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역동력에 따르는 농법에 의하면 오늘은 무엇이든 심어서는 안되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지고 온 모종을 고이 모셔놓고,
오늘은 고민 끝에 고추밭에 비닐을 씌웠다.
사실 귀농을 해서 유기농 비슷하게 농사를 지어보겠다는 사람들에게 비닐은 딜레마 중의 하나다.
수확량에 확연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씌우지 않는다는 것이 쉽지 않는 결정이고,
씌운다면 비닐의 사후 처리에서 환경오염 문제에 걸리는 부분이다.
특히 다른 작물은 몰라도 고추는 열대성이라서 비닐을 씌우면 지열을 잡아줘서 더 좋다고 한다.
그래서 고민을 했고, 결국 먼저 사시던 할머니께서 두고 가신 비닐이 있어서
세 식구가 협동하여 작업을 마쳤다.
겨우 이 정도 하는데도 '쉽지 않네'하는 소리가 나왔는데,
몇 천 주를 심는 밭의 작업은 얼마나 될지 상상이 안 간다.
참고로 위의 비닐은 고추보다는 싹이 뜨는 것을 보아야 하는, 예를 들어 참깨 같은 작물에 적당하단다.
고추를 위해서는 전부 검은 비닐이 좋다고...

2005.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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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화서에 계신 귀농선배님께서 고추모종을 주시겠다고 해서
너무 감사해서 일손을 조금 도와드렸다.
서투른 일꾼에게 일을 맡기신 것에 감사하고,
고추모종을 선뜻 주신 것에 감사했다.

2005.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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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경운기, 관리기 사용해서 골도 타고 이랑도 만드는데,
이 초보 농사꾼은 삽밖에 쓸줄 아는 것이 없어서
온 종일 삽으로 고랑파고, 이랑 만들었다네.
저녁에 들어와서야 그 날 상주가 전국에서 제일 더웠다고...ㅎㅎ
아무튼 산맥을 다섯개 만든 것 같은 뿌듯함이...

200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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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싶을 때 앞뒷 뜰에서 작은 싹들이 나오길래
무슨 잡초인가 했는데 아 글쎄 더덕이라고 하네요.
줄기에서도 얼마나 향이 강하게 나던지.
몇 년 뒤에 오시는 분은 더덕 큰 놈으로 한 뿌리 드리죠.

200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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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족한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16. 19:50
지난 주일부터 시작해서 토요일까지 한시뿌리기 사역을 다녀왔다.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으로 작정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도시에서 살았다면 훌쩍 떠나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농촌의 특성상, 특히 요즘 우리 집에는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일주일이나 집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 여러모로 부담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한 것이기도 하고,
농사라는 것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좀 다른 땀 흘림의 장으로 이동했다.

이번 여름뿌리기사역에 있어서 나의 사역은 단연 트럭사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주된 모임 장소와 주방이 멀고, 잔치하는 곳과도 좀 떨어져 있어서
짐들을 사람들이 들고 나를 수가 없기에
내가 가지고 간 트럭이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주방의 물품들을 나르고, 천막들과 음향시스템들을 나르고, 양조장에서 먹을 물 받아 오고,
쓰레기를 치우는데도 아주 효과적이었다.
특히 장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까운 진(한 마을을 담당하는 사역의 최소단위, 약 10명으로 구성됨)의 진원들을 화물칸에 태우고 이동하는 것 까지 해야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다른 진의 진원들이 트럭을 타는 진을 부러워했단다.
사실 승합차에 타면 덥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데,
트럭의 화물칸은 탁 트여서 시원하기도 하고, 둘러앉아서 이야기 나누기도 좋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 사역에서도 변함없이
선발대와 차량배차를 담당했는데
아무래도 횟수를 더할수록 요령만 느는 것 같다.
특히 차량배차는 내 말이지만 ‘아나운서’처럼 본부에서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주면
그것을 들고 조금 수정해서 발표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차량이 어르신들을 모시고 들고 날 때야 어느 마을로 갈 것인지 정해주는 것은 내가 했지만,
아무튼 2%부족한 사역자였다.

무엇보다 참 좋은 사람들을 집중해서 만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자신들의 몸이 더러워지는 것쯤은 개의치 않고 몸 던지는 사람들.
땀과 비에 몸이 젖지만 그것을 장애로 여기지 않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
자신의 몸의 자연스러운 욕구들을 무시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물론 뿌리기사역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에서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일주일의 구별된 시간, 삶을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크지 않을까?

2005.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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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프랭클린 플래너(이하 플래너)를 꼼꼼하게 쓰고 있지 않다.
성실하게 채워나갈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소중한 것들을 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말하지만 매일 기록하지는 않지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을 잊지 않는 사람이라면 굳이 플래너를 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난 플래너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쓰면서
정작 그 안에 하겠다고 기록한 소중한 일은 하지 않고 지나가 버리는 때가 더 많았다.
문제는 습관화에 있다.

그래서 이미 수없이 기록해왔던 소중한 일을 우선적으로 습관들이는 일을 하기로 했다.
플래너에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로 하기로 하고서.

요즘 난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모자 눌러쓰고 자전거를 타고 대문을 나선다.
그리고는 패달을 밝으며 목적지를 정한다.
백화산 계곡에 가서 세수만 하고 올까,
중모초등학교까지 가서 운동장을 돌고 올까,
모동면까지 갔다 올까,
좀 더 멀리 가보는 것은 어떨까...하고.
일단 백화산 계곡에 가서 시원한 물에 발 담그고 세수하는 것은 고정 코스로 하고
조금씩 더 멀리까지 가보는 쪽으로 하려고 한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성경과 필기도구를 챙겨서 나간다.
잠시 앉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성경 몇 장을 읽고, 생각들을 기록한다.

