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3일차, 빰쁠로나Pamplona


빰쁠로나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세운 유서깊은 도시이다.

그 역사가 긴만큼 사연도 많은 곳이었다. 순례 초반에 만나는 바람에 여유있게 살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헤수스 마리아 알베르게(협회 운영) 입구


알베르게 내부. 오는 순서대로 1층 입구쪽(아래층 밝은 곳)부터 배정을 한다.

더 늦게 온 캐린이 앞쪽에 자리를 잡은 것을 보면 전화로 예약도 받는 것 같았다.





까미노에서 배우는 것이 많지만 그 중에도 최고는 자신의 속도이다. 가이드북이나 다른 이들의 '오늘은 빰쁠로나까지, 22km이니 다섯 시간 안에 가야한다.'는 말에 맞추어 이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경우이다. 그들에겐 맞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나와는 다를 수 있다. 그들과 보폭도 다를뿐더러 물집도 있고, 무릎도 약간 아픈 상태이다. 그러니 지나간, 앞서 가는 사람의 발에 나를 맞출 수 없다. 그들에게 맞추다보면 내 페이스를 잃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내 발, 내 다리, 내 심장, 내 폐가 하는 말을 들으며 그 박자에 보폭을 맞추어 속도를 정해야 한다. 순례는 자기 속도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안타깝게도 오늘을 사는 이들은 '내'가 아닌, '남'의 기준에 맞추는 법에 길들여져 있다. ‘누가 더 남을 잘 따라하나’로 성패를 가르고 있지 않나. 자기 속도를 잃은 채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걷기에도 벅찬 사람들도 있을 텐데 말이다.

201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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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3일차, 수비리에서 빰쁠로나 가는 길 22.2km(2)


빰쁠로나 바로 전에 있는 작은 도시 비얄바.





처음 며칠간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간 끌지 않고 서둘러 출발하는 것이 더 잘 걷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화장실만 다녀와 씻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훌쩍 떠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하루이틀 더해 가면서 고양이 세수라도 하고, 발이나 무릎을 주무르고 또 바세린도 바르고, 요구르트 하나 과일 하나로라도 속을 채우고 출발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는 단지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까미노는 매일 몸과 마음을 준비하며 약한 부분을 알아차려 그 부분을 보듬으며 걷는 길이다. 자신의 약점을 모른척하지 않고 바라보고 인정하고 품고 간다. 순례자, 먼 길 아픔이 없는 것처럼, 힘들지 않은 것처럼, 외롭지 않은 것처럼 걷는다.

인생 한가운데를 달려가고 있는 중이라도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잠시 빨리 가는 것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먼 길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갈 길 멀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앞으로 내어 밀 수 있는 것에 감사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201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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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3일차, 수비리에서 빰쁠로나 가는 길 22.2km(1)


언듯 둘이 커플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각각 온 순례자들이었다.

왼쪽 남자는 파리 몽빠르나스 기차역에서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있어서 순례길 떠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까미노 초반 자주 보게 되었다.

빰쁠로나 정도까지는 함께 피레네를 넘은 사람들이 거의 함께 간다.





정오가 가까워 오면서 덥고 힘든데 길 옆에 과일과 음료 등을 풀어놓고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오랜지 하나 사서 까먹는데, 자기가 돌들을 가져와 의자를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자랑한다.


앞서 걷고 있는 분은 미국 아주머니인데, 천천히 걸으시길래 보조를 맞춰 뒤따라 걸었다.

덕분에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아래처럼 사진도 찍어 주셨다.

미국인들의 특이한 점은 어디서 왔냐고 하면 나라를 얘기하지 않고 주를 얘기하는 것이다.

이 아주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걸 애교로 봐줘야 하는 것인지, 참 미국사람들 그 사고구조란...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편에 바로 만나는 건물이 라 뜨리니닫 데 아레 알베르게이다.

사진을 찍어주신 아주머니는 힘드셨는지 그 알베르게로 들어가셨다. 



둘이 걷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친구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간에 말이다. 간간이 나누는 대화는 지루함을 잊게 할뿐만 아니라 고통도 잠시 뒤로 하게 한다. 또 홀로 결정하기 어려운 일도 손쉽게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란 보폭이 다른 법, 성격도 다르고 체질도 다르니 하루 이틀 지나면 조금씩 어긋나는 점들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 상대방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 부분으로 인해 상대방이 힘들어 하지 않도록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 말은 결국 자신을 아는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다는 뜻이고, 또 달리 하면 홀로 일 수 있는 사람이 둘 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홀로 독립적이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전가(투사)하기 시작할 때 상대방은 물론 본인도 무척 피곤해 질뿐이다. 

둘이면 좋지만, 둘이 걷기 어렵다면 과감하게 혼자 걷는 것이 좋다. 더 혼자 걸으며 충분히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둘이 걸을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어쩌면 이 까미노는 순례자로 하여금 몸과 정서에 약점을 스스로 들여다보도록 하는 것 같다. 처음엔 삐걱거리지만 여정을 마칠 때가 되면 누구와도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소망을 담아본다.). 혹시 이 길에서 안 된다면 또 다른 길에서 기회가 있을 것이다. 결국 인생이란 혼자 걷는 것이 아닌 함께 걷는 길이니.

201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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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2일차, 수비리Zubiri


수비리 공립 알베르게


알베르게 오스삐딸로의 아들


닫은 줄만 알았던 수퍼마켓, 5시 넘어 오픈!


순례 초반에는 하루 20km전후를 걷는다. 그러면 보통 12:30에서 1:40 사이에 목적지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두 시경 숙소에 짐을 풀고, 샤워하고 빨래해서 널고 나면 저녁 준비를 한다. 만약 숙소에 주방이 없으면 식당에 예약을 하거나, 예약이 필요 없을 경우 식사가 가능한 시간을 알아오면 된다. 주방이 있을 경우 붐비는 시간을 피하려고 좀 더 일찍 저녁 준비를 하게 되는데, 문제는 식료품 가게이다. 대개의 상점들이 오후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 ‘씨에스타’로 문을 닫는 거다. 그러니 조금만 늦게 가면 문이 닫혀 있고, 또 정확히 다섯 시에 문을 열지 않는 곳도 종종 있다. 그러면 준비가 늦어지고, 혼잡한 주방에서 불 경쟁을 해야 한다.

이 씨에스타를 뻔히 알면서도 문 닫힌 상점 앞을 몇 번을 찾아갔었는지 모른다. 다른 것들은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데, 이 씨에스타는 정말 익숙해지지도 않고, 계속 불편했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돌이켜 보면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아니었을까. 하루 가운데 큰 쉼표를 두고 여유롭게 사는 스페인 사람들을 늘 서두르는 한국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아주 살짝 그들이 부럽다.


한 가지, 알베르게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할 때는 먼저 마트를 찾지 않고, 주방에 무엇이 있는 지를 확인한다. 어떤 종류의 조리기구가 있는 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고, 앞선 순례자들이 남기고 간 쌀이나 기타 식재료들을 점검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입할 것들이 줄고, 비용도 아낄 수 있다.

201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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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2일차,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 가는  21.9km



까미노에서 생을 마감한 이를 기리는 비석. 까미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축들이 울타리를 넘어가지 않도록 순례자들에게 문을 꼭 닫아 달라고...


둘째 날 아침,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다신 걸을 수 없을 것처럼 아팠던 무릎, 그 고통은 온데간데 없이 또 다시 어두움을 가르며 걷다니,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아니, 기적이었다. 아~ 이런 식으로 계속 걷겠구나 싶어 신기하기도 하고, 또 겁도 났다. 며칠이 될지 모르지만 계속 아픔을 품고 걸어야 할 것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러면서 떠오른 생각은 이젠 상상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아닌 실제로 걷는 시간이기에 나의 까미노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 그래서 아쉬움이 마음 한 구석을 휘돌았다. 그렇지, 이제 하루하루 끝으로 가는구나... 그 섭섭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밟는 길과 지나치는 사람들과 자연을 마음속에 잘 담으리라 다짐했다.


