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후기

깨어살리/日步 2011. 4. 27. 22:34
설교 하기 전이 좋을까 설교 한 후가 좋을까?
어리석은 질문같지만...
설교 전이 더 좋은 것 같다.
왜?
설교 전에 긴장 하게 되고, 마무리가 잘 되지 않았을 때는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최소한 아직 말을 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말은 내 뱉으면 그만큼 나에게 되돌아 오는 것을 느낀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라는 지극히 사적인 통로를 통해서 전해지다 보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들어갈 수 있고, 그러다보면 그 말의 질량이 낮아 질 때가 있다.
그렇게 말씀을 전하고 내여 오면 한 없이 허전함에 부끄러움까지 느끼게 된다.
아마 설교를 들은 성도들은 전혀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전한 전체 말씀이 아닌 마음에 와 닿은 일부분만을 기억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또 매 번 최선으로 준비되지 않는 설교를 보면서,
나 자신의 성실하지 못함, 실력 부족이 많이 느낀다.
물론 내가 할 수 없는 성령의 영역이 있음을 고백한다.
때때로 성령의 역사하심이 나를 압도하는 경험도 하지만,
그것이 늘상 일어나는 체험은 아니다.
그래서 노력 없이 그런 요행만을 바랄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암튼 오늘은 설교 후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이런저런 넋두리를 해 본다.
다음 번에는 좀 더 최선을 다하고, 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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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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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돌아오는 절기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 '뭐 이 시기에 그 본문에 그 말씀이겠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올 해도 변함없이 사순절이 시작되었고, 돌아오는 주일이 두 번째 주일이다.
지금 어린이부는 매일 성경읽기를 하고 있고, 주 중에 읽는 본문 중에서 주일 본문을 정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주에 정해진 본문은 마태복음 20:29-34의 말씀이다.
그런데 2월 마지막 주 설교 본문과 내용상 겹치는 부분이 있다.
두 소경의 치유 사건이다.
다른 복음서는 고침 받은 소경은 한 명인데 마태는 꼭 두 명이다.
가다라(거라사)의 광인도 두 명이었다.
마태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썼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증인이 두 명이 되어야 한다는 율법에 좀 더 충실하려 했던 것 같다.
신 19: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이 전통에 의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도 두 명씩 보내셨다고 다른 복음서(막6, 눅10)도 전하고 있다.
연관을 지어 본다면 두 명의 전통은 정탐꾼 열두 명에서 실패를 경험한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탐꾼을 두 명을 보내는 것에서부터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예수님께 눈을 뜨게 해 달라는 소경이 두 번 등장하는데
9장에서의 사건과 20장에서의 사건을 어떻게 다른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
그 포인트는 예수님께 있는 것 같다.
소경들이야 9장이나 20장이나 고쳐 달라는 것에 목을 매는 입장이니 말이다.

장소적으로도 9장은 가버나움 인근이었고, 20장은 여리고였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고 계실 때이다.
이미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으실 것이라는 수난예고를 세 차례나 하신 다음이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마음가짐의 그 비장함을 빼놓고 이 사건을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정말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계실 때,
어쩌면 주변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뿐이었으니 혼자 외롭고 쓸쓸하다 못해
참담한 심정까지 느끼셨을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향해 또 소경 둘이 소리를 지른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이놈의 인생들은 참 어디까지 예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예수님께서 지금은 그럴 정신이 아니니 돌아가라고 하셔도 됐을 법한데
예수님은 너무도 친절하게 그들을 향해 서셨고,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질문을 하셨다.

특히 교회에서 교사로서 어린이들을 상대할 때,
교사를 하겠다는 것이 대단한 결단이고, 그러하기에 교회학교 부서에 있는 것 그 존재 자체로 귀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큰 선택을 한 것인데, 나에게 이거해라 저거 해라 할 수 있어? 그리고 이 어린놈들은 그것도 몰라주고 불평하고 귀찮게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가끔씩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이 왜 나를 몰라주느냐는 식의 생각 말이다.
우리도 그러할 진데 우리 예수님은 어떠셨을까?
'이 무지한 인간들이 죽음 앞에 고통당하는 나를 몰라주고 또 뭘 더 해 달라고 한단 말인가?'라고 불평을 하실 수도 있는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그런 인간들을 그들의 말처럼 불쌍히 여기셨던 것 같다.
초지일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온전케 해 주시고 싶은 마음을 잃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사순절에 묵상해야 할 예수님의 마음이 이 마음이 아닐까.
예수님께서 당신을 내어주면서도 우리들을 걱정하고 불쌍히 여기셨던 그 마음, 
그런 여정을 걸으시며 겪으신 고통스러운 심정을 느끼고,
그 길로의 초대에 대한 응답하는 삶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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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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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8. 유년부 공과 진도에 맞추어
본문 : 사도행전 11:19-26
19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 사람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서, 그리스 사람에게도 말을 붙여서, 주 예수를 전하였다. 21 주께서 그들을 돌보시니, 믿게 된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왔다. 22 이 소식을 듣고서,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다. 23 바나바가 가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해서,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였다.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께로 나아왔다. 25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다.