이렇게 하면 세 개의 소중한 일,
규칙적인 기상과 운동과 성경묵상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할 일들을 생각하고 하나하나 중요도에 따른 우선순위대로 해간다.

2005.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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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16. 19:46
사랑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은 보고 또 보고
무엇인가 해 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리라.

작물도 동물도 또한 그러하다.
자주 가서 보고, 필요한 것들을 제때에 해주지 않으면 분명 무슨 일이 생기고 만다.

고추밭이 바로 집 옆에 있지만,
근래에 담 너머로만 흘깃 쳐다보고는 ‘괜찮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고추나무 사이로 들어가서 보니 풀도 많이 자랐고,
잦은 비에 커진 가지를 바로 세우지 못해 꺾여 있는 놈들도 많았다.
좀 더 일찍 줄도 더 매어주고, 풀도 매주어야 했던 것이다.
몇 개의 가지는 아예 부러져서 고추만 따서 바로 식탁으로 보냈지만,
다 먹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토리(삽살개, ♂)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소리(풍산개, ♀)에 비해 벼룩이나 진드기가 더 많은 것도 아닌데,
아마도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나와서 짖어대서 그런지,
온 몸이 벌레 물린 흔적에, 쉴 새 없이 긁어 대는 바람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털도 듬성듬성 빠져있었다.
어제까지 몰랐다.
근래에 더 심해진 탓도 있지만
밥만 가져다주고, 똥 치워주면서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털갈이를 심하게 하는 구나 정도로 밖에는
그런데 정말 심각한 몰골을 보고서는 소름도 끼치고, 불쌍하기도 했다.
그래서 목욕을 시키고 몸에 약을 뿌려 주었는데
털이 검어서 벼룩도 잘 보이지 않고,
여전히 쉴 새 없이 긁어대니 나을까싶다.

보지 않으면 뭘 해줘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러기에 더 보려하지 않게 된다.
자주 보면 애정이 생기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생각이나 말만이 아닌 사랑 담긴 행동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2005.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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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옮겨 심는 일이 끝난 우리 집은
요즘 밭뿐만 아니라 집 주변의 풀들과 한판 전쟁을 치르고 있다.
손쉽게 제초제를 뿌리면 간단하게 끝나겠지만,
잠깐의 편리를 위해 땅을 죽이고, 생태계를 죽이고, 결국 사람을 죽게 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미련해 보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호미를 들고 달려드는 것이다.

낫으로 처낼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뿌리까지 제거하는 것이 더 낫기에 손으로 뽑고 잘 안되면 호미의 도움을 받는다.
풀들 중에 지독한 것이 뿌리로 번식하는 놈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쑥이다.
줄기에 붙어 뿌리까지 나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뿌리가 땅 속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뽑아내도 또다시 싹을 띄우고 땅위로 올라온다.
그러니 이런 놈들은 ‘뿌리를 뽑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대개의 작물들은 일단 줄기에 달려있는 뿌리가 나오면 뽑힌 것이다.
쑥처럼 뿌리를 뻗혀서 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작물이 있다면 농사짓기가 쉬울 것 같다.

내 안에 못된 습관들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지.
일견 뿌리가 뽑힌 것 같지만 잠시 긴장을 늦춘 사이 또다시 싹을 돋우니.
인내심을 가지고 주변을 파고 또 파야 어느 정도 뿌리들을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미처 찾지 못한 뿌리들은 여전히 기회를 엿보고 있다.

2005.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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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말 땀을 흘리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집 안으로 밀려드는 후덥지근함.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기 싫었다.
하지만 내가 뭘 하기 위해 여기 있는가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미 밭으로 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날씨 탓을 하며 집 안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주섬주섬 작업복을 챙겨 입었다.
요즘 우리 집의 주된 일은 제초작업(풀뽑기)이기에 긴 팔 옷을 입었다.
풀숲을 헤치고 나가려면 모기들을 생각지 않을 수 없으니.

작업장은 토방 앞, 그러니까 고추밭 옆이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이미 숲이 되어버려 누가 와도 이곳으로 안내하기가 어렵게 된지 오래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늘 마음에 걸리는 곳이기도 했기에 오늘 작심을 하고 결판을 내기로 했다.

달려들어 작업을 시작하는데,
들고 간 낫도 옆에 던져두고 두 손으로 뽑기 시작했다.
낫으로 베는 것 보다는 할 수만 있다면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고,
다행히 비가 많이 온 후라 잘 뽑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상했던 대로 더위였다.
푹푹 찌는 날씨에 풀숲을 마주하고 앉아서 힘을 다해 뽑고 있으니.
흐르기 시작한 땀이 온 몸을 적시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초반에 짜증은 차츰 사라지고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 이게 정말 ‘시원하다’라는 것이구나!’
땀으로 온 몸을 적시며 느끼는 시원함, 그 시원함은 금방 행복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찬물로 샤워를 했을 때도 이런 시원함을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옷이 척척 몸에 달라붙었지만 전혀 불쾌하지 않고 신바람까지 났으니,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신기하다.

할 수만 있다면 땀 흘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나의 천성적 게으름은 그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오늘 내 몸은 땀 흘림의 시원함을 경험하고 말았다.
그래서...

2005.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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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캠프를 하면서 첫째 날 저녁 마지막 프로그램이 산상수훈을 조원들이 나누어 쓰는 것이었다.
좀 무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돌아다니는 몇 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참여해 일단 안심을 했다.
그런데 10시가 다 되어갈 때 한두 조 정도가 마무리를 하고 있어서 미완성으로 마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여러분 이제 끝낼까요? 아니면 끝장을 볼까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거의 모두가 일제히 ‘끝장을 봐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정말 시간을 조금 더 오버해서 끝장을 보는 조가 더 많아졌다.

