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차, 까리온에서 모라띠노스 가는 길 30.1km 



까리온에서 이 길의 끝에 있는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까지 약 17km 정도 구간엔 물과 음식을 구할 수 있는 마을이 없었다.




지구상 어디에 이렇게 잘 정비된 트레킹 코스가 있을까? 노란 화살표는 말할 것도 없고, 산이나 들 가운데 순례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도로 옆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고속도로 ‘센다Senda’를 만들어 놓았다. 까미노에서 만나는 순례자를 위한 스페인의 최고의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비록 도로 옆에 있어서 차량 소리가 소란하고, 지루한 길이지만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걸을 수 있어 좋다. 단, 자전거가 도로로 가지 않고 이 길로 달려 올 때 급하게 피해야하는 것을 빼고. 까미노 초반에는 자전거 순례자들을 반갑게 맞으며 비켜주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피로도가 높아져서 귀찮은 일 중 하나가 된다. 비켜주긴 하지만 한 마디씩 하는 거다. '도로로 가지!' 암튼... 어디 길 뿐만이겠는가. 까미노 데 산띠아고에서는 숙소, 식당은 물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최고의 길을 만들고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여서 작은 마을 모라띠노스로 발걸음을 제촉해야 했다.












모라띠노스에 이태리 사람이 운영하는 사설 알베르게의 저녁 메뉴였다.

스파게티를 많이 준다싶었는데 결국 본식이 햄을 얇게 썰은 것 같은 것에 셀러드를 곁들인 것으로 많이 부실했다.


201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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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차, 까리온 

까리온에 들어서는 길 옆,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예수상.



산따 마리아 성당에 부속된 알베르게인데, 들어서는 순례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음료와 빵을 준비해 두었다.

까미노에서 거의 유일한 호의였다. 다시 생각해도 감사하다. 

루시아라고 한글로 써서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던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수녀님이 있어 더 인상적이었던 곳이다.




산따 마리아 데까미노 교회



맨 오른쪽 기타를 들고 있는 수녀님이 루시아이다.


까리온 Santa Maria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미사 후 신부님이 모든 순례자를 불러 한 명 한 명 축복하는 시간이 있었다. 개신교 신자인 젊은 친구와 함께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에겐 미사도 처음이었고 신부님의 축복기도는 더더욱 생소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눈짓으로 받아도 되냐고 묻는다. 우린 이미 카톨릭 순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니 신부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얘기해줬다. 나는 문제가 없지만 이 길을 걷는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이런 의식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국교회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균형감 있게 안내하고 있나. 이들이 마치 교회완 별개의 사건으로 마음 속 한 편에 접어두고 있다면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닫힌, 답답한 교회만 소외되는 것이 아닐까. 
201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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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차, 보아디야에서 까리온 가는 길 26.1km



프로미스따에 있는 순수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 마르띤 교회.

1066년 이슬람교도를 물리치고 마을이 번성했을 때 지어진 베네딕트 수도원의 일부로

1900년쯤에 복원되었는데, 지붕을 받쳐주는 장식(사람, 동물, 신비로운 모티브 등 300여 개)으로 유명하다.




센다를 순례자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농기구가 들어오지 못하게 까미노 표지석을 세워두었다.


까리온까지 6km, 이 날 한시간 만에 주파했다.



지루한 센다 저 멀리 까리온이 보인다. 치마를 입은 할머니 순례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까미노 초반에는 20km 전후를 걷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까미노와 함께하는 법을 익힐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몸도 무리를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숙소를 잡고, 빨래를 하고, 식당을 정하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는 등 까미노의 생활에 익숙해 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너무 늦게 숙소에 들어가면 그럴만한 여유를 가질 수 없고, 물집이 잡히거나 몸 이 곳 저 곳이 아픈데도 충분히 쉴 수 없게 된다.

