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4-26. 포카라

 

택시가 도착한 곳은 윈드풀이라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 겸 여행사 앞이었다.

함께 한 두 길동무들은 이미 윈드풀의 도움을 받아 트레킹을 시작한 것이라 주인장의 환대를 받았다.

나야 뭐 약간은 서먹하게 첫 인사를 나누고 주변을 살폈다.

이미 트레킹을 마치고 쉬고 있는 사람부터 이제 첫 걸음을 떼야해 긴장 속에 질문을 쏟아내고 있는 이들부터

다양한 필요를 가진 한국 사람들로 북적였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이제까지 그 어떤 곳보다 좋은 환전 환율이었다.

그리고 네팔 여행, 특히 포카라 여행에서 빼놓은 수 없는 패러글라이딩도 예약할 수 있어 좋았다.

물론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도 있었지만, 믿을 수 있는 곳에서 하는 것이 더 우선적 요소가 아닌가.

숙소는 다른 곳을 잡았지만, 환전과 패러글라이딩으로 윈드풀과 인연을 맺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오라는 말에 약간 위축됐고, 절벽같이 생긴 곳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더했다.

내 순서가 되어 장비에 몸을 넣고는 몸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받았다.

하지만 뒤에 안전요원이 있어 알아서 해 줄거고, 나만 타는 것도 아니니 걱정은 기우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몸을 맡겼다.

그리고 시키는대로 뛰어 발을 드는 순간 물흐르듯, 아니 새가 날아오르듯 전체가 붕 떠오른다.

와~하는 탄성과 함께 날으는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다. 예상했던 무서움은 1도 없었다.

포카라여행, 아니 네팔여행의 진수는 역시 패러글라이딩이 아닐까.

바라만 보는 것도 멋있고, 아름답기까지 하지만,

직접 줄에 매달려 바람을 타는 기분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참, 왜 아침을 먹고 오지 말라고 했는 지는 착륙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비행을 짜릿하게 경험하는 순간에.

 

포카라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국음식을 하는 식당이 많고, 특히 한인식당도 곳곳에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난 트레킹 중 허기졌던 속을 포카라 2박3일 동안 내내 한국음식(김치찌개)을 먹었다.

 

 

 

 

 

 

 

 

 

 

 

 

오후엔 산악박물관에 다녀왔다.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등반가들에 대한 기록물들이었다.

8천미터 이상 14좌를 등반한 한국인 등반가들을 따로 구별해서 전시해 놓은 곳에서는 자연스레 발길이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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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4. ABC트레킹 여덟번째날

지누단다(1,760)-비레탄티(1,050)-포카라

 

트레킹 마지막 날 아침, 노천온천으로 마무리했다.
사진은 없지만, 하룻밤 사이에 ABC로 가는 길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누단다엔 비가 내렸지만, 시누와부터 더 안쪽은 눈이 내려서 길을 분간하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아이젠이 쓸모없다고 투덜거렸는데, 겨울철에 오게 되면 꼭 챙겨와야하는 필수품임을 다시 확인했다.

눈길을 걸어야했던 이들은 곤란을 겪었다고 하는데, 길 위에서 눈 구경을 못한 입장에서는 살짝 부럽기도 했다.

 

지누단다에서 란드룩을 지나 오스트리안 캠프로 향하는 길을 생략하고 바로 포카라로 가기로 했다.

뉴브릿지로 향하는 길 윗길로 가야해서 마지막 산악 트레킹을 해야 했다.

그동안 라릿의 몫이었던 배낭을 온전히 짊어지고 비를 맞으며 흙길을 오르고, 한참을 걸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깐힘을 써야 했다.

앞에 포카라로 데려다 줄 지프가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이 힘내게 했던 것 같다.

우리를 맞으러 10분여 걸어온 기사가 무척 고마웠다.

세 시간 넘게 산길을 달리고 흙먼지 날리는 길을 달려 4시 넘어 포카라에 도착했다.

 

 

 

 

 

 

 

비레탄티,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퍼밋 확인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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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 ABC트레킹 여섯째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BC-데우랄리-도반-뱀부(2,510)

 

ABC트레킹을 준비하며 예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 다음으로 미룰까 고민하기도 했다.

초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중단하고 쉬운 여행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를 돌아 다시 내려가는 길,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을 온 몸으로 했다는 뿌듯함에 들뜨고,

멈추지 않기를 잘 했다는 안도감에 신바람이 났다.

 

오른 길 내려가는 것이지만, 내리막은 오르막이 되고 오르막은 내리막이 되어 쉽지 않기는 매 한가지였다.

그래도 고도가 낮아지는 것이다 보니 오를 때보다는 한참을 더 갈 수 있었다.

데우랄리에서 다시 점심을 먹고,

히말라야 호텔을 지나 도반을 뒤로하고 다섯시가 훌쩍 넘은 늦은 시간에 뱀부에 도착했다.

 

뱀부의 맨 위에 있는 롯지 역시 라릿의 아내의 친척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킴롱콜라는 정말 작은 마을인데, 그 마을 출신들이 곳곳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덕분에 난 더 친절한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물론 물 한 병도 공짜는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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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 ABC트레킹 여섯째날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


짐은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숙소에 두고,

이른 아침 가벼운 차림으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 올랐다.

