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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운동본부에서 계간으로 발행하는 귀농통문의 원고요청이 있어서 작성한 글이다. 지나서 다시 보니 정말 못썼다는 생각이 든다. 잘 써지지 않는 글을 억지로 썼더니만...)

이제 겨우 2년차에 들어서는 초보농사꾼인지라 여전히 소개할 때 농부라고 하는 것이 어색합니다. ‘농(農)’자에 서툰 초보이기 때문입니다. 내려오기 전에야 이런저런 말을 많이 했었지만, 말이 쉽지 생각했던 것들을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디 만만한 일인가요. 그래서 ‘농촌에 사는 거죠’라고 말한답니다. 아직 제 땅이라고는 한 평도 없이 남의 땅에 우리 먹고 조금 나눠먹을 만큼의 몇 가지 작물들을 재배하고 있을 뿐이고, 올해 들어서 조그만 포도밭을 하는 정도니 말입니다. 그래도 농촌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가졌던 작은 소망들이 이루어져 가는 곳이 바로 이곳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신흥리입니다.
상주로 내려오게 된 결정적 계기는 전혀 예기치 않았던 만남 때문이었습니다. 귀농학교를 마치고 참석하게 된 귀농인의 날(2004년)에 연락이 끊겼던 친구(향유아빠)를 거의 십여 년 만에 재회한 것입니다. 고3 수험생의 시기를 같이 보냈고, 20대 초반의 고민들을 조금이나마 함께 했었던 친구를 귀농인의 날에 만나다니, 그리고 그 친구가 귀농학교 4기에 귀농 7년차의 대선배라니. 그래서 당연히 친구네 집에 놀러 가게 되었고, 마을을 둘러보다가 눌러 앉아 버렸습니다.
친구의 도움이 전제되었음에도 삶의 터전을 새로 만들어 가는 일은 만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 요인들 때문인지 마을에 정착해가는 과정이 생각보다는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지상권만 산 것이지만 집을 구입한 것이 동네 분들에게는 인상 깊게 여겨진 것 같습니다. 원래는 꽤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으로 수리해서 들어가려 했는데, 수리비가 너무 많이 들어 갈 것 같아 그 집 바로 옆에 있는 할머니가 자식들 집에 오가며 닫혀 있었던 집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특별히 외지인에게 배타적이지 않은 분위기 탓도 있었지만, 집을 샀다는 얘기에 동네 분들은 ‘우리 동네 사람 됐네’하시며 반겨하셨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 내려오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내려 온 것도 안정적으로 보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어머니께서 마을에 속한 교회에 출석하신 것입니다. 이로부터 우리 가족의 존재가 더 넓게 공인되었으니까요. 요즘도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이 마을의 일원으로 별 갈등 없이 살고 있다는 것에 놀랄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초보농부 이야기
귀농 첫 해 농사는 집 주변의 70여 평의 텃밭과 ‘잡골’이라고 부르는 골짜기에 700여 평의 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천 평이 넘는 밭이었지만 쟁기질하고 갈고 하는 것은 삯을 주고 트랙터로 한 나절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돌아서면 자라기 시작하는 풀을 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지라 700여 평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정말 농사는 풀매기라더니, 풀 뽑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로터리 치고 얼마 가지 않아서 잔디를 깔아 놓은 것처럼 되더니 금세 무성하게 자라버렸습니다. 하여간 풀 뽑는 일 정말 진하게 경험했습니다. 덕분에 1년 만에 아버지는 풀 뽑는 전문가(?)가 되셨고, 동네에서는 풀 약 안치고 생으로 풀매며 농사짓는다고 소문이 확 돌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게 해서 생산한 것들을 비싼 값에 팔아서 고소득을 올린다고 이야기들 하신다는데, 솔직히 콩과 들깨 몇 말 팔아서 생계가 되었을까요?
아무튼 1년 정도 지내면서 동네 분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무엇으로 먹고 사냐?’는 것이었습니다. 말뜻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것이죠. 밭농사 800평은 그 분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즉, 수익 작물인 포도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두 번째 해가 되는 올 해에는 포도농사를 지어 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내려오면서부터 하려고 했었지만 막상 엄두도 안 나고, 소개받은 포도밭이 차가 들어가기가 어려워서 하지 않기로 했었습니다. 올 해는 저에게 적당한 크기(5,600평)의 포도밭을 구하려고 했는데 막상 괜찮은 것이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안쓰럽게 생각했는지 뒷집 사는 형님이 자신이 부치던 밭 중에 500평 조금 못되는 밭을 해보라고 선뜻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닌지라 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향유네 포도밭을 표본 삼아, 향유아빠가 뭐하나 살펴 가며 포도농사의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향유포도’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나름대로 ‘참(charm)포도’라는 브랜드도 만들었습니다. 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저농약인증도 받았지만 올해 생산되는 포도는 아름아름 지인들에게 판매할 정도 될 것 같아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고 있습니다.
농사 규모가 크던 작던 필요한 것은 똑같았습니다. 특히 경운기는 필수 중에 필수였습니다. 남의 손 안 빌리고 밭을 갈고 로터리 치고 싶었고, 포도나무와 감나무에 약도 쳐야 했기에 중고로 경운기도 덜컥 들여 놓아 버렸습니다. 막연하게 굉장히 위험한 농기계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주저되기도 했지만 막상 들여 놓고 이리저리 만져보니 나름대로 참 유용한 기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이 들긴 하지만 남들 하는 것 따라 대부분을 손수 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옆집 할아버지 밭도 넉넉하게 갈아드렸으니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관리기 끌고 오셨던 이웃 아저씨는 ‘처음 하는 거 아닌가?’하시며 제법 한다고 한마디 거드실 정도였습니다.
감나무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지난해에는 감을 딸 때까지도 감이 가져다 줄 수익을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니 일부를 장사꾼에게 팔아버렸죠. 깎아서 매달아 둔 것들이 곶감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야 그 가치를 알게 된 거죠. 곶감도 충분히 장사가 되겠다고요. 그래서 올해는 봄부터 감나무에 마음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집 주변으로 있는 나무가 열 그루가 넘게 있고, 옆집 할아버지네 감나무 네 그루도 임대했고, 잘 키워서 곶감장사를 해보려고 합니다.
포도도 좋고, 감도 좋지만 사실 농촌에 사는 맛은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들을 심어보고,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텃밭에 오이, 감자, 옥수수, 토마토, 땅콩 등을 심어 놓고 조금이지만 수확의 기쁨을 얻었고, 올 해에는 수수, 녹두도 심어 보았습니다. 이런 다양한 것들을 심어 키워가는 과정이 농부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양다리 걸친 농부지만
그래도 여전히 직업을 쓰는 난이 있을 때 뭐라 쓸까 고민합니다. 농사만 지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주저 없이 농부라고 쓰겠지만 지금 저의 삶의 중요한 일부가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소위 ‘교육전도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 경제적 필요를 이 사역(ministry)을 통해서 채우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하게 될 때는 ‘난 양다리 걸치고 있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부모님이나 저나 축적해 놓은 자본이 없기에 서툰 농사만 바라보고 몇 년을 살 수는 없기에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필연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일면 소명을 갖고 있는 일이기에 지속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몸이 왔다갔다하는 것처럼 때때로 마음도 두 곳을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외형적으로는 농부를 닮아가고 있지만 제 속에서 꿈틀대는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은 저를 틀 지우는 것들에 대한 저항의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도시에서의 삶, 그리고 나에게 요구되는 것들에 대한 일말의 항변을 하며 떠나오긴 했는데, 그래서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그리고 있었는데, 농촌은 농촌 나름대로의 틀이 있고, 농부다움이라는 저변에 깔려 있는 의식들이 어깨를 누르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성공적인 농부의 상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기운이 저를 감싸는 것입니다. 어쩌면 가족관계, 물질에 대한 의존,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성공에 대한 가치 등은 그대로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노골적이기까지 해 보입니다. 그러니 삶이란 도시든 농촌이든 같은 것이고, 결국은 환경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농촌은 충분히 좋고 매력적인 곳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시절을 따라 심고 가꾸고 거둠이 있고, 예전보다는 줄어들긴 했지만 생명의 순환이 있고, 무엇보다 땀 흘려 애쓰지만 결국 하늘을 바라 볼 수밖에 없는 삶의 마디들이 있는 곳이 이 곳 농촌이니까요. 그러기에 이런저런 고민들을 찾잔 속의 태풍으로 여기며 오늘도 감사와 기쁨으로 미완의 그림인 귀농의 한 부분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돌소리는
귀농학교 31기로 2005년 2월에 경북 상주로 귀농하여 교회사역을 겸하며 부모님과 함께 포도와 감 등을 주 작목으로 재배하고 있는 초보농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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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 주간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진행된 한시 여름 뿌리기 사역에 다녀왔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 나는 선발대로 갔으니 일요일부터 시작한 일주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인데, 사실 일주일을 해 보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 한 번 하고 나서 선뜻 또 가겠다는 생각을 먹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난 95년부터 빼먹지 않고 해오고 있다.
안 빠지고 할 수 있는 비결은... 이 기간에 더 중요한 스케줄이 없었던 것도 그렇고,
그 것보다는 사역에 가는 것에 대해서 갈까 말까 고민을 하지 않는데 있을 거다.