끝장을 보자는 아이들의 외침.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기특하기도 하고,
요즘 아이들이 나약하다고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강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난 끝장을 보기보다는 분위기에 따라 끝내버리는 스타일이었는데.

2005.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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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16. 19:41
아침에 방 청소를 하는데 이름 모를 벌레들의 시체(?)가 섞여 나왔다.
서울에 살 때는 보지도 못하던 놈들이다.
어머니도 쥐며느리 비슷한 놈을 발견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처리를 하셨다.

이런 것들을 발견하며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꼭 그럴 일도 아닌 것 같다.
보다 다양한 개체들이 살 수 있는 곳이라면
사람도 살기에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
물론 습하거나, 건조한 곳에서 잘 살아가는 벌레들도 있겠지만
극단적인 것만 아니라면
적당한 동거는 가능할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다른 개체로부터 분리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그래서 이룩한 문명의 이기들이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을 해롭게 하고 있다.
오히려 그들에게 다가가서 공존의 삶을 선택한다면,
사람에게도 유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005.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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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내려오면서 한 가지 놀란 부분이 있는데
이웃집들을 가보면 마당을 콘크리트로 포장을 해버린 것이다.
포장을 하더라도 일부만 하고 흙을 살렸으면 좋겠는데 흙은 전혀 보이지 않게 덮어 버린 집도 있다.
그것도 조금 여유가 있는 집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비가 오면 흙바닥이 질어져서 그런가?
아니면 잡풀이 나는 것이 싫어서 그런 것인가?
아무튼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개를 키우면서도 그렇다.
바닥을 콘크리트로 포장을 하고 거기에 말뚝하나 박고, 개집을 올려놓는다.
똥을 치우고 물로 청소하기도 좋고, 깨끗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냄새다.
물로 청소를 하는 일도 번거롭거니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오줌은 스며들기 마련이고 은근하게 악취를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장이 있는 주위에서는 역겨운 악취가 심하게 풍긴다.
그런데 그냥 흙바닥에 개를 기르면 한결 악취가 덜하다.
똥은 치우지만 오줌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데도 말이다.
내 생각에 아마도 흙에 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흙이 개의 배설물들을 처리해서 흙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흙이 포함하고 있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 콘크리트는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고 축적해 버리니까 악취가 나는 것이리라.

흙은 살아 있고, 콘크리트는 죽었다.
살아 있는 땅은 살리는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콘크리트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넓혀 갈 뿐이다.

내가 밟고 서 있는 곳은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2005.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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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간 서울, 아니 양수리를 다녀왔다.
차를 황간역 앞에 주차해 놓고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가 버스타고 다시 내려왔다.
이전까지는 황간과 서울을 오가는 버스가 40분 간격으로 있었는데,
몇 일 전에 세 번으로 줄어들었단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덕분에 발생한 일이다.
처음에는 모서면에 있는 터미널의 버스가 하루 세 번으로 줄어들고,
이제는 황간까지 세 번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미 기차는 KTX가 운행을 시작하면서 무궁화호가 하루 세 번만 다닌다.
아무튼 세 번이 최후의 보루인 샘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KTX가 생겨서 전국이 몇 시간의 생활권으로 바뀌었고,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내륙의 교통에 획기적인 전기가 열렸는데,
실상 이 곳은 더 열악해 지고 말았다.
일이 있어서 서울이나 다른 곳을 가더라도 몇 편 되지 않는 버스나 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야 하고,
조금만 시간을 잘못 맞추면 대전으로 가서 한참을 기다려 차를 갈아타고 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속도가 빨라지면 자주 멈출 수 없고,
길이 잘 뚤리면 옛 정거장은 잊혀지게 되는 법인가 보다.

개발을 통해 주목받는 곳이 생기면 소외되는 지역은 그 몇 배가 된다.
그 개발주의자들의 기치였던 ‘속도’는 이들에게 오히려 저만치 남의 일이 되어버린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군가 빼어난 능력을 발휘해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은
결국 그의 몇 배의 사람들이 그의 그늘 아래 머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귀함을 발견하고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너무 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마음 쓰는 일을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가까이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작아 보이는 존재까지도 사랑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
시선을 너무 빨리 돌려서 그 누군가의 존재를 놓쳐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2005.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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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고추모종을 주셨던 선배님께서 팥 모종을 주셔서 밭에다 옮겨 심었다.
아버지께서 거의 매일 오셔서 풀을 맨 밭인데도 조금만 방심하면 풀이 잔뜩 자라니
모종을 심는 것인지, 풀을 뽑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모종 하나를 심으려면 대충 열 개 이상의 풀을 뽑아야 하는 것 같다.
그러니 진도도 안 나가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다리만 아프다.
하도 느리게 하고 있으니 멀리서 들깨 모종을 심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오셔서 신속하게 풀을 매주셨다.
하여간 4개월여의 기간 동안 아버지는 풀매는 데는 전문가가 되신 것 같다.
제초제 사용하지 않고 이만한 넓이에 밭을 일굴 수 있는 것은 모두 그 덕이다.

이 뽑혀야 하는 풀들을 잡초라고 불리는 것은 사람 중심의 사고이긴 하지만
이놈들이 얼마나 번식력이 좋은지 모른다.
반대로 작물들은 관리해 주지 않으면 잘 자라지도 못하고,
풀들한테 기선제압을 당하면 속수무책이다.

어쩌면 우리의 영혼과도 비슷하다.
정말 좋은 어떤 것을 옮겨 넣으려고 하면
그 안에 이미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오류와 편견, 오만 같은 그릇된 것들을 뽑아내지 않고는 안 된다.
그리고 그 놈들은 번식력도 좋아서 관리해 주지 않아도 우리의 영혼을 잠식해 버린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아무 열매도 얻을 수 없는 잡초 가득한 황폐한 땅이 되어 버린다.
영혼을 가꾸고 관리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부지런히...