라릿은 감기로 며칠째 귀한 감기약을 나눠먹었는데,

더 심해져서 함께 출발했지만 되돌아가 숙소에 남아 있어서 간만에 혼자 걸었다.

MBC에서 ABC까지 두 시간 반은 걸릴 거라고 했는데, 딱 두 시간 걸렸다.

손에 잡힐듯 가까워졌다가도 다시 저만치 멀어지는 안나푸르나와 밀당을 하며 느린 걸음 쉼없이 오른 결과였다.

 

마치 정상을 정복하기라도 한 것처럼 환호하고 두 팔을 높이 들기도 했지만,

내 종착지가 누군가에겐 출발지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르도록 허락해준 산에게 감사하며 겸손히 고개 숙인다.
사천 미터의 높이에 서서 감격하고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안나푸르나(남봉)는 거기에 사천을 더한다니 그 높이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명백하게 알고 있는 그 사실, 현실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ABC에서 머문 한 시간여의 시간은 꿈같았다.

처음 올라본 높은 곳이어서 그랬기도 하겠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둘째날 쿰롱단다 전에서 만나 킴롱콜라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교류했던 네팔 젊은이들이다.

며칠만에 다시 만난 곳이 ABC였다. 반가움에 더해 휼륭한 독사진을 남겨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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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22. ABC트레킹 다섯째날-여섯째날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


느린 걸음이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 가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막상 도착해 보면 별로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라릿은 이런 나의 걸음에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잘 걷는 법이라고 격려한다. 

그렇게 걷고 걷다보니 멀게만 느껴지던, 아름다움에 경탄했던 그 마차푸차레가 바로 코 앞이다.

왜 세계 3대 미봉에 속하는 지, 또 네팔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지 알 거 같다.

한낮의 태양 아래서도 아름답지만, 석양을 마주할 때의 마차푸차레는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내가 이런 광경을 봐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오후 3:30,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롯지는 한산했다.

앞서 간 이들은 어디 있을까. 대부분 ABC까지 갔다가 머물지 않고 저녁에 내려온다는 얘기.

2시간만 더 올라가면 그 곳이니 일찍 도착했으면 당연히 갔다오는 것이 맞을 거다.

욕심을 부려서 더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늘 나의 여정은 여기까지다.

나에겐 내일도 있으니 오늘이 마지막인것처럼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어제부터 벗이 된 형님이 도착했다.

라릿이 말했는지 방을 함께 사용하도록 배정이 되었다.

서로의 걸음을 격려하며 또 이후의 일정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정보들을 교환할 수 있어 좋았다.

여행 중에 만나 한 부분을 나누는 벗들을 사귀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이다.

까미노의 길 위에서도, 시베리아횡단열차 안에서도 그랬듯,

여기 ABC 베이스캠프 트레킹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함께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어제 히말라야 호텔의 식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북적였다.

히말라야 호텔에서 올라온 이들과 ABC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합쳐져서 그런 것일까.

한국 사람들도 더 눈에 띄었고, 목적지에 다 다다라서 이런저런 중요한 정보들을 들을 수 있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고생을 좀 덜 했을텐테 싶은 것들도...

특히나 가벼운 먹거리들을 챙겨왔다는 얘기에 아차 싶었다.

내가 이번 트레킹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왔다는 뼈아픈 반성을 하게 했다.

약품과 먹거리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실수라 해야 할 거다.

그럼에도 이렇게 MBC에 앉아 있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으니 또 기막힌 일이고 말이다.

아무튼 고도에 걸맞게 4~5도까지 내려가는 숙소의 추위를 견디며 잠을 청했다.

 

 

미차푸차레 베이스캠프

 

 

석양에 물들어 아름다움을 뽑내는 마차푸차레

 

저만치 내일의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남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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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 ABC트레킹 다섯째날

히말라야(2,920)-데우랄리(3,200)-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


고도가 높고, 해가 들지 않는 길이어서인지 오전의 길은 한기가 느껴졌지만,

계속 걸으니 어제 느꼈던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졌다.

추위에 움쿠렸던 몸도 마음도 걸음을 더할 수록 풀렸다.

감기기운은 여전했지만, 약 덕분인지 많이 회복되어

라릿을 좇아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더 일찍 출발했던 어제 만난 그 길벗 일행을 앞지르기도 했다.

 

한참을 걷고, 데우랄리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둘째날부터 계속 점심 시간이 늦어지는 것 같다.

롯지가 나에게 맞추어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맞출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전히 입에 맞는 메뉴가 없어서 결국 야채라면을 주문했다.

이틀 연속 점심으로 라면을 먹으니 약간 물리려고 한다.

신라면이긴 하지만 온전히 한국의 그것과 약간 맛이 달라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아무튼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으니 다행한 일이었다.
참, 어제 라릿이 데우랄리까지 가면 안 되겠냐고 했는 지 이유를 알았다.

