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 닥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내가 그렇다. 죽지 않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아파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몸 상태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지만 실은 병들었다고 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을 때가 더 많다고 해야 한다.

삶이 고통스럽지도, 불행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그러나 오늘 헨리 나웬의 일기를 읽으면서 내가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불행과 고통이 복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그 불행을 내가 만났을 때 뒷문이 아닌 앞문으로 당당히 맞을 수 있다면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을까?

헨리 나웬은 추기경인 조지프라는 사람이 암으로 입원해 있을 때 만났던 일들을 추억하며
그의 아픔을 넘어 죽음까지도 교회에 선물이 되겠다고 일면 가혹할 것 같은 말을 적고 있다.

9월 7일
나는 조지프와 함께 있으면서 그의 병과 언제 닥쳐올 수 있는 죽음이
오늘날 교회에 그가 선사하는 가장 큰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깊은 확신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에이즈와 암, 기아와 전쟁과 폭력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조지프의 병과 죽음이 아파하는 모든 사람을 진실로 배려하는 사목이 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는 끔찍한 불행을 겪으실 때
그 고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 보셨기에 그 사건은 우리에게 복음이 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불행도
그것을 맞이하는 나의 태도 여하에 따라 전혀 다른 반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너무도 조심스럽지만, 나의 어떤 불행도 하나님께 유익하게 바꾸어내는 삶으로 당당히 나가고 싶다.
나의 죽음도 유익하다는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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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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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2일 토요일
나는 단 하루도 나의 내념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능한 한 솔직하고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고서는 그냥 넘기지 않겠다고 자신과 약속했다.

헨리 나웬의 마지막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한 번에 끝까지 읽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매일 한 글자씩 써 내려간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아
하루에 한 두 편씩을 읽으려고 한다.
그 여정을 통해 나를 돌아보며 성찰을 시도해 보고 싶어서이다.
어찌 내 주제에 헨리 나웬이라는 거목을 올려다 볼 수나 있을까 만은
성큼 성큼 앞장서 가는 아빠를 종종걸음으로 뒤쫓아 가는 아이처럼
그렇게 읽고 생각하고 기록을 남겨보고 싶다.

9월 3일 일요일
기도는 무의식과 의식을 이어주는 다리다.
어쩌면 나의 기도, 하느님 곁에 있으려는 나의 노력, 하느님과 친교를 맺는 나의 방식을 버리고
성령께서 내 안에서 자유로이 움직이시도록 나 자신을 내맡길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기도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저렇게 기록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기도의 상태를 '어둠과 메마름'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로부터 기도가 돌처럼 무감각해졌다고 하더라도 성령께서 이끄실 것임을 믿고 있었다.
그리곤 그 다음 날 일기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인 우정을 기도에 비유한다.

9월 4일 월요일
기도하려는 나의 노력은 우정을 위한 노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도와 우정은 정화를 필요로 하며 덧없는 감정에 덜 의존하고
한결같이 헌신하는 일에 더욱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하는 말 '이 지혜를 따라잡으려면 참으로 많이 수양해야 한다.'
맙소사 이 영성의 대가가, 그래서 내가 쳐다 볼 수도 없을 것 같이 높은 경지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수양해야 한단다.

나는 수양은커녕 기도에 무장해제를 하고 살고,
성령에게 맡기기는커녕 PC에 더 의존해서 삶을 연명하고 있으니 참 한심한 노릇이다.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고 살 수 있다니 참으로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 기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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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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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의 중요한 척도 중 하나가 '집중'이라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집중력이 나에게 많이 부족하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산만 그 자체이다.
요즘 들어 부쩍 더욱 많이 느낀다.

내 상황으로도 그렇고, 내 생각으로도 당연히 집중해야 할 곳이 있는데,
그대로 내버려 둔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 때가 더 많다.

책은 다 읽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책 얘기만 들으면 일단 구입하려는 마음만 앞선다.

