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로 화장실 똥을 펐다.
횟수를 더 할수록 도구(?)도 갖추어지고, 노하우도 생겨서 조금 더 수월하게 일을 마친 것 같다.
지난해 6월에 퍼서 덮어 두었던 것을 걷어서 밭에 뿌리고 그 자리를 정리해서 마른 풀들을 더 깔고 다시 부었다.
향유네서 배운 대로 볼일을 본 후 왕겨를 뿌리고 있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똥냄새도 안 나고, 파리도 덜 낀다.
또한 똥을 풀 때도 옮기는 나에게만 조금 날 뿐 마당에서 다른 일을 하고 계신 부모님들은 냄새가 안 난다고 하실 정도다.
그러니까 화장실에서 거의 액비(액체 비료)가 되어 버리는 거다.
예로부터 잿간을 화장실 곁에 두고 재를 뿌렸던 조상들의 지혜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지난해 두 번째 푼 똥은 감나무 주변에 바로 거름으로 주었고,
오늘은 작년 6월 말에 처음으로 펐던 똥을 밭에 거름으로 뿌렸으니
정말 내가 소망했던 ‘순환’이 실현되는 현장을 똑똑히 목격한 날이었다.
충분히 발효를 시켰으니 기생충이나 해로운 것들이 작물에 들어갈 염려는 할 필요가 없다.
조금의 역한 냄새만 참고, 진땀나는 짧은 시간만 견디면,
나는 내가 저지른 일을 내가 처리하는 실로 감격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도시 뿐만 아니라 농촌 어디를 가도 정화조를 묻고 똥차가 와서 퍼가는 형국이니
아마 나처럼 똥을 퍼서 확실한 거름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정말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집 앞에서 오후 내내 못자리를 만드느라 땀 흘린 뒷집 형은
‘똥 퍼요?’하면서 뭐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일로 땀 흘린다고 하나 하겠고,
부모님도 똥 푸는 일, 좀 꺼려지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는 아들이 신기하게 느껴지시겠지만,
난 똥 푸는 일을 일면 사명감을 가지고 기쁘게 하는 ‘사역’의 하나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오늘은 나에게 일 년에 몇 번 할 수 없는 정말 소중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가슴 벅찬 날이었다.

2006년 4월 3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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