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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증을 딴 것은 97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운전을 한 것은 올 1월부터이다.
그러니 곁눈질로만 보아왔던 운전에 대한 것들이 실제화 된 것이 이제 겨우 10개월이다.
깜박이 하나 제대로 켜지도 못하고,
와이퍼 조절 하나 잘 못해 쩔쩔매던 것이 바로 올 해의 일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저런 여유를 부리게 되었으니 참 놀라운 일이다.
전화를 거는 것은 삼가려고 하지만, 웬만해서 받는 데는 문제가 없어졌으니.
그래도 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는 여전히 초보운전자이다.
상향등을 고정시키는 것도 석 달 전쯤에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었다.

며칠 전에는 친구에게서 뒤차가 상향등을 켜고 뒤따라올 때 대처법을 배웠다.
사실 상향들을 켜고 앞에서 오는 차보다 뒤에서 따라오는 차가 더 짜증나게 한다.
뒤로 돌아가서 나도 상향들을 켜고 따라가 볼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그 대처법이란, 룸미러를 앞으로 당기는 것이다.
룸미러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럴 때 사용하면 되는지 몰랐다.
어제 밤에 집으로 오면서 실험을 해 보았는데 참 신기한 노릇이다.
각도가 달라지니 빛이 정면으로 반사되지 않는 것이다.
각도를 달리한다는 것...

그렇다.
각도를 달리하면
날을 세우고 덤비는 공격을 비껴 갈 수 있는 것이다.
각도를 달리 생각하면
절대적으로 절망적이거나, 비관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각도를 달리해 보면
온전히 미워할 부분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

혹시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자동차의 기능이 또 있는지 궁금하고, 또 알게 될 것에 기대도 된다.


200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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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1년차

누군가에게 나를 귀농자로 소개하는 것이 아직 좀 어색하다.
여전히 ‘농(農)’자에 서툰 초보이기 때문이다.
말은 쉽지만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일까.
그래서 ‘농촌에 사는 거죠’라고 말한다.
그 말이 맞는 것이 아직 땅이라고는 한 평도 가지고 있지 않고,
남의 땅에 우리 먹고, 조금 나눠먹을 만큼의 몇 가지 작물들을 재배할 뿐이니 말이다.

땅 없이 농촌에 산다는 것을 60,70년대 농촌에 사셨던 분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가 보다.
소작을 하느냐고 약간은 안됐다는 눈빛으로 보는 분도 있었다.
때문에 반드시 땅을 가져야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신다.
물론 맞는 말씀들이기도 하지만
지금 농촌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을 알게 되실 거다.
땅을 가지게 되면 좀 더 안심, 안정은 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부지런히 몸을 놀릴 마음의 준비만 되어 있다면 널린 것이 땅이고,
그 땅에 농사를 짓는 것이 과거처럼 결코 천대받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곳 분들은 나이 들어 힘에 부쳐 지을 수 없는 땅을 놀리지 않게 되어 고마워하신다.
문제는 그런 땅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아진다는 것이고,
몇 안 되는 젊은이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땅을 사들여 땅값만 올려 인심만 흉흉하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꼭 필요하다면 집터와 집 주변에 텃밭 정도는 확보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유기농이니 해서 생명농법을 하려 한다면 적게라도 자기 소유의 밭이 있어야
소신껏 투자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남의 땅에 관행농이 아닌 유기농을 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아무튼 농촌에 살며 농사를 짓는다는 것
아직 내 몸에 익지는 않았지만 나와 상관없이 한해가 가고 있다.
이웃 할아버지 하시는 일 곁눈질로, 귀농선배에게 전화로, 농사관련 책으로,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감각으로 한 해 농사를 지었다.
들깨는 들인 시간과 노력과 땀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수확을 했는가 하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참깨는 풍성하게 수확했다.
별 볼일 없어 보였던 감은 막바지에 효자 작물로 즐거움을 주었다.
살구, 호두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깜짝 선물이 되었고,
대문 밖 텃밭은 때마다 적절한 푸성귀들을 선사했다.
흙과 물과 양분과 공기와 태양의 조화, 그리고 하늘의 보살피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농촌의 생활도 많은 변화가 왔다.
그래서 도시처럼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 생활의 부산물이 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각종 농자재들이 그러하고, 생활 쓰레기들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환의 가능성을 보면서
나 하나만의 청결을 위한 오염보다는 더불어 살아감에 대한 기쁨을 얻고 있다.
배설물들이 고스란히 흙으로 돌아가고,
흙은 대부분의 부산물들을 분해해 양분으로 바꾼다.
난 순환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분리하는 약간의 수고만 하면 될 뿐이다.

그러므로 나와 흙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흙에서 자라는 것들이 나의 밥상이 될 뿐만 아니라
나 또한 그들의 밥상이 되는 것이다.
서로에게 밥상이 되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곳,
그곳이 농촌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친구네 집 화장실 문에 붙어 있는 시를 옮겨 본다.)

