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간 화장실 똥 푼 날은 꼭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날이다.
삽 십 오륙 도를 넘나드는 날에 화장실을 푼다는 것은 정말 하기 싫은 일이다.
땀을 비 오듯 흘릴 것이 뻔한 것도 그렇고,
좁은 화장실 안에서 조금은 역한 냄새를 맡으며 그것을 퍼내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자꾸 차오르면 더 이상 화장실이 화장실의 기능을 못하게 될 것이니까.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 줄 수 없으니
숨이 콱콱 막히는 날이라도 똥바가지를 들고 똥을 퍼야 한다.

일단 똥을 부을 곳을 정해서 팔 수 있을 만큼 깊게 파고, 사방으로 흙을 돋우었다.
그리고 마른 풀들을 깔고, 왕겨도 적당히 뿌려둔다.
그리고는 똥물을 퍼다가 붓는 거다.
가져오면서 이 곳 저곳에 흘리고, 옷에도 튀고...
아무리 냄새가 안나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똥은 똥이다.

장갑을 끼고 작업을 했는데도 아직도 손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장갑이 완전히 차단을 하지는 못했나보다.
비누로 하다가 안 되서 조금 전에는 치약으로 닦았더니 냄새가 한결 덜해졌다.
그래도 이제 한 넉 달 정도는 신경 안 쓰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뿌듯한지.

200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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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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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화장실 똥을 펐다.
횟수를 더 할수록 도구(?)도 갖추어지고, 노하우도 생겨서 조금 더 수월하게 일을 마친 것 같다.
지난해 6월에 퍼서 덮어 두었던 것을 걷어서 밭에 뿌리고 그 자리를 정리해서 마른 풀들을 더 깔고 다시 부었다.
향유네서 배운 대로 볼일을 본 후 왕겨를 뿌리고 있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똥냄새도 안 나고, 파리도 덜 낀다.
또한 똥을 풀 때도 옮기는 나에게만 조금 날 뿐 마당에서 다른 일을 하고 계신 부모님들은 냄새가 안 난다고 하실 정도다.
그러니까 화장실에서 거의 액비(액체 비료)가 되어 버리는 거다.
예로부터 잿간을 화장실 곁에 두고 재를 뿌렸던 조상들의 지혜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지난해 두 번째 푼 똥은 감나무 주변에 바로 거름으로 주었고,
오늘은 작년 6월 말에 처음으로 펐던 똥을 밭에 거름으로 뿌렸으니
정말 내가 소망했던 ‘순환’이 실현되는 현장을 똑똑히 목격한 날이었다.
충분히 발효를 시켰으니 기생충이나 해로운 것들이 작물에 들어갈 염려는 할 필요가 없다.
조금의 역한 냄새만 참고, 진땀나는 짧은 시간만 견디면,
나는 내가 저지른 일을 내가 처리하는 실로 감격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도시 뿐만 아니라 농촌 어디를 가도 정화조를 묻고 똥차가 와서 퍼가는 형국이니
아마 나처럼 똥을 퍼서 확실한 거름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정말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집 앞에서 오후 내내 못자리를 만드느라 땀 흘린 뒷집 형은
‘똥 퍼요?’하면서 뭐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일로 땀 흘린다고 하나 하겠고,
부모님도 똥 푸는 일, 좀 꺼려지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는 아들이 신기하게 느껴지시겠지만,
난 똥 푸는 일을 일면 사명감을 가지고 기쁘게 하는 ‘사역’의 하나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오늘은 나에게 일 년에 몇 번 할 수 없는 정말 소중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가슴 벅찬 날이었다.

2006년 4월 3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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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에 똥을 펐다.
지난 6월 말에 펐으니 계산해보면 한 4개월에 한 번 정도는 퍼줘야 하는 것 같다.
똥을 푸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똥을 푸는 일은 내키지 않는 일이다.
생각 같아서는 구덩이를 많이 파놓고 다 차면 덮어버리고 다음 구덩이를 채우는 식으로 살면 좋겠다.
해석에 해석을 거친 후에야 순환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있지
막상 똥통을 보고 똥물 흘리며 옮겨다 뿌리는 일이 그리 호감 가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생각을 좀 더 해보면 똥은 언젠가 나의 일부였던 놈이다.
그것이 몸 밖으로 나와서는 모여 있는 것이 이 것인데.
난 더럽다는 얘기만 줄줄이 퍼내고 있으니 똥이 조금은 섭섭할 것 같다.

