 또 열차 티켓 두 가지 사진)


바투 동굴로 가는 열차는 정말 천천히 갔다. 

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이 계속 보여서 신기해 하고 있을 즈음 밖이 어두워지더니 빗방울이 열차 유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뭐 많이 올까 했는데, 점점 굵어지는 거다. 아이고 이러면 안되는데...


바투 케이브 역 도착



바투 동굴 역에 내렸는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역을 떠나지 못하고 빗방울이 잦아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바로 왼편 사원에 거대한 푸르둥둥한 원숭이 영웅하누만 상이 인상적이었다.

아~ 저기 거대한 무르간 상도 보이는데,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쿠알라 룸푸르에 머무는 날 수는 4일이지만 오늘도 좀 있으면 다 가고 내일은 토요일, 모레는 일요일인데 투표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주말과 투표가 있는 일요일이 얼마나 정신없이 지나갈까. 그리고 마지막 월요일은 말라카에 갔다가 바로 공항으로 가야한다. 그러니 다시 바투 케이브로 올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런 생각의 줄다리기가 오가고 있을 때, 비가 약간 잦아든 느낌이었다. 물론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 다시 올 수 없을 지도 모르니 비가 나를 막을 수는 없지.

가방 꼭 붙들고 뛰었다. 일단 거대한 황금 무르간 앞까지. 


황금색 거대한 무르간


와~ 탄성이 나오는 거대한 크기. 42.7m가 그냥 큰 정도가 아니었다. 

저런걸 하나 떡 하니 세워두니 이 곳이 완전 업그레이드됐을 것은 뻔한 거다.

사실 그 옆에 계단이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데, 272개의 계단이면 작은 규모가 아닌데 무르간 덕분에 별거 아닌 것으로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비 때문에 서둘러 오르다가 숨차서 죽을뻔 했다.

세 개로 구분되어 있는 계단은 과거에 지은 죄, 현재 지은 죄, 미래에 지은 죄를 각각 오르고 내리며 참회하라는 뜻으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이 바투 동굴 투어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계단을 오르는 것까지가 아닐까 싶다.


동굴 내부




동굴은 거대하고 또 아름다운(?)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렇게 확 다가오지는 않았다.

힌두교 신자들이 기도를 할 수 있는 사원이 있는데 그 규모도 작고 동굴과 조화를 이루고 있지도 못하다.

비가 오는 저녁에 봐서 그런지 최소한 내 느낌은 그랬다.

비만 안 왔어도 계단을 천천히 오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텐데 참 아쉽다.


바투 동굴 후기

비는 어떻게 됐을까?

점점 더 내려서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곳곳에 물웅덩이가 만들어졌고, 하나 있던 우산파는 가게도 문을 닫아버렸다.

겨우 편의점까지 달려가서 허기를 달래고는 문 앞에 서서 또다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지만 전혀 그럴 기미가 안보였다. 

그래서 신발 벗어 들고 가방 끌어 안고 기차역까지 달렸다. 와 이건 비를 향해서 달리는 것이었다.

내리는 모든 물줄기가 다 나에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비맞은 생쥐꼴로 어설픈 자세로 열차 안에 앉아 에어컨 바람에 옷과 머리를 말리며 다시 온 길을 거꾸로 돌아왔다.


바투 동굴 관광을 한 것이 아니라 쿠알라 룸푸르의 우기를 보고왔다.

비가 쏟아질 때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어쩔 수 없으면 맞으면 된다.

그 비도 그칠 때가 있을 것이고, 흠뻑 젖은 옷과 몸은 다시 몸의 열과 바람에 마르게 될 것이다.

비가 온다고 불평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잘 피했다고 너무 기뻐하지도 말자.

지금 보는 것, 지금 가진 것, 지금 상황은 내 소망과 예측대로 계속되지 않을테니까.

그저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개이면 말리면 된다.

이것이 땅에 발을 딛고 빗방울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인간의 길이 아닐까.



