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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데 산띠아고 에필로그(2)


순례를 마친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그럼 순례 후에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무엇일까?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나, 생활태도가 바뀌었나? 신앙심이 더욱 돈독해졌나? 

순례 막바지에 동행했던 K는 걷는 중 '변화'라는 화두에 자극받고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어린 친구였는데 대견했고, 나도 도전을 받았다. 끊은 담배 다시 찾지 말라고 당부를 했었는데,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계속 금연 중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처럼 큰 변화가 또 있을까? 평생 '끊어야지'란 말만 달고 살며 잘라내지 못하는 습관이 흡연이 아니던가. 

그럼 나는 어떤 변화를 체험했나, 아니 결단했나? 핑계지만, 나이가 들수록 변화가능성, 변화할 수 있는 가짓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정서가 굳어 웬만해선 외적요인에 영향을 덜 받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얘기로 스스로 합리화하며 순례가 아닌 관광으로 까미노의 인상을 추억으로 바꾸어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두 달이 지났다고 하지만 그 어디에 다녀온 기억보다 생생히 그 곳에 대한 그리움에 휩싸여 지낸다. 

이제까지 어디를 그리 단순한 생활로 긴 시간 걸어보았단 말인가? 어디에서 그런 자유를 누려보았단 말인가? 그 어디에서 고생을, 고통을, 고단한 일상을 즐겁게 받아들여 보았단 말인가? 그 어디서 투명하게 자신을 들여다보았단 말인가? 그래서 까미노는 '바람'이다. 온 몸으로 맞았던 뜨거운 바람이었고, 지금 나를 또다시 들뜨게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 나는 단단히 바람이 들었다. 아니, 바람이 났다. 나는 바람을 갈망한다. 오늘도 까미노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까미노 전후로 나에게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살아가는데 까미노라는 정말 든든한 벗을 얻은 것은 틀림없다. 갑갑한 삶 가운데 빈틈이며, 여유 공간이고, 의지할 수 있는 지팡이와 같은 친구 말이다. 그래서 난 지금 다시 친구가 보고 싶다. 거기 까미노에 친구가 밝은 미소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넉넉한 가슴으로 고단한 순례자를 안아줄 수 있는 친구, 그러니 눈물겹도록 그립지 않을 수 있을까?

2013년 12월 말에


눈물겹도록 까미노가 그립다.

그 때 그 곳의 길, 사람, 돌, 나무, 풀 한 포기도 그립다.

길 옆에 사과와 포도가 그립고, 작은 시내와 큰 강, 높은 산과 평평한 대지가 그립다.

너무 정든 친구를 남겨두고 돌아온듯 내 심장이 흐느낀다.


다시 태양에 그을리며 땀을 흘리고

다시 그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다시 물집에 아파하며 다리 절고

다시 빈대에 가려워하며 몸서리치고 

다시 궁금한 눈 깜빡이며 지나치는 이들을 바라보고

다시 배고픔 딱딱한 바게트 빵으로 달래고

다시 소리쳐 올라하며 인사 하고

다시 부엔 까미노! 하며 지나쳐 가고 싶다.


길의 숨소리를 듣고, 

길의 질문에 대답하며, 

길의 가르침을 받으며, 

길의 품에 안기어, 

길의 격려 가운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나를 그리워한다.

2013.10.23.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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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데 산띠아고 에필로그(1)



SantiaGo 苦 告 高

Go 가라

백문이 불여 일견. 충분히 갈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고, 또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까미노를 놓고 갈까 말까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여건이 된다면(늘 이 것이 문제지만), 아니 여건을 만들어서라도 꼭 가야한다. 한국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이 오냐는 눈총 따위는 신경쓸 필요도 없다. 더 많은 사람이 다녀와 한 사람이라도 더 깊어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苦 고통

하루도 고통이 없는 날이 없다. 그 고통과 함께하는 법, 그것이 인생임을 깨닫게 된다.

고통 그 이상의 것이 있는 곳이 까미노이다. 그러니 힘든 것에 대한 고민일랑 접어두자. 오히려 그 고통이 나를 성숙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픈만큼 성숙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스스로 선택한 고통의 길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告 고백

산띠아고의 최종 목적지는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길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그런데 결국 그것이 자신의 내부의 소리였음을 깨닫게 된다. 신으로 연결된 길 위에서 적나라한 자신의 본 모습을 만난다. 하루이틀이 아니라 30일, 40일의 기간이기에, 누구도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高 숭고

까미노를 추천하는 이유는, 그 길을 만들어온 많은 사람들의 숭고한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까미노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길이 아니다. 수 백년 간, 아니 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피가 만들어냈다. 그들이 품었던 기도와 꿈과 갈망이 오늘의 까미노를 까미노 되게 한다. 그 흔적을 밟아 가는 길, 뒤 따라는 길이 까미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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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일차, 까미노를 떠나는 날


10월 16일 오전 산띠아고 공항, 작은 도시의 공항임에도 크고 깔끔해서 기분 좋았다.

아침에 비가 많이 와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왔지만 그래도 기분만은 맑고 가벼웠다.

떠나나 떠나지 않는 마음을 추스르며 다음 여정을 기대하며 까미노에서의 마지막 두어시간을 즐겼다.


헤어짐의 아쉬움을 가득 안고 비행기를 타기위해 줄을 서 있다. 

파리 드골 공항으로 향할 항공기는 저가항공 뷰엘링이다.


요사이 한국사람들이 여행을 참 많이 다니고, 그 결과물로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그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여행안내 책은 물론 다양한 블로그나 카페들이 생생한 경험담들을 전하고 있다. 그래서 여행 전에 카페에 가입하고 가이드북을 통해 여행 준비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막상 그 정보를 따라 좋다고 해서 찾아가보면 별로인 경우도 있고, 별로라고 했는데 더 좋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하게 되는 말이 '그 사람은 좋았구나~'이다. 그러니 사람에 따라서 같은 것을 보고 먹어도 더 좋을 수도 있고 보통일 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까미노를 준비하며 여러 사람이 남긴 기록을 읽으면서 똑같은 길이지만 사람에 따라서 다른 평가를 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그들이 경험한 이야기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언제, 어떤 방식으로 갔느냐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같은 길을 걸은 것이겠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태도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한계의 산물이 아닐까. 결국 이렇게 장황하게 올린 까미노 [순례잡기]의 사진과 글 역시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닌 다른 시선을 가진 한 사람, 돌소리의 눈에 비친 까미노일 수밖에 없다.

 201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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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5일차, 다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10월 14일 피니스테라 버스 정류장(터미널), 동행하던 분은 묵시아로 떠나셨고, 다리 통증으로 인해 더 걷는 것은 포기하고 다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가기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9:30에 승차했는데, 해안선을 따라 거의 모든 마을을 돌고 돌아 산띠아고에 오후 1:00에 도착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버스 터미널


다시 만나 얼마나 반가웠는 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

왼쪽 부부는 벨지움 분들인데 아저씨는 내내 발 물집으로 고생하며, 아주머니는 유모차 같은 것을 밀고 순례를 마치셨다. 아소프라에서 스파게티와 와인을 나눠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은발의 아주머니는 온따나스에서 만났는데, 그 후로 따듯하게 챙겨주셨던 분이다. 너무 반갑다고 양 볼에 뽀뽀를 해서 깜짝 놀랐다. ㅎㅎ



10월 15일 다시 찾은 산띠아고 대성당, 이 날은 비가 내려서 광장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갈리시아 지방은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산띠아고에 들어갈 때 날씨가 맑은 것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제단 위에 있는 산띠아고의 뒷모습. 뒤에서 껴 안으며 귀에다 속삭이는 전통이 있다.

