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 '문화인류학'이라는 과목을 듣게 되었는데
첫 시간에 좀 독특한 과제를 해야 했다.
2050년의 일기 써오기, 그것도 로봇이 들어가게.
다른 수강생들 써 온 것을 세 편 정도 들었는데,
무슨 공상과학 소설을(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을 방불케 하는) 대하는 듯했다.
그에 비해 내가 써 간 것은 너무나 소박하고 신변잡기적이었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접근이었다고 자평하며 올려본다.


2009년 8월 9일에 쓰는
2050년 8월 9일 김민태의 일기

운동부족!
원래 운동하는 것을 싫어했다.
특히 동그랗게 생긴 것을 하나 놓고 죽자고 뛰어다니는 것은 더욱 싫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뛰며 흘리는 땀 냄새가 그립다.
온종일 소위 최적의 온도에 꼼짝 않고 앉아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당최 사는 것 같지가 않다.
정부에서는 최상의 실버서비스를 실현한다고 하면서
결국 저 실버도우미 한 놈을 안겨 주었다.
뭐 나름 편리하긴 하지만 저 놈은 나를 돕는 척하면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로봇이면 로봇의 본분을 지켜야지 웬 말이 그리 많은지.
이래라 저래라 마누라보다 잔소리가 더 많다.
일어나라, 이 닦아라, 밥 먹어라, 걸어라, 씻어라, 누워라 등등.
그래봐야 콧구멍만한 방에서 하는 일인데.
이 놈 없이도 할 수 있는데.
이까짓 귀찮은 놈 안겨 놓고는 내 새끼에게서 돈을 뜯어가겠지.
나쁜 놈들.
저 놈이 컴퓨터에 쓰는 일기는 훔쳐보는 것 같아서
오늘부터는 옛 기억을 살려 만년필로 끄적거려야겠다.
놈! 속이 좀 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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