목표 :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서 책임 있는 삶을 다짐한다.

설교문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11장 19절에서 26절의 말씀이에요(봉독함).

자기 이름 말고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을 별명이라고 해요.
우리 친구들 별명 가지고 있죠?
어떤 별명은 들으면 참 좋은 것도 있어요. 전도사님 같으면, ‘배용준!’이라고 부르면 듣기 나쁘진 않아요(좀 웃으라고ㅋㅋ).
하지만 이름을 가지고 조금 바꿔서 ‘○태’라고 부르면 듣기도 싫고, 기분도 나쁘죠.
우리 친구들은 어떤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어린이들의 대답을 들으면 진행)

정리해 본다면 어떤 별명을 가지느냐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기왕에 가지려면 아주 좋은 별명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뜻에서 오늘 성경말씀 속의 사람들도 가졌었던, 그리고 여러분도 이미 가지고 있는데 미처 모르고 있는 아주 좋은 별명 하나를 소개하려고 해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약속하신 성령이 제자들이 내려온 이후 12제자는 물론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예수님을 전하는 생활을 했어요. 함께 모여서 말씀을 듣고, 찬양을 하고, 먹는 것도 나누어 먹고, 내 것 네 것 없이 나누어 쓰기도 하고요. 그래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고, 당연히 소문이 나게 되었어요. 그러자 예수님이 계실 때부터 싫어했던 사람들이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게 되었어요. 괴롭혀서 없애버리려 한 거죠.
핍박하는 일이 더 심해지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어서 이 곳 저 곳으로 도망가다시피 했고, 피신한 그 곳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어요.
사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핍박하여 괴롭게 하면 ‘줄어들고 언젠가는 없어질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퍼져나갔고, 더 늘어 간 거예요.
이 퍼져 나간 사람들 중에 안디옥이라는 곳으로 간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다른 곳의 사람들보다도 더 열심히 예수님을 믿었어요.
자기들 집에서만 한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눈 띄게 예수님을 믿으며 살았어요.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이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이지?’하며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이 사람들 모이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니까,
사람들은 결국 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되어버렸어요.
‘야, 저기 그리스도인 온다.’
뭐 이런 식으로요.

사실 처음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은 좋은 뜻에서 그랬다기 보다는 ‘뭐 저런 사람들이 다 있어?’하는 식이었는데,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이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부르는 또 하나의 이름이 된 거예요.
영어로는 ‘크리스천’이라고 하는데,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이죠.

이제 알았죠? 우리의 별명이 무엇인지.
우리의 별명은 그리스도인이에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뭔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붙여지는 이름, 그리스도인.
우리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멋지게 살아가는 유년부 친구들이 되세요.
그러면 사람들은 말할 거예요.
‘그리스도인이 우리 곁에 있으니까 너무 좋아. 나도 저런 그리스도인이 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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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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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 유년부 설교문)
본  문  마태복음 19:13-15
13 그 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려와서, 손을 얹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거기에서 떠나셨다.
목표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않으시고, 하늘 나라가 어린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음을 안다.

설교문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9장 13절에서 15절의 말씀이에요(봉독함).

1.
얘들은 가라, 얘들은 가!
아이들은 안 되요. 들어 올 수 없어요!
어린이 입장 불가에요.
이런 것 본적 있어요?(13세 이하 금지 표시)

그런데 이런 일이 성경에서도 있었어요.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서 말예요.

2.
어느 날, 예수님께서 여러 사람들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니 당연한 모습이죠.
예수님의 말씀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무렵 한 쪽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무슨 일인가 봤더니,
예수님의 제자들의 목소리와 어떤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섞여서 소란하게 드리는 거예요.

어떤 아주머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뵙기 위해 찾아 왔는데
제자들이 ‘아이들은 가!’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아니 정신이 있기나 해요? 우리 예수님께서 얼마나 바쁘신데 얘들까지 데이고 와서 정신없게 해요? 당장 데리고 가세요!’
‘그저 예수님께서 이 아이에게 손만 얹어 주셨으면 해서 온 것인데 왜 못 뵙게 해요?’
이런 소리들이 오가게 된 거죠.
당연히 예수님도 금방 무슨 일인지 알게 되셨어요.

3
예수님은 가만히 있지 않으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그들 쪽으로 가셨어요.
제자들을 비키게 하시고는 어린이들을 보시고는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아라, 하늘 나라는 이런 자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는 어린이들의 머리에 일일이 손을 얹어 안수해 주셨어요.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얘들은 가라, 얘들은 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어른들처럼 그렇지 않으셨어요.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늘 나라는 이런 자들의 것이다.”

4.
여러분 예수님께 오는 것, 교회에 오는 것 주저하지 마세요.
언제든 좋아요.
마음이 괴로울 때, 기쁠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언제든 오세요.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막지 않으시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어요.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는 여러분이 오는 그 날이 바로 어린이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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