아무튼 올 해도 300여 명의 사역원들이 신원면을 중심으로 정말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난 본부에서 사역을 했는데 주로 차량 배차를 담당하면서 시간이 되는대로 주방 업무를 도왔다.
그래서 어르신들이나 아이들과의 질척한 만남의 이야기들은 별로 없다.
대신 전체적인 흐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느낌들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사역의 횟수를 더하다 보니 이제까지 해왔던 사역들과의 다른 점들을 보게 된다.
이번 사역의 특징이라면 지난 어떤 때보다도 사역자들이 어르신들에게 받아오는 것들이 많았다는 거다.
오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과일과 야채들, 음료수에서 밑반찬들까지.
목사님께서 밤 시간에 사역자들에게 나누어주고도 남은 것들이 주방에 줄줄이 들어왔고,
운전자들이 차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내릴 때 비닐 봉투를 들고 내리는 모습도 예사였다.

서양 격언에 ‘가난한 사람은 선물하기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랬다. 신원면은 정말 가난한 곳이다.
들이 없이 산과 골짜기뿐이어서 풍요로운 소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농촌에 젊은 사람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비닐하우스라고 했는데,
정말 신원면에는 눈을 씻고 봐도 비닐하우스를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신원면의 특산물은 밤이다.
결국 산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밤나무를 심은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선물하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만큼 마음이 따듯하다는 뜻일 것이다.
뭔가를 나누어 먹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나쁘게 볼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마을에 가면 그 분들의 마음에 우리는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행여 마을잔치에 초대되어 오시더라도 끝나기 전에 돌아가려고 일어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사역 중에 하나는 나가시는 분들을 막아서는 일이었다.
어떨 때는 밟고 지나가시라고 흙바닥에 누워버리면서까지 제재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분도, 정말 한 분도 먼저 일어나서 나가시려는 분이 없었다.
그만큼 당신들의 마음을 우리들에게 주고서는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오랫만에 마을잔치의 마지막 순서인 워십과 큰절까지 할 수 있었고,
곧바로 차량 배차를 위해 뛰어 갈 수 있었다.

격정적인 한 주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 끝났구나!’라는 탄성이 절로 난다.
내년에도 내가 이런 현장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든다.
그만큼 만만치 않은 사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이야기 한 것처럼 ‘꼭 이렇게 힘들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옷도 갈아입으면서, 모자도 쓰고, 매일매일 씻어 가면서, 쉬어 가면서 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도라는 것이 인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냥 지나가면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칠 수도 있겠으나
진정한 전도라면 한 사람의 긴 삶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 긴 여정을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려 내려면 그만큼 긴장이 필요하고,
절제와 헌신을 기반한 눈물과 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략해 버리고 단순히 복음의 전파라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그릇 없이 음식을 들고 가는 것과 같은 형국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 준비된 그릇, 주인들이 받아먹기에 안성맞춤인 그릇이 되어
복음을 담아 가는 집약적 기간이 바로 일주일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일주일이라는 시간에 땀 흘림을 마다하지 않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긴박감을 갖고 뛰어다닐 수 있는 것이리라.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면 한 번 더 했다는 그래서 계급장이 늘었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의 부족함을 하나라도 더 발견하고 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
여전히 나만의 편리를 찾고, 나의 역할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려 하지 않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횟수를 더할수록 뭔가 더 깊어지고, 수준이 높아져야 하는데 반대로 가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2006.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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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학살’ 거창에 18년째 복음 씨앗… 700여명 숨진 슬픔의 땅                  국민일보 2006.8.21


경남 ‘거창 양민 학살사건’ 현장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

장위동교회 불꽃교회 주안장로교회 순복음경동교회 하이기쁨교회 한시미션 등의 사역자 및 교인들은 한시기독학생연합,숲과나무교사모임 등과 공동으로 지난 14일부터 19일까지 거창군 신원면과 남상면 및 산청군 차황면 일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거창 신원면은 1951년 2월 10∼11일 공비토벌 중인 국군들이 죄 없는 양민 600여명을 학살한 사건이 발생한 곳. 이 때문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마을 전체를 짓누르고 있다. 또 얼마 전 수해까지 당해 지역 주민들은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2005년 현재 산청군과 거창군의 복음화율은 각각 6.9%,9.3%에 불과하다. 이번에 기독인들의 대규모 방문을 받은 현지 주민들은 “큰 위로와 격려가 됐다”면서 “특히 노인들을 위해 일일이 안마를 해주는 기독 청년·학생들의 해맑은 모습을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고 감격해했다.

‘뿌리기 사역’이라고 명명된 이번 활동을 위해 350여명으로 구성된 연합팀은 5개월 전부터 기도회를 갖는 등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18년째 경상도 및 전라도 지역에서 ‘뿌리기 사역’을 해온 한시미션의 노하우를 배우기도 했다.

이들은 이번 활동기간 중 3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로잔치 노천성경학교 수요찬양예배 축호전도 청소년캠프 등을 마련하고 비지땀을 흘렸다. 국악팀은 마을회관이나 정자나무 밑에서 가야금 피리 해금 태평소 장구 등을 연주하며 주민들에게 흥겨운 무대를 선사했다. 한중이혈건강요법학회 회원 및 이·미용팀은 의료 및 이·미용 봉사를 담당했다. 화요일 경로잔치에는 400여명,수요찬양예배에는 500여명,금요일 마을잔치에는 800여명의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등 높은 호응도를 보였다.

이번 활동에 참여한 소프라노 민숙연(하이기쁨교회 집사)씨는 “하나님 기쁨과 이웃 기쁨을 실천하는 장에 동참한 것만으로도 신앙적으로 큰 도전을 받았다”며 “복음을 거부하던 주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 문을 여는 모습을 보고 전도를 위해 땀 흘리면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조병호(한시미션 대표) 목사는 “기독인들의 선한 행실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잔잔히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이 뿌리기 사역의 주 목적”이라면서 “복음의 혜택에서 소외된 마을의 주민들을 섬기는 이 사역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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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화장실 똥 푼 날은 꼭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날이다.
삽 십 오륙 도를 넘나드는 날에 화장실을 푼다는 것은 정말 하기 싫은 일이다.
땀을 비 오듯 흘릴 것이 뻔한 것도 그렇고,
좁은 화장실 안에서 조금은 역한 냄새를 맡으며 그것을 퍼내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자꾸 차오르면 더 이상 화장실이 화장실의 기능을 못하게 될 것이니까.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 줄 수 없으니
숨이 콱콱 막히는 날이라도 똥바가지를 들고 똥을 퍼야 한다.

