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향유네가 포도를 따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상주에 내려오면서 기대하고 고대했던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전국에서 포도로 유명한 모동에 화학 농약(제초제, 살충제 등도 포함)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포도농사를 짓는 친구가 있기에.
다른 집의 포도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친구의 포도밭에서 볼 수 있다.
친환경 농약들을 최대한 사용하지만 잎들이 병에 노출되어 점이 보이거나 말라 떨어져 있는 모습이다.
다른 밭을 보면 전혀 그런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니 친구가 이런 저런 쉽지 않은 기간들을 보내며 결국 수확을 하게 되는 때란 정말 벅찬 감격의 때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수확을 시작한지 하루가 지나서 포도 수확에 합류 할 수 있게 됐다.
서 있기도 그렇고, 앉아서 하기도 그런 애매한 높이에 포도가 달려 있고,
무조건 따는 것이 아니라 봉투 아래쪽을 열어서 속을 확인하고 따야 하니 자세 잡기가 힘들었다.
허리를 숙이거나 컨테이너를 세워서 걸터앉은 상태에서 손을 머리 높이 보다 조금 높게 들고서는
봉투를 찢고 확인을 하고, 잘 익은 송이를 가위로 다르게 된다.
그러다 보니 팔, 목, 허리에서 신호가 온다.
친구는 조금만 익숙해지면 나아질 거란다.
그래 익숙해지면 한결 나아지겠지.
정말 시간이 지나면서 봉투를 찢는 것 하며, 자르는 것, 컨테이너에 담는 것에 익숙해졌다.
한마디로 요령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몸 곳곳이 얼얼하기는 했지만 내 몸에 맞는 적절한 자세를 잡아가니 무리가 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포도밭 주인들을 거의 따라가면서 포도를 딸 수 있을 정도까지 되었다.

익숙해진다는 것, 능숙해 진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할 때 생산성을 높이는 것 같다.
숙련공을 우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 말은 농사일을 한다든지, 기계를 다루는 일을 할 때는 맞는 말일 수 있겠지만,
사람과 관련된 일에서는 맞지 않는 말이 아닐까.
사람을 만나는 일에 익숙해 졌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상황에 맞는 태도를 능숙하게 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가 아닐까.
특히 교회에서 사역하게 될 때 이런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위험신호가 아닐까?
설교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찬양을 인도하는 일에 익숙해지고, 기도회를 인도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성도들을 만나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
과업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안에 본질인 하나님, 사람, 진정한 사랑과 관심은 자취를 감춰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한 명의 교회 기술자가 탄생한 것일 뿐이다.

익숙해진 그 것을 누리기보다는 본질에 대한 접근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결국 어떤 행동 속에 감추어진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지...

2005.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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