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본능'에 해당되는 글 158건

19일차, 깔싸디아 데 로스 에르마니요스에서 만시야를 지나 레온 가는 길 43.1(1) 


이른 시간 알베르게를 나서며 호주 사람 디아나, 리사와 한 컷! 작은 숙소에서 묵으니 잠깐이었지만 정이 든 것 같다.






로마가도의 실체! 관리를 잘 안하고 있는 듯하다.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입구




스페인에서 가장 잘 보존된 로마가도를 보기위해 순례자들은 좀 더 먼 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좀 실망을 했다.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또 그나마 전혀 관리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기대가 크면 역시나 실망이 큰 것 같다. 그래도 보지 않고 갔으면 더 후회했을 텐데, 베드버그에 물려서 가려움에 고통스러운 몸상태임에도 의지를 가지고 찾아간 것은 잘 한 일인 것 같다.
약 2,000년 이상 전에도 이 길을 달렸을 수례와 사람들을 상상해 본다. 이 로마 가도는 라스 메둘라스라는 금광에서 채굴한 금을 아스또르가를 지나 로마로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길로 역사적으로 샤를마뉴 대제 군대, 이스람교도, 카톨릭교도-순례자들이 이용했다고 한다. 나도 그들 중에 끼게 되었다니 그 사실은 로마가도의 상태와 상관없이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길이 곧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눈에 보이게 앞과 뒤를 걷는 이들의 연속, 이전과 이후 걷고 걸을 사람들의 연속, 이것이 길의 실체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것이 생각났다. 길 위의 사람들을 거슬러 가다보면 그 끝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길은 결국 하나님께로 향한다. 그러니 하나님을 가장 잘 보여주시는 예수님은 길인 것이다. 그 길은 진리이고, 또 생명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딛고 있는 이 길 위에 진리도 생명도 있다. 길에서 찾아야 한다. 생각 속에서, 서재에서, 짧은 경험에서 찾을 수 없다. 끝없이 이어진 길 위에서 찾아야 하고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길로 나서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2013.9.29.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8일차, 모라띠노스에서 사아군 지나 깔싸디아 데 로스 에르마니요스 가는 길 23.4km 


사아군 알베르게 앞 순례자상


이슬람 양식이 가미된 사아군 산 띠르소 교회



통과해 지나가던 순례자의 발을 멈추게 한 사아군의 장날 과일가게?!

스페인이 좋았던 것은 이렇게 많은 과일 중에서 한 개를 계산해 달라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



깔싸디아 데 로스 에르마니요스 공립 알베르게 앞 십자가.

예수님의 얼굴이 90도 옆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동행하던 한국인 아저씨가 차려주신 만찬. 미소된장국과 일본식 밥이랑 쵝오!


이놈의 베드버그(한국명 '빈대'), 나의 까미노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스믈스믈한 정도가 아니라 파고드는 가려움으로 인해 걸어도 걷는 것 같지 않고, 뭘 먹어도 먹는 것 같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다. 더구나 이 알베르게에서는 매트리스 아래서 살아 움직이는 베드버그를 본 것이다. 그냥 로비 의자에 앉아서 밤을 지새우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몸서리처지는 고통 가운데 가장 어려움 과제였던 엽서를 여덟 장이나 썼다는 거다. 
엽서를 골라 구입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엽서를 써서 보내는 것도 자신이 없었는데, 마침내 가려움의 고통으로 치를 떨던 바로 그 날 쓰고야 말았다. 어떻게 엽서에 글을 담을 수 있었는 지 놀랍다. 고통을 반대로 승화시킨 것일까. 아~ 그래서 고난 가운데서 예술 작품들이 탄생하는가 보다. 뭐 엽서가 작품은 아니었지만ㅎㅎ.

*참고로 베드버그에 물리면 그 깊은 가려움이 4~5일을 간다. 어떤 놈한테 물렸느냐에 따라서 그 날 수는 조금 다를 수는 있다. 주의 할 것은 가려워도 긁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상처가 더 커지고 가려움도 더해지기 때문이다. 가능한 손은 데지 말고, 항히스타민제 같은 약을 복용하면서 버물리나 연고를 발라줘야 한다. 심한 사람은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는다고도 한다. 내 경우엔 아무리 심해도 까미노 일정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하려고 참으며 계속 걸었다.
2013.9.28.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7일차, 까리온에서 모라띠노스 가는 길 30.1km 



까리온에서 이 길의 끝에 있는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까지 약 17km 정도 구간엔 물과 음식을 구할 수 있는 마을이 없었다.




지구상 어디에 이렇게 잘 정비된 트레킹 코스가 있을까? 노란 화살표는 말할 것도 없고, 산이나 들 가운데 순례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도로 옆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고속도로 ‘센다Senda’를 만들어 놓았다. 까미노에서 만나는 순례자를 위한 스페인의 최고의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비록 도로 옆에 있어서 차량 소리가 소란하고, 지루한 길이지만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걸을 수 있어 좋다. 단, 자전거가 도로로 가지 않고 이 길로 달려 올 때 급하게 피해야하는 것을 빼고. 까미노 초반에는 자전거 순례자들을 반갑게 맞으며 비켜주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피로도가 높아져서 귀찮은 일 중 하나가 된다. 비켜주긴 하지만 한 마디씩 하는 거다. '도로로 가지!' 암튼... 어디 길 뿐만이겠는가. 까미노 데 산띠아고에서는 숙소, 식당은 물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최고의 길을 만들고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여서 작은 마을 모라띠노스로 발걸음을 제촉해야 했다.












모라띠노스에 이태리 사람이 운영하는 사설 알베르게의 저녁 메뉴였다.

스파게티를 많이 준다싶었는데 결국 본식이 햄을 얇게 썰은 것 같은 것에 셀러드를 곁들인 것으로 많이 부실했다.


2013.9.27.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6일차, 까리온 

까리온에 들어서는 길 옆,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예수상.



산따 마리아 성당에 부속된 알베르게인데, 들어서는 순례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음료와 빵을 준비해 두었다.

까미노에서 거의 유일한 호의였다. 다시 생각해도 감사하다. 

루시아라고 한글로 써서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던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수녀님이 있어 더 인상적이었던 곳이다.




산따 마리아 데까미노 교회



맨 오른쪽 기타를 들고 있는 수녀님이 루시아이다.


