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놓고 가는 바람에 핸드폰 카메라밖에 없어서 많이 찍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올릴만한 사진이 나와서 다행이다.
평소에 핸드폰 가메라가 좋지 않다고 투덜거렸었는데...

지난 11월 2일에 촬영한 광경이다.
오늘은 눈이 온다. 경기 북부 지역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단다. 그래도 첫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천 신성리 갈대밭에 대한 소개...(퍼온 글)

갈대밭의 대명사 같은 곳이다. 금강하구둑 변에 있는 이 곳은 하구둑이 생기기 전부터 오랜기간 조성된 갈대밭으로 금강의 침전물이 쌓이면서 갈대가 자랄 환경이 만들어진 반면, 범람의 위험으로 다른 농작물이 재배되지 않으면서 오로지 갈대로만 뒤덮인 곳이다.
하구둑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더 넓었을 것이지만, 하구둑이 만들어진 이후로는 폭이 200여미터 길이 1.5킬로미터로 약 10만평에 달하는 넓이이다. 우리나라의 4대 갈대밭이라고도 하고, 관광공사 선정 7대 갈대 명소이기도 하다.
강변을 따라 퍼져 있는 갈대밭은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소로도 자주 이용되는데, JSA에서 이수혁 병장역의 이병헌이 볼일을 보다가 지뢰를 밟은 상황에서 인민군 중사 오경필 역의 송강호와 맞닥뜨리는 갈대밭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 되었다. 또한,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무혁이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갈대밭 장면이 이곳이기도 하다.
갈대밭에는 다양한 구조물들도 있고, 갈대밭 사이로 오솔길도 있는데, 각종 싯귀가 적혀 있는 팻말부터 목구조 다리도 있고, 장승이나 솟대등을 볼 수 있다. 간이 매점도 있어서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강변쪽으로는 각종 철새들고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청둥오리, 고니등은 먼발치에서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보니, 철새 탐조로는 적당하지 않다. 갈대는 가을에 찾아야 제맛이지만, 다른 계절에도 나름대로 운치 있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퍼온 글입니다. 생각하게 하는 면이 있어서. 또 김훈태님을 아주 잠깐 만났었습니다.)

초등학교 애국조회, 그 쓰라린 패배의 기억

참세상 | 기사입력 2007-06-29 12:09 

[맹세야, 경례야 안녕](9) - 군문초 교사 김훈태 님

김훈태(군문초)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맞는지 모르겠다. 국기에 대한 맹세. 곱씹어 볼수록 나치스럽다. 나는 태극기가 자랑스럽지 않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를 나의 조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슴이 아프지만, 사실이다. 정이 떨어졌다. 평택의 대추분교가 무너지던 날 나는 깨달았다. 대한민국은 '그들'의 나라라는 것을.

교직 4년차 되는 해에 나는 전담을 신청해 담임을 맡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구속 수감되었다. 전담을 택한 표면적인 이유는 대학원 진학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병역거부의 충격을 담임교사로서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고, 다른 하나는 애국조회로부터 달아나고 싶어서였다.

새로 부임한 교장은 운동장 조회를 유난히 좋아해서 월요일과 토요일마다 전교생을 운동장으로 불러내 훈화를 했다. 담임교사들은 아이들을 여자 한 줄, 남자 한 줄의 이열종대로 행진곡에 맞춰 데리고 나가 운동장의 정해진 줄에 세워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란히, 차렷, 열중 쉬엇, 차렷의 부동자세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도록 지도해야 했다.

이어지는 교장의 훈화는 대개 나라 사랑과 효도, 질서와 청결, 근면 따위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애국조회가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식민지 시절 일왕에게 바치던 일련의 조회 행위와 전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었다. 뜻있는 분들의 운동에 의해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애국조회를 비롯한 식민지 잔재는 전혀 청산되지 않았다. 나는 그게 절망스러웠다.

천황을 상징하는 히노마루에 경례를 하고 황국신민으로서 충성 맹세를 한 뒤 기미가요를 부르던 아이들은 교사가 되어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해방 조국의 아이들에게 저희들이 배웠던 것을 그대로 강요했다. 독재자를 위해서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런 일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우리가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에 저항감을 덜 갖는 이유는 저항적 민족주의 때문이 아니다. 보편화된 극일정서는 청산되지 못한 일제 잔재를 은폐하기 위한 가면일 뿐이다.

단지 우리의 주인이 일제에서 미제로 바뀌었을 뿐, 기존의 체제는 굳건하다. 식민지 교육은 여전한 것이어서 아이들은 국가교육이라는 새 이름 아래 식민화되고 있다. 우리의 근대는 우리 자신을 주인으로 키우지 않는 것이다. 근대가 꿈꾸었던 시민적 주체로서의 개인은 탈근대를 모색하는 현재에도 요원한 일이 되었다. 우리는 국가교육을 통해 주인의식을 국가에게 빼앗기고, 그 잘난 국가는 다시 미국에게 충성 맹세를 한다.

이라크 파병과 미군기지 평택이전과 한미FTA는 그러한 현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들 역시 자발적으로 영어를 미친 듯이(!) 배우고, 미국으로 유학가지 못해 안달이다. 잘못된 교육은 이렇듯 인민 전체를 병들게 한다.

