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띠아고 에필로그(2)


순례를 마친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그럼 순례 후에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무엇일까?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나, 생활태도가 바뀌었나? 신앙심이 더욱 돈독해졌나? 

순례 막바지에 동행했던 K는 걷는 중 '변화'라는 화두에 자극받고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어린 친구였는데 대견했고, 나도 도전을 받았다. 끊은 담배 다시 찾지 말라고 당부를 했었는데,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계속 금연 중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처럼 큰 변화가 또 있을까? 평생 '끊어야지'란 말만 달고 살며 잘라내지 못하는 습관이 흡연이 아니던가. 

그럼 나는 어떤 변화를 체험했나, 아니 결단했나? 핑계지만, 나이가 들수록 변화가능성, 변화할 수 있는 가짓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정서가 굳어 웬만해선 외적요인에 영향을 덜 받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얘기로 스스로 합리화하며 순례가 아닌 관광으로 까미노의 인상을 추억으로 바꾸어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두 달이 지났다고 하지만 그 어디에 다녀온 기억보다 생생히 그 곳에 대한 그리움에 휩싸여 지낸다. 

이제까지 어디를 그리 단순한 생활로 긴 시간 걸어보았단 말인가? 어디에서 그런 자유를 누려보았단 말인가? 그 어디에서 고생을, 고통을, 고단한 일상을 즐겁게 받아들여 보았단 말인가? 그 어디서 투명하게 자신을 들여다보았단 말인가? 그래서 까미노는 '바람'이다. 온 몸으로 맞았던 뜨거운 바람이었고, 지금 나를 또다시 들뜨게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 나는 단단히 바람이 들었다. 아니, 바람이 났다. 나는 바람을 갈망한다. 오늘도 까미노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까미노 전후로 나에게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살아가는데 까미노라는 정말 든든한 벗을 얻은 것은 틀림없다. 갑갑한 삶 가운데 빈틈이며, 여유 공간이고, 의지할 수 있는 지팡이와 같은 친구 말이다. 그래서 난 지금 다시 친구가 보고 싶다. 거기 까미노에 친구가 밝은 미소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넉넉한 가슴으로 고단한 순례자를 안아줄 수 있는 친구, 그러니 눈물겹도록 그립지 않을 수 있을까?

2013년 12월 말에


눈물겹도록 까미노가 그립다.

그 때 그 곳의 길, 사람, 돌, 나무, 풀 한 포기도 그립다.

길 옆에 사과와 포도가 그립고, 작은 시내와 큰 강, 높은 산과 평평한 대지가 그립다.

너무 정든 친구를 남겨두고 돌아온듯 내 심장이 흐느낀다.


다시 태양에 그을리며 땀을 흘리고

다시 그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다시 물집에 아파하며 다리 절고

다시 빈대에 가려워하며 몸서리치고 

다시 궁금한 눈 깜빡이며 지나치는 이들을 바라보고

다시 배고픔 딱딱한 바게트 빵으로 달래고

다시 소리쳐 올라하며 인사 하고

다시 부엔 까미노! 하며 지나쳐 가고 싶다.


길의 숨소리를 듣고, 

길의 질문에 대답하며, 

길의 가르침을 받으며, 

길의 품에 안기어, 

길의 격려 가운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나를 그리워한다.

2013.10.23.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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