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차, 로그로뇨에서 밴또사 가는 길 20km




수확하던 포도송이를 뚝 잘라 순례자에게 나누어준 고마운 농부, 꿀맛!


그라헤라 고개 옆 철조망, 순례자들은 이런 곳엔 어김없이 십자가를 만들어 놓는다.



산 후안 데 아끄레 순례자 숙소에서 옮겨온 순례자 장식으로 만들어진 공동묘지



밴또사의 숙소와 입구에 놓인 순례자들의 스틱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고, 또 어떤 분일까? 하나님은 저만치 먼 곳에 계시며 우리 삶에 목적이 되시고, 방향성이 되실 수도 있고, 우리 삶의 내용을 내려다보시며 선악 간 판단하시는 자리에 계실 수도 있다. 그런데 혹시 하나님이 지팡이와 같은 분은 아닐까. 매일 짚고 일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 디딜 때 나를 지탱해 주고, 내 힘을 덜어주는 지팡이(스틱). 마치 모세가 의지했던 그 지팡이, 양떼를 돌보던 목동 다윗의 손에 들린 지팡이, 힘겹게 순례의 길을 걸었던 수많은 순례자들의 손에 들렸던 그 지팡이가 아닐지. 

하나님은 앞서 가시는 것 같지만, 어느새 뒤서 있고, 또 너무 익숙하고 가까이 있어 없는 것 같은 그런 분. 숙소에 도착하면 불필요한 것처럼 문간에, 침대 밑에 놓이기도 하지만, 길떠나는 이의 손에 다시금 쥐어지는 막대기 길벗! 
까미노 8일차에 가장 고마운 존재가 뭐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스틱이라고 말한다. 이 스틱이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을까? 덕분에 나는 내일도 변함없이 걸을 거다. 그래서 순례자에겐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시23:4)는 정도가 아니라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201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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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억지로, 의무적으로 하는 것은 힘이 든다.
                                         무리다.
                                         버겁다.
                                         고통이다.
                                         긴장이다.
                                         어색하다.
                                         뻑뻑하다.

고수는 힘을 들이지 않는다.
도끼질을 할 때도, 톱질을 할 때도, 칼질을 할 때도, 관계를 할 때도.
힘으로 하려고 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터지고,
                           부러지고,
                           멍든다.


정말  강하면 약해 보이고,
        크면 작아 보이고,
        빠르면 느리게 보이고,
        깊으면 얕아 보이고,
        지혜로우면 어리석어 보인다.
하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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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부에서 아이들이 큐티를 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시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아이들 입에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신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이 두 문장이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시련을 주실까?
성경을 보면 그 대답을 얻을 수 있을까?
뭐 단련하신다고 할 수도 있고, 다 뜻이 있으셔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고,
좀 정성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약간은 미신적인 표현으로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봐도 인간들이 처한 상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정답은 찾을 수 없다.

성경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성경은 답안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인생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히 결론을 지을 수 없는 것이니
무 자르듯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다.
조급한 마음에 한 마디로 정의 할 수 없는 것인 것 같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정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유혹에 빠진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 그리스도인 삶, 신앙이라는 것,
고통, 시련, 시험이라고 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게 풀릴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성서는 오늘의 우리와 똑같이 그런 의문에 휩싸였던 이들의 긴 여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굴곡 많은 인생을 살며 그만큼 큰 의문을 품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씨름했던 이야기들을 전하는 책이다.
그래서 그들은 크신 하나님의 일부분에 접촉한다. 
그들이 그려내는 하나님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님에 대한 것은 모두 '알 수 없음'이고
그 분의 사랑만은 확실히 '알 수 있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모습을 추출해 낼 뿐이다.
시련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과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오늘 내가 그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원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서가 혹은 설교가 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으로 교인이 되고 교회에 오는 것도 문제일 수 있으나,
더 큰 문제는 그런 생각으로 설교하는 목회자들에게 있다.
자신이 접촉한 하나님의 모습을 절대화, 공식화해서
다수의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적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이미 하나님은 그 모습으로 계시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은 다른 모습,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시기 때문이다.

어쩌면 각자가 갖고 있는 삶이라는 것은 일생, 아니 그 이상을 통해 풀어 가야할,
또는 그 과정을 통해 풀려질 '나의 과제'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된다면 자신이 해결해야할 숙제를 엄마에게 부탁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꼴이 된다.
몇 번은 가능할 지 몰라도 그 습관이 계속된다면
그는 아마도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의 끄트머리만 좇으며 흉내내고,
연기하는 삶이 되고 말 것이다.