2005.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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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화장실에 똥을 펐다.
장마가 오기 전에 해치워버리려 했는데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가슴을 조리다가(?)
오늘 날이 좋아서 드디어 작전에 들어갔다.
먼저 사시던 분들이 사용했던 똥바가지를 수선하고,
퍼 나를 통도 준비하고,
똥을 넣을 구덩이도 파고,
왕겨도 잔뜩 뿌려놓고서.

막상 푸기 시작을 하니 좁은 공간인데다
냄새를 참으며 하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용변 후 왕겨를 뿌려왔기 때문에 심한 악취는 나지 않았다.
암모니아 냄새가 좀 났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쏟지 않으려, 몸에 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는데,
한 번 두 번 오갈 때마다 점점 뚝뚝 떨어지는 횟수도 늘고
급기야 언제 묻었는지 옷에도 똥 자국들이 늘어갔다.

대여섯 번 오가고 나서야 끝이 났다.
막판에 똥바가지가 망가지는 바람에 물바가지를 가져다 사용했는데 본 사람은 없다.ㅋㅋ
그래서 바가지, 똥 담았던 통, 똥이 흘러 넘쳐 똥 범벅이 된 손수레를 물로 깨끗이 씻었다.
똥 묻은 옷도 벗어 버리고 몸도 씻었다.
겨우 두 시간 여 했을 뿐인데 진이 빠진 것 같다.

똥을 푸면서 똥을 묻히지 않을 수 있을까?
매일 똥을 배설하면서 똥이 더럽다고 멀리 하는 사람들.
섬김과 봉사를 떠들며 실제 바로 자기 주변에 있는 이들을 섬기지 못하는 사람들.
똥을 푸면서 똥을 묻히지 않는 정말 고상한 사람들이다.

.
.
.
요즘 내가 왜이리 억지를 쓰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하다보면 건질만한 것이 나오겠지...^^;

2005.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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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후배가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앞에 앉아 있는 선배에게
“형! 맛없어서 못 먹겠어요” 했다.
그랬더니 그 선배 하는 말 “야 그냥 집어넣어 둬”하더란다.
참 재미있어서 생각할 때마다 웃는다.
물론 정말 맛없는 학교 밥을 생각하면 답답하지만...

먹는 것과 집어넣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짐승들에게 아침저녁으로 먹이를 주다보면
먹는 놈이 있고 집어넣는 놈이 있다.
비슷하기는 하지만 차이를 찾는다면 소리(♀, 풍산개)는 천천히 맛을 느끼면서 먹는 것 같고,
토리(♂, 삽삽개)는 정신없이 입으로 집어넣는다.
닭과 오리를 비교하면 닭은 부리 구조상 물이든 모이든 조금씩 먹는 반면
오리는 넓은 부리(주둥이라고 해야 하나?)로 게걸스럽게 집어넣는다.
고양이는 특히 맛에 민감하다.
비린 생선이나 고기를 넣어주면 특유의 소리를 내며 먹는다.
먹이 주고 물주고 정신이 없지만 이놈들 관찰하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사람은 먹는 것인가, 아니면 집어넣는 것인가?
당연히 먹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 먹는 것,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을 빙자해
방방곡곡 식당이 없는 곳이 없고,
또 그 오염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그 뿐인가 맛있는 먹거리를 위해 지불되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호텔에서 먹든 분식집에서 먹든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지는 것을.

음식의 맛보다는 음식을 대하는 멋이 더 필요하다.

나도 너무 맛만 찾지 말고
에너지 보충을 위해 집어넣어야겠다.

2005.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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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강아지 한 마리로 시작해 이제 우리 집에는 개 세 마리, 닭 여섯 마리, 오리 두 마리에
몇일 전에 고양이 한 마리까지 더해 졌다.
아침저녁으로 이놈들 먹이 주는 일도 중요한 일과다.
고양이와 강아지 한 마리만 풀어 놓고 기르고,
나머지는 묶어 놓거나 가둬서 기른다.
그러다 보니 농부의 손길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먹을 것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똥을 치우는 일도 필수적인 일들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똥을 누고 밟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심지어는 먹기까지 한다.
사람이 보기에 똥은 그 성분을 떠나서 더러운 것이다.
더러운 것이기에 깨끗하게 치워버려야 한다.

깨끗하게!

‘깨끗하다, 더럽다’를 말하는 것은 사람뿐이 아닐까.
짐승들은 전혀 그런 부분을 개의치 않는다.
몸에 묻어도 그것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아무튼 사람도 적당히 더러운 것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일부러 더럽게 살 필요는 없지만,
깨끗하기 위해 너무 애쓸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이 조금은 더 단순해 질 수 있을 것이고,
삶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깨끗해질 때 어딘가는 더러워지고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가 더럽다고 말하는 것들이 정말 더러운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하지만,
소위 더럽다고 말하는 것들을 보는 것, 만지는 것, 걸치는 것, 먹는 것을 조금씩 늘려가자.

2005.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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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 제자들.
바람이 불고 높은 파도가 치며 풍랑이 일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풍랑을 해쳐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결국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워 살려달라고 부탁을 드리는 마지막 선택을 했다.
다음 순간 그 험악했던 바다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잔잔해 졌다.
그런데 이 가운데 예수님은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는 책망의 말씀을 하셨다.