까미노가 익숙해질 무렵부터는 걷는 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다. 그래도 나에겐 25km정도가 하루 적정 거리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정도로만 계속 걷게 되면 크게 정해 놓은 일정 안에 순례를 마치기 어렵기 때문에 가능한 걸을 수 있을 때, 조금씩 더 걸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렵게 4~5km 정도 되는 한 구간을 더 걷게 되었을 때,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히 몸의 한계를 넘었는데,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몸 한 편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걷는 것을 즐기는 것 같은 또다른 내가 걷고 있는 것이다. 혹시 이것이 걷기 중독, 까미노 중독이 아닐까. 30km 훌쩍 넘는 거리가 자연스러워지기까지 한동안 이런 중독 느낌이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럴 땐 26.1km 정도로 숙소에 들어가려면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201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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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차, 온따나스에서 보아디야 가는 길 29.5km(1) 


온따나스를 출발해 들어서게 되는 밭 사이의 좁은 길. 한 줄로 가는 길은 보폭의 차이로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


산 안똔 아치 Acro de San Anton

 




습관적으로 내 것, 네 것을 나누며 내 것에 집착한다. 배낭을 바닦에 내려 놓으려 해도 내 것은 먼지가 없는 곳을 골라서 놓고, 혹시나 긁히거나 이물질이 묻지 않도록 애지중지 한다. 한국사람, 아니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버스를 타며 화물칸에 싣게 될 때도 가방이 어디에 어떻게 놓이는지 관심 갖고 끝까지 지켜보고 올라간다. 반면 서양 사람들은 배낭을 화물칸 앞에 툭 던지곤 뒤도 안 돌아보고 버스에 오른다. 길을 걷다가도 힘들면 선채로 배낭을 벗어 땅바닥에 떨어뜨린다. 심지어 깔고 앉아버리기도 한다. 참 생각이 많이 다르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 아닐까. 배낭, 짐 그까짓 거 소모품이라는 것을 아는 거다. 소유에 집착하는 내 모습과 대비되 많이 반성하게 된다.
201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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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차, 부르고스에서 온따나스 가는 길 29.6km(2) 





오르니오스 들어가 첫번째 바의 벽에 여러 나라의 시간을 알리는 시계가 걸렸있다. 한국도 당당히!




서양인들도 돌을 쌓는 것은 매 한가지. 마치 한복을 입은 아낙네 같은 모습이다.


온따나스 들어가는 길




메세따는 스페인어 책상에서 왔다고 한다. 높고 평평한 지형(고위평탄면)이 스페인의 메세따이다. 나무가 없고 대부분 밀밭이어서 덥고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이 펼쳐진 곳이다. 그래서 까미노에서 힘든 구간 중 하나이고, 몇몇 순례자들은 부르고스에서 버스를 타고 메세따를 건너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까미노의 그 어느 곳보다 더 기억에 남고, 다시 걷고 싶은 길이 메세따의 까미노이다. 누구에겐 지루하고 덥고 고된 길이지만, 나에겐 시원하게 탁 트인 자유의 공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선 곳, 아니 내가 바로 끝이고 그렇기에 또다시 시작이라는 뜻이 아닐까. 길이 나로부터 시작해 나에게서 끝난다는 사실을 메세따는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나에게로 향하는 순례의 여정이 더 깊어지고 있다.
201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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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차, 부르고스에서 온따나스 가는 길 29.6km(1) 


해도 뜨기 전에 부르고스 숙소를 나선 순례자들



드디어 메세따(고위평탄면) 지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드디어 메세따 지대에 올라섰다. 양과 목자와 한 그루의 나무...


아가씨들인줄 알았는데...


까미노를 걷는 것도 여행의 하나라면 참 고된 여행이다. 걷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매일 머무는 곳이 바뀌니 매번 새로운 숙소를 찾아 묶어야 하는 것이 참 고역이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아침이면 짐을 꾸려 짊어지고 어둠 속으로 길을 나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생활도 열흘이 넘고 또 며칠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있는 거다. 
아침에 눈을 뜨면 거의 자동적으로 침대 난간에 널어둔 옷가지와 취침을 위한 소품들을 챙겨 배낭을 꾸려놓고,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발에 바세린을 바르고 양말을 신는다. 이어서 로비나 식당에서 서거나 앉아 전날 준비해둔 먹거리로 간단히 요기를 한다. 그리곤 캡라이트를 모자에 끼우고 배낭을 짊어지고 스틱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밝은 날에도 가끔은 헷갈리는 길을 어둠 속에서도 성큼성큼 발걸음을 재촉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디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까미노에서는 거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긴장이라는 안정장치가 있어 그 익숙함에 빠져버리진 않는다.
201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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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차, 아헤스에서 부르고스 가는 길 23.7km(2) 


길 옆에 알베르게 홍보를 위해 세워둔 폐버스.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긴 오는가 보다.


