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낭 곳곳에 정당 깃발이 과할 정도로 많이 걸려 있어서 총선이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 총선을 두고 시국이 어떻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페낭 세인트 조지 교회에 갔을 때 안내해 주시던 여성 분이 이 번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분은 야당을 지지하는 것 같았으니 그 분의 말은 정권교체를 의미했던 것 같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페낭이 야당색이 짙다고 나온 것을 봤다. 아무튼 페낭에서도 그렇고 쿠알라 룸푸르에 와서도 여행자가 총선과 관련해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5월 4일 자정을 넘겨 투표일인 5일이 되는 순간 호텔 밖에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한두 대가 내는 소리가 아니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 봤더니, 야당 지지자들이 차량에 깃발을 흔들며 행진을 하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오히려 조용해져야 할 시간에 더 시끄러워지는 것을 보곤 갑자기 겁이 덜컥났다. 곧바로 들어와 그제서야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이번 총선에서 정권교체가 점쳐질 정도로 박빙의 승부가 진행 중이었다. 그 만큼 선거와 관련한 사건사고들이 이미 2,000건이나 발생했고, 더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 언론의 보도였다. 더구나 야당의 지도자는 여당이 부정선거만 하지 않으면 야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지금 돌아가는 흐름이 장난이 아니었던 거다. 와~ 이거 내일 쿠알라 룸푸르를 돌아다닐 수나 있겠나 싶고, 이런 중대한 시기에 내가 말레이시아의 수도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여기에 교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대사관의 공지사항을 확인하자 순간 맨붕이 올뻔했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투표는 큰 소요 없이 진행된 것 같고, 열망하던 정권교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50년 넘게 장기집권을 해오고 있는 BN이 권력을 잃지 않았다. 결국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변화라는 것, 어디서든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2013.5.6.



페낭 곳곳에 걸려있는 정당 깃발들, 비가 많이 오는 날씨로 인해 포스터보다는 깃발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자를 화들짝 놀라게 한 야당 지지자들의 차량 행렬이다.



투표 당일 쿠알라 룸푸르 곳곳에 지지자들이 모여 투표를 응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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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에서 쿠알라 룸푸르 가기


늘 긴장되는 것이 이동하는 일이다.

자유여행을 할 때, 스스로 찾아 다니며 예약하고 승하차하는 과정은 여간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 아니다.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게 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었기에 부족한 준비로 더 애를 태웠다.


페낭에 온 것도 신기한데, 이제는 수도 쿠알라 룸푸르까지... 대단한 여정이다.

페낭과 다른 도시를 연결하는 터미널이 숭아이 니봉 터미널이다.

다른 곳을 여행할 때는 항상 먼저 답사하고, 예매도 했었다.

페낭에서는 주로 이동하는 길에 터미널이 위치하지 않아 인연이 닿지를 않았다.

올 때는 조지타운으로 바로 왔고, 중간에 갔다올 짬이 나지 않았다.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예기치 않은 사람에게서 터미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정보를 얻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인도계 말레이시아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처음엔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이 사람의 정체는 다른 게스트 하우스를 홍보하기 위해 살짝 들린 사람이었다.

자신의 게스트 하우스를 아는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하면서,

쿠알라 룸푸르로 가는 방법을 꼼꼼하게 일러줬다.

쿠알라 룸푸르로 갈려면 우선 게스트하우스에서 예매하지 말란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RM40을 받지만, 콤타에 가면 RM30이면 된단다.

 

콤타는 시내버스들이 통과하는 터미널인데, 쿠알라 룸푸르로 가는 버스도 있나?

의구심이 들었지만 페낭힐을 가는 길에 콤타에서 장거리 버스회사 사무실들을 확인했다. 

정확히 말하면 콤타에 있는 여행사 사무실에서 예매를 하면, 콤타에서 승객을 태운 버스가 숭아이 니봉 터미널로 가고,

그 버스 그대도 갈 수도 있고, 여정이 다를 경우 다른 버스로 옮겨타고 가게 된다고.

아~ 참 편리하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 다른 점은 버스티켓이 RM30이 아니라 35였다는 것.


5월 3일 오전 11시 버스인데, 콤타에 30분 일찍 나오라고 해서 시간 맞춰갔다.

