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캄보디아 하면 앙코르왓(더 정확히 말하면 앙코를 유적. 앙코르왓은 가장 널리 알려진 사원 하나만을 가리킴)이고, 앙코르왓은 씨엠립이라는 캄보디아의 세번째 도시를 중심으로 돌아 볼 수 있다. 돌아 본다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씨엠립을 가려는 계획을 세울 땐 출발 전부터 이 돌아보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뭐 단체로 여행사를 끼고 가게 된다면 그런 준비를 할 필요는 없다. 여행사에서 준비한 에어콘 나오는 시원하고 편안한 버스를 이용할테니 말이다. 

자, 이제부터 하고싶은 얘기는 사실 이 편안한 버스를 이용하시는 분들에게 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너무도 편안히 다녀오셨고, 또 그렇게 가려고 하시는 분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서...


씨엠립을 다녀온 이들에게 씨엠립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뭐였냐고 물으면, 아마도 '뚝뚝'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거다. 길 양 옆으로 뚝뚝이와 그 기사들이 죽치고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다 못해 자기의 뚝뚝을 좀 이용해 달라고 애원을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한 이야기는 말미에 하고, 우선 하려고 하는 얘기는 앙코르 유적 탐방(관광)을 이 뚝뚝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뚝뚝은 오토바이의 뒤에 마주보고 앉은 수 있는 의자가 있는 마차(?) 같은 것을 달아서 만든 이동 수단이다. 내 생각엔 최대 인원이 4명인데, 더 타고 다니는 것도 본 적 있다.


거의 일주일을 함께 했던 따비의 뒷 모습


뚝뚝을 이용하면 좋은 점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일단 뚝뚝을 이용해 돌아다니면 탁트인 시원함을 경험하게 된다. 캄보디아가 연중 기온이 높아 덥지만 달리는 뚝뚝 위에서는 그 더위를 비껴갈 수 있다. 바람이 온 몸을 휘감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또 뚝뚝을 타고 이동하면 주변 풍광은 물론 지나쳐 가게되는 작은 유적들, 그리고 현지 사람들의 삶의 현장들을 더 가깝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역시 뚝뚝을 이용해 이동하는 다른 관광객들과 눈을 마주칠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관광객이나 현지인 청소년들과도 웃음으로 인사를 나눌 수도 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는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뚝뚝 위에서는 매 순간 일어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뚝뚝을 이용하라고 강력하게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유독 한국 사람들만(물론 다른 나라도 간혹 있긴 하다. 그리고 중국사람들도 좀 있다.) 더 단체로 커다란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눈에 띄어 어쉬움이 더 컸다.


그럼 아마 가이드 이야기를 할 거 같다. 그런 많은 유적들을 돌아보려면 가이드의 안내와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냐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처음 간 곳에서 가이드가 해 주는 그 장황한 설명, 솔찍히 조금만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 그리고 여러명이 서서 설명을 들으면 잘 듣지도 않게 되고, 앙코르왓 회랑에 모여 길을 막고 서서 설명을 듣는 것이 또 얼마나 민폐가 되는 지 모른다. 그 부분 주의가 필요하다. 


난 이 부분에 대해서 공부하고 가라고 충고하고 싶다. 꼭 역사책은 아니더라도 가이드북 좋은 것 구하면 웬만한 가이드 몇 명 보다 낫고, 더 정확한 설명을 담고 있기도 하다. 가이드 설명 듣다보면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을 하거나 아예 근거 없는 얘기를 하는 것도 보게 된다. 그러니 가기 전에 공부(예습)하고, 현장에 가서는 그것을 확인하며 감격하는 것이 최상인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앙코르와트 내비게이션](정숙영, 그리고책)이 그래도 좋은 가이드 북인거 같다(본인 이 책과 아무 상관 없음ㅋㅋ). 이거면 예습도 탐방계획 세우기도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준비만 잘 되어 있다면, 한국말 잘하는 뚝뚝 기사를 찾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어디어디' 하며 스케줄 전달만 할 수 있으면 누구든 상관이 없는 거다. 그래도 못 미더울 땐 한국말을 잘하는 뚝뚝 기사를 한국에서부터 섭외하고 가면 된다. 인터넷에 '태사랑' 홈페이지를 검색해 들어가서 캄보디아 섹션을 찾으면 뚝뚝 기사들에 대한 이용후기들이 올라와 있는 게시판이 있다. 거기서 마음에 드는 기사를 골라 카톡으로 연락을 하면 바로 답을 얻을 수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러면 현지에 있는 어느 여행사 연결 한 거 보다 안심하고 첫발을 내 디딜 수 있다.


