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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03_살전 3:1-13

3 마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바울 서신의 목적은 단지 글이 아니라 만남에 있었다.
구체적인 만남의 보조적인 역할로 서신을 쓴 것이다.

데살로니가 전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바울의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을 보고싶어 하는 열망이 절절하다.
직접 보는 것의 차선으로 디모데를 보내고, 또 서신을 보내는 사도 바울의 심정을 이해하며 읽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데살로니가 교회의 현재 상황을 표현하면 '환난'이다.
이는 이미 바울이 복음 전하면서 그들에게 닥칠 것임을 예언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 환난이 혹시나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에서 멀어지게 할까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건실히 자라도록 돕기위해 디모데를 보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디모데를 포함한 자신의 역할을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쉼없이 마음에 담아 두고, 살피며, 부족함을 보충해 주는 자리라는 얘기다.
바울이 이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얼마나 집중했는 지는 말하면 입만 아프다.

어쩌면 목회자, 때때로 교회 내의 중직자들이 바로 이 일을 위해 부르심을 입은 것 아닐까.
요즘 드는 생각은 이런 사람들이 너무 게으르고 말만 많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열심이 뛰기도 하지만 불평이 가득한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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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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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02_살전 2:1-12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받았으니 우리가 이와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는 곳을 보고, 하나님께서 하고 싶어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 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하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삶의 가장 완전한 모범은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만큼 하나님과 가깝게 살았던 사람은 없다.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그러하셨듯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어떤 종교적 행위, 의례, 소속(멤버십)에 있지 않은 것 같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만나시면서 견지하셨듯이
인간을 향한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갖고,
그들을 향해 기꺼이 목숨까지도 내어 줄 수 있는 것이다.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8절)
이 얼마나 예수님과 닮은 마음 자세인가?

간사한 아첨이나 실속을 채우는 탐심이 있을 수 없고(5절)
정당한 댓가 운운하며 자신의 몫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교회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부분에 약점을 보이는 것 같다.
교회 안에 얼마나 간사한 아첨과 탐심이 많은지.
소위 종교인들, 먹고 사는 문제와 결부되기에 직업적으로 흐를 수도 있고,
조직 안에서 살다보면 외곡된 문화의 영향 아래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옳은 말을 하기보다는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하지 않나.
칭찬과 간사한 아첨과의 경계는 어디일까.
또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면 바보라는 소리를 듣지 않나.
진리와 원칙을 지키려는 사람은 오히려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안전보장이 아닌 인간으로부터의 그것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지.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방식을 지켜나가기 위한 자기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치른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고,
예수님께서 그 길을 온전히 걸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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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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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을 오늘부터 한 장씩 읽어보려 한다. 물론 읽다보면 뛰어뛰엄 읽을 수도 있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겠지만, 암튼 바울이 쓴 서신의 연대적 순서에 따라 데살로니가 전서 부터 읽는다.

<바울서신의 대략적 집필 순서>
살전(50년), 살후(50년대 혹은1세기 말), 갈(54,55), 고전(54,55), 고후(55,56), 롬(56), 엡(60,80), 골(56-58,58-60), 빌(53-55, 56-58), 몬(불확실...), 딤전(60년대, 2세기초), 딛(60년대, 2세기초), 딤후(60년대, 2세기초)

바울서신01_살전 1:1-23

살전 1:9-10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아들이 강림하실 것을 기다리는지...

과거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물리적 환경은 복잡했지만,
정서적으로는 명쾌했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향하던 시선을 하나님으로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여러가지 방해와 저항 요소들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대상은 확실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우상이라는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내재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우상은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만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벌에 대한 우상화
돈에 대한 우상화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우상화
인기에 대한 우상화

이런 것들이 오히려 더욱 우리의 삶과 정신을 좀 먹고 지배하고
급기야는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 되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함정에 빠뜨려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아들이 강림하실 것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삶의 양태를 송두리체 바꾼 것을 의미한다.
우상이라는 것은 그 지역 토착 문화를 뜻하고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은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인데
그것을 버렸다는 것은 지역적 소속감의 박탈
혹은 가족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꺼이 그 선택을 했다는 것은 실로 혁명적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부분에서 이 선교, 복음의 전파의 일이 사람의 일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어찌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성령이 감동하고 이끌어 주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믿음 역시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임에 분명하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합당한 자세이다.

더 나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지금까지 바라고(vision) 살던 것들에서 떠나
새로운 바라봄, 기다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재림)이다.
예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지금 강한 힘으로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의 종국,
그것들 위에 최후 승자로 서실 예수님을 기다린다는 것으로
이제는 그 이전의 것들에 연연하여 휘둘리지 않고 더 분명한 삶의 지표, 방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버리고, 돌아와 기다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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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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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하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것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 걸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짝을
잘라 줄 마음 자세를 언제나 가지고 산다
부족한 내게 그것도 기쁨이겠기 때문이다

도종환
부드러운 직선(창비시선 177),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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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깨어살리/돌소리 2009. 11. 7. 10:52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안디옥 사람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운 이유는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에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이어가는 그들의 특별한 삶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만 올리고 또 올린다면
예수님이 땀과 눈물, 심지어 피까지 쏟으시며 사셨던 삶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단지 예수님은 저 만치 나의 기도를 하나님께 중개하는 그런 존재로 고정화 해버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최고의 본을 보이신 우리의 모델이셨다.
우린 그 여정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고뇌와 결단을 배우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과는 동떨어져
자신의 삶의 내용을 예수님으로 조금도 바꿀 마음이 없으면서
머리로 '알고 있는 예수님'을 되뇌이며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신앙적 행위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교회에 출석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구별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지칭하듯 입으로 예수를 말하는 예수쟁이 혹은 교인은 될 지언정
참다운 그리스도인, 예수 따르미는 아니다.

누군가 '제가 교회를 안 빠지고 잘 다녔고, 장로거든요!'라고 말할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실까.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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