빗물에 흠뻑 젖은 운동화에서

코를 댈 수 없을 만큼 악취가 나서

바로 요걸 구입해 사용했는데

정말 효과 만점이었다는...

하얀 부분을 운동화에 깔창에 대고

누르면 운동화 안쪽까지 분사가 되서

사용하기도 정말 편리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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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에서 쿠알라 룸푸르 가기


늘 긴장되는 것이 이동하는 일이다.

자유여행을 할 때, 스스로 찾아 다니며 예약하고 승하차하는 과정은 여간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 아니다.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게 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었기에 부족한 준비로 더 애를 태웠다.


페낭에 온 것도 신기한데, 이제는 수도 쿠알라 룸푸르까지... 대단한 여정이다.

페낭과 다른 도시를 연결하는 터미널이 숭아이 니봉 터미널이다.

다른 곳을 여행할 때는 항상 먼저 답사하고, 예매도 했었다.

페낭에서는 주로 이동하는 길에 터미널이 위치하지 않아 인연이 닿지를 않았다.

올 때는 조지타운으로 바로 왔고, 중간에 갔다올 짬이 나지 않았다.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예기치 않은 사람에게서 터미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정보를 얻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인도계 말레이시아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처음엔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이 사람의 정체는 다른 게스트 하우스를 홍보하기 위해 살짝 들린 사람이었다.

자신의 게스트 하우스를 아는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하면서,

쿠알라 룸푸르로 가는 방법을 꼼꼼하게 일러줬다.

쿠알라 룸푸르로 갈려면 우선 게스트하우스에서 예매하지 말란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RM40을 받지만, 콤타에 가면 RM30이면 된단다.

 

콤타는 시내버스들이 통과하는 터미널인데, 쿠알라 룸푸르로 가는 버스도 있나?

의구심이 들었지만 페낭힐을 가는 길에 콤타에서 장거리 버스회사 사무실들을 확인했다. 

정확히 말하면 콤타에 있는 여행사 사무실에서 예매를 하면, 콤타에서 승객을 태운 버스가 숭아이 니봉 터미널로 가고,

그 버스 그대도 갈 수도 있고, 여정이 다를 경우 다른 버스로 옮겨타고 가게 된다고.

아~ 참 편리하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 다른 점은 버스티켓이 RM30이 아니라 35였다는 것.


5월 3일 오전 11시 버스인데, 콤타에 30분 일찍 나오라고 해서 시간 맞춰갔다.

나 말고도 네 명이 더 있었고, 터미널까지 실어다 준 버스는 말라카행 버스였다.

버스를 옮겨타고 인원 점검을 하고 출발하니 11시 10분 쯤이었다.

 

가이드북이나 인터넷 여행기에 보면 네 시간 걸린다고 되어 있고, 사무실에서는 5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이체하고 쉰 시간을 빼면 네 시간 걸렸다.

에누리 없이 오후 4시에 쿠알라 룸푸르 푸두 센트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계산해 보면 10분 늦게 출발했고, 중간에 40분 쉬고, 푸드 센트럴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몇 명 내려주느라 돌고. 그런 것 생각해 보면 네 시간 걸리는 것이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 같으면 네 시간은 쉬지도 않고 갔을텐데.


이미 핫야이에서 말레이시아 넘어올 때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말레이시아의 고속도로, 도로는 정말 잘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일단 현대건설이 만든 페낭과 버터워스를 잇는 다리부터 시작해서 고속도로는 정말 한국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어떤 구간은 더 잘 정비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휴게소였다. 이게 휴게소인지 주차장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곳에 서더니 40분이나 쉰다.

화장실은 저 멀리 언덕 위에 있고, 길거리 간식거리 파는 부스 세 개 정도 있는 데 거기에 

과일과 빵 종류와 스넥, 음료가 조금 있을 뿐이었다.

아직 이런 부분에서는 발달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인터넷 글들에 보면 푸드 센트럴에서 말레이시아의 모든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써 놓은 것을 봤는데, 그렇진 않아 보였다. 주로 북쪽으로 가는 버스들이 오가고,

말라카 같은 곳은 반다르 타식 셀라탄 역에서 연결되는 TBS에서 갈 수 있다.


