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김장용 무 밭을 만들고 씨를 넣었다.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열흘에서 보름은 늦은 파종이다.
풀을 뽑아 둔 밭에 좁은 이랑을 만들었는데,
비가 많이 온 후라 흙이 물을 머금고 있어서 삽으로 퍼 올리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물이 좀 빠진 다음에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 줄을 거의 다 해 갈 무렵에는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다는 각오도 생기고
탄력도 붙어서 짧지만 일곱 줄의 이랑을 완성했다.

밭에 오면서 돌이(발발이, ♂)를 억지로 데리고 왔는데,
이놈이 밭에 오면 심심해서 안절부절 못한다.
그래서 내가 쳐다보기만 해도 쪼르륵 달려오고,
아무 반응을 보여주지 않으면 다시 밭모퉁이 그늘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돌이가 움직이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이랑의 수가 늘어 감에 따라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삽으로 한 삽 정도 흙을 올려 만들어 가는 이랑이 짧은 다리의 돌이에게는 큰 장애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세 개, 네 개 자꾸 늘어 가서 돌이에게는 고개를 여러 개를 넘어야 오갈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측은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흙을 쌓아서 이랑을 만들고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옮겨가는 일이 나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데,
이 작은 놈에게는 장애가 되고, 장벽이 되다니...

잠시 삽자루에 앉아 쉬면서 돌이를 바라보며 나를 반성하게 됐다.
나의 사려 깊지 않은 말과 행동, 무심코 지나쳐버리며 별 것 아니라고 여기는 것들이
어쩌면 누군가 작은이에게 괴로움과 아픔이 되고 있지는 않을지...

2005.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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