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만약 서울에 살고 있었으면 '가뭄에 비가 와서 좋네'하면서도 솔직히 좀 귀찮아 할 것이 분명하다.
가뭄이라는 것에 대해 거리감을 느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난 정말 기분이 좋다.
오전에 몇 가지 해야 할 일을 하고 난 후 내리는 비, 더구나 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비여서 너무 좋다.
어제 감자를 심었는데(좀 늦음), 딱 맞게 비가 내려 주니 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지난해에 마을 어르신께서 지나가시면서 비와 관련해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농촌에는 비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고, 비 온 후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때에 맞춰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별 생각 없이 감자도 심고, 포도밭에 거름도 했는데 그 말씀 따라 계획적으로 한 것처럼 되었다.
농촌에서의 생활이 만 일 년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무슨 일이든 하기 전에는 꼭 옆 집 할아버지나 귀농 선배들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텔레비전도 보고, 인터넷을 하건만 잠시 날씨 확인 하는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니 지난해와 별반 다름없이 나는 초보농부일수밖에 없다.
매일 수차례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뒷집 형도 '오늘은 이 친구 뭘 하나, 제대로 하나'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도 당연하다.
사오 년? 아니면 그 이상 초보농부일 것 같다.

봄 가뭄을 해갈하는 비이기를 바라면서
마음속까지 시원함을 느끼며
행복해 하는 초보농부의 두서없는 넋두리다.

20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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