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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을 과장하는 버릇이 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이 너무 많다고 투덜거린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일 아닌가.
볼 수 있고, 호흡할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배설할 수 있고,
아픔, 시원함, 더위, 추위, 서늘함 등 내외부의 변화들을 느낄 수 있는 것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걸어서, 차로 이동 할 수 있다는 것,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누리고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수없이 많은 누림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
너무 당연하다고 느껴서 일까?

9월 24일 일요일
당신이 경험하는 일과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 과연 당신이 이처럼 환상적인 체험을 할 만한 자격이 있는가? 당신이 하느님이 어루만져 주실 만큼,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을 할 만큼 특별한 사람인가? 그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라는 것은 당신도 알고 있다. 당신이 이런 일을 누리고 경험할 만큼 한 일이 없다. (나웬이 러셀 슈와이카드의 글 인용) 마지막 일기, 헨리 나웬

자격이 없는 데도 받았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이다.
그 만큼의 은혜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왜 그렇게 더 달라고 부르짖는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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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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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힘:사람

요즘 과제 때문에 '숨겨진 힘-사람'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경영서적을 많이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이런 책들은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일단 마음에 든다. 아직 앞부분을 읽고 있지만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는 대충 알 것 같다. 한 마디로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성공한 기업들은 그것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천했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은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그러한 생각을 실제로 실천하고 있다. 78p

그래서 이 책의 2장에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사가 어떻게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지 구체적 실례들이 빼곡하다. 이 부분에서 눈길을 끈 것이 인재선발인데, 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직원의 태도라고 한다. 실력이 아닌 태도, 성격을 중심으로 사람을 뽑는다는 것은 자칫 그 과정이 선명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직원들을 면접 과정에 참여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늘려서 최선의 인재를 선발한다고 한다.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선발 담당자가 말하는 태도가 중요한 이유가 걸작이다.

"우리는 지원자의 태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만약 태도에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우리 회사에 들어 올 수가 없다. 업무 능력은 교육을 통하여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격은 그렇지 못하다." 86p

'성격은 그렇지 못하다'라는 말에서 가슴이 덜컹한다. 요즘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나의 태도, 즉 자동반응 하는 성격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격이 족쇄처럼 나를 붙들고 있다고 느껴지고 있던 참이다. 겉으로는 나이도 먹고, 배우기도 많이 배우고, 말도 고상하게 할 수 있게 되지만 정작 성격이 나를 원래 자리로 끄집어 내린다. 성격은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지만, 성격에 지배되기보다 깨어 있는 의식에 지배도록 훈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도 쉽게 무장해제를 당해 버린다.

암튼 위의 이야기들은 듣고 배워서 아는 것 이상으로 실천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그리고 사람의 참다운 실력은 동료들과 건강하게 소통할 수 있는 태도라는 것을 알게 한다.

예수님의 방법은 분명히 사람 중심이었다. 그것도 율법주의자들처럼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실천하셨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고,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 가셔서 살 맞대는 일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의 한 마디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셨고, 애정을 가지고 대답해 주셨는데, 그가 적대자라 해도 별 차이는 없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로 대접받는 경험을 한 사람이 어느 순간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예수님이었다면 그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사람 소중하다고 떠들지만 말고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구체적 실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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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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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 수업 시간에 ‘30살이 더 많은 사람으로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분’을 찾아서 심층인터뷰를 해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교수님이 과제를 내 주셨다. 하지만 수강생 대부분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은 그러면 ‘자신이 30년 후에 누군가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끔 하는 사람이 될 수는 있을까’를 질문하셨다. 30년 후에 누군가 나를 본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없을 것 같지만, 혹시 가능하다면 오늘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수업을 마치고 11시를 넘기는 시간까지 모여 앉아서 두 주 남은 행사 이야기와 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대학원 동기들을 보면서 참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거의 중간이니까 나를 중심으로 아래위로 10살이 훌쩍 넘으니 최고 20년도 더 차이나는 사이도 있다. 그런 연령 차이에다가 알게 된지 8개월 여 되는데도 얼마나 오누이 같고, 남매 같고 형제자매 같은지. 어쩌면 이렇게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온 사람들처럼 말이다.

9월 19일 화요일
오늘 나는 우리 삶이 수많은 형태로 연결되어 왔다는 점에 새삼 놀랐다.
                                                                                                  (헨리 나우웬의 마지막 일기 50p)

헨리 나우웬을 만났던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닐까?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만약 헨리 나우웬 신부를 알게 되었고, 관계를 맺게 되었다면 그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지 않았을까? 뭐 그 사정도 잘 모르고, 인간 헨리 나우웬에 대해서도 자세히 모른다. 단지 그의 저작들을 통해 그의 생각을 엿보았을 뿐이다. 글이라는 것이 묘해서 그 사람을 다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 교묘하게 진면목은 감출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헨리 나우웬이 관계를 지속하면서 그들과의 연결에 새삼 놀라는 대목에서 나는 뭘 그걸 가지고 그러나 하면서도 나에겐 그런 관계가 있는 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낮에는 친구가 목사 안수를 받는 곳에 다녀왔다. 내가 동기회에 회장 없는 총무라서 대표 격으로라도 가야했고, 또 평소 통화를 자주하고 지내는 편이었기에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고민없이 다녀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그 관계가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놀랄만하지도 않다. 19년 지속된 관계지만.

