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땀을 흘리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집 안으로 밀려드는 후덥지근함.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기 싫었다.
하지만 내가 뭘 하기 위해 여기 있는가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미 밭으로 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날씨 탓을 하며 집 안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주섬주섬 작업복을 챙겨 입었다.
요즘 우리 집의 주된 일은 제초작업(풀뽑기)이기에 긴 팔 옷을 입었다.
풀숲을 헤치고 나가려면 모기들을 생각지 않을 수 없으니.

작업장은 토방 앞, 그러니까 고추밭 옆이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이미 숲이 되어버려 누가 와도 이곳으로 안내하기가 어렵게 된지 오래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늘 마음에 걸리는 곳이기도 했기에 오늘 작심을 하고 결판을 내기로 했다.

달려들어 작업을 시작하는데,
들고 간 낫도 옆에 던져두고 두 손으로 뽑기 시작했다.
낫으로 베는 것 보다는 할 수만 있다면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고,
다행히 비가 많이 온 후라 잘 뽑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상했던 대로 더위였다.
푹푹 찌는 날씨에 풀숲을 마주하고 앉아서 힘을 다해 뽑고 있으니.
흐르기 시작한 땀이 온 몸을 적시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초반에 짜증은 차츰 사라지고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 이게 정말 ‘시원하다’라는 것이구나!’
땀으로 온 몸을 적시며 느끼는 시원함, 그 시원함은 금방 행복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찬물로 샤워를 했을 때도 이런 시원함을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옷이 척척 몸에 달라붙었지만 전혀 불쾌하지 않고 신바람까지 났으니,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신기하다.

할 수만 있다면 땀 흘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나의 천성적 게으름은 그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오늘 내 몸은 땀 흘림의 시원함을 경험하고 말았다.
그래서...

2005.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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