정오 미사를 드리고 있는 중에도, 심지어 신부님의 강론 중에도 사람들은 쉬지 않고 산띠아고 상으로 오른다.

아무리 관광의 성격이 강하다고 해도 미사 시간 만큼은 자제를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보나부페이로! 큰 향로를 흔들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 광고에 유럽에서 꼭 봐야 할 것들 중 하나로 나오는 것을 보고 가슴 뭉클했다.



산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저녁, 중국음식점에서 오랜만에 흡족한 식사를 했다.


산띠아고 대성당에 들어가면 순례자들의 필수코스가 있다. 제단 아래쪽에 있는 산띠아고의 유골함을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제단 전면 뒤편으로 올라가 산띠아고의 형상을 뒤에서 껴안으며 귀속말을 하는 것이다. 매일 쉼없이 반복되는 웃지못할 헤프닝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면 산띠아고, 즉 야고보의 유골이 산띠아고에 있다는 것도 거짓이고, 또 그 거짓에 의해 세워진 성당과 그 중심에 있는 야고보상을 포옹하며 소원을 비는 것은 더 얼토당토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도 진지하다. 어떻게 하든 그것으로 인해 뭔가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눈에 보인다. 심지어 그 먼 이국, 대한민국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산띠아고로 이름한 성당을 목적지로하여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내린 결론! 사실이었냐 사실이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믿음이다. 

시작이야 어떻든 지금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고, 그 믿음으로 인해 그들의 삶 가운데 어떤 변화, 긍정적 일들이 일어나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어떤 현상에 대해서 사실에 기반하냐 거짓에 기반하냐를 묻는 것은 일견 낮은 수준의 질문이다.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한다면 그 다음을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또 다른 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느냐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까미노 데 산띠아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사건을 일으켜주는 은총의 길이라 불릴만 하다. 그 출발이야 어떻게 되었든 지금 사람들이 이 길에 기대를 걸고(심지어 믿고)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3.10.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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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일차, 올베이로아에서 피니스테라(등대까지) 가는 길 40km


어둠 속에 앞서 가던 순례자들을 따라가다 길을 벗어나는 바람에 보게된 큰 제방이다. 덕분에 이날 40km 훌쩍 넘게 걷게 되었다.



왼쪽으로 가면 피니스테라, 오른쪽으로 가면 묵시아.

원래 산띠아고 이후 땅끝은 피니스테라였는데, 최근들어 묵시아가 주목받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만든 "The Way"라는 다큐영화의 종착지가 묵시아였던 것이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 사람들의 최종 목적지는 거의 묵시아였다.

촬영 당시 피니스테라가 카메라발이 잘 안받아서 묵시아서 앤딩을 찍었다고 하는데... 재미있다.


드디어 바다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날이 흐려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멀리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쎄Cee와 붙어있는 꼬르꼬비온Corcubion의 작은 바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했다. 비가 내려 처음으로 판초우의를 입었고, 점심을 먹는 중에도 비가 계속 쏟아졌지만, 이 역시도 그립고 또 그리운 순간이다.


마지막 걸음 함께 해주신 길벗!


역시 까미노는 십자가의 길이라 할 수 있다. 곳곳에 있던 그 십자가 탑, 피니스테라에서도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거리 0.00km


피니스테라 등대. 약간 멋은 없다. ㅋㅋ


돌십자가 앞 쪽에 검게 그을린 곳이 있는데, 까미노 마지막을 장식하는 의식으로 개인 소품을 태우는 곳이다. 이 날은 비가 내린 후이고 바람이 불고 있어서 불이 잘 붙지 않았다.



흐리긴 했지만 두번째 목적지인 땅끝 Finisterre에 도착했다는 것은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동행한 분은 기쁨에 땅끝 언덕을 떠나지 못하신다. 그런데 나는 더 오래 머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올베이로아 알베르게에서 또 베드버그에 물려서 심난한 것도 한 가지 이유이고, 더 중요한 이유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라는 순례의 목적지에서 끝이라는 감정을 다 분출해 버렸기 때문이다. 더 짜낼 감격이 고갈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미 마음 속으로 끝을 품어 버렸기 때문에 또다시 보게된 물리적인 끝은 감흥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젠 끝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어떻게 이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새롭게 시작할 것인가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감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다리 앞 정강이 부분이 너무 아파서 걷는데 무척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함께한 분이 앞에서 제촉해 걷지 않았으면 중간에 포기하거나, 버스를 이용했을 지도 모른다. 용케도 걸어와 끝에 서 있다는 것, 참 놀라운 일이다. 결국 다리 통증으로인해 묵시아까지 걸어가겠다는 계획은 포기했다. 묵시아는 순례 중에 생긴 목적지이기에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쪽으로 타협을 봤다. 

201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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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일차, 네그레이라에서 올베이로아 가는 길 34km



텐트도 아니고 천막을 덮고 노숙하며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들. 사진에 안 잡혔지만 개 한마기가 곁에 있었다.



빌라세리오Vilaserio였던 것 같은데, 마을 가운데 있는 바에서 먹은 보까디요를 잊을 수가 없다. 바게뜨를 불에 데워서 사이에 얇은 또르띠아를 넣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부드럽고 맛있던지. 생각만 해도 침이 꿀떡 넘어간다. 사진 찍을 겨를도 없이 먹었나보다.



옥수수를 수확하는 농기계.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바로 분쇄해서 트럭에 실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옥수수는 전체로 조각이 난채로 저장고에서 숙성시켜 겨우내 소를 먹이는 듯하다.



훌륭한 시설도 아니면서 12유로나 받은 올베이로아 오레오 알베르게. 

더 황당한 것은 여기서도 베드버그에 물렸다는 사실이다. 



순례길 어디서든 긴장을 놓으면 안된다. 긴 거리이든 짧은 거리이든 말이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향하는 마지막날 4km남짓 걸었는데, 그 짧은 구간에서 이제까지 전혀 문제가 없었던 왼쪽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것이다.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생각해 보니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4km라고 얕잡아 보고는 양말 신기 전에 바세린도 바르지 않았고, 신발 끈을 멜 때도 순례 중 터득한 물집 잡히지 않는 방식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짧은 거리였지만 발에 탈이 난 것이다. 아휴~ 그 조그만 물집이 걸음 걸이를 얼마나 방해하는 지, 참 신경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순례길에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으면 안되는 것 같다. 다르게 생각하면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순례 초반 이 물집으로 인해 많이 고생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30일만에 순례를 마쳤다는 자만에 빠지지 말고 다시금 자신을 깊이 성찰하라는 채찍임에 틀림없다. 짐 깊숙이 들어 있던 반짓고리를 꺼내고 바늘에 실을 꽤어 물집을 관통시켰다. 따끔함이 있었지만 작은 아픔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201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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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일차, 산띠아고에서 네그레이라 가는 길 21km




예쁘게 서 있는 가로수는 다름아닌 아카시아 나무다.