이 롯지는 라릿 아내의 사촌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그렇게 요기를 하고 다시 오르막을 오르고 내린 후...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지만,

안나푸르나 가는 길은 오르막길 끝에 평지길이 온다고 해야 할까.

더구나 이렇듯 길과 강과 산이, 그리고 나무와 돌과 마른 풀들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 길이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여전히 힘겹게 걷고 있지만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기를 정말 잘 했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숨바꼭질을 하듯 보일듯 말듯 숨어 있는 마차푸차레가 더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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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1. ABC트레킹 넷째날-다섯째날

히말라야(2,920)


세시 조금 넘어 히말라야 호텔에 도착했다.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한국인 청년 두 명을 만났는데,

이들이 멈추지 않고 데우랄리를 목적지로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나니

나도 더 가야 할까 살짝 고민이 되기도 했다.

라릿도 시간여유가 있으니 데우랄리까지 가자고 했다.

하지만 오늘 충분한 거리를 걸어왔기 때문에 무리해서 더 걸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나에겐 얼마나 더 많이 걸어 시간을 단축 하느냐는 의미가 없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걷고 있다는 것 이상의 목적은 없었으니까. 


히말라야 호텔, 이제 드디어 3천미터 높이에 근접한 곳에 이르렀다.

기우인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찾아드는 장소였다.

마치 절벽 위에 홀로 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포카라에서 구입해 온 고산병 약을 먹어야 할 때가 된 것이고, 샤워 하는 것도 삼가야 하니.

뭔가 넘어야 할 중대한 관문 앞에 선듯했다.

몸을 휘감는 한기에 잦아들지 않는 강물 소리를 따라 몸도 덩달아 떨렸다.

 

사람이 많으니 주문을 미리 넣어둬야 한다고 라릿이 숙소로 메뉴판을 들고 왔다.

저녁 시간이 되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 하며 식당으로 갔더니

트레커들과 현지인 포터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트케킹을 시작한 후 처음 보는 대단한(?) 광경이었다.

자리가 없어서 현지인들 사이에 끼어서 먹는둥 마는둥 식사를 마칠 즈음

한쪽에 한국사람 세 명이 눈에 들어왔고, 반가운 마음에 합석했다.

그 중 한 중년의 남성이 몸이 안 좋아서 잘 걷지도 먹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누며 가까워졌고, 이후 여정의 좋은 길벗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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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 ABC트레킹 넷째날

시누와(2,340)-뱀부-도반(2,505)-히말라야 호텔(2,920)


약효 때문인지 몸 상태도 좋아져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평소에 약의 도움을 받긴 했었지만, 이렇게 약이 고마웠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라릿이 덩달아 코를 훌쩍이며 약을 나눠달라고 해서 순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며칠이 될 지는 몰라도 길동무인데 아까워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나도 거저 받은 것인데, 나누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촘롱을 넘어 시누와를 지난 후부터는 이전처럼 급격한 오르막은 없었다.

그럼에도 평지를 걷든 내리막을 걷든 마음은 늘 조만간 나타날 오르막길에 가 있었다.

당연히 평지의 만만함, 내리막의 수월함을 온전히 즐기지 못고

온통 오르막의 고단함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니 마음 편할 수가 없었다.

길을 걸을 때, 평지도 있고, 오르막도 내리막도 있을 수 있다.

지난 길 그리워 할 것도 앞으로의 길 당겨서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지금 내가 마주한 길로 한 걸음 두 걸음 디디면 된다. 

그렇게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가다보면 목적지에 닿게 마련이다.


트레킹 넷째날, 그리고 라릿과 함께하는 둘째날 시누와를 출발해 

뱀부에서 차 한 잔 하고 물통을 채우고, 도반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늦지 않은 시간에 히말라야 호텔에 도착했다.

 

 

 

메뉴판을 들고 오는 라릿^^

 

 

도반과 히말라야 호텔 사이에 새로 지어지고 있는 롯지

이 롯지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킴롱콜라 사람들이어서 라릿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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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 ABC트레킹 넷째날

시누와(2,340)-뱀부-도반(2,505)-히말라야(2,920)


시누와의 아침은 상쾌했다.

여전히 몸살기운이 남아있긴했지만, 하루에 대한 걱정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저녁에 맛있는 백숙도 먹었고, 무엇보다 내 곁에 든든한 벗이 있다는 사실이 저절로 미소짓게 했다. 

길에 붙어 있는 숙소의 특성상 아침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득했다.

먼저 네팔인 포터들이 큰 짐들을 짊어지고 지나갔고,

단체로 온듯한 한국인 트레커들이 뒤를 이었다.

시누아에서부터 핸드폰이 터졌기 때문에 카톡을 확인하고 전화를 거느라 여념없었다.


부인과 통화하는 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내용인즉, 함께 온 다른 사람과 걸으며 약간의 경쟁이 붙었는데,

그 사람은 평소 산악회에 속해서 산을 타던 사람으로 초반 자신만만해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결국 자신이 더 잘 걸었다고 하며 아내에게 보고를 하는 거였다.

'내가 잘 걸었다.', '내가 걸었다.'라며 큰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원하지 않아도 들리는 말소리를 들으며 '내가 했다.'가 귀에 꽂혔다.