나 말고도 네 명이 더 있었고, 터미널까지 실어다 준 버스는 말라카행 버스였다.

버스를 옮겨타고 인원 점검을 하고 출발하니 11시 10분 쯤이었다.

 

가이드북이나 인터넷 여행기에 보면 네 시간 걸린다고 되어 있고, 사무실에서는 5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이체하고 쉰 시간을 빼면 네 시간 걸렸다.

에누리 없이 오후 4시에 쿠알라 룸푸르 푸두 센트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계산해 보면 10분 늦게 출발했고, 중간에 40분 쉬고, 푸드 센트럴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몇 명 내려주느라 돌고. 그런 것 생각해 보면 네 시간 걸리는 것이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 같으면 네 시간은 쉬지도 않고 갔을텐데.


이미 핫야이에서 말레이시아 넘어올 때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말레이시아의 고속도로, 도로는 정말 잘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일단 현대건설이 만든 페낭과 버터워스를 잇는 다리부터 시작해서 고속도로는 정말 한국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어떤 구간은 더 잘 정비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휴게소였다. 이게 휴게소인지 주차장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곳에 서더니 40분이나 쉰다.

화장실은 저 멀리 언덕 위에 있고, 길거리 간식거리 파는 부스 세 개 정도 있는 데 거기에 

과일과 빵 종류와 스넥, 음료가 조금 있을 뿐이었다.

아직 이런 부분에서는 발달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인터넷 글들에 보면 푸드 센트럴에서 말레이시아의 모든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써 놓은 것을 봤는데, 그렇진 않아 보였다. 주로 북쪽으로 가는 버스들이 오가고,

말라카 같은 곳은 반다르 타식 셀라탄 역에서 연결되는 TBS에서 갈 수 있다.


20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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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모험을 즐기지 않는 여행자의 페낭 먹거리 이야기 ㅋㅋ

2013.4.30~5.2.


대체로 가이드북을 보면 그 나라나 지방의 음식을 소개하며 '맛있다', '꼭 먹어봐라'하면서 '거기'를 정해준다. 꼭 봐야 하는 곳과 함께 꼭 거기서 먹어야한다는 말이 얼마나 마음을 사로잡는 지 모른다. 그래서 점심 때, 저녁 때가 되면 약간은 긴장하면서 그 곳을 찾게 된다. 관광명소에 비해 식당은 찾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보통 관광지에 가면 두어 곳 먹어보고 입에 맞는 곳이 있으면 그 곳을 중심으로 가게 된다. 먹을려고 여행하는 것은 아니니 모험을 하긴 싫고, 또 경제적인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페낭에 와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푸드코트가 많고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태국에서도 몇 곳을 경험하긴 했지만 이렇게 다양한 메뉴에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또 특징은 굉장히 저렴하다는 것이다. 보통 식당들에서 MR10(태국 100밧, 한화 약 3,500원)이면 저렴한 편인데, 푸드코트에서는 MR5를 넘으면 비싼 메뉴에 속한다.


에스플러네이드 푸드코트 - 조지타운 북쪽 해안가 위치



숙소에서 가깝고 저렴해서 첫째날과 둘째날 저녁을 해결했다. 첫 날엔 차퀘티아우 집에서 미고랭을 MR4를 주고 먹었고, 둘째 날엔 겁없이 페낭 락사를 MR3.5를 주고 먹었다. 조금 비릿했지만 못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가격이 착하다보니 서비스가 어떻고, 양이 어떻고, 분위기가 어떻고 따질 필요가 없다. 아쉬운 것은 혼자라서 한 가지 메뉴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럿이면 꼭 눈에 띄는 여러 메뉴를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과일을 잔뜩 싣고 깎아 잘라 담아 파는 자동차 노점상이 있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수박, 자두, 사과 등을 사들고 밤에도 먹고 아침에도 먹었다. 조지타운에 머문다면 이 푸드코트만 가도 식사는 별 문제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문제는 가이드북에서 최고, 인기있는 곳이라는 표현을 따라 갔을 때, 전혀 동의가 안되는 경우도 종종, 아니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음식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작용하는 것 같다. 특히 나에게 있어서 동남아 음식은 태국이든 라오스든 말레이시아든 간에 조금 어렵다. 그 맛도 그렇거니와 길거리에서 조리해서 담아내는 그 과정이 썩 마음이 가지 않는다.