까리온 Santa Maria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미사 후 신부님이 모든 순례자를 불러 한 명 한 명 축복하는 시간이 있었다. 개신교 신자인 젊은 친구와 함께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에겐 미사도 처음이었고 신부님의 축복기도는 더더욱 생소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눈짓으로 받아도 되냐고 묻는다. 우린 이미 카톨릭 순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니 신부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얘기해줬다. 나는 문제가 없지만 이 길을 걷는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이런 의식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국교회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균형감 있게 안내하고 있나. 이들이 마치 교회완 별개의 사건으로 마음 속 한 편에 접어두고 있다면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닫힌, 답답한 교회만 소외되는 것이 아닐까. 
2013.9.26.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6일차, 보아디야에서 까리온 가는 길 26.1km



프로미스따에 있는 순수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 마르띤 교회.

1066년 이슬람교도를 물리치고 마을이 번성했을 때 지어진 베네딕트 수도원의 일부로

1900년쯤에 복원되었는데, 지붕을 받쳐주는 장식(사람, 동물, 신비로운 모티브 등 300여 개)으로 유명하다.




센다를 순례자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농기구가 들어오지 못하게 까미노 표지석을 세워두었다.


까리온까지 6km, 이 날 한시간 만에 주파했다.



지루한 센다 저 멀리 까리온이 보인다. 치마를 입은 할머니 순례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까미노 초반에는 20km 전후를 걷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까미노와 함께하는 법을 익힐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몸도 무리를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숙소를 잡고, 빨래를 하고, 식당을 정하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는 등 까미노의 생활에 익숙해 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너무 늦게 숙소에 들어가면 그럴만한 여유를 가질 수 없고, 물집이 잡히거나 몸 이 곳 저 곳이 아픈데도 충분히 쉴 수 없게 된다.

까미노가 익숙해질 무렵부터는 걷는 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다. 그래도 나에겐 25km정도가 하루 적정 거리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정도로만 계속 걷게 되면 크게 정해 놓은 일정 안에 순례를 마치기 어렵기 때문에 가능한 걸을 수 있을 때, 조금씩 더 걸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렵게 4~5km 정도 되는 한 구간을 더 걷게 되었을 때,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히 몸의 한계를 넘었는데,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몸 한 편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걷는 것을 즐기는 것 같은 또다른 내가 걷고 있는 것이다. 혹시 이것이 걷기 중독, 까미노 중독이 아닐까. 30km 훌쩍 넘는 거리가 자연스러워지기까지 한동안 이런 중독 느낌이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럴 땐 26.1km 정도로 숙소에 들어가려면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2013.9.26.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5일차, 온따나스에서 보아디야 가는 길 29.5km(3)


메세따 지대에 오르자마자 뒤돌면 멀리 까스뜨로헤리스가 아련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벨지움 아주머니

처음엔 약간 까칠한 듯 했는데, 보면 볼수록 푸근한 분이었다. 아소프라에서 한국인 순례자들끼리 저녁을 지어먹다가 스파게티에 관심을 보이자 선뜻 크게 한 그릇과 포도주를 뚝 내미는 따듯한 마음씨를 가지신 분이었다. 특이한 것은 한국의 할머니들처럼 유모차 같은 것에 짐을 싣고 밀면서 까미노를 완주하신 것. 아저씨는 내내 물집으로 고생을 하는 것 같았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서 다시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너무도 기뻐 얼싸안으며 인사를 나눴다.





산 니꼴라스 예배당과 알베르게, 건물이 주는 매력만큼이나 특별한 운영으로도 마음을 끌었던 곳이다.

더 가야해서 지나쳐갈 수밖에 없어 조금은 섭섭했다. 이 곳을 포함해 그라뇬 San Juan Bautista와 또산또스 San Francisco de Asis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알베르게가 있다. 한 곳에도 머물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엔 엘 까미노, 보아디야에 있는 사설 알베르게.

아래 사진들처럼 잔디 정원과 작은 풀과 철로 만든 조형물들이 인상적이다.





메쎄따 구간을 걷다가 다시 내리막에 접어들 때, 저만치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작은 점으로 보인다. 사람, 길 위에서 참 작다. 그 작디작은 사람들이 아귀다툼을 하며, 서로 위에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세상이란... 대자연 앞에, 신 앞에 좀 더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지를 어서 빨리 깨닫는 것이 지혜다. 그럴 때 '내'가 아닌 '그 분'이 움직이신다는 것을, 이미 처음부터 그 분만이 움직이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멈추지도 않고, 주변을 눈여겨보지도 않기에 오늘도 인생들은 깨닫지 못한다. 

2013.9.25.



'여행본능 > 까미노의 순례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례잡기39_ 축복기도  (0) 2014.02.23
순례잡기38_중독  (0) 2014.02.22
순례잡기36_경쟁을 멈추고  (1) 2014.02.17
순례잡기35_불필요한 집착  (1) 2014.02.17
순례잡기34_나에게로 향하는 길  (1) 2014.02.16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5일차, 온따나스에서 보아디야 가는 길 29.5km(2) 




까스뜨로헤리스

로마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도시라고 한다. 언덕 위에 있는 성을 폼페이우스나 카이사르가 세웠다는 설이 있을 정도니 참 유서 깊은 도시이다. 최근 더 특별해진 것은 '연금술사'를 쓴 파울로 코엘료가 이곳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이 곳을 지난후 듣게되어 많이 아쉬웠다. 다음에 간다면 꼭 이 곳에서 하루 이상 머물고 싶다.






까스뜨로헤리스를 벗어나면서 보게 되는 메세따지형



까미노에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 중 하나는 '경쟁'이다. 특히 속도경쟁. 누가 얼마를 걸었다고 하면 나도 그만큼 걷겠다고 무리를 해서 걷는 거다. 그러다보니 잠깐 앉아서 쉴 때도 몇 명이 지나쳐 가는 지 신경을 곤두세울 때도 있다. 서양 순례자들은 키가 커서 성큼성큼 걷기에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것이 당연한데도 추월당하지 않으려고 용을 쓸 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무의미함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지나쳐 앞서 간 순례자 때문에 숙소를 못 잡은 적도 없고, 또 그런들 어떤가? 다른 숙소를 찾으면 되는 것인데. 그러면 바Bar에 앉아 지나가는 이들을 편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도 유쾌한 일이 된다. 잠시 멈춰서 보지 않으면 어떤 사람들이 지금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지 알 수 없기때문이다. 한 번 안면을 트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사건'인지, 돌이켜 생각하면 더없이 그리운 순간들이다. 올라! 부엔 까미노!
2013.9.25.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5일차, 온따나스에서 보아디야 가는 길 29.5km(1) 


온따나스를 출발해 들어서게 되는 밭 사이의 좁은 길. 한 줄로 가는 길은 보폭의 차이로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


