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띠아고길의 최종 목적지인 산띠아고 데 꼼포스뗄라에 도착하면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있다. 하나는 순례자 사무실에 가서 순례 확인증을 받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11시에 있는 대성당의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다. 미사는 매일 드려지는데, 순례자들도 있지만 이 도시만을 보기위해 온 관광객들도 많기 때문에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래서 한 시간 이전부터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는 이들도 있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순례자 사무실에서 보내온 자료를 바탕으로 출발지를 기준으로 어느 나라 사람 몇 명이 순례를 마쳤는 지 호명을 한다. 이전에 본 자료에서는 이름을 불렀다고 하는데, 순례자가 너무 많아서인지 숫자만 불러준다. 

그리고 미사가 시작이 되는데, 먼저 사제들이 입장을 한다. 그런데 처음에 좀 놀란 것은 단에 오르는 신부의 숫자가 너무 많은 거다. 열 명도 넘는 것 같았다. 아니 무슨 특별한 미사이기에 순서를 담당하는 신부가 저렇게 많담. 그러나 미사 내내 대부분의 신부들은 자리를 지켰고, 어떤 역할도 맡지 않았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라고 넘겼는데, 그 궁금증은 다른 순례자와의 대화에서 풀렸다. 자신들과 함께 걸어오던 신부님 한 분이 있었는데, 미사 전에 사라지더니 신부 옷을 입고 그 앞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 순례자라도 신부는 회중석에 앉지 않고 단에 오르는구나..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리고 유추해서 알 수 있었던 것! 미사를 드릴 때 신부는 일반인들, 그들의 표현으로 한다면 평신도와 함께 앉지 않는다는 것!


산띠아고 대성당의 독특한 볼거리인 대형 향로를 좌우로 크게 흔드는 보나부페이로.

단 위의 다수 신부들도 이 신기한 광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 성직자와 평신도이다. 이 둘의 구분! 물론 개신교에서도 이 개념은 널리 사용되고 있다. '평신도'라는 표현을 담고 있는 신문도 있고, 모임들도 여럿 있다. 


신학대학을 다닐 때 수업 중에 있었던 일이다. 가르치던 여자 교수님은 교역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한 학생(지금 신학대학의 교수로 있음)이 교수님을 향해 '평신도' 운운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정색을 하면서 개신교에 평신도가 어디 있냐고 격앙된 말투로 답하셨었다. 맞다. 개신교에는 평신도가 없다. 이 말은 성직자도 없다는 얘기도 된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나누고 그 구분을 철저히 지키는 전통은 가톨릭의 것이다. 왜냐면 성직자는 사제 즉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때로 목회자들이 스스로를 성직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성도들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정작 성직자인 목사가 가톨릭의 미사에 참여할 땐 영성체 예식에 참여도 못한다. 영세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구분해서 말하는 소위 (가톨릭의) 평신도보다도 못한 것이 목사라는 것을 생생히 체험하게 된다. 물론 가톨릭의 전통으로 그렇다는 얘기니 오해는 없어야 겠다.


아무튼 하고싶은 얘기는 최소한 개신교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개념은 없다. 루터에 의해 만인제사장이 선언되었다면, 모두가 제사장이고, 또 모두가 제사장이 아니라는 얘기다. 모두가 성직자이거나 모두가 평신도라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개신교에서는 성도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사실 목회자도 성도이다. 그럼 어떻게 구분할까? 달란트에 따른 역할의 다름으로 보면 된다. 목회자는 좀 더 기도와 말씀 가운데 거하며 교회와 일반 성도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실 그런 역할은 누구와도 나누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자기만 할 수 있다고 할 때, 그들만 할 수 있다고 할 때, 불편한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목회자에게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여기며 의존하고 기대하지 말아야겠다. 그저 그들의 역할을 인정해 주고 그 전문성을 존중해 주면 된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 볼 것이다. 그럼 정말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있는 것인가? 가톨릭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가톨릭에서 신부를 성직자라고 하는 근거는 뭔가? 제사인 미사를 주관할 수 있는 사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물이 있고 평신도가 있어도 신부가 없으면 그곳을 성당이라고 하지 않고 공소라고 한다. 신부가 없으면 성당도 미사도 불가능하다. 그럼 잘 생각해 보자. 그들이 신부를 사제라고 하는 근거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교황은 스스로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여기는데, 그럼 베드로에게서 온 것인가? 베드로는 어부이고 한 번도 제사를 주관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그럼 예수님께로부터 왔나? 성경 어디를 찾아봐도 예수님께서 제사를 지내셨다는 얘기는 없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사를 지내달라고 부탁하신 일도 없다.

그렇다면 구약의 제사장들에게서 왔나? 그건 더욱 말도 안되는 얘기다. 신약 시대에 생겨난 종교가 왜 구약 시대의 유물을 붙들고서 제사, 사제 운운하는지 모르겠다. 결국은 수많은 순진한 성도들의 눈과 귀를 홀리기 위한 적절한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발전한 것이 미사가 아니겠는가. 그 일을 자기들만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기 위해 성직자를 구분해 질적 다름을 주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성직자가 없다는 얘기의 결론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른 존재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영악해서 스스로 성직자 운운하며 끼어들고, 인간들이 약해서 누군가 앞에 서 주기를 바라서 목회자를 끼워 넣는 일 등등 그만해야 한다. 물론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필요하다. 더 알고, 먼저 깨달은 사람들의 안내는 있어야 한다. 그것도 최소한으로 말이다. 신앙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끼어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 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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