사실 가장 어려운 점은 그 맛이다.


Maj 무슬림 레스토랑 - Ah Quee스트리트에 위치


찾기 쉬운 위치에 있는데 약간 헤매면서 더 기대가 되었던 로컬 식당이었다. 페낭에서 로티 차파티 2대 맛집이라는 말에 더욱 끌려서 약간은 주린 배를 참으며 포기하지 않고 결국 찾아냈다. 정말 허름하기도 하고, 인도사람이 운영하는 식당 사람들이 모두 남자들이어서 그런지 일하는 것이 어설퍼 보이기도 했다. 어렵게 주문을 하고 내가 다 받아 들고 자리로 왔다. 맨밥에 해산물이 든 커리를 붓고, 차파티 두 장을 곁들여 먹었다. 음~ 솔찍히 먹기 힘들었다. 차파티는 그냥 밀가루로 구운 부드러운 난이라고 할까? 난에 비해 밀가루 향이 더 났다. 커리는 내 입에는 좀 강했다. 맵고 감칠맛은 없는...

이런 것이 개인차인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겐 별미가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겐 약간 고역이 될 수는 있는... 그런데 재미있었던 것은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계산할 때 '서울 코리아 얼마죠?' 하고 서로 묻는 거다.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며 미소짓는 점원들이 있어 정이 들뻔 했던 식당이다.


산토리니 - 튠 호텔 근처에 위치

젊은 층을 겨냥했고, 깔끔하고, 착한 가격이라는 말에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생각해 보니 내가 젊은 층은 아닌데 착각을 한 것 같다. ㅋㅋ 점심에는 메뉴에 MR2만 추가하면 음료와 아이스크림이 함께 나와서 더욱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림만 보고 맛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킨 내 실수... 메뉴 이름은 생각이 안나는데 라면 면발 같은 것은 태국의 팟타이처럼 볶고 거기에 튀긴 치킨 조각들을 더한 것이다. 그림도 그렇고 느낌상으로도 맛있을 것이 뻔한 메뉴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 치킨은 치킨 맛인데, 볶은 면이 아무 맛도 안나는 거다. 다 먹고서는 케첩이라도 달라고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암튼 외국에 나와서는 그림만으로는 맛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단, 아이스 초코는 맛있었다.


두둥 두둥!

거니 드라이브 - 거니플라자를 통과해서 해변길로 나가 왼쪽으로 30~40미터

페리 터미널 앞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서 103번 버스를 타고 갔다.


아직 시간이 이른지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는다.




페낭에서, 아니 말레이시아 전체에서 음식으로 정평이 자자한 곳, 거니 드라이브를 버스 103번을 타고 갔다. 버스는 RM2 정도 할 줄 알았는데, RM1.4라서 가깝다는 것을 직감했다. 가이드북에 '거니 플라자 옆에 위치'라고 되어 있어서 그 옆을 찾느라 더운날 땀좀 흘렸다. 규모면에서 다른 푸드코트에 비해 크고 좀 더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내가 갔을 때는 시작하는 시간이라 막 문을 열고있는 집도 많았고, 빈자리도 꾀 많았다.

계속 국수를 먹었던 터라 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서 돌아보다 튀김 종류를 쌓아 놓고 골라 주면 썰어서 소스를 뿌려주는 음식(이름이 뭐더라)에 꽂혔다. 에스플러네이드에서 가장 눈길이 갔었기 때문에 거니 드라이브에서 맛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음식점을 잘못 선택한 것인지... 맛이 뭐라 할까... 정확히 표현해서 내 입에 안 맞았다. 그렇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데 다른 메뉴를 먹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음식에 대한 판단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 아무리 말레이시아의 내로라 하는 곳이라 해도 난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내 입맛이 너무 한국적 음식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 동남아시아에서 얼마간 더 머물 것인데,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로 몇 차례의 도전을 해보겠지만, 음식에 대해서 내가 좀 너무 까다롭게 구는 것 같다.



>>말레이시아가 음식 값이 싸다?