>>길이 안내하는 곳으로

첫째 날 저녁 식사, 하마터면 못 먹을 뻔 했는데, 둘째 날 오전엔 앞 사람만 따라가다가 아침 먹을 곳을 지나치고 말았다. 배고픔을 겨우 참으며 작은 마을에 있는 바에 도착해 허기진 배를 채웠다. 서툰 스페인어 단어 몇 개와 손짓으로 커피와 치즈 넣은 바게트를 주문해 먹었다. 가이드북이 아닌 길이 안내하는 곳에서의 첫 식사였다.

201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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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1일차,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드디어 피레네 산을 넘어 내리막에 접어드는 곳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높이만큼 내리막은 가혹했다.



스페인 첫번째 알베르게(순례자 숙소)가 예상보다 좋아서 조금 놀랐다. 침대 2층에서 잤는데, 움직여도 전혀 흔들리지 않아서 편했다. 그러나 늦게 도착하면 이런 좋은 숙소가 아닌 예전 숙소에 묵을 수도 있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순례자를 맞이하는 스페인 첫 번째 숙소가 있는 마을은 론세스바예스이다. 론세스바예스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성당, 식당이 전부인 아주 작은 마을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다리 아픈 순례자에게 딱 맞는 크기여서 다행이었다. 구경한다고 돌아볼 수도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아픈 무릎으로 낑낑거리며 겨우 식당과 성당을 찾아가는 것이 전부였지만, 깔끔한 숙소와 멋스러운 성당에서의 미사는 낙심할 수도 있는 순례자에게 충분한 쉼과 격려가 되었다. 특히 미사 중 신부님이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를 이르는 말)에 묵는 순례자들의 출신 나라들을 모두 불러주고, 또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언어로 축복해주셔서 감동적이었다. 녹화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지만 한국말 축도는 없었다. 가르쳐드려야 할 듯...

아무튼 목적지,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한 줄도 모르고 한참이나 주변을 배회하고, 순례자 메뉴는 예약 못해 두 번째(7:00와 8:30 중) 타임에 먹으며 맞이한 어설픈 시작이다.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속속 눈에 들어오고, 말을 걸어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이런 몸과 정신을 가지고 순례를 잘 마칠 수 있을 지도 의심이 드는 저녁이었다.

201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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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여권(+복사본), 현찰, 카드(현금1, 신용1), 기차예약확인 출력물, 여행정보 출력물, 가이드북

필수 배낭(오스프리 Kestrel 48리터), 신발(아이더 트레킹화+기능성 깔창), 스틱(코베아 다이나믹III-탄소), 침낭(트레블 메이트 초경량), 무릎보호대2, 선글라스

배낭, 신발, 스틱 세 가지는 장거리 걷기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기의 몸과 맞는 것을 잘 골라야 한다. 평소 무릎이 약하다고 생각하면 무릎보호대도 필수 품목이 된다.

배낭은 마치 옷처럼 자신의 몸에 맞아야 한다. 특히 배낭은 엉덩이로 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허리 끈을 단단히 조일 수 있어야 하고, 어깨끈을 상황에 따라서 조절할 수 있는 배낭이 좋다.

신발은 등산화나 트래킹화처럼 바닥이 딱딱한 것이 좋은데, 평소 신는 운동화보다 10mm 더 큰 것을 추천한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오래 걸어야하기 때문이다. 

스틱은 가능한 가벼운 것으로 하되 몸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강도의 것으로 한다. 스틱이 자신의 무게의 1/3을 감당한다고 하니 필수 아이템이 분명하다. 잡는 법과 길(평지, 오르막, 내리막, 비탈길 등)에 따른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의류 바지2, 티셔츠2, 속옷 위2 아래2, 양말 2, 방수점퍼, 덕다운 자켓(유니클로 초경량), 기능성 모자, 반 장갑, 멀티스카프(얼굴 햇빛 가릴 때)

의류는 한 벌은 입고 한 벌은 배낭에 넣고 다니는데, 거의 매일 세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볍고 잘 마르는 재질의 옷이 좋다. 계절에 따라 유동성이 큰 부분이 될 것 같다.

속옷도 겉옷처럼 기능성을 추천하는데, 얇은 것이면 꼭 기능성이 아닌 것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장갑은 계속 스틱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데, 중간에 벗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에 반 장갑이 좋았다. 그러나 추운 계절에 간다면 온전한 장갑이 좋겠다.

위생용품 샴프, 바디클랜저, 폼클린징, 스킨로션, 밀크로션, 면도기, 치약, 칫솔, 빨래비누, 샌달(쪼리), 썬크림, 손톱깍기, 귀이개, 샤워 타올, 습식 스포츠타올, 건식 스포츠타올

샴프바디클랜저는 작은 것으로 가져가고 중간중간 구입해서 써도 된다. 

빨래비누도 큰 것을 가져가면 무거우니 세수비누로 대신하고, 중간에 하나 더 구입하면 될 것 같다.

샤워할 때와 보조적으로 신으려고 샌달(쪼리)을 가져갔는데, 마을을 돌아다닐 때도 신으려면 크록스나 운동화가 별도로 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10월로 넘어오면서는 오후에 쌀쌀했기 때문이다.

건식 타올이 여러모로 편했다. 일단 물을 뭍혀서 사용하는데, 수분 흡수가 잘 되고, 마른 상태로 보관할 수 있어 가며워 좋았다.

의약품 소독약, 후시딘, 진통제, 버물리, 안티프라민100mg, 바세린100mg, 접착식 붕대, 3M밴드(텍스틸 재질이 좋음), 파스

안티프라민은 근육의 소염진통(마사지)과 때때로 벌레 물렸을 때 사용했는데, 장점은 냄새가 많이 안 나는 것이고, 단점은 멘소래담 같은 것보다 약효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멘소래담을 바르면 서양인들이 펄쩍 뛰면서 모든 창문을 열고 난리를 친다. ㅋㅋ

벌레에 잘 물리는 체질이라면 베드버그에 물릴 것을 대비해 항히스타민제 같은 약을 준비해 오면 좋을 것 같다. 버물리는 베드버그나 다른 벌레에 물렸을 때 최고였다. 중간에 연고를 구입해서 발라봤는데 버물리만 못했다.

전자제품 핸드폰(+충전기), 디지털 카메라(+충전기), 캡라이트, 손목시계, 이어폰

사람에 따라서 필요한 것들이 달라질 수 있는데, 내 경우 캡라이트(해드랜턴)는 일찍 일어나 어두운 길을 걸을 때나 소등 후 가이드북을 보거나 새벽에 조명 없이 짐을 꾸려야 할 때 요긴했다.

기타 노트, 필기구, 바늘+실, 마사지 봉, 포크숫가락, 1.5m와이어+자물쇠, 옷핀6, 빨래집개6, 여분의 비닐지퍼팩, 다용도칼, 수면용 안대, 귀마개, 복대, 보조가방

바늘과 실은 물집이 잡혔을 때 필요한데, 실은 무명실이어야 물을 계속 빼낸다고 한다. 와이어는 실내에 빨래를 널 때 유용했다. 옷핀은 배낭에 빨래를 널 때도 좋고, 빨래집개가 부족할 때 사용해도 괜찮았다. 비닐지퍼팩은 먹거리들을 담거나 의류를 분리해서 보관할 때 필요하다. 다용도칼은 빵에 치즈를 바를 때나 과일을 깎을 때 필요한데, 중간에 무거워서 버리고 포크숫가락으로 해결했다.

잠 잘 때 예민하다면 귀마개와 수면용 안대도 필수품이다. 까미노가 고되기 때문에 코를 고는 이들이 많다.

복대는 일반 여행과는 다르기 때문에 꼭 필요하진 않았다. 땀만 차서 초반부터 사용하지 않았다.

음식 고추장(튜브3), 도시락용 김, 동결건조 김치, 국물용 원물, 밥이랑

[트래블 메이트] 매장에 가면 동결건조 김치를 판매하는데 경험해 보면 필수 품목이 될 것 같다.

음식 중 가장 매력적인 것이 라면 스프인데, 달걀만 넣고 끓여도 되고, 파스타면을 넣어서 먹을 수도 있고,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고향의 맛이라서...

다른 분이 가져온 거였는데 미소된장 분말과 밥이랑처럼 일본식 밥에 뿌려서 먹는 것이 맛있고 괜찮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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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1일차,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론세스바예스 가는 길 24.8km


출발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서양인 순례자들의 모습.

