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하나님의 선물

출35(표준새번역)

1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주께서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명하신 말씀은 이러하다.

2 엿새 동안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렛날은 너희에게 거룩한 날, 곧 주께 바친 완전히 쉬는 안식일이므로, 그 날에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형에 처해야 한다.

3 안식일에는 너희가 사는 어디에서도 불을 피워서는 안 된다."


출애굽기에만 안식일 언급이 다섯 번이나 등장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인 만나를 주시면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일은 쉬는 날로서, 주님의 거룩한 안식일이니, 당신들이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으십시오. 그리고 그 나머지는 모두 당신들이 다음날 먹을 수 있도록 아침까지 간수하십시오.” 16:23

십계명을 주시면서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20:10

안식년과 함께 다시 이르시면서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의 소와 나귀도 쉬 수 있을 것이며, 너희 여종의 아들과 몸붙여 사는 나그네도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23:12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이르시는 것을 마무리 하시며
“이것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표징이니, 이는, 나 주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면서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 31:17

그리고 출애굽기 35장,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의 사건을 지나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성막을 지으려고 하는 시작점에서 다시 한 번 반복해서 안식일 규례를 명하십니다.


‘맞아 안식일에는 뭐든 일을 하면 안 돼!’라고 생각하며 넘어가면 쉽겠지만,

안식일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율법을 철석같이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에게 안식일은 그런 삶의 지표와도 같은 것이었고,

이렇게 누차 하나님께서 강조하셨다는 데서 더 확실한 정당성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그들의 반대편에 서 계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마 12:8 “그러므로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괜찮다.” 마 12:12


좀 비약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안식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종교인과 신앙인이 나눠진다고 생각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과

안식일에 담긴 의미,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은 같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아마 출애굽기를 쓰고, 또 바로 받아서 읽었어야 했던 사람들은

보다 강한 어조의 율법의 경구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초보적 신앙 단계에서 바로 의미나 의도로 가버리면

자유가 아닌 방종으로 희석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있어서, 또 예수님을 믿게 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 준수의 문제는

단지 문자적인 준수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아마도 예수님은 보다 더 강력하게 말씀하셔서

‘안식일 해체자’ 혹은 ‘율법의 파괴자’로까지 비춰졌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인과 신앙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물론 앞에서도 약간은 이해가 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종교인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사람이라면,

신앙인은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는 사람입니다.

뭐 신앙인이라는 표현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실 분도 있지만

일단 이 논의에서는 더 나아가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종교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힘들게도 보일 수는 있지만 마음은 편할 것이고,

신앙인으로 사는 것은 겉으로는 쉬워 보이지만 실제 그 내면은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수행)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종교인에게 전혀 신앙이 없다든지

신앙인에게 종교적인 행위나 절차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에게 안식일이라는 율법이 없었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바로 알아 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어느 수준(?) 이상이 되었을 때는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어쩌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유로움으로 옮겨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껍데기들의 이면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때로 목숨처럼 여기는 제도와 규율들을 넘어서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교회에 더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자연스러워 지기 보다는 더 경직되어 갑니다.

내면으로는 이미 규율을 규율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사람들이나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옭아매려는 규율에 규율을 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해 준 그런 규율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안식일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출애굽기에서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안식일은

그리스도교를 통해 주일로 바뀌기는 했지만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사이 주5일 근무를 이야기하며 5일 일하고 이틀을 쉬는 이들도 있지만,

6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어야 한다는 것은 실로 파격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다른 율법들에 비해 가장 실천되기 어려운 것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어차피 가진자 힘 있는 자들은 안식일이든 아니든 일하지 않았습니다.

놀고먹으며 힘없는 이들, 노예들, 나그네들, 심지어 종의 자식들의 노동 덕분에 먹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도 쉽게 지켜지지 않을게 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섯 번이나 반복하시는 데는 이렇게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이해한 안식일은 초점이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대한 주권을 선언하시고, 또 그 날 선한(좋은)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신 것은 정말 옳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수고롭게 살아가는 인생에게 베푸신 최고로 좋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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