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광야와 시험의 조합은 너무도 당연하다.

광야는 어떤 곳인가?

야곱이 집을 떠나 라반에게 갈 때 통과했던 그 곳이고,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끌려 갈 때 지나갔던 길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걸었던 학습장이었고,

다윗이 왕이 되기 위한 지루한 수업이 있었던 곳이고,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 또 다시 돌아 올 때 지나는 길이었다.


광야는 무엇을 의미할까?

없음(無)을 뜻한다.

없는 곳이다.

자신을 지지해 줄 어떤 것도 없는 곳.

먹을 음식도 물도 없는 곳이다.

나를 위급한 상황에서 지켜줄 집도, 담장도 없다.

도와줄 도움의 손길도 없다.

일단 지지자들이 없다는 것이 광야는 희망과 소망의 땅이라기보다는 절망과 죽음의 땅이다.


인간이 세운 제도와 가족과 관계가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은 가려진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온전한 하나님을 뵐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아니 부정할 것도 없다.

가진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그러나 그 사람이 예수님이셨다면 많이 달라진다.

능력이 있는 예수님은 그 광야를 손쉽게 생명의 땅으로 바꿀 수 있다.

광야에서 온전히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만나느냐

아니면 능력껏 자신의 필요를 채울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시험은 광야의 하나님이 되라는 것이다.

무를 유로 바꾸라는 유혹이다.

하나님 없이 살라는 유혹이다.


신앙생활은 광야로 나가는 것이다.

광야에서 아무것도 없기에 모든 것이 있음,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체험 할 수 있다.

(광야는 때때로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배신, 죽음, 질병, 고통 등으로. 그 때 시험 역시 찾아온다. 

시험의 다른 얼굴이 의심이다. 하나님이 나타나시지만 하나님으로 볼 수 없도록 한다.)


그러나 신앙의 여정은 우리로 하여금 광야에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어쩌면 광야에서 하나님의 실존 안에 거하는 삶을 지속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 또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적, 자연스런 삶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오신 것처럼

그리스도인 역시 사람들 가운데로 돌아와야 한다.

그 곳에서 이젠 더 이상 거짓 하나님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그 가운데 드러나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삶을 살게 된다.

당연히 그의 삶은 작은 하나님, 작은 예수의 삶이 된다.


그러므로 정리해 보면 광야는 훈련의 장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위한 훈련의 장이다.

예수님께선 이 코스를 정말 모범적으로 통과하신다.

사람들 중엔 이런 과정을 거치며 종종 자신이 하나님인줄 오해 하고 자신의 몸을 세우려 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자취는 남아 있지 않다. 오직 예수님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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