오늘 만나는 사람들, 과연 그들과의 연결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삶을 정리하는 순간까지 나의 존재를 느끼게 해 줄 사람이 있을까?

나와 30년 차이나는 이들은 지금 초등학교 1학년들이다. 그들과 진솔한 만남을 가지려하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있어야 할 것 같고, 그 전에 20년, 아니 10년 차이라도 마음을 나누며 공존의 기쁨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한두 가지라도 서로에게서 담고 싶은 점들을 찾아 갈 수 있으면 더 좋겠고. 그래서 오늘 목사 안수를 받은 친구도, 또 같이 공부하는 동기들도, 교회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도 귀하고 소중하게 만나고 연결해 가야겠다. 언젠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음에 새삼 깜짝 놀라기를 바라며.

92년에 한 동기의 결혼식을 마치고 참석했던 친구들이 사진을 찍었다.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 여섯 번째 친구가 오늘 안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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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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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플래너와 인연을 맺은 지가 벌써 8년이다.
그와 함께 '시간관리'라는 테마는 나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그래서 교회에서 그 분야와 관련된 강의는 나의 몫이 된다.
그럼 오늘 나의 시간관리를 잘 하고 있나?
물론 강의에서 누차 강조해 말하지만 시간관리는 곧 사건관리다.
시간의 실체가 사건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결국 나에게 쉼 없이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관리는 하는 것이 시간관리가 되는 것이니까.

나에겐 두 가지 시간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 앞에서의 시간과 나 혼자의 시간.
전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나의 시간이고, 후자는 그럴 필요 없는 나의 시간이다.

사람들을 의식하고 마주하는 사건들의 연속선은 진솔한 나의 시간일 수 없고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사건들의 연속선은 긴장이 없이 흘려버리는 시간이다.
그러니 둘 다 나의 가치와는 상반된 시간들인 것이다.
결국 생각과 반대로 나의 시간관리, 즉 사건관리는 좌절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좌절로부터 오는 것이 피로가 아닐까.

9월 11일 월요일

자고 싶으면 잘 시간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엄청난 피로감 속에 깨어나
몸을 일으키는 것은 그저 무슨 일인가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에 지독히 집착하는 편이다.
시간을 잘 활용하여 오래도록 염원해 온 계획을 실현하고 싶다.

의외로 헨리 나우웬의 시간은 피로감으로 가득하다.
시간을 본인이 원하는 일들로 채우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해 내야 하는 과정은 피로와의 싸움이다.
피로란 뭘까? 그의 인용처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짐일까?

시간을 잘 보내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같은 소망이지만
그 시간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자신의 마음의 지향과 다른 일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인간들이 짐승들과 달리 피로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나의 이야기로 돌아온다면 나의 시간관리, 사건관리 역시 피곤하다.
다른 사람 살피랴 피곤하고, 나 스스로에게 절망하느라 피로에 시달린다.

마태복음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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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교사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10주 내로 성경 전체를 살펴보자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첫 모임에서는 성경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이나 의문들에 대해서 나누고
구약성경의 전체를 조망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제는 두 번째 모임으로 창세기를 공부했다.
두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얼마나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을까 만은
최선을 다해서 설명하고, 의문점들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처음 전체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잘 모른다고 하셨던
몇 분들이 세부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니까 열변을 토하는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일단 어느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그래도 나은데,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다른 사람의 견해에 대해 판단까지 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 싶었다.
물론 그것이 사람의 성향의 다름에서 오는 현상일 수도 있겠으나
이를 통해 성경공부의 목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성경, 아니 꼭 성경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그 배우는 것을 통해 자신을 바꾸는 모험으로 한 걸음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고 유익할까.
그런데 그 성경을 배우면서 조금도 자신을 바꾸려는 마음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더 확고히 하거나, 다르면 모른 척 하거나 거부한다.
그에 비해 의문을 품거나 화가 나는 것은 나은 거다. 그렇게 변화가 시작되는 거니까.

변화,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꾼다는 것이 사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두려움으로 움츠려 안전만을 추구한다면
우린 온전한 사람,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도 자기 방식으로 읽고 엉뚱한 소리를 할 테니 말이다.

더 나아가 교역자로서 나에게 막중함이 다가온다.
먼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바꾸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그들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잘 소개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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