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철이 시작되고 있다.
밭에 거름을 넣고, 쟁기질 하고, 로터리 작업해서, 골도 타야 한다.
어제는 일단 감나무에 거름(유기물 비료)을 넣었다.
그리고 고추밭 만들 자리에도 거름을 뿌렸다.
다음 주에 내려와서 로터리 작업하고 골 타고 이랑도 만들어야 한다.
오래간만에 거름 나르고 쇠스랑으로 땅을 팠더니 팔도 욱신거리고,
무엇보다 손끝이 얼얼하다.
빨간 고무로 코팅된 장갑을 끼고 일을 하면 손이 가진 힘 이상을 사용하게 되어 손끝이 힘겨워한다.
하지만 몸으로 일하며 땀 흘리는 것만큼 유익한 경험은 없는 것 같다.
잡다한 생각들도 물러가고, 흙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니 말이다.
도시생활에선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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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 딸기밭이다.
요사이 나오는 딸기를 제철 과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딸기가 제철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보면 된다.
아직 꽃도 피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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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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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경건회 말씀을 준비하면서 앞의 것과는 쪼금 다르게 써 보았다.

막상 경건회 때는 그림을 그리듯 전하다 보니 앞부분 이야기에서

중간 예수님 이야기는 빼고 바로 결론으로 갔는데

‘내가 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자, 전하자’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본 그대로 하기를(2)

출27

8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본 대로 해야 할 책임이 모세에게 주어졌습니다.

대개 그리스도인들은 출애굽기 22장부터 31장까지, 더 길게 잡으면 40장까지를 읽으며

지루한 마음으로 눈을 굴려 신속히 지나갑니다.

본 대로, 그대로 전해서 똑같이 만들게 해야 할 모세는 한 눈을 팔 수 없는 긴장된 시간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율법주의자들의 모습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 규례를 잘 지키기 위해 더 세분화된 규정까지 만들어 철저히 지키려 했으니까요.

정말 그럴까요?

그들이 정말 하나님께서 그리신 안식일의 그림을 그대로 완성한 것일까요?


아니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며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외치며

손 마른 자를 고치시고(마11),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를 고치신(요5) 예수님이 그 그림을 완성한 것일까요?


안식일... 출20:8, 출23:12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올려지고, 작은 자들에게 숨 돌릴 틈이 주어진 것은 누구를 통해서였습니까?


자신들은 안식일을 넉넉하게 지킬 수 있음을 뽐내며

그럴 수 없어 안식일의 규례를 범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질시하는 행위는

결코 하나님에게서 안식일을 명하시며 보여 주신 그림을 그대도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구덩이에 빠진 양을 구하듯(마11:11)

불안정한 사람을 도와주고, 낫게 해 주는 예수님의 삶이 더 하나님의 그림을 온전히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실(마25:40)

그 하나님을 생각하며 오늘 나에게 주시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정성을 쏟을 수 있다면

그대로 함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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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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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울타워에 갔다.
그런데 전에 보지 못한 진풍경을 목격하게 되었으니,
안전망에 걸린 수 십, 수 백 개의 자물쇠들,
홀로인 것도 있지만 두개씩 쌍으로 채워져 있는 모습.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고 굳게 채워진 연인들의 자물쇠.

손가락 거는 것으로는 부족해 자물쇠로 굳게 채운 마음.
그 사랑, 그 약속 영원했으면 좋으련만
그 다음 일은 나도 모르고, 그들도 모르고, 하늘만이 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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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그대로 하기를

출27

8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25:9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25:40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네게 보인대로’는 성소를 만들라는 말씀을 주시며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사용하시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할 때 융통성을 부린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칭찬하실 기술자는 자신의 능력을 한껏 뽐내기 위해 융통성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대로 그대로 만드는 자여야 합니다.

또한 이를 중계해야 하는 모세의 역할 또한 막중했습니다.

자신이 본 그대로 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런 것들을 이르실 때 단지 말씀으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셨던 것 같습니다.

들은 대로, 받아 적은 대로가 아니라 ‘본 대로’이기 때문이다.

이후 기술자들이 작업을 똑바로 하고 있는지 노심초사 했을 모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 때 모세가 보았던 것을 그대로 할 필요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율법을 새롭게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대로 하려는 마음은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적인 그 마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사람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마음과 행동을 따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셨고, 그래서 그대로 하려고 노력하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외형적 그리스도인의 삶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을 보게 됩니다.

종교적 행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열심을 내니 말입니다.

반면 내적 삶의 자세는 전혀 그리스도의 삶을 좇지 않습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겉모습은 너무도 쉽게 벗겨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손쉽게 그리스도의 원칙을 상황에 따라 바꾸어 버리는 놀라운 융통성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몇 명이라도 삶으로 경험하고 목격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해 주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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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출26

1 열 폭으로 성막을 만들어라. 그 천은, 가늘게 꼰 모시 실과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놓아 짠 것이라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설계도를 주시면서 그 유효기간은 언제까지로 생각하셨을 까요?

우리는 대개 성막을 40년 광야 생활의 풍경 중 하나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설계도를 주실 때는 조만간 가나안에 들어갈 예정이었습니다.

이렇게 천막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 명하실 것이 아니라

돌로 만드는 것을 가르쳐 주셨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만들 신전의 설계도를 주셨다면

어쩌면 백성들이 더 기대에 차서 더 힘 있게, 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았을까요?


어떤 분들은 성막이 광야에서 이동하는 진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성막은 광야에서 40년이 지체된 후에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다윗을 지나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까지 그대로 유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단지 광야생활을 염두에 두고 성막 건축을 지시하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온전한 성소의 모델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까지 480년 가까이 지속된 것이 성막이었습니다(왕상6:1).

그러니 이후 만들어진 그 어떤 성전보다도 더 오래 유지 된 것이 성막이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새로운 천으로 갈았겠지만 그 원형은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 있어서 성소의 재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백성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 만남이 능력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한 점입니다.
그래서 그 천막이 하나님의 위대함을 더 드러내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웅장하고, 멋진 신전을 가진 신이라면 당연히 능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초라한 천막을 성소로 가진 신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가졌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고, 더 큰 영광을 돌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겉보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백성들은 만나주시는 분이 누구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큰 교훈을 가져가게 될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질그릇에 담긴 보배를 이야기 하며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고후4:7).


사람들은 건물에 주목하지만 그 건물은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그 안에 깃들이는 하나님께 완전한 능력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연약하고 볼품없는 천막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음으로 해서

그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최고의 성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을 때 솔로몬이 화려하게 지은 성전도 무참히 무너져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꼼꼼하게 이르시는 하나하나 빠짐없이 받아 백성들에게 전해
작은 수치 하나 틀림없이 성막이 만들어지게 해야 하는 모세의 책임은 너무도 막중한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의 손으로 만든 곳이 하나님과 백성들이 만나는 곳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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