내가 배설한 것을 내가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왜 싫을까.
도시 뿐만 아니라 시골조차도 이제는 정화조를 묻지 않으면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똥을 직접 퍼내는 친구네 집과 우리집 그리고는 잘 모르겠다.

구분지어 놓고 그것을 모른척하고 살아가는 우리네의 삶.
누군가 다른 사람이 와서 돈을 받고 치워가는 형세.
생각 속에서조차 그런 불결다고 진저리를 치며 물을 내려 버리듯 지워 버린다.
마치 우리는 똥 같은 것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깨끗한 척한다.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인가 싶다.

자기가 먹고 소화시켜 배설한 것을 스스로 책임지는 구조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럽다고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줄 알아야하지 않을지.

200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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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1년차

누군가에게 나를 귀농자로 소개하는 것이 아직 좀 어색하다.
여전히 ‘농(農)’자에 서툰 초보이기 때문이다.
말은 쉽지만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일까.
그래서 ‘농촌에 사는 거죠’라고 말한다.
그 말이 맞는 것이 아직 땅이라고는 한 평도 가지고 있지 않고,
남의 땅에 우리 먹고, 조금 나눠먹을 만큼의 몇 가지 작물들을 재배할 뿐이니 말이다.

땅 없이 농촌에 산다는 것을 60,70년대 농촌에 사셨던 분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가 보다.
소작을 하느냐고 약간은 안됐다는 눈빛으로 보는 분도 있었다.
때문에 반드시 땅을 가져야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신다.
물론 맞는 말씀들이기도 하지만
지금 농촌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을 알게 되실 거다.
땅을 가지게 되면 좀 더 안심, 안정은 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부지런히 몸을 놀릴 마음의 준비만 되어 있다면 널린 것이 땅이고,
그 땅에 농사를 짓는 것이 과거처럼 결코 천대받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곳 분들은 나이 들어 힘에 부쳐 지을 수 없는 땅을 놀리지 않게 되어 고마워하신다.
문제는 그런 땅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아진다는 것이고,
몇 안 되는 젊은이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땅을 사들여 땅값만 올려 인심만 흉흉하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꼭 필요하다면 집터와 집 주변에 텃밭 정도는 확보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유기농이니 해서 생명농법을 하려 한다면 적게라도 자기 소유의 밭이 있어야
소신껏 투자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남의 땅에 관행농이 아닌 유기농을 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아무튼 농촌에 살며 농사를 짓는다는 것
아직 내 몸에 익지는 않았지만 나와 상관없이 한해가 가고 있다.
이웃 할아버지 하시는 일 곁눈질로, 귀농선배에게 전화로, 농사관련 책으로,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감각으로 한 해 농사를 지었다.
들깨는 들인 시간과 노력과 땀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수확을 했는가 하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참깨는 풍성하게 수확했다.
별 볼일 없어 보였던 감은 막바지에 효자 작물로 즐거움을 주었다.
살구, 호두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깜짝 선물이 되었고,
대문 밖 텃밭은 때마다 적절한 푸성귀들을 선사했다.
흙과 물과 양분과 공기와 태양의 조화, 그리고 하늘의 보살피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농촌의 생활도 많은 변화가 왔다.
그래서 도시처럼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 생활의 부산물이 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각종 농자재들이 그러하고, 생활 쓰레기들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환의 가능성을 보면서
나 하나만의 청결을 위한 오염보다는 더불어 살아감에 대한 기쁨을 얻고 있다.
배설물들이 고스란히 흙으로 돌아가고,
흙은 대부분의 부산물들을 분해해 양분으로 바꾼다.
난 순환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분리하는 약간의 수고만 하면 될 뿐이다.