다시 피니스테라까지 77.668km.








배나온 알베르게 주인과 침낭을 말아드린 스페인 할머니 순례자.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앞두고서 며칠 간은 거의 30km이상을 걸었다. 그런 하드한 걷기에 익숙해진 몸이었는데, 보너스 순례 첫 날 21km를 걷고는 넉다운이 되었다. 왜 그런 것일까? 해답은 마음에 있었다. 일단 1차 목적지에 도착한 감격에 마음이 헤이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출발하며 걷는 길의 거리에 몸을 맞추었던 것이다. 30km를 상정하고 걸으면 그에 맞게 몸이 움직이고, 20km를 계획하고 걸으면 거기에 몸이 맞추어지는 것이다. 또 짧은 거리라고 무시하는 마음이 있어서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까미노는 몸의 순례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마음의 순례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마음으로 걷는 길, 마음으로 이겨내야 하는 길이 까미노이다.

20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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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차,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서기 813년 산띠아고의 유골이 발견되고 교황이 인정함으로써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는 예루살렘과 로마와 함께 3대 성지가 되었다. 꼼뽀는 '들판', 스뗄라는 '별이 빛나는'에서 온 것으로 목동이 산띠아고의 유골을 발견했을 때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대성당 가운데 탑 중앙에는 산띠아고(12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 상이 있다.



산띠아고 대성당에서는 매일 11시에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있다.

시작하기 전에 출발지와 나라별로 구분하여 순례자들의 숫자를 발표한다.



산띠아고 알베르게 Seminario Menor, 학교이기도 한데 한 층을 알베르게로 만들어 놓았다. 

다른 곳과 달리 하루만이 아닌 원하는 날 수만큼 머물 수 있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30일 간의 까미노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내가 갖고 왔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주었나. 아쉽게도 까미노는 나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더 큰 것을 얻었다. 그것은 '나'라는 문제를 더 명확하게 보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다루는 방법,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 같다. 버리기, 단순하게 살기, 걷기, 자기일 자기가 하기, 미루지 않기 등등. 결국 매일의 삶이 까미노가 되어야 함을 배우게 했다.

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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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차, 몬테 도 고소에서 산따아고 데 꼼뽀스뗄라 가는 길 4.5km






순례자 사무소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순례자들. 오전 9시에 열린다.



순례확인증!!!


순례확인증을 받고 맞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 앞에서 감격의 순간.


덕분에...



오전에 도착하기위해 몬테 도 고소에서 머물고 순례자 사무실이 열기 전에 도착한 산띠아고 데 꼼뽀스텔라! 그리고 긴 순례길을 확인받고 마주한 산띠아고 대성당! 30일 동안 익혀왔던 감격이 폭발했다. 소리지르고, 뛰고, 눕고, 절해도 모자란 순간이다. 그 자리에 서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한참 동안 멈추어 서서 그 감동을 온 몸으로 만끽했다. 걸으며 한두번 스쳐지나간 외국인들과도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정답게 사진을 찍었다. 무엇을 해도 기쁘고, 무엇을 봐도 가슴 벅찬 곳, 인내로 걸어온 순례자가 만나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이다.

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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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차, 아르수아에서 몬테 도 고소 가는 길 35.2km




산띠아고 전 20km 표지석



옥수수 창고 오레오. 1893년이라고 씌여 있다. 


수제 햄버거. 서너번 허기를 채우는데 신세를 진 것 같다. 

콜라는 서너 번이 아니라 수차례, 어떨 때는 하루에 두 번도 갈증과 에너지 충전을 위해 흡입했다.


몬테 도 고소에 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다녀갔다는 기념비이다. 

순례자들이 이 언덕에 서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의 탑들을 볼수 있는 즐거움을 주었다고 하여 '즐거움의 산' 몬테monte(산) 도 고소gozo(즐거움)라고 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소의 알베르게는 정~말 크고 깨끗해서 인상적이었다.

산띠아고 꼼뽀스뗄라를 4km 남겨두고 묵어가기에 최상의 공간이다.



사리아에서부터 걸어온 스위스 아가씨 둘과 함께 방을 썼다.


막연하게 까미노를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가 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의심했었다. 솔찍히 순례를 시작하고 며칠을 지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벌써 29일차가 되었고, 예정대로라면 내일,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입성하게 된다. 여전히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무슨 힘이 나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걷도록 한 것일까. 그런데 답은 아주 간단하다.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작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갈 수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것 같다. 시작할 수만 있으면 나머지는 그것으로 인해 완수될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그러니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그 이후 계속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쉽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첫발을 내디디기 위해 얼마나 동분서주 했나. 그리고 처음 이틀을 수일처럼 여기며 마음 졸이지 않았나. 그리고는 막바지에 이른 것이다. 마지막 27, 28일차가 무척 힘겨웠지만 이젠 그런 모든 고통도 넘어서는 감격의 순간으로 성큼 다가가고 있다. 
201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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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차, 아이레헤에서 멜리데 지나 아르수아 가는 길 37.1km

까미노 초반에나 보았던 광경을 멜리데에 들어서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사리아에서 걷기 시작한 이들이 많아서인지 순례자들이 줄줄이 도시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멜리데에서 가장(?) 유명한 뿔뽀 요리집, 뿔뻬리아 에세끼엘이다. 발음이 좀 ㅎㅎ



그 유명한 뿔뽀! 스페인 사람에게도 추천을 받았던 그 뿔뽀! 

그러나 한국사람들이 느끼는 공통점, 초장에 대한 간절함 ㅋㅋ 


뿔뽀보다 더 맛있었던 빵! 바로 앞에 앉은 덕분에 쉽게 몇 덩어리 더 먹을 수 있었다.


빨래터


프랑코 독재 시절 제지산업으로 돈을 벌려고 심었다는 유칼립투스 나무.

이름은 멋진데 생태계를 파괴하는 나무라고 한다. 다른 나무들이 함께 자라지 못하게 하고, 새들이 살지 못하게 한단다. 경제논리로 여전히 심겨지고 관리되고 있는 모습이 보여 씁쓸했다.


아르수아 까미노 표지석 옆에서. 10월 초순을 지나는 까미노에선 쪼리만 신으니 발이 좀 시려웠다.

운동화 같은 것을 챙겨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다시 가도 무게 때문에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원래 쪼리의 용도는 실내에서 샤워와 이동을 위한 것인데, 발에 바람도 쏘이고 답답한 신발을 다시 신고 싶지 않아 숙소 도착후에는 거의 착용했다.


아르수아에서 먹은 피자. 


