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1년차

누군가에게 나를 귀농자로 소개하는 것이 아직 좀 어색하다.
여전히 ‘농(農)’자에 서툰 초보이기 때문이다.
말은 쉽지만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일까.
그래서 ‘농촌에 사는 거죠’라고 말한다.
그 말이 맞는 것이 아직 땅이라고는 한 평도 가지고 있지 않고,
남의 땅에 우리 먹고, 조금 나눠먹을 만큼의 몇 가지 작물들을 재배할 뿐이니 말이다.

땅 없이 농촌에 산다는 것을 60,70년대 농촌에 사셨던 분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가 보다.
소작을 하느냐고 약간은 안됐다는 눈빛으로 보는 분도 있었다.
때문에 반드시 땅을 가져야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신다.
물론 맞는 말씀들이기도 하지만
지금 농촌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을 알게 되실 거다.
땅을 가지게 되면 좀 더 안심, 안정은 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부지런히 몸을 놀릴 마음의 준비만 되어 있다면 널린 것이 땅이고,
그 땅에 농사를 짓는 것이 과거처럼 결코 천대받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곳 분들은 나이 들어 힘에 부쳐 지을 수 없는 땅을 놀리지 않게 되어 고마워하신다.
문제는 그런 땅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아진다는 것이고,
몇 안 되는 젊은이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땅을 사들여 땅값만 올려 인심만 흉흉하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꼭 필요하다면 집터와 집 주변에 텃밭 정도는 확보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유기농이니 해서 생명농법을 하려 한다면 적게라도 자기 소유의 밭이 있어야
소신껏 투자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남의 땅에 관행농이 아닌 유기농을 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아무튼 농촌에 살며 농사를 짓는다는 것
아직 내 몸에 익지는 않았지만 나와 상관없이 한해가 가고 있다.
이웃 할아버지 하시는 일 곁눈질로, 귀농선배에게 전화로, 농사관련 책으로,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감각으로 한 해 농사를 지었다.
들깨는 들인 시간과 노력과 땀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수확을 했는가 하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참깨는 풍성하게 수확했다.
별 볼일 없어 보였던 감은 막바지에 효자 작물로 즐거움을 주었다.
살구, 호두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깜짝 선물이 되었고,
대문 밖 텃밭은 때마다 적절한 푸성귀들을 선사했다.
흙과 물과 양분과 공기와 태양의 조화, 그리고 하늘의 보살피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농촌의 생활도 많은 변화가 왔다.
그래서 도시처럼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 생활의 부산물이 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각종 농자재들이 그러하고, 생활 쓰레기들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환의 가능성을 보면서
나 하나만의 청결을 위한 오염보다는 더불어 살아감에 대한 기쁨을 얻고 있다.
배설물들이 고스란히 흙으로 돌아가고,
흙은 대부분의 부산물들을 분해해 양분으로 바꾼다.
난 순환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분리하는 약간의 수고만 하면 될 뿐이다.

그러므로 나와 흙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흙에서 자라는 것들이 나의 밥상이 될 뿐만 아니라
나 또한 그들의 밥상이 되는 것이다.
서로에게 밥상이 되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곳,
그곳이 농촌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친구네 집 화장실 문에 붙어 있는 시를 옮겨 본다.)

김정원

똥이더라
밥이더라
밥이 똥 되고
똥이 밥되는 일이더라
교수보다 존경할 일이더라
시인보다 가난해지는 일이더라
연륜이 더할수록 부족함을 느끼는 겸손이더라
평생 겨우 오십 번밖에 해볼 수 없는,
희귀한, 예사롭지 않은 일이더라
인내와 절제와 땀이 진득하게 밴,
피 같은, 소박한 밥상이더라
길가 제비꽃 한 송이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두엄 속 지렁이 한 마리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생명을 가꾸는 일이더라
각지불이(各知不移)더라
맨발로 하늘을 모시는 일이더라
공기처럼 물처럼 햇빛처럼 없으면
우리가 죽을 일이더라

200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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