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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하고 생각하는 것이 곧 글을 쓰는 바탕이며 출발점이다.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훈련이 더욱 중요하다.
기막힌 이야기 기막힌 글쓰기, 최수묵 지음, 교보문고, 29p.

매일 짧게라도 글을 써 보겠다고 작정을 했는데,
어느 날은 블로그만 열어 둔 채로 한두 줄 쓰다가는 한 글짜도 더 나가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다 떠올려 보고,
아무 글도 써 있지 않은 플래너를 뒤적거린다.
그러면서 장탄식이 나온다.
'아, 오늘은 아무 생각도 없이 하루를 보낸 것인가?'
정말 하루라는 긴 시간을 보내면서 아무 생각도 안 했을까?

그렇다.
하루동안 생각 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보낸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 가운데 지혜를 얻지 못한 것이다.
꼭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음에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인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연해주 들녁에서_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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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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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아들을 둔 엄마가 있다. 누구보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요사이 딸도 아들도 자신의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열심히 살고 있다. 또 각각 애인도 있어서 교회에서도 소문난 커플들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 정도면 다른 가정들에 비해서도 자녀들이 잘 지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엄마는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입이 나오고 얼굴빛이 어두워진다. 나름 공부도 잘 하고 있고, 연애도 잘 하고 있으면 그렇게 계속 가기만 바라며 지켜보면 되는 것 아닐까?
엄마 마음은 그것이 아닌가 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겠고, 지금보다 더 나은 학과에 가서 더 전망 있는 직장에 취직하면 좋겠고, (실제로는 자신이 다 해 주려고 하면서도) 자기 일을 알아서 잘 해주었으면 좋겠고, 더 좋은 집 배우자를 만나면 좋겠고, 더 신앙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고, (늘 품고 있기를 원하면서) 빨리 독립해서 자기 앞가림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또 기도의 대부분을 채운다.
자식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미 많은 부분에서 자식들은 엄마를 배려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자식들을 향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자식들을 향해 그렇게 매달리는 것이 정말 누구를 위해서인지 묻고 싶다. 그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면서 정말 자식들이 잘 되기를 위해서 그러는 것인가? 물론 그렇다고 대답들 하시겠지만, 경험하고 관찰해 본 바에 의하면 '아니다'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자식의 수준을 위해서, 자기가 들인 물질을 포함한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가 더 많은 부분에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욕망(이런 엄마들의 태도는 욕망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을 채우기 위해 자녀들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은 엄마의 장식품이 아니다. 자녀는 자녀 나름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이미 그들을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있다. 부모는 자녀들이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며, 진지하게 선택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부모들은 모든 것을 다 결정하고, 그대로 따르라고만 한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꾹 참으며 분노를 쌓는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그것을 되갚아 주겠다고 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시대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빨리 깨닫고 자녀들을 놓아 주고,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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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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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부에 최근 4주를 결석한 중1 여자 아이가 있어서 전화를 했다.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아서 엄마랑 통화를 하게됐는데,
엄마 얘기로는 아이가 교회가 가기 싫어해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가는 것이 좋겠다고 얘기를 정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든 생각은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가 교회에 오는 것에 소위 '재미를 못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엄마의 그런 마음 상태가 아이에게 영향을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청소년들은 부모와 상관없이도 이런 저런 것들을 의심하고 거부할 수 있는 시기다.
그럴 때 부모의 삶의 태도는 중요한 방향타가 된다.
그런데 요즘 문제는 오늘의 청소년들의 부모들이 불안한 정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뭐 꼭 신앙이 없다, 믿음이 없다는 식으로 얘기 할 것까지도 없다.
요사이 아이들의 부모 세대들이 맞닥드리고 있는 세상은 불확실 그 자체다.
그 가운데 신앙적 삶도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자녀들에게 신앙적 일관성을 보여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속은 어떠하든지 아이들에게 일관성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부모의 바른 자세일텐데 그것도 어려움에 처한 것이다.

아이가 교회에 가기 싫어한다는 얘기도 시작했지만
사실은 부모들이 교회에 오기 싫어하는 것이 문제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 때는 결국 부모들이 자신의 신앙을 재정립해야 하는 시기라고 하겠다.
지금까지 가지고온 신앙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온 몸으로 격동의 시기를 보낸 그 위 세대 부모들로부터 공짜로 받은 신앙의 유산이
이제 모두 소진되어 버린 상태인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자기 신앙이 아닌 부모의 신앙으로 살아왔다는 얘기다.
이제 그것에 대해서 중심으로부터 큰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봐도 된다.

부모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 좀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보라고,
그리고 나와 하나님에 대한 진지 질문을 던지라고 말이다.
아까도 그 분에게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어떻게 들으셨을 지 모르겠다.

안타까운 것은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있다.
멈추어 서면 도태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또 자식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향해 채찍질을 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어찌 할까?

요즘 범 교회적으로 신앙의 대잇기를 부르짓고 있는데,
대이어질 신앙의 실체가 무엇이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얘기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부모들, 교회가 아래 세대에게 전해줄 것이 뭔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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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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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후기

깨어살리/日步 2011. 4. 27. 22:34
설교 하기 전이 좋을까 설교 한 후가 좋을까?
어리석은 질문같지만...
설교 전이 더 좋은 것 같다.
왜?
설교 전에 긴장 하게 되고, 마무리가 잘 되지 않았을 때는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최소한 아직 말을 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말은 내 뱉으면 그만큼 나에게 되돌아 오는 것을 느낀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라는 지극히 사적인 통로를 통해서 전해지다 보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들어갈 수 있고, 그러다보면 그 말의 질량이 낮아 질 때가 있다.
그렇게 말씀을 전하고 내여 오면 한 없이 허전함에 부끄러움까지 느끼게 된다.
아마 설교를 들은 성도들은 전혀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전한 전체 말씀이 아닌 마음에 와 닿은 일부분만을 기억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또 매 번 최선으로 준비되지 않는 설교를 보면서,
나 자신의 성실하지 못함, 실력 부족이 많이 느낀다.
물론 내가 할 수 없는 성령의 영역이 있음을 고백한다.
때때로 성령의 역사하심이 나를 압도하는 경험도 하지만,
그것이 늘상 일어나는 체험은 아니다.
그래서 노력 없이 그런 요행만을 바랄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암튼 오늘은 설교 후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이런저런 넋두리를 해 본다.
다음 번에는 좀 더 최선을 다하고, 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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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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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은 요즘 교회들이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면 한 가지 큰 의구심이 든다. 
동일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이제껏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의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개의 교회와 목사님들이 침묵으로 일관했었다는 얘기다.
이미 2002년에도 한 목사님이 돈봉투를 받았다는 양심선언이 있었고,
이에 대해 당시 교계 일부의 술렁임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남의 일처럼 여기다가 이제와서 큰 일을 맞은 것처럼 자성한다고 야단이다.

차이점은 언론의 관심에 있고, 이로인해 사회전반의 시선이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쏠리는 것을 의식하고 그것을 막아 보겠다는 동기가 많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정말 조심스럽지만, 이런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하나님은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결국 이전부터 있었던 금권선거 가운데 자신들이 돈봉투를 돌릴 때, 또 그 봉투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보시고 있다는 것을 몰랐나?
그 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돈보다 하나님, 총회장 자리보다 하나님을 선택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제와서 사회에서 관심을 보이고, 공론화 되자 자성한다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특정인을 문제의 근원인양 몰아 세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성명서를 발표하고 자성하자고 하고, 그것에 동의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서
진심어린,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전히 자신이 옳고, 지금 그런 자신들의 위치와 힘을 지키겠다는 의도가 더 앞서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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