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전에 포도밭에 약을 쳤다.
무농약 농사에서 허용하는 유일한 살충제라는 석회유황합제(?)였다.
일단 작은 그릇에 녹여 큰 물통에 넣어서 정해진 양의 물에 희석한 후, 밭으로 갔다.
호스들을 재위치 시킨 후 경운기에 시동을 걸어 펌프를 돌아가게 하고,
뛰어가서 한 나무 한 나무 흠뻑 젖도록 뿌려 주었다.
아무튼 경운기로 약치는 도구들을 싣고 밭까지 간 것도 그렇고,
경운기를 돌려 약을 치게 되다니 이젠 정말 농부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약줄 놓는 것 하나도 물어 가며 해야 하는 초보농부이긴 하지만...

화학약품으로 만든 농약이든, 친환경제재로 만든 농약이든 간에 농약은 작물을 위해 친다.
병을 예방하거나, 해충을 박멸하거나, 영양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작물에는 어쨌든 이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농약병의 뚜껑을 열어서 그대로 작물에 붓지는 않는다.
간혹 가루를 잎 같은 곳에 직접 뿌리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농약은 물에 타서 사용한다.
한마디로 희석(稀釋, 용액에 물이나 용매 따위를 가하여 묽게 하는 일)을 시킨다는 것이다.
3k를 90리터의 물에 넣으라고 하면 30배 희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것은 100배, 200배 희석을 해서 치도록 한다.
아무리 이로운 것이라고 해도 원액 그대로를 뿌리면 오히려 작물을 죽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입에서 나오는 '말'도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옳고, 바른 말로 상대방에게 필요하다고 해도 너무 직설적으로 내뱉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얘기다.
상대방을 살리겠다고 말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죽게 만들 수도 있다.
그 말을 들을 때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도 좀 희석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상대방도 살리고, 나도 살 수 있도록 30배, 60배, 100배로 말이다.

2006.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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