가 본 곳이 몇 곳 없어서 라오스와 말레이시아를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루앙프라방과 페낭이 비교된다. 뭐라고 할까, 여행자로서 가장 피부로 다가오는 것이 밥값이다. 라오스의 도시 루앙프라방과 열 배는 잘 사는 말레이시아 페낭 중에 어디서 더 밥값이 저렴할까. 답은 페낭이 더 저렴하다는 것이다. 이유를 따져보면 식자제의 거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라오스에서는 음식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루앙프라방에서는 보통 3,200원 정도만 되도 싼 편에 속했는데, 페낭에서는 1,600원짜리 식사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라오스에서는 관광지가 형성이 될 때 일어난 현상은 그 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 소외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루앙프라방이나 왕위앙(방비엥)의 관광지는 현지인들이 먹고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모두 외곽으로 이동해서 그들을 위한 로컬식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태국도 그렇고 말레이시아는 비록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고 모든 것이 외국인들을 위한 것으로 맞추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현지인들을 위한 인프라는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로컬 식당들이 존재하고,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들에게 효자노릇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경제력과 관련이 있어보인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관광지로 개발이 될 때 그 빠른 변화에 적응하고 맞추어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을 때는 말레이시아처럼 로컬 문화도 함께 살아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때는 라오스처럼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라오스의 경우 사람이 좋다고 하는데, 관광지를 중심으로 여행할 경우엔 그 좋은 사람들의 표정을 만날 수 없다. 모두 여행자를 상대하면 살아남은 사람들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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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시내버스로 여행하기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의 다른 나라들보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경제력의 차이인것 같다.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넘어 오면서도 느꼈지만 일단 도로가 잘 닦여 있고, 페낭의 경운 시내버스가 잘 운영되고 있었다. 버스 번호와 노선만 잘 알면 페낭의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켁록시나 페낭힐은 물론 거니 드라이브를 갈 때도 시내버스로 이동했다.


켁록시 사원, 극락사

거의 모든 시내버스가 콤타 버스 터미널을 경유한다. 


켁록시에 가면서 처음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기사가 일일이 표를 끊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원을 오르며 내려다본 페낭 도심.



켁록시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이다. 절에 갈 때 느끼는 것이지만, 절에서 형상화된 인물이나 동물들이 힌두교와 묘하게 오버랩된다는 것이다. 불교는 힌두교와는 많이 다르지만 인도라는 같은 토양에서 태동했고, 또 후발주자이기에 불교가 힌두교의 상징들을 차용한 것 같다. 켁록시 사원은 더더욱 혼합되어 있다는 것이 부쩍 더 눈에 띄었다. 규모면에서 보면 상상초월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큰 감흥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사원들이 작지만 단아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고 있는 나에겐 더욱 그랬다.

저기 가운데 앉아 계신 부처님은 왜 팔이 저리 많은 것일까. 같은 대답이다. 인도라는 배경과 여러 지역을 지나며 팔 뿐만 아니라 다양한 덧붙임이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다. 그런 것들을 잘 살펴보면 종교에 인간의 근본적이고 다양한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깨달은 자 고타마 싯다르타 하나로는 부족하다. 관음보살, 지장보살, 무슨무슨 보살, 금강역사 등등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있어야 중생들을 절로 불러들이고 절에 묶어 놓을 수 있는 거다.

종교의 속성으로 본다면 기독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 히브리문화가 헬라·로마문화를 만났고, 또 로마주변 민족들의 토착문화들과 섞였다. 별도 중요하고, 태양도 중요해지고, 성탄절이 필요해지고, 마리아도 천사도 성자도 필요했다. 심지어 정치적 구조까지 가져와 교황도 만들어냈다.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려고 프로테스탄트(개신교)가 등장했지만,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역시 다시금 사람들의 욕망에 편승해 그들의 구미에 맞는 것들로 교회를 치장하고 있다.

켁록시 사원을 보며 느끼는 이물감이 오늘 한국 교회들 가운데서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슬픔 크고, 아픔이 크다. 21세기에 종교를 어떻게 다시 정의하느냐가 중대한 숙제가 아닐까.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종교성 강한 나라들 한 가운데서 더욱 종교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왤까.