일단 똥을 부을 곳을 정해서 팔 수 있을 만큼 깊게 파고, 사방으로 흙을 돋우었다.
그리고 마른 풀들을 깔고, 왕겨도 적당히 뿌려둔다.
그리고는 똥물을 퍼다가 붓는 거다.
가져오면서 이 곳 저곳에 흘리고, 옷에도 튀고...
아무리 냄새가 안나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똥은 똥이다.

장갑을 끼고 작업을 했는데도 아직도 손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장갑이 완전히 차단을 하지는 못했나보다.
비누로 하다가 안 되서 조금 전에는 치약으로 닦았더니 냄새가 한결 덜해졌다.
그래도 이제 한 넉 달 정도는 신경 안 쓰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뿌듯한지.

200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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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타령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26. 21:51
요즘 들어 부쩍 나이타령을 많이 하게 된다.
아무래도 노총각이다 보니 몇 살이냐고 물어 오는 경우도 많고,
나 스스로도 나이를 환기시키게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나보다 현저하게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특히 더 그렇다.
“나는 88년에 전도 하러 다녔는데, 그 때 너는 뭐 했냐?”
“난 박정희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텔레비전 보면서 울었는데...”
등등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까 주로 20대 중반 이하나 중고등학생들과의 이야기 때의 일인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모습이 정말 가소롭게 보인다.
그래봐야 겨우 삼십대 중반을 사는 주제에,
만약 5,60대의 어른과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나 역시 아무 말도 못할 것 아닌가?
“나는 유신 때 대학생이어서 대모를 했는데, 그 때 너는 뭐 했나?”
“너 4.19, 5.16을 아냐?”
라고 질문 한다면 말이다.
그러니 나이 타령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하나님의 영원에 비한다면 더더욱 말이다.
10년 이든 100년이든 한 점도 되지 않을 일이 아니겠는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맞는 것 같다.
오로지 하나의 생명체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의 시간을
얼마나 진지하게 살아가느냐가 관건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이런 어리석은 대화는 그만두어야겠다.
나보다 어리든 나이가 더 들었던 간에 그 생명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으로
존경과 사랑을 표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 생각된다.


나이 가지고 유세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지.
나이값도 못하면서.
나이가 더 들수록 더 말을 줄이고 더 들을 줄 알아야  하지 않을지...

200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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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후배들하고 같이 잘 일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앉아 있는데 한 후배가 이불을 개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통은 이불을 갤 때 길게 한 번 접은 상태에서 접어야 삐져나오는 부분 없이 잘 갤 수 있다.
군대 언어로 한다면 각이 잘 나오게 할 수 있다는 얘기고, 가지런히 정리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렇게 개면 어떻게 하냐!’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 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방식이 반드시 옳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그렇게 접는다면 또 그것이 옳은 것이고,
혹 또 다른 방법이 있다면 또 그 방법도 옳은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어떻게 매사에 나의 방법, 이제까지 해 왔던 내가 아는 방법만이 옳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강요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각각의 다양한 시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틀림에 대한 정죄가 아닌 다름에 대한 조화의 미덕을 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나의 방법으로 갠 이불을 그 친구가 개어 놓은 이불 위에 올려놓았다.

200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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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제일먼저 대문을 연다.
밤사이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면 안에 머물던 것들이 나가고,
밖의 신선한 기운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어머니는 웃으시며 복이 들어오라고 대문부터 연다고 하신다.
정말 그것을 믿어서라기보다는 기분이 그렇다는 말씀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내가 먼저 대문을 여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 집이 움직임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웃들은 이미 한참 일을 하고 있을 늦은 시각(상대적)에 일어나서
약간의 미안함에서 오는 머쓱함을 해소해 보려는 것이다.
대문이 열렸다는 것은 뭔가를 하고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찍 대문을 열어 복이 들어오게 한다는 것은
이른 시각부터 부지런히 일을 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결과물 일 런지도 모른다.
요사이 문에는 단절을 위한 기능들이 추가되는 추세이지만
그것이 소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렇듯 농촌의 삶이란 ‘열려짐’이다.
열려진 공간 속에 열려진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

200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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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관공서에 다니는 것을 대체적으로 꺼린다고 한다.
나 역시 이런저런 서류들을 갖추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고, 귀찮게 느껴져서 가능하면 안 하자는 주의다.
작년에 내려오자마자 천여 평 되는 밭의 농사를 시작을 하긴 했지만
그것으로 계약서 써서 농지원부 만드는 일이 귀찮아 차일피일 미루다 해를 넘겨 버렸다.
그런데 올 해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포도밭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데, 저농약, 무농약 인증을 받으려면 친환경 작목반에 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서류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기본이 농지원부다.
그래서 지난주엔 땅 주인과 계약서 쓰고, 어제는 이장님 도장도 받고,
오늘 면사무소 산업계에 신청서식에 맞춰 제출했다.
그런데 자판을 뚝딱뚝딱 하더니 ‘한 부 가져가실래요?’하는 거다.
‘얘! 바로 되요?’라고 할 밖에.
그래서 두 부 발급해 달라고 했다.
한 부는 작목반 관련 서류로 제출하고, 한 부는 집에 두고(!) 보려고.ㅋㅋ

(아무래도 감동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오늘은 정말 김민태의 생애에 역사적인 날이다.
농부가 된 것이다.
아니 국가공인 농부가 된 것이다.

대한민국에 농부가 한 명 더 늘었다.

*농지원부 : 행정관서에서 농지의 소유 및 이용실태를 파악하여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 관리하기 위하여 작성 비치하는 것인데,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이것을 기초로 하는 것 같다.

20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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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오전에 포도밭에 약을 쳤다.
무농약 농사에서 허용하는 유일한 살충제라는 석회유황합제(?)였다.
일단 작은 그릇에 녹여 큰 물통에 넣어서 정해진 양의 물에 희석한 후, 밭으로 갔다.
호스들을 재위치 시킨 후 경운기에 시동을 걸어 펌프를 돌아가게 하고,
뛰어가서 한 나무 한 나무 흠뻑 젖도록 뿌려 주었다.
아무튼 경운기로 약치는 도구들을 싣고 밭까지 간 것도 그렇고,
경운기를 돌려 약을 치게 되다니 이젠 정말 농부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약줄 놓는 것 하나도 물어 가며 해야 하는 초보농부이긴 하지만...

화학약품으로 만든 농약이든, 친환경제재로 만든 농약이든 간에 농약은 작물을 위해 친다.
병을 예방하거나, 해충을 박멸하거나, 영양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작물에는 어쨌든 이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농약병의 뚜껑을 열어서 그대로 작물에 붓지는 않는다.
간혹 가루를 잎 같은 곳에 직접 뿌리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농약은 물에 타서 사용한다.
한마디로 희석(稀釋, 용액에 물이나 용매 따위를 가하여 묽게 하는 일)을 시킨다는 것이다.
3k를 90리터의 물에 넣으라고 하면 30배 희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것은 100배, 200배 희석을 해서 치도록 한다.
아무리 이로운 것이라고 해도 원액 그대로를 뿌리면 오히려 작물을 죽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입에서 나오는 '말'도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옳고, 바른 말로 상대방에게 필요하다고 해도 너무 직설적으로 내뱉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얘기다.
상대방을 살리겠다고 말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죽게 만들 수도 있다.
그 말을 들을 때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도 좀 희석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상대방도 살리고, 나도 살 수 있도록 30배, 60배, 100배로 말이다.