처음엔 여느 여행지에서 만났던 이들처럼 지나쳐 가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까미노 내내 정다운 길벗이 되어 주었다. 

같은 날 출발하며 얼굴을 익힌 이들은 더욱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생장을 벗어나며 목격한 무지개, 이로부터 까미노에서 총 다섯개의 무지개를 보았다.



생장에서 8km 지점에 있는 오리손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첫 날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무리하지 않으려면 이 곳에서 하루 묵어가는 것도 좋다. 

그러나 두세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처음에는 이게 뭘까 하고 보다가 국경이라는 것을 알고는 기념촬영도 하고 재미있어 했다. 

반면 서양인들은 뭘 그리 놀라냐는 시선으로 쳐다보며 지나간다. 

우리 같은 섬나라 사람의 심정을 너희들이 알랴!


까미노 걷기에 대한 거의 모든 요소는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판가름이 난다. 준비물 중 계속 가져가야 할 것과 버려도 되는 것은 물론 몸의 약한 부분도 분명하게 알게 된다. 첫날이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출발해서 완만한 길을 오르지만, 그 길로 1,200미터 이상을 오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몸이 확실히 체감하기 때문이다. 

혹독한 테스트를 거친 짐과 몸이 확실하게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 특히 무릎 통증은 이후 순례를 계속 할 수 있을지 의심하게 할 만큼 심각했다. 순례를 위한 준비 중에서도 몸을 만드는 부분을 너무 소홀히 했다는 증거였다.

다른 준비물, 예를 들어 빨래비누 같은 것들은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낼 수 있지만, 몸이 받쳐주지 않는 것은 가장 중요한 준비물을 빼놓고 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몸에 딱 맞는 배낭, 트레킹화, 등산용 스틱이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고, 필요할 지 확신 없이 챙겨온 무릎보호대는 단연 필수 아이템으로 등급업 되었다.

201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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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생장 순례자 사무소


까미노 랭킹 6위, Coree Sud!!!


늦은 시간임에도 생장 순례자 사무소는 열려있었고, 속속 도착하는 순례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순례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이들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반면 나는 어떻게 이 과제를 완수할 것인가 하는 걱정 때문에 긴장하고 있었다. 맨 왼쪽에 자리가 났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빈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그 말로만 듣던 끄레덴씨알(순례자 여권)을 만드는 순간이다. 그러나 봉사자로부터 들은 말은 "안녕"이라는 한국말이 전부였다. 성의 없는 말투로 영어는 잘하냐? 스페인어는? 하는데, 약간은 무시하는 태도가 깔려있었다. 

저 먼 동양의 작은 나라 KOREA에서 왜 이렇게 몰려오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과 더구나 영어도 잘 못한다는 무시가 담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먼 곳 유럽, 그것도 가톨릭의 종교성이 깔린 순례길에 한국인들이 여섯 번째로 많이 오고 있으니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무척 기분이 나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았던 다른 한국 사람들(영어를 무척 잘하는)도 똑같은 대접을 받았다고 하니. 출발이 조금은 상쾌하지 않다. 숙소를 안내해 달라고 했더니, 지도를 던지듯 꺼내더니 볼펜으로 길을 따라가다가 한 지점을 쿡쿡 짚는다. 

201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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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V열차


까미노를 걷기위해 파리에서 출발하는 이들에게 중간기착지인 바욘느는 기차나 버스를 타기위해 잠깐 머물다 가는 역이다. 그러나 나에겐 하마터면 하루를 묵어가는 곳이 될 뻔했다. 어찌어찌 바욘느까지는 도착을 했지만, 이미 마지막 기차 시간을 한참이나 지나버린 것이다. 솔직히 아무 생각 없이 바욘느역을 서성거렸다. 너무 당황을 했던 것일까. 그런데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어리버리하게 기차 시간표들을 기웃거리는 분명히 까미노를 목적으로 온 것 같은 동양인이 눈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던 것. 밝은 미소로 불러 세우더니 '생장 가죠?(물론 영어로)'하며 말을 건넨 사람은 50대의 스웨덴 여성 Karin이었다. 말인즉, 생장으로 가려고 택시를 부른 사람이 있는데, 24유로만 내면 같이 타고 갈 수 있다는 거였다. 같이 가겠냐고 묻는데 잠시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숙소를 찾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게 구해서 바욘느에서 하루를 묵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 아닌가 말이다. 순례자 사무소가 몇 시까지 하는지 몰랐지만, 일단 생장으로 가는 것이 이 상황에서 최선이기에 낯선 서양인들과 함께 밴에 몸을 실었다. 

다시 한 번 미리 걱정 할 필요 없음을 깨닫게 한 사건이었다. 몸으로 맞닥뜨리면 그 자리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있게 되고, 도움의 손길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 캐런을 두세 번 더 만났는데, '바욘느의 천사'라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201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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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사람들


라오스는 산 아니면 강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산과 강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그래서 도시에서 도시를 이동하려면 배를 타고 강으로 이동하던, 아니면 자동차로 산마루로 난 길로 이동해야 한다. 보통 길은 산 중턱이나 물길 옆으로 마을들이 있는 곳을 이어서 낸다. 그런데 라오스의 길은 산마루를 이어 오르락 내리락 한다. 버스가 오르막을 달릴 때도 겁이 나지만, 내리막을 달릴 때는 혹시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자를 붙들게 된다. 아마도 화전을 하며 살아가는 산족들의 마을들을 연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산에 길을 낸 것이 아닌지. 아니면 워낙 산세가 높고 깊어서 계곡에 가깝게 길을 내는 것이 불가능 했던 것일까. 4월이면 깍아지른듯한 산비탈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위 사진은 두번째 방문한 6월에 찍은 사진). 불을 질러 밭을 만들어 다년생의 바나나 나무를 기르고, 일년생 옥수수나 찹쌀을 재배한다고 한다. 재대로 서 있을 수도 없을 것 같은 곳에 오가며 화전을 일구는 이들의 삶이 기구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낭만적이기도 하다. 



루앙프라방 남부터미널.

하루 전날 가서 예매를 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숙소 시내에 있는 여행사에서 예약을 해도 될 것 같은데, 약간의 변수는 있다.

오히려 여행사에서 가격이 저렴할 수도 있는데, 어떤 차를 타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ㅎㅎ



VIP버스는 맞는데, 한 때 어디선가 그랬다는 뜻이다. 라오스의 버스들은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 중고차이다. 그 중 많은 차가 한국에서 들어온 현대차이다. 스타렉스와 버스류가 주를 이루는데, 한 때 그 중고차 수입 때문에 현대차가 라오스를 주름잡았다고 한다. 아쉽게도 법이 바뀌어서 중고차가 더는 들어가지 못해 중국산 신차나 일본산 자동차가 맹렬히 추격해 오고 있다고 한다.


불을 놓아 연기가 솟고 있는 야산.


이 사진과 아래 사진은 6월의 풍경이다. 대기가 맑아졌고, 산과 계곡도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그래도 곳곳의 경작지는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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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이 라오스의 제일가는 관광도시 루앙프라방에 와서 어떤 느낌을 받을까? 자신들의 지배로 사찰을 제외하고 라오스의 전통은 사라지고, 유럽의 작은 마을을 연상하게 하기에 그것에서 만족스러움을 느낄까? 이처럼 인도차이나 곳곳에 식민지배의 흔적들이 이제는 관광상품으로 각광받으며 외화벌이의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수리와 재건축을 통제받으면서 루앙프라방의 모습은 그렇게 이국적인 모습을 계속 유지할 거다.

한 도시가 세계적인 관광지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의 소외를 의미하는 것 같다. 특히 라오스처럼 경제력이 미약한 나라에서는 현지인들은 관광지의 높은 물가를 감당할 수 없어 외곽으로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도시 내부는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 식당, 여행사, 마사지샵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웬만한 식당의 음식 가격은 주변에 더 잘 사는 태국이나 베트남에 비해 높다.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의 식자제들이 거의 수입에 의존되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관광지 물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라오스는 사람이 좋아서 찾아가는 곳이다. 그런데 루앙프라방을 포함한 대개의 관광지에서는 그 '사람'을 만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좀 과한 표현이긴 하지만, 온통 관광객들의 주머니만 노리는 이들로 가득할 뿐이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 좀 더 걸어나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라오스... 참 좋은 곳이지만, 그것이 관광객들 만을 위한 것인 것 같아 좀 씁쓸하다.



