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6일 ~ 28일, 카트만두

 

ABC트레킹을 간다고 준비를 하긴 했는데,

그 방향이 잘못되었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옷이나 장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평소 몸 관리를 잘 하고 최상의 상태로 출발하는 것이 더 우선하는 준비였던 거다.

그 부분에서 나의 이번 트레킹은 실패였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많이 배운 여정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더 많으니까.

그 준비 부족으로 인해 비용은 더 들었지만,

좋은 친구를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상치 못했던 히말라야의 선물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었기에 안나푸르나(남봉)가 더 감동을 주고, 마음을 빼앗아가 버린 것이 아닐까.

그 고생을 하고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다음엔 랑탕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해 뭐할까.

 

준비하면서 갈까말까 고민을 했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떠나길 너무 잘 했다.

킴롱콜라에서 중단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다시 출발하기를 진짜 잘 했다.

그러니 이런저런 이유와 장애를 꼽으며 못하겠다고 하는 말 하지 말아야겠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면 시간 문제이지 목적하는 곳에 닿아 있을 테니까.

내년엔... 랑탕? 쿰부?

너무 자연스럽게 다시 히말라야를 꿈꾼다.

 

나름의 대장정을 마치고 다시 찾은 카트만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 카트만두.

대업을 이룬 후에 무엇이 눈에 들어올까만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꼭 봐야 한다고 손꼽는 곳 두세 곳 찾아보았다.

덜바르 스퀘어, 스와얌부나트, 파슈파티나트, 보우드나트.

외국인에게만 입장료를 받는 것이 거슬리긴 했으나

시간을 내어 보고 만지고 맡아보며 네팔을 더욱 진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수도이지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예전 것들이

그대로 오늘의 것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져 있어서인지

그 어떤 도시보다 더 편안함을 준 것 같다.

 

타멜 거리

 

 

덜바르 스퀘어

 

 

 

 

스와얌부나트(원숭이 사원)

 

 

파슈파티나트(흰두교 성지)

 

 

 

 

보우드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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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6. 포카라에서 카트만두 가기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길은 카트만두에서 왔던 길을 거슬러서 간다.

지난 번에 보지 못했던 반대편을 보기 위해 다시 오른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게 이동하는 내내 고생스런 이유가 될 줄은 몰랐다.

다름아니라 오전 시간 햇볕이 드는 자리였던 것.

빛이 과다하니 사진 찍는 것도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ㅠㅠ

그럼에도 보지 못했던 반대편은 본다는 것에 위안하며 더 따듯한(?) 여행에 만족했다.

 

참, 지도어플 네비게이션 프로그램으로는 200여 킬로미터 거리에 두시간 남짓 소요된다고 나오는데, 9시간 30분이 걸렸다.

시간 계산을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하고 신기하다.

 

 

1월 네팔 트레킹 준비하기

 

1월에 네팔에 오겠다고 하면서 준비에 어려움이 있었다.

겨울이지만 한국의 겨울과는 다른데서 오는 복장 등의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

결론부터 말하면 복장 준비는 그리 많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봄가을 산행 복장에 몇 가지만 추가하면 될듯 하다.

바지는 약간의 기모가 들어간 것이면 되고, 기온에 따라서 덧입을 수 있는 웃옷들을 준비하면 된다.

숙소에서 잘 때 난방이 안 되기 때문에 춥긴하지만, 영하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영하 몇 십도까지 사용하는 침낭 필요 없고, 침낭 안에 넣는 라이너나 비상용 비비 같은 것은 더더욱 필요 없다.

 

포터를 고용할 경우를 대비해 카고백을 추천하는 글들을 많이 봤는데, 쓸데 없는 아이템이다.

내가 가지고 간 배낭을 주고, 작은 배낭 하나에 걸을 때 필요한 것들 넣어서 매면 된다.

여행사 소속의 포터 무리가 주로 큰 카고백 두어개를 묶어 매고 지나가는 것은 봤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달리듯 지나쳐 가는 포터 무리들이 그 길에서 가장 보기 싫은 풍경이었다.

암튼 여행사 통해 가는 것이 아닌데, 포터를 고용할 생각이 있다면 작은 가방 하나 더 가져가는 것 추천한다.