20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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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모험을 즐기지 않는 여행자의 페낭 먹거리 이야기 ㅋㅋ

2013.4.30~5.2.


대체로 가이드북을 보면 그 나라나 지방의 음식을 소개하며 '맛있다', '꼭 먹어봐라'하면서 '거기'를 정해준다. 꼭 봐야 하는 곳과 함께 꼭 거기서 먹어야한다는 말이 얼마나 마음을 사로잡는 지 모른다. 그래서 점심 때, 저녁 때가 되면 약간은 긴장하면서 그 곳을 찾게 된다. 관광명소에 비해 식당은 찾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보통 관광지에 가면 두어 곳 먹어보고 입에 맞는 곳이 있으면 그 곳을 중심으로 가게 된다. 먹을려고 여행하는 것은 아니니 모험을 하긴 싫고, 또 경제적인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페낭에 와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푸드코트가 많고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태국에서도 몇 곳을 경험하긴 했지만 이렇게 다양한 메뉴에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또 특징은 굉장히 저렴하다는 것이다. 보통 식당들에서 MR10(태국 100밧, 한화 약 3,500원)이면 저렴한 편인데, 푸드코트에서는 MR5를 넘으면 비싼 메뉴에 속한다.


에스플러네이드 푸드코트 - 조지타운 북쪽 해안가 위치



숙소에서 가깝고 저렴해서 첫째날과 둘째날 저녁을 해결했다. 첫 날엔 차퀘티아우 집에서 미고랭을 MR4를 주고 먹었고, 둘째 날엔 겁없이 페낭 락사를 MR3.5를 주고 먹었다. 조금 비릿했지만 못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가격이 착하다보니 서비스가 어떻고, 양이 어떻고, 분위기가 어떻고 따질 필요가 없다. 아쉬운 것은 혼자라서 한 가지 메뉴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럿이면 꼭 눈에 띄는 여러 메뉴를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과일을 잔뜩 싣고 깎아 잘라 담아 파는 자동차 노점상이 있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수박, 자두, 사과 등을 사들고 밤에도 먹고 아침에도 먹었다. 조지타운에 머문다면 이 푸드코트만 가도 식사는 별 문제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문제는 가이드북에서 최고, 인기있는 곳이라는 표현을 따라 갔을 때, 전혀 동의가 안되는 경우도 종종, 아니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음식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작용하는 것 같다. 특히 나에게 있어서 동남아 음식은 태국이든 라오스든 말레이시아든 간에 조금 어렵다. 그 맛도 그렇거니와 길거리에서 조리해서 담아내는 그 과정이 썩 마음이 가지 않는다.

사실 가장 어려운 점은 그 맛이다.


Maj 무슬림 레스토랑 - Ah Quee스트리트에 위치


찾기 쉬운 위치에 있는데 약간 헤매면서 더 기대가 되었던 로컬 식당이었다. 페낭에서 로티 차파티 2대 맛집이라는 말에 더욱 끌려서 약간은 주린 배를 참으며 포기하지 않고 결국 찾아냈다. 정말 허름하기도 하고, 인도사람이 운영하는 식당 사람들이 모두 남자들이어서 그런지 일하는 것이 어설퍼 보이기도 했다. 어렵게 주문을 하고 내가 다 받아 들고 자리로 왔다. 맨밥에 해산물이 든 커리를 붓고, 차파티 두 장을 곁들여 먹었다. 음~ 솔찍히 먹기 힘들었다. 차파티는 그냥 밀가루로 구운 부드러운 난이라고 할까? 난에 비해 밀가루 향이 더 났다. 커리는 내 입에는 좀 강했다. 맵고 감칠맛은 없는...

이런 것이 개인차인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겐 별미가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겐 약간 고역이 될 수는 있는... 그런데 재미있었던 것은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계산할 때 '서울 코리아 얼마죠?' 하고 서로 묻는 거다.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며 미소짓는 점원들이 있어 정이 들뻔 했던 식당이다.