사리아 이후에 나타난 단체 순례자들이 뿔뽀(문어요리)의 고장 멜리데 초입에서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까미노를 만든 것이지만, 한꺼번에 줄지어가는 순례자들 사이에 끼어서 걷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속도도 다르고, 때로 조용히 걷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소란하기도 하고 잘못하면 서로의 진행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순례 중에 한국인 단체 순례자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모 여행사에서 모집해서 열댓 명이 함께 왔다고 했다. 안내자가 있어서 숙소를 잡거나 짐을 부치는 일을 돕는다고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 숙소를 예약하고(공립 알베르게는 예약이 안되지만, 사설 알베르게는 가능) 묵으면서 민폐를 끼치고, 또 식당이나 바에서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목격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우선은 한국사람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프랑스나 스페인 사람들도 단체로 오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 나라 혹은 바로 옆 나라로 한두 구간을 정해서 체험하는 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 먼 곳에서 40일 가까이 단체로 오다니. 그런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여행사도 대단한 것 같다. 
바라기는 까미노를 두고는 장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길이 지금처럼 순수하게 개별적인 순례자들의 성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 분들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상술이 깔려 있고, 단체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약간은 우려했었는데, 자신들은 순례라고 우기지만 단체투어로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201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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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차, 페레이로스에서 뽀르또 마린 지나 아이레헤 가는 길 27,7km


아스팔트길이었지만 운치있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잠시 후 깔끔한 관광버스처럼 생긴 시내버스가 들어왔는데,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뽀르또마린으로 들어가는 다리인데, 너무 높아 현기증이 나서 최대한 인도 안쪽으로 걸어야 했다.




갈리시아의 특이한 농가풍경 중 하나인 옥수수 저장고 오레오.



>>까미노 준비하기
1) 일정 정하기
가장 먼저 언제 갈 것인지, 며칠을 예정하는 지의 큰 그림을 그린다(항공권 6개월 이상 전 구매).
항공권과 열차 티켓을 가능한 미리 끊을 수록 저렴하다. 특히 떼제베 티켓은 가격 차이가 굉장하다. 3개월 전 오픈 할 때 바로 끈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 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최종 비행기표는 확정하지만, 관광을 위한 산띠아고 이후 유럽 일정은 오픈해 두는 것도 좋다. 까미노 일정도 유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까미노를 먼저 걸을 지, 아니면 다른 곳 관광을 먼저 할 지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긴한데, 까미노 이후 여행은 감흥이 적다는 것이 공통적인 의견인 것 같다. 
2) 몸 만들기
가장 중요한 준비는 역시 몸 준비이다. 
준비물이 없어서 곤란을 겪는 것이 아니라 몸이 탈이나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좋은 운동법은 정기적으로 등산을 하거나 조금 긴 거리를 까미노와 비슷하게 걸어보는 것이다.
3) 배낭, 운동화, 스틱 사용법 익히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순례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배낭을 매고 끈을 조절하지 않고 걸으면 어깨와 등에 무리가 간다.
또 운동화는 일단 큼직한 것으로 준비하되 역시 끈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면 더 좋을 것 같다.
스틱의 경우 그냥 들고 오는 것이 아닌 평지, 오르막, 내리막, 비탈길 등에서의 사용법을 익혀와야 한다. 거의 90% 이상의 순례자들이 지팡이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면 자신의 무게 1/3을 덜어주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되고, 짐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4) 물품 준비
앞에 배낭, 운동화, 스틱은 좀 더 일찍 준비하고, 나머지 물품들은 카페들의 정보를 참고 하고, 평소 자신의 생활습관을 고려해서 준비하면 된다. 웬만한 것들은 길 위에서 해결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짐을 가볍게 할 수 있는 법이다. 특히 의약품의 경우는 좀 더 세밀히 준비하면 좋겠다. 벌레가 잘 타는 사람은 항알레르기(항히스타민제) 약을 한국에서부터 준비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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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차, 사모스에서 사리아 지나 페레이로스 가는 길 26.9km(3) 


극도의 가려움도 멋진 광경 앞에서는 멈추어 섰다. 돌아가서 후회할 것 같아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베드버그에 물리면 사후처리가 중요하다. 옷가지는 세탁을 하고, 모든 짐을 소독해야 한다. 햇볕이든 건조기에든...


사모스 수도원에 딸린 알베르게에서 또 베드버그에 공격을 당했다. 침낭 안에 몸을 다 넣고 잤더니 이젠 손과 목 주변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째인가. 9.3km 더 가서 뽀르또 마린까지 갈 수 있었는데, 이 베드버그가 발목을 잡는다. 베드버그에 물리고 하루이틀은 정말 죽을 맛이다. 씻고, 먹고, 자는 것에 대한 의욕도 사라지게 할 뿐만 아니라, 더 걷고 싶은 마음도 없애버린다. 무엇보다 베드버그에 물린 후에는 후속 조치를 해야하기 때문에 온통 그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모든 짐을 소독해야 하는데, 우선은 옷은 빨래를 해서 건조기에 돌리고, 나머지 짐들은 햇볕에 널어서 말려야 한다. 40도인가 45도 이상이 되면 베드버그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왜그러냐면 베드버그는 야간에 활동을 하지만, 꼭 침대에만 산다는 보장이 없다. 짐 속으로 들어와 살면서 공격을 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짐을 털고 가야 한다. 페레이로스 알베르게는 허름한 곳이었지만, 길 옆에 넓은 뜰과 빨래줄이 있어서 모든 짐을 꺼내놓고 말리기에 적격인 곳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살아 움직이는 베드버그를 목격했다는 사실. 봉사자에게 보여주었더니 홈키퍼 같은 것을 왕창 뿌리고 간다. 어쩔 수 없이 묵어야 하지만 좀 찝찝했다. 


Manu del Peregrino 

사모스에서도 좋았는데, 작은 마을 페레이로스의 바에서 먹은 순례자 메뉴도 마음에 들었다. 워낙 샐러드를 좋아하는데 두 곳 모두 풍성하게 담아 주어 좋았고, 주메뉴와 후식 또한 괜찮았다. 순례자 메뉴는 오늘의 메뉴와 같다. 까미노 초반 마을들은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인지 미리 예약을 해야 했는데, 그 이후부터는 그냥 가서 주문하면 한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도 먹고, 7시라는 시간에 구애받지도 않는 경우들이 많았다. 
201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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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차, 사모스에서 사리아 지나 페레이로스 가는 길 26.9km(2) 

사리아의 알베르게가 모여있는 마요르길 가.





사리아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순례자 무리. 이 날이 일요일이어서 더 많았던 것 같다.