일본에서 부활한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이슈화되기 전까지 우리의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애국가는 너무나 당연해 전혀 문제될 게 없어 보였다.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은 이단이자 비(非)국민으로 치부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두 '대한민국교'의 신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나 불교 같은 종교는 그에 비하면 한 끗발 아래인 것으로 하느님과 부처님의 뜻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여전히 쓰레기 치우듯 감옥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개인적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이해받지 못할 수밖에.

이제 다시 내 얘기로 돌아가 본다면, 나는 미력하나마 저항했다. 국기에 대해 경례하지 않았고, 맹세하지도 않기 시작했다. 애국가도 부르지 않았다. 어느 날은 애국조회 시간에 아이들을 교실에 붙잡아 두기도 했다. 교무회의 시간에 교장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설문지를 전 교직원에게 돌려 애국조회를 하지 말자고 선동도 했다. 아이들에게 토론도 시켜보았다. 그러나 허사였다. 동교 교직원들은 뜻에는 공감했으나 움직여 주지는 않았다. 나는 지쳐갔다. 현실을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아이들조차 애국조회는 필요하다는 입장이 다수였다. 나는 내 뜻을 강요할 수 없었다. 전담교사를 선택한 것은 그래서였다. 차라리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나에겐 그것이 패배감으로 남아 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국민 여론과 상관 없이 폐지돼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옳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형제 폐지와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도 마찬가지이다. 국기법이 제정되면 이제 양심에 따라 국기에 대해 경례나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다. 거꾸로 가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교'를 믿지 않는데 왜 '그들'의 우상을 향해 경배하고 맹세해야 하는가?

우리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제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해서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권위에 순종하여 안정과 쾌락을 얻으라고 교육받았다. 처벌과 훈육을 통해 각인된 노예의식은 우리의 얼굴을 빼앗아갔다. 교육은 이런 게 아니다. 참된 교육은 스스로 주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주인된 자만이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행복을 찾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야 한다. 새 조국의 건설에 동참하는 이, 부디 용기내길 바란다. 우리는 자유인이다.

'깨어살리 > 돌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타벅스를 국회로!  (0) 2008.04.04
신문 가지고 내립시다!  (0) 2007.12.06
약간은 행복한 시간!!!  (2) 2007.07.31
그리스도인이 없는 교회  (0) 2007.07.20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만...가슴 아프다.  (0) 2007.04.27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드디어 여름성경캠프가 끝났다.
지난 주일까지 2박3일...

이런 날이 올 줄 알면서도 왜 그리 안달을 했는지.
그러나 마치 캠프만 지나면 끝인 것처럼 뛰었지만,
막상 지나고 나니 동일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수정해 달라고 기다리는 월간 숲과나무 원고뭉치.
이런 저런 처리해야 할 자질구레한 일들.
피곤이 몰려와 눈이 감기고 몸이 처져도 피씨 앞에 붙어 앉아 있어야 했다.

그래도 1년 중 가장 큰 행사를 치르고 난 다음이라
약간은 아주 약간은 행복한 시간이다.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월요일에 내려가서 화요일에 감나무에 약을 치고 왔다.
가능하면 화학농약을 치지 않으려고 하는데,
워낙 벌레가 많이 붙어서 도무지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을 정도여서 올 해는 좀 서둘러 쳤다.
보통 감나무는 약을 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감나무에 벌레가 많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적어도 두세번은 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버렸다.

이것 역시 인간의 욕심이 부른 결과가 아닐까?
돈이 된다고 생각하면 지나칠 정도로 많이 심고, 많이 따려고 하니
예전에는 다른 나무들에 의해 조절되었던 해충들이
감나무를 공격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더는 약을 치지 않고 감을 수확할 수 있으면 좋겠다.
7월에 한 번 쳤으니, 10월 하순에 딸 때는 농약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벌레도 없고...

또 욕심이 과한 것인가!

'시골살이 > 초보농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밭갈기 한 판, 경운기와 관리기로...  (1) 2008.06.15
농사철이 시작되다.  (2) 2008.04.15
밭 갈고, 고추 심다.  (3) 2007.05.09
살구나무 가지치기  (1) 2007.03.29
귀농 2년차를 마무리 하며  (1) 2006.11.28
블로그 이미지

dolsori

,

교회에 더 있으면 있을수록 더 확신이 드는 것이 있다.
교회에 그리스도인은 없고 교인만 있다는 것이다.
교회엔 그리스도인은 없고 목사, 장로, 권사, 집사만 있다.
그리스도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한 노력 또한 별로 찾아 볼 수 없다.
단지 목사의 모습, 장로의 모습, 권사의 모습, 집사의 모습에 충실하려 할 뿐이다.
자신이 집사이면 집사에 맞는 행동을
권사가 되면 권사의 행동을
장로가 되면 장로의 행동을
목사는 목사의 행동을 하기에 급급하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고민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장로로 보이느냐가 더 우선하는 것이다.

세상적 가치관을 조금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유지한 채
힘의 논리에 따라 자신의 생각대로 뭔가 해 보려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배려도, 인내도, 사랑도 찾아보기 힘들다.

예수님께서 비판하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럴바엔 교회를 좀 쉬는 것이 더 낫지 않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으니 교회를 향한 비판도 당연해 보인다.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도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닌
외형으로 드러나는 교인의 모습에 비중을 두고 있으니 안타까움을 더한다.

지나친 비약일수도 있겠으나, 충분히 반성해 볼 일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나는 전도사 노릇에 집중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식과 삶에 집중하고 있는가?

블로그 이미지

dols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