아무튼 이 이야기를 두고 제자들이 간구하여 풍랑이 잔잔케 된 것처럼
간절히 기도하면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종종 들었던 것 같다.
맞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생이라는 것이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고,
때때로 풍랑이 일어 고생을 하지만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 구함으로 해결함을 받을 수 있다는...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면 몇 가지 질문이 가능하다.
예수님이 타고 계신 배가 과연 가라앉았을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워서 간청했기 때문에 풍랑이 잔잔해 지고 그들이 살아난 것인가?
예수님은 살려달라고 불렀던 제자들을 칭찬하시기는커녕 책망하셨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기적 같은 일을 하시면서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풍랑을 명하여 잠잠하게 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자들의 바른 자세는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시간을 견뎌 냈어야 하는 것이다.

풍랑은 잔잔해지지 말았어야 했다.

나의 삶에도 작든 크든 풍랑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면 잠잠해지는 기적이 없더라도
배가 침몰해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풍랑은 잔잔해지지 말았어야 했다.

2005.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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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간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16. 19:30
소리와 토리가 저녁을 먹고 나서 아직 날이 어두워지지 않았을 때,
둘은 자유 시간을 얻게 된다.
마음 놓고 뛰어다닐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것이다.

평소 얌전하기만 하던 소리는 얼마나 힘 있게 마당을 뛰어다니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토리는 소리를 쫓아다니면서 같이 놀자고 들러붙는다.
내 주변을 맴돌면서 번쩍 번쩍 뛰어 오를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닭장 앞에도 가보고, 장독대 위에도 올라가 보고
짧게 주어지는 자유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풀어놓고 키울 수도 있겠지만 소리는 이제 덩치도 있고
짖을 때는 처음 보는 사람들은 겁이 날 정도다.
그러니 나가서 무슨 사고라도 치면 안 되는 일이다.

개들은 묶여 있는 것이 더 이롭다.
사람들에게도 그렇지만 자신들에게는 더 그렇다.
먹이도 제때 받아먹을 수 있고, 똥도 사람들이 깨끗하게 치워준다.
최소한 겉보기에는 그렇다는 얘기다.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손쉽게 ‘자유’라는 말을 내 뱉지만
사실 늘 자유롭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한다.
누구도 나를 잡아 매 놓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무언가에 묶여서 그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유...
소리와 토리에게 자유시간을 좀 더 주어야겠다.

*소리-풍산개♀, 토리-삽살개♂

2005.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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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계속 온다.
어제 밤부터 쉬지 않고...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와주기를 바랬다.
메마른 대지를 위해서도 그렇고,
실은 좀 방에 쳐 박혀 있고 싶은 소망에서도 그랬다.
대부분의 농부들은 비가 오더라도 쉬는 날은 아니다.
논 물고도 봐야 하고, 뒷집 형처럼 비를 맞으면서도 제초작업은 한다.
그러나 나 같이 농사 흉내만 내고 있는 사람은 별 일이 없다.
단, 아침부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고추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비를 맞으면서까지 나가서 줄을 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오고, 날도 어두워져 가니 좀 걱정이 된다.
고추가 기절하다 못해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쩔까 해서.

때로 학수고대하여 그 일이 실현이 되면
막상 그 현실이 지루해질 때가 있다.
변덕스런 이놈의 인생에게 인지상정이겠지만.
지금이 그렇다.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겠다.
닭장에도 비가 그만 뿌리쳤으면 좋겠고,
소리와 토리에게도 비 걱정 않고 풀어놓아 자유 시간을 주고 싶다.
그리고 고추나 허브도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장마는 어찌 날지...)

비오는 날,
난 집안에 틀어박혀서 대나무로 이것저것을 뚝딱뚝딱 만들었다.

2005.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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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2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16. 19:28
오늘도 속리산을 넘어 괴산에 가서 노가다를 했다.
구조물을 철거한 옥상에 방수를 하고,
대문 옆에 흐르는 수로를 콘크리트로 덮는 작업을 했다.
지난번에는 혼자서 작업을 하는 것이라 내 페이스를 따라서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집 주인 아저씨와 목수 한 분이 함께 하셔서 그 분들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중에는 마치 천 미터 달리기를 하고 들어왔을 때의 그런 상태까지 가게 되어
쪼그리고 앉아서 50대 아저씨들이 일하는 모습을 뻔히 보고 있을 때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허약한가 하면서도
그냥 서 있어도 힘든 땡볕아래서 장시간 긴 붓으로 방수액을 바르고,
이런 저런 것들을 들어 나르는 일은 힘이 안 들면 이상한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소위 말해 노가다로 잔뼈가 굵은 분들은 힘 조절을 하면서 넉넉하게 일을 해 가는 것 같다.
나 같은 초보 노가다 꾼은 어디에 어떻게 힘을 줘야하는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맬 수밖에 없었다.

강단에서 설교하면서 땀에 대해서나, 일에 대해서 너무 쉽게 말했던 것 같다.
어쩌면 ‘잘 모르니’ 함부로 말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인아저씨는
‘이런 일도 해 봐야 돼, 그래야 두려움이 없어지거든!’ 하셨다.
맞다.
어떤 일이든 한 번 몸으로 해보면 다음에 해야 할 때 작업에 대한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들을 때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이런 분들과 함께 어울려 일하는데 장애가 많다.
이제껏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 왔기 때문일 거다.
교회에서 말하는 실천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이 실천인가?
실천은 바로 이들의 말을 듣는 것,
그래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닐지.
전혀 다는 세계에 살면서 잠시 한 발짝 들여 놓았다가 서둘러 빼버리는 것이 실천은 아닐 것 같다.
교회 밖에 관심을 가져야하는데 교회 안으로도 충분히 정신이 없다.

오늘 함께 일했던 목수 아저씨는 장로님이라고 했다.
난 그 분에게 내가 전도사라고 말씀드리지 못했다.

2005.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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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은 더 이상 홀로 살 수 없게 된 것 같다.
그것들을 돌봐주는 누군가, 바로 사람이 필요하다.
물론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것들도 있지만,
그것들의 몰골은 개의 그것이 아니다(사람의 입장에서 그렇겠지만).

