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

자히르는 ‘한번 만지거나 보고 나면 결코 잊을 수 없고, 우리의 머릿속을 완전히 장악해 광기로 몰아가는 무엇’으로 주인공이 아내가 행방불명되면서 괴로워하며 자신이 아내 에스테르라는 존재에 얽매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에스테르를 지칭하는 단어가 된다.

주인공은 아내를 찾기 위해 먼 곳, 카자흐스탄의 스텝 가운데로 간다. 아주 먼 곳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리는 정말 먼 곳으로의 여행은 자신의 내부로의 여행이다. 전혀 인식하고 살지 않았던 표지들을 발견하고, 그것이 가리키는 쪽으로 자신의 몸을 돌리는 것, 마치 풍향계가 바람에 자신의 몸을 맞기고 도는 것과 같이.

주인공은 이전까지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자신의 삶이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얽매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과거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오늘 자신에게 주어지는 표지들을 좇아가게 되고, 그 여정이 그가 갔던 어떤 여행보다도 길고 먼 여행이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벗어버리고 자신을 찾았을 대 진정한 사랑 또한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아내를 찾는 여정 가운데 미하일을 만나고 자신과 그의 주변 인물들을 만날 때 그들이 에스테르에게 받았다는 이름 모를 군인의 피 묻은 셔츠조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죽어가는 한 군인이 자신의 피 묻은 셔츠를 벗어주며 에스테르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 옷을 찢어서 죽음을 믿고 또 그렇기 때문에 오늘이 지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눠가지세요. 그들에게 내가 방금 신의 얼굴을 보았다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사랑하는 유일한 진실을 찾으라고, 그 진실의 원칙에 따라 조화롭게 살라고 말해주세요.’

‘오늘을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주인공이나,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하는 ‘오늘’은 어제를 전재로 한 오늘이다. 어제의 어떤 삶이 축적된, 다시 말해 어제의 삶을 충분히 고려한 오늘이라는 뜻이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과거에 매어있는 오늘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어떠함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피 묻은 셔츠조작을 받을 수 없다. 오늘이 주는 그 무궁무진한 삶의 생명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자히르」의 메시지는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떠나라는 것이다. 심지어 아내조차도 지금 그녀가 내 곁에 아내로 있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아내를 사랑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들, 자신을 규정하는 것들을 털어버리고 온전히 새로울 수밖에 없는 여행을 떠나라는 것이다. 마치 유목민처럼. 유목민은 과거에 자신이 머물렀던 곳에 연연하지 않는다. 땅도, 집도, 관계도, 업적(명예)도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그의 아내를 만나기 전에 치르게 되는 의식에서 자신의 새로운 이름으로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한 것은 유목민의 삶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2005.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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