2006.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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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26. 21:46
횡단보도에 대한 한 추억이 있다.
98년에 영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아마 자동차 문화로 치자면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가 아닐지 모르겠다.
더구나 마차로부터 시작한 것이라고 보면 더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보도에서는 당연하고, 차도에서조차 보행자가 우선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도로에서 보행자가 버튼을 눌러 신호등을 켜고(물론 조금 후 파란 등이 켜짐) 건넌다.
그런데 차가 없을 때는 대부분의 보행자들은 파란불이 들어오기도 전에 건너가 버리고
그 뒤에 온 차들은 보행자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빨간불에 멈추어 서지만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심지어 런던에 갔을 때는 빨간 불이어서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는데
지나가던 차가 멈추어 서더니 운전자가 먼저 지나가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한국에서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경험을 하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버스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여러 대 줄지어 들어와서 내가 타야할 버스가 한참 뒤에 섰다.
그래서 그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옆을 보니 아무도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정류장에 맞추어 선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만 움직일 뿐이었다.
그래서 움찔하고는 버스가 가버리지나 않을까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서 있었는데,
버스들이 차례로 줄지어 들어오고 내리고 타는 것이 지나고 내가 타야할 버스도 정류장에 맞추어 서는 것이 아닌가?
그 때에야 비로소 기다리던 사람들이 탑승을 하는 것이었다.
운전사는 입구로 나와서 손님들의 짐들을 들어주고, 밝게 인사까지 했다.
그 버스 운전사도 대단하고, 전혀 움직이지 않고 기다려 버스를 타는 사람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기다리고 양보하는 것을 명예로 여기는 사람들,
최소한 그 면에서는 신사의 나라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인들을 위해 횡단보도의 보행 시간을 늘리겠다는 생각에 박수를 칠 만 하지만
그에 앞서 횡단보도의 보행 시간에 상관없이 보행자를 우선하고, 보호하려는 운전자들의 의식, 자동차 문화의 부재가 아쉽다.


‘노인 많은 곳’ 횡단보도 신호등 시간 연장
[문화일보 2006-04-10 14:17]  

급속한 고령화 사회 진입에 맞춰 횡단보도 보행시간이 늘어난다.
1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서울 파고다 공원처럼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의 인근 도로와 경로당 등 노인시설과 인접한 도로의 횡단보도 보행 시간이 지금보다 20%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현행 규정은 횡단보도의 진입 시간 7초에 더해 도로 폭 1m당 1초를 부여하고 있다. 폭 40m 도로의 경우 47초가 주어지는 셈이다. 복지부는 내년부터 노인들의 이동이 잦은 횡단보도의 경우 진입시간 7초와 0.8m당 1초를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진우 기자

200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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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화장실 똥을 펐다.
횟수를 더 할수록 도구(?)도 갖추어지고, 노하우도 생겨서 조금 더 수월하게 일을 마친 것 같다.
지난해 6월에 퍼서 덮어 두었던 것을 걷어서 밭에 뿌리고 그 자리를 정리해서 마른 풀들을 더 깔고 다시 부었다.
향유네서 배운 대로 볼일을 본 후 왕겨를 뿌리고 있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똥냄새도 안 나고, 파리도 덜 낀다.
또한 똥을 풀 때도 옮기는 나에게만 조금 날 뿐 마당에서 다른 일을 하고 계신 부모님들은 냄새가 안 난다고 하실 정도다.
그러니까 화장실에서 거의 액비(액체 비료)가 되어 버리는 거다.
예로부터 잿간을 화장실 곁에 두고 재를 뿌렸던 조상들의 지혜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지난해 두 번째 푼 똥은 감나무 주변에 바로 거름으로 주었고,
오늘은 작년 6월 말에 처음으로 펐던 똥을 밭에 거름으로 뿌렸으니
정말 내가 소망했던 ‘순환’이 실현되는 현장을 똑똑히 목격한 날이었다.
충분히 발효를 시켰으니 기생충이나 해로운 것들이 작물에 들어갈 염려는 할 필요가 없다.
조금의 역한 냄새만 참고, 진땀나는 짧은 시간만 견디면,
나는 내가 저지른 일을 내가 처리하는 실로 감격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도시 뿐만 아니라 농촌 어디를 가도 정화조를 묻고 똥차가 와서 퍼가는 형국이니
아마 나처럼 똥을 퍼서 확실한 거름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정말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집 앞에서 오후 내내 못자리를 만드느라 땀 흘린 뒷집 형은
‘똥 퍼요?’하면서 뭐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일로 땀 흘린다고 하나 하겠고,
부모님도 똥 푸는 일, 좀 꺼려지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는 아들이 신기하게 느껴지시겠지만,
난 똥 푸는 일을 일면 사명감을 가지고 기쁘게 하는 ‘사역’의 하나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오늘은 나에게 일 년에 몇 번 할 수 없는 정말 소중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가슴 벅찬 날이었다.

2006년 4월 3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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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만약 서울에 살고 있었으면 '가뭄에 비가 와서 좋네'하면서도 솔직히 좀 귀찮아 할 것이 분명하다.
가뭄이라는 것에 대해 거리감을 느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난 정말 기분이 좋다.
오전에 몇 가지 해야 할 일을 하고 난 후 내리는 비, 더구나 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비여서 너무 좋다.
어제 감자를 심었는데(좀 늦음), 딱 맞게 비가 내려 주니 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지난해에 마을 어르신께서 지나가시면서 비와 관련해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농촌에는 비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고, 비 온 후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때에 맞춰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별 생각 없이 감자도 심고, 포도밭에 거름도 했는데 그 말씀 따라 계획적으로 한 것처럼 되었다.
농촌에서의 생활이 만 일 년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무슨 일이든 하기 전에는 꼭 옆 집 할아버지나 귀농 선배들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텔레비전도 보고, 인터넷을 하건만 잠시 날씨 확인 하는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니 지난해와 별반 다름없이 나는 초보농부일수밖에 없다.
매일 수차례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뒷집 형도 '오늘은 이 친구 뭘 하나, 제대로 하나'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도 당연하다.
사오 년? 아니면 그 이상 초보농부일 것 같다.

봄 가뭄을 해갈하는 비이기를 바라면서
마음속까지 시원함을 느끼며
행복해 하는 초보농부의 두서없는 넋두리다.

20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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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오후에 교회 마당에 세워진 차에 몇 가지 짐을 넣어 두려고 문을 여는데
초등부 꼬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오더니
‘전도사님! 차가 왜 이거예요?’하는 거다.
순간적으로 ‘이 차가 어때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웃으면서 별 이야기는 하지 않고 차 문을 닫고,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기하게 보일만 한 것 같다.
아이의 입장에서 전도사님이 승용차도 아니고,
최소한 스타렉스 정도도 아니고, 트럭(화물차)을 몰고 다닌다는 것이.
만약 내가 그 입장이었어도 그렇게 말했을 것 같다.

처음에 교회에 차를 몰고 가서는 걸어서 5분 거리 정도 되는 멀찍한 곳에 차를 세웠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좀 먼 것 같아서 2분 정도 거리에 세웠고,
또 좀 지나서는 교회 건물 건너편에 있는 교회주차장에 조심스럽게 세웠다.
그리고 여름성경캠프 때 짐을 나르게 되면서 아예 교회 마당에 주차하게 되었다.
볼 사람은 다 봤으니 자신 있게 대기 시작한 거다.
주일 아침에 교회 마당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는데
관리집사님께서 주일에 교회 마당에 트럭은 주차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짓을 하시다가
‘어! 전도사님이네’하며 웃으실 때도 있었다.
아무튼 그 이후로는 별 일이 없는 한 거리낌(?)없이 교회 마당에 주차를 한다.

전도사가 트럭을 몰고 다닌다는 것이 어떻게 생각하면 별 일 아니지만,
기존 교회의 상식으로는 아마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거다.
우리 부서 선생님들도 그러했겠거니와 말은 안 해도 다른 성도들도 그랬을 것이다.
몰고 다니는 입장에서야 농촌 생활에서 더없이 유용한 차가 화물차이고,
운전하기도 어떤 차보다도 편하니 아주 좋은 교통수단인 셈이지만 말이다.

‘전도사님 차가 왜 이거예요?’라고 묻는 꼬마에게 대답할 말이 생각났다.
‘멋있잖아!’

