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 수업 시간에 ‘30살이 더 많은 사람으로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분’을 찾아서 심층인터뷰를 해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교수님이 과제를 내 주셨다. 하지만 수강생 대부분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은 그러면 ‘자신이 30년 후에 누군가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끔 하는 사람이 될 수는 있을까’를 질문하셨다. 30년 후에 누군가 나를 본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없을 것 같지만, 혹시 가능하다면 오늘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수업을 마치고 11시를 넘기는 시간까지 모여 앉아서 두 주 남은 행사 이야기와 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대학원 동기들을 보면서 참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거의 중간이니까 나를 중심으로 아래위로 10살이 훌쩍 넘으니 최고 20년도 더 차이나는 사이도 있다. 그런 연령 차이에다가 알게 된지 8개월 여 되는데도 얼마나 오누이 같고, 남매 같고 형제자매 같은지. 어쩌면 이렇게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온 사람들처럼 말이다.

9월 19일 화요일
오늘 나는 우리 삶이 수많은 형태로 연결되어 왔다는 점에 새삼 놀랐다.
                                                                                                  (헨리 나우웬의 마지막 일기 50p)

헨리 나우웬을 만났던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닐까?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만약 헨리 나우웬 신부를 알게 되었고, 관계를 맺게 되었다면 그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지 않았을까? 뭐 그 사정도 잘 모르고, 인간 헨리 나우웬에 대해서도 자세히 모른다. 단지 그의 저작들을 통해 그의 생각을 엿보았을 뿐이다. 글이라는 것이 묘해서 그 사람을 다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 교묘하게 진면목은 감출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헨리 나우웬이 관계를 지속하면서 그들과의 연결에 새삼 놀라는 대목에서 나는 뭘 그걸 가지고 그러나 하면서도 나에겐 그런 관계가 있는 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낮에는 친구가 목사 안수를 받는 곳에 다녀왔다. 내가 동기회에 회장 없는 총무라서 대표 격으로라도 가야했고, 또 평소 통화를 자주하고 지내는 편이었기에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고민없이 다녀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그 관계가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놀랄만하지도 않다. 19년 지속된 관계지만.

오늘 만나는 사람들, 과연 그들과의 연결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삶을 정리하는 순간까지 나의 존재를 느끼게 해 줄 사람이 있을까?

나와 30년 차이나는 이들은 지금 초등학교 1학년들이다. 그들과 진솔한 만남을 가지려하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있어야 할 것 같고, 그 전에 20년, 아니 10년 차이라도 마음을 나누며 공존의 기쁨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한두 가지라도 서로에게서 담고 싶은 점들을 찾아 갈 수 있으면 더 좋겠고. 그래서 오늘 목사 안수를 받은 친구도, 또 같이 공부하는 동기들도, 교회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도 귀하고 소중하게 만나고 연결해 가야겠다. 언젠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음에 새삼 깜짝 놀라기를 바라며.

92년에 한 동기의 결혼식을 마치고 참석했던 친구들이 사진을 찍었다.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 여섯 번째 친구가 오늘 안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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