산띠아고가 100km 남았다는 표지석. 한국사람들만 낙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100km이상만 걸으면 순례증명서를 주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순례자들은 대개 자신의 일정에 맞추어 중간에서 출발한다. 빰쁠로나, 부르고스, 레온 등이 중간에 출발할 수 있는 대표적인 도시이고,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서 100km남짓한 거리에 있는 사리아는 마지막 출발지가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사리아를 통과하는 순간 갑자기 많은 순례자들을 보게 되었다. 옷, 배낭, 신발이 깨끗한 것을 보면 사리아에서 출발하는 것이 분명하다. 또 단체로 걷는 이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전까지 만났던 순례자들과 달리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느라 옆에 있는 다른 순례자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래서 '올라, 부엔까미노~'라고 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돌려도 눈도 안 마주치고 앞서가는 이들도 있었다. 700km 가까이 걷고 있는 순례자에게 참 거슬리는 상황이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떨까. 이 길에 서 있다는 것,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에 100km이든 800km이든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길다고 자랑할 이유도, 짧다고 위축될 이유도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걷고 있다는 것이니.
201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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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차, 사모스에서 사리아 지나 페레이로스 가는 길 26.9km(1) 



사모스 수도원을 나설 때 정면에 있던 노란 화살표는 이후 까미노에 대한 순박한 상상을 하게 했다. 이전처럼 어두운 길 어려움 없이 걷겠지 하는. 하지만 마을을 벗어나며 어둠 속을 걸으면서 그 모든 꿈은 산산히 흩어지고 말았다. 계속되는 어둠, 그 어둠 가운데 숲길, 그 숲길 가운데 공동묘지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집과 마을들, 그 공동묘지와 빈집들 가운데 동물들의 우는 소리들... 등골이 오싹하기를 수차례 하고 나서야 겨우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어둠이 더 오래 지속되었던 거다. 여전히 밝은 아침은 아니지만 길이 보이고 나무가 구분이 되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위안이 되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위 사진은 그 때 촬영한 장면이다. 그 후에야 순례자들의 모습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아~ 이렇게 '무서운' 까미노는 처음이었다. 다시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ㅎㅎ 



소 두마리가 한참이나 눈을 뻐금거리며 처다봐서 신기한 마음에 한 컷!



순례 중 가장 맛있는 아침식사를 했다. 어두운 길을 걸으며 하도 진을 뺐기에 허기는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걷고 있을 때는 웬만해서 오래 앉아 식사를 하지 않는데도 40분이 넘게 앉아서 먹고 뜸을 들인 곳이기도 하다. 사모스에서 오는 길과 깔보르에서 오는 길이 만나는 곳인 아기아다에 있는 바Bar였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음식을 하는 것이 약간 서툴렀기에 더 맛있는 또르띠아를 먹었을 수 있었다. 주문을 하면 바로 들어가서 감자가 들어간 계란 반죽을 부쳐서 나오는 거다. 주문하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커피도 너무 맛있었고 전통적인 모양은 아니었지만 따듯한 또르띠아도 정말 맛있었고, 더우기 빵은 최고로 맛있었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안되는 스페인어와 몸짓으로 빵을 더 받아 나오기까지 했다.

201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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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차, 오세브레이로에서 사모스 가는 길 32.4km(2) 

어, 저기 소가 넘어가네~


푸른 초장, 맑은 시내물 가로~



사모스 수도원Monasterio de Samos, 유럽에서 제일 오래된 수도원으로 6세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수도원 부설 알베르게




높이 25m의 1000년 된 사이프러스 나무








알베르게 앞 오른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은 순례자 메뉴(오늘의 메뉴). 샐러드도 풍성하고 고기 맛도 좋았다.


사모스로 오는 길, 이제 30km를 넘게 걸으며 아무렇지도 않다. 사실은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그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미는 자동적인 반복이 연속해서 일어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솔직히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지만 가야한다는 의지가 몸을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앞으로 더 앞으로 나가니, 멈추어버린 몸이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한 발 한 발을 내 디딜 때마다 그 느낌을 몸으로 받으며 생생하게 걸어야 하는데, 발도 무릎도 골반도 스틱잡은 손과 팔도 마비되어 걷고 있는 거다. 그렇기에 몸의 마비에서 깨어나는 것이 순례의 또하나의 과제가 되는 것 같다. 걷고 있다고 해서 걷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함께 소통하며 걷는 것이 잘 걷는 것이 되겠다. 그래서 몸에 부치도록 긴 구간을 잡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몸의 상태를 봐가면서 나아갈 길을 잡아주어야 한다.
201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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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차, 오세브레이로에서 사모스 가늘 길 32.4km(1) 

길을 잘못 들어 차도 위를 한참을 내려가면서 맞는 길인가 초조해 했는데, 지도에 나와있는 지명 리냐레스를 보자 얼마나 반갑던지, 카메라를 자동으로 꺼내서 한 컷 담았다.


갈리시아에 들어서면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노란 화살표이다. 과도할 정도로 많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가 있는 지방이기 때문에 더욱 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닐지.



어떤 순례자가 갈리시아는 영국보다도 비가 잦다는 얘기를 했는데, 비도 그렇고 오전엔 안개가 많이 끼는 것 같았다. 산 로께 고개Alto San Roque(1,270m)에 있는 순례자 기념물이다.


현지인들이 손수 만든 지팡이 하나 구입하고 싶었지만...



뽀요 고개(1,335m), 산띠아고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지점을 지났다.



초장으로 출근하는 소떼. 멀리 보이는 구획지어저 있는 풀밭들이 소들을 위한 초장이다. 풀을 적당한 크기로 키워 옮겨가며 먹이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 소들이 풀을 뜯기위해 초지로 향한다. 사람들에겐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던 개들이 소들에겐 얼마나 사납게 짖으며 몰아가던지 재미있게 지켜봤다. 소는 풀이 어떻게 자라는 지 걱정하지 않고 자신 앞에 있는 풀을 최선을 다해 뜯는다. 그들에게 주어진 오늘의 과업이다. 먹는 것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순례길 많은 에너지 소모 때문인지) 저녁을 그렇게 많이 먹지만 이튿날 아침이면 여지없이 뭔가를 위장에 넣어줘야 한다. 어제 먹은 것이 소화되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있긴하지만 그렇다고 오늘 안 먹을 수 없다. 오늘은 오늘의 양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획일화되어 가고 있지만,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 있었다. 바로 유목민적 삶이다. 대개의 삶이 어제의 수고로 이룬 것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정착민의 그것이라면 유목민은 거의 오늘에 집중해 산다고 볼 수 있다. 대대로 살아갈 집을 튼튼한 재료로 짓고 밭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축적하기위해 내 땅 네 땅을 구분하고는 스스로 능력치 안에서 경쟁하고 비교하는 것이 정착민이라면 하늘이 허락한 것을 찾고 그것에 만족하는 이들이 유목민일 수 있겠다. 정착민이 지키는데 무게 중심을 두고 보수적인 성향을 띤다면, 유목민은 이동하고 변화에 익숙한 진보적 성향을 띤다고 볼 수 있겠다. 
단편적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본 것이지만, 까미노를 비추어 생각해 보면 까미노는 순례자들을 정착민이 아닌 유목민으로 초대한다. 어제의 어떤 것, 몇 살인지 직업이 뭐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가 아닌 오늘의 한 걸음에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오늘 길을 찾고 먹을 것을 구하고 숙소를 정하는 모든 과정이 바로 유목민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오늘 걷게 되는 길에 자신을 맞추고 또 새로운 숙소의 새로운 조건에 늘 새로운 마음으로 적응해야 한다. 그래서 어제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오늘은 오늘의 새로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일상이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 같은 일을 하게 되지만 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그 날은 새로운 날이 되지 않을까. 어제 했기에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닌 오늘을 사는 삶, 사역도, 사랑도 그랬으면 좋겠다. 까미노의 유목민처럼...

