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할머니께서 벼 추수할 때 좀 도와줄 수 있냐고 해서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했다.
들의 벼들이 노랗게 익은 모습을 보면서 언제 부르시려나 했는데,
드디어 그 날이 오늘로 결정이 되었다.

뭐 잠깐, 길면 두 시간이요, 짧으면 한 시간 정도 간단히 끝나는 작업이려니 했다.
여기서부터 크게 오해가 있었던 것!
농촌 일이 어디 간단히, 힘 안들이고 끝나는 일이 있던가?
그런 일이면 나를 부르지도 않지.
화물차를 끌고 가서 콤바인으로 구분한 나락들을 40킬로 부대에 담아 놓은 것을 싣고
할머니 댁으로 와서 부려놓고, 또 오가기를 몇 차례하고,
그리고 30여 부대는 수매하기위해 추풍령으로 갔다.
난생처음 벼 수매하는 곳에 갔는데 그 풍경이란...
마당이 화물차, 경운기, 심지어 화물칸을 매단 트랙터들로 가득했다.
83번 순서표를 받아서는 순서가 될 때가지 장장 5시간을 더 기다려야했다.

일단 농부의 역할은 여기까지이지만
시멘트 공장을 방불케 하는 내부 구조를 가진 벼 수매장의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수매하면서 이미 분리가 시작되어 건조시키고 탈곡하고, 포장해서 매장에 내는 일까지.
그러면 그 때부터의 일은 소비자들의 몫이 되는 것이다.

쌀 한 톨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몇 명의 손을 거치는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무엇인들 쉽게 만들어져 나에게까지 오겠는가마는
비교적 농산물에 대한 생각들은 실제 그 가치에 상당히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생각들 끝에 자신들의 역할을 끝낸 사람들인 농부들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해를 거듭할수록 뭔가 나아지고, 희망이 있어야 할 텐데
수매가가 계속 곤두박질이니 뭐 할 맛이 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나이들도 더 먹어 가는데 당신들이 하는 일을 이어갈 사람도 또 보이지 않으니.
박통이나 전통을 추억하는 것을 들으며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할 수만도 없었다.

200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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