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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살구꽃이 활짝 피었을 때)

올해도 어김없이 살구나무가 가장 먼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매화꽃이 먼저 피어 있었지만 올 해 수확하기에는 나무가 너무 어리 탓에
열매를 가장 먼저 얻는 과실이 살구인지라 더없이 반가운 모습이다.

그런데 이 살구나무가 크기는 아주 큰데
거의 한번도 가지치기를 해 주지 않아서 너무 무성한 것이 문제다.
과실 나무에서 중요한 부분이 햇볕이 잘 드는 것인데
가운데 가지에서 난 열매들은 햇볕을 보지 못할 것이 뻔한 일이다.

그래서 향유 아빠의 충고도 있고 해서
전정 가위와 톱을 들고 나섰는데,
막상 자르려고 하니 어떤 가지를 잘라야 할지도 모르겠고,
또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해서 머뭇거리다가 들어와 버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은 열매를 얻으려면 가지치기는 필수인지라
이튿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겹쳐서 나온 가지부터 조금씩 자르다가
나중에는 대담해져서 가운데 굵게 자란 가지를 베어 버렸다.
그랬더니 나무 가운데가 탁 트여 보였다.
물론 가지치기의 결과는 두어달 후에 나타나겠지만
나무가 시원해 진 것처럼 내 마음도 시원해졌다.


작업을 하면서 간혹 죽어서 말라 있는 가지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놈들은 얇아도 전정가위로는 잘 잘라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반면에 살아있는 가지는 그것보다 두배는 더 굵어도 웬만하면 잘 잘려 나갔다.
죽으면 딱딱해 지나보다.
반대로 하면 딱딱하고 질긴 것은 죽은 것이었다.
최소한 살구나무에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비약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생각이 굳고 단단해진 것은 죽은 것, 생명을 잃은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무슨 말을 해도 바뀌지 않는 우리의 마음...
혹시 죽어서 말라버린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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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분류하는 기준 하나.

착한 사람
안 착한 사람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 둘.

마음이 약한 사람
마음이 강한 사람

이 둘을 적용시키면 네가지 유형의 사람이 나온다.

착하고 마음이 강한 사람
착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
안 착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
안 착하고 마음이 강한 사람

물론 사람을 네가지로 나눈다는 것이 좀 웃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관찰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착하고 착하지 않느냐의 기준은 이타적이냐 이기적이냐의 차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배려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착한 사람이다.

마음이 약한가 강한가는 구분은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 부탁을 할 때 거절을 잘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보면 알 수 있다.
감정에 이끌리기 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알고, 그 일을 먼저 하는 사람이 마음이 강한 사람이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알면서도 그 일을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 끌고 가는 대로 끌려 간다.

착하고 마음이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함에 있어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사람이고,
착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은 유쾌하게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하다가 결국 자기 일을 못하는 사람이다.
안 착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긴 하지만 마음 속에는 불평이 가득하다.
안 착하고 마음이 강한 사람은 주로 자신과 관련된 일을 선택하고 그 일만 한다.

대체적으로 앞의 두 유형의 사람은 좋은 평가를 받는데,
첫번째 사람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지만 소수인 것 같다. 이 사람들은 같이 지내는 사람이 피곤할 정도록 철저하게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며 흔들림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두번째 사람은 사람들이 쉽게 보고, 마음대로 상대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면 거의 예스맨에 가깝기 때문이다.

네번째 유형의 사람은 당연히 인기가 없는 유형이다. 독선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드러내 놓고 사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세번째 유형의 사람인데,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 유형에 속할 지도 모른다.
겉보기에는 착한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내부에서는 늘 갈등이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거절하지 못해 부탁을 들어주게 되니 말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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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출퇴근을 할 때 버스를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버스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물론 사람에 대한 생각이 주를 이룬다.

버스전용차로제가 시행되면서 차도 가운데 버스 승강장이 설치되었다.
그 승강장에 버스가 많이 서봐야 세네 대 정도 설 수 있다.
그래서 버스가 들어 올 때 먼저 들어 온 버스는 당연히 앞 쪽으로 가서 서 주어야 한다.
만약 초입에 서거나, 중간에 서 버리면 들어오는 버스들이 문도 열지 못하고 줄줄이 서서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버스가 들어 올 때 몇 번째로 들어 오느냐에 따라서 적당한 곳에 서 있는 것도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센스 중 하나이다.