산토리니 - 튠 호텔 근처에 위치

젊은 층을 겨냥했고, 깔끔하고, 착한 가격이라는 말에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생각해 보니 내가 젊은 층은 아닌데 착각을 한 것 같다. ㅋㅋ 점심에는 메뉴에 MR2만 추가하면 음료와 아이스크림이 함께 나와서 더욱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림만 보고 맛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킨 내 실수... 메뉴 이름은 생각이 안나는데 라면 면발 같은 것은 태국의 팟타이처럼 볶고 거기에 튀긴 치킨 조각들을 더한 것이다. 그림도 그렇고 느낌상으로도 맛있을 것이 뻔한 메뉴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 치킨은 치킨 맛인데, 볶은 면이 아무 맛도 안나는 거다. 다 먹고서는 케첩이라도 달라고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암튼 외국에 나와서는 그림만으로는 맛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단, 아이스 초코는 맛있었다.


두둥 두둥!

거니 드라이브 - 거니플라자를 통과해서 해변길로 나가 왼쪽으로 30~40미터

페리 터미널 앞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서 103번 버스를 타고 갔다.


아직 시간이 이른지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는다.




페낭에서, 아니 말레이시아 전체에서 음식으로 정평이 자자한 곳, 거니 드라이브를 버스 103번을 타고 갔다. 버스는 RM2 정도 할 줄 알았는데, RM1.4라서 가깝다는 것을 직감했다. 가이드북에 '거니 플라자 옆에 위치'라고 되어 있어서 그 옆을 찾느라 더운날 땀좀 흘렸다. 규모면에서 다른 푸드코트에 비해 크고 좀 더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내가 갔을 때는 시작하는 시간이라 막 문을 열고있는 집도 많았고, 빈자리도 꾀 많았다.

계속 국수를 먹었던 터라 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서 돌아보다 튀김 종류를 쌓아 놓고 골라 주면 썰어서 소스를 뿌려주는 음식(이름이 뭐더라)에 꽂혔다. 에스플러네이드에서 가장 눈길이 갔었기 때문에 거니 드라이브에서 맛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음식점을 잘못 선택한 것인지... 맛이 뭐라 할까... 정확히 표현해서 내 입에 안 맞았다. 그렇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데 다른 메뉴를 먹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음식에 대한 판단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 아무리 말레이시아의 내로라 하는 곳이라 해도 난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내 입맛이 너무 한국적 음식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 동남아시아에서 얼마간 더 머물 것인데,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로 몇 차례의 도전을 해보겠지만, 음식에 대해서 내가 좀 너무 까다롭게 구는 것 같다.



>>말레이시아가 음식 값이 싸다?


가 본 곳이 몇 곳 없어서 라오스와 말레이시아를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루앙프라방과 페낭이 비교된다. 뭐라고 할까, 여행자로서 가장 피부로 다가오는 것이 밥값이다. 라오스의 도시 루앙프라방과 열 배는 잘 사는 말레이시아 페낭 중에 어디서 더 밥값이 저렴할까. 답은 페낭이 더 저렴하다는 것이다. 이유를 따져보면 식자제의 거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라오스에서는 음식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루앙프라방에서는 보통 3,200원 정도만 되도 싼 편에 속했는데, 페낭에서는 1,600원짜리 식사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라오스에서는 관광지가 형성이 될 때 일어난 현상은 그 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 소외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루앙프라방이나 왕위앙(방비엥)의 관광지는 현지인들이 먹고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모두 외곽으로 이동해서 그들을 위한 로컬식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태국도 그렇고 말레이시아는 비록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고 모든 것이 외국인들을 위한 것으로 맞추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현지인들을 위한 인프라는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로컬 식당들이 존재하고,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들에게 효자노릇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경제력과 관련이 있어보인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관광지로 개발이 될 때 그 빠른 변화에 적응하고 맞추어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을 때는 말레이시아처럼 로컬 문화도 함께 살아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때는 라오스처럼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라오스의 경우 사람이 좋다고 하는데, 관광지를 중심으로 여행할 경우엔 그 좋은 사람들의 표정을 만날 수 없다. 모두 여행자를 상대하면 살아남은 사람들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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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시내버스로 여행하기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의 다른 나라들보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경제력의 차이인것 같다.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넘어 오면서도 느꼈지만 일단 도로가 잘 닦여 있고, 페낭의 경운 시내버스가 잘 운영되고 있었다. 버스 번호와 노선만 잘 알면 페낭의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켁록시나 페낭힐은 물론 거니 드라이브를 갈 때도 시내버스로 이동했다.