산 안똔 아치 Acro de San Anton

 




습관적으로 내 것, 네 것을 나누며 내 것에 집착한다. 배낭을 바닦에 내려 놓으려 해도 내 것은 먼지가 없는 곳을 골라서 놓고, 혹시나 긁히거나 이물질이 묻지 않도록 애지중지 한다. 한국사람, 아니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버스를 타며 화물칸에 싣게 될 때도 가방이 어디에 어떻게 놓이는지 관심 갖고 끝까지 지켜보고 올라간다. 반면 서양 사람들은 배낭을 화물칸 앞에 툭 던지곤 뒤도 안 돌아보고 버스에 오른다. 길을 걷다가도 힘들면 선채로 배낭을 벗어 땅바닥에 떨어뜨린다. 심지어 깔고 앉아버리기도 한다. 참 생각이 많이 다르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 아닐까. 배낭, 짐 그까짓 거 소모품이라는 것을 아는 거다. 소유에 집착하는 내 모습과 대비되 많이 반성하게 된다.
2013.9.25.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4일차, 부르고스에서 온따나스 가는 길 29.6km(2) 





오르니오스 들어가 첫번째 바의 벽에 여러 나라의 시간을 알리는 시계가 걸렸있다. 한국도 당당히!




서양인들도 돌을 쌓는 것은 매 한가지. 마치 한복을 입은 아낙네 같은 모습이다.


온따나스 들어가는 길




메세따는 스페인어 책상에서 왔다고 한다. 높고 평평한 지형(고위평탄면)이 스페인의 메세따이다. 나무가 없고 대부분 밀밭이어서 덥고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이 펼쳐진 곳이다. 그래서 까미노에서 힘든 구간 중 하나이고, 몇몇 순례자들은 부르고스에서 버스를 타고 메세따를 건너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까미노의 그 어느 곳보다 더 기억에 남고, 다시 걷고 싶은 길이 메세따의 까미노이다. 누구에겐 지루하고 덥고 고된 길이지만, 나에겐 시원하게 탁 트인 자유의 공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선 곳, 아니 내가 바로 끝이고 그렇기에 또다시 시작이라는 뜻이 아닐까. 길이 나로부터 시작해 나에게서 끝난다는 사실을 메세따는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나에게로 향하는 순례의 여정이 더 깊어지고 있다.
2013.9.24.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4일차, 부르고스에서 온따나스 가는 길 29.6km(1) 


해도 뜨기 전에 부르고스 숙소를 나선 순례자들



드디어 메세따(고위평탄면) 지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드디어 메세따 지대에 올라섰다. 양과 목자와 한 그루의 나무...


아가씨들인줄 알았는데...


까미노를 걷는 것도 여행의 하나라면 참 고된 여행이다. 걷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매일 머무는 곳이 바뀌니 매번 새로운 숙소를 찾아 묶어야 하는 것이 참 고역이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아침이면 짐을 꾸려 짊어지고 어둠 속으로 길을 나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생활도 열흘이 넘고 또 며칠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있는 거다. 
아침에 눈을 뜨면 거의 자동적으로 침대 난간에 널어둔 옷가지와 취침을 위한 소품들을 챙겨 배낭을 꾸려놓고,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발에 바세린을 바르고 양말을 신는다. 이어서 로비나 식당에서 서거나 앉아 전날 준비해둔 먹거리로 간단히 요기를 한다. 그리곤 캡라이트를 모자에 끼우고 배낭을 짊어지고 스틱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밝은 날에도 가끔은 헷갈리는 길을 어둠 속에서도 성큼성큼 발걸음을 재촉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디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까미노에서는 거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긴장이라는 안정장치가 있어 그 익숙함에 빠져버리진 않는다.
2013.9.24.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3일차, 부르고스Burgos







부르고스 대성당. 워낙 커서 작은 카메라엔 잘 잡히지 않는다.



씨에스타! 그 많던 사람들이 흔적도 없다.


까미노 13일차, 드디어 도시다운 도시를 만났다. 빰쁠로나, 로그로뇨 같은 작지 않은 도시도 지나왔지만, 부르고스는 명실공히 대도시라 할 만하다. 도시 자체도 크고, 사람도 많이 살고, 볼거리도 많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크고, 성당 아래에 그 유명한 엘시드의 유골이 안장되어 있다고 한다. 가이드북에는 하루를 더 지내며 그간의 여독을 풀고 앞으로 500km이상 더 걷기 위한 에너지를 충전할 것을 권한다. 부르고스에 도착하기 전에는 살짝 고민을 하긴 했다. 그런데 막상 부르고스에 도착하고 보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부르고스 자체가 마음에 안들었던 것은 아니다. 좀 더 머물며 꼼꼼하게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하지만 순례자에게 큰 도시가 주는 의미는 좀 달랐다.
일단 도시가 갖고 있는 특성, 소란함이 가장 가깝게 다가왔다. 그리고 볼거리가 많다는 것 또한 호감을 주지 않는 점이었다.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그 답답함의 이유, 그 소란한 소리들은 순례자의 귀를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 낸다. 볼거리가 많다는 것, 관광객이라면 반길만한 일이지만 순례자의 시선 또한 안에서 밖으로 유인하고, 도시의 이 곳 저 곳을 배회하게 해서 쉬지 못하게 한다.
어찌 순례자만 그럴까. 오늘날 사람들이 도시의 편리함을 선호하고 누리지만 그 소란함과 복잡함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안으로보다는 밖으로의 삶에 치우쳐 있지 않은가. 그리고 한시도 멈추어 있지 못하고 도시의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리고, 심지어 가만히 있을 때도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꾸어가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느라 쉼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나. 그렇게 귀와 눈을 빼앗겨버린 사람들이 소위 문명인들이다. 그러니 오늘의 문명의 상징, 도시는 순례자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득이 아닌 실이요, 그 여정의 방해꾼이다.
그래서 대도시, 부르고스에는 하루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다시 까미노를 가게 된다면 더 작은 마을들 중심으로 머물 곳을 잡으리라 다짐했다. 오늘 삶을 위해 짐을 줄이듯 도시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2013.9.23.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3일차, 아헤스에서 부르고스 가는 길 23.7km(2) 


길 옆에 알베르게 홍보를 위해 세워둔 폐버스.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긴 오는가 보다.


까르떼뉴엘라에 있는 온갖 것을 짊어지고서 편한 쉼을 그리며 걷고 있는 순례자를 풍자한 벽화.


부르고스에 들어왔는데 여전히 시내는 멀다.