숙소 레스토랑에서 먹은 아침 식사. 완전 유럽의 어느 바Bar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메뉴이다.


나이 지긋한 서양인 관광객들이 가이드르이 설명을 듣기위해 모여있다.

같은 단체여도 한국인 단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최소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이고, 복장 또한 아웃도어 일색인 한국사람들에 비해 훨씬 편안해 보인다. ㅎㅎ


나이트 마켓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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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으로 내려가는 슬로보트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한 여성이 뒤쪽에 있는 화장실 문에 손이 끼여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의사를 찾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그 보트 안에 의사가 다섯 명이나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자 자신의 크고 작은 가방(키트)을 들고 뒤쪽으로 갔고, 응급처치가 이루어졌다. 다행히 부상이 심하진 않았던지 잠시 후 의사들은 속속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 중 한 사람이 사진의 주인공인 캐나다 출신의 의사다. 뭐 내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고, 앞뒤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그가 어디 출신인지를 알 수 있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옆 자리에 앉아서 하루 정도를 같이 이동했지만, 별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보통 서양인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고 동양인에게 별 관심이 없다. 아마 예쁜 여성이었다면 말을 걸어왔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이틀 동안 한 배에 타고 루앙프라방에 도착해서는 각자의 숙소를 찾아갔다.

도착한 날 저녁에 나이트 마켓과 식당 등을 돌아다닐 때 같이 배를 타고 온 이들을 보게 되지만 아는 척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캐나다 출신 의사는 친해진 다른 서양인들과 함께 시장으로 들어서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한다. "Hello! How are you?" 하며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지나간다. '한 배를 탔던 인연'을 기억하고 있다는 너무도 강렬한 표현이었다.

우연이겠지만, 여행을 하면서 동양인인 나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은 거의 예외없이 캐나다인이었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고 비판을 듣는다해도, 난 캐나다 사람들이 제일 친절하고 잰틀하다고 말하고 싶다. 혼자 여행하는 남자 동양인을 따듯하게 대해준 고마움에서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 말을 잘 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을 대하는 따듯한 태도를 높이 사고 싶다. 결국 생각보다,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몸에 배어 있는 태도인 것 같다. 말 몇 마디 나누고 판단하기 보다 그와 함께하며 그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지, 특히 무시할 수도 있는 작은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지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이 사람도 슬로우보트를 타고 루앙프라방으로 함께 온 사람이다. 

들고 있는 악기는 스위스 것이지만 정확히 스위스 사람인지 프랑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이 사람은 태국 빠이에서도 봤고, 치앙마이에서 치앙콩 오는 그린버스도 함께 탔으니까 

최소한 네 번은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치앙마이에서도 봤다고 했더니 더 반가워하면서 CD에 사인도 해주었다(구입함).

악기를 연주하며 여행경비를 충당하는 것 같았다.

바구니에 담긴 CD는 우리 돈으로 8,0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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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은 사원의 도시이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구도심의 곳곳에 사원들이 있고, 주황색 천을 걸친 승려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압권은 아침(보통 오전 6시 전후)에 이루어지는 탁밧(탁발)이다. 다른 곳(나라)에서는 혼자 혹은 둘이나 셋이서 오전 시간에 집집을 찾아다니는데, 이 곳에서는 돗자리 깔고 줄지어 공양하는 이들 앞을 승려들 역시 줄지어 지나가며 그릇에 먹을 것을 받아간다.

그 모습이 워낙 볼거리라 이제는 관광상품으로 변하여 투어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들로 그 이른 시간이 북적인다. 심지어 관광객을 위해 돗자리 깔고 공양할 음식을 놓아두고 오라고 손짓하는 이들도 있고, 돌아다니며 공양할 음식을 판매하는 이들의 모습은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환경은 그렇게 변하고, 변질되었다고 하더라도 승려들의 삶은 그대로의 '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신의 그릇 만큼만 받아 갈 뿐만 아니라, 받는 족족 곁에서 구걸하는 이들에게 내어 놓음으로 그릇이 넘치지 않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누어주면서도 전혀 생색을 내지 않는 '무심한' 표정 역시 보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우린 오늘도 우리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마음을 담아 서로를 무겁게 하고 있지 않나. 나는 갑자기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고, 이내 길가에 걸터 앉아 스쳐 지나가는 이들의 흔적을 카메라가 아닌 가슴에 담고 있었다. 루앙프라방은 사원의 도시이고, 아침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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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사원을 유지보수하는 일을 승려들이 담당한다. 

그것이 그들의 수행하는 삶의 일부라고 한다.

어린 승려들이 지붕과 담을 보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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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작은 마을 박뱅은 어떤 여행 가이드북에도, 또 어떤 이의 블로그에도 그리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아니 솔직히 다룰만한 소재가 없는 그런 곳이다. 여행을 시작하며 웬만한 도시의 숙소는 미리 예약을 하고 갔는데, 이 곳은 아예 이름 자체가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서 숙소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초보여행자로서 내심 걱정을 하고 갔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슬로보트에서 내리면서 바로 알 수 있었다.

그저 사람들이 가는 대로 따라가다가 적당한 위치에 있는, 저렴한 숙소를 잡고 하룻밤 묵어가면 된다. 더 있다가라고 잡지도 않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마을의 시작점에서 끝까지 3분이 채 걸리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이기 때문이다. 정말 훼이싸이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또 반대로 가는 슬로우 보트가 해가 떨어진 후 움직일 수 없어 하루 묵어가는 것으로 존재하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이 작은 마을 빡뱅이 이렇게 내 가슴을 설레이게 할 줄은 몰랐다. 너무도 작은 마을이고, 숙소는 더도 말고 딱 200밧(8,000원) 정도 수준이고, 식당은 하루 쉬어가는 나그네들에게 딱 맞는 허름한 인테리어와 소통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런 마을에 하루가 아니라 며칠 묵어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콩강을 타고 내려오다, 또 거슬러 오르다 쉬어간 수많은 나그네들의 온기 때문일까.  

빡뱅에서 느낀 따듯함은 이후에도 불쑥불쑥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아, 여행의 참 맛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오는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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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보트 티켓은 훼이싸이에서 탈 때, 

여행사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예약할 경우 950밧에서 1,000밧 사이이고, 

루앙프라방에서 탈 때는 1,200밧으로 좀 더 비싸다. 

내가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라면 거슬러 올라가는 배가 더 비싼 것이 아닐까 한다.

훼이싸이에서 루앙프라방을 오가는 슬로우보트의 의자가 편한 의자로 바뀌었다. 

폐차하는 승합차에서 모아온 의자들이다. 

승객의 수에 따라 의자의 수나 배열이 다른 보트를 탈 수 있다. 

아래 사진은 거의 만석 수준으로 꽉꽉 채워 놓았을 때의 의자 배열이다. 

다리긴 서양인들은 많이 불편할 듯 하다.


보트 뒤편에 간이 매점이 있는데 많이 비싸다고 보면 된다.

맥주나 스넥을 팔고, 먹을만한 컵라면도 있는데, 모두 태국 것들이다.



빡뱅 입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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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한 장 의지해 길을 나섰다.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나 자신의 판단에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날도 덥고 발을 내 디딜 때마다 먼지만 날리고, 지나가는 사람도 오토바이도 없었다. 

발도 무거워지고, 신발 속으로 들어오는 작은 돌맹이들은 발다닥을 콕콕 찌르며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지도에서 본 그 길이 맞나? 아~ 나는 늘 이런다니까. 

방향감각에 대한 이 망할 자신감이 늘 화를 부른다고. 스스로 자책하며, 또 투덜거리며 길을 걷고 있을 때... 성큼성큼 나를 앞질러 가는 이가 있다. 

어! 하는 순간 '안녕!'하며 환한 미소로 인사한 그는 벌써 저만치 앞장서 있다. 

이 길이 맞나보다. 조금만 더 가면 될까? 하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앞선 사람의 존재, 그 얼마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지. 