아무튼 개만큼 사람에게 가까운 짐승은 없다.
사람에게 개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나 다름없다.
여러 측면에서 인생에 참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뿐만 아니라 닭이나 오리, 소 같은 것들도 서로에게 의존하여 생활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과 사람들은 오랜 시간 공생하며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고받았다.

반면에 참 아름답게 보이지만 재앙이 되어 버리는 관계가 있으니
다름 아니라 개미와 진디물의 공생이다.
개미는 진디물을 마치 가축과도 같이 사육을 한다.
적당한 곳에 옮겨 주고 그것들의 분비물을 받아 간다.
여기까지는 아주 신기하기도 하고 관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이 개미가 진디물을 고추 잎이나 오이 잎에 옮겨 놓았을 때,
마냥 들여다보고만 있다가는 참담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작물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비실비실 죽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농약(흙살림에서 나온 친환경 농약)을 물에 타야한다.
그리고 열심히 진디물이 있는 곳, 있을 만한 곳, 번질 가능성이 있는 곳에 구석구석 뿌려준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사람과 개, 개미와 진디물이 같지만
한 쪽은 긍정이지만 한 쪽은 부정이다.

이미 생태계 순환의 고리를 끊고 절대자가 되어버린 사람에게
다른 어떤 존재와의 진정한 공생은 가능한 것인가?

2005.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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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 황간 장에서 병아리 일곱 마리와 오리 두 마리를 구입했다.
일단은 컨테이너로 덮어 놓고 물과 모이를 넣어주었다.

닭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닭장도 지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소리를 내고 있으니 당장 급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서둘러 꼬박 이틀을 닭장 짓는데 투자하게 되었다.

오자마자 오리 한 마리가 죽고,
닭도 한 마리가 비틀비틀하더니 이틀만에 죽고 말았다.
그래서 모두 합해 여덟마리가 남았다.

사실은 어미 닭이 품어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를 기르고 싶었다.
부화기에서 깬 병아리는 후에 알을 낳아도 품지 않는다고 한다.
알을 먹거나, 닭을 잡아서 고기를 먹는 것은 동일하지만,
이 병아리들로는 다음 세대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생명은 있는 것이지만 생명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인간들이 인간들만을 위해서 손을 대면 그 안에 생명이 소멸되어 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점이 없지만
그것들은 한 번으로 끝나버린다.

짐승뿐만 아니다.
우리가 먹는 곡식, 채소 들 역시 채종(seed gathering)은 거의 되지 않는다.
해마다 종자를 구입해서 심어야 한다.

인간의 눈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게 자란 작물은 다음 세대로 자신의 생명을 전하지 못하는 운명이다.

우리가 먹는 것들이 거의 이런 상황이다.
생명력이 활발한 것을 먹어도 부족한 현대인들이
마치 자신들과 같이 생명력 없이 겉만 번드르르한 먹거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작고 볼품 없더라도, 혹 맛이 좀 덜하더라도 생명력을 가진 것을 귀하게 여길 수 있었으면...

2005.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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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을 자전거를 타고 지날 때 생각한다.
길을 벗어나서 개천이나 논에 빠졌을 때의 상황을...

그런데 오늘 그 일이 현실이 됐다.
향유네와 저녁을 먹으려고 7시 경 향유네 포도밭으로 가려고 집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출발을 했는데 앞에 달린 바구니가 좀 돌아가 있어서 바로 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 자전거의 방향이 한쪽으로 쏠리더니
그만 바로 옆 논으로 ‘어! 어! 어!’ 소리와 함께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 논은 길에서 한참 아래에 있는 논이다.
지난주에 모네기를 해서 모가 자그마하게 심겨져 있고,
물이 차 있으니 바닥은 늪과 같은 상태였다.

정신없이 몸을 일으켜서 자전거를 당겨서 끌고 반대편으로 나왔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창피함은 덜 했지만,
그 황당함이란 말로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서둘러 집으로 달려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경이 없네!’
곧바로 어머니는 논으로 달려가셔서 소리치신다.
‘민태야, 장화신고 와!’
달려가서 내가 떨어졌던 곳에 반쯤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안경을 발견하고
내가 어떻게 빠져나왔을 까 싶은 논바닥을 겨우 걸어가서 꺼내왔다.

신발도 옷도 자전거도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그리고 내 마음도 과장을 조금하면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보면
약한 모습만 보이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앞으로는 쓸데 없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겠다.
괜실히 그 것이 현실이 되어버리면 크게 낭패를 보게 되니 말이다.
아무튼 오늘은 경험해보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경험해 본 날이다.

2005.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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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15. 15:50
지난 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소위 말하는 노가다라는 것을 했다.
귀농학교 동기 중에 괴산에 사시는 분이 집에 일거리가 있다고 하셔서 어떨 결에 가게 되었다.
일은 옥상에 설치되어 있는 비닐하우스를 뜯어내고
파이프들을 견고하게 부착시키려고 사용한 시멘트 블록을 떼어내는 작업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손쉽게 해치울 수 있는 일거리 같았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게 정말 노가다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기술자들은 정해진 어떤 일을 한다.
하지만 밑에서 잡부(일본어로 시다라고 하던가?)는 기술자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어떤 일이든 하게 된다.
바로 그것이 노가다이다.
우리는 주로 집을 짓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노동일을 한다고 하거나 노가다를 한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집을 짓는 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기술자를 도와 잡일을 하는 것을 노가다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내가 한 일이 기술자를 돕는 일은 아니었지만,
비닐과 천막을 걷어내 접어놓고,
파이프를 뽑아 한 쪽에 정리해 두고,
블록 사이에 넣어둔 모래 퍼내고,
블록을 망치와 정으로 깨뜨려 자루에 담아 마당으로 내리는 일이었으니
노가다도 이런 노가다가 없는 거다.