부르고스 구도심 길바닥의 가리비 모양.


부르고스 알베르게로 향하는 길, 아빠와 함께 가던 꼬마가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한다. 귀여워~


까미노 초반 알베르게에 들어가서 매번 짐을 꺼냈다 넣었다 하는 일이 무척 번거로웠다. 어떻게 이 짓을 매일 할까. 그냥 몽땅 꺼내 두고 사는 일상이 그리웠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짐이 줄어들었다. 최소한으로 가져온 것인데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넣었다 뺐다 하는 일도 수월해지는 거다. 나중엔 순서대로 넣는데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이리도 적을 수 있는데, 삶이 이리도 단순해 질 수 있는데, 늘려가는 것인 줄만 알고 살았다니. 
지난 해 일을 그만두면서 세간들을 주변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지만 남아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나 한 사람을 위한 것으로는 여전히 많은 양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걷는다고 상상하면 매일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한다는 것은 거의 재앙 수준이다. 한 때 필요했지만 이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버리거나 필요한 이에게 주는 것이 맞다. 쥔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지키는데 에너지를 쓰느라 주변을 보지 못한다. 인생, 나이를 먹을수록 외적인 것 소유를 늘려가기 보다 줄이고, 내적인 것 마음의 크기를 키워야한다. 

이별한 문건들- 습식 스포츠타올 작은 것-론세스바예스에서 버림/ 동그란 도시락통, 휴대용 다용도 칼-아조프라에서 버림/ 장갑, 바세린50ml-수비리 입구에서 길벗에게/ 휴대용 작은 깔개-로그로뇨에서 버림/ 양말1족-로그로뇨에서 잃어버림/ 등산용 손수건-보아디아에서 길벗에게/ 그밖에 음식류-하루 이틀 지나며 자연스럽게 줄어듦
2013.9.23.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3일차, 아헤스에서 부르고 가는 길 23.7km(1) 







탠트를 숙소로 개와 함께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심지어 여성이다.


종종 발견할 수 있는 돌로 만든 미로.




까미노에서 열흘정도 지나면 걷는 것이 익숙해진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걷는 것을 방해했던 물집도 이젠 다 잡혔고, 물집이 잡히지 않도록 신발 끈을 조절하는 법도 알게 됐다. 그러다보니 걷는 거리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약해서 가장 빨리 드러났던 부분의 상처가 아물자 그 자리는 이전보다 더 단단해졌다. 30km 그 이상을 걸어도 문제없을 것 같다. 비온 후 땅이 더 굳는다고 했던가. 고통이 찾아올 때, 내가 약해서 그렇구나 여기며 참고 견디면 오히려 더 굳건해질 수 있다는 지혜를 얻는다.
2013.9.23.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2일차, 벨로라도에서 아헤스 가는 길 27.7km(2) 


죽은자를 위한 기념비Monumento a los Caidos에서 바라본 내리막과 오르막!



당연히 순례자인 줄 알고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관광 중으로 한 코스만 걷고 돌아갈 거라는 스페인 사람 부부. 서로 부족한 영어와 몸짓으로 소통하며 잠시지만 기분 좋은 만남을 가졌다. 특히 가이드북을 꺼내게 하더니 펼쳐 지도에서 멜리데를 짚으며 거기서 꼭 뿔뽀를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헤어져 한참을 가다 뒤돌아 사진을 찍자 두 손을 들어 포즈를 취한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스페인 사람들!

여행 중 만나는 외국인들, 꼭 그 사람과 잘 통하는 언어가 필요한 것 같진 않다. 친근히 다가설 수 있는 마음과 따듯한 눈길만 있다면 자연스럽게 통하게 되어 있다. 잠깐이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르떼가 성당과 광장. 사진에 보이지 않는 왼편에 알베르게가 있다.

이 곳에 머물까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4km 좀 못되는 거리에 있는 아헤스까지 가기로 했다.


순례자를 노리는 도적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오르떼가와 아헤스 사이 숲길.



약간 일루셔니스트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풍경!




아헤스의 거의 유일한 상점Tienda. 멋스러운 모습이 좋았지만...

씨에스타 시간을 훌쩍 넘긴 5:40쯤 여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애를 태웠다.


산띠아고 518km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2일차, 벨로라도에서 아헤스 가는 길27.7km(1) 


일찍 길을 나서기 때문에 이른 아침 해가 뜨는 멋진 장면은 순례자의 뒤를 따른다.  


또산또스Tosantos 바위의 성모 마리아 예배당


비얌비스띠아Villambistia



바게트 빵과 필라델피아 치즈면 점심이 된다는 레베카와 식당에서 먹어야 한다는 그녀의 친구! 

다시 만나 반가움을 웃음으로 드러낸다. 


산 펠리세스 유적지...그 앞에 순례자의 텐트가 있다.



까미노에서 만난 거의 유일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온 순례자, Little Mary!

한 번 길을 가르쳐준 후 볼 때마다 my friend!하며 인사해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끄레덴씨알(순례자 여권)을 받을 때 적어내는 종이에 까미노를 걷는 이유를 표시하는 칸이 있다. 종교, 영성, 문화, 스포츠, 기타. 이 네 가지 이유 외에도 더 많은 이유들을 가진 이들이 까미노를 걷는다. 저렴하게 유럽여행을 하기위해, 심지어 살을 빼려고 온 이도 있었다. 개중에는 친구가 갔다 오라고 해서 왔다고 했다. 그렇게 다양한 이유로 까미노를 걷는 이들을 순례자라고 한다. 처음에는 순수하지 않은 이유로 온 사람들이 길을 오염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동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과 달리 까미노는 이유를 묻지 않는 것 같았다. 앞세운 이유가 뭐든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대로 묵묵히 품어주었다.  
다만 스페인 사람들의 시선, 특히 대도시에서 순례자를 보는 눈은 솔직했다. 줄줄이 들어서는 순례자들에게 거의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젠 순례자가 아니어도 그 도시는 돌아가고, 순례자들이 예전처럼 종교적이고 영적인 이유만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서양인들이 한국 사람을 보면서 굉장히 궁금해 한다. 중국도 일본도 아닌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어찌 이리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이냐고. 그들에겐 한국은 그리 잘사는 나라로 보이지 않고 더구나 기독교 국가도 아닌 것으로 알기 때문에 당연한 의문일 것 같다. 최근 몇 년간 까미노를 소재로 한 책들이 많이 나왔고, 붐을 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 주지만 쉽사리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는 눈치다. 그들이 어떻게 보든, 뭐 어떠랴. 한 해에 한국인 약 2,500명이 까미노를 걷는다는데, 그 가운데 절반이라도 깊은 사색의 기회를 얻고 간다면 그 얼마나 우리나라에 좋은 보탬이 되는 것인가.