그러므로 나와 흙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흙에서 자라는 것들이 나의 밥상이 될 뿐만 아니라
나 또한 그들의 밥상이 되는 것이다.
서로에게 밥상이 되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곳,
그곳이 농촌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친구네 집 화장실 문에 붙어 있는 시를 옮겨 본다.)

김정원

똥이더라
밥이더라
밥이 똥 되고
똥이 밥되는 일이더라
교수보다 존경할 일이더라
시인보다 가난해지는 일이더라
연륜이 더할수록 부족함을 느끼는 겸손이더라
평생 겨우 오십 번밖에 해볼 수 없는,
희귀한, 예사롭지 않은 일이더라
인내와 절제와 땀이 진득하게 밴,
피 같은, 소박한 밥상이더라
길가 제비꽃 한 송이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두엄 속 지렁이 한 마리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생명을 가꾸는 일이더라
각지불이(各知不移)더라
맨발로 하늘을 모시는 일이더라
공기처럼 물처럼 햇빛처럼 없으면
우리가 죽을 일이더라

200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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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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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화장실에 똥을 펐다.
장마가 오기 전에 해치워버리려 했는데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가슴을 조리다가(?)
오늘 날이 좋아서 드디어 작전에 들어갔다.
먼저 사시던 분들이 사용했던 똥바가지를 수선하고,
퍼 나를 통도 준비하고,
똥을 넣을 구덩이도 파고,
왕겨도 잔뜩 뿌려놓고서.

막상 푸기 시작을 하니 좁은 공간인데다
냄새를 참으며 하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용변 후 왕겨를 뿌려왔기 때문에 심한 악취는 나지 않았다.
암모니아 냄새가 좀 났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쏟지 않으려, 몸에 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는데,
한 번 두 번 오갈 때마다 점점 뚝뚝 떨어지는 횟수도 늘고
급기야 언제 묻었는지 옷에도 똥 자국들이 늘어갔다.

대여섯 번 오가고 나서야 끝이 났다.
막판에 똥바가지가 망가지는 바람에 물바가지를 가져다 사용했는데 본 사람은 없다.ㅋㅋ
그래서 바가지, 똥 담았던 통, 똥이 흘러 넘쳐 똥 범벅이 된 손수레를 물로 깨끗이 씻었다.
똥 묻은 옷도 벗어 버리고 몸도 씻었다.
겨우 두 시간 여 했을 뿐인데 진이 빠진 것 같다.

똥을 푸면서 똥을 묻히지 않을 수 있을까?
매일 똥을 배설하면서 똥이 더럽다고 멀리 하는 사람들.
섬김과 봉사를 떠들며 실제 바로 자기 주변에 있는 이들을 섬기지 못하는 사람들.
똥을 푸면서 똥을 묻히지 않는 정말 고상한 사람들이다.

.
.
.
요즘 내가 왜이리 억지를 쓰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하다보면 건질만한 것이 나오겠지...^^;

2005.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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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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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저렸다.
그러니까 짧게 끝내야 하는 것을...

이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주저앉아 버리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 것이다.

서울에 있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 문제였다.
나 하나 존재 비용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실감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한 덩어리, 혹은 한 그릇정도의 양을 내어놓고, 몇 바가지의 물을 섞어 흘려보내야 하다니.
그것도 아무런 책임감이나 가책도 없이.
어떻게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그렇다고 무슨 환경운동가로서 변신을 꾀할 수 있는 주변머리가 있지도 못하고.
대안이라면 떠나는 수밖에.
똥의 순환이 있는 곳으로.

비록 다리가 저려 일어나는데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나에게서 배설된 이 똥이 그냥 버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양 그대로 밭으로, 누군가의 밑거름이 되고, 또다시 풍성한 양식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더 이상 내가 나 하나로만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음에 기쁨의 이유가 있다.
나는 이제 이 대자연의 한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내가 다리 저려하며 있을 때 그것은 바로 그 대순환의 한 점에 서 있는 것이니.

2005. 4.8.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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