 

내 경우에는 눈이라면 산 봉우리 근처에 있는 것만 봤기에 아이젠이나 스패츠 같은 것이 필요 없었다.

그런데 1주일 후에 올라간 이들은 아이젠이 없어서 더 오르지 못하고 내려왔다고 한다.

그러니 변덕스런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눈길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할 필요는 있을 거 같다.

 

길에서 만난 현지인들, 네팔인 트레커들은 그저 뒷산에 올라가는 것 같은 복장이었다.

청바지에, 온전하지 않은 끈이 달린 배낭에, 대나무 막대기에, 슬리퍼까지.

하지만 먼 곳에서 찾아가 생소한 환경의 여정을 걷는 트레커에겐 철저한 준비는 필수이다.

 

준비물(일반적인 여행준비물 외에 트레킹을 위해 필요한 것들 중심으로)

 

*비자 - 입국하면서 받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있다면 한국(대사관이 성북동에 있음)에서 받아가면 좋다.

*의복(기능성)-베이스 레이어 웃옷2, 베이스레이어(팬티)2, 미들레이어 웃옷2, 보온 내복 하의2, 방한 바지(미들레이어)2

플리스 점퍼, 아우터 레이어 웃옷, 다운점퍼

*의복소품 - 양말3, 버프, 반장갑, 방한장갑, 등산용 모자, 스포츠타올(대)

*신발 - 등산화(발목이 약간 있는), 슬리퍼, 

*등산소품 - 스틱, 아이젠, 스패츠, 무릎보호대, 시계(고도기압계-선택), 헤드램프, 물통(폴리에틸렌 소재), 핫팩

*의약품 - 고산병약, 감기약, 비타민제 등

 

 

 

 

 

카트만두 들어가는 길의 모습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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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4-26. 포카라

 

택시가 도착한 곳은 윈드풀이라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 겸 여행사 앞이었다.

함께 한 두 길동무들은 이미 윈드풀의 도움을 받아 트레킹을 시작한 것이라 주인장의 환대를 받았다.

나야 뭐 약간은 서먹하게 첫 인사를 나누고 주변을 살폈다.

이미 트레킹을 마치고 쉬고 있는 사람부터 이제 첫 걸음을 떼야해 긴장 속에 질문을 쏟아내고 있는 이들부터

다양한 필요를 가진 한국 사람들로 북적였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이제까지 그 어떤 곳보다 좋은 환전 환율이었다.

그리고 네팔 여행, 특히 포카라 여행에서 빼놓은 수 없는 패러글라이딩도 예약할 수 있어 좋았다.

물론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도 있었지만, 믿을 수 있는 곳에서 하는 것이 더 우선적 요소가 아닌가.

숙소는 다른 곳을 잡았지만, 환전과 패러글라이딩으로 윈드풀과 인연을 맺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오라는 말에 약간 위축됐고, 절벽같이 생긴 곳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더했다.

내 순서가 되어 장비에 몸을 넣고는 몸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받았다.

하지만 뒤에 안전요원이 있어 알아서 해 줄거고, 나만 타는 것도 아니니 걱정은 기우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몸을 맡겼다.

그리고 시키는대로 뛰어 발을 드는 순간 물흐르듯, 아니 새가 날아오르듯 전체가 붕 떠오른다.

와~하는 탄성과 함께 날으는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다. 예상했던 무서움은 1도 없었다.

포카라여행, 아니 네팔여행의 진수는 역시 패러글라이딩이 아닐까.

바라만 보는 것도 멋있고, 아름답기까지 하지만,

직접 줄에 매달려 바람을 타는 기분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참, 왜 아침을 먹고 오지 말라고 했는 지는 착륙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비행을 짜릿하게 경험하는 순간에.

 

포카라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국음식을 하는 식당이 많고, 특히 한인식당도 곳곳에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난 트레킹 중 허기졌던 속을 포카라 2박3일 동안 내내 한국음식(김치찌개)을 먹었다.

 

 

 

 

 

 

 

 

 

 

 

 

오후엔 산악박물관에 다녀왔다.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등반가들에 대한 기록물들이었다.

