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얘기지만 기도는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의 마음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그러나 대부분은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많은 기도를 하고 있다.
예배 중, 모임을 가질 때, 식사 할 때 대표해서 기도를 한다.
그럴 때에야 격식에 맞춘 어투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은밀한 기도 시간에 조차도
자신의 직분이나 위치를 의식한 말투나 내용의 기도한다는 것이다.
소위 말해 우리가 사회 생활을 통해 덧쓰게 된 페르소나(가면)의 기도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 가면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데도
스스로 틀에 넣어 자신의 감정들을 배제한 채로 과장된 사실들을 나열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과 진솔한 만남이 가능할까?
다른 말로 하면 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의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말이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우리의 유일한 신분은 어린 아이면 족하다.
아이 같다는 것은 감정에 솔직하고, 사회적 위치나 역할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페르소나에 갖히지 않은 진솔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고, 
내면 깊이 담긴 이야기들이 남김 없이 꺼내 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마 19:13-14)
 
'어린이다움이란 다른 한 편 그것이 지닌 순진성과 무의식성 덕분에 상당히 완벽한 自己의 상, 꿈밈없는 자기의 개성을 갖춘 전체인간의 상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어린이나 원시인을 볼 때 어른이 된 문화인의 마음속에 충족되지 않는 욕구와 필요에서 우러나온 그리움이 눈을 뜨는 것이다. 그것은 적응되기 위해서, 즉 페르소나(Persona)에 맞추다 보니 전체 인격상에서 떨어져나간 인격부분에 해당된다.'
회상, 꿈 그리고 사상(아니엘라 야훼 엮음, 집문당) 2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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