20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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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의 아이인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생명의 딸이며 아들인 것을!
그대를 거쳐왔으되 그대로부터 온 것은 아니며,
또 그들이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에게 속한 것은 아니다.

그대의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그 자신의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대는 아이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는 있으나  영혼의 집마저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 그대가 결코 찾아 갈 수도,
꿈속에서조차 가 볼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 아이와 같이 되려 애쓰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 애쓰지 말라.
왜냐하면, 삶이란 결코 뒤로 되돌아 가진 않으며, 어제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활, 그대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 있는 화살처럼 그대로부터 앞으로 쏘아져 나아간다.
그리하여 사수이신 신은 무한의 궤도 위에 한 표적을 겨누고,
그 분의 온 힘으로 그대를 구부리는 것이다.
그 분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그대, 사수이신 신의 손길에 의해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왜냐하면, 그 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는 만큼 또한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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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26. 21:39
몇 년 전 교회에서 남선교회 모임에 가서 말씀을 전할 일이 있었다.
중년남성들에게 무슨 말씀을 전할 수 있을지 조금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식당으로 갔다.
순서가 되어 '어린이들을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무관심하게 앞쪽만 쳐다보고 있던 집사님들이 갑자기 고개를 내 쪽을 돌리고는 ‘정말 그래요?’ 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아마도 내가 맡았던 부서에 속한 자녀를 가진 이들이 반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백퍼센트는 아니더라도 대략은 짐작할 수 있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잘 관찰하면 그 부모들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최소한 부모들이 그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지는 알 수 있다.
왜냐면 자녀들은 그 부모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자기 성찰을 통해 극복하기 전까지는 대개가 부모를 답습하게 마련이다.

부모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그대로 아이들이 사용한다.
그리고 일관성 없는 삶의 내용이 그대로 아이에게 옮겨져 종잡을 수 없는 아이로 자라게 한다.
아이들이 참을성이 없고, 불안해하고, 조급하고, 화를 잘 낸다면 그것은 아이의 문제라기보다는 부모가 문제라고 하면 맞다.
반대로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도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오는 아이만의 도피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부모로부터 이어지는 것들을 유산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다.
물질적인 어떤 것만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전해지는 삶에 대한 태도 역시 유산이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유산을 전하지 않고 긍정적인 유산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첫 번째는 부부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일부러 연출할 것까지야 없겠지만 아이들이 볼 때도 당당하게 포옹하고, 키스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사랑한다는 말을 진지하게, 자주 해 주는 것도 좋다.
반대로 싸우는 모습은 '절대'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부분이 특히 한국의 부모들에게 가장 취약하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다.
사랑을 보고 자라지 못한 아이는 타인은 물로 자기 자신도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른다.
그래서 늘 부정적이 되고, 불평하게 되고, 심지어는 자학적인 모습도 보이게 된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학원에 많이 보내고
무언가를 풍요롭게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잘못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해 준, 해 줄 수 있는 어떤 것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부모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에게 자신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바른 원칙에서 오는 규칙적인 좋은 습관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독서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 책을 가까이 하는 아이가 될 것이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 공부하는 아이가 될 것이다.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모습,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잠자리에 드는 모습, 부모님께 공손히 안부를 묻는 모습 등은 아이들에게 깊이 새겨질 것이다.
종종 새벽기도를 평생 하신 분의 자녀들이 잘 되었다는 설교 예화를 듣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셔서 은혜를 주셨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새벽기도를 나가는 부모의 한결같은 습관을 보고 그 자녀들이 그것을 배우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 삶의 태도로부터 오게 된 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인생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보지 않은 것을 스스로 만들어가려면 그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말 부모 됨의 우선적인 요건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기필코 ‘극기’라고 말하고 싶다.
자녀를 위한, 아니 자신을 위한 좋은 습관은 극기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후세대들에게 남길 유산은 사랑과 습관이다.

2006.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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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의 신혼집에 갈 일이 있었다.
아무래도 신혼인 가정에 방문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는 둘 만의 공간을 침범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친구의 부인이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거다.
벌써 몇 차례 친구들을 초대했었는데 아주 즐겁게 여겼단다.
더욱이 음식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하니 정말 신기한 노릇이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결혼 참 잘했다고 몇 번이나 얘기해 주었다.

흔히 남자들은 자신들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대로 장애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여자의 울타리 안에서일 뿐이다.
사실 눈에 보이는 어떤 것도 없지만 남자는 여자가 그려주지 않는 일은 거의 하지 못한다.
아주 작게는 친구 하나 집에 데리고 오는 일부터,
보다 크게는 자신이 가진 꿈을 이루어 가는 일이 그렇다.

여자는 칭찬과 격려로 남자를 나아가게 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반대와 무시로 남자를 주저 앉혀버린다.
남자가 아내가 지지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게 되더라도 제대로 하려고 하면 몇 배의 힘이 든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차 아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비율이 높아간다.
실제로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남성 호르몬이 줄어들면서 심약해지나
여성들은 그 반대로 오히려 더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어 간다.

그러므로 여자들, 아내들은 남편을 볼 때 비록 좀 부족해 보이고
때로 유치해 보여도 그것을 직설적으로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
여성들에게 부족한 점이지만 좀 더 멀리 내다보고 넓게 품음으로 격려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남자들은 아내에게 좀 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아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해야 한다.
아마 대부분 그것이 생각보다 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놀랄 것이다.
그것은 부족한 자신과 함께 해 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 하는 것이 될 것이다.

2006.1.2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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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작년에 쉬었던 물주기 사역을 다시 하게 되었다.
지난달에 서울에 두어 차례 갈 일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가지 않으려고 하다가
운전자가 필요하다는 친구의 간곡한 부탁이 있어서 자의 1/3, 타의 2/3로 사역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것도 선발대부터 말이다(나중에는 후발대까지 하게 됨).

물주기 사역은 일단 뿌리기 사역이 있은 후 겨울에 진행하는 사역이다.
뿌리기 사역은 8월 둘째 주 한 주간 농촌(교회가 없거나, 있어도 상대적으로 약한 곳)에 내려가서
어르신들을 만나서 예절로 다가가 마음의 문을 열고 열려진 마음에 복음을 심고,
어린이들에게도 역시 사랑으로 다가가서 예수님을 소개하는 소위 농촌 전도 프로그램이다.
그 후 그 때 만났던 아이들과 편지를 6개월 정도 주고받은 후 이듬해 2월에 그 아이들을 서울로 초청해
3박4일 동안 선생님과 일대일로 함께 지내며 서울 구경(남산, 국회, 방송국 등)을 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참고 www.hanshi.or.kr).
나는 95년부터 이 사역에 함께 하고 있다.

오랜만에 선발대로 가게 되어서 좀 얼떨떨해서 운전이나 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갔다.
하지만 열두 명 정도가 내려왔는데 상황 상 세 조로 나누어 넓은 지역에서 아이들을 찾아 모아야 했기에
직접 어른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만나서 설득하고 이튿날에는 데리고 오는 일을 해야 했다.