8천미터 이상 14좌를 등반한 한국인 등반가들을 따로 구별해서 전시해 놓은 곳에서는 자연스레 발길이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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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4. ABC트레킹 여덟번째날

지누단다(1,760)-비레탄티(1,050)-포카라

 

트레킹 마지막 날 아침, 노천온천으로 마무리했다.
사진은 없지만, 하룻밤 사이에 ABC로 가는 길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누단다엔 비가 내렸지만, 시누와부터 더 안쪽은 눈이 내려서 길을 분간하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아이젠이 쓸모없다고 투덜거렸는데, 겨울철에 오게 되면 꼭 챙겨와야하는 필수품임을 다시 확인했다.

눈길을 걸어야했던 이들은 곤란을 겪었다고 하는데, 길 위에서 눈 구경을 못한 입장에서는 살짝 부럽기도 했다.

 

지누단다에서 란드룩을 지나 오스트리안 캠프로 향하는 길을 생략하고 바로 포카라로 가기로 했다.

뉴브릿지로 향하는 길 윗길로 가야해서 마지막 산악 트레킹을 해야 했다.

그동안 라릿의 몫이었던 배낭을 온전히 짊어지고 비를 맞으며 흙길을 오르고, 한참을 걸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깐힘을 써야 했다.

앞에 포카라로 데려다 줄 지프가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이 힘내게 했던 것 같다.

우리를 맞으러 10분여 걸어온 기사가 무척 고마웠다.

세 시간 넘게 산길을 달리고 흙먼지 날리는 길을 달려 4시 넘어 포카라에 도착했다.

 

 

 

 

 

 

 

비레탄티,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퍼밋 확인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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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 ABC트레킹 여섯째날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


짐은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숙소에 두고,

이른 아침 가벼운 차림으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 올랐다.

라릿은 감기로 며칠째 귀한 감기약을 나눠먹었는데,

더 심해져서 함께 출발했지만 되돌아가 숙소에 남아 있어서 간만에 혼자 걸었다.

MBC에서 ABC까지 두 시간 반은 걸릴 거라고 했는데, 딱 두 시간 걸렸다.

손에 잡힐듯 가까워졌다가도 다시 저만치 멀어지는 안나푸르나와 밀당을 하며 느린 걸음 쉼없이 오른 결과였다.

 

마치 정상을 정복하기라도 한 것처럼 환호하고 두 팔을 높이 들기도 했지만,

내 종착지가 누군가에겐 출발지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르도록 허락해준 산에게 감사하며 겸손히 고개 숙인다.
사천 미터의 높이에 서서 감격하고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안나푸르나(남봉)는 거기에 사천을 더한다니 그 높이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명백하게 알고 있는 그 사실, 현실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ABC에서 머문 한 시간여의 시간은 꿈같았다.

처음 올라본 높은 곳이어서 그랬기도 하겠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둘째날 쿰롱단다 전에서 만나 킴롱콜라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교류했던 네팔 젊은이들이다.

며칠만에 다시 만난 곳이 ABC였다. 반가움에 더해 휼륭한 독사진을 남겨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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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 ABC트레킹 다섯째날

히말라야(2,920)-데우랄리(3,200)-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


고도가 높고, 해가 들지 않는 길이어서인지 오전의 길은 한기가 느껴졌지만,

계속 걸으니 어제 느꼈던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졌다.

추위에 움쿠렸던 몸도 마음도 걸음을 더할 수록 풀렸다.

감기기운은 여전했지만, 약 덕분인지 많이 회복되어

라릿을 좇아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더 일찍 출발했던 어제 만난 그 길벗 일행을 앞지르기도 했다.

 

한참을 걷고, 데우랄리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둘째날부터 계속 점심 시간이 늦어지는 것 같다.

롯지가 나에게 맞추어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맞출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전히 입에 맞는 메뉴가 없어서 결국 야채라면을 주문했다.

이틀 연속 점심으로 라면을 먹으니 약간 물리려고 한다.

신라면이긴 하지만 온전히 한국의 그것과 약간 맛이 달라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아무튼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으니 다행한 일이었다.
참, 어제 라릿이 데우랄리까지 가면 안 되겠냐고 했는 지 이유를 알았다.

이 롯지는 라릿 아내의 사촌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그렇게 요기를 하고 다시 오르막을 오르고 내린 후...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지만,

안나푸르나 가는 길은 오르막길 끝에 평지길이 온다고 해야 할까.