여기서 뚝뚝을 이용할 때 또 하나의 장점이 나왔다. 바로 스케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점. 그날 그날 가고 싶은 곳을 정할 수도 있는데, 이 부분은 뚝뚝 기사와 논의도 할 수 있다. 참,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뚝뚝 기사는 뚝뚝이 갈 수 있는 곳에만 갈 수 있다. 뚝뚝을 두고 유적 안으로 함께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러니 뚝뚝을 이용할 때는 만날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고 들어가야 한다. 같이 다닐 수 있는 방법은 뚝뚝 기사 입장권을 끊어주면 되는데... 알다시피 입장료가 비싸기도 하지만, 예습을 잘 했으니 그럴 필요도 없다. 


그리고 또 장점이 하나 더 있는데, 뚝뚝을 이용하면 현지인 한 명은 확실히 친해질 수 있다. 한국말을 잘 하는 기사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인사만 주고 받고 여행과 관련된 정보만 교환하지만, 마칠 때 즈음에는 나라 돌아가는 얘기, 자녀 얘기, 인생 얘기 등 심도있는 대화도 나누게 된다. 이 부분 유적, 환경, 문화 등등과 어울려 여행의 깊이를 더하게 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돌아와서도 가끔 카톡으로 안부를 물기도 하고, 다른 여행자들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지만, 뚝뚝 기사 중에 이런저런 요구를 하고, 여행자를 불편하게 하는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건 어떤 일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잘 알아보는 것은 필수이겠다. 태사랑도 괜찮고, 아래 사진을 빌려온 사이트에 가도 뚝뚝 이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있다.


(뚝뚝을 찍은 사진이 없어서 ttearth.com에서 빌려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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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엠립으로 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태국에서 국경을 넘어서 올 수도 있고, 수도인 프놈펜에서 버스나 비행기로 올 수도 있고, 당연히 비행기는 어느 나라에서든 올 수 있다. 그럴 때 가장 많이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 비자를 받는 일이다. 동남아 나라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캄보디아와 베트남에서 유독 입국을 할 때 커미션을 요구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에어아시아 항공편으로 입국하면서 내심 긴장도 하고, 반대로 기대도 했었다. 달러를 요구하면 어떻게 응대를 할까, 절대 돈을 주지 않을 거야 하는 결의를 갖고 있었지만 막상 긴장이 더 앞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정부 관리를 상대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무런 요구가 없다. 참 우스운 광경은 비자 붙이고 싸인하고 도장 찍는 것에 정말 많은 사람이 앉아 있는 거다. 첫 사람이 여권을 받아들고 뭔가를 처리하기 시작해, 한 사람씩 넘기고 넘겨서 마지막 사람에게서 아무런 요구 없이 여권을 받아들었다. 약간은 김이 빠지는 것 같았지만, 상쾌하게 일을 마쳐서 기분은 좋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항공편이어서 그랬나 싶기도 한데, 정확한 건 잘 모르겠다.

씨엠립 공항은 정말 작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짧은 거리를 걸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바로 비자수속 하는 곳이 있고, 거기서 짐 찾는 곳이며 나가는 출구까지 보인다. 작지만 깔끔한 공항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나오면서 핸드폰 유심을 캄보디아 것으로 구입해 끼웠는데, 태국에서처럼 바로 연결도 되지 않는다. 나오기로 한 뚝뚝이 나오지 않고 연락도 안되서, 다른 뚝뚝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아 이런, 비행기가 오전에 내렸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체크인을 하려니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거다. 최소 세 시간은 더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짐을 맡겨두고 예정에 없던 씨엠립 시내 구경을 하게 됐다. 문제는 쿠알라룸푸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면서(6시간 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무척 피곤하고 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다니는 것은 포기하고 씨엠립강 주변에 있는 벤치를 찾아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졸수밖에 없었다. 



여행하면서 별 일도 다 경험하는구나 싶을 무렵, 한 현지인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자신이 학교 영어교사를 하다가 그만 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나야 그곳에서 외국인이지만, 영어를 못하기에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더 적극적이 된 이 아주머니는 자신의 딸이 한국에 다녀왔고, 한국에 대해서 알고 싶어한다고 같이 가서 얘기를 나눠 줄 수 없겠냐고 요청한다. 너무도 설득력 있는 말로 이야기를 해서 좋다고 해버렸다. 그랬더니 딸에게 점심을 준비해 놓으라고 전화를 한다.