2013.9.22.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1일차, 산또 도밍고에서 벨로라도 가는 길 23.9km(2) 


까미노엔 산띠아고까지 남은 거리를 알리는 다양한 이정표들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마다 그 기준이 다른 지 

이미 555km 표시를 지난지 한참인데, 20km나 더해 576km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헐~


까미노 곁에 있는 해바라기 밭에 여지없이 순례자들의 손길이 닿은 해바라기들이 있다. 

얼굴, 화살표 등 다양한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다시 맞이한다. 재미있다.


순례자들은 쉼의 시간엔 가이드북을 꺼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시골 조그만 마을들에 고기를 파는 차가 왔다. 사진찍는 순례자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올라! 부엔 까미노!




이 날, 길에 유일한 나무 그늘이었다!


벨로라도 시내에서 만난 스페인 순례자와 지쳐보이지만 멋진 자태를 뽑내는 개들을 만났다.


목적지에만 마음을 두면 걷는 길은 고달프기 그지 없다. 그럴 때 과정은 신속히 지나가야하는 힘든 과제가 되어 빨리 지나가 버리기를 소원하게 된다. 결과에만 몰입해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과정을 뛰어넘으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걷지만 과정 가운데도 충분히 머물 때, 한 발 한 발이 고통이 아닌 즐거움이 될 수 있다. 결국 목적지는 과정, 한 걸음 한 걸음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과 대화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버거운 과제가 아닌 행복한 누림의 시간이 될 것이다. 

까미노 11일째에 접어들면서 빨리 걷겠다는, 먼저 도착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어느새 목적지에 눈 앞에 펼쳐진다. 더 빨리 가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2013.9.21.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1일차, 산또 도밍고에서 벨로라도 가는 길 23.9km(1)


기도하는 노부부, 고개 숙이고 손 모으고 한참이나 기도하는 모습에 숙연함을 느꼈다.





까스띠야 이 레온 지방에 들어서는 길목에 까미노를 안내하는 큰 이정표가 서 있다. 나중에 알았는데, 내 뒤에 서있던 아일랜드 출신 아저씨가 산띠아고에 거의 같이 들어갔다. 다리 굵기를 보니 그 이유를 알것 같다. ㅎㅎ


까미노,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참 적다. 걸치고 있는 옷과 갈아입을 수 있는 옷 한벌, 그리고 최소한의 생필품들이 8kg을 넘지 않는다. 그것으로 족하다. 더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까미노 위에선 그것에 더하기보다 빼기를 고민한다. 
나의 인생길 때때로 부족함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적지만 참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정말 필요한 만큼 적절하게 채워주셨다. 마치 8kg 조금 넘는 것으로도 부족하지 않은 것처럼 풍족하지 않지만 또 부족하지 않은 인생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내 속에 결핍이 아닌 풍요의 마음이 있다. 산토 도밍고에서 아침 출발 전 요기를 하는데, 앞에 앉은 노부부가 한참이나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 아마도 이들의 기도 내용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짧지 않은 인생길 가운데 부족함 없이 채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 오늘 깨워주시고 새로운 길을 걷게 해 주심에 감사.
2013.9.21.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1일차, 산또 도밍고 Santo Domingo


문을 열기 전에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도착한 순서대로 짐을 내려놓고 기다린다.


닫혀있던 문이 열리자 그 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하루 순례체험을 하는 어린이들


쌍둥이 같은 자전거 순례자들.


열한번째 목적지는 산또 도밍고이다. 비교적 짧은 거리이기에 이른 시간에 도착했고, 시간 여유가 있어 도시를 이곳 저곳 살펴볼 수 있었다. 한국과 달리 유럽은 도시에 이름을 붙일 때 사람의 이름에서 따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곳 산또 도밍고 역시 과거 이 도시와 순례자들을 위한 삶을 살았던 이를 기려 그의 이름을 도시의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지난 순례의 역사가 깊이 배인 산또 도밍고에서 또 '아바디아 시스떼르시엔세 누에스뜨라 세뇨라 데 라 아순시온'이라는 긴 이름의 유서깊은 수도원 부속 알베르게에서 하루 밤을 묵었다. 그 연륜만큼이나 옛스런 매력을 간직한 곳이다. 새로 꾸며 시설이 좋은 알베르게가 하나 더 있었지만, 꼭 이 곳에 묵어야한다며 찾아오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동행했던 아주머니는 긴 이름 때문에 짐이 같은 이름의 수도원으로 가버려 저녁 무렵까지 애를 태워야했지만, 이 역시도 고스란히 그리운 추억이다.

알베르게는 도시마다, 운영하는 이들에 따라 각양각색이지만 피곤한 몸 누일 수 있는 침대와 작은 샤워부스만 있으면 족하다. 삐걱거리는 이층침대도 눈감으면 이내 꿈나라로 안내하는 포근한 잠자리가 된다.

2013.9.21.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10일차, 아소프라에서 산또 도밍고 가는 길 15.2km



기부로 운영하는 노점, 스페인 경제상을 반영한 마케팅이 눈길을 끈다.



끝없는 밭, 까미노의 필수 요소이다.




산또 도밍고 입구에 자리한 농산물 집하장, 감자가 산떠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까미노에 첫 발을 디디고 하루이틀 더해가며, 그 매력은 더하면 더했지 줄지 않는다. 초반 어느 때인가 한 한국인 순례자가 까미노가 상업주의에 물들었다고 개탄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까미노가 아직은 상업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을 깨닫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Bar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곳에 바는 없다. 정말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 같은 자리에 작은 바와 상점이 있을뿐이다. 동남아나 가깝게는 한국만 같았어도 곳곳에 음식점들이 들어섰을 것 같은데, 까미노는 이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첫 방문인 내가 이전 모습을 모르니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까미노엔 순례자들의 주머니를 털어보려는 의도의 상점들이 충분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때때로 그 점이 순례자들을 더 목마르고 배고프게 하지만, 그렇다고 싫거나 개선되기를 바라진 않는다. 까미노의 매력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계속 그 모습을 유지하기를 바랄뿐이다. 그래서인지 산또 도밍고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기부로 운영되는 노점이 더 반갑다. 스페인 경제의 그늘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씁쓸하긴 하지만...