더구나 이렇듯 길과 강과 산이, 그리고 나무와 돌과 마른 풀들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 길이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여전히 힘겹게 걷고 있지만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기를 정말 잘 했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숨바꼭질을 하듯 보일듯 말듯 숨어 있는 마차푸차레가 더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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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1. ABC트레킹 넷째날-다섯째날

히말라야(2,920)


세시 조금 넘어 히말라야 호텔에 도착했다.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한국인 청년 두 명을 만났는데,

이들이 멈추지 않고 데우랄리를 목적지로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나니

나도 더 가야 할까 살짝 고민이 되기도 했다.

라릿도 시간여유가 있으니 데우랄리까지 가자고 했다.

하지만 오늘 충분한 거리를 걸어왔기 때문에 무리해서 더 걸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나에겐 얼마나 더 많이 걸어 시간을 단축 하느냐는 의미가 없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걷고 있다는 것 이상의 목적은 없었으니까. 


히말라야 호텔, 이제 드디어 3천미터 높이에 근접한 곳에 이르렀다.

기우인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찾아드는 장소였다.

마치 절벽 위에 홀로 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포카라에서 구입해 온 고산병 약을 먹어야 할 때가 된 것이고, 샤워 하는 것도 삼가야 하니.

뭔가 넘어야 할 중대한 관문 앞에 선듯했다.

몸을 휘감는 한기에 잦아들지 않는 강물 소리를 따라 몸도 덩달아 떨렸다.

 

사람이 많으니 주문을 미리 넣어둬야 한다고 라릿이 숙소로 메뉴판을 들고 왔다.

저녁 시간이 되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 하며 식당으로 갔더니

트레커들과 현지인 포터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트케킹을 시작한 후 처음 보는 대단한(?) 광경이었다.

자리가 없어서 현지인들 사이에 끼어서 먹는둥 마는둥 식사를 마칠 즈음

한쪽에 한국사람 세 명이 눈에 들어왔고, 반가운 마음에 합석했다.

그 중 한 중년의 남성이 몸이 안 좋아서 잘 걷지도 먹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누며 가까워졌고, 이후 여정의 좋은 길벗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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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 ABC트레킹 넷째날

시누와(2,340)-뱀부-도반(2,505)-히말라야 호텔(2,920)


약효 때문인지 몸 상태도 좋아져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평소에 약의 도움을 받긴 했었지만, 이렇게 약이 고마웠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라릿이 덩달아 코를 훌쩍이며 약을 나눠달라고 해서 순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며칠이 될 지는 몰라도 길동무인데 아까워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나도 거저 받은 것인데, 나누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촘롱을 넘어 시누와를 지난 후부터는 이전처럼 급격한 오르막은 없었다.

그럼에도 평지를 걷든 내리막을 걷든 마음은 늘 조만간 나타날 오르막길에 가 있었다.

당연히 평지의 만만함, 내리막의 수월함을 온전히 즐기지 못고

온통 오르막의 고단함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니 마음 편할 수가 없었다.

길을 걸을 때, 평지도 있고, 오르막도 내리막도 있을 수 있다.

지난 길 그리워 할 것도 앞으로의 길 당겨서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지금 내가 마주한 길로 한 걸음 두 걸음 디디면 된다. 

그렇게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가다보면 목적지에 닿게 마련이다.


트레킹 넷째날, 그리고 라릿과 함께하는 둘째날 시누와를 출발해 

뱀부에서 차 한 잔 하고 물통을 채우고, 도반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늦지 않은 시간에 히말라야 호텔에 도착했다.

 

 

 

메뉴판을 들고 오는 라릿^^

 

 

도반과 히말라야 호텔 사이에 새로 지어지고 있는 롯지

이 롯지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킴롱콜라 사람들이어서 라릿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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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 ABC트레킹 넷째날

시누와(2,340)-뱀부-도반(2,505)-히말라야(2,920)


시누와의 아침은 상쾌했다.

여전히 몸살기운이 남아있긴했지만, 하루에 대한 걱정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저녁에 맛있는 백숙도 먹었고, 무엇보다 내 곁에 든든한 벗이 있다는 사실이 저절로 미소짓게 했다. 

길에 붙어 있는 숙소의 특성상 아침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득했다.