201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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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차, 오세브레이로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1층의 2층 침대가 빽빽하게 들어찬 곳을 배정받고,

비교적 늦게 도착한 나는(90번째) 2층의 단층 싱글침대방에 배정을 받았다.

함께 올라간 외국인 여성과 럭키를 외치며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잠시 후 1층에서 올라온 어떤 아저씨는 1층에 가봤냐고 하면서 화를 내고 내려갔다. ㅋㅋ



까미노에서 총 다섯 개의 무지개를 봤는데, 오세브레이로에서 산을 중심으로 양 쪽에 두 개를 목격했다.


날씨가 얼마나 변덕스럽던지 서너 시간 동안 맑았다 흐렸다 비가 내리고 다시 맑아지는 등 정신이 없었다.


복원된 것이긴 하지만 세워진 연도를 기준으로 까미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고 한다.

이 지역 교구 사제였던 엘리아스 발리냐 삼뻬드로가 유럽에 까미노의 의미를 역설하고 노란 화살표 제안하는 등 현재의 까미노를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펼쳐진 각 나라의 성경들 중 한국의 공동번역 성경이다.





오세브레이로는 산 정상에 위치해 풍광이 좋고, 또 그렇기 때문에 기후변화가 커서 안개가 꼈다가 다시 비가 오다가 또 맑아지는등 몇 시간 동안 여러 날씨를 경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오세브레이로를 중심에 놓고 양쪽에 나타난 무지개는 정말 장관이었다.
이 곳엔 까미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 있고, 그 곳에 있던 사제가 유럽 전역을 돌며 까미노와 그 상징인 노란 활살표를 알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주교는 그 지역의 둥그런 모양의 초가집을 보존하기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성당은 프랑치스코 수도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다른 성당의 미사와 조금 다른 것도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성당과 관련해서 전해내려오는 전설인데, 성찬식 빵과 와인이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고, 또 마리아상이 그것을 보려고 고개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뭔가 냄새가 난다. 당시에 가톨릭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성당을 띄워볼려고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소문으로 인해 또 이 곳이 얼마나 번성할 수 있었을까. 면제부를 구입하면 지옥에 내려간 조상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말이다. 이 뿐만 아니라 가톨릭 성당들 곳곳에서 이런 전설들이 전해내려오는데, 무지한 시대에 유용했던 평신도 통제방식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지금도 그런 이야기에 혹해서 그 곳을 찾아와 기도 한 번 더 하는 이들도 있으니, 꼭 과거의 얘기만도 아닌 것 같다. 그런 이야기에 끌리는 것이 인간 내부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면 현실에서 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201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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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차, 비야프랑까에서 오세브레이로 가는 길 30.4km(2) 








캐나다인 순례자 

언제부터인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캐나다 남성이 길을 멈추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곤 서로 사진을 찍자고 하더니, 외국사람을 찍은 사진이 없다고 나보고 포즈를 취해보란다. 나는 이미 슬쩍슬쩍 이 사람 사진을 찍으며 왔는데...


라 파바로 가파른 길을 오른 후에는 능선의 탁 트인 길을 걸을 수 있어 좋았다.

가이드북에는 라 파바에서 묵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산을 오르다 중간에 멈춰버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거리도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사진에 보이는 라구나 데 까스띠야를 지나 오세브레이로를 향해 계속 걸었다.


이제부터 갈리시아라는 표지석. 갈리시아는 까미노의 마지막 지방으로 주도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이다.
여전히 걸어야 할 구간이 많이 남았지만 끝이 보이는 것 같아 감격스러운 곳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기차를 타는 것보다, 버스나 승용차를 타는 것보다,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것이 잘 볼 수 있다. 빠르면 목적지에 더 일찍 도착하겠지만 놓치는 것이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 느리기에 주변은 더 천천히 지나간다. 걸을 때도 너무 빨리 걸으면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 멈추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너무 느리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를 유지할 때 주변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고, 목적지에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까미노 최고의 유익은 걷는데 있다. 가장 느린 수단인 걷기로 순례하기에 많이, 자세히, 깊이 보게 되니, 또 생각도 그에 잇따를 수밖에 없다. 사람도, 자연도, 마을도, 도시도, 동물도 이야기 거리가 되고, 생각 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전거보다는 걷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걸을 때도 속도가 붙으면 멈추기 쉽지 않은데, 자전거는 말해 뭐하랴. 까미노는 그래서 걷기위한 최적의 길이고, 또 걸어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길임에 분명하다.
201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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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차, 비야프랑까에서 오세브레이로 가는 길 30.4km(1) 




내리막이 얼마나 급한지 아래에 있는 마을 뜨라바델로Trabadelo가 바로 발 밑에 있는 것처럼 눈에 들어온다.



까미노에서 심심치 않게 지팡이와 가리비를 파는 집들을 볼 수 있다.




말을 이용하려면 연락하라는 안내문이 오세브레이로까지 힘든 구간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까미노 최악의 내리막을 만났다. 비아프랑까를 벗어나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우측 오르막을 오르는 까미노가 있다. 어두운 시간에 몇 안 되는 순례자들이 오르다 결국엔 앞뒤에 아무도 없는 산 길을 걷게 되었다. 이 길이 맞는지 반신반의하면서 걷다가 저 만치 멀리서 내가 걸어온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곤 안도하며 가던 길을 제촉했다. 그런데 안심은 얼마 가지 않아 분심으로 바뀌었다. 까미노 최악의 내리막을 만난 것이다. 전체적으로 긴 구간은 아니었지만, 무릎의 고통을 참아내는데 한계를 느끼며 미끄러지듯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내리막은 가혹하다. 인생도 그렇겠지... 내리막에서 중심을 잃으면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럴 때일수록 더 함께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잡고 있는 지팡이를 더 꽉 붙잡고, 다음 목적지를 위안 삼아 힘을 내야한다.
201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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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차,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


비야프랑까에 거의 도착해 갈 즈음 왼편 언덕 위에 이런 멋진 장면이 시선을 끈다.


비야프랑까 공립 알베르게. 빨래터가 좁고 주방은 크기에 비해 불이 적어서 여러명이 요리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 아베 페닉스에 묵으면서 저녁을 사먹어도 괜찮을 수 있겠다. 한 가지, 광장을 지나 우측으로 깊이 들어가면 씨에스타에도 문을 여는 까루프가 있어서 좋았다.



'또 다른 산띠아고', '작은 산띠아고'로 불리는 산띠아고 교회.