이 길을 걸으며 '내가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길을 내고, 돌계단을 놓은 이들이 있었다.

곳곳에 쉬고, 먹고, 잘 수 있는 숙소를 만든 이들이 있었다.

주문할 때마다 음식을 요리해 가져다 주는 이들이 있다.

내가 가지고 온 거의 모든 짐을 짊어져 주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짐 전달하고, 그 길 걷고, 그 집에서 먹고 머문 것 뿐이다.

물론 그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온전히 내가, 내 능력으로 한 것처럼 큰 소리 낼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녀 왔다든지, 함께 했다든지, 허락해 주었다든지 좀 더 겸손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빚을 진 일밖에 없는 것 같다.

길에 빚 지고, 숙소에 빚 지고, 음식에 빚 지고, 짐 진 어깨에 빚을 졌다.

시누와에서 히말라야를 향한 길, 자랑하지 않으며 한 걸음 두 걸음 빚을 더하며 라릿의 걸음을 좆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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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8. ABC트레킹 둘째날

간드룩(1,940m)-쿰롱단다(2,210)-킴롱콜라(1,500)-촘롱(2,170)


소소한 즐거움도 잠시, 결정적인 문제가 활화산처럼 폭발을 했다.

쿰롱단다에서 킴롱콜라로 내려가면서 몸 속에 세력을 키우던 감기 기운이 극에 달했다.

기운이 없어지니 다리도 떨리고 몸도 마음도 무너졌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걸어야 하는 건가 깊은 회의에 절망감마져 들었다.


등산에서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주의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짓누르는 짐의 무게에 저항하며, 풀린 다리가 접히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한 발 한 발에 엄청난 중력이 느껴졌고, 설상가상 오른쪽 스틱도 말썽을 부렸다.

 

겨우 강까지 내려왔는데, 다리로 가는 길에 돌담이 쌓여 있어 잠시 멈춰 섰다.
돌담 옆에 조그만 공간이 있긴한데, 지나갈 수 있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뒤에서 잡아 끄는 것 같은 배낭에,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배고픔에,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물이 많지 않아 만들어진 강바닥의 길을 따라 강을 건넜다.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앉았는데, 멀리서 세 자매가 다리로 건너며 사진을 찍고 있는 거다.

힘들게 건너온 강의 길이 다시 떠오르면서 힘이 쭉 빠졌고, 

다시 강뚝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왜 그리 가파른지, 한심해서 눈으로만 오르며 숨을 몰아쉬었다.

세 자매가 오기 전에 후들거리를 다리를 끌고 겨우 오르고 올랐다.

 

이 때 정말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목적지인 촘롱까지 갈 것인가 여기서 중단할 것인가.

중단한다는 것은 되돌아간다는것까지 포함한 결정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 뭐하러 내리막길을 내려와서 또 오르는 수고를 앞에 둔 것인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도 가중됐다.

문제는 목적지 촘롱은 킴롱콜라에서 '급격한 오르막' 2시간을 더 가야한다는 것.

도저히 더 갈 수 없다는 판단에 일단 킴롱콜라에서 예정에 없던 숙박을 결정했다.

어차피 여행은 변수의 연속인것이니 그럴 수 있는 것이라 합리화를 하며.

한정된 기간 촘촘히 짜여진 일정으로 온 여정이라 전체 일정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도 걱정도 되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온수가 나오냐는 물음을 던지며 결국 킴롱콜라에 짐을 풀었다.

역시 뜨거운 태양빛과 달리 숙소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온수가 나온다고 하니 위안을 삼을밖에.

일단 허기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피자와 음료를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밖에 세 자매가 도착했고, 잠시 앉아 쉬다가 다시 출발을 하는 것이 보였다.

식당에서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선뜻 인사를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데 그 때는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배는 고팠는데 막상 음식을 먹으려니 입맛이 없어서 몇 조각 먹다가 내려 놓고 말았다.

따듯한 음료를 다 마시고 씻기위한 준비를 해서 샤워장 겸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아까 잘 될 거라고 했던 온수기가 고장이어서 온수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기가 막히고 힘이 빠져서 주방에 가서 허탈한 표정으로 온수 얘기를 하니

그제서야 고장이라고 한다. 아까는 온수가 된다고 해놓고, 참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나마 주인 아저씨가 미안해 하며 따듯한 물을 한 통 준비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받아온 온수에 찬물을 섞어가며 작은 바가지로 궁색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의도치 않게 일찍 도착한 두번째 롯지, 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포기했다는 절망감에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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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7. ABC트레킹 첫째날

포카라(850m)-나야풀(1,070m)-사울리바자르-킴채-간드룩(1,940m)


호텔 조식을 간단히 먹고 짐을 단단히 챙기고 길을 나섰다.

아직은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지금 내 상태가 트레킹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준비한 것들은 적절한 것일지,

노포터로 올라가는 것이 잘한 선택인지... 그 어떤 것도.

ABC트레킹의 출발점인 나야풀로 가는 교통수단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로 '일단' 호텔을 나섰다.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걸어서 가려고 할 만도 한데

머리 속이 하얀 상태로 나선 길이다.

