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하는 사람들이나 설교를 하는 사람들은 흔히 나의 강의(설교)를 통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잘)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내가 어떻게 하면 그들이 '이렇게'(자신의 생각대로) 될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 아닌 다른 사람, 혹은 자신이 속한 그룹 외의 다른 그룹을 대상화 타자화한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타자화 하고 있는데,
정말 타자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잘 생각해 보면 세상에 타자란 없다고 볼 수 있겠다.
왜냐면 모두 주체로서 존재하지 객체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독립된 존재로서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생산자요 소비자이다.
그러므로 일방적으로 나는 주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은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강의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감정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청중도 감정을 생산하고 있고, 당연히 강의자는 그것을 받고 있는 것이다.

늘 영향 받고 변화되어야 하는 것들을 자신 밖에서 찾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밖이, 타자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느낄 때 그 말은 이미 자신의 변화라는 말로 바꾸어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바꾸어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는 것만큼이나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타자화하는 것도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온통 촉각을 세우고 사는 삶이 그것이다.
변화의 에너지가 자신으로부터가 아닌 밖으로부터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삶이 너무도 피곤할 것이고, 옆에서 보기에 가엽기까지 하다.
언제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볼까?

누군가를 타자화하든, 나를 타자화하든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자타를 구분하지 말고 똑같은 '나'로 인식하는 태도라 하겠다.
모든 이들을 나로 인식하게 될 때, 삶이 좀 더 따듯해 질 것 같다.
상대방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며, 상대방의 허물을 나의 허물로 여길 뿐만 아니라
그의 기쁨도 함께 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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