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나는 계속 그 길을 갈 수 있었다. 

이미 누군가 그 길을 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는 늘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왔는 지도 모른다. 

별 고민 없이 누군가 이미 걸어간, 또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을 걸어왔다. 

동시에 내 뒤를 걸을 누군가에겐 또 내가 앞 선 사람이 되겠지.

그럼...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보다 앞 선 사람은 또 올바른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일까.

그 후 나를 앞서간 사람을 다시 보지 못했다. 두 시간을 헤메며 숲의 끝가지 갔지만 그는 없었다. 

뒤돌아 두 시간을 나오는 중간 중간 또다른 '나'를 만나며 나는 그 길의 끝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나를 앞선 사람으로 여기고 안도하며 그 길로 더 깊숙히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도 나를 다시 보지 못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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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핫야이에서 말레이시아 페낭 가기


잠시의 머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두번째 목적지인 페낭으로 출발했다.

원래 여행사 사무실로 8:30까지 오면 9:00에 출발하는 벤을 탈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정각에 갔는데,

아침 먹었냐고 하면서 안 먹었으면 먹고 오란다. 9시에 차가 온다는 거다.

아니 그러면 그렇게 얘기를 해줬어야 여유있게 오지~

덕분에 여행사 직원들의 면면을 살피며, 문밖을 지나가는 차들, 오토바이들, 사람들을 구경하며 40분을 기다렸다. 차는 9:10이 넘어서 도착했다.

처음 출발할 때는 4명이 타고 있었다. 

450B(좀 바가지 쓴 듯) 네 명이면 수지가 않맞을텐데 하며 걱정하는척 내심 기분이 좋았다.

'오호! 여유로운 여행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것은 오산이었다.

동남아 여행에서 직행이건 완행이건 간에 어떤 차든 이동하면서 자리를 꽉꽉 채운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여기저기 정차하면서 한 자리 한 자리 채우더니 결국 국경을 넘을 때는 빈자리가 없어졌다.

더구나 최악인 것은 옆자리에 앉으신 나이 지긋한 말레이시아 아저씨께서 팔을 들고 가시는 거다.

그 약간 중동스러운 말레이시아 아저씨의 그 채취는 참을 수 없이 고약했다.

고개를 돌려 기침을 하고 그래도 아는 지 모르는 지 참.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넘어왔을 때 길을 잘 닦여있어 역시 경제력이 다르구나 했는데,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를 넘어오니 또 그 차이가 더 눈에 띈다.

도로도 그렇고, 도로 주변이 잘 정리되어 있는 태국에서는 보지 못한 고속도로다운 모습이었다.

앞서 국경을 넘을 때도, 입출국장 분위기도 완전히 달랐다.

말레이시아는 출입국카드가 없는게 너무 좋다.

대신 양손의 검지의 지문을 채취하는 것이 좀 맘에 안 든다.


말레이시아에 넘어오면 오른쪽 차선을 이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왼쪽 차선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거다.

또 일본차도 많고. 그것은 태국과 달라진 것이 없는듯 하다.



4시간 정도 걸려서 페낭에 도착을 했다.

사람들이 다 내려서 그런줄 알고 따라 내렸는데, 터미널도 아니고 차가 많이 다니는 곳도 아니어서

조지타운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었더니

기사가 '조지타운? 내가 데려다 줄께 타!' 하는 거다.

알고 보니 페낭인줄 알고 내렸던 곳은 버터워쓰였던 것.

하마터면 버터워스에서 헤매다가 택시비 엄청 들뻔 했다.

아무리 눈치가 빠르다고 해도 처음 오는 곳에서는 좀 물어보고 움직여야한다는 교훈을 살짝 얻었다.

더구나 비도 주룩주룩 내리는데 온통 젖은체로 처량한 신세가 될 뻔 했다.


또 다시 한참 달려 조지타운의 남쪽에 있는 랜드마크 콤타에 내렸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거금 16.1RM짜리 일식 돈부리를 먹고, 

택시 12RM에 숙소가 근처까지 이동했다.

비만 않왔으면 저렴한 식당을 찾았고, 또 걸어서 숙소까지 왔을텐데.

숙소에서 조금 쉬고, 비가 잦아든 틈을 타서 산책겸 도보여행코스를 돌아볼 수 있었다.




201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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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면서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핫야이.


나 역시 말레이시아로 가기위해 하루 묵어가며 반신반의했던 곳이다.

듣던 것처럼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기분 풀러 오는 국경도시임에 틀림없고,

그래서 중국색이 느껴졌고, 인도 분위기도 살짝(말레이시아에 화교와 인도인이 많음) 풍기는 것도 사실이다.

태국이 아니고 중국의 변방 어떤 도시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핫야이 근방부터 아래쪽으로 과거 이슬람 왕국이 있었던 곳이다.

태국에 합병되기는 했지만, 최근까지도 분리독립을 원하는 움직임이 살아있다.

지난 해에도 폭탄 테러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여행금지 지역이다.

가이드북에 핫야이에 대한 소개가 왜 없을까 했는데 그런 이유때문인 걸까.

21세기를 달려가는 인류는 오늘도 여전히 과거의 산물인 종교의 다름에 묶여있다.

종교는 정치와 뗄 수 없다는 것을 이런 경우들이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정교 분리를 말하지만, 때로 종교가 더 정치색을 띄는 것을 본다.

그것도 자신의 종교적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서가 아닌 이해득실로 인해 투쟁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국 종교는 작은 자를 소중히 여기는데 그 목적이 있는데

작은 자, 힘 없는 자를 너무도 무참히 희생시키는 것을 보면 이제 종교들이 간판을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얘기가 너무 멀리 갔는데, 핫야이에 아주 잠깐 머물렀지만 매력 포인트를 찾았다.

물가가 방콕이나 푸껫보다 싸고, 음식문화가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차이나타운 풍의 붉은색으로 장식한 식당들이 넓은 공간을 자랑하고 있고,

그 안은 중국사람으로 보이는(관광객이거나 현지인) 이들이 북적인다.

그렇게 섞인 문화로 인해 태국요리이지만 중국요리 향기가 난다.



마사지도 저렴하게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핫야이 센트럴 호텔 맞은편에 있는 작은 마사지 숍에 마사지를 받았는데,

발마사지 1시간에 180B이었다.

물론 치앙마이는 130B을 하기도 했지만,

그 발마사지와는 퀄리티가 달랐다. ㅎㅎ 개인차가 있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온다는 것 하나로 이렇게 도시가 형성되고 성장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지, 사람들이 있으니 도시가 되는 거지... 무식하긴 ㅋㅋ

내심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들로 인해 부를 쌓아가는 아이러니가 있는 곳이다.


콘 까울리(한국사람)라고 하면 자기들끼리 까울리 까울리 하면서 소란을 피운다.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한국사람 왔다, 한국사람이야~ 하는 것 같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사람을 반갑게 대해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


저녁 무렵 도착해 목격한 도시와 하늘, 그리고 이른 아침의 도심과 하늘이 꽤 매력 있는 핫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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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빠이 가기


방콕이나 치앙콩 같은 장거리 버스와 마찬가지로 빠이로 가는 버스도 치앙마이 아케이드에서 출발한다.

도착할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출발할 때는 약간의 어리둥절함이 있는 곳이 치앙마이 아케이드이다.


새로 지은 터미널과 옛 터미널이 마주보고 있어서, 어디서 표를 끊고 차를 타야하나 난감한 순간을 맞게 된다.

그러나 간단히 정리를 할 수 있다.

장거리(방콕, 파타야 등) 버스와 그린버스가 운영하는 주변 도시들(매싸이, 치앙콩 등)은 새 터미널에서 운행하고, 

매홍손 주의 매홍손과 빠이와 국영 999버스는 구 터미널에서 운행한다.

그러니까 999버스를 타고 방콕에서 왔다면 도착했던 그 터미널에서 빠이 매표소를 찾으면 된다.


매표소인데, 좀 더 크게 촬영을 할 걸 그랬다는...