켁록시 사원, 극락사

거의 모든 시내버스가 콤타 버스 터미널을 경유한다. 


켁록시에 가면서 처음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기사가 일일이 표를 끊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원을 오르며 내려다본 페낭 도심.



켁록시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이다. 절에 갈 때 느끼는 것이지만, 절에서 형상화된 인물이나 동물들이 힌두교와 묘하게 오버랩된다는 것이다. 불교는 힌두교와는 많이 다르지만 인도라는 같은 토양에서 태동했고, 또 후발주자이기에 불교가 힌두교의 상징들을 차용한 것 같다. 켁록시 사원은 더더욱 혼합되어 있다는 것이 부쩍 더 눈에 띄었다. 규모면에서 보면 상상초월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큰 감흥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사원들이 작지만 단아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고 있는 나에겐 더욱 그랬다.

저기 가운데 앉아 계신 부처님은 왜 팔이 저리 많은 것일까. 같은 대답이다. 인도라는 배경과 여러 지역을 지나며 팔 뿐만 아니라 다양한 덧붙임이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다. 그런 것들을 잘 살펴보면 종교에 인간의 근본적이고 다양한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깨달은 자 고타마 싯다르타 하나로는 부족하다. 관음보살, 지장보살, 무슨무슨 보살, 금강역사 등등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있어야 중생들을 절로 불러들이고 절에 묶어 놓을 수 있는 거다.

종교의 속성으로 본다면 기독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 히브리문화가 헬라·로마문화를 만났고, 또 로마주변 민족들의 토착문화들과 섞였다. 별도 중요하고, 태양도 중요해지고, 성탄절이 필요해지고, 마리아도 천사도 성자도 필요했다. 심지어 정치적 구조까지 가져와 교황도 만들어냈다.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려고 프로테스탄트(개신교)가 등장했지만,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역시 다시금 사람들의 욕망에 편승해 그들의 구미에 맞는 것들로 교회를 치장하고 있다.

켁록시 사원을 보며 느끼는 이물감이 오늘 한국 교회들 가운데서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슬픔 크고, 아픔이 크다. 21세기에 종교를 어떻게 다시 정의하느냐가 중대한 숙제가 아닐까.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종교성 강한 나라들 한 가운데서 더욱 종교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왤까.


페낭힐에서 바라본 페낭


823m 페낭힐 정상까지 관광객을 싣고나르는 모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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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도보여행 2 - 역사와 종교


콴인텡 사원, 관음사


관음보살을 모신 사원이라고 하는데, 어떤 것이 관음보살인지 도통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는 사찰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한쪽은 기름 같은 것들이 더러운 통에 담겨 쌓여 있고, 흘려내려 찌들어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다른 쪽도 정신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불결하고 무질서한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향을 하나 둘도 아니고 한 움큼씩 들고서 불을 붙여 흔들며 옮기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저런 잡다한 문화들이 혼합된 혼합불교라고 해야할까. 신심이 느껴지지 보다는 의아함이 느껴질 뿐이다.


스리 미리암만 사원


힌두교 사원은 형형색색으로 치장되어 언듯보고서 (좀 생뚱맞지만) 유치원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긴 하지만 들어가고 나오는 데 있어서 정말 마음이 편했다. 힌두교 자체가 모든 것을 흡수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특별한 경계심을 갖지 않는 분위기였다. 사제인지 신도인지 웃통을 벗은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이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해서 갔더니, 파라핀 조각으로 불을 피우고 하얀재를 내 이마에 바르고는 돈을 내라고 했다. 그래서 1링깃을 줬더니 오케이 하면서 사라졌다. 