아무튼 정의 머리를 때려야 할 망치가 왼손을 수차례 때린 후에야
겨우 옥상의 구조물이 깨끗하게 사라지게 되었다.
어깨에 멍이 들고, 팔은 저리고, 이튿날 아침에는 손도 퉁퉁 부어 잘 쥐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급기야 토요일에는 몸살이 나서 열이 펄펄 끓는 지경까지 발생했다.
덕분에 ‘농사를 짓겠다고?’, ‘일은 무슨 일이냐?’하시는 어머니의 한숨석인 걱정도 듣게 되었다.

정말 그 노가다 때문에 몸살이 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결국 ‘정직한 땀 흘림’이라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왔던 의식뿐만 아니라 내 육체와의 싸움 말이다.

난 오늘도 ‘노가다’를 했다.
늘어난 견공들을 위해 개집을 대대적으로 보수 확장했다.

2005.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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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쇠스랑으로 땅을 파다보면 내가 흙이 되고, 흙이 내가 된다.

‘이 흙은 언제부터 여기 있었을까’를 물어보면,
‘나는 언제부터 있었지?’라는 물음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여기 이곳에서 숫한 해를 보냈을 이 흙들이 나보다는 훨씬, 아주 많이 선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선배님들을 선배대접하지는 못할망정
풀이 많네, 돌이 많네 하며 투덜거리기만 했으니.
나는 그러고 보면 참 버릇없는 후배다.

어쩌면 난 이 흙들보다도 더 거친 흙일지도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이 거친 흙을 갈면서 얼마나 손목이 아프실까?
아니 어쩌면 돌들이 섞여 있고, 풀들이 빽빽이 자라도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시며,
내가 스스로 갈아엎어 가기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른다.
앞집 할머니 같으면 제초제 뿌려서 씨를 말려 버리셨겠지만,
우리 하나님은 생태주의자시니 그런 모진 짓은 못하시고,
답답하지만 참아 기다리실 거다.

흙은 참 마음이 넓다.
나도 받아 주었으니...
아니다.
나도 흙이다.
너무 늦게 돌아온 것일 뿐.

내가 흙이고, 흙이 나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창3:23

200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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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8. 유년부 공과 진도에 맞추어
본문 : 사도행전 11:19-26
19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 사람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서, 그리스 사람에게도 말을 붙여서, 주 예수를 전하였다. 21 주께서 그들을 돌보시니, 믿게 된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왔다. 22 이 소식을 듣고서,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다. 23 바나바가 가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해서,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였다.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께로 나아왔다. 25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다.

목표 :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서 책임 있는 삶을 다짐한다.

설교문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11장 19절에서 26절의 말씀이에요(봉독함).

자기 이름 말고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을 별명이라고 해요.
우리 친구들 별명 가지고 있죠?
어떤 별명은 들으면 참 좋은 것도 있어요. 전도사님 같으면, ‘배용준!’이라고 부르면 듣기 나쁘진 않아요(좀 웃으라고ㅋㅋ).
하지만 이름을 가지고 조금 바꿔서 ‘○태’라고 부르면 듣기도 싫고, 기분도 나쁘죠.
우리 친구들은 어떤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어린이들의 대답을 들으면 진행)

정리해 본다면 어떤 별명을 가지느냐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기왕에 가지려면 아주 좋은 별명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뜻에서 오늘 성경말씀 속의 사람들도 가졌었던, 그리고 여러분도 이미 가지고 있는데 미처 모르고 있는 아주 좋은 별명 하나를 소개하려고 해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약속하신 성령이 제자들이 내려온 이후 12제자는 물론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예수님을 전하는 생활을 했어요. 함께 모여서 말씀을 듣고, 찬양을 하고, 먹는 것도 나누어 먹고, 내 것 네 것 없이 나누어 쓰기도 하고요. 그래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고, 당연히 소문이 나게 되었어요. 그러자 예수님이 계실 때부터 싫어했던 사람들이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게 되었어요. 괴롭혀서 없애버리려 한 거죠.
핍박하는 일이 더 심해지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어서 이 곳 저 곳으로 도망가다시피 했고, 피신한 그 곳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어요.
사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핍박하여 괴롭게 하면 ‘줄어들고 언젠가는 없어질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퍼져나갔고, 더 늘어 간 거예요.
이 퍼져 나간 사람들 중에 안디옥이라는 곳으로 간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다른 곳의 사람들보다도 더 열심히 예수님을 믿었어요.
자기들 집에서만 한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눈 띄게 예수님을 믿으며 살았어요.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이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이지?’하며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이 사람들 모이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니까,
사람들은 결국 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되어버렸어요.
‘야, 저기 그리스도인 온다.’
뭐 이런 식으로요.

사실 처음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은 좋은 뜻에서 그랬다기 보다는 ‘뭐 저런 사람들이 다 있어?’하는 식이었는데,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이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부르는 또 하나의 이름이 된 거예요.
영어로는 ‘크리스천’이라고 하는데,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이죠.

이제 알았죠? 우리의 별명이 무엇인지.
우리의 별명은 그리스도인이에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뭔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붙여지는 이름, 그리스도인.
우리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멋지게 살아가는 유년부 친구들이 되세요.
그러면 사람들은 말할 거예요.
‘그리스도인이 우리 곁에 있으니까 너무 좋아. 나도 저런 그리스도인이 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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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 유년부 설교문)
본  문  마태복음 19:13-15
13 그 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려와서, 손을 얹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거기에서 떠나셨다.
목표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않으시고, 하늘 나라가 어린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음을 안다.