가이드북을 보면 에어컨 버스와 완행버스가 있는 것으로 나왔고,

완행버스의 경우 오전에 네 번 운행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사진의 시간표에서 보듯이 4시간 정도 걸리는 버스는 하루 한 번 07시에 운행하고,

(사실 완행버스가 하루 한 번 운행하는 지는 확실치 않다.)

나머지는 왼편처럼 거의 한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밴(승합차)이 있었다.

밴은 3시간이면 빠이에 도착한다. 요금은 150B이다.


원래 빠이는 치앙마이에서 매홍손을 갈 때 거쳐가는 작은 마을이다.

그런데 여행자들의 눈에 띄어 이제는 매홍손보다 더 유명한 곳이 되었다.


더운 날씨에 창문 열고, 곳곳에 정차하는 완행버스


논스톱 3시간만에 치앙마이에서 빠이에 도착하는 밴

15인승이고, 좌석이 정해져 있다.

붐빌 때는 미리 예매를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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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치앙마이 가기


방콕에서 치앙마이 가는 것 역시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비행기, 열차, 버스 등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나는 평소 버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당연히 방콕 북부터미널을 이용한다.


 방콕에서 택시로 버스터미널 갈 때 아래와 같이 말하면 된다.
 <북부 터미널-콘쏭 머칫 마이, 남부 터미널-콘쏭 싸이 따이 마이, 동부 터미널-콘쏭 에까마이>

 남부터미널 갈 때 어떤 기사가 "아~ South Station!"하길래 

 그 다음에 그렇게 말했더니 못 알아들어서 다시 콘쏭~라고 하니 바로 알아들었다.


이 때까지도 999버스만 타야하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창구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999버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버스 매표소에서는 호객을 한다.

지나가며 나인나인나인이나 까오까오까오(태국말 999)를 외치면 거의 자동적으로 '치~'하며 돌아 앉아버린다.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 9시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가능한 늦은 시간인 21:30 것으로 표를 끊었다.

(이틀 전에 예매, 876B)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나와서 가방을 매고 딱히 갈 곳이 없어서 거의 오후 2시부터 터미널에 죽치고 앉아 있는데 좀 고역이었다.

책도 보다가 핸드폰도 들여다 보다가 터미널의 이 곳 저 곳을 기웃기웃하고,

겨우 찾아낸 마사지집에서 한 시간짜리 타이마사지도 받고, 저녁 먹고...

남부터미널에 비하면 북부터미널이 크긴 한데,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은 부족했다.


 푸드코트 이용하기
 우리 나라처럼 계산대에서 먹고자하는 음식을 정하고 그 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20B짜리 두 장, 10B짜리 한 장 구입해서 먹고싶은 음식이 있는 코너에 가서 주면 된다.

 미리 정확한 가격을 알아야 구입할 수 있는 거다. 

 방콕 북부터미널에서도 그랬고, 치앙마이 센트럴 지하에서도 그랬다.


이럴바에는 오전 표를 끊어서 갈 걸 그랬나 조금 후회했는데,

다음날 치앙마이에 오전 7시 경에 도착하고 보니 그 후회가 확신으로 바뀌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오전 체크인이 어렵다고 해서 거의 오후 1시까지 피곤한 몸과 찝찝한 얼굴로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호텔에 들어가야하는 여정이라면, 

오전 일찍 출발하는 버스(오전 8시 경에 있었던 걸로..)로 이동해서 저녁에 바로 숙소 체크인을 하는 것이 좋겠다.

낮에 이동하면 주변 경관도(물로 비슷비슷할 수도 있으나)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버스에서 밤을 보내면 잠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기만 하니 더욱 그렇다.


오전 버스를 타고 저녁에 도착해서 바로 체크인 해서 들어가도록 하자!

물론 이것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3월 15일 오전 7시의 치앙마이는 꽤 추웠다.

긴팔 옷을 안 가지고 온 것을 후회할 정도로.

원래 3,4월에 치앙마이가 태국에서는 제일 기온이 높은데, 그만큼 일교차가 또 큰 것 같았다.

참, 치앙마이 버스터미널은 '치앙마이 아케이드'라고 부른다.

택시나 성태우 기사에게 아케이드 가자고 하면 바로 알아듣는다.


참고로 치앙마이에서 성태우의 기본요금은 30B이다. 

여기에 거리에 따라서 5~60B까지도 부르는데, 잘 흥정하면 깎을 수도 있다.

치앙마이의 성태우는 노선이 따로 없기 때문에 처음 탄 사람이 가자는 방향으로 가면서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을 계속 태운다. 

그렇게 해서 어떨 때는 이 사람 저 사람 내려주느라 돌고 돌아 목적지에 가게 될 수 있다. 

다 그렇게 다니니 불평은 하지 말자.

기사 옆자리가 비어있으면 문을 열고 타보는 것도 좋다. 기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도 괜찮다.


치앙마이 선데이 마켓 노점들 사이에서 노래부르는 청소년의 악보집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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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은 태국에 들어오면 무조건 90일 비자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특별한 비자를 받지 않고도 3개월에 한 번씩 외국을 나갔다 오면서

장기체류를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번거로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가깝게는 일본인들도 육로로 들어올 때는 관광비자를 15일 밖에 주지 않는다.

한국 사람은 육로로든 비행기로든 무조건 90일을 준다.


푸껫에 머무는 한인들은 주로 라농으로 가서 미얀마를 살짝 넘어갔다오거나

좀 여유가 있으면 비행기나 자가용으로 말레이시아를 다녀오기도 한다.

일명 이것을 비자클리어라고도 하고, 전문용어로를 비자세탁이라고 한다.


푸껫에 온지 3개월이 되어서 비자클리어를 준비하던 중 여행 반경을 좀 크게 잡아봤다.

푸껫을 출발해 방콕을 거쳐서 태국 북부와 라오스를 돌아오는 그림을 그렸다.


정확히 지나가는 도시는 아래와 같다.

태국 방콕, 치앙마이, 빠이, 치앙콩

라오스 훼이싸이, 빡뱅, 루앙푸라방, 왕위앙(방비엥), 위앙짠(비엔티엔)

거처간 도시와 마을들의 사진과 사연은 조금씩 정리해서 올릴 계획이고,

대략적인 이동방법과 비용에 대해서 '정보'를 나눠볼려고 한다.


푸껫에서 방콕 가기

푸껫에서 방콕 가는 방법은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버스를 선호한다.

12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지만 비용이 저렴하고 이동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푸껫 안에서 공항을 가기위해서는 택시로 500~600B을 줘야하니 이중삼중으로 비용이 나간다.

푸껫 버스터미널2 앞으로 성태우가 다니는데, 집 앞까지 오니 나로서는 더없이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요금도 저렴하시사 10B이다.


푸켓타운을 오가는 성태우가 3개가 있고, 

그 노선을 잘 알아두면 여러 비치로 출발하는 성태우들로 갈아탈 수도 있고,

로빈슨 백화점, 센트럴 패스티벌, 빅C, 로터스 등도 갈 수 있다.

보통 태국에 사는 이들의 이동수단은 자가용과 오토바이인데, 나는 이 둘 다 없기 때문에 성태우를 애용하고 있다.


<푸껫타운 성태우 노선도>

노란색 1번, 빨간색 2번, 초록색 3번

원모양으로 된 길이 세 개인데 가장 왼쪽에 있는 원(분수대) 부근에서 

빠통, 까론, 까따, 카말라 비치로 가는 성태우(30~35B)가 출발한다.


암튼 성태우를 타고 푸껫 버스터미널로 가서

바로 끊거나 예매한 표를 들고 버스를 타면 된다.

12시간이나 가야하기 때문에 국영 999(까오까오까오)버스를 이용한다.

999버스에도 레벨이 있지만 대개 제일 좋은 VIP버스를 탄다.

비용이 1000B을 넘는데, 충분히 그 값을 한다.

일반 여행사에서도 VIP버스를 운영하는데, 타보면 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999 다음으로는 Chan투어가 유명한데, 찬투어에서는 S-Class가 최고 좋은 버스이다. 

의자는 안마의자, 개인 모니터까지. 노선도 응용력이 있고.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 선택하면 될 것 같다.


아! 그리고 이번에 새로 알았는데,

방콕과 남부지역을 오가는 버스는 방콕 남부터미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부터미널에도 편수는 좀 작지만 거의 다 있다.

