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35-39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예수님은 새벽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을 따라가 사람들이 찾는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 장면을 요약하면 이렇다.

새벽 시간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하고, 제자들은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다고...


예수님은 아무리 일이 많고 피곤해도 하나님을 향하여 서는 것을 빼놓지 않으셨다.

이것은 당신의 사역을 하나님과의 연계성 속에서 이루어 가시려는 원칙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예수님을 더 예수님 되게 하는 과정이었다.

쉽게 말해, 예수님의 사역에는 사람들의 어떠함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었다는 얘기다.

안전장치라기보다는 하나님께 맞추어진 사역 매뉴얼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

반면 예수님을 좇아와서 사람들이 찾는다는 얘기를 하는,

진짜일 가능성이 높지만, 과장하여 '모든 사람이 찾'는다고 말하는 제자들의 태도는

전적으로 사람에게 맞추어진, 사람을 향한 사역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다는 소식을 예수님께 전하면서 뿌듯했을 것이고,

그렇게 인기있는 스승을 모시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자부심도 컸을 것이다.

인기라는 것은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자들은 아마도 그것을 예수님께 요구했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찾나이다’라는 말은 제자들의 그런 마음이 실린 표현이다.

사실 오늘날 사역자들의 태도와 같은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이 '나를' 찾는 상황을 선망하며,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고 연출하지 않나.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부름, 그들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역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부름, 하나님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나아가는 사역을 위해 애쓰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찾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으시고

다시금 하나님께서 바라보고 계시는 곳, '다른 가까운 마을'로 옮겨 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만약 한 곳에 터를 잡고 몰려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사역을 한다면 

오늘날처럼 대형교회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역은 하나님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서선을 좇아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 나서신다.

이는 이른 새벽, 시간과 장소를 구별한 기도로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찾는 것에 부응하고, 그들의 시선을 만족시키려다가는 하나님의 시선을 놓치고 만다.

하나님의 부름, 하나님의 시선을 좇아가는 것이 먼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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