까르떼뉴엘라에 있는 온갖 것을 짊어지고서 편한 쉼을 그리며 걷고 있는 순례자를 풍자한 벽화.


부르고스에 들어왔는데 여전히 시내는 멀다.



부르고스 구도심 길바닥의 가리비 모양.


부르고스 알베르게로 향하는 길, 아빠와 함께 가던 꼬마가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한다. 귀여워~


까미노 초반 알베르게에 들어가서 매번 짐을 꺼냈다 넣었다 하는 일이 무척 번거로웠다. 어떻게 이 짓을 매일 할까. 그냥 몽땅 꺼내 두고 사는 일상이 그리웠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짐이 줄어들었다. 최소한으로 가져온 것인데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넣었다 뺐다 하는 일도 수월해지는 거다. 나중엔 순서대로 넣는데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이리도 적을 수 있는데, 삶이 이리도 단순해 질 수 있는데, 늘려가는 것인 줄만 알고 살았다니. 
지난 해 일을 그만두면서 세간들을 주변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지만 남아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나 한 사람을 위한 것으로는 여전히 많은 양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걷는다고 상상하면 매일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한다는 것은 거의 재앙 수준이다. 한 때 필요했지만 이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버리거나 필요한 이에게 주는 것이 맞다. 쥔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지키는데 에너지를 쓰느라 주변을 보지 못한다. 인생, 나이를 먹을수록 외적인 것 소유를 늘려가기 보다 줄이고, 내적인 것 마음의 크기를 키워야한다. 

이별한 문건들- 습식 스포츠타올 작은 것-론세스바예스에서 버림/ 동그란 도시락통, 휴대용 다용도 칼-아조프라에서 버림/ 장갑, 바세린50ml-수비리 입구에서 길벗에게/ 휴대용 작은 깔개-로그로뇨에서 버림/ 양말1족-로그로뇨에서 잃어버림/ 등산용 손수건-보아디아에서 길벗에게/ 그밖에 음식류-하루 이틀 지나며 자연스럽게 줄어듦
201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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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차, 아헤스에서 부르고 가는 길 23.7km(1) 







탠트를 숙소로 개와 함께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심지어 여성이다.


종종 발견할 수 있는 돌로 만든 미로.




까미노에서 열흘정도 지나면 걷는 것이 익숙해진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걷는 것을 방해했던 물집도 이젠 다 잡혔고, 물집이 잡히지 않도록 신발 끈을 조절하는 법도 알게 됐다. 그러다보니 걷는 거리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약해서 가장 빨리 드러났던 부분의 상처가 아물자 그 자리는 이전보다 더 단단해졌다. 30km 그 이상을 걸어도 문제없을 것 같다. 비온 후 땅이 더 굳는다고 했던가. 고통이 찾아올 때, 내가 약해서 그렇구나 여기며 참고 견디면 오히려 더 굳건해질 수 있다는 지혜를 얻는다.
201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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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차, 벨로라도에서 아헤스 가는 길 27.7km(2) 


죽은자를 위한 기념비Monumento a los Caidos에서 바라본 내리막과 오르막!



당연히 순례자인 줄 알고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관광 중으로 한 코스만 걷고 돌아갈 거라는 스페인 사람 부부. 서로 부족한 영어와 몸짓으로 소통하며 잠시지만 기분 좋은 만남을 가졌다. 특히 가이드북을 꺼내게 하더니 펼쳐 지도에서 멜리데를 짚으며 거기서 꼭 뿔뽀를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헤어져 한참을 가다 뒤돌아 사진을 찍자 두 손을 들어 포즈를 취한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스페인 사람들!

