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기도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

21세기가 영성의 시대이고, 영성의 핵심이 기도이기 때문일까.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 한국 개신교 신자들이 기도 잘하기로 유명하다.

새벽기도는 물론이고, 수요일, 금요일 저녁(밤) 정해진 모임 뿐만 아니라 

여러 작고 큰 모임들을 가지며 기도한다.

기도를 해도 '뜨겁게'해야 한다.

뜨겁게 하지 않으면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다른 말로 하면 시원하지 않은 거다.

마음 속에 맺힌 것, 꽉 막힌 일들이 물꼬가 터지듯이 뻥 뚫릴려면

좀 더 파워풀하게 '주여~'를 외치며 몸을 들석거려야 하는 것이다.


사실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도의 방식 역시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선택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기도 방법 가운데 담기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기도에 담기는 내용을 보면, 거의 요구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다.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기도라는 말 자체에 그 뜻이 담겨 있으니까.

그런데 요구하는 것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으니 곤란한 것이다.


거의 대부분 물질, 출세, 건강 등 성취물(복)에 집중되어 있다.

성경을 잘 읽어 보면(참고, 신28:1-14)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 앞에 '~면'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명령을 잘 지켜 행하면, 복을 주신다는 약속이다.

그러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 지 명확하다.

'~면' 앞쪽에 있는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명령을 잘 지켜행하는 것과 관련하여

잘 안된다는 것, 잘 지켜 행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함께 해 달라는 것을 구해야 한다.

자녀를 위한 기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아들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게 해 달라고, 시험 잘 보게 해 달라고 수능날 기도할 것이 아니라,

평소 내 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도록 해 달라는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면 복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이 얘기 안해도 주실 것 아닌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비유하면 이렇다.

아빠가 아들에게 "장난감 정리 잘 해 놓으면, 동화책 읽어줄께!"했는데,

그 때부터 장난감을 정리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동화책 읽어줘!'를 연발하는 것이다.

그것도 처음 한 두번은 아이가 귀여우니까 들어주지, 계속 그러고, 커서도 그러면 정말 대책이 없는 일이다.

앞 문장에서 '커서도 그러면' 부분을 한 번 더 강조해야겠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연륜을 더해도 그 기도 내용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커서도 전혀 진전이 없는 것이다. 

성장은 없고 나이만 먹는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나를 누구보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잘 아신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 필요한 최선의 것을 아실까, 모르실까? 아니 주실까, 안 주실까?

시간문제이지 분명히 주실 것이다. 차고 넘치도록!

그런데 우린 지금 좁은 시선을 가지고 이 거 달라, 저 거 달라 안달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시선을 돌려 지금까지 주신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지 못하는 오늘 나의 현실을 고백하고, 함께 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

그리고 할 말이 없으면 가만히 앉아 자신을 들여다 보고,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도가 더 좋고, 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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