서울로 출발하는 날 오전에 전날 오후에 갔었던 집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할머니가 세 명의 손녀를 키우고 있는 집이었다.
여덟 살, 일곱 살, 여섯 살 먹은 여자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할머니는 잠깐 밖에 나가셨는지 아이들만 있었다.
전날 할머니는 반신반의하면서 보내야 하는지 반복해서 반문하셨고 거의 우격다짐으로 보내시는 줄 알고 내일 오겠다고 약속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아이들은 전혀 갈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고 마당에 만들어진 비닐하우스 안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곱 살 먹은 둘째는 마당 한 켠에서 막 볼일을 마치고 바지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삽을 가지고 오더니 어설프게 치우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어떻게 아이가 저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을까 싶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엄마가 깨끗한 화장실이나 변기통을 사용하도록 하고,
배변 후에는 티슈로 닦아 주고 변 처리는 부모들이 할 텐데
이 아이는 스스로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으니.
글로 쓰려니 그 상황이 잘 그려지지 않지만
아무튼 충격적인 모습에 놀랐고,
사실은 내가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데서 더 놀랐다.
배변 후 제대로 처리도 하지 않고 바지를 치켜 올리는 모습에서였는지,
아니면 삽에 뭉개지는 똥을 보고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반대로 ‘그러니까 이 아이를 꼭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뒤늦게 들어오신 할머니는 안보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찾아 왔느냐 시면서도
아이들을 보느라 지치셔서 좀 떨어져 있고 싶다는 소망의 눈빛으로
못이기는 척 아이들의 옷을 갈아입히시고는 흔쾌히 보내 주셨다.
항상 그렇지만 부모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오줌을 싼다든지 집에 가고 싶다고 떼를 쓰는 일은 없었다.
왜냐면 선생님들이 3박4일의 기간만큼은 부모보다는 못하더라도 정말 헌신적으로 잘 해 주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도 시골에서의 모습이 어떠했느냐 와는 전혀 상관없이
짝꿍 선생님과 정말 기막힌 3박4일의 기간을 보냈다.
아마 지금쯤 꿈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3박4일의 일정을 꼬박 좇아 다니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마도 함께한 그 아이들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역자들이야 시간이 지나면 잊어 가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에겐 아직 그 마당에서 일곱 살 먹은 아이의 행동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부모에게서 떨어져서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자라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매주일 내가 만나고 있는 나의 아이들...

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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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들어서면서 두 분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한 분은 대학 동기의 어머님이셨고, 다른 한 분은 예전에 있던 교회 선생님의 아버님이셨다.
친구의 어머님은 뵌 지 오래 되었지만 연세가 많지 않으시다는 것을 알기에 놀랐고,
선생님의 아버님은 지난주에 잠시 교회에 들렀을 때 먼발치에서 뵈었는데 별세하셨다고 해서 놀랐다.
그 때는 예전에 뵈었던 모습 그대로였는데 그렇게 갑자기 가실 수 있는가 싶었다.
그러니 가족들이야 얼마나 놀라고 슬픔이 클까.
문상을 가서 알았지만 친구 어머니도 갑자기 별세하신 것이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을 당한 친구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래,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 중에 죽음을 예상하고 준비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의 가족들 역시 말이다.

죽음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죽음보다는 삶을 더 그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을 정리하는데 있어서 미숙하다.
마치 영원히 살기라고 할 듯 이런 저런 감정들을 쌓아 놓고 산다.
죽음이 이르렀을 때 죽음에게, 남아 있는 자들에게 할 말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서 내가 오늘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세상이 내가 없어도 전혀 이상 없이 움직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그러하기에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귀함을 알고
그 시간들을 소중하게 기억 속에 남겨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죽음을 준비하는 삶일 것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끝을 생각할 수 있다면 함부로 살진 않을 것이다.
이름 하여 ‘인생의 끝에 서서 오늘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기치 않은 죽음, 급작스런 생의 마감은 없다.
이미 다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관계적 측면은 말할 것도 없고, 물질 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감정적 부분과 영적인 부분까지도.

자 이제 만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하고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성실히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누구도 소홀히 대할 수 없고, 일 분 일 초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다.

200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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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라는 책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목을 끌었던 때가 있었다.
내용을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설득력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의구심이 드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후에 ‘저주’라는 표현에 대해 과연 성경적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 나왔던 것으로도 기억한다.

과연 가계에 저주가 흐르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첫 사람들로 인한 저주가 아닌 심판으로 이 땅에서 갖은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 문제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저주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있다는 생각은 드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 부모 세대를 통해 자녀 세대로 전해지는 뭔가가 있다.

그 뭔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는데 결론은 세계관에 있었다.
부모가 가진 세계관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세계관이라고 하니까 좀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어쩌면 세상에 대한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부모의 부정적인 태도, 원망하는 태도 등은 자녀들의 마음에 뿌려져 싹을 틔운다.
한국적으로 표현하면 부모의 한이 자녀에게 전해진다고 할 수도 있겠다.
유전적으로 전해진다고 하는 연구도 있다고 하지만
꼭 유전자에 뭐가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
부정적인 세계관을 가진 부모에게서 자란 자녀는 당연히 부정적 세계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반면 긍정적이고 평화로운 세계관을 가진 부모에게서 자란 자녀는 또 그런 세계관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조급하고, 인내심이 적고,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들이 대개 그런 연유를 가진다.

그래서 만약 끊어야 할 것이 있다면 저주가 아니라 부모로부터의 이어지는 정서적 끈이다.
부모의 세계관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관의 지평을 넓혀 가야한다.
그래야 자신뿐만 아니라 이후 세대가 세계를 긍정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이 과제는 현재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변화의 시작점은 바로 내가 온전한 자리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남편으로, 아버지로, 아내로, 엄마로서의 바른 자리를 고민하고 찾아 가야 한다.
사실 자녀들에게 부정적 세계관이 이어지는 주된 원인은 부모 세대의 불화, 즉 역기능적 가정사로부터 기인한다.

그런데 만약 저주나 심지어 귀신에 의해 가계에 악한 기운이 이어진다고 한다면
또다시 자신이 아닌 제 3의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된다.
그리곤 저주를 유발한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귀신을 축출하기 위한 특별한 모임들에 시간을 들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작 자신의 가정은 또다시 갈등 투성이가 되어 버릴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남 탓하는 모습은 없어져야 한다.
문제의 핵심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늘 나의 바른 위치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요 최선이다.


200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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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26. 21:14
요즘에는 농한기라서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농민들이 특별한 일이 없다.
뭔가 해보려는 젊은 사람들 몇몇을 제외하면...
그래서 연세 드신 분들은 대개 마을 회관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다.
나야 농번기에도 그리 바쁘지 않았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더더욱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연탄재를 처리하는 일이나, 물 받는 일을 제외하면
거의 집 안에서 책을 읽고, 쓰는 일을 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보낸다.
그래서인지 때때로 방 안에 있을 때 여기가 농촌인지 도시인지도 무감각해진다.
그러다가 친구 집에라도 가려고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서서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여기가 시골이구나, 내가 지금 이 곳에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푸르름은 자취를 감춰버렸지만 넓게 펼쳐진 논과 포도밭, 그리고 멀리 바라다 보이는 높고 낮은 산 봉오리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엔 무한한 에너지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래, 안에만 있으면 안 된다. 안에만 있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잊게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존재조차 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존재를 먼 곳에 있는 어떤 것과의 연관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그보다 큰 오류는 없을 것이다.
바로 내가 딛고 서 있는 땅, 호흡하는 공기, 마시는 물이 바로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흙이고, 물이고, 공기이니...

겨울에 내리는 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오늘.
긴 갈증을 풀며 부르는 대지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나의 작은 외침 또한 누군가 귀 기울여 주리라.

200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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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26. 21:14
집에 수도가 얼어서 궁여지책으로 계량기에서 선을 빼 물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난방은 되고 있지만 온수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솥에다가 데워서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충분히 더운 물을 사용하지 못해 낮은 온도의 욕실에서 움츠리고 씻어야 한다.
나야 괜찮지만 어머니는 좀 곤란하신가 보다.
그래서 큰맘 먹고 목욕탕에 가기로 했다.

