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0 주일 오전 교사미팅 때

때로 전화를 했을 때 믿지 않는 아버지가 받을 때가 있습니다.
사실 거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어머니가 받아주셨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차분하게 인사드리고 용건을 이야기하면 잘 들어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전화하는 쪽보다 받으시는 분이 더 쑥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아신다면 너무 두려워 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더 어려운 것은 잘 못 알아들으시는 할아버님이 받으실 때입니다.
어! 어! 하시다가 서둘러 끊어 버리시니까요.
전화할 때마다 아버지나 다른 사람이 받는 일이 반복되면 그 어린이의 집으로 전화할 때 망설여지게 됩니다.
그런데 좀 다른 측면으로 생각하면 전화를 매 주 하게 되면 교회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전화 오는 것이 귀찮아서라도 아이들 보내주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너 또 안가면 또 전화 온단 말야!'라고 말 할 수도 있죠.
이것은 마치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재판장의 태도와 같습니다.

누가복음 18:1-8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또 부모와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걸려오는 선생님의 전화를 기다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금요일 일정을 선생님이 전화하시는 시간을 중심으로 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과외를 하거나 가족모임을 한다는 것이지요.
선생님께서 맡으신 아이의 가정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어 보입니다.

어이들에게 전화하는 일, 좀 더 적극적으로 해 주세요. 그리고 주 중 만나시는 일도 계획해 주세요.
 

1. 매 주 전화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2. 전화 심방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3. 어떤 도움이 있다면 그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을까요?
 

4. 자 그럼 이제 어떤 다짐을 해 보시겠습니까?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지난 주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슬픈 일이 있었다.
어린이부 2학년 꼬마가 차 사고로 하나님 품으로 간 것이다.
후진하던 차량의 운전자의 부주의로 난 사고였다.

아홉살 꽃다운 나이에 우리의 곁을 떠난 아이...
매 주일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160명이 넘는다.
얼굴도 알고 이름도 알고 부모나 형편에 대해서 아는 아이들이 있지만,
그런 아이들은 소수이다.
겨우 이름을 90% 정도 알고 있을 뿐,
그 아이들에 대해 자세한 사항을 알진 못한다.

그 아이들 중에서도 이 친구는 그래도 이름도 알고,
성격이나 모습에 대해서 몇 마디 할 수 있는 아이였다.
이유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오지만
형과 함께 워낙 개구장이여서 누구보다 빨리 파악이 된 친구였다.
또 담당 선생님이 매 주일 아침 전화를 해야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아이의 슬픈 소식은 여러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매 주일 만나는 아이들이 어느 순간 어떤 일을 당할 지 알 수 없다는 것,
혹 아이들이 예배당에 왔다 가는 시간을 소중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 것은 아닌지,
아이들에게 주님 안에서의 삶을 얼만큼 알려주었는지, 또 그렇게 살도록 했는지,
내가 나의 역할을 똑바로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주일부터 더 강하게 아이들에게 요청, 요구, 설득, 강조 해야 하나 라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강렬하게 든 생각은
아홉살이란 나이에 하나님 품으로 간 것에 대한 생각이다.
이제 서른 일곱 해를 시작한 내 나이의 숫자의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마감되지 않고 해마다 더해지는 숫자들, 그것을 더해주시는 분의 뜻은 무엇일까.
결국 그 모든 의문의 짐은 남은 자들의 몫으로 남는 것이리라.
그 친구의 가족, 친구들, 그리고 나에게까지.

내일 설교 주제가 '찬양의 예배'이다.
그래서 더더욱 그 아이가 생각난다.
인생들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이의 숫자를 더할 수록 더 영악해질 뿐 순수함을 찾아 볼 수 없어 지지만,
그럴 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수한 찬양을 더 받으시길 원하시지 않을까.
내가 그토록 꿈꾸며 이루려고 하는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인지도,
오로지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이 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아버지가 사고를 낸 차량이 속한 고물상을 없애자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너무 오랫만에 글을 써서 내 블로그지만 좀 어색하다는...


지난 8월부터 시작해 12월까지 MBTI 전 과정을 수료하고, 일반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뭐 워낙 대중화 되어 있어서 마치 운전면허증을 딴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만 정작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듯해서,
나름대로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은 누군가에게 뭘 해 주려는 의도보다는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집중했던 것이다.

그리고 올 해는 에니어그램을 시작했다.
MBTI와 사뭇 다른 성향의 유형검사 도구인 에니어그램도 마스터하고 싶다는 강한 동기로.

MBTI는 몇 번을 가도 16가지 유형별 이니셜들이 익숙해지지 않아서 어려웠는데,
반면 에니어그램은 한 번 다녀왔는데 9가지 유형에 대해 그림이 그려진다.
물론 이전에 두어번 경험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훨씬 이해가 쉽다.