그리곤 자신이 뚝뚝을 싸게 잡을 수 있다고 하면서 한 대를 세우더니 타라고 한다. 뭐 별 의심 없이 함께 갔다. 집은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좋았다. 문젠 딸은 보이지 않고 언니와 형부를 소개한다. 형부는 몸에 금붙이가 주렁주렁, 마치 크메르제국의 왕같은 분위기 ㅋㅋ 암튼 환대를 받고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좀 이상하다. 자신이 동생이라고 하면서도 심부름 하고 온 사람처럼 행동한다. 밥도 허겁지겁 먹고 언니와 형부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식사 후에 집 주인 아저씨(형부)가 나를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한다. 그러더니 카드를 죽 펼치더니 능숙하게 모았다 펼쳤다를 반복하다가, 나보고 하나를 뽑으라고 한다. 그러면 자기가 그 카드를 맞추겠다고. 두세 차례 잘도 맞춘다. 옆에 와서 앉아 있는 그 아주머니도 덩달아 흥을 돋운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카지노 얘기를 한다. 한국에 강원도에 있지 않냐고 하면서, 결국엔 자기랑 동업을 하자고 하는 거다. 같이 돈을 벌 수 있다고, 원한다면 부르나이 사람이 근처에 와 있는데 불러서 그 사람을 상대로 시험해 볼 수도 있다는 거다.

와~ 대박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돈도 없지만, 관심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랬더니 한두번 더 권하다가 이전까지 친절했던 표정은 온데 간데 없고, 차갑게 잘 가라고 인사하고 사라진다. 그러자 나를 데리고 온 이 아주머니는 안절부절하더니 빨리 가자고 한다. 아~ 이 인간들이 지금 사기를 치려고 나를 유인해 온 것이구나.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나도 참 둔하다. 집을 나서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이 아주머니 화를 내면서 사진은 왜 찍냐고 한다. 


급하게 나오며 뒤돌아 찍은 것이라 사진이 온전하지는 않다.

순간, 무슨 사진을 찍고 그러냐는 그 아주머니의 약간은 격앙된 음성이 들려서 더는 찍지 못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돌아오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큰 일을 당할뻔 한 것이다. 그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했다면 나라는 사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말이다. 혹시 이 글을 보는 분들, 그런 일 당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부끄러운 경험담을 나눈다. 재미있는 경험 같지만, 실상은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13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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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띠아고길의 최종 목적지인 산띠아고 데 꼼포스뗄라에 도착하면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있다. 하나는 순례자 사무실에 가서 순례 확인증을 받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11시에 있는 대성당의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다. 미사는 매일 드려지는데, 순례자들도 있지만 이 도시만을 보기위해 온 관광객들도 많기 때문에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래서 한 시간 이전부터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는 이들도 있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순례자 사무실에서 보내온 자료를 바탕으로 출발지를 기준으로 어느 나라 사람 몇 명이 순례를 마쳤는 지 호명을 한다. 이전에 본 자료에서는 이름을 불렀다고 하는데, 순례자가 너무 많아서인지 숫자만 불러준다. 

그리고 미사가 시작이 되는데, 먼저 사제들이 입장을 한다. 그런데 처음에 좀 놀란 것은 단에 오르는 신부의 숫자가 너무 많은 거다. 열 명도 넘는 것 같았다. 아니 무슨 특별한 미사이기에 순서를 담당하는 신부가 저렇게 많담. 그러나 미사 내내 대부분의 신부들은 자리를 지켰고, 어떤 역할도 맡지 않았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라고 넘겼는데, 그 궁금증은 다른 순례자와의 대화에서 풀렸다. 자신들과 함께 걸어오던 신부님 한 분이 있었는데, 미사 전에 사라지더니 신부 옷을 입고 그 앞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 순례자라도 신부는 회중석에 앉지 않고 단에 오르는구나..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리고 유추해서 알 수 있었던 것! 미사를 드릴 때 신부는 일반인들, 그들의 표현으로 한다면 평신도와 함께 앉지 않는다는 것!


산띠아고 대성당의 독특한 볼거리인 대형 향로를 좌우로 크게 흔드는 보나부페이로.

단 위의 다수 신부들도 이 신기한 광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 성직자와 평신도이다. 이 둘의 구분! 물론 개신교에서도 이 개념은 널리 사용되고 있다. '평신도'라는 표현을 담고 있는 신문도 있고, 모임들도 여럿 있다. 