상주 시내나 김천 시내나 거리가 비슷하나 좀 더 나을 것 같은 김천으로 가게 되었다.
지나가다가 보아둔 곳이 있어서 차를 주차하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왠지 잘못 온 것 같기도 하고 영 어색했다.
승용차들 사이에 먼지투성이 화물차를 댈 때부터,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오가는 문으로 들어서야 하는 것 까지 느낌이 좀 이상했다.
집에 있을 때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는데,
어머니나 내 차림새가 완전히 그 곳 사람들하고 이질적으로 보였다.
이름 하여 '촌티 풀풀'이었다.
따듯하게 입은 솜바지 하며 언밸런스한 잠바에 먼지투성이 신발에...
더구나 밖에는 사우나라고 되어 있는데 안에는 사우나의 ‘사’자도 찾을 수 없으니.
간판에 있는 전화번호를 찾아 걸어 보았더니 영업은 안 한지 좀 되었단다.
서둘러 사거리 반대편 멀리에 있는 '사우나' 간판을 발견하고는 그리로 옮겨갔다.
결국 목적한 '목욕'을 할 수는 있었다.

물론 촌놈이라서 헤맨 것이 아니라 초행이라서 그런 것이지만,
스스로 그런 분위기에서 위축되어버리는 것도 우습고,
반면 나에게서 촌사람이 느껴진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뭐 서울에 살 때도 변두리에 산다는 의미로 서울촌놈이라고 하긴 했지만.
하긴 약간 촌스럽게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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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새단장의 변

처음 오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인터넷을 할 때마다 보게 되는 나로서는
홈페이지의 전면적 개선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실증을 잘 내는 편이기도 하지만,
지난해 6월부터 꼬박 7개월을 유지했으니 충분하다고도 생각되고...

아무리 고민을 거듭해도 새로운 틀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리저리 잘 만들어진 홈페이지들을 찾아보다가
마음에 쏙 드는 홈페이지를 찾을 수 있었다.
한 연예인의 홈페이지였는데, 기획사에서 만든 것인지 팬들이 만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똑같이 만들 수 있는 능력도 되지 않지만, 굳이 똑같을 필요도 없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나만이 가지고 있는 나의 사진들을 활용해서 전반적으로 손을 보았다.
그러다 보니 마치 연예인 홈피를 조금은 연상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 같다.
새해 새롭게 출발하는 토방이라...
사실 만들어 놓고 보니 토방의 느낌이 사라져 버려서
궁여지책으로 토방의 문과 글귀들을 위에 붙였는데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머니는 첫 화면이 너무 늙어 보인다는, 아저씨 같다고 바꾸라고 하시는데,
나는 바꿀 생각이 없다.
그것이 현재 나의 모습인데, 아니 그것도 사실은 2년 전의 사진이다.
10년 전의 사진을 첫 화면에 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아직 미완성(갤러리)이긴 하지만 이정도로도 속이 시원하다.
조금씩이나마 홈페이지 제작과 관련된 기술들을 알아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익명의 누군가들에게 때때로 비밀스러운 것 까지도 공개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리가 과제로 남겨져 있다.

2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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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초에 몇 해 전부터 3일간 원단금식을 해왔다.
금식을 하면 일단 음식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지난 한 해와 새로이 맞는 한 해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한다.
물론 집에 있든 학교에 있든 끼니때가 되었을 때 유혹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해 말 4박 5일간의 단식캠프가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원단금식 3일을 연말 단식 5일로 늘려서 하게 된 것과 3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차이가 있었다.
음식냄새라고는 전혀 없는 농촌의 한 환경교육관에서 진행되었다.
빡빡하게 짜여 진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평소 접해 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시작할 때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어서 서먹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가까운 사이가 되었던 것 같다.
단식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괜찮은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금식을 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더 확실하게 느낀 것은
단식을 함에도 불구하고 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식을 하면 힘이 없어서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더 많이 움직이고, 때로는 춤을 춘다든지, 등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한 끼만 먹지 않아도 마치 죽을 것처럼 풀이 죽는 경우도 있었는데
열 끼를 굶어도 전혀 힘이 없다거나 생기를 잃지 않았다.

결론은 우리가 속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게 속아서 마치 한 끼라도 먹지 않으면 무슨 일이 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때때로 한 두 끼, 아니 몇 끼라도 먹지 않음으로 해서
우리 몸을 정화시켜 주는 것이 더 유익할 수도 있는 거다.
늘 할 수는 없겠지만, 일 년에 한 두 차례 정도는 몸을 비우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더불어 몸이 비워지듯, 정신도 맑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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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26. 21:10
어머니께서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서울에 올라가신다.
그러면 내가 하루 세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주로 여성들이 하는 일 중에서도 음식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 일인지 찐하게 체험한다.
음식을 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 먹을까 고민하는 것이 힘든 것 같다.

아무튼 하루 새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어서
어떨 때는 아침에 늑장을 부리다가 거의 점심때가 되어서야 밥상을 차린다.
그러면 한 번에 두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어머니께서 밥을 하실 때는 좀 더 여유 있게, 때로는 두 끼니를 위한 밥을 하신다.
하지만 나는 바로 먹을 만큼만 한다.
두 그릇 반이 정확히 나오도록 한다.
압력밥솥에 하기 때문에 반 그릇 분량은 정확하게 누룽지를 만든다.
밥을 먹은 후 누룽지는 최고의 디저트다.

요즘 전기밥솥들은 너무 잘 만들어서 누룽지가 눌지 않는다.
왠지 누룽지가 없는 밥은 매력이 없어 보인다.
누룽지가 없는 밥의 맛도 그러하거니와
밥 한 그릇 먹은 후 그냥 먹어도 좋고, 끓여 먹어도 좋은 그 맛있는 누룽지가 없다는 것은...

밥도 그러하듯이 사람 살아가는 데도 누룽지가 필요한 것 같다.
누군가 가장 앞에서 고통을 당하고 딱딱하게 누러 붙는 사람이 있을 때,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이 좀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닌지.
그들의 희생, 그들의 뜨거운 삶이 없다면 참 맛나는 세상을 보기 힘들 것 같다.

누룽지가 되자!

200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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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도 나오던 물이 오후부터 뚝 끊겼다.
겨울에 수도가 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물이 나오지를 않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어머니께서 서울에 가셔서 끼니를 내가 해결하고 있는데
아침은 밥을 지어 먹고는 점심은 그냥 대충 때우고,
저녁은 그래도 잘 먹으려 했는데,
여의치 않게 되었다.
조금 있는 받아 둔 물로 라면을 끓여 먹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수도꼭지만 바라보고 있다.

물처럼 물 쓰듯(!) 하는 것도 없다.
쓰는 양에 따라 돈을 지불하는 서울에서도 그러한데
1년에 고작해야 만 원 정도 내는 시골에서야 마음 편하게 쓰지 않겠는가.
그런데 막상 물이 끊기고 나니 한 바가지의 물도 귀하다.
닭과 개에게 물을 주고 남은 물도 도로 가지고 들어왔다.
다른 때 같으면 휙 마당에 뿌려버렸을 것을...

너무 흔해서 소중함을 잊고 살았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날이 더 추워진다는데 걱정이다.
언 수도 녹이는 기술자를 부르면 해결을 해 줄지 모르겠다.

200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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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낮에 눈이 많이 내려서 집에 못 올 뻔했는데,

객기를 부려서 한 번 가보자 싶어 조심스럽게 엉금엉금(그래도 40-50킬로는 달림) 달려서 집에 왔다.

생각보다 눈이 많이 내리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눈이 내릴 때 기온이 낮아서 녹지 않고 그냥 눌리거나 날려서 길에 쌓인 것이 적었던 것 같다.

아무튼 평소보다 40여분 더 걸려서 무사히 도착했다.

아침에 이불 속에서 꿈지럭 거리면서 눈을 생각했다.

쓸어야 하는데...

어머니도 안 계시니 나보다 먼저 서두를 사람도 없기에 좀 더 늑장을 부리다가

늦은 오전에 싸리비를 들고 마당과 진입로에 쌓인 눈을 치웠다.

사실 눈이 하얗게 내린 것을 보면 쓸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두면 안 될까’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대답은 ‘아니오’이다.

그냥 두면 녹게 되고 또 기온이 내려가면 얼고, 이런 일을 반복하다보면

도로는 빙판이 되고, 흙으로 된 마당은 진창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그 때 그 때 눈을 치우는 것이 지혜다.