방콕으로 보면 남부터미널에 비해 북부터미널이 이동하기도 쉽고(BTS 모칫역에서 가까움),

만약 북부나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경우 바로 연결을 할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다.

아주 좋은 정보를 알게 된 것 같다.


999버스의 경우 티켓 아래쪽에 절취선이 있어서 자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그 작은 종이가 식권이다. 

중간(12시 전후)에 정차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종업원에게 주면 된다.

주 메뉴는 밥을 끓인 죽에 여러 반찬을 주는데, 제법 먹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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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이Pai에 대한 사진을 올릴려고 보니 사진이 너무 없다.

반면에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너무 잘 찍은 사진들이 넘쳐난다.

멋있는 사진도 있고, 예쁜 사진도 정말 많다.

'나도 한 번 찍어봐야지~'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기했다.

그래서 그런 글들에서 보지 못한 장면이나, 정보가 될 만한 것 몇 장 올리며 

그 유명한 빠이에 '나도 다녀왔다~'고 흔적 남긴다.


여행 가이드북에 보면 '빠이는 별 볼 거리는 없지만'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나마 좀 볼 거리가 될만한 곳 몇 곳을 추천하고 있다.

그래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빠이가 가까워올 무렵부터 펼쳐지는 주변 농가의 풍경은...

'여기가 태국 맞나?'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이국적(태국 같지 않은) 멋스러움을 자랑했다.

그리고 며칠 머물며 경험한 빠이를 한마디로 하자면 '모듬'이다.

여행자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이 작은 공간 안에 모여있는 거다.

그것도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쑤셔넣은 것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말이다.

물론 요사이는 스스로 인위적인 빠이스러움을 꾸미고 있는 곳들도 있지만

여전히 자연스러운 빠이스러움은 잘 보존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인위적인 것을 뺀 인사동을 지리산 쯤에 갔다놓은 것이라 할까. ㅋㅋ


마을의 경관도 그렇지만 이 곳의 주민이나,

또 머물고 있는 외국인들이나 좀 별남이 묻어 난다.

헤어스타일이며 복장이 그렇고, 저녁무렵부터 길 양 옆에 자리 잡는 그들의 생산품들이 또한 그렇다.

그들의 말처럼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그 소품들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아쉽게도 그런 소품들 사진은 다른 여행기에서 찾아 보시길)


마을 길도 좋고, 집도 좋고, 주변 환경도 좋고, 사람도 좋은 곳! 그 곳이 빠이다.



숙소들이 대충 이렇다. 이 곳은 반빠이 빌리지이다. 

가격은 아고다에서 찾아 보시길...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길

저녁이 되면 먹거리, 볼거리, 살거리 들이 가득해 진다.



건기라서 강의 수량도 적고, 대나무로 만든 다리로 오갈 수도 있다.



소들만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일년이 모두 여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빠이 주변은 농사철이 아니었다.

치앙마이 주변에서는 논 가득히 자라고 있는 벼를 볼 수 있었다.

소와 함께 있는 아저씨, '사와디캅~'하고 인사하니, 웃으며 '사와디캅'으로 받아준다.



매연폭포를 보겠다고 들어간 숲에서 본 나무들이다.

뭔가를 보고 나오긴 했는데, 확신은 없다.

산속으로 왕복 4시간을 넘게 걸었다. ㅠㅠ


카시콘 은행의 빠이 지점이다.

이 것이 인위적인 빠이스러움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빠이를 여행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이동수단이다.

일단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여행의 양이 달라진다.

빠이 주변에 있는 볼거리들을 거의 못 볼 수도 있다.

대안으로 자전거를 빌려서 타봤는데 커피인러브 한 곳 다녀오고 넉다운이 됐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잘 타도 문제는 있다. 워낙 위험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빠이같은 곳에 가면 늘 고민을 할 것 같다. 오토바이를 배울까 말까.

그래도 아쉽긴 하지만 안 타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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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의 자존심은 수많은 사찰에 있는 것.

구시가지 안에 있는 사찰은 마음먹고 돌면 한나절에 돌 수 있는 숫자.

물론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기 시작하면 불가능할 일이지만,

꼭 봐야한다고 써 있는 구시가지 내에 있는 사찰 네 개를 돌아봤다.

가이드북이 제안한 순서인데 그 정도만 봐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그 이유는 가보면 안다. ㅎㅎ


1. 왓 치앙만 Wat Chiang Man



1296년 건립된 것으로 치앙마이에서 제일 오래된 사찰이다.

불당 안에 유명한 불상들이 있는데, 잘 촬영이 되지 않아서 포기했다.

코끼리가 받치고 있는 황금색 쩨디, 창 롬 Chang Lom은 이후 본 어떤 쩨디보다도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사진발이 제일 잘 받는 것 같다.


2. 왓 판따오 Wat Phan Tao


몇 개인지 안 세어봐도 알 수 있다. 108개!

그릇 숫자만큼 동전을 바꾸어 하나씩 넣으며 기도하라는 것.


3. 왓 쩨띠 루앙 Wat Chedi Luang

1401년에 건립된 쩨디로 원래는 90m 높이였다는데, 지진으로 무너져 60m만 남아있다.

지금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만들었을 당시 얼마나 경이로웠을까?


4. 왓 프라씽 Wat Phra Sing


예배 행위를 하는데 많은 불상이 필요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불상들 옆에는 심지어 고승들을 불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물론 죽은 사람이겠지만.


왓 프라씽 뒤뜰에 있는 흰색 쩨디이다. 

줄에 달린 쇠로 만든 통에 물을 넣어 도르레를 돌려 올리면 끝에 가서 자동적으로 쏟아지게 되있다. 

그렇게 해서 물을 뿌려 쩨디를 씼고 소원을 비는 것 같았다. 

불상에 물을 붙는다든지 송크란 때 물을 뿌리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지. 


왓 프라씽 바로 앞, 정확히는 정문을 바라보고 가다가 약 30~40m 못가서 왼편에 있는 로컬 식당.

특별히 이 식당을 언급하는 이유는, 치앙마이 최고 광광지 복판에 있는 식당인데, 값도 싸고 맛도 좋아서이다.

대개 물도 얼음든 컵 주고는 돈을 받는데, 그것도 셀프라고 공짜였다.

주변에 학교에 다니는 듯한 청소년들도 많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그냥 학교 앞 식당 분위기라고 할까.

암튼 치앙마이는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어 특히 좋았던 것 같다.

아쉽게도 식당 이름은 담아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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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앙마이 도이쑤텝 2013.3.17

도이쑤텝은 치앙마이를 대표하는 사원으로 원래는 긴 이름을 가졌는데 줄여서 부른다.

치앙마이 외곽 해발 1,610m 산 정상에 있다.

도이쑤텝에 가려면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가기도 하지만, 좀 위험하고,

대개 성태우에 10명씩 채워서 함께 가게된다.

성태우 편도 50B(빠뚜 창푸악 앞에서 출발), 입장료 30B(외국인만)


사실 치앙마이에 가면 절절하다. ㅋㅋ 

절이 너무 많아서 하나 둘 셋 다니다 보면 다 똑같아 보인다.

그 차이를 명확하게 아는 이의 가이드를 받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그렇게 많은 절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태국 사람들의 여전한 신심에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도이쑤텝을 오르는 길에 가장 먼저 눈에 띈 '개밥에 후원해주세요!'

개로 태어나려면 불교나라 특히 태국에서 태어나야 한다.

이렇게 대접을 받고 있으니.

개들은 묶여있지도 않고, 어디든 마음놓고 다녀도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다.

(나~ 한국에서 왔어! 무섭지?)



도이쑤텝을 오르는 계단이다. 300개라는데 세어본다는 걸 깜박했다.

계단 양 옆을 지키고 있는 용모양은 머리 일곱게 달린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뱀의 왕 나가Naga이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일 오르는데, 어떤 생각으로 오르나 궁금하다.

치앙마이 관광 필수 코스여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일거다.

간혹 주위 사람들 아랑곳하지 않고 경건하게 참배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흠짓 놀란다.

나와 전혀 다른 마음가짐으로 올라온 사람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원래 도이쑤텝이 유명한 것은 치앙마이 시내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간, 3-4월은 대기가 맑지가 않다. 