먼저 네팔인 포터들이 큰 짐들을 짊어지고 지나갔고,

단체로 온듯한 한국인 트레커들이 뒤를 이었다.

시누아에서부터 핸드폰이 터졌기 때문에 카톡을 확인하고 전화를 거느라 여념없었다.


부인과 통화하는 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내용인즉, 함께 온 다른 사람과 걸으며 약간의 경쟁이 붙었는데,

그 사람은 평소 산악회에 속해서 산을 타던 사람으로 초반 자신만만해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결국 자신이 더 잘 걸었다고 하며 아내에게 보고를 하는 거였다.

'내가 잘 걸었다.', '내가 걸었다.'라며 큰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원하지 않아도 들리는 말소리를 들으며 '내가 했다.'가 귀에 꽂혔다.

이 길을 걸으며 '내가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길을 내고, 돌계단을 놓은 이들이 있었다.

곳곳에 쉬고, 먹고, 잘 수 있는 숙소를 만든 이들이 있었다.

주문할 때마다 음식을 요리해 가져다 주는 이들이 있다.

내가 가지고 온 거의 모든 짐을 짊어져 주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짐 전달하고, 그 길 걷고, 그 집에서 먹고 머문 것 뿐이다.

물론 그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온전히 내가, 내 능력으로 한 것처럼 큰 소리 낼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녀 왔다든지, 함께 했다든지, 허락해 주었다든지 좀 더 겸손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빚을 진 일밖에 없는 것 같다.

길에 빚 지고, 숙소에 빚 지고, 음식에 빚 지고, 짐 진 어깨에 빚을 졌다.

시누와에서 히말라야를 향한 길, 자랑하지 않으며 한 걸음 두 걸음 빚을 더하며 라릿의 걸음을 좆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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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9. ABC트레킹 셋째날

킴롱콜라(1,500)-촘롱(2,170)-시누와(2,340)


라릿과 함께하는 첫 날, 내 성향상 내 의지를 더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그가 이 길을 잘 알 것이라고 믿고 그의 판단을 존중하며 걷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촘롱을 통과했고, 바누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당연히 김치찌개는 없었고, 신라면으로 대신해야 했다(바로 윗집에 있었다는ㅠㅠ).

몸이 안 좋아 식욕이 없다보니 네팔음식은 입에 댈 수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네팔까지 와서 신라면이 뭔가 싶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네팔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 약과 음식을 크게 간과했다.

네팔음식이 먹을만하다는 여러 블로그들의 글을 신뢰했고,

약이 별로 필요없었던 이전의 여행경험을 과신했기 때문이다.

충분한 약과 입맛이 없을 때를 대비한 간편식이 날이 더할수록 더 간절했다.


거의 두 시가 다 되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또 오르막을 오르고 올라 최종 목적지인 시누와에 도착했다.

시누와에도 몇 곳의 롯지가 있었는데, 나는 맨 끝에 있는 곳에 묵었다.

해가 산을 돌아가는 바람에 길도 건물도 모두 산의 그늘 아래 잠겼다.

안 그래도 쌀쌀한데 더운물에 샤워를 하고도 한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식당에 한국말로 찬사가 달린 메뉴, 닭백숙이 있다는 것.

바로 달려가 아주머니에게 닭백숙을 먹겠다고 했고,

그렇게 한국에서의 그것과 똑같은 맛에 감동하며 닭백숙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계곡 사이로 석양에 물들어가는 마차푸차레는 더 없이 황홀한 경관을 드러냈다.

마당에 피워놓은 모닥불가에 앉아 어두워질수록 더 찬란해지는 마차푸차레를 감상하며 

함께하는 라릿과 롯지의 식구들의 위로를 받으며, 스스로를 격려하며 따듯한 시간을 보냈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멈추지 않은 것이 기적같이 느껴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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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9. ABC트레킹 셋째날

킴롱콜라(1,500)-촘롱(2,170)-시누와(2,340)


다소 힘을 회복한 킴롱콜라의 아침, 주인 할아버지에게 포터를 구하고 싶다고 했다.

먼저 가격을 묻고 흥정을 하더니 앞에 앉아 있는 젊은 남성에게 손짓을 한다.

