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해주에 갔을 때, 한 카톨릭 복지시설에서 받은 책갈피이다.
추측하건데, 아마 프란치스코가 아닐까 싶다.
자연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그의 기행에 비추어 보면 저렇게 동물들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는 동물들이 곁에 있는 지 아는 지 모르는 지 하나님을 향한 기도 가운데 몰입되어 있다. 

오늘 새벽에도 기도회에 갔었다.
사순절이기도 하고, 그 중에서도 이 번 주간은 고난주간이고,  
올 해 동숭교회는 특별히 '내 생애 마지막 한 달' 캠페인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나는 교역자니까 빠질 수 없다.
지난 주에 담임목사님께서 '내가 만약 목사가 아니면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고 하셨는데,
나도 그런 생각을 했고, 대답은 빠졌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왜냐면 난 새벽, 아침에 취약한 체질이기 때문이다.

암튼 기도를 한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과 잘 통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 새벽에도 한 청년이 무릎을 꿇고는 큰 소리로 기도하는 바람에 약간 졸다가 번쩍 깼다.
그런데 그 기도 내용을 들으며 답답함을 느꼈다.
하나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쉴새 없이 뽑아 내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물론 대개의  개신교 신자들의 기도가 이럴 거다.
문제는 기도를 할 때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나'가 너무 살아 있어서, 그 나를 만나시는 하나님이 들어갈 여백이 없는 것이다.
나의 의지, 이렇게 되게 해 달라는 요구, 계획 등을 내려 놓고,
그 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그 분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니는 지 잠잠히 기다리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기다리다 보면 하나님을 느끼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마치 위의 책갈피의 그림처럼, 내가 어디에 있는 지, 무엇이 내 주변에 있는 지,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도 잊고 기도로 빠져 드는 것 말이다.
자신을 비우고 기다리는 것이 전재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기도, 그래서 참 어렵다. 그런데 또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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