2013.9.10.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9일차, 벤또사에서 아소프라까지 15.2km



나헤라를 지나면 만난 외발자전거 순례자와 한 구간만 걷는 프랑스인 단체 순례자들




스페인 사람들의 가장 대중적 식사요 간식인 보까디요


까미노에서 가장 좋은(?) 아소프라 공립 알베르게. 2인 1실!


입양한 한국인 딸을 보여주는 미국인 레베카 아줌마


한국 순례자들의 추석맞이 잔칫상!


베드버그에 물려서 심란하면서도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이유는 한국에서 구입해 온 '버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네이버카페 글에서 버물리를 바르며 4~5일 버티면 된다고 읽었던 기억이 나서 열심히 바르며 크게 위안을 삼고 있었던 터다. 그런데 그 버물리를 바르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속뚜껑이 열리면서 80% 이상이 쏟아지고 말았다. 그 순간 얼마나 낙심이 되고 슬프던지, 그 심정을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버물리는 스페인에서 구입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지금 물린 것은 거의 다 나아가지만 만약 또 물리게 되면 그 땐 어떻게 하라고. 정말 야속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나라는 사람, 참 작은 것들에까지 마음을 주고 의지해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버물리, 스틱, 신발 등등. 그뿐일까? 핸드폰, 노트북, 만년필, 플래너 같은 것들에 마음을 주고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냥 바람만 불면 날아가 버릴만한 것들에 마음과 정신을 쏟고 있는 거다. 참으로 의지해야할 대상은 모른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 많이 찔렸다. 그래도 쏟아진 버물리는 생각할 때마다 너무 아깝고 슬프기까지 하다.

2013.9.19.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8일차, 로그로뇨에서 밴또사 가는 길 20km




수확하던 포도송이를 뚝 잘라 순례자에게 나누어준 고마운 농부, 꿀맛!


그라헤라 고개 옆 철조망, 순례자들은 이런 곳엔 어김없이 십자가를 만들어 놓는다.



산 후안 데 아끄레 순례자 숙소에서 옮겨온 순례자 장식으로 만들어진 공동묘지



밴또사의 숙소와 입구에 놓인 순례자들의 스틱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고, 또 어떤 분일까? 하나님은 저만치 먼 곳에 계시며 우리 삶에 목적이 되시고, 방향성이 되실 수도 있고, 우리 삶의 내용을 내려다보시며 선악 간 판단하시는 자리에 계실 수도 있다. 그런데 혹시 하나님이 지팡이와 같은 분은 아닐까. 매일 짚고 일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 디딜 때 나를 지탱해 주고, 내 힘을 덜어주는 지팡이(스틱). 마치 모세가 의지했던 그 지팡이, 양떼를 돌보던 목동 다윗의 손에 들린 지팡이, 힘겹게 순례의 길을 걸었던 수많은 순례자들의 손에 들렸던 그 지팡이가 아닐지. 

하나님은 앞서 가시는 것 같지만, 어느새 뒤서 있고, 또 너무 익숙하고 가까이 있어 없는 것 같은 그런 분. 숙소에 도착하면 불필요한 것처럼 문간에, 침대 밑에 놓이기도 하지만, 길떠나는 이의 손에 다시금 쥐어지는 막대기 길벗! 
까미노 8일차에 가장 고마운 존재가 뭐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스틱이라고 말한다. 이 스틱이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을까? 덕분에 나는 내일도 변함없이 걸을 거다. 그래서 순례자에겐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시23:4)는 정도가 아니라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2014.9.18.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7일차, 로스 아르꼬스에서 로그로뇨까지 27.8km



또레스 델 리오에 있는 팔각형 모양의 성묘 교회 -템플기사단과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교회와 관련있는 교회



비아나, 스페인 전통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라 리오하 지방의 주도 로그로뇨


까미노 순례를 준비하면서 약간은 걱정과 함께 반대로 결의를 다졌던 부분이 '혼자 걷기'였다. 그러나 까미노는 혼자 걷는 길이 아니었다. 길은 역시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곳. 하루 이틀 그 이상 앞서거니 뒤서거니 인사를 주고받으면 걷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가며 마치 오랜 동료를 만나듯 따듯한 시선을 주고받게 된다. 한국사람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프랑스 사람, 스페인 사람, 독일 사람, 이태리 사람, 미국 사람... 

그러니 한국사람을 만나는 것은 말해 뭐할까? 특히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이들 간에는 묘한 동질감이 생기면서 가족같은 연대감마저 갖게 된다. 아마도 이것이 순례자를 위해 신이 준비한 안전장치가 아닐지. 왜냐면 까미노는 보통 초반 열흘이 이런저런 일들로 어려움을 겪는데, 이 때 힘이 되어주는 이들이 가까이 있게 되는 것이다. 
라 리오하La Rioja 지방의 첫 번째 도시(마을)이고 주도인 로그로뇨, 순례 시작 후 가장 많이 걸어 도착한 곳이고(27km), 처음으로 베드버그에 물린 자국을 발견했다. 그래서 더욱 함께하는 이들의 존재가 큰 위안이 되었던 곳이다. 베드버그에 당황하고 있을 때 진심어린 관심과 위로의 말들이 큰 힘이 되었다. 이후에도 위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가져온 귀한 약을 나눠주기도 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이런 길벗들이 있었기에 끝까지 순례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2013.9.17.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6일차, 로스 아르꼬스Los Arcos






산티아고로 가는 길 거의 모든 마을에 성당이 있다. 오래전 순례자들은 그 성당 하나하나를 빼놓지 않고 들려 기도하는 일을 중요한 일로 여겼을 것이다. 그렇게 좋은 때를 보낸 대개의 성당들은 사용되지 않는 것처럼 먼지가 쌓여 있지만, 그 화려함만은 여전하다. 특히 성당 전면의 장식은 프랑스나 여타 나라의 그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번쩍거린다. 그 옛날 이것을 세우고 얼마나 기뻐하고 영광스러워하며,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중심이 될 것이라 기대했을까. 성당의 전후좌우 가득한 성상들, 그것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이 화려함에서, 이 웅장함에서, 이 섬세함에서 인간의 약함을 본다. 신을 성당과 그 장식들에 의존하다 못해 동일시하고 있으니. 그것의 도움이 절실한 그 존재적 한계가 인간의 본 모습이다. 종교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고, 그렇게 만들어 온 것이다. 문제는 처음엔 부수적이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중심으로 위치 이동을 하고, 더 중요한 자리에 앉아 버린 것이다. 그리곤 다시 현란함으로 인간의 시선을 빼앗고, 그 이면의 깊은 두려움을 낚아채 가버린다. 