그 사람, 포터를 할 수 있을까 싶은 외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흔쾌히 좋다는 답이 돌아왔고, 그렇게 그와 함께 걷는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이름은 '라릿 그룽'이었고, 당연히 전문 포터가 아닌

딸을 보러 처가에 온, 그 주인 할아버지의 사위였다.

며칠 일이 없으니 소일삼아 포터 일을 하기로 했던 거다.

 

라릿이 짐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걸을 때 필요한 몇 가지만 덜어 담은 배낭은 내가 맸다.

내 짐을 누군가가 대신 짊어진다는 것이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고, 그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그는 그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일 뿐이니.

 

한결 가벼워진 몸(몸 상태와 배낭)으로 걸으니 언제 절망했던가 싶었다.

못 오를 것 같았던 촘롱에 앞장선 라릿을 따라 걸으니 두시간여만에 닿았다.

'김치찌개', '닭백숙' 등의 메뉴들을 강조해 선전하는 롯지들을 보니 힘이 났다.

포카라에서도 김치찌개를 먹었으니 며칠 되지 않았지만

한국음식이 얼마나 땡기는 지, 하여간 이번 여정은 감기와의 싸움에 더해

네팔 음식과의 긴장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두 시간여 만에 점심을 먹을 순 없고, 앞에도 한식 메뉴가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로 좀 더 걷기로 했다.

퍼밋을 확인받고 내리막길로 접었을 때, 맞은편에서 오던 한국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는 짐을 열어 비상약들을 이것 저것 챙겨주셨다.

이미 다 떨어져버린 감기약, 타이레놀, 고산병약에 비타민까지 쥐어주셨다.

와~ 이건 거의 천사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

걷긴 걸어도 감기몸살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었는데,

그 분들 덕분에 조금씩 털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트레킹을 준비하며 경계했던 것이 있었다. 

가이드와 포터를 대동하는 트레킹, 투어를 하듯 단체로 하는 트레킹.

그런데 결국엔 포터에 의지하고, 주머니들의 도움으로 걷게 되다니.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자만과 성급한 판단을 조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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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8.~19. ABC트레킹 둘째~셋째날

킴롱콜라(1,715)


대부분의 롯지들이 길에 인접해 있다.

킴롱콜라에도 두 롯지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나는 아래쪽에 있는 롯지에 묵었다. 

나야풀에서 간드룩, 간드룩에서 킴롱콜라까지 오면서 

세 자매 외에 트레커를 거의 보지 못한 것으로 대변되듯 

이 작은 롯지에 묶는 이는 나 뿐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간드룩 코스보다는 란드룩 쪽 코스를 선호해서 그랬던 것 같다.

두 길이 합류하는 촘롱부터는 심심치 않게 트레커들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킴롱콜라의 오후, 그리고 저녁은 쓸쓸함 그 자체였다.

몸도 마음도 약해졌는데, 홀로 보내는 공간은 적막감에 더 춥게 느껴졌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 빨래도 못하고, 대충 행궈서 널어놓고,

저녁 시간 전에 불편한 잠을 청했다. 

두어 시간 후 움추린 몸으로 겨우 나가서는 몇 가지 음식을 시켰는데, 

제대로 먹지 못하고 디저트로 시킨 쌀푸딩을 단맛으로 겨우 먹었다.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젊은 주인이 걱정어린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따듯하게 푹 자면 괜찮아질 거라고 한 마디 건낸다.

숙소는 따듯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고, 난로라도 하나 넣어주는 것도 아니면서

따듯하게 자라고 하는 말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괜찮아질 거라는 말, 힘이되고 위로가 되는 말이었는 지 모른다.

말뿐이긴 했지만, 얼마나 고마웠는 지.

어쩌면 그 말 때문에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품게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촘롱으로 향하는 길에 내려다 본 킴롱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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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8. ABC트레킹 둘째날

간드룩(1,940m)-쿰롱단다(2,210)-킴롱콜라(1,500)-촘롱(2,170)


소소한 즐거움도 잠시, 결정적인 문제가 활화산처럼 폭발을 했다.

쿰롱단다에서 킴롱콜라로 내려가면서 몸 속에 세력을 키우던 감기 기운이 극에 달했다.

기운이 없어지니 다리도 떨리고 몸도 마음도 무너졌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걸어야 하는 건가 깊은 회의에 절망감마져 들었다.