중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한 신령한(?) 전도사님 한 분이 오셨던 적이 있다.
이 분이 형과 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하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내가 산만하다는 거였다.
그 때는 그 말을 수긍할 수 없었다.
일단 기분이 많이 나빴는데, 그 이유는 내가 형보다 공부를 잘 했기 때문이다.
더 산만한데 어떻게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내 논리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전도사님의 진단(적절한 표현!)이 맞았던 것 같다.
형은 인생이 심플해서 하고자 하는 것을 한결같이 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잘 못 살아왔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이리저리 흔들림이 더 많았던 것 같고,
특히 요사이 많이 산만한 모습을 보면서 더 그 말이 더 떠오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소망 중 하나가 뭔가를 집중해서 뚫는 삶을 사는 것 아닐까.
꼭 뭐를 뚫은 것이 인생의 최종 목표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내가 나의 인생을 살면서 더 이상 잘 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의 집중을 한 흔적을 갖고 싶다.

집중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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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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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정해서 꼬박꼬박 보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드문드문 보게 될 때가 있다.
오늘은 선덕여왕을 보게 되었는데,
흉년에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민란이 일어난 안강성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민중들은 웬만해서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한 마디로 '좀 더 참고 살면 되지'하면서 몸을 낮춘다.
그래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이다.
달리 보면 어차피 굶어 죽을 것이니 다른 방식으로 죽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민중들의 목숨을 건 폭동, 즉 자기 표현이 역사를 진보하게 한 것이 아닌가?

"만일 민중들이 법을 다 지키고 살았다면 사회는 지금 노예제 사회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법치는 옳은가'라는 강의에서 한홍구교수)

결국 이 진보라는 것은 가진 자들의 생각을 아주 조금씩 바꾸는 과정이 아닐까.
뭔가를 쥔 자들은 변화를 원치 않는다.
그래야 자신들의 힘과 소유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 몸을 던져 피 흘리는 불법이 변화의 시발이 될 것이 아닌가.

'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 하면 예수님을 빼놓을 수 없다.
일단 그 분은 유대인들의 목숨과도 같은 법, 율법을 무시했다.
이유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대 기득권자들의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또 그 뿐일까. 예수님의 행보는 헤롯이나 로마의 지배자들에게까지도 걸림돌이 되었다.
어쩌면 지배자들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이 백성들을 한 차원 높게 깨워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을 터이다.
그런데 그 과정은 정치적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성경은 빌라도가 등 떠밀려서 예수님을 십자가로 보낸 것으로 나오지만,
어찌 그 자신의 의지 없이, 판단 없이 그런 일이 가능할까? 대 로마의 총독이 말이다.
빌라도는 충분이 이 사람, 예수의 행적을 정치적 차원에서 이해했고, 법으로 심판한 것이다.

예수 사후 이천년의 세월 동안 힘없고 눌린 자들의 불법 투쟁은 계속되어 왔다.
오늘 본 선덕여왕에서의 백성들의 행동도 거기에 속할 거다.
언제나 가진 자들의 논리는 주류를 형성하지만
그것에 의해 규정되는 자들의 생각은 무시된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기꺼이 그 힘없는 쪽에 서셨다.
그래서 무참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 오늘도 여전히 중요한 화두이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에 대한 생각의 진보를 위해 또 어느 곳에선가 불법은 행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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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기웃 하다가 드디어 트위터에 가입했다.
블로그를 하면서 또 트위터를 한다는 것이 산만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냥!' 한 번 발 담가 보기로 했다.

우선 김주하, 이외수, 노회찬의 Follower가 되었고,
누가 내 글을 구독해 줄 진 몰라도
주로 간간히 떠오르는 아포리즘을 올려볼까 한다.
그리고 독서 후의 정리에 부담이 있었는데, 편한 마음으로 마음에 와닿은 구절들을 올려야겠다.

많이 지져대야징 twitter~
http://twitter.com/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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