종교의 겉모양을 통해 사람들의 필요, 요구, 본능을 어느 선까지는 채워줄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 겉모양과 형식을 더 중요하게 만드는 일을 종교인들이 해왔다. 형식에 치우친 종교는 알맹이 없는 껍질만 남게 되고, 껍질에 껍질을 더하는 비만한 종교를 만들어갈 뿐이다. 늘 껍질의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건물도 넘어서야 하고, 종교인들의 주장도 넘어서야 하고, 심지어 경전도 넘어서야 한다. 그럴 때 어렴풋하게 본질을 보게 될 것이다.

2013.9.16.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6일차, 에스떼야에서 로스 아르꼬스 가는 길 21.7km(2)





무어인의 샘Fuente de los Moros




순례시작 셋째 날부터 새끼발가락에 탈이 났다. 작은 물집이었지만 처음이라 제대로 잡지 못해 4일이 넘게 고생을 하고 있다. 걷는 것을 방해하니 며칠 째 글만 적으면 이 물집 얘기밖에 없다. 가장 많이 영향 받는 것을 통해 생각의 가지치기를 하게 되나보다. 물집이 안 잡혔으면 얼마나 즐겁게 걸을까. 작은 지체 하나의 문제가 어떻게 온 몸에 영향을 끼치는지 뼈저리게 경험한다. 

시간이 지나면 물집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고통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다. 고통이 없는 삶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지 않나. 그러니 없앨 수 없다면 물집이든 관절통이든 고통과 함께 걷는 법을 익히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대개 사람들의 기도는 고통이 사라지게 해 달라는데 집중되어 있다. 마치 삶의 무거운 짐이 없애달라는 기도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그 고통 후엔 또 다른 고통이 있게 마련이니 고통이 모두 없어지는 것을 바라기보다는 고통은 있으나 마치 고통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 것 같다. 
아픈 발만 생각하며 ‘아이 아파, 아이 아파’하며 걷게 되면 주변을 보지 못한다. 지나가는 사람도, 멋진 경치도, 시원한 그늘도, 맛있는 음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이 자신의 고통만 바라볼 때(절대화) 일어나는 일이다. 그 고통 역시 여러 가지들 중 하나(상대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그것을 키워나가면 자신을 더 깊은 고통으로 집어넣게 되고, 급기야는 주변사람들까지 괴롭히게 된다. '당신들이 내 아픔을 알기나하냐, 네가 뭘 아냐?'고 하면서... 비록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고개를 들고 주변을 볼 때, 그 고통을 넘어서는 삶의 이유들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2013.9.16.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까미노 6일차, 에스떼야에서 로스 아르꼬스 가는 길 21.7km(1)







변함없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발가락 물집으로 다리를 절며 어렵게 한 발 두 발 내딛지만 뒤지지 않으려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노란 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앞선 이도, 뒤선 이도 없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가 심각하게 질문하고 있을 즈음, 저 멀리 어렴풋하게 노란 표시가 보인다. 다행이다 싶어 달려가 보는데, 다가가 보니 아니다. 까미노에서 아주 가끔 이런 경험을 한다. 노란 화살표를 잃어버리고 길도 잃어버릴까 불안에 휩싸이는 거다. 

까미노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 길이다. 그래서 조금 과장하면 까미노는 노란 화살표로 인해 존재한다. 노란 화살표가 안내하기에 마음 놓고 자신을 향한 여정을 걸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의 노란화살표는... 혹시 나는 화살표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멀리 벗어나 있어서 벗어난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인생을 안내할 화살표 또한 간절히 소망해 본다. 역시 내 안에서 찾아야할 과제이겠지... 다시 찾은 노란화살표의 도움으로 공짜로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는 이라체 수도원의 포도주 샘 뿌엔떼 델 비노Fuente del Vino에 도착했다.

2013.9.15.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까미노 5일차, 에스떼야Estella



에스떼야 입구에 있는 샘.









길이나 숙소에서 볼 때마다 ‘코리아노’를 외치며 반갑게 맞아준 스페인 아주머니를 에스떼야 시내에서 다시 만났다. 이 분은 특히 발에 물집이 많이 잡혀서 고생하며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눠서 더 기억에 남는다. 물집이 너무 심해 병원까지 다녀와서는 더 못 걷고 마드리드로 돌아간단다. 손짓발짓으로 의사의 말을 전하는데, 바늘로 물집을 쑤시면 위험하다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단다. 의사들은 다 그렇게 말할 것 같다. 까미노를 쉼 없이 계속 걸어야 하는 사람에겐 별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 또 바늘과 실로 물집을 잡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을 체험하니. 

물집이 잡히면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을 통과시킨 후 실을 너무 길지 않게 앞뒤를 잘라 그대로 둔다. 실은 무명실이어야 물이 잘 타고 나온다고 한다. 그렇게 아침까지 끼워두고 있다가, 양말을 신을 때도 그냥 두면 걸으며 생기는 물이 계속 빠지고, 저녁에 양말을 벗어 보면 실은 이미 빠져나가 버리고 물집 부위 피부가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대략 2~3일이면 물집은 잡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신발이 너무 꽉 맞지 않아야 하고, 끈 조절을 잘해야 한다. 특히 발의 볼이 넓은 사람은 운동화 앞 쪽에 좀 더 여유를 주는 것이 좋다. 아무튼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며 한 컷을 남겼다.

2013.9.15.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까미노 5일차, 뿌엔떼 라 레이나에서 에스떼야 가는 길 21.1km(1)




포도밭 너머로 보이는 시라우끼Cirauqui


주말 밤의 축제를 즐긴 시라우끼의 청소년들이 순례자들을 스쳐 지나간다.

오늘을 살아가는 까미노의 청소년들은 그 길을 걷는 순례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매일 어김없이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겠지만...



잠시 휴식을 취하는 브라질 순례자들. 사람도 쉬고 이렇게 배낭들도 쉼의 시간을 갖는다.



작은 마을에 작은 바Bar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순례자들은 쉼과 충전으로 한결 밝아진 얼굴로 다시 까미노를 걷는다.



짐을 산처럼 싣고 까미노를 걷는 당나귀 모습. 누가 순례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ㅎㅎ


일상생활을 넘어서는 강행군을 하면서 다리 관절들, 발의 피부가 아우성이다. 몸의 약한 곳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 지르기 시작한다. 평소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에 약한 줄 몰랐다. 미리 알았더라면 더 준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미 길 위에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다. 솔직히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는 중이니 감당해야 할 대가라 여길 수밖에 없다. 