전날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글들을 봤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탓도 있다.

전적으로 내 상태의 문제였다. 몸과 마음이 풀어져서 뭘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한산한 도로를 신기한 눈으로 살피며 걷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편에 정차하고 있는 택시의 기사가 손짓을 한다.

나야풀로 간다고 하니 어서 오라고 반긴다. 그리고 1,800이라고 착한 가격을 부른다.

보통 2,500 전후라고 알고 있었고, 약간 늦은 출발이기도 해서 망설임없이 바로 올라탔다.

나야풀에 도착하기 전부터 흥정으로 피로감을 높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트만두와는 달리 깔끔하게 닦인 시내의 도로를 달리던 택시는 좌회전을 해서 좁고 꼬불꼬불한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기사가 경찰이 어떻다고 얘기를 하는데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암튼 길이 달라진다고 해서 비용이 더 드는 것은 아니니 기사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좁아서 다른 차와 교행 할 때는 정말 아찔했고, 움푹 파여서 차가 들썩거리기를 여러 번

도로 정비하면서 공사중인 구간은 또 먼지 구간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여를 달려 나야풀 입구에 있는 식당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출발이구나. 배낭을 메고 스틱을 잡았지만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2,000루피를 주니 거스름돈을 팁으로 달란다. 그래, 내가 지금 정신이 없으니 좋다.

내려와서도 자신에게 연락해 달라고 해서 전화번호도 받았다. 암튼 내가 정신이 없으니 좋다.


배낭을 메고 스틱을 짚으며 걸으니 마치 까미노를 걷고 있는 착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나야풀을 가로지르며 걷는데 공중에 붕 뜬 기분이었다.

내 상태가 그랬다. 정상이 아니었다.

팀스 확인받고, 다리 건너 비레탄티Birethanti에서 퍼밋 확인받고, 거의 평지 수준의 길을 멍하게 걸었다.

춥다는 1월의 햇살은 따가웠다. 흐르는 땀에 내가 지금 적절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앞뒤로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 것이 발걸음을 더 무겁게 했다.

비수기라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잘 모르겠다.


점심을 먹을 예정인 사울리바자르Syauli Bazar에 정오가 되어 도착했다.

내려가는 중인지 오르는 중인지 서양인들 몇 명이 식사를 하고 있는 식당을 지나 

텅 빈 식당에 들어가 간단히 식사 주문을 하고 땀에 젖은 옷을 벗고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볶음밥과 바나나가 들어간 후식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이들이 만들어내는 밥요리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했다.

삼분의 일은 남기고, 후식은 클리어 하고는 물을 병에 나누어 담고 길을 나섰다.

식사 중일 때 도착한 현지인들이 큰 눈으로 시선을 주는데, 내가 특이한 점이 있나 싶었다.

아마도 그들은 대부분 포터나 가이드들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난 그저 출발점에 선 초보 트레커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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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6. 포카라


포카라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하나 더 있다.

미비한 트레킹을 장비를 대여하거나 구입하는 것.

가장 필요한 것이 침낭*이다. 무겁고 부피가 커서 현지에서 조달하려고 미뤄왔던 준비물이다.

그러나 여기서 예기치 않은 난관에 부딪혔다.

아웃도어 상점마다 장비 랜탈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침낭을 물으면 고개를 젓는다. 

그러다 한 가게에서 대여용이라고 꺼내 보여주는데, 냄새나고 더러워 도저히 건네 받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구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비교적 저렴하고 ABC트레킹에서 문제가 없을만한 것을 받아들였다. 

좀더 발품을 팔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계속 찜찜했지만,

잠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체취에 찝찝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카트만두에서는 마치 홀린 것처럼 현지인 식당을 찾아갔었고,

그래서 부족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포카라에서는 한국식당이 눈에 확확 들어왔다.

대부분의 것에 낯설음이 가시지 않으니 식사라도 편하게 하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한국식으로 밑반찬이 네다섯 개가 나오고 김치찌개가 나오니 긴장이 확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거야~' 하면서도 한국을 떠난지 이틀만에 한국음식에 끌리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하지만 이틀이 두 주 같이 무겁게 누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칼칼한 한식으로 위장을 채우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여전했지만, 내일부터는 계획대로 갈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에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숙소*, 히팅이 된다는 말에 선택했다.

체크인을 하며 받아든 리모콘이 얼마나 반가웠는 지 모른다.

씻으려고 미리 실내를 따듯하게 하려고 온풍기를 틀었는데... 앞에 서 있을 때만 따듯하다.ㅠㅠ

실내 전체의 온도에는 그리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휴~ 그렇지 뭐, 이 가격대의 숙소가 얼마나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에 위안하며 내일을 위한 쉼의 공간으로 받아들였다.

무료조식도 제공하니 아침까지 걱정없이 잠을 청한다.

계획대로 내일 아침 일찍 이 호텔을 나설 것이니. 


*침낭, 짝퉁 노스페이스-10도, 64달러, ABC트레킹에서 전혀 문제없이 따듯하게 사용함.