그런데 가끔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는데,
특히 나이가 좀 드신 아주머니들이 핸드백을 아래위로 열심히 흔들면서
자신이 선 곳에 버스가 서라고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버스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사람에 맞추어 정차 할 수 없다.
그러니 첫 번째로 들어온 버스일 경우에는 한 참 더 앞쪽으로 가서 설 수밖에 없다.

자신이 선 곳에 버스가 서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갖는 생각이다.
하지만 버스는 내가 선 곳에 설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버스는 버스가 서야 할 곳에 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대로, 내가 계획 세운 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얘기와 같다.
정한 때가 되었을 때, 때가 찼을 때, 나름의 원칙에 따라,
하나님께서 이미 부여하신 질서에 따라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조급하게,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조작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일을
울고불고 자신이 선 자리에 세우려 하는 것이 또 우리의 기도는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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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차례 어머니께서 올라오신다.
뭐 어머니는 청소도 해 주시고, 밑반찬도 만들어 주신다고 올라오시지만,
아들들은 그 마음을 잘 몰라주는 것이 사실이다.
자유롭게 지내다가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게 되니.

아무튼 가장 큰 차이는 잘 먹지 못하던 아침을 먹게 되는 거다.
또 밖에서 먹고 들어가던 저녁도 집에서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밥이 맛이 없다는 거다.
오히려 내가 해 먹었던 밥이나 국이 더 맛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만든 음식이 정말 더 맛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착각이었다.

내가 집에서 밥을 차려 먹을 때는 배가 고플 때이다.
그래서 배고픔을 참으며 헐래벌떡 음식을 만들어 상을 차린다.
그러니 당연히 '시장'이라는 반찬을 놓고 먹는 것이니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상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먹기 싫을 때 먹게 된다.
먹기 싫으니 당연히 맛도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먹기 싫을 때가 먹어야 할 때가 아닐까?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먹기 싫어도 정해진 때에 식사해야 한다.

내가 먹고 싶을 때, 내가 하고 싶을 때만 뭔가를 한다면
즐거울 수는 있겠지만 더 길게 보면 나에게 해로운 것일 수 있다.
입맛이 없어도 규칙적으로 거르지 않고 밥을 먹는 것이 건강을 지켜주듯이
하기 싫어도 규칙적으로 나를 갈고 닦는 일을 빼먹지 않는 것이 나의 실력을 키워 줄 것이다.

입맛이 없어도 맛없다고 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먹는 것이 몸에도 좋고
어머니께도 효도하는 길이다.
나를 갈고 닦는 일도 하기 싫을 때도 기꺼운 마음으로 할 때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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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단 속에서 이루려고 하는 목표를 위해
그 목표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정작 그 집단 안에는 자유도 민주도 없는 것이다.
거의 공산당을 방불케 한다.

개인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외치면서
내부에서는 획일적 가치를 주입하고, 강요하기까지 한다.
이율배반이다.

사학법의 재개정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서
기독교 학교가 가진 나름대로의 목적, 가치를 지켜내려는 시도 가운데
목회자들이 삭발을 했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유명한 교회의 유명한 목사님들에서 총회장님까지
장삼만 걸치면 스님이라 할만한 모습을 하셨다.
여기까지야 뭐 당신들의 이해관계도 있으시고, 정치적인 차원도 있고, 상징적인 위치도 있고, 또 교인들을 위한 메시지 차원에서 '그렇게 까지...'라고 넘길만 한데,
급기야 당신들이 목회하는 교회 전임교역자들을 삭발케 했다는 소식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당신들 혼자 깎고 다니니 외로우셨나? 억울하셨나?
혹 그 안에 삭발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사학법 재개정에 대한
투철한 의식을 가진 이도 있었을 것이지만
내 소견으로는 대부분은 삭발까지 하는 데까지 동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별 관심이 없다고 해야 맞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는 폭력이고, 인권유린이다.
삭발을 한 부교역자들 중 누구도 인권위원회에 제소할 사람도 없고,
물론 끌려가서 삭발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찍소리'도 못하고 깎으라니 깎은 사람들의 심정이란 어땠을까.

소신도 없이 시키는 데로 하냐고 비난 할 수도 있으나,
생각해 보면 그들은 결정적으로 약자일수밖에 없다는데서 한숨을 지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해 가는 일들이 대충 이렇다.
자유, 사랑, 평화를 내 걸고 있지만
삶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깝게 아내에게, 자녀에게 물리적인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폭력적이고 일방통행적이다.

그것이 크던 작던 가시적이든 그렇지 않든
힘은 어디로든 흐르게 되어 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힘이 힘 없는 자들을 위해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힘 없는 자들이 조금이라도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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