등산에서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주의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짓누르는 짐의 무게에 저항하며, 풀린 다리가 접히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한 발 한 발에 엄청난 중력이 느껴졌고, 설상가상 오른쪽 스틱도 말썽을 부렸다.

 

겨우 강까지 내려왔는데, 다리로 가는 길에 돌담이 쌓여 있어 잠시 멈춰 섰다.
돌담 옆에 조그만 공간이 있긴한데, 지나갈 수 있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뒤에서 잡아 끄는 것 같은 배낭에,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배고픔에,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물이 많지 않아 만들어진 강바닥의 길을 따라 강을 건넜다.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앉았는데, 멀리서 세 자매가 다리로 건너며 사진을 찍고 있는 거다.

힘들게 건너온 강의 길이 다시 떠오르면서 힘이 쭉 빠졌고, 

다시 강뚝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왜 그리 가파른지, 한심해서 눈으로만 오르며 숨을 몰아쉬었다.

세 자매가 오기 전에 후들거리를 다리를 끌고 겨우 오르고 올랐다.

 

이 때 정말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목적지인 촘롱까지 갈 것인가 여기서 중단할 것인가.

중단한다는 것은 되돌아간다는것까지 포함한 결정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 뭐하러 내리막길을 내려와서 또 오르는 수고를 앞에 둔 것인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도 가중됐다.

문제는 목적지 촘롱은 킴롱콜라에서 '급격한 오르막' 2시간을 더 가야한다는 것.

도저히 더 갈 수 없다는 판단에 일단 킴롱콜라에서 예정에 없던 숙박을 결정했다.

어차피 여행은 변수의 연속인것이니 그럴 수 있는 것이라 합리화를 하며.

한정된 기간 촘촘히 짜여진 일정으로 온 여정이라 전체 일정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도 걱정도 되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온수가 나오냐는 물음을 던지며 결국 킴롱콜라에 짐을 풀었다.

역시 뜨거운 태양빛과 달리 숙소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온수가 나온다고 하니 위안을 삼을밖에.

일단 허기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피자와 음료를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밖에 세 자매가 도착했고, 잠시 앉아 쉬다가 다시 출발을 하는 것이 보였다.

식당에서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선뜻 인사를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데 그 때는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배는 고팠는데 막상 음식을 먹으려니 입맛이 없어서 몇 조각 먹다가 내려 놓고 말았다.

따듯한 음료를 다 마시고 씻기위한 준비를 해서 샤워장 겸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아까 잘 될 거라고 했던 온수기가 고장이어서 온수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기가 막히고 힘이 빠져서 주방에 가서 허탈한 표정으로 온수 얘기를 하니

그제서야 고장이라고 한다. 아까는 온수가 된다고 해놓고, 참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나마 주인 아저씨가 미안해 하며 따듯한 물을 한 통 준비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받아온 온수에 찬물을 섞어가며 작은 바가지로 궁색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의도치 않게 일찍 도착한 두번째 롯지, 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포기했다는 절망감에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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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7.~18. ABC트레킹 첫째날~둘째날

간드룩(1,940m)


몸살 기운이 있기는 했지만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버틸만 하다고 여겼다.

해가 지는 시간에 접어들면서 한기를 느꼈지만 그것도 기온이 낮은 탓인줄로만 알았다.

얼마나 힘겹게 올랐든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고,부족하나마 온수도 나오고 

손에 잡힐듯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등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들의 그 빼어난 풍광을 보고 있으니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안나푸르나로 향하는 길에서 3대 뷰포인트 중 하나인 간드룩에 있는 것이니 더더욱.

뒤늦게 도착한 네팔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폼잡는 모습도 알게모르게 크게 위안을 주었다.


저녁은 7시정도에 가능했다.

주방에서 한참이나 요리를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작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손님은 나 혼자 뿐이었다.

단체 손님들은 객실에서 먹는 지, 아니면 자신들이 준비한 것을 먹는 지 알 수 없었다.

점심은 볶음밥 종류를 먹었으니, 첫 롯지에서의 식사는 네팔 전통 음식을 먹고싶었다.

한국사람이 먹기에도 무난하다는 그 달밧을 주문했다.

 


아마 간드룩에서 본 달밧이 가장 정갈하게 담겨서 나온 것 같다.

