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를 바꾸지 말기를

출 39

1 그들은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로 성소에서 예배드릴 때에 입는 옷을 정교하게 짜서 만들었다. 그들은 이렇게,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아론이 입을 거룩한 옷을 만들었다.


일꾼들은 마지막으로 제사장의 옷을 만듭니다.

제사장의 옷은 거룩한 옷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을 매개하는 일을 할 때 입는 옷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된 사람은 그 거룩한 옷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전에 했습니다(출28).

더불어 그 옷을 만드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만들었다’는 생각에 붙잡히면 안 됩니다.

‘내가 거룩한 옷을 만들었다’, ‘내가 온 백성들이 우러러 보는 것을 만들었다’고 우쭐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옷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제사장의 직임에 있습니다.

곧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가능할 일입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발현되는 속성입니다.

그런데 한낱 사람이 자신의 손재주로 그것을 ‘만들었다’고 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오직 자신에게 그런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릴 따름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스스로 작게 여길 때는 가능한데 시간이 지나면

그 자체가 커다란 권력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했다’는 이 무서운 권력이 많은 선한 일들을 그르치는 함정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단지 그 시간에 그렇게 쓰임을 받은 것에 대한 깊은 감사만이 진정 거룩함을 담보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그것이 놀랍고 대단합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자연스럽게 당신을 영광스럽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해 주시지 않아도 또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순서를 바꾸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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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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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드는 일

출 38

24 성소 건축비로 든 금 곧 흔들어 바친 금은 모두 성소 세겔로 이십구 달란트 칠백삼십 세겔이다.

25 인구 조사의 대상이 된 회중이 바친 은은 성소의 세겔로 백 달란트 천칠백칠십오 세겔이다.

26 스무 살이 넘어서 인구 조사의 대상이 된 사람이 모두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므로, 한 사람당 성소 세겔로 반 세겔 곧 한 베가씩 낸 셈이다.

27 성소 밑받침과 휘장 밑받침을 부어 만드는 데 은 백 달란트가 들었으니, 밑받침 백 개에 백 달란트 곧 밑받침 한 개에 한 달란트가 든 셈이다.

 

어느 날 아이 하나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내는 헌금은 어디에 다 써요?”라고요.

그 아이는 그 돈으로 교회학교 선생님들 월급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날 우리 선생님들은 한 푼 받지 않고 우리 친구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것이라고 ‘강조’를 한 날이었기 때문이죠.

아이들의 의문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이렇게 되겠죠.

‘우리가 내는 헌금은 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그 때 욱하는 마음에 ‘내가 다 받아 갔다!’라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꾹 누르고는

교회에 불도 켜야 하고, 물도 쓰고, 종이도 쓰고 등등을 읊어대며 비용으로 들어간다고 하며 넘겨버렸습니다.

‘교회와 돈’에 대한 의구심은 이렇게 작은 아이들조차도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교회와 돈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아니, 어떤 관계를 가져가야 하는 것일까요?


모세로부터 위임을 받아 성막과 성소의 물품을 만든 이들을 자신들이 사용한 물품,

더 정확히 말하면 비용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쓰고 남을 만큼 많이 가져온 재료들 가운데서

얼마나 썼는지 낱낱이 밝혀 두어야 했던 것입니다.

금도 은도 무척이나 많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금은이 많이 쓰였으니, 백성들은 빈털터리가 되었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이 내어 놓은 대부분의 금붙이들은 애굽에서 빠져 나올 때 애굽 사람들에게 받아 온 것들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다 사용할 것을 예상하시고 준비하게 해 주신 것이지요.

아무튼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독립된 하나의 민족(아직 나라를 형성하진 않았으므로)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제도로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성막이 만들어졌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돈을 내어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불어 그 성막을 유지하기 위해, 성막을 중심으로 앞으로 이루어질 종교행위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돈(가축이나 곡식 포함)을 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재물을 내어놓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옛말에도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듯이

돈이 가면 마음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수중에서 나간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 지, 또 어떤 절차를 거쳐 가는 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결국 그 돈이 하나님께서 원래 부여하신 질서대로 투명하게 사용될 때

이스라엘 나라 공동체 또한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타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받아서 관리하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했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의 부를 축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적 욕심을 위해 성전에 드려진 물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개의 교회의 재정은 한 사람에 의해 관리되지 않고

여러 사람들에 의해 관리되면서 어느 정도 감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런 체제는 쓰임의 결과에는 관심하지만 과정에는 무관심(사실은 무지)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지켜보다 보니 필요하지 않은 곳에까지 낭비되는 경향이 많다는 것입니다.

체면치례를 위해, 임기응변적으로, 군중심리로, 일관성 없이 방만하게 운영되어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건물에 집중하다 보니 멋드러진 건물을 지어 놓고는 그 관리비에 허덕거리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경상비의 비중이 너무 커져서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작은 정부’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교회’를 지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성소의 건축 비용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멀리 나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소이든 교회이든 돈이 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해서 필요한 것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비용이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 채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더 잘 사용하기 위한 데에 지혜를 모으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모아진 돈을 허투루 쓰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일도 역시 ‘돈 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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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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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역사적인 날이었던 6월 10일 촛불문화제,
광화문 앞 세종로 사거리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 같으면 핸드폰을 진작에 바꿨을 거다.)