황사도 있는 것 같고, 너무 기온이 높은 것 때문인 것 같기도하다.

그래서 치앙마이의 희미한 모습밖에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대기 맑은 시기에 다시 오리라 다짐했지만 언제 올 수 있을 지...



내려오는 길에 고산족 꼬맹이들의 뒷모습을 찍었다.

왜? 

앞모습을 찍으면 돈을 줘야한다. 재주가 있는 아이들은 도이쑤텝 마당에서 노래와 춤을 추고 있고,

이 아이들은 둘, 셋 씩 서 있으면서 사진을 찍게 하고 돈을 받는다.

돈을 받는 순간 나가(뱀_아이들이 기대어 있는) 옆에 숨어 있던 엄마같은 어른이 낚아채간다.



2. 치앙마이, 푸삥 궁전 2013.3.17

뭐라 불러야 하나, 태국 왕실의 겨울궁전이라고 해야 할까?

도이수텝에서 조금만 더 가면 있기 때문에 도이쑤텝, 도이 뿌이(고산족 마을)와 묶어서 다녀오기도 한다.

입장료 50B


푸삥 궁전은 왕족과 귀족들이 12~2월에 주로 와서 머물러 그 때를 제외하고는 개방이 된다.

개방이라고는 하지만 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궁 주변의 정원을 둘러보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처음에는 김이 좀 빠졌고, 또 반바지 입었다고 긴바지를 대여하라고 해서 기분 상했지만,

정원을 산책하며 꽃향기를 맡으면서 마음이 확 바꿨다.

온 세상의 꽃은 다 모아 놓은 것 같았고, 향기도 어찌 그리 좋던지.

더운 날씨에 모두 걸어서 구경하기에 조금 벅찬감이 있었다.

골프 카트같은 것에 서너명 타고 기사가 가이드해주는 것이 있었는데, 

말만 알아들으면 사람 모아서 타면 좋겠다 싶었다.





한국에서 고무나무라고 부르는 그 나무인데, 이렇게 크다.

위쪽을 보면 작은 잎들이 있는데, 그것이 어른 손바닥 두개만한 그런 큰 잎인데 작게 보인다.


대나무가 어찌나 큰지, Dragon Bamboo라고 부른다.

이후로 대나무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한국의 대나무가 사방으로 퍼진다면

열대지방 대나무는 한곳에 모여서 집중적으로 자라는 특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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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같아서는 필요한 이들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여행기를 쓰고 싶은데,

그 정도로 정확하고 세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또 위트가 있고 감동이 있는 여행기를 써보고 싶은데,

그러기엔 글발이 한참 달리고, 사진도 뒷받침되지 않는다.

암튼 이렇게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면 검색엔진에 걸려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발견될텐데...

그냥 '아~ 저런 곳에 가서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정도로 가볍게 보고 지나가면 좋겠다.


치앙마이, 선데이 마켓 2013.3.17.

일요일 오후 5시부터 치앙마이 여행의 이정표가 되는 타페문(빠투 타페)으로부터 

왓 프라싱까지 족히 1키로도 넘는 길을 모두 막고 시장이 열린다.

어디서 나왔는 지 도로의 좌우 가운데를 노점들이 가득 메우는데,

정말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인데, 치앙마이 여행의 꽃이 아닐까 싶다.

때에 따라서는 음악공연도 열리고, 다양한 볼거리들도 함께 한다.


1/4되는 지점에 이렇게 친절하게 지도도 세워뒀다.

사실 선데이 바자를 돌아보면서 이 지도를 참고하진 않을 것 같다.

워낙 사람이 많아서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쇼핑(관람이라고 해도) 포인트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흐름이 종종 너무 좁은 곳에서 막히기도 하는데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

한국 같으면 상점을 뒤로 더 물러서 길을 넓히라고 야단을 할텐데 그러지 않는다.


이런 사진을 좀 많이 찍고 싶었는데, 아니 사실 많이 찍었는데 잘 나온 것이 없어서ㅠㅠ

지금 광경은 사찰 안에 차려진 상점들의 모습이다.

이런 물건들을 파는 것은 물론 먹거리 장터도 사찰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열린 것을 보게 된다.

기꺼이 사찰의 문을 열고 마당을 사용하게 한다는 것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자리세를 받는 지는 몰라도, 종교와 그 시설이 사람들에게 편하게 개방되는 모습이 좋았다.





더 많이 찍지 못한 것이 아쉬운데, 암튼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그리고 먹는 것도 정~말 많은데, 먹고 싶다고, 호기심에 지갑을 열기 시작하면 배가 터질지도 모른다.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회초밥과 바로 갈아주는 딸기주스였던 것 같다.

회초밥 하나에 10밧(410원), 5밧인데 나름 괜찮았다.


치앙마이는 마사지의 천국이다.

선데이 마켓에서만이 아니고 평소에도 길가나 사람들이 모일만한 곳에는 의자를 죽 깔아놓고

손님들을 맞는다. 손님이 오면 어디있었는지 마사지사가 등장한다.

가격도 저렴한데, 발마사지 30분에 80밧(3,300원), 1시간에 130밧(5,300원)이다.

물론 팁은 알아서 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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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땀도 잊은채 머물다 왔다. 먹먹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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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그대로 아름답다.
여기에 이유를 달면 사족이 된다.

어린이날 청소년부 선생님들과 부천식물원에서...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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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교역자들과 갔었던 곳 사진들.
누가 보면 놀러만 다닌 줄 알겠네.

2008년 운보의 집, 속리산, 법주사





2008년 횡성, 강릉



2009년 미시령, 속초, 낙산




2009년 남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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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울타워에 갔다.
그런데 전에 보지 못한 진풍경을 목격하게 되었으니,
안전망에 걸린 수 십, 수 백 개의 자물쇠들,
홀로인 것도 있지만 두개씩 쌍으로 채워져 있는 모습.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고 굳게 채워진 연인들의 자물쇠.

손가락 거는 것으로는 부족해 자물쇠로 굳게 채운 마음.
그 사랑, 그 약속 영원했으면 좋으련만
그 다음 일은 나도 모르고, 그들도 모르고, 하늘만이 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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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놓고 가는 바람에 핸드폰 카메라밖에 없어서 많이 찍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올릴만한 사진이 나와서 다행이다.
평소에 핸드폰 가메라가 좋지 않다고 투덜거렸었는데...

지난 11월 2일에 촬영한 광경이다.
오늘은 눈이 온다. 경기 북부 지역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단다. 그래도 첫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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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신성리 갈대밭에 대한 소개...(퍼온 글)

갈대밭의 대명사 같은 곳이다. 금강하구둑 변에 있는 이 곳은 하구둑이 생기기 전부터 오랜기간 조성된 갈대밭으로 금강의 침전물이 쌓이면서 갈대가 자랄 환경이 만들어진 반면, 범람의 위험으로 다른 농작물이 재배되지 않으면서 오로지 갈대로만 뒤덮인 곳이다.
하구둑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더 넓었을 것이지만, 하구둑이 만들어진 이후로는 폭이 200여미터 길이 1.5킬로미터로 약 10만평에 달하는 넓이이다. 우리나라의 4대 갈대밭이라고도 하고, 관광공사 선정 7대 갈대 명소이기도 하다.
강변을 따라 퍼져 있는 갈대밭은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소로도 자주 이용되는데, JSA에서 이수혁 병장역의 이병헌이 볼일을 보다가 지뢰를 밟은 상황에서 인민군 중사 오경필 역의 송강호와 맞닥뜨리는 갈대밭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 되었다. 또한,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무혁이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갈대밭 장면이 이곳이기도 하다.
갈대밭에는 다양한 구조물들도 있고, 갈대밭 사이로 오솔길도 있는데, 각종 싯귀가 적혀 있는 팻말부터 목구조 다리도 있고, 장승이나 솟대등을 볼 수 있다. 간이 매점도 있어서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강변쪽으로는 각종 철새들고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청둥오리, 고니등은 먼발치에서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보니, 철새 탐조로는 적당하지 않다. 갈대는 가을에 찾아야 제맛이지만, 다른 계절에도 나름대로 운치 있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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