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예수님의 첫 번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예비 제자들은 한 치의 의심이나 주저함 없이 

자신들의 생업을 ‘버려 두고’서 예수님을 따라 나선다.

그들이 버려두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금까지 자신들을 먹여살려온 것들, 자신들이 믿고 의지했던 것을 내려놓았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자세한 정황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일단 당시 유다의 남자들은

그 직업이나 사는 곳과 상관없이 종교적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채워지지 않는 큰 갈증을 느끼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갈증을 채워주겠다고 여러 종교지도자들이 앞에 서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외형에 치우친 관례적인 종교행위에 머물거나

때로 자신들과는 너무 먼 차원, 삶과 괴리된 이상들이었을 것이다.

일단 그런 것을 제안하는 이들 자체가 너무 높거나 멀거나 어려웠다.

그런데 예수님은 찾아왔고, 보다 친근한 말씀들을 들려주셨고, 무엇보다 차별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물이나 던지며 고기를 잡던 하류인생들이었지만

그 속에 꿈틀대는 갈망을 위해 과감하게 지금까지의 삶은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격심사도 없고, 조건도 없이 그저 따라오라는 것처럼 단순하고 강력한 부름이 또 있을까.

최소한 이 부름의 순간에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 출세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의지해 살던 것들을 버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예수님을 발견한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훈련을 통해 양성된 사람들이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른 사람들이 제자가 된다는 것이다.

단지 부르실 때 지금까지의 삶을 등지고 일어설 수만 있으면 된다.

사람들은 버렸을 때 없는 것으로 인해 곤란을 겪을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채우는 것은 본인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채우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성령의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못하기 때문에 비움을 겁내고

비우면 끝나는 줄 알고 조금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형국이라고 할까.

알고 있는 것 많고, 가진 것 많고, 말 많은 사람들은 제자되기가 어렵다.

단순해지는 것, 예수님의 말씀처럼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이 필요할 거 같다. 

그런 면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좆은 처음 제자들은 참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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