산띠아고로 계속 가지 못하는 중세의 순례자들은 이 문을 통과함으로써 산띠아고에서와 똑같은 영적 축복을 받는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백작들의 궁성


산 프란시스꼬 교회




순례길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멀리에 가 있다.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는 습성들에 매어있다는 것을 부인할수 없다. 순례를 통해 변화? 아니 내 모습, 진짜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다. 내가 나를 어찌할 수 없음을,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함을 더 절실히 깨닫는 장소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7:18 
뭔가 배우는 것 같고, 깨닫는 것 같고, 성찰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 본질적으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25일 동안 순례길 위에 있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에 적이 실망감이 든다. 그러나 그럴줄 알았던 측면도 있으니 절망은 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더 적나라하게 나 자신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201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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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차, 모리나세까에서 비야쁘랑까 가는 길 31.9km(2) 







10월에 접어들면서 포도 수확철에 들어간 것 같다. 포도주용이기때문인지 바로 화물칸 가득 실린 것을 볼 수 있다. 



스페인 소세지 초리소가 들어있는 작은 빵... 너무 맛있어서 한 컷!


까미노에선 수많은 외국인들을 만나게 된다. 영어가 짧아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주로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을 뿐이다. 영어를 잘한다면 많은 외국인 친구를 사귈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질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관계가 얼마나 깊어질 수 있을까 싶다. 늘 얕은 수준의 정보를 교환하는 정도가 아닐지. 이름이 뭔지, 국적이 뭔지, 직업이 뭔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와 관심사 정도. 외국인이라 신기해하며 호기심에 접근하지만 정말 유창하지 않은 다음에야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사실 사용하는 말이 같아 전혀 못 알아들을 것이 없는 한국사람끼리 만나도 대화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소리를 듣는 것과 정말 알아듣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까. 그래서 까미노에서 오히려 고독한 여정을 보내는 것이 유익한 것 같다. 얕은 호기심을 채우기위해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데 힘을 쏟지 말고 조용히 자신의 한 발 한 발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자기 안으로 향하는 여정 말이다.
201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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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차, 몰리나세까에서 비야쁘랑까 가는 길 31.9km(1) 


몰리나세까에서 뽄페라다 가는 길에 작은 마을 깜뽀Campo



뽄페라다에 있는 템플기사단의 성



뽄페라다 엔시나 바실리까Basilica de la Encina


시계 거리 Calle del Reloj





벌써 20하고도 3일차 순례길에 있다. 이젠 고민없이 30km 이상을 걷는다. 발바닥에 불이나도, 무릎이 아파도, 배가 고파도 5~6km 더 콜! 하고 막판 무아지경을 즐기듯 더 간다. 사실 무아지경도 이젠 없는듯 하다. 사람이 생활의 패턴이 익숙해지면 또 그렇게 적응해 가는가보다. 변화를 위해 왔지만 또 이 생활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걷기, 숙소, 식사, 세탁, 볼일 보기, 물집, 바, 보까디요, 까미노, 심지어 베드버그까지도. 생소하기만 했던 단어들이 또다시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아쉽고, 섭섭하고, 슬프다. 아니 무섭다.
201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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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차, 엘간소에서 모리나세까 가는 길 32.4km(3) 

급한 내리막 길에 지친 순례자는 작은 마을 아세보를 보는 순간 잠시 고통을 잊는다.




몰리나세까에 들어서는 길목.

메루엘로 강가에 있는 몰리나세까는 위치가 좋아 예전부터 부유한 귀족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이나 구조물들에서 기풍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까미노에서 본 유일한 말탄 순례자!


아세보에서부터 모리나세까의 알베르게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한국인 청년 3명과 함께 걷게 되었다. 그때까지 한국사람을 많이 만나지도 않았었고, 또 그렇게 젊은 친구들을 본 것은 오랜만이기도 해서 마음 한 켠으로는 반가웠지만, 또 앞에 가는 친구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귀 속으로 쏙쏙 들어오는 바람에 약간은 거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들을 판단하는 마음이 솔솔 일어나는 것 때문이었다. 지나쳐 가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걸음걸이, 말투 등이 거슬리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이런저런 추측들이 머리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들과 한 숙소에 묵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혼자 한 상상들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누구든 귀 기울여 들어보면 이해 못할 일이 없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면 왜 그러는 지 알게 된다. 그런 노력, 시간의 투자 없이 머릿속으로만 이러쿵저러쿵 상상의 나래를 펴면 오해하게 되고, 혼자 불편해 진다. 비록 나이로는 내가 곱절이나 많았지만, 그들은 나에게 보내진 스승들이었다.
201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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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차, 엘 간소에서 몰리나세까 가는 길 32.4km(2) 


철십자가Cruz de Ferro



자신이 사는 곳에서 가져온 돌을 놓고 가는 전통이 있다고 해서 집에서부터 챙겨간 돌에 이름과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적어 두고왔다. 돌이 자신이 지은 죄만큼 커야 한다는데 나는 너무 작은 돌을 가져갔다. ㅎㅎ





만하린은 1180년부터 있던 마을인데 지금은 알베스게 하나밖에 없다. 워낙 높은 곳이고 외떨어져서인지 전기나 샤워시설 없이 잠자리만 제공한다고 한다.



역시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진리!


까미노는 스스로 선택한 광야이다. 마치 예수님께서 광야로 나가셨듯이 말이다. 유혹도 더 강렬해지지만 영적 열망 또한 강화되어 내부에서 더 강하고 치열하게 부딧히게 된다. 이 때 자신을 더 적나라하게 보게 되고, 결국 발가벗겨진 마음과 정신으로 신에게 내놓여지는 장이 된다. 그래서 800km라는 긴 거리, 그것도 두 발로, 배낭을 짊어지고. 결국 자기와의 싸움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나를 더 세밀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아픔에서도, 기쁨에서도, 자연에서도, 함께 걷는 이들에게 비추이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자신이 얼마나 작고 연약한지, 인내심이 없는 지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런 자신을 이끌어 불가능할 것 같았던 목적지까지 끌고 간다. 인생이 그러하듯. 그래서 더 긴 인생의 여정을 걷기위한 힌트를 얻는다.
201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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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차, 엘간소에서 몰리나세까 가는 길 32.4km(1) 



라바날 델 까미노 초입 바Bar. 과일과 코콜릿바를 샀다.







폰세바돈은 해발 1500m 좀 못되는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그냥 지나쳐 가기 아쉬워 바를 겸한 알베르게에서 오렌지 주스와 빵을 주문해 간단히 요기를 했다. 하루밤 묵어가고 싶은 곳이다.


까미노 시작 하루만에도 중단하고 돌아갈 충분한 이유와 핑계와 명분을 얻을 수 있다. 걷지 못할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한 두 가지가 아니니. 그러나 가고자하는 의지, 걷겠다는 결심이 하루이틀 쌓여 순례를 계속할 수 있게 한다. 발이 너무 아파서 중단할 수도 있고, 무릎에 이상이 있어서 멈출 수도 있고, 베드버그로 인해 정이 떨어져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유들보다 산띠아고를 향하여 걷겠다는 마음이 더 크기에 그 모든 핑계거리들을 다독이며 마치 아프지 않은 것처럼, 마치 아무런 근심이 없는 양 또 걷기 위해 길을 나설 수 있는 것이다.
201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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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차, 오스삐달 데 오르비고에서 엘 간소 가는 길 31.1km(3) 

산따 까딸리나 데 소모사를 벗어날 때 눈에 들어온 광경.