여행 중 만나는 외국인들, 꼭 그 사람과 잘 통하는 언어가 필요한 것 같진 않다. 친근히 다가설 수 있는 마음과 따듯한 눈길만 있다면 자연스럽게 통하게 되어 있다. 잠깐이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르떼가 성당과 광장. 사진에 보이지 않는 왼편에 알베르게가 있다.

이 곳에 머물까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4km 좀 못되는 거리에 있는 아헤스까지 가기로 했다.


순례자를 노리는 도적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오르떼가와 아헤스 사이 숲길.



약간 일루셔니스트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풍경!




아헤스의 거의 유일한 상점Tienda. 멋스러운 모습이 좋았지만...

씨에스타 시간을 훌쩍 넘긴 5:40쯤 여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애를 태웠다.


산띠아고 51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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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차, 벨로라도에서 아헤스 가는 길27.7km(1) 


일찍 길을 나서기 때문에 이른 아침 해가 뜨는 멋진 장면은 순례자의 뒤를 따른다.  


또산또스Tosantos 바위의 성모 마리아 예배당


비얌비스띠아Villambistia



바게트 빵과 필라델피아 치즈면 점심이 된다는 레베카와 식당에서 먹어야 한다는 그녀의 친구! 

다시 만나 반가움을 웃음으로 드러낸다. 


산 펠리세스 유적지...그 앞에 순례자의 텐트가 있다.



까미노에서 만난 거의 유일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온 순례자, Little Mary!

한 번 길을 가르쳐준 후 볼 때마다 my friend!하며 인사해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끄레덴씨알(순례자 여권)을 받을 때 적어내는 종이에 까미노를 걷는 이유를 표시하는 칸이 있다. 종교, 영성, 문화, 스포츠, 기타. 이 네 가지 이유 외에도 더 많은 이유들을 가진 이들이 까미노를 걷는다. 저렴하게 유럽여행을 하기위해, 심지어 살을 빼려고 온 이도 있었다. 개중에는 친구가 갔다 오라고 해서 왔다고 했다. 그렇게 다양한 이유로 까미노를 걷는 이들을 순례자라고 한다. 처음에는 순수하지 않은 이유로 온 사람들이 길을 오염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동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과 달리 까미노는 이유를 묻지 않는 것 같았다. 앞세운 이유가 뭐든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대로 묵묵히 품어주었다.  
다만 스페인 사람들의 시선, 특히 대도시에서 순례자를 보는 눈은 솔직했다. 줄줄이 들어서는 순례자들에게 거의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젠 순례자가 아니어도 그 도시는 돌아가고, 순례자들이 예전처럼 종교적이고 영적인 이유만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서양인들이 한국 사람을 보면서 굉장히 궁금해 한다. 중국도 일본도 아닌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어찌 이리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이냐고. 그들에겐 한국은 그리 잘사는 나라로 보이지 않고 더구나 기독교 국가도 아닌 것으로 알기 때문에 당연한 의문일 것 같다. 최근 몇 년간 까미노를 소재로 한 책들이 많이 나왔고, 붐을 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 주지만 쉽사리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는 눈치다. 그들이 어떻게 보든, 뭐 어떠랴. 한 해에 한국인 약 2,500명이 까미노를 걷는다는데, 그 가운데 절반이라도 깊은 사색의 기회를 얻고 간다면 그 얼마나 우리나라에 좋은 보탬이 되는 것인가.

201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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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차, 산또 도밍고에서 벨로라도 가는 길 23.9km(2) 


까미노엔 산띠아고까지 남은 거리를 알리는 다양한 이정표들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마다 그 기준이 다른 지 

이미 555km 표시를 지난지 한참인데, 20km나 더해 576km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헐~


까미노 곁에 있는 해바라기 밭에 여지없이 순례자들의 손길이 닿은 해바라기들이 있다. 

얼굴, 화살표 등 다양한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다시 맞이한다. 재미있다.


순례자들은 쉼의 시간엔 가이드북을 꺼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시골 조그만 마을들에 고기를 파는 차가 왔다. 사진찍는 순례자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올라! 부엔 까미노!




이 날, 길에 유일한 나무 그늘이었다!


벨로라도 시내에서 만난 스페인 순례자와 지쳐보이지만 멋진 자태를 뽑내는 개들을 만났다.