약한 부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열고 살아야 한다. 매일 장거리를 걷는 까미노와 같은 한계를 넘는 상황이 왔을 때, 그 부분이 가장 먼저 발목을 잡으니 말이다. 그 때 발견하면 이미 늦은 거다. 미리미리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지혜로운 사람이겠고,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다. 
사회도 역시 취약한 분야, 약한 사람들을 평소에 예민하게 찾아 돌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도자들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누구든 그런 마음 자세를 갖고 사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러면 그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거다.

2013.9.15.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까미노 4일차, 뿌엔떼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로스 빠뜨레스 레빠라도레스(교회에서 운영) 알베르게.

알려지기로는 이 곳 봉사자(오스삐딸로)가 동양 여성들을 대상으로 마사지를 해준다고 하면서 추행을 한다고 했다.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내가 갔을 때 있었던 그가 그였다. 지금도 있겠지...


스페인(유럽이 그런 것 같다)에서 과일을 살 때, 특히 이런 동네 가게에서는 주인이 주는 것을 받아온다.

내가 하나 하나 들어보고 고르는 것도, 또 좋은 것으로 바꿔 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바꿔달라고 해봤는데 표정이 확 바뀌었고, 다시 준 것도 아무거다 집어서 준 것이었다. ㅋㅋ

한국과 다른 점인데, 결국 상인과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거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손님이 좋은 것만 골라가면 좋지 않은 것만 남아서 상인은 손해를 보게 된다.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함께 가져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들었다 놨다 하며 얄밉게 좋은 것만 골라가는 우리네 습성을 반성하게 한다.




작은 마을의 이름 '뿌엔떼 라 레이나'의 뜻이 '왕비의 다리'로 이 다리로부터 기인한다. 

왕비가 순례자들에게 비싼 요금을 받는 뱃사공들의 횡포를 가슴아프게 여겨 만들었다고 한다.


며칠 전부터 오른쪽 새끼발가락에 생긴 물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물집이 잡힌 발가락만 아픈 것이 아니라 걸음걸이가 온전하지 않으니 몸 전체가 흔들거리고, 다리의 다른 부위까지 아파온다. 한 곳의 통증이 몸 전체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균형이 깨진다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 옴을 뜻한다. 

불균형은 아픈 것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배낭에 짐을 꾸릴 때도 일어난다. 한 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짐을 잘 집어넣고, 배낭끈도 양쪽 길이를 같도록 잘 조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균형이 깨져서 한 쪽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게 된다. 
균형의 문제는 비단 물리적인 몸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나 정서에서도 일어난다. 한쪽으로 너무 쏠려버리면 더 이상 정상적인 생각을 하고 일을 처리하지도 못하게 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지만 정서의 불균형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괴롭게 만들게 된다. 그래서 순례자가 매일 균형 있게 짐을 꾸리듯, 매일 마음을 살피며 치우쳐 있지 않은 지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어찌 사람의 몸과 마음만 그럴까. 사회 역시 관심이 한 쪽으로만 쏠리거나, 한 부분이 소외되고 고통 한다면 이도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고, 결국 건강하지 못한 사회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도자는 늘 부족한 곳, 소외되는 곳을 돌아봐야 하고, 또 반면에 너무 부와 권력이 한 쪽으로 집중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어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2013.9.14.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까미노 4일차, 빰쁠로나에서 쁘엔떼 라 레이나 가는 길 24.4km(2)


자전거 순례자들이 오르막에 잠시 멈춰 지나온 뻬르돈 고개쪽 풍력발전기와 어우러진 경치를 촬영하고 있다.

뻬르돈을 작은 오솔길로 오르다 자전거를 되돌려 도로쪽으로 가는 것을 봤는데, 한참 후에 다시 만난 것이다. 왼편에 있는 이는 여성이다!



목마른 순례자에게 너무나 반가웠던 우떼르가의 급수대.




토요일, 순례자는 결혼식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까미노 둘째 날 만났던 길동무를 넷째 날 이른 아침 빰쁠로나를 막 벗어날 즈음 다시 만났다. 거기서부터 그 날 목적지인 쁘엔떼 라 레이나까지 같이 걸었다. 잠깐 같이할 것 같았는데, 꼬박 하루를 함께 걷게 될 줄은 몰랐다. 체력이나 나이나 여러 면에서 봤을 때 도무지 같이 걸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길 옆에 주저앉아 쉬며 아침도 해결하고, 힘든 길 위에서 같이 투덜거릴 수 있어서 좋았다. 

생각해 보면, 그 날 같이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힘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역시도 걷는 것에 한계를 느낄 때이기도 했다. 그러니 서로 노력을 하지 않고도 보조를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하루 이틀은 그도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넷째 날엔 힘이 부치고 있었던 것이다. 뿌엔떼 라 레이나에 들어가서 숙소를 찾아 약간 헤매며 둘 다 힘들어하며 얼마나 궁시렁 거렸는지 모른다. 

동무가 된다는 것, 힘을 빼는 것이 먼저이다. 자기주장을 앞세우고, 자기 생각대로 하려는 의지가 남아 있을 때는 좀 더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 혹시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먼저 가라고 양보하는 것이 지혜가 아닐지. 언젠가 그 역시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 좋은 길동무가 될 테니 말이다.

2013.9.14.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까미노 4일차, 빰쁠로나에서 쁘엔떼 라 레이나 가는 길 24.4km(1)



파란불과 화살표! 순례자에게 가도 좋다는 신호로 보여서 기분 좋았다.



순례자들의 포토존, 뻬르돈 고개



10kg 가까이 되는 짐을 짊어지고 대여섯 시간을 걷는 일이 만만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뭘 빼면 가벼워질까를 생각한다. 그렇다고 빵이나 음료 과일 같은 먹거리들을 뺄 수도 없다. 까미노 초반 필요 없는 몇 가지 소품들을 뺐지만 그 차이는 미미했다. 한 번은 배낭을 다음 목적지까지 부쳐보기도 했다. 출발할 때는 가벼움에 날아갈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자 매고 있는 작은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다. 어쩌면 맨 몸으로 걸어도 몸이 천근만근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무게와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고 힘이 떨어지고 피로도가 올라가면 뭐든 큰 무게로 느끼게 마련이니. 

짐을 덜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짐을 넉넉히 짊어질 수 있는 몸과 마음이 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기도를 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런저런 삶의 무게들을 덜어달라고 기도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과 몸이 그런 무게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단단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 또 그렇게 스스로를 단련해 가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가 아닐까 싶다.
2013.9.14.


블로그 이미지

dols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