성서를 읽으며 그들의 부르짖음, 고뇌에 응답하셨던 하나님께서
나에게 또 어떻게 응답하실 지를 기대하는 삶,
그래서 늘 변화무쌍한 다양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인의 길을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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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예절
레22장
2 아론과 그의 아들에게 말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그 성물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오늘을 살아가며 레위기를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위 율법이라고 하는 것들, 특히 생활에 관한 것들이 아닌 제사와 관련된 것들이라면 더욱.
그러면서도 레위기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율법 하나하나를 이르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가 찾고 믿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 3천 년 전에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민족을 붙들어 놓고
꼼꼼하게 이르신 가르침이 바로 레위기이고 구약의 율법들이다.
그러니 때로 이게 뭐야? 하면서 치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다시금 붙잡고 씨름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해 진다.
'왜 하나님은 그 때, 왜 하나님은 그들에게, 왜 하나님은 이것을 중요하게 강조하셨을까?'라는 식의 물음들을 들고서 말이다.
그렇기에 평면적이고 문자적 접근보다는 입체적이고 의미적 접근을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 아닐까.

22장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무슨 결벽증 환자 같다(하나님, 표현을 용서해 주세요!).
눈에 띄는 단어들이 구별, 부정, 성물, 정결, 더럽히지, 속되게, 죄, 흠 등이기에 그렇다.
하나님께 바쳐졌던 성물을 먹는 문제와 바칠 제물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하나님과 식탁에 마주 앉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크신 하나님과 식탁에 마주 앉다니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 줄 그들은 알았을까?
예수님과 함께 만찬을 즐기며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보지 못했던 제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걸음마 단계를 막 지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똑바로 걸을 수 있도록 정도를 가르치고 계신 것이리라.
그러니 아무나 아무렇게나 참여할 수 있게 허용하실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격을 정하시고, 그들의 몸 상태까지 따져 묻도록 하시는 것이다.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겉모습 이야기를 하실 수밖에 없다.
사실은 마음이 없다면 겉모습도 제대로 갖추기 쉽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겉모습으로 그 속마음까지 판단해 버리는 세태이다.
각자의 다른 형편을 헤아려 보려하는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

레위기가 말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예절이 겉으로 만의 형식이 아닌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이 될 수만 있다면
그래서 마음이 통하는 일이 생긴다면
때로 겉모양이 조금 미흡해 지는 일이 있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진실된 믿음의 자세는 외모를 압도하는 정결함이 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식탁에 우리들을 초청하시며 바라시는 것이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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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이 아프고, 불편하다는 핑계로 다른 날보다 늦게 일어나고
하루 종일 닭에게 모이 주고, 개와 고양이들에게 저녁 주는 것 외에 하는 일 없이 보냈다.

지난번 벼 수확 품삯으로 햅쌀 40K를 받아왔다.
사실 그 날 이후로 손목이 아픈 거니까 그것까지 생각하면 조금은 부족한 품삯이지만
겨우 들어서 옮겨야 할 정도로 무거운 쌀을 받아 오면서
감사한 마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어찌 이것을 돈으로 환산 할 수 있겠는가?
대지의 생명이 담긴 소중한 양식인 것을...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적든 많든 한 해 농사의 수확들을 보면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작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리 수 십 년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도
농사와 관련된 최근의 과학적인 지식들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농사의 관건은 날씨, 햇빛과 비와 기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경험과 지식이 이런 것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겠지만
자연현상이 언제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오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단언하건데 농사는 하나님이 지으시는 것이다.
그저 사람은 씨 뿌리는 일, 돌보는 일, 거두는 일을 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꽃 피우시고, 결실케 하시고, 무르익게 하는 것이다.
나의 농사가 아니라 ‘그 분의 농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감나무에서 감들이 없어지고, 잎들이 떨어지고 나니 농가의 풍경이 좀 허전해지고 있다.
서리가 내리면서 푸르렀던 다른 나무들, 풀들의 잎들도 축 처져 검게, 누렇게 변하고 있다.
역할을 다한 그들이 쉼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리라.
내년에 다시 푸르름을 머금은 모습을 그려본다.

200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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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26. 20:38
친구 포도밭은 포도나무가 심겨진 줄이 긴 편이다.
그래서 어떤 작업을 하던 한 줄을 끝냈을 때 ‘와! 한 줄 끝냈다’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줄의 끝에 이르렀을 때 포도밭을 아래로 하고 하늘을 쳐다보면 그 광경이란...
마치 하나님이 포도나무들 위에 발을 딛고 계신 것 같다.
그래서 포도나무 사이사이는 어느새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된다.

포도나무의 하나님은 포도를 검붉게 익게 하는 하나님.
감나무의 하나님은 감을 노랗게 무르익게 하는 하나님.
참깨 밭의 하나님은 참깨를 영글게 하는 하나님.
감자 밭의 하나님은 감자를 알알이 맺게 하는 하나님.
고추 밭의 하나님은 고추를 빨갛게 익히시는 하나님.

나의 하나님은...

2005.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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