설교문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9장 13절에서 15절의 말씀이에요(봉독함).

1.
얘들은 가라, 얘들은 가!
아이들은 안 되요. 들어 올 수 없어요!
어린이 입장 불가에요.
이런 것 본적 있어요?(13세 이하 금지 표시)

그런데 이런 일이 성경에서도 있었어요.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서 말예요.

2.
어느 날, 예수님께서 여러 사람들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니 당연한 모습이죠.
예수님의 말씀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무렵 한 쪽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무슨 일인가 봤더니,
예수님의 제자들의 목소리와 어떤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섞여서 소란하게 드리는 거예요.

어떤 아주머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뵙기 위해 찾아 왔는데
제자들이 ‘아이들은 가!’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아니 정신이 있기나 해요? 우리 예수님께서 얼마나 바쁘신데 얘들까지 데이고 와서 정신없게 해요? 당장 데리고 가세요!’
‘그저 예수님께서 이 아이에게 손만 얹어 주셨으면 해서 온 것인데 왜 못 뵙게 해요?’
이런 소리들이 오가게 된 거죠.
당연히 예수님도 금방 무슨 일인지 알게 되셨어요.

3
예수님은 가만히 있지 않으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그들 쪽으로 가셨어요.
제자들을 비키게 하시고는 어린이들을 보시고는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아라, 하늘 나라는 이런 자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는 어린이들의 머리에 일일이 손을 얹어 안수해 주셨어요.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얘들은 가라, 얘들은 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어른들처럼 그렇지 않으셨어요.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늘 나라는 이런 자들의 것이다.”

4.
여러분 예수님께 오는 것, 교회에 오는 것 주저하지 마세요.
언제든 좋아요.
마음이 괴로울 때, 기쁠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언제든 오세요.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막지 않으시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어요.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는 여러분이 오는 그 날이 바로 어린이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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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을 하면서 하고 싶었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물론 농사를 지으며 땀을 흘리겠다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리고 생태적 삶을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을 들라면
구들방에 불을 떼며 사는 것,
똥오줌 분리형 화장실을 만드는 것,
음식물 퇴비장을 잘 만들어 보는 것 등이었다.

그 중에 오늘 음식물 찌꺼기 퇴비장을 거의 완성했다.
안산주말농장에서 본 것처럼 널판을 사방으로 붙여 뚜껑을 덮는 구조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나무가 없을까를 찾아보았지만 집주변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무를 사서 만든다는 것도 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퇴비장 만드는 일이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대문 앞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곳은 포화상태에 이제는 악취까지 나게 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됐다.
그래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대나무로라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대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크기에 맞게 절단해서 세워 땅에 박은 네 기둥에 묶는 작업을 해야 했다.
생각으로야 그리 어렵지 않은 작업이지만 막상 철사로 하나하나 묶어 가는 작업은 시간도 더디고,
팬지를 쥔 손이 얼얼해서 작업 능률도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일을 하려고 하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완성으로 두는 것이 어쩐지 거림직하고,
뭔가 끝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감자밭에 신문을 씌운 후 다시 시작했다.
대나무가 부족해서 숲에 들어가 더 베 오고 토막을 냈다.
철사도 없어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지만 녹슨 것이라도 쓰기로 하니 널린 것이 철사였다.
양 끝을 묶는 작업이니 시간은 좀 걸렸지만 쪼그리고 앉아 작업하는 내 어깨를 넘어 갈 때는 보람도 더불어 올라갔다.
더구나 퍼낼 수 있도록 한 쪽을 열어 두니 작업도 빨랐고 대나무도 적게 들어가 일석이조가 되었다.

지나가는 마을 분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곱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신기하다는 눈빛이다.
‘뭘 지어요?’ 하는 뒷집 창식이형.
‘개집 짖나?’ 하시는 기씨 아저씨.
충분히 그 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모습이니.
만들고 보니 길에서 너무도 잘 보이는 곳에 대나무 빛 짙은 초록색을 드러냈다.

생태적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
그리고 그것을 실현해 가는 과정.
어쩌면 그것은 자연이 살아 숲 쉬는 이곳에서 더 생경한 풍경이다.
음식물 찌꺼기를 따로 모아 거름을 만들겠다고 조그만 퇴비장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보너스로 굵은 대나무를 가져다가 드릴로 구멍을 뚫고 얇은 가지를 비스듬히 다섯 개 정도 박아 넣어 옷걸이를 만들었다.
작업복을 걸기 위한 것으로 문 밖에 두는 것이다.
아무래도 작업하던 먼지 붙은 옷을 집 안에 쌓아두는 것이 꺼림직 했다.
아무튼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완성도는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애물단지 같은 대나무를 이렇게 저렇게 활용할 수 있어 좋다.

200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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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저렸다.
그러니까 짧게 끝내야 하는 것을...

이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주저앉아 버리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 것이다.

서울에 있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 문제였다.
나 하나 존재 비용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실감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한 덩어리, 혹은 한 그릇정도의 양을 내어놓고, 몇 바가지의 물을 섞어 흘려보내야 하다니.
그것도 아무런 책임감이나 가책도 없이.
어떻게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그렇다고 무슨 환경운동가로서 변신을 꾀할 수 있는 주변머리가 있지도 못하고.
대안이라면 떠나는 수밖에.
똥의 순환이 있는 곳으로.

비록 다리가 저려 일어나는데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나에게서 배설된 이 똥이 그냥 버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양 그대로 밭으로, 누군가의 밑거름이 되고, 또다시 풍성한 양식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더 이상 내가 나 하나로만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음에 기쁨의 이유가 있다.
나는 이제 이 대자연의 한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내가 다리 저려하며 있을 때 그것은 바로 그 대순환의 한 점에 서 있는 것이니.

2005. 4.8.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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