어쩌면 이렇게도 상상력이 풍부할까? 앙코르 와트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조금 봤다고 몇 가지 그림이나 부조들이 뭔지도 알겠는데, 정말 다양한 신들과 이야기들을 생산해 낸 인도사람들의 종교성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카피탄 클링 모스크


1801년에 세워졌다고 하니, 이 역시 2세기가 넘은 사원이다. 이름의 유래나 페낭에서 그 위치에 대해 전이해를 갖고 갔는데, 그 규모나 분위기에 약간은 김이 빠졌다. 일단 더운 나라의 모스크여서 정면을 제외한 세 방향이 모두 오픈되어 있어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카자흐스탄의 모스크에서 느꼈던 그 경건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카자흐스탄은 추운 나라라서 사방을 막아 어두운 채광으로 자연스럽게 엄숙한 분위기가 만들었던 것 같다. 모스크에 들어가며 저절로 기도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서 그랬고, 덧입은 옷에서 냄새가 많이 나서 또한 비호감이었던 것 같다. 


쿠콩시/ 입장료 10링깃



원래 순서상으로 얍콩시를 먼저 갔어야 하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쿠콩시를 먼저 가게 되었다. 중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가문의 결속을 다지고 외부로 힘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개인적 사원이다. 가문의 조상들을 모시고, 그 조상을 신격화해 신앙화의 단계로 끌어올린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일년에 한두번 상을 차리고 제사지내는 정도가 아닌 아예 사원을 만들어서 가문의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로까지 견고한 터를 다지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이 종교가 되고, 다시 권력을 공유하고, 또 재산을 유지하고 늘려가는 공동운명체로 발전해 간 것이다. 

그들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과거의 조상들일까, 아니면 그 조상들을 중심으로 모이는 오늘의 구성원들일까. 조상의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또 그들의 유지를 대변한다고 하는 이들로 인해 조상은 힘을 쓰게 될 것이다. 


쑨얏센 박물관


처음엔 쑨얏센이라는 이름이 생소해서 지나쳐 갔다가, 그 이름이 우리 식으로 쑨원이라는 것을 알고는 다시 방문했다. 중국의 청나라의 간판을 내린 장본인이 아닌가. 바로 이 곳 페낭에서 그런 대업을 이루는 기반을 다졌다니 감격의 현장이었다. 원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깊숙한 곳까지 보고 나오는 곳인데, 입구에 아무도 없어서 로비에서 조금 더 들어가 뚤린 천정으로 하늘이 보이는 정원에서 돌아 나왔다. 꼭 내부를 꼼꼼하게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쑨원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았다는 것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우리 나라 독립운동가들도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활동을 했는데, 이렇게 잘 보존하고 관리되었으면 좋겠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여러 곳이 방치되고 있는 것을 보고 많이 실망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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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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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도보여행 1 - 역사와 종교

2013.5.1.

가이드북이 제안하는 페낭 조지타운 도보여행을 그대로 따라가보았다. 콘 윌리스 요새 - 퀸 빅토이라 시계탑 -  세인트 조지 교회 - 페낭 박물관 - 콴인텡 사원 - 스리 미이람만 사원 - 카피탄 클링 모스크 - 얍 콩시 - 쑨얏센 박물관 - 쿠 콩시. 만만치 않은 코스지만 오전에 완주하고 얍 콩시 근처에 있는 로컬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발걸음을 제촉했다.