페낭힐에서 바라본 페낭


823m 페낭힐 정상까지 관광객을 싣고나르는 모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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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도보여행 2 - 역사와 종교


콴인텡 사원, 관음사


관음보살을 모신 사원이라고 하는데, 어떤 것이 관음보살인지 도통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는 사찰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한쪽은 기름 같은 것들이 더러운 통에 담겨 쌓여 있고, 흘려내려 찌들어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다른 쪽도 정신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불결하고 무질서한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향을 하나 둘도 아니고 한 움큼씩 들고서 불을 붙여 흔들며 옮기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저런 잡다한 문화들이 혼합된 혼합불교라고 해야할까. 신심이 느껴지지 보다는 의아함이 느껴질 뿐이다.


스리 미리암만 사원


힌두교 사원은 형형색색으로 치장되어 언듯보고서 (좀 생뚱맞지만) 유치원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긴 하지만 들어가고 나오는 데 있어서 정말 마음이 편했다. 힌두교 자체가 모든 것을 흡수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특별한 경계심을 갖지 않는 분위기였다. 사제인지 신도인지 웃통을 벗은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이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해서 갔더니, 파라핀 조각으로 불을 피우고 하얀재를 내 이마에 바르고는 돈을 내라고 했다. 그래서 1링깃을 줬더니 오케이 하면서 사라졌다. 

어쩌면 이렇게도 상상력이 풍부할까? 앙코르 와트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조금 봤다고 몇 가지 그림이나 부조들이 뭔지도 알겠는데, 정말 다양한 신들과 이야기들을 생산해 낸 인도사람들의 종교성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카피탄 클링 모스크


1801년에 세워졌다고 하니, 이 역시 2세기가 넘은 사원이다. 이름의 유래나 페낭에서 그 위치에 대해 전이해를 갖고 갔는데, 그 규모나 분위기에 약간은 김이 빠졌다. 일단 더운 나라의 모스크여서 정면을 제외한 세 방향이 모두 오픈되어 있어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카자흐스탄의 모스크에서 느꼈던 그 경건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카자흐스탄은 추운 나라라서 사방을 막아 어두운 채광으로 자연스럽게 엄숙한 분위기가 만들었던 것 같다. 모스크에 들어가며 저절로 기도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서 그랬고, 덧입은 옷에서 냄새가 많이 나서 또한 비호감이었던 것 같다. 


쿠콩시/ 입장료 10링깃



원래 순서상으로 얍콩시를 먼저 갔어야 하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쿠콩시를 먼저 가게 되었다. 중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가문의 결속을 다지고 외부로 힘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개인적 사원이다. 가문의 조상들을 모시고, 그 조상을 신격화해 신앙화의 단계로 끌어올린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일년에 한두번 상을 차리고 제사지내는 정도가 아닌 아예 사원을 만들어서 가문의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로까지 견고한 터를 다지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이 종교가 되고, 다시 권력을 공유하고, 또 재산을 유지하고 늘려가는 공동운명체로 발전해 간 것이다. 

그들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과거의 조상들일까, 아니면 그 조상들을 중심으로 모이는 오늘의 구성원들일까. 조상의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또 그들의 유지를 대변한다고 하는 이들로 인해 조상은 힘을 쓰게 될 것이다. 


쑨얏센 박물관


처음엔 쑨얏센이라는 이름이 생소해서 지나쳐 갔다가, 그 이름이 우리 식으로 쑨원이라는 것을 알고는 다시 방문했다. 중국의 청나라의 간판을 내린 장본인이 아닌가. 바로 이 곳 페낭에서 그런 대업을 이루는 기반을 다졌다니 감격의 현장이었다. 원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깊숙한 곳까지 보고 나오는 곳인데, 입구에 아무도 없어서 로비에서 조금 더 들어가 뚤린 천정으로 하늘이 보이는 정원에서 돌아 나왔다. 꼭 내부를 꼼꼼하게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쑨원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았다는 것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우리 나라 독립운동가들도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활동을 했는데, 이렇게 잘 보존하고 관리되었으면 좋겠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여러 곳이 방치되고 있는 것을 보고 많이 실망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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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도보여행 1 - 역사와 종교

2013.5.1.

가이드북이 제안하는 페낭 조지타운 도보여행을 그대로 따라가보았다. 콘 윌리스 요새 - 퀸 빅토이라 시계탑 -  세인트 조지 교회 - 페낭 박물관 - 콴인텡 사원 - 스리 미이람만 사원 - 카피탄 클링 모스크 - 얍 콩시 - 쑨얏센 박물관 - 쿠 콩시. 만만치 않은 코스지만 오전에 완주하고 얍 콩시 근처에 있는 로컬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발걸음을 제촉했다.