엘 간소의 유일한 바와 레스토랑 ㅋㅋ


작은 마을치곤 의외로 너무 좋았던 알베르게, 가비노Gabino.




예상치 못한 좋은 알베르게로 인해 행복한 오후, 까미노에서 처음으로 만난 싱글베드!


길 위에서나 하룻밤 쉬어가는 숙소에서 순례자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때로 좋은 인상으로 또는 불편한 인상으로. 그렇다고 감정이 쌓이진 않는다. 헤어지면 잊혀지거나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하게 되니.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그래도 까미노 길벗으로 매너는 알아야겠다. 서로 너무 깊이 묻지도 말하지도 말고, 서로 부담을 주고받지도 말자. 짐을 덜어 줄 수 있지만 더해 주지는 말자. 그래서 듣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낫다. 가능하다면 혼자의 시간을 더 많이 즐길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왜냐면 말하기 시작하면 생각은 뒤로 밀리기 때문이다. 조용히 머물 때 길의 속삭임, 그 분의 음성을 듣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참 좋은 만남은 의도하지 않아도 다가오게 되어 있다. 엘 간소는 정말 작은 마을이었지만, 꽤 괜찮은 알베르게와 멋있는 순례자를 만나게 해 주었다. 토담(닉네임)이라는 재미교포 아주머니였는데, 엘 간소 유일의 레스토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꿈이 담긴 삶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것 무척 아쉽다.
201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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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차, 오스삐달 데 오르비고에서 엘 간소 가는 길 31.1km(2) 
     - 아스또르가를 지나며...



아스또르가의 로마시대 유적지.


비가오는 중에도 열린 아스또르가 장터.



가우디가 설계했다는 아스또르가의 주교관. 지금은 까미노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가우디에게 설계와 건축을 맡겼던 주교가 죽자 위원들은 건물의 형태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며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실망한 가우디는 손을 떼고 떠나면서 "열기구를 타고도 아스또르가 상공을 지나가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 의해 완성이 되어 많은 부분이 변경이 되었다고 하지만 가우디가 시작해서 그런지 독특한 외관을 뽑내고 있다. 결국 오늘 가우디의 이름으로 아스또르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아스또르가를 벗어나 때쯤 보게 되는 엑세 오모 예배당Ermita del Ecce Homo. 

물이 나오는 곳 옆에 각 나라 말과 한글로 '신앙은 건강의 샘'이라고 씌어 있다.



까미노를 걷는 이유? 바로 마음의 평화의 문제가 아닐까. 결국 자신 안의 불안, 두려움, 그로인한 갈등의 파도를 잔잔케 하고자 이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가. 그럼에도 이 길 위에서 마음은 평화 가운데 있지 않다. 몸의 이상, 고통 때문이기도 하고, 매일 완수해야 하는 걷기, 숙소 잡기, 세탁하기, 식사 해결하기 등의 일상적 일들에 매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까미노라고 해서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만약 스스로를 깊이 성찰하는 과정을 빼버린다면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적 근심들에 휩싸여 마음에 평화로부터 멀어져 있는 떠나온 곳에서와 똑같은 시간을 보내고 갈 것이다. 

노란 화살표가 안내하는 길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물 흐르듯이 까미노를 흘러갈 때 조금은 마음에 평화에 근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잠시 짐을 풀고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을 지나치지 않을 수 있는 마음, 주변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 가운데 마음의 평화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쉼과 걷기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목표한 곳에 도착해 있으니까.
201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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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차, 오스삐달 데 오르비고에서 엘 간소 가는 길 31.1km(1)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의 광장과 알베르게



저 멀리 산띠바녜스 데 발데이글레시아가 보인다.




아스또르가가 멀리 보이는 산마루에 세워진 싼또 또리비오 돌십자가.



>>까미노 하루 일과
06:30전후 - 기상, 볼일 보기, 세면, 짐 꾸리기, 발에 바세린 바르기, 간단히 요기하기 
어르신들은 비교적 일찍 출발하고 젊은 사람들은 좀 늦게 출발하는 경향이 있다.
07:00전후 - 출발, 숙소 도착 때까지 걷기 
08:30전후 - 아침식사: Bar에서 카페 콘 레체와 또르띠아나 빵 종류로. 보까디요는 잘 안 먹음
12:30전후 - 점심식사: 길에서 전날 준비한 바게뜨빵과 과일로
아침과 점심을 먹는 방식이나 장소는 순례자에 따라 유동적이다.
13:00에서 16:30 사이 - 숙소 도착, 짐 풀기, 샤워, 세탁 
늦게 도착하면 빨래를 해도 잘 마르지 않는다. 
17:00경까지 - 마을 돌아보기(마을 순례라 함), 저녁 준비 
17:00에서 20:00 사이 - 저녁 식사: 숙소에서 요리해서 먹거나 레스토랑에서 순례자메뉴로
아침과 점심을 거의 길에서 해결을 한다고 보고, 저녁은 레스토랑이나 숙소 주방에서 만들어 먹게 되는데, 워낙 몸의 운동량이 많기 때문에 충분한 양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하면 저렴하고 입에 맞게 직접 요리해서 먹는 것이 더 좋다.
20:00에서 22:00전까지 - 취침 준비스트레칭, 발 마사지&안티프라민(멘소레담) 발라주기 
특히 일과 중 빼먹어서는 안되는 일은 가장 혹사당하고 있는 발과 무릎을 만져주면서 고마움과 격려의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리고 다음 날의 까미노를 확인하는 일도 이 시간에 필수적인 일이다. 지나가는 마을이나 길의 상태 등을 꼼꼼히 챙겨두는 것이 좋다.
22:00 - 취침(대개의 알베르게의 불이 꺼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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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차, 오스삐달 데 오르비고 




주방에서 내다 본 알베르게 1층 응접실?!


왼편은 화장실과 샤워부스이다.



알베르게 뒤뜰에 전시되어 있는 예전 농기구들이다.












혼자 주방을 독차지 해서 만들어 먹은 만찬이다. 

국물은 멸치가루를 주재료로 한 '원물'이라는 것을 넣어 끓이고 달걀을 풀면 근사한 국이 된다.

그리고 고추장과 김이면 까미노 최고의 메뉴가 되고, 스페셜 셀러드가 더해진다.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에 있는 순례자협회에서 운영하는 산 미겔San Miguel 알베르게에 묵었다. 까미노 시작 이후 처음으로 하루를 더 묵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알베르게였다. 우선 오스삐딸로(봉사자)가 무척 친절하고, 순례자들이 많지 않아서 모두 이층침대 아래만 사용해도 될 정도로 여유로웠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갤러리 같기도 했고, 주방도 널널하게 혼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마을에 괜찮은 수퍼마켓이 있었던 것도 매력을 더했다(다리를 넘어오자마자 바로 왼편에 있음). 2유로 더 내면 아침도 먹을 수 있는데, 토스트 빵과 잼&버터에 음료수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침실 사진을 찍지 않아 내내 아쉬웠다. 
201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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