*숙소, Kotee Home Hotel, 1박 조식포함 2,200, 추천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괜찮았음.


 

 

조식을 먹으려고 레스토랑에 앉았는데, 군인들이 줄지어 구보를 한다.

포카라에서 군인들의 행렬을 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별난 구경거리였다.

 

포카라는 히말라야가 품고있는 도시이다. 어디서든 히말라야 설산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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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6. 포카라


여행을 하면서 은근히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

웬만하면 걸어서 이동하려고 하는 것인데, 

나 혼자서 충분히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쓸데없이 택시에 돈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강박 때문이다.

문제는 몸이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ACAP Permit & TIMS Counter로 가려고 했는데, 

지도어플에 Tims Office를 검색하고 건성으로 확인하고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성큼성큼 한참을 가서는 사설 여행사인 것을 확인하고는 힘이 죽~ 빠졌다.

자유여행에 일각연이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종종 경험하는 건성건성의 댓가다.

지도어플로 꼼꼼하게 확인하고 다시 온 길을 되짚어가는데 얼마나 낙심이 되고 지치던지.

함께하는 이가 없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힘든 것을 아니 대놓고 불평은 못하지만, 한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투어리스트 버스 파크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있는 곳을 엉뚱한 곳으로 한참이나 갔다.

공항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걸어가도 된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으면서 한 헛걸음이었다.



그렇게 겨우 찾아간 ACAP Permit & TIMS Counter에서 또 어리버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퍼밋을 먼저 받고 팀스를 받아야 하는데, 팀스 카운터에 갔다가 저~쪽으로 가라는 손짓에 

퍼밋 카운터로 이동해서 서류작업을 다 하고는 달러를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ATM에 갔다가 고장났다고 하고, 또 환전하려고 사거리까지 진땀을 흘리며 다녀오고. 

왜 이리 낑낑거리며 일을 진행하는지. 

꼼꼼하게 위치를 확인하고, 미리 넉넉히 환전을 해 두고, 

또 혹시나 하는 마음보다는 준비하는 태도를 가졌더라면 허둥지둥 하지는 않았을 거다.

팀스를 만들며 노 가이드, 노 포터를 외치는데 스스로에게 확신이 들지 않았다. 

몸 상태도 안 좋고, 얼빠진 것 같은 자신의 모습에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으니.

어렵사리 퍼밋과 팀스*를 만들고는 스스로 해 냈다는 뿌듯함을 안고 숙소를 찾아 출발했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 한 번 당해 놓고서는 다시 반복하는 어리석은 인간, 나다.

그 정도면 택시라도 잡아타고 갈만 한데, 또 그냥 낑낑대며 걷는다.

무릎, 허리, 등줄기에서 신호가 오는데 마치 잘 아는 길을 걷는양 힘찬(?) 모습으로.

그러면서 깨닫는다. 숙소를 잡아 놓지도, 어디로 갈 지도 정하지 않았다는 것.

급하게 인터넷을 검색하여 뜨는 숙소들.

아직 리버사이드의 남쪽 초입인데, 거의 북쪽에 위치한 곳들(예를들어 윈드풀 같은 숙소)이 뜬다.

간다, 내가 걸어서 가고야 말 거다 하며 택시의 유혹을 뿌리치며 걷는다, 계속 걷는다. 

결국 리버사이드의 중간쯤 가서 멈추었다. 더이상 걸을 수 없는 상태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아고다를 검색해 후기가 괜찮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인접한 곳으로 정하고 들어갔다.

카트만두의 기억을 상기하며 한 가지 조건을 추가했다. 히팅이 되는 곳!


계획대로라면 내일부터 ABC트레킹이 시작되는데, 지금 이 상태로 가능할까 의구심이 더 깊어졌다.

쿤밍과 카트만두에서 다운된 몸 상태는 더 나빠지고 있고, 

네팔에서 두번째 날을 보내면서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마음 역시 불안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내일 출발할 수 있을까? 난 준비된 것인가? 


*퍼밋 2,260루피, 팀스 2,000루피. 

 달러는 받지 않음. 자료에 '20불' 이런식으로 안내하고 있어서 헷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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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6.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가기


계획을 세우면서 살짝 고민했다. 비행기로 빨리 갈까, 버스로 느리게 갈까.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나는 느린 여행을 선호하기에 오래 붙들고 있진 않았다.

비행기로 날아가며 히말라야를 더 가깝게 조망할 수도 있겠지만,

차창으로 지나치는 현지인들의 소소한 일상과 삶의 자리를 만나는 것이 

더 흥미로운 일이기에 자연스럽게 버스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결정이었지만, 네팔에서 버스를 탄다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일단 한국 같으면 두세 시간이면 갈 만한 거리를 여덟 시간을 간다.

그만큼 차가 속도를 낼 수 없는 여러 조건들이 있다는 의미다.

그래도 차는 빨리 가려고 애를 쓴다. 왕복 2차로이다 보니 앞지르기를 많이 한다.

네팔의 앞지르기는 가히 곡예운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반대 차선을 달릴 때, 그리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는 것도 조마조마한데다

간발의 차이로 충돌을 피하고 원래 차선으로 돌아오는데 

심장이 쫄깃해 지는 건 나 뿐이었던 것 같다.