일단 이 코스의 특징은 역사성에 다양성이 더해진 점이다. 역사성은 페낭이 어떻게 세계 역사 가운데 주목을 받고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해 왔는지 다양한 역사 유적들을 통해, 다양성은 불교, 힌두교, 기독교(성공회, 가톨릭), 이슬람교, 조상숭배(?) 등 여러 종교의 사원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콘 윌리스 요새/ 입장료 2링깃


그 옛날 그 먼 곳 유럽의 열강들이 이 곳까지 와서 힘자랑을 했다는 것이 참 놀랍다. 남아프리카를 돌아서 오는 항해길도 만만치 않았겠다. 남의 땅의 좋은 곳들을 차지하고 1세기 이상 주인행세를 하고서도 자신들이 신사라 하고, 세계의 평화와 질서 운운하는 말들이 정말 가소롭게 느껴진다. 오늘날엔 그들의 흔적이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 되고 외화벌이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도 일본인들이 지었던 건물들을 더 많이 보존했다면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까. 만약 일본이 아니고 서구의 어떤 나라였으면 상황이 좀 달랐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 민족 정서 속에 깔린 사대주의가 일본에게는 반대로 작용하는 것 같다. 물론 일본문화가 남아 있고 향수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고, 그 때로부터 청산되지 않은 인적, 물적 문제들은 있지만...


퀸 빅토리아 시계탑

소개 책자에는 이 시계탐이 페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건축물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왜 이것이 그렇게 유명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별로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냥 하얀색의 시계탑인데 뭐가 특별한 건진 잘 모르겠다. 한 중국인 거부가 빅토리아여왕에게 헌정한 것이고, 또 여왕이 행차를 하려다가 불발되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그 옛날(1897년 완공) 거의 이층 건물이 주를 이루고, 관공서가 3,4층 일 때 이 시계탑은 충분히 페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었을 것도 같다. 그래서 이 시계탑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내일 시계탑 앞에서 보자'라든가, '당신을 향한 사랑은 저 시계탑처럼 변치 않을 거야'라든가, 페낭의 사람들에게 시계탑은 삶의 중심에 있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한가지 아쉬움은 시계탑이 있는 거리 맞은 편에 너무도 큰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안그래도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작은 시계탑이 더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이런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경우들 종종있다. 사실 한국에는 이런 일이 더 많지 않은가. 


시청


세인트 조지 교회(영국 성공회)

1818년에 지어진 성공회 교회이다. 내부를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해서 갔는데, 미사가 끝나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했다. 겉에서 정말 넓은 정원과 하얀 외관을 감격스러운 시선을 보는 것으로도 사실은 충분히 감명을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도 '알파 코스'를 하는 것이다. 맞다. 알파코스는 영국 성공회에서 만든 것이니, 오히려 한국 개신교에서 하고 있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라 해야겠다. 

지금 이 교회가 페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역사적 유물과 소수의 신자들의 예배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처음 이 교회가 세워진 2세기 전의 상황은 어땠을까. 사실 콘 윌리스 요새에도 작은 예배당이 있었다. 내부는 텅 비어있었고, 전혀 관리되고 있지 않는 모습이었다. 마찬가지로 그 교회나 이 교회나 영국이 페낭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은 같은 것이기에 둘을 보면서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와 기독교는 어떤 관계였을까. 역사적인 자료를 보면 선교사가 먼저가서 희생을 당했을 때 그것을 명분으로 군대가 들어왔고, 군대가 들어오면 그 뒤를 따라 또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했다. 

종교, 특히 기독교는 사랑과 평화를 말하지만 과정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약자들을 죽이고, 지배하는 과정에 힘을 주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지배자의 종교로서 피지배자들을 개종시키는 과정이 뒤따랐다.


페낭 박물관/ 입장료 1링깃


영국이 지배하기 전에는 페낭의 역사가 없었던듯하다. 그 때부터 페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자료들은 꽤 자세하게 남아있는데, 그 전의 것은 전시되어 있지 않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첫번째 방에서 보여주고 있는 말레이시아, 특히 페낭을 구성하는 인종이다. 지금의 인도네시아 쪽에서 건너온 말레이 인종, 중국에서 이주해 온 중국 인종, 인도에서 건너온 인도 인종이 주를 이루고, 아르메니안, 타이, 다양한 혼혈 인종들에 심지어 일본까지 정말 다양한 인종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곳이 말레이시아이다. 길을 걸을 때도 인도사람, 중국사람, 아랍사람, 태국사람, 서양사람 등 다양한 사람을 보게 된다. 그들이 모두 말레이시아 사람들이다. 