신학대학을 다닐 때 수업 중에 있었던 일이다. 가르치던 여자 교수님은 교역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한 학생(지금 신학대학의 교수로 있음)이 교수님을 향해 '평신도' 운운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정색을 하면서 개신교에 평신도가 어디 있냐고 격앙된 말투로 답하셨었다. 맞다. 개신교에는 평신도가 없다. 이 말은 성직자도 없다는 얘기도 된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나누고 그 구분을 철저히 지키는 전통은 가톨릭의 것이다. 왜냐면 성직자는 사제 즉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때로 목회자들이 스스로를 성직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성도들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정작 성직자인 목사가 가톨릭의 미사에 참여할 땐 영성체 예식에 참여도 못한다. 영세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구분해서 말하는 소위 (가톨릭의) 평신도보다도 못한 것이 목사라는 것을 생생히 체험하게 된다. 물론 가톨릭의 전통으로 그렇다는 얘기니 오해는 없어야 겠다.


아무튼 하고싶은 얘기는 최소한 개신교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개념은 없다. 루터에 의해 만인제사장이 선언되었다면, 모두가 제사장이고, 또 모두가 제사장이 아니라는 얘기다. 모두가 성직자이거나 모두가 평신도라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개신교에서는 성도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사실 목회자도 성도이다. 그럼 어떻게 구분할까? 달란트에 따른 역할의 다름으로 보면 된다. 목회자는 좀 더 기도와 말씀 가운데 거하며 교회와 일반 성도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실 그런 역할은 누구와도 나누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자기만 할 수 있다고 할 때, 그들만 할 수 있다고 할 때, 불편한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목회자에게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여기며 의존하고 기대하지 말아야겠다. 그저 그들의 역할을 인정해 주고 그 전문성을 존중해 주면 된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 볼 것이다. 그럼 정말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있는 것인가? 가톨릭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가톨릭에서 신부를 성직자라고 하는 근거는 뭔가? 제사인 미사를 주관할 수 있는 사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물이 있고 평신도가 있어도 신부가 없으면 그곳을 성당이라고 하지 않고 공소라고 한다. 신부가 없으면 성당도 미사도 불가능하다. 그럼 잘 생각해 보자. 그들이 신부를 사제라고 하는 근거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교황은 스스로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여기는데, 그럼 베드로에게서 온 것인가? 베드로는 어부이고 한 번도 제사를 주관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그럼 예수님께로부터 왔나? 성경 어디를 찾아봐도 예수님께서 제사를 지내셨다는 얘기는 없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사를 지내달라고 부탁하신 일도 없다.

그렇다면 구약의 제사장들에게서 왔나? 그건 더욱 말도 안되는 얘기다. 신약 시대에 생겨난 종교가 왜 구약 시대의 유물을 붙들고서 제사, 사제 운운하는지 모르겠다. 결국은 수많은 순진한 성도들의 눈과 귀를 홀리기 위한 적절한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발전한 것이 미사가 아니겠는가. 그 일을 자기들만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기 위해 성직자를 구분해 질적 다름을 주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성직자가 없다는 얘기의 결론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른 존재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영악해서 스스로 성직자 운운하며 끼어들고, 인간들이 약해서 누군가 앞에 서 주기를 바라서 목회자를 끼워 넣는 일 등등 그만해야 한다. 물론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필요하다. 더 알고, 먼저 깨달은 사람들의 안내는 있어야 한다. 그것도 최소한으로 말이다. 신앙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끼어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 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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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데 산띠아고 에필로그(2)


순례를 마친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그럼 순례 후에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무엇일까?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나, 생활태도가 바뀌었나? 신앙심이 더욱 돈독해졌나? 

순례 막바지에 동행했던 K는 걷는 중 '변화'라는 화두에 자극받고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어린 친구였는데 대견했고, 나도 도전을 받았다. 끊은 담배 다시 찾지 말라고 당부를 했었는데,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계속 금연 중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처럼 큰 변화가 또 있을까? 평생 '끊어야지'란 말만 달고 살며 잘라내지 못하는 습관이 흡연이 아니던가. 

그럼 나는 어떤 변화를 체험했나, 아니 결단했나? 핑계지만, 나이가 들수록 변화가능성, 변화할 수 있는 가짓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정서가 굳어 웬만해선 외적요인에 영향을 덜 받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얘기로 스스로 합리화하며 순례가 아닌 관광으로 까미노의 인상을 추억으로 바꾸어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두 달이 지났다고 하지만 그 어디에 다녀온 기억보다 생생히 그 곳에 대한 그리움에 휩싸여 지낸다. 