이 많은 사람들의 이 뜨거운 열정, 에너지를 이런 곳에 쏟게 하다니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지만, 또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가 변증법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면
그 나름 의미 있는 일이고, 그래서 그 자리에 함께 한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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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 앞 왼쪽에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 지금 보니 고진화 의원(17대)이다.
공천 탈락하고 대운하 반대쪽으로 돌아섰고, 지금은 환경운동 하는 이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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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뭐가 뭔지 잘 구분이 안 가지만 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컨테이너 아래쪽에 붙어 있는 현수막 때문이다.
"경, 08년 서울의 새로운 랜트마크 명박산성, 축"


웹2.0을 대표하는 위키백과에 바로 명박산성의 뜻이 올라왔다.
물론 현재 이 단어가 백과사전에 어울리는 지 그렇지 않은 지 삭제 토론 중이라고 한다.
위키백과>>
명박산성(明博山城)은 2008년 6월 10일 6.10 민주화 항쟁 21주년을 맞아 한미 쇠고기 협상 내용에 대한 반대 시위의 일환으로 서울 도심에서 100만 촛불 대행진이 계획되자, 경찰이 시위대의 청와대 진출과 전경과의 대치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도심 곳곳에 설치한 컨테이너박스 바리케이드를 뜻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네티즌과 시위대가 풍자의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지만, 신문 기사 등에서 인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주요 외신에도 컨테이너 장벽의 사진이 보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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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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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순에 찍었던 사진을 이제야 올린다.
초보농부라하고 하면서 전혀 뒷받침할 증거를 보여주지 않는 것 같아서 늦었지만...

먼저 지난해 작물들에게 모든 영양을 주고 겨울내 쉬었던 땅을 경운기로 부수고,
관리기로 골을 타서 이랑을 만든다.
비닐을 씌우고(멀칭) 구멍을 뚫어 고추 모종을 심기도 하고,
콩이나 참깨, 들깨, 옥수수, 고구마 등을 심기도 한다.

주로 서울에서 살다가 오랫만에 농기구를 사용하다 보니 팔이 저렸다.
특히 직접 접촉하는 손바닥은 벌겋게 달아 오르고 욱신 거렸다.
몸으로 사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삶의 모습일텐데
그것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거리를 두고 사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아무튼 이렇게 작은? 수고로 작지만 한 해 농사의 기본이 갖추어 졌다.
지금 쯤은 이런 저런 작물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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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일 하면서 사진 찍는 것이 좀 머쓱하다.
어머니께서 물 한 잔 들고 오실 때, 카메라! 하고 외치면 재미있어 하시며 가져오신다.
그리고 몇 컷 찍어 주신 것,
어색한 마음처럼 사진 역시 전혀 농사꾼 같지 않은 모습이 생뚱맞게 보인다.
나름 얼굴 표정은 진지하지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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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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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사람의 합작품

출 37

1 브살렐은 아카시아 나무로, 길이가 두 자 반, 너비가 한 자 반, 높이가 한 자 반인 궤를 만들었다.

2 순금으로 그 안팎을 입히고, 그 둘레에는 금테를 둘렀다.


하나님께서 산 위에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들이 그대로

오홀리압과 브살렐, 그리고 그를 돕는 이들의 손길에 의해 실체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모세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솜씨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혹시 잘못 이해한 부분 때문에 오류가 나지 않을지 노심초사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막을 만들고 언약궤를 만들고 성소의 각종 기명들을 만드는 일은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세에게 설계도를 주셨을 뿐 그것을 만드는 일은 오로지 백성들의 몫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상황에서 모세가 전하는 것을 하나도 빠트릴 수 없었겠지만,

이 작업의 모든 키는 작업자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좀 달리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꿈의 실현이 사람들의 손끝에 달려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능력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집중해서 한 치의 오차 없이 만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있었습니다.


이 본문을 읽고 위와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 손끝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사람들의 손끝에서 현실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삶의 장 속에서 그것을 분별해 내고 구체화 해 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말 모세와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 등장해서 모든 의혹을 말끔히 씻어 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오늘의 사회, 오늘의 기독교, 오늘의 교회의 현실은 한마디로 ‘오리무중’이라 하겠습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말해 자신이 뭘 해야 할 지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르침들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을 가지고도 정반대로 이야기들을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죠.

더구나 사회 문제들에 대한 견해들은 왜 그리 극단을 달리는지.

그러다 보니 교회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현재 교회에 잘 출석하고 있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지 심히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성경 말씀 한 두 줄 읽고 너무 멀리까지 나온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답답한 마음을 담아 봅니다.

어쨌든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마치 브살렐과 같이

하나님의 설계도를 자신의 손끝에서 실체로 만들어 내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동업자요, 동역자입니다.

그 동역의 결과는 멋진 합작품의 생산에 있는 것이 되겠죠.

그런데 요사이 그리스도인들, 특히 말 잘하는 사람들이 그 합작품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기에 아쉬운 마음 가득합니다.


그래도 어디선가 조용히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있는 분들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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