일단 이 코스의 특징은 역사성에 다양성이 더해진 점이다. 역사성은 페낭이 어떻게 세계 역사 가운데 주목을 받고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해 왔는지 다양한 역사 유적들을 통해, 다양성은 불교, 힌두교, 기독교(성공회, 가톨릭), 이슬람교, 조상숭배(?) 등 여러 종교의 사원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콘 윌리스 요새/ 입장료 2링깃


그 옛날 그 먼 곳 유럽의 열강들이 이 곳까지 와서 힘자랑을 했다는 것이 참 놀랍다. 남아프리카를 돌아서 오는 항해길도 만만치 않았겠다. 남의 땅의 좋은 곳들을 차지하고 1세기 이상 주인행세를 하고서도 자신들이 신사라 하고, 세계의 평화와 질서 운운하는 말들이 정말 가소롭게 느껴진다. 오늘날엔 그들의 흔적이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 되고 외화벌이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도 일본인들이 지었던 건물들을 더 많이 보존했다면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까. 만약 일본이 아니고 서구의 어떤 나라였으면 상황이 좀 달랐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 민족 정서 속에 깔린 사대주의가 일본에게는 반대로 작용하는 것 같다. 물론 일본문화가 남아 있고 향수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고, 그 때로부터 청산되지 않은 인적, 물적 문제들은 있지만...


퀸 빅토리아 시계탑

소개 책자에는 이 시계탐이 페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건축물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왜 이것이 그렇게 유명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별로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냥 하얀색의 시계탑인데 뭐가 특별한 건진 잘 모르겠다. 한 중국인 거부가 빅토리아여왕에게 헌정한 것이고, 또 여왕이 행차를 하려다가 불발되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그 옛날(1897년 완공) 거의 이층 건물이 주를 이루고, 관공서가 3,4층 일 때 이 시계탑은 충분히 페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었을 것도 같다. 그래서 이 시계탑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내일 시계탑 앞에서 보자'라든가, '당신을 향한 사랑은 저 시계탑처럼 변치 않을 거야'라든가, 페낭의 사람들에게 시계탑은 삶의 중심에 있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한가지 아쉬움은 시계탑이 있는 거리 맞은 편에 너무도 큰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안그래도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작은 시계탑이 더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이런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경우들 종종있다. 사실 한국에는 이런 일이 더 많지 않은가. 


시청


세인트 조지 교회(영국 성공회)

1818년에 지어진 성공회 교회이다. 내부를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해서 갔는데, 미사가 끝나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했다. 겉에서 정말 넓은 정원과 하얀 외관을 감격스러운 시선을 보는 것으로도 사실은 충분히 감명을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도 '알파 코스'를 하는 것이다. 맞다. 알파코스는 영국 성공회에서 만든 것이니, 오히려 한국 개신교에서 하고 있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라 해야겠다. 

지금 이 교회가 페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역사적 유물과 소수의 신자들의 예배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처음 이 교회가 세워진 2세기 전의 상황은 어땠을까. 사실 콘 윌리스 요새에도 작은 예배당이 있었다. 내부는 텅 비어있었고, 전혀 관리되고 있지 않는 모습이었다. 마찬가지로 그 교회나 이 교회나 영국이 페낭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은 같은 것이기에 둘을 보면서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와 기독교는 어떤 관계였을까. 역사적인 자료를 보면 선교사가 먼저가서 희생을 당했을 때 그것을 명분으로 군대가 들어왔고, 군대가 들어오면 그 뒤를 따라 또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했다. 

종교, 특히 기독교는 사랑과 평화를 말하지만 과정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약자들을 죽이고, 지배하는 과정에 힘을 주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지배자의 종교로서 피지배자들을 개종시키는 과정이 뒤따랐다.


페낭 박물관/ 입장료 1링깃


영국이 지배하기 전에는 페낭의 역사가 없었던듯하다. 그 때부터 페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자료들은 꽤 자세하게 남아있는데, 그 전의 것은 전시되어 있지 않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첫번째 방에서 보여주고 있는 말레이시아, 특히 페낭을 구성하는 인종이다. 지금의 인도네시아 쪽에서 건너온 말레이 인종, 중국에서 이주해 온 중국 인종, 인도에서 건너온 인도 인종이 주를 이루고, 아르메니안, 타이, 다양한 혼혈 인종들에 심지어 일본까지 정말 다양한 인종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곳이 말레이시아이다. 길을 걸을 때도 인도사람, 중국사람, 아랍사람, 태국사람, 서양사람 등 다양한 사람을 보게 된다. 그들이 모두 말레이시아 사람들이다. 