목적지에만 마음을 두면 걷는 길은 고달프기 그지 없다. 그럴 때 과정은 신속히 지나가야하는 힘든 과제가 되어 빨리 지나가 버리기를 소원하게 된다. 결과에만 몰입해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과정을 뛰어넘으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걷지만 과정 가운데도 충분히 머물 때, 한 발 한 발이 고통이 아닌 즐거움이 될 수 있다. 결국 목적지는 과정, 한 걸음 한 걸음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과 대화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버거운 과제가 아닌 행복한 누림의 시간이 될 것이다. 

까미노 11일째에 접어들면서 빨리 걷겠다는, 먼저 도착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어느새 목적지에 눈 앞에 펼쳐진다. 더 빨리 가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201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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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차, 산또 도밍고에서 벨로라도 가는 길 23.9km(1)


기도하는 노부부, 고개 숙이고 손 모으고 한참이나 기도하는 모습에 숙연함을 느꼈다.





까스띠야 이 레온 지방에 들어서는 길목에 까미노를 안내하는 큰 이정표가 서 있다. 나중에 알았는데, 내 뒤에 서있던 아일랜드 출신 아저씨가 산띠아고에 거의 같이 들어갔다. 다리 굵기를 보니 그 이유를 알것 같다. ㅎㅎ


까미노,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참 적다. 걸치고 있는 옷과 갈아입을 수 있는 옷 한벌, 그리고 최소한의 생필품들이 8kg을 넘지 않는다. 그것으로 족하다. 더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까미노 위에선 그것에 더하기보다 빼기를 고민한다. 
나의 인생길 때때로 부족함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적지만 참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정말 필요한 만큼 적절하게 채워주셨다. 마치 8kg 조금 넘는 것으로도 부족하지 않은 것처럼 풍족하지 않지만 또 부족하지 않은 인생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내 속에 결핍이 아닌 풍요의 마음이 있다. 산토 도밍고에서 아침 출발 전 요기를 하는데, 앞에 앉은 노부부가 한참이나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 아마도 이들의 기도 내용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짧지 않은 인생길 가운데 부족함 없이 채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 오늘 깨워주시고 새로운 길을 걷게 해 주심에 감사.
201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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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차, 로스 아르꼬스Los Arcos






산티아고로 가는 길 거의 모든 마을에 성당이 있다. 오래전 순례자들은 그 성당 하나하나를 빼놓지 않고 들려 기도하는 일을 중요한 일로 여겼을 것이다. 그렇게 좋은 때를 보낸 대개의 성당들은 사용되지 않는 것처럼 먼지가 쌓여 있지만, 그 화려함만은 여전하다. 특히 성당 전면의 장식은 프랑스나 여타 나라의 그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번쩍거린다. 그 옛날 이것을 세우고 얼마나 기뻐하고 영광스러워하며,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중심이 될 것이라 기대했을까. 성당의 전후좌우 가득한 성상들, 그것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이 화려함에서, 이 웅장함에서, 이 섬세함에서 인간의 약함을 본다. 신을 성당과 그 장식들에 의존하다 못해 동일시하고 있으니. 그것의 도움이 절실한 그 존재적 한계가 인간의 본 모습이다. 종교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고, 그렇게 만들어 온 것이다. 문제는 처음엔 부수적이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중심으로 위치 이동을 하고, 더 중요한 자리에 앉아 버린 것이다. 그리곤 다시 현란함으로 인간의 시선을 빼앗고, 그 이면의 깊은 두려움을 낚아채 가버린다. 

종교의 겉모양을 통해 사람들의 필요, 요구, 본능을 어느 선까지는 채워줄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 겉모양과 형식을 더 중요하게 만드는 일을 종교인들이 해왔다. 형식에 치우친 종교는 알맹이 없는 껍질만 남게 되고, 껍질에 껍질을 더하는 비만한 종교를 만들어갈 뿐이다. 늘 껍질의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건물도 넘어서야 하고, 종교인들의 주장도 넘어서야 하고, 심지어 경전도 넘어서야 한다. 그럴 때 어렴풋하게 본질을 보게 될 것이다.

201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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