김정원

똥이더라
밥이더라
밥이 똥 되고
똥이 밥되는 일이더라
교수보다 존경할 일이더라
시인보다 가난해지는 일이더라
연륜이 더할수록 부족함을 느끼는 겸손이더라
평생 겨우 오십 번밖에 해볼 수 없는,
희귀한, 예사롭지 않은 일이더라
인내와 절제와 땀이 진득하게 밴,
피 같은, 소박한 밥상이더라
길가 제비꽃 한 송이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두엄 속 지렁이 한 마리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생명을 가꾸는 일이더라
각지불이(各知不移)더라
맨발로 하늘을 모시는 일이더라
공기처럼 물처럼 햇빛처럼 없으면
우리가 죽을 일이더라

200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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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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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처럼 특별한 연료도 없다.
값이 저렴하다는 것도 그렇지만
검은 덩어리가 타고 나면 하얗게 변하는 것이 독특하다.
석유는 액체여서 그 변화를 관찰하기 어렵고,
나무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차원은 다른듯하다.

연탄이 보일러 안 화덕 속에 들어가 이미 타고 있는 선배 연탄에 올려지면
작게 탁탁하는 소리를 내면서 그 역할을 시작한다.

연탄 한 장의 값은 배달 거리, 사람이 들고 나르는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240원이 될 수도 있고, 360원이 될 수도 있다.
그나마 정부에서 장 당 700원 이상을 지원해서 이 가격을 유지한다.
아무튼 그 어떤 연료보다 저렴하다.
그래서 유가폭등에 연탄이 인기고,
배달하는 분들은 너무 힘들어 오히려 즐겁지만도 않단다.

뜨겁게 자신을 달군 후 하얀 덩어리로 남는 연탄.
우리집도 가을부터 시작해 올 겨울 그 신세를 톡톡히 지게 되었다.

안도현의 시가 생각난다.

제목: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200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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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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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지막으로 감을 땄다.
집 주변에 있는 감들은 이미 다 땄고,
오늘은 밭에 있는 큰 나무 두 그루와 너 댓 개  달린 작은 나무들의 것을 땄다.

한 나무는 그리 높지도 않고 많이 달린 편이어서 재미있게 땄는데
두 번째 나무는 몇 개 달리지도 않았는데 아주 높아서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나무에 올라가다보면 점점 더 올라가게 되는데 그것도 다리 떨리는 일이지만
5m정도 되는 장대를 이리 저리 옮겨가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항상 한 나무가 끝나 갈 때, 대여섯 개가 남았을 때 갈등이 생긴다.
까치밥으로 그냥 두고 내려갈까?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오기가 생긴다.
이왕 올라왔는데 남겨두고 내려 갈 수 있는가?
그리고 몇 개라도 감이 남아 있는 나무를 보면 시원치 않았던 경험도 있고 해서.

농촌에 와서 살면서 까치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새가 되었다.
만약 그런 생각이 없다면 순순히 까치밥 남긴다는 명분으로 내려 올 수도 있었을 텐데.
이놈들이 고약한 짓을 좀 하는 통에 좋은 감정이 없어졌으니.

그러나 생각해 보면, 어찌 감나무가 감을 나만을 위해 맺었겠는가?
자신을 위해서,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날짐승 들짐승들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러니 악착같이 한 개도 남겨두지 않는다면 얼마나 섭섭할까.
새들이 자기들 밥을 남겨두지 않으면 이듬해에 보복을 한다는 전설(?)도 있다지만,
그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정하는 차원에서
열매를 나누는 차원에서
남겨 둘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오늘은 너무 높이 달리고 힘도 들어서 열 개 정도는 남겨 두고 온 것 같다.
이리 생각하니 아까워 할 일은 아닌듯하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레위기 19:9-10

200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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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이 아프고, 불편하다는 핑계로 다른 날보다 늦게 일어나고
하루 종일 닭에게 모이 주고, 개와 고양이들에게 저녁 주는 것 외에 하는 일 없이 보냈다.

지난번 벼 수확 품삯으로 햅쌀 40K를 받아왔다.
사실 그 날 이후로 손목이 아픈 거니까 그것까지 생각하면 조금은 부족한 품삯이지만
겨우 들어서 옮겨야 할 정도로 무거운 쌀을 받아 오면서
감사한 마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어찌 이것을 돈으로 환산 할 수 있겠는가?
대지의 생명이 담긴 소중한 양식인 것을...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적든 많든 한 해 농사의 수확들을 보면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작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리 수 십 년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도
농사와 관련된 최근의 과학적인 지식들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농사의 관건은 날씨, 햇빛과 비와 기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경험과 지식이 이런 것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겠지만
자연현상이 언제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오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단언하건데 농사는 하나님이 지으시는 것이다.
그저 사람은 씨 뿌리는 일, 돌보는 일, 거두는 일을 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꽃 피우시고, 결실케 하시고, 무르익게 하는 것이다.
나의 농사가 아니라 ‘그 분의 농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감나무에서 감들이 없어지고, 잎들이 떨어지고 나니 농가의 풍경이 좀 허전해지고 있다.
서리가 내리면서 푸르렀던 다른 나무들, 풀들의 잎들도 축 처져 검게, 누렇게 변하고 있다.
역할을 다한 그들이 쉼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리라.
내년에 다시 푸르름을 머금은 모습을 그려본다.

200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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