하지만 MBTI는 하면 할 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하지만
에니어그램은 알면 알 수록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MBTI는 16가지 유형이 한 사람으로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어 가도록 하지만,
에니어그램은 9가지 유형 중 하나가 나라고 하지만 그것은 거짓의 탈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니 에니어그램은 좀더 심층적인 과제가 주어진다고 할 수 있다.
MBTI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성향들을 발견하고 잘 사용하고, 없는 것을 계발해 가도록 하지만
에니어그램은 나의 행동의 근원적 동기(집착, 회피)를 찾고 그것을 벗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내적여정,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하는 것 같다.

어느 것이 더 낫다 못하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은 우문이 될 것이다.
MBTI만큼 한 사람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성격유형검사 도구는 없는 것 같다.
또 에니어그램만큼 내면을 깊이있게 들여다 보게 하는 도구는 없는 것 같다.

짧게나마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몇 자 적어 보았다.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으로 미루고...(언제 쓸지는 나도 잘...)
암튼 2008년에는 에니어그램과의 긴 여정에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참 나'를 찾아가는 여정...

'사람세움 > MBTI&Enneagra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니어그램 첫 강의를 마치고...  (0) 2008.11.18
듣기만 잘 해도 돼요!  (0) 2008.04.01
기질로 본 MBTI 성격유형  (0) 2008.01.30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전에는 지하철에 신문을 들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신문을 펼치고 있으면 곁눈질로 힐끔거리며 보다가
신문을 다 본 후 선반에 올려놓으면 바로 가져다가 읽곤 했다.
친절한 사람들은 '보시겠냐?'고 하면서 주기도 했다.
그래서 신문을 다 읽고 선반에 두고 내리는 것은 또 다른 독자를 위한 배려였다.
그리니 신문을 지하철에 놓고 내리는 것은 미덕이기도 했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거의 누구나 손에손에 신문을 들고 있는 것이 요즘 풍경이다.
돈을 주지 않아도 공짜로 나누어주는 무가지들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의 수준에 대한 논의를 떠나서
신문을 다 보고 나서 선반 위에 놓고 내린다는 것이 문제이다.
간혹 신문을 못 가지고 온 사람들이 집어서 보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신문들은
선반에 쌓인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신문을 누가 치우나?
일부 용돈 벌이는 하는 어르신들이 계시긴 하지만,
결국 청소하시는 분들이 치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지하철에 신문을 두고 내리는 것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쓰레기다.

자신이 가지고 들어 온 것을 왜 자신이 치우지 않는가?
자기가 들고 들어 온 것은 자기가 들고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이 벌인 일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모습, 이것이 오늘의 도시인들의 모습이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똥 싸놓고 치우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플래너에 빼곡히 메모한 것을 그냥 순서대로 타이핑을 했다.
감격을 내 안으로 담기위해, 목사님의 말씀처럼 곱씹기 위해...

신비의 길 요3:16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편해져야 한다.
내면의 깊은 자유함과 평강, 해방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배워오면서 가능해진 것.
QT, 새벽기도가 하루 일과의 한 항목일 때가 있었다.
이제는 사랑하는 '님'이 나에게 뭐라 하실까 해서 말씀을 편다.
조건적 관계(나 중심)가 아닌 하나님의 함께하심(하나님 중심)으로 이동한다.

하나님과 교제를 배우면서 내면의 비밀들을 이야기하게 된다.
뭔가 비밀이 많을 때 말이 많다. 깊은 교류는 말이 없어진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영과 영의 만남이고 교제이다.
성령은 우리의 영을 깨워 하나님을 만나게 한다.
신비=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로 들어가는 것, 연합하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의 목표는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자존감을 어디로 부터 얻는냐가 중요하다.
사회적 이름이나 배경이 아닌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기초해야 한다.
하나님과 만나는 나는 이상적 '나'가 아니라 치유,구원받아야 할, 겉으로 드러나는 '나' 이면에 있는 '나'이다.
깨닫기를 하나님께서 20년 30년 40년 기다리신다.

어떤 하나님이 나와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대화를 터야 한다. 그것이 기도이다.
말씀을 읽을 때, 사랑하는 님의 편지로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
편지의 여운, 따듯함이 남아 있도록 해야 한다. 일상 속에서 반추, 되새김을 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 '현재의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내 주장, 나의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역이 내 삶 속에서 많아지도록 해야 한다.

신비에 뿌리 박아야 한다. 궁극적인 실제와의 만남을 바라봐야 한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배워가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가면 초연해지고, 쉽게 상처 안받고,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을 중단하게 된다.
이 것은 일생과 관련된 문제 이다.


동영상보기

블로그 이미지

dols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