눈이나 낙엽이 쌓인 마당을 빗자루로 쓸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다.

마치 내 마음을 쓸고 있는 듯하다.

정신없이 어지럽혀진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돈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기분 좋다!


200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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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남비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26. 21:06
구세군 자선남비를 보면 왠지 쑥스러워서 피해가곤 했다.
그런데 내가 빨간 옷을 입고 종을 치게 되다니.
좋은 일, 뭔가 주는 일에는 용기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종만 치고, '불우이웃을 도웁시다'라고 말만 하는 것보다는
위험성은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을 거의 지목하다시피해서 '아저씨, 좋은 일 하세요!'라고 하면
가던 길을 돌아서 머쓱한 표정으로 다만 천원 한 장이라도 넣고 간다.
물론 이건 넉살 좋으신 할머니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젊은 사람이나, 사관님이 그랬다가는 욕먹기 쉽상이다.

아무튼 내가 구세군 자선남비 봉사를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상주에 내려와서 동네에 있는 교회가 구세군 교회여서 어머니께서 출석하게 되셨고,
지난 화요일이 어머니 구역의 담당이라 큰 맘 먹고 함께 가게 된 것이다.
사실 어머니도 '내가 왜 가냐?"하시던 일인데, "좋은 일인데 가보자"로 바뀌었고,
나도 "한 번 가볼까!"로 바뀌게 되어 가능해진 일이다.

추워질수록 어려운 이들의 삶은 더 힘들어지지만,
반면 적선하는 마음도 또한 더 커진단다.
구세군의 자선남비 봉사가 추울 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이웃 구역의 할머니들과 사관님은 종을 치며, '불우이웃을 도웁시다'를 외치고 계실 것이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다음 주에 한번 더 나가 볼까 한다.
이 겨울 나에게 있어 최소한의 봉사가 될까...

200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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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26. 21:02
차를 몰고 길을 달릴 때, 라디오는 잘 잡히지 않아 아예 켜지 않고,
음악도 차 소리가 잘 안 들리기도 하고, 반복되는 노래도 싫고 해서 잘 틀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집에서 교회까지 가는데 한 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 주어진다.
가끔은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될 때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점(허물) 투성이인 나 자신을 볼 때 슬픔이 몰려 올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의 괴리감,
그렇다고 나를 모두 보여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더 나아질 수도 없는 듯하고,
아무튼 별 볼 일 없어 정리(delete)되어야 할 것 같은 나를 발견하게 되면
순간 찬 기운이 내 몸을 싸하고 감싸든다.
나의 존재 자체가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이럴 수도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뒤를 따른다.

그런데 그 때,
누구도 곁에 있어 줄 수 없을 것 같은 그 때,
그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래, 그 분이 나를 알고 계시고, 내 이야기를 들어 주실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동시에 불안에 떨었던 마음은 진정이 되면서 ‘안심’이 된다.
그 분이 계시니 정말 안심이다.
아무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 분이 알고 계시고, 그 분이 들어 주시리라.

안심...

200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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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26. 20:58
유년부 예배 중 헌금 기도 전에 ‘감사 나눔’이라는 것을 한다.
어린이들이 한 주간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한 것들을 나누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이 어색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해서 그런지 잘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저런 감사한 이야기들을 선생님에게 말하거나 큰 소리는 말하는 횟수가 늘었다.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이 예배에 자신의 목소리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쁜 일이다.

그런데 지난 주일에 역시 감사 나눔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 주간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선생님 친구들 앞에 감사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라고 말하고 한 명 한 명을 지목하는데,
한 꼬마가 갑자기
“전도사님은 뭐가 감사한데요?”
라고 질문하는 것이 아닌가!
‘맞다. 이 시간에 나는 뭐가 감사하지?’
적당히 둘러대고 넘겼지만
어린이들에게 감사를 나누라고 하면서 정작 나는 아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던 거다.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있다.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을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면서 멘트와 포즈를 취하지만 마음이 아닌 기술로 흐를 때가 있고,
설교를 하는 사람도 화려한 말재주에 지나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면 나도 그런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정은 미리 알고 주의 하고 피해가라고 있는 것이니 정신을 바짝 차릴 일이다.

200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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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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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세계적인 경영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피터 드러커가 사망했다.
워낙 저서도 많고, 유명한 사람이라서 그의 대해 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이 있는데
그는 3,4년에 한 가지씩 주제를 가꿔가며 거의 60년 동안이나 새로운 주제들을 파고들었다고 한다.
그가 향년 96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거의 말년까지도 그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는데,
이는 기꺼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대개의 사람은 30대나 40대에 가지게 된 생각을 이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지식에서도 그렇고, 삶의 태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좀처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용하는 자세를 보기 힘들다.
배울 수 없다는 것만큼 큰 불행이 또 있을까.
어찌 자신의 짧은 시각으로 한 때 보았던 그 정도에 머물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고,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더 답답함을 느낀다.
결국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말처럼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보고 싶은 것만 보도록 스스로 훈련되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조금씩 나에게서도 그런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때로 어떤 부분에 대한 고정되어 있는 사고를 발견한다.
조금의 수정도 불가능하게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래서 변화의 여지가 없는 그런 부분.
배울 수 없는 저주가 찾아드는 것인지.
고집과 아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서 있는 것인지.
보다 유연하게 새로운 것들을, 보다 나은 태도와 마음 자세를 배우려는 자발적 노력, 애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도 완고한, 화석화 되어 버린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으로 드러나 버릴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멈추어 뒤를 돌아보고 거기에 붙잡혀서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국민일보 2005.11017, 피터 드러커를 기리며 - 박파랑(서울시립미술관 학예사)

세계적 석학 피터 드러커의 사망 소식이 11일 전세계로 타전되었다. 향년 96세. 현대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경영학의 귀재이자 사회학자인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7가지 지적 경험을 토대로 변화와 시대에 도태되지 않고 살아가는 법에 대해 설파했다.

자그마한 면제품 수출 회사의 견습생으로 일하던 열여덟살의 그는 베르디가 여든 넘은 나이에 작곡한 오페라 폴스타프와 그리스 신전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작품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들 작품이 그러하듯이 완벽을 기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겠노라는 일생의 목표를 세우게 된다. 오직 신들만이 그것을 보게 될지라도 말이다.

스무살의 신문사 기자 시절. 자신이 쓰는 여러 잡다한 주제들에 대해 유능한 기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은 알아두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퇴근 후 국제관계와 국제법,사회제도와 법률제도의 역사,일반 역사,재무 등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3∼4년마다 다른 주제를 선택해 파고 들어가는 그만의 학습법을 통해 그 분야를 완전히 터득할 수는 없겠지만,적어도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겼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그런 식으로 60여년 이상 3년 내지 4년마다 주제를 바꾸어 이 지적 여정을 계속해 왔다는 점이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그는 대학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킨 경영학 외에 경제학,윤리학,정치이론,통계학,중세역사,심지어 일본예술론 등을 가르쳤고 총 35권의 저서를 냈다. 이러한 과정이 상당한 지식의 습득뿐 아니라 새로운 주제와 새로운 시각,그리고 새로운 방법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의미를 두었다. 이렇듯 다방면에 걸쳐 통섭(通涉)의 경지에 오른 그는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발휘했다. 부존자원이나 자본보다 지식의 가치가 돋보이는 시대가 올 것을 오래 전에 예견했던 그는 21세기가 원하는 지식근로자들의 자기계발에 대한 책임과 가치창조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인간은 평생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세상을 알아가는 지속적 학습의 여정을 통해 성숙되어간다. 피터 드러커 자신도 고백한 바 있듯이 인간은 이러한 것들을 스스로 터득하지 못하기에 우리에게 가르침을 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지속적 학습을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했던 당대의 지식인이자 철학자이자 큰 별이 졌다. 20세기가 그에게 진 빚을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방식으로 되갚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200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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