관광지를 다닐 때도 그들이 하는 말을 가까이서 듣지 않으면 현지인인지 관광객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 다양한 인종 가운데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낸 인종이 중국사람들이고 그들의 자취가 박물관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그들이 살던 주거 형태나 가제도구들이 그대로 복원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화인들을 정착하지 못하게 했던 한국인의 배타성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 같다.


패리나칸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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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핫야이에서 말레이시아 페낭 가기


잠시의 머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두번째 목적지인 페낭으로 출발했다.

원래 여행사 사무실로 8:30까지 오면 9:00에 출발하는 벤을 탈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정각에 갔는데,

아침 먹었냐고 하면서 안 먹었으면 먹고 오란다. 9시에 차가 온다는 거다.

아니 그러면 그렇게 얘기를 해줬어야 여유있게 오지~

덕분에 여행사 직원들의 면면을 살피며, 문밖을 지나가는 차들, 오토바이들, 사람들을 구경하며 40분을 기다렸다. 차는 9:10이 넘어서 도착했다.

처음 출발할 때는 4명이 타고 있었다. 

450B(좀 바가지 쓴 듯) 네 명이면 수지가 않맞을텐데 하며 걱정하는척 내심 기분이 좋았다.

'오호! 여유로운 여행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것은 오산이었다.

동남아 여행에서 직행이건 완행이건 간에 어떤 차든 이동하면서 자리를 꽉꽉 채운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여기저기 정차하면서 한 자리 한 자리 채우더니 결국 국경을 넘을 때는 빈자리가 없어졌다.

더구나 최악인 것은 옆자리에 앉으신 나이 지긋한 말레이시아 아저씨께서 팔을 들고 가시는 거다.

그 약간 중동스러운 말레이시아 아저씨의 그 채취는 참을 수 없이 고약했다.

고개를 돌려 기침을 하고 그래도 아는 지 모르는 지 참.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넘어왔을 때 길을 잘 닦여있어 역시 경제력이 다르구나 했는데,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를 넘어오니 또 그 차이가 더 눈에 띈다.

도로도 그렇고, 도로 주변이 잘 정리되어 있는 태국에서는 보지 못한 고속도로다운 모습이었다.

앞서 국경을 넘을 때도, 입출국장 분위기도 완전히 달랐다.

말레이시아는 출입국카드가 없는게 너무 좋다.

대신 양손의 검지의 지문을 채취하는 것이 좀 맘에 안 든다.


말레이시아에 넘어오면 오른쪽 차선을 이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왼쪽 차선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거다.

또 일본차도 많고. 그것은 태국과 달라진 것이 없는듯 하다.



4시간 정도 걸려서 페낭에 도착을 했다.

사람들이 다 내려서 그런줄 알고 따라 내렸는데, 터미널도 아니고 차가 많이 다니는 곳도 아니어서

조지타운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었더니

기사가 '조지타운? 내가 데려다 줄께 타!' 하는 거다.

알고 보니 페낭인줄 알고 내렸던 곳은 버터워쓰였던 것.

하마터면 버터워스에서 헤매다가 택시비 엄청 들뻔 했다.

아무리 눈치가 빠르다고 해도 처음 오는 곳에서는 좀 물어보고 움직여야한다는 교훈을 살짝 얻었다.

더구나 비도 주룩주룩 내리는데 온통 젖은체로 처량한 신세가 될 뻔 했다.


또 다시 한참 달려 조지타운의 남쪽에 있는 랜드마크 콤타에 내렸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거금 16.1RM짜리 일식 돈부리를 먹고, 

택시 12RM에 숙소가 근처까지 이동했다.

비만 않왔으면 저렴한 식당을 찾았고, 또 걸어서 숙소까지 왔을텐데.

숙소에서 조금 쉬고, 비가 잦아든 틈을 타서 산책겸 도보여행코스를 돌아볼 수 있었다.




201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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