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일차, 올베이로아에서 피니스테라(등대까지) 가는 길 40km


어둠 속에 앞서 가던 순례자들을 따라가다 길을 벗어나는 바람에 보게된 큰 제방이다. 덕분에 이날 40km 훌쩍 넘게 걷게 되었다.



왼쪽으로 가면 피니스테라, 오른쪽으로 가면 묵시아.

원래 산띠아고 이후 땅끝은 피니스테라였는데, 최근들어 묵시아가 주목받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만든 "The Way"라는 다큐영화의 종착지가 묵시아였던 것이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 사람들의 최종 목적지는 거의 묵시아였다.

촬영 당시 피니스테라가 카메라발이 잘 안받아서 묵시아서 앤딩을 찍었다고 하는데... 재미있다.


드디어 바다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날이 흐려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멀리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쎄Cee와 붙어있는 꼬르꼬비온Corcubion의 작은 바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했다. 비가 내려 처음으로 판초우의를 입었고, 점심을 먹는 중에도 비가 계속 쏟아졌지만, 이 역시도 그립고 또 그리운 순간이다.


마지막 걸음 함께 해주신 길벗!


역시 까미노는 십자가의 길이라 할 수 있다. 곳곳에 있던 그 십자가 탑, 피니스테라에서도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거리 0.00km


피니스테라 등대. 약간 멋은 없다. ㅋㅋ


돌십자가 앞 쪽에 검게 그을린 곳이 있는데, 까미노 마지막을 장식하는 의식으로 개인 소품을 태우는 곳이다. 이 날은 비가 내린 후이고 바람이 불고 있어서 불이 잘 붙지 않았다.



흐리긴 했지만 두번째 목적지인 땅끝 Finisterre에 도착했다는 것은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동행한 분은 기쁨에 땅끝 언덕을 떠나지 못하신다. 그런데 나는 더 오래 머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올베이로아 알베르게에서 또 베드버그에 물려서 심난한 것도 한 가지 이유이고, 더 중요한 이유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라는 순례의 목적지에서 끝이라는 감정을 다 분출해 버렸기 때문이다. 더 짜낼 감격이 고갈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미 마음 속으로 끝을 품어 버렸기 때문에 또다시 보게된 물리적인 끝은 감흥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젠 끝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어떻게 이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새롭게 시작할 것인가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감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다리 앞 정강이 부분이 너무 아파서 걷는데 무척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함께한 분이 앞에서 제촉해 걷지 않았으면 중간에 포기하거나, 버스를 이용했을 지도 모른다. 용케도 걸어와 끝에 서 있다는 것, 참 놀라운 일이다. 결국 다리 통증으로인해 묵시아까지 걸어가겠다는 계획은 포기했다. 묵시아는 순례 중에 생긴 목적지이기에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쪽으로 타협을 봤다. 

2013.10.13.

블로그 이미지

dols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