길 상태는 또 어떤가.

아스팔트길이긴 한데, 대부분 얇아서 깨지고 움푹 파였다.

특히나 아스팔트 도로는 옆으로 콘크리트로 가이드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어

바깥쪽부터 깨져 들어와 어떤 길은 차 한 대 지나갈만큼만 남아 있기도 했다.

그런 길을 요리조리 잘도 지나가는 차들, 기사들의 운전실력에 경의를 표해 마지 않는다.

그런 길에서 반대 차로로의 앞지르기가 더해지니 기막히지 않을 수 있나.

어떤 이는 척추뼈가 다 튀어나오는 경험이었다고 혀를 차기도 했다.


카트만두 시내도 그랬지만, 포카라로 가는 도로 역시 먼지 투성이였다.

도로 옆에 있는 나무들은 누렇게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어서 광합성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 길 곁에 딱 붙어서 지어진 집들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처지는 어떨까.

그럼에도 하나같이 얼굴 찌푸린 이들이 없고, 오히려 수없이 지나가는 차들을 주목한다.

지나가며 잠깐 눈이 마주치는데도 아이들은 바로 손을 흔들어 준다.

아무 말도 없이, 그 어떤 만남도 없이 지나치는 버스 안의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그들의 따듯한 마음이 덜컹거리는 버스여행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첫번째로 정차한 휴게소와 화장실. 포카라로 가는 투어리스트 버스는 휴게소에 3번 정도 정차한다. 위 사진처럼 볼일도 보고, 간단하게 요기도 할 수 있다. 

 

 

 

 

 

포카라 투어리스트 버스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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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5-16. 카트만두


숙소를 정하는 기준은 단 하나, 따듯한 물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고다를 통해서 이용후기를 검색해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찾았다.

가격은 1,800루피이고, 따듯한 물이 나오는 싱글룸이었다.

그러나 비용을 지불하고 올라와 짐을 풀면서 알게 됐다.

따듯한 물은 나오지만, 숙소가 너무 춥다는 것을.

숙소 자체에 난방을 위한 설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거다. 할 수 없는 일...

그래도 콸콸 나오는 따듯한 물에 위안 삼으며, 아니 감사하며 네팔에서의 첫날 지친 몸에 쉼의 시간을 가졌다.

어쨌든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따듯한 물 하나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깊이 깨달았다.

이후에도 핫워터를 얼마나 외쳤는 지 모른다.


그렇게 추운 숙소에서 이불과 씨름하고는 포카라로 가기위해 일찍 숙소를 나섰다.

Kanti Path(타멜 인근 도로)에서 오전 7시에 포카라로 가는 투어리스트 버스들이 출발한다.

비수기라서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좋은 자리에 앉아서 가려고 6:30에 맞춰서 나갔다.

끝이 보이지 않게(과장) 도로에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버스를 지날 때마다 눈길을 주고, 붙잡으려고 하지만 소신껏 버스를 고른다.

아무래도 비교적 외관이 깔끔한 버스를 골라 흥정을 하고 올라탔다.

타고 보니 내부는 거기서 거기 같다.

여행사가 아닌 직접 지불을 해서인지 좀 더 친절하게 자리로 안내해 주는 것 같다.

아마도 내 착각일 수 있겠지만, 그랬을 거 같다. 700루피나 줬으니 그랬어야 했다!


낮설지만 낯설지 않은 풍경들. 동남아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그런 친숙한 모습들이 눈길을 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길이다. 

한 나라 수도의 길이 어떻게 이리 엉망일 수 있을까.

공사 중인 것인지, 방치된 것인지를 알 수 없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그러니 흙먼지가 끊일 수가 없는 거다.

이렇게 도로같지 않은 도로를 무사히(!) 달리는 기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오른쪽 자리를 배정받고, 시종 창밖을 주시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열심히 모든 광경을 담아보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한 쪽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아, 그렇구나 아무리 내가 모든 것을 보겠다고 눈을 크게 떠도 결국엔 한쪽만 본 것일 뿐이다.
한쪽만 보고서 마치 전부 본 것처럼 떠들어 댈 것이 아닌가.
그래서 겸손히 반만 봤다고 얘기하기로 했다.
아니, 아주 조금 보고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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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5-16. 카트만두


차장에게 타멜이라고 수차례 말했지만, 타멜 옆을 돌아 멀어지는데도 아무 말도 안 해 준다.

아마도 내가 타멜을 여러번 외친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듯 했다.

버스가 서행하는 적당한 순간에 네팔식으로 도로로 뛰어 내려 카트만두 시내에 첫 발을 내디뎠다.

분주히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마치 이전부터 함께 걸어온듯 전혀 이물스럽지 않게 그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육교 위에서 도로와 건물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난 외국인이 되었다.

그제야 사람들도 나를 힐끗 주목한다..

물론 수많은 외국인들이 지나갔을 길이기에 긴 시선을 주진 않았다.