관광지를 다닐 때도 그들이 하는 말을 가까이서 듣지 않으면 현지인인지 관광객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 다양한 인종 가운데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낸 인종이 중국사람들이고 그들의 자취가 박물관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그들이 살던 주거 형태나 가제도구들이 그대로 복원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화인들을 정착하지 못하게 했던 한국인의 배타성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 같다.


패리나칸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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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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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핫야이에서 말레이시아 페낭 가기


잠시의 머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두번째 목적지인 페낭으로 출발했다.

원래 여행사 사무실로 8:30까지 오면 9:00에 출발하는 벤을 탈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정각에 갔는데,

아침 먹었냐고 하면서 안 먹었으면 먹고 오란다. 9시에 차가 온다는 거다.

아니 그러면 그렇게 얘기를 해줬어야 여유있게 오지~

덕분에 여행사 직원들의 면면을 살피며, 문밖을 지나가는 차들, 오토바이들, 사람들을 구경하며 40분을 기다렸다. 차는 9:10이 넘어서 도착했다.

처음 출발할 때는 4명이 타고 있었다. 

450B(좀 바가지 쓴 듯) 네 명이면 수지가 않맞을텐데 하며 걱정하는척 내심 기분이 좋았다.

'오호! 여유로운 여행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것은 오산이었다.

동남아 여행에서 직행이건 완행이건 간에 어떤 차든 이동하면서 자리를 꽉꽉 채운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여기저기 정차하면서 한 자리 한 자리 채우더니 결국 국경을 넘을 때는 빈자리가 없어졌다.

더구나 최악인 것은 옆자리에 앉으신 나이 지긋한 말레이시아 아저씨께서 팔을 들고 가시는 거다.

그 약간 중동스러운 말레이시아 아저씨의 그 채취는 참을 수 없이 고약했다.

고개를 돌려 기침을 하고 그래도 아는 지 모르는 지 참.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넘어왔을 때 길을 잘 닦여있어 역시 경제력이 다르구나 했는데,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를 넘어오니 또 그 차이가 더 눈에 띈다.

도로도 그렇고, 도로 주변이 잘 정리되어 있는 태국에서는 보지 못한 고속도로다운 모습이었다.

앞서 국경을 넘을 때도, 입출국장 분위기도 완전히 달랐다.

말레이시아는 출입국카드가 없는게 너무 좋다.

대신 양손의 검지의 지문을 채취하는 것이 좀 맘에 안 든다.


말레이시아에 넘어오면 오른쪽 차선을 이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왼쪽 차선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거다.

또 일본차도 많고. 그것은 태국과 달라진 것이 없는듯 하다.



4시간 정도 걸려서 페낭에 도착을 했다.

사람들이 다 내려서 그런줄 알고 따라 내렸는데, 터미널도 아니고 차가 많이 다니는 곳도 아니어서

조지타운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었더니

기사가 '조지타운? 내가 데려다 줄께 타!' 하는 거다.

알고 보니 페낭인줄 알고 내렸던 곳은 버터워쓰였던 것.

하마터면 버터워스에서 헤매다가 택시비 엄청 들뻔 했다.

아무리 눈치가 빠르다고 해도 처음 오는 곳에서는 좀 물어보고 움직여야한다는 교훈을 살짝 얻었다.

더구나 비도 주룩주룩 내리는데 온통 젖은체로 처량한 신세가 될 뻔 했다.


또 다시 한참 달려 조지타운의 남쪽에 있는 랜드마크 콤타에 내렸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거금 16.1RM짜리 일식 돈부리를 먹고, 

택시 12RM에 숙소가 근처까지 이동했다.

비만 않왔으면 저렴한 식당을 찾았고, 또 걸어서 숙소까지 왔을텐데.

숙소에서 조금 쉬고, 비가 잦아든 틈을 타서 산책겸 도보여행코스를 돌아볼 수 있었다.




201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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