이후에 다시 먹지는 않았지만, 현지인들이 먹는 것을 보니 이렇게 깔끔하게 담겨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무튼 처음 대면한 달밧!

닭고기가 들어있는 카레는 얼마나 자극적인지

한술 뜨고 혀를 찼던 마늘녹두죽이 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블로그들에서 먹을만 하다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입맛을 가진 것인지 궁급했다.

이후에도 한국사람들 중에 달밧을 주문해서 먹는 이들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독특한 카레 맛 때문에 다른 음식들까지도 먹지 못하는 경우는 봤다.

아무튼 몸상태처럼 입안 상태도 좋지 않아서 맛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지만

한 번으로 족한 달밧과의 첫 만남을 갖고 간드룩에서 트레킹 첫날 밤을 보냈다.


한국의 겨울처럼 기온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실내 온도가 10도 이하로 떨어지는데 난방이 되지 않으니 더 춥게 느껴졌다.

좁은 침낭 안에서 불편한 잠을 자니, 상쾌한 아침을 맞기 어려웠다.

다행히 이른 시간부터 비추는 따듯한 햇빛 덕분에 찌뿌둥한 몸이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몸도 덥혀주고, 마르지 않은 옷가지들을 순식간에 말려주었으니.

그리고 어제 저녁과는 또다른 자태로 맞아주는 히말라야가 있어 또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아~ 저기로 가고 있구나 싶어 그져 신기함에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안나푸르나 남봉

 

마차푸차레

 

 

아침으로 먹은 구릉빵. 안나푸르나 지역에 거주하는 구릉족의 전통 빵이라고 한다.

 

롯지의 꼬마인데, 사진보다 훨씬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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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7. ABC트레킹 첫째날

포카라(850m)-나야풀(1,070m)-사울리바자르(1,220m)-킴채(1,640m)-간드룩(1,94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트레킹 코스에 깔린 돌계단들,

아마도 이 계단들에게 입이 있다면 할 말이 참 많을 거다.

자신들이 뭘 잘못했기에 밟을 때마다 이러쿵저러쿵 하느냐고 말이다.

쉼없이 지나가는 트레커들이 쏟아내는 불평에 억울함을 토로할 것이 분명하다.


계단이 왜 만들어졌을까? 결국 사람들을 위해서 사람들의 수고로 만들어진 것이다.
비탈진 길에 돌로 가지런히 계단을 만들어 오르내림에 편리를 도모한 것인데
너무 가파르다고, 너무 많다고 투덜대는 말들을 들어야 하니 기막힌 일이다.
그러니까 트레커들은 불평할 자격도 없거니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한 두 번 다녀가면서 주제도 모르고 떠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계단 문제는 이렇게 정리를 할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힘들고 아픈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만큼 무리가 될 정도로 걸은 내 책임이고, 그만큼 걸을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가지 않은 내 책임이고, 몸 관리를 잘 못해서 상태가 안 좋은 내 책임이다.
간드룩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는 무릎이 아파서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어 주저 앉아야 했으니 할 말이 없다.
까미노에서도 첫 날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듯이 히말라야에서도 그런 것인가 싶으면서도
더 걷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 심신이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겨우겨우 간드룩의 입구에 다다라 너무 기뻐하며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 했는데,
기쁨도 잠시, 끝나지 않은 오르막길에 또다시 얼마간 더 투덜거리고 말았다. 
더구나 반팔반바지 차림의 서양인 남성 둘이 계단을 뛰어오르며 지나쳐 가는데
억눌러 왔던 감정이 폭발했다.
포터들이 지나쳐 가는 것도 괜찮고, 당나귀나 말이 지나쳐 가는 것도 괜찮았는데
그들의 모습은 속을 확 뒤집어 놓았다. 

아무튼 그렇게 가이드북에 있는 소요시간에 틀림없이 4:30경에 롯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비록 죽을동 살동 올랐지만, 간드룩에서 눈에 들어오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봉우리들은 모든 시름을 확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아직은 멀리 있지만, 저 곳을 향해 출발했고, 한 고비를 넘겼다는 뿌듯함에 벅찬 저녁이었다.

 

 

 

 

 

 

 

ABC트레킹의 첫 숙소인 간드룩 Peaceful Lodge.

 

간드룩의 저녁, 멀리 보이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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