스마트폰 지도앱을 따라서 첫 식사를 위한 스몰스타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도착한 작은 식당은 현지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언듯 얻은 정보에선 마치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 같았는데, 온전한 현지인 식당이었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서 전통 음료를 마시며 피어대는 담배연기와 말소리로 가득했다.

일단 들어섰으니 돌아설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모든 감각을 최대한 살려서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메뉴판을 뚫어져라 봤지만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서

점원의 도움을 받으며 튀긴 채소 모모와 음료를 주문했는데, 머리를 갸우둥 한다.

양이 적을 거라는 신호다.

그래서 국수 비슷한 것을 추가 주문했다.


모모는 네팔식 만두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모모~ 소의 채소가 거의 살아 있는, 생마늘 맛이 그대로여서 깜짝 놀랐다.

그나마 튀겨진 만두피 맛에 의지해 겨우 다 먹을 수 있었다.

추가로 주문한 국수, 국물은 괜찮은데 면을 먹을 수가 없어 거의 남겼다.

블로그에서 얻은 정보들을 너무 믿을 것은 못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식사였다.

어쩌면 이 때부터 내 입맛이 없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어두워져 조명 밝힌 타멜 거리를 걸어

아고다로 검색한 숙소를 찾아 가격 흥정해서 첫 쉼을 위한 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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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5-16 카트만두


장장 20시간 가까이 걸려서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1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듯한 공기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었다.

허름한 공항의 시설들에 실망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 눈에 정감있고 편안했다.

당장 필요한 돈만 환전*하고, 유심칩*을 구입해 공항 밖으로 나왔다.

축적한 정보를 좇아 호객하는 택시기사들을 뿌리치고 공항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가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배낭 맨 외국인이 택시를 타지 않고 공항 밖으로 걸어가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정문을 지나 왼편에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문제는 버스에 써 있는 글씨를 읽을 재간도 없고, 짧은 영어로 일일이 물어보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카페에서 얻어온 자료를 바탕으로 '라트나 파크'를 물으며 한 버스에 올라탔고,

버스는 예상한 길을 따라 타멜 거리 쪽으로 덜컹거리며 달렸다.

덜컹거리기만 하면 괜찮은데, 자동차들이 일으켜 날리는 흙먼지는 압권이었다.

더구나 그 먼지 속을 버스는 문을 열고 달린다.


네팔의 수도 답게 곳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라트나 파크 인근의 공터는 축제라도 벌어진 것인지 엄청난 인파로 붐볐다.

먼지 반 공기 반인 열악한 시내를 통과하면서도 활력 넘치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쿤밍과 비행기에서 쌓였던 피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드디어 카트만두에 오고야 말았다!


*환전-환율은 카트만두가 포카라보다 좋고, 제일 잘 쳐주는 곳은 포카라 윈드풀임.

*유심칩-네팔텔레콤, 3기가, 30일, 시누아까지 터지고 뱀부에서도 간간이 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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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4-15 쿤밍


네팔, 특히나 안나푸르나는 막연한 짝사랑의 이름이었다.

이제나저제나 나의 발길 닿을 수 있을 지 바라만 본지 수 년이다.

드디어 이래적인 추위에 떨고 있는 대한민국을 뒤로하고 네팔로 향한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트레킹이기에 준비의 과정도 만만치 않았고,

더구나 낮은 기온으로인해 비수기인 1월에 꼭 가야할까하는 고민으로 중단될 위기도 있었다.

몇 차례의 고비를 넘기며 준비를 거듭한 끝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공항을 서성인다.


여행은 공항만 오면 끝이다. 

체크인 하고 출국수속을 마치면 내 몸은 준비한 여정을 따라 움직이는 거니까.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이륙을 기다리는 항공기 안에서 여행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더구나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옆자리에 아무도 타지 않을 때는 거의 환상적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한 공항에서 긴 환승이 있지만 40만원 초반의 저렴한 항공권을 판매하는 중국동방항공에 새삼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새벽 3시경에 도착한 쿤밍 공항은 낭만적이던 모든 기대와 안이한 생각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수화물처리를 하지 않아 입국수속 후 가장 먼저 나왔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앞이 캄캄했다.

열 시간 이상을 머물러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그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던 거다.

그냥 공항에서 시간을 보낼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을 뿐이다.

일단 공항 어디에서도 달러나 카드를 받지 않았다. 위안화가 필요했다. 환전소도 없었다.

오로지 현금인출기만 몇 곳에 있을 뿐이었다.

결국 큰 수수료를 지불하고 200위안을 찾아, 만원인 캡슐텔 앞을 서성이다 환승객 라운지로 갔다.

100위안을 지불하고 쇼파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춥고 불편해 거의 가수면 상태로 시간만 보냈다.

아마도 이 때부터 감기가 더 심해지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쿤밍에서 당혹스런 상황을 맞으면서 이번 여행에 대한 정의가 내려졌다.

"준비부족 여행"

난 뭘 준비한 걸까.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며 열심히 챙긴 것들은 뭔가.

등산을 위한 옷가지와 장비들 준비는 했지만, 세부적 일정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던 거다.

그렇게 준비부족 여행은 시작되었고, 하루이틀 더 할 수록 부족감은 더 증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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