이제까지 어디를 그리 단순한 생활로 긴 시간 걸어보았단 말인가? 어디에서 그런 자유를 누려보았단 말인가? 그 어디에서 고생을, 고통을, 고단한 일상을 즐겁게 받아들여 보았단 말인가? 그 어디서 투명하게 자신을 들여다보았단 말인가? 그래서 까미노는 '바람'이다. 온 몸으로 맞았던 뜨거운 바람이었고, 지금 나를 또다시 들뜨게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 나는 단단히 바람이 들었다. 아니, 바람이 났다. 나는 바람을 갈망한다. 오늘도 까미노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까미노 전후로 나에게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살아가는데 까미노라는 정말 든든한 벗을 얻은 것은 틀림없다. 갑갑한 삶 가운데 빈틈이며, 여유 공간이고, 의지할 수 있는 지팡이와 같은 친구 말이다. 그래서 난 지금 다시 친구가 보고 싶다. 거기 까미노에 친구가 밝은 미소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넉넉한 가슴으로 고단한 순례자를 안아줄 수 있는 친구, 그러니 눈물겹도록 그립지 않을 수 있을까?

2013년 12월 말에


눈물겹도록 까미노가 그립다.

그 때 그 곳의 길, 사람, 돌, 나무, 풀 한 포기도 그립다.

길 옆에 사과와 포도가 그립고, 작은 시내와 큰 강, 높은 산과 평평한 대지가 그립다.

너무 정든 친구를 남겨두고 돌아온듯 내 심장이 흐느낀다.


다시 태양에 그을리며 땀을 흘리고

다시 그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다시 물집에 아파하며 다리 절고

다시 빈대에 가려워하며 몸서리치고 

다시 궁금한 눈 깜빡이며 지나치는 이들을 바라보고

다시 배고픔 딱딱한 바게트 빵으로 달래고

다시 소리쳐 올라하며 인사 하고

다시 부엔 까미노! 하며 지나쳐 가고 싶다.


길의 숨소리를 듣고, 

길의 질문에 대답하며, 

길의 가르침을 받으며, 

길의 품에 안기어, 

길의 격려 가운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나를 그리워한다.

2013.10.23.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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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40-45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후 예수님의 앞에 나병환자가 나타났다.

그의 말 “원하시면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님은 이 말을 들으시고, 가타부타 말씀하지 않으시고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셨다.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불쌍히 여기셨다고 전하고 있다.


불쌍히 여기심, 그것은 예수님께서 인생들을 향하신 마음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오셔서 뭘 더 바라셨을까?

기적을 일으키며 인기를 끌고 싶으셨던 것도,

뭔가 힘을 써서 누군가를 복종시키기를 원하신 것도 아니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무언가가 필요하신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는 하나님으로 족하기에 그런 것들은 꺼리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냐?

심지어 자신에게도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집착한다.

유능한 사람이 되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자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관심하지 않으신 것 같다.

그저 하나님과 관계 안에서 당신 자신의 존재로 충분하셨다.

만약 나병환자가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 어떤 의사표현도 안 하고, 

그냥 예수님이 좋아서 머물고 있었다면 굳이 고치시지 않으셨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요청에 부응은 하시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암튼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를 향해 깨끗하게 되라고 하셨고, 정말 깨끗하게 되었다.

그를 괴롭혔던, 그를 가두어두었던, 그를 붙잡고 있던, 그를 짓누르고 있던, 그를 지배하고 있던

나병이 씻은 듯이 나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의 두드러지는 대목은

병이 나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히 명하시는 장면이다.

앞에서 말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장면이다.

그저 율법대로 제사장에게 보이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라는 것 뿐.

예수님의 관심은 그가 고침을 받고싶다고 여기는 그 위축된 마음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래서 그가 몸의 질병으로 인해 온전한 마음으로 살고 있지 못한 것을 보시고 아픈 심정으로 그의 소원을 들어주셨던 것이다.


그가 자신의 삶에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음에 동정하신 것이다.

병에 걸려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고침을 받기를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 병에 걸려 있는 것 자체가 그의 불완전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만족하며 자신의 인생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한계성은 그 병이 나아야 한다고 생각 할 수밖에 없고,

예수님은 일단 병을 고쳐주신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병이 아니라 마음이다.

몸의 결핍보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결핍이 더 중대함으로 깨닫고 그 여정으로 나가야 한다.

예수님은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고 피부적인 필요들에 대한 요청을 받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셨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인생들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심'은 여전하다.


예수님께서 엄히 경고하시면서 

그 나은 사람이 소문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셨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가 예수님께 나아오는 과정의 무게만큼이나 기쁨 또한 컸을 것이기에

그 가벼워진 마음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소리쳐 전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그렇게 